정말 레시피를 알아내겠다는 의도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요조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호시즈키당의 메뉴는 똑같이 레시피로 똑같이 만들어도 절대 같은 맛은 나지 않았다. 희안하게도 레시피를 재현시킬 수 있는 건 호시즈키의 사람 뿐이었다. 만약 요조라의 아빠가 할 수 없었다면 아마 할아버지의 대에서 호시즈키당은 끊겼을 거라고, 예전에 들었던 말을 속으로 떠올리기만 한다.
그림 얘기를 꺼내자 아키라도 기억하는 기색을 보였다. 잊고 있었으면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러고보니 조금 전 교내에서 코드를 찍으며 했던 생각도 있었지, 하지만 기억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요조라는 표정 한끗 변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조라의 반응은 사진 찍지 말라던가, 아키라가 한 말들이 좀 그렇다던가, 그런 반응이 아니라 말한 그대로다. 정말로, 그걸 어떻게 찍어야 하지? 하고 오히려 되묻는 듯한 반응. 다시금 고개 갸우뚱 하며 혼자 고민하다가, 생각하기 귀찮아졌는지 짧게 한숨 내쉬고 중얼거린다.
"어떻게, 할 지는... 직접, 보고, 생각하세요..."
사진을 찍는게 요조라 본인도 아닌데 왜 고민을 해야 하나 싶다. 그러니 가서 보고, 아키라가 알아서 하라고, 건성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답을 내놓은 요조라였다. 그리고 혹여나 사진으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걸 염두하는 것에도 요조라는 담담히 대꾸한다.
"제, 그림인데, 숨길 이유도 없고... 부탁, 같은 거... 한다고, 제가, 들어줄... 리가, 없잖아요... 할 테면, 해보던가..."
학교는 아니어도 그 외적으로 부탁이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모두 요조라가 직접 잘라버렸었다. 어른의 부탁도 그랬는데 동급생 혹은 한학년 선배가 부탁한다고 넘어가줄 요조라가 아니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요조라의 말투는 제법 단호했을 것이다.
볼 수는 있는데 사진을 못 찍을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사라지는 재질로 그리기라도 했단 것인가. 하지만 그거야말로 진정으로 신의 장난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일단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모양이니 직접 보기로 마음 먹으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보통 그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 아키라의 마음 속에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아무튼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요조라를 바라보며 아키라는 소리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이전 사쿠라마츠리때 호시즈키당의 사장의 뒤에 숨던 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역시 사람은 한두번 보는 것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법이라고 아키라는 조용히 생각했다.
"물론 거절하면 그만일지도 모르지만 귀찮거나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일은 미리 차단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찌되었건 저는 학생회장이니까요."
학생회장으로서 학생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게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만큼 그에 대한 비밀은 분명히 지켜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키라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그는 하늘 높게 쭈욱 기지개를 켰고 다시 두 팔을 아래로 내렸다. 몸에 쌓여있는 피로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탓이었다.
"봄도 거의 다 끝이 나고 있는데... 호시즈키 씨는 이 마을의 산에 있는... 정확히는 북쪽 산에 살고 있는 반딧불이들을 본 적이 있나요? 올해는 호타루마츠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거든요. 별 일이 없다면 말이에요. 작년에는 반딧불이들이 살고 있는 길목이 태풍으로 무너진 탓에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정비도 끝이 났고... 나중에 사장님에게 올해는 예정대로 할 수 있다고 전해주시겠어요? 가능하면 호시즈키당에 찾아온 분들에게 홍보를 해주면 더 고마울 것 같고요."
여름의 마츠리인 호타루마츠리는 다른 마츠리와는 다르게 시미즈 가문이 주최하는 마츠리였다. 그런만큼 아키라는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 그녀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녀가 홍보를 하긴 힘들테고, 애초에 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호시즈키당의 사장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여기저기에 알릴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비록 띠꺼운 신과 아이컨택 한 것으로 잠시 착해져 있었지만 -물론 처음부터 착하지만-!- 끝까지 이와 같은 꼴이니 할 만큼 했다고 본다. 굳이 말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 학교 전체의 탓이지. 이렇게나 배척 받았는데 아무리 착한 신이라도 흑화하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그래, 지금까지 뭣 하러 노력했는가? 이렇게나 쉬운 수단이 이미 눈앞에 있는데.
워터파크 딱 대! 향수 딱 때! 청룡반지? 거뜬하지-!
눈물로 얼룩진 얼굴 터프하게 문지른 카가치는 샛붉은 의지로 마음을 불태웠다. 그리고 결의의 무사처럼 걸어가-
공손히 두 손 모은 채 순한 얼굴로 QR코드를 찍었다.
......이거 완전범죄 노리는 거니까 말이지. 지금 난 얌전한 모습을 위장하여 저 멍청이 같은 약해빠진 신을 훌륭하게 속이고 있는 거라고. 반박 시 내 말이 맞음. 어쩔티비. 저쩔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