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점점 무더워져 이제는 꽃이 지는 날이 되었다. 나는 필연적으로 여름이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마는데, 추운 것도 싫고 더운 것도 싫은 나로서는 곤란스러운 일이었다. 내게 위안이라고는 싸돌던 바람 한 줌이 날 스치고 지나갈 때 뿐이다. 나는 저번 백지로 낸 시험지 때문에 이곳에 있었다. 나의 담임은 내가 정신적인 노동보다 육체 노동에 더 익숙해져있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벌로 깜지 대신 청소를 시키기 시작한 것도 그때즈음이었다. 나는 다만 이 꽃잎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처럼 느껴져 서글퍼진다. 아주 가물어버린 감수성으로는 그뿐인가 싶다.
"미워."
나는 네 옆에서 따라 중얼거렸다. 나는 헤 벌리고 떨어지는 쓰레기들을 바라보다 하품을 쩍 했다. 에비, 쓰레기가 입에 들어온다. 내 옆에 서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너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으나 -어째서인지 나와 학년이 다른대도 이곳에 있다- 나는 너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처지다.
"네? 저요?"
어째서 강의 신인 내가 아침달신이 되어버렸는지 모를 일이지마는, 나는 내 몸속에 달도 담아보고 해도 담아본 적이 많아서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하늘과 강은 붙어있을 일이 없어 상극이나 서로가 마주보고 있기에 쉽게 섞이고는 했다. 나는 곁눈질로 너를 살폈다. 벚꽃이 피었다니 머리를 털고, 나는 또 너의 머리 역시 털어주었다. 참으로 상냥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 나도 이제 슬슬 신과도 친목해야지. 그간 너무 홀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름이... 코로리? 에- 이자요이에 코로리. 이름 투명해-!"
강의 신은 난데, 어째서 나보다 네 이름이 더 투명한지 -미즈미가 할 말은 아니다- 알 길이 없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의 이름을 입으로 굴린다. 달에 코로리면 달신은 이쪽 아니야? 나는 고개를 기울이다가도 복잡한 것은 싫은지라 생각을 끊어냈다. 입가를 끌어올리고 내 이름을 일러준다.
아침달신님이라고 불렀는데 대답이 돌아왔다. 코로리는 '네? 저요?' 라는 답을 날 부르는 건가 헷갈려한다기보다는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아냈는지 놀라고 있다고 이해했다! 정답을 맞췄다고 생각한 코로리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비가 또 내렸어! 어, 나한테도?! 아침달신이 머리카락을 털어내니 머리 위에 피었던 벚꽃이 바닥으로 톡 떨어진다. 저것도 바닥에 닿으면 쓸어야하는 것이라 붙잡고 싶었다! 시선이 자연스레 꽃송이를 쫓아갔는데, 그러고 있을 때 머리 위에 손길이 머무른다. 그래서 멈칫 의아해하던 중에 꽃송이가 바닥에 앉았고, 코로리의 머리 위에서도 벚꽃잎이 팔랑팔랑 떨어진다. 꽃송이는 놓쳤지만, 이번에 팔랑이는 꽃잎은 잡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슬쩍 손을 뻗어 주먹을 쥔 코로리는 손을 펼쳐보았다.
"아ー 꽃방울 잡았다!"
빗방울은 빗방울인데 꽃잎이라 꽃방울이 되었다. 코로리는 뿌듯하게 펼친 손 위 꽃잎을 보여주었다. 작은 꽃잎이 손바닥 가운데 놓여있다.
"까만데에."
이자요이 코로리, 육보름날을 뜻하는 성과 자장가에서 따온 이름이 투명하기에는 어두운 밤색이다. 코로리는 혹시나 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확인해보았다. 저번에 실수로 머리카락에 덥혀둔 흑색이 풀려서, 반짝이는 하얀색을 들켜버린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똑같은 실수로 머리카락 색을 들켜버린 탓에 투명하다고 하는건 아닌지 노심초사 확인해본 것이다. 이번에는 들켜도 신에게 들키는 것이니 딸꾹질할 일도 울 일도 없겠지만!
"밋쨩?"
내밀어진 손을 두 손으로 꼭 맞잡는다. 손에 쥐고 있던 비는 코로리의 품 속으로 기대 넘어졌고, 악수를 하는 코로리의 고개는 갸웃거렸다. 밋쨩이라고 방금 지은 애칭으로 불러도 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악수를 하면 맞잡은 손을 흔들거리는데, 코로리는 꼭 붙잡은 채 멈추도록 힘을 주고 버티고 있었다. 밋쨩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때 반갑다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고 악수를 끝내려고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근데 아침달신님, 이름에 물이 많아! 정체를 숨기려고 일부러 그런걸까?! 검은 카드병정들이 하얗게 칠한 장미인거지! 보아뱀일지도 모르겠다ー! 이런! 아침달신님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에 강이 들어가고 물이 들어가도 그와 관련된 신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요조라주! 음. 일상은 저도 지금 멀티를 구할까 말까 고민 중인지라. 하지만 일단은 하나 돌리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분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할 것 같아 우선 보류하겠어요! 8시 45분까지 아무도 돌리지 않으면 찔러보는 것으로! 그 이전에 돌리실 분들은 돌리시면 될 것 같고요!
렌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있는 아키라를 올려다보면서 조금은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뭐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아키라라고 하면…. 자신이 종종 일하는 스파시설의 주인인 시미즈가의 도련님, 일 잘하는 직장 선배, 다니는 학교의 학생회장의 개념이었으니까.
‘완벽해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사실 피곤할지도 몰라.’
그리고 잠꼬대하듯 중얼중얼거리는 말에 렌은 눈을 깜빡였다. 호타루 마츠리, 아오노미즈류카미? 웅얼거리듯 나오는 말이라 자신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전자는 익숙한 것이었고 후자는 고개를 갸웃할 말이었다.
자면서도 호타루마츠리를 생각하다니. 호타루마츠리는 시미즈가에서 주관하는 것이라던데 그것 때문에 고생이 많은 것일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키라의 몸이 휘청였고, 이내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렌은 놀라서 동그란 눈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깜빡이고 말았다. 잠시간의 아이컨택 후 벌떡 일어난 아키라가 반대편으로 향하자, 렌도 아키라를 부르며 따라 벌떡…. 일어나려고 했는데,
“아키라 선, 읏, 악….”
제법 쪼그려 앉아있었던 탓인지 갑자기 일어선 몸이 순식간에 쥐가 나 렌은 바로 엎어져 흙바닥에 얼굴을 쳐박고 말았다. 다리를 잡고 끙끙대는데 다리가 저린 것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이게 바로 졸고 있는 아키라를 보고만 있던 죄인 것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