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and take a walk on the wild side Let me kiss you hard in the pouring rain You like your girls ins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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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페로사 - 에만 (쓰고 싶었던 내용 보충) ◆uoXMSkiklY
(EY9JkgquJY)
2022-05-06 (불탄다..!) 22:42:47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정당하는 형태는 아니었으나, 대신 배척당하고 사냥당하는 형태였다. 늑대인간 부족과 정부의 협상이 결렬된 것은 그녀의 부모 세대보다도 조금 더 일찍 일어난 일이다. 한 세대를 지나오면서 이미 늑대인간은 정부 지정의 공식적인 히어로들의 사냥대상, '회색'의 일원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로잡혔다. 어릴 적에는 참 생각해보면 이사를 많이 다녔더랬다. 동네 친구들과 조금 안면을 트게 된다 싶으면 이사를 가게 되곤 했지. 그러다 어느 날 뉴 에덴이라는 곳에 사로잡혀 끌려가게 된 것이다. 늑대를 길들이는 교육소에서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고, 자라나서도 뉴 에덴의 간수로 혹사당했다. 뉴 에덴 붕괴 당시 어느 히어로의 손에 거두어져 히어로로 자라났으나, 그녀는 회색이었기에 제대로 등록된 히어로도 되지 못하고, 다크 히어로라는 온 사방에 적뿐인 회색의 삶을 강요당해야 했다. 바빌론 시티에서 회색이란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만, 그녀에게 회색은 다른 의미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래, 단단히 고장난 삶이었다. 둘째는 운명이라고, 셋째는 병이라고, 막내는 저주라고 일컫는 그런 삶을 그녀는 살아오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고장이 났다면 어떤 형식일까. 당신의 삶은 이 작은 머리로 품기엔 한없이 크고, 서러우며, 감당하지 못할 메마른 감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아이는 당신이 배척되고 사냥 당했음을 알지 못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가령 비상한 머리를 지닌 앨리스와 에만이라든지, 아니면 그 모든 이야기를 듣는 미카엘 정도다. 스스로 단절하며 사는 그것이 삶을 이해하고자 세운 척도는 고작 자신의 역할이 주어진 계기뿐이다. 누군가의 삶이 고장 났다 표현하려면, 그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장 났다 얘기하는 타인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라 의심한다. 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보다 큰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고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렇게 피어난 의심은 망상이 되고, 망상은 약간의 신뢰가 된다. 당신에게 손가락을 내어준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있으니까.
곁눈질. 마주하는 시선은 경계심이 어려있으나 순진무구하다. 정말 몰랐다는 듯. 시간은 멈췄으니 타인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기를 읽으면 될 일이지만 오늘은 미카엘이 하도 서럽게 울어서 달래느라 읽지 못했다. 미카엘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면 그 무시무시한 녀석들이 다시금 손을 뻗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이상한 무리가 나타나서 사냥을 시작한 탓도 크다. 당신의 자기소개에 고개를 기울인다. 엘리시온, 들어본 적은 있다. 언제더라. 아마 그가 연회가 열린다고 귀띔해 주던 날이었던 것 같다. 벌써 그게 몇 년 전이다. 그래도 아는 것이니,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나 걸렸다는 말은 차치하고. 이 허름한 건물은 호텔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안도하면서.
숨어버린 것은 절대 두려워서가 아니다! 아아아안무서워. 그렇게 생각했다. 등 뒤로 숨어버리자 당신은 경계심 많은 고양이를 숨긴다. 자그마한 몸집은 금세 가려진다. 입술을 자근 깨물며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아까처럼 솜털이 서있을 것만 같다. 친절한 사람을 남녀 가리지 않고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도 나를 잡아먹으려 들까 싶다. 그러면 당신도 한통속일까? 의심하듯 누구냐고 조그맣게 물었을 적, 고개를 살짝 들었을 뿐인데 시선을 마주치자 다시 당신의 뒤로 쑥 숨어버린다.
영 익숙하지가 않다. 그것이 그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남성은 용왕 정도다. 그마저도 서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고, 이해득실이 그렇게 좋지 못하며, 탐탁지 않기 때문에 으르렁대며 싸우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데이먼이라 불리는 남성은 편하게 대하기엔 지나치게 낯설다. 예의 바른 사람은 싫다. 잘 웃는 사람도 싫다. 그런 사람들은 꼭 다가와서 다 괜찮을 거라면서 약을 건네준다. 이제 더는 아프지 않게 될 거라면서, 안심하라고 한다. 그렇게 점점 취해가고,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 자비였다고 표현하며 내칠 것이다. 의심하게 된다. 데이먼이라는 사람도, 프린치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면 어쩌나 싶었다. 그나마 당신의 의심하지 않는 표정을 보고 약간의 신뢰를 가졌을 뿐이다. 수틀리면 공격하고 도망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함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연구 자원으로 여겨지고, 인적 자원으로 취급되었다. 단 하나, 늑대인간이라는 이유뿐이다. 마치 태생부터 그렇게 살기를 강요받았다는 듯이. 천부의 저주라는 듯이. 이제 에만 혹은 윈터는 알고 있을 사실이다.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페로사는 에만 혹은 윈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손가락을 내어주고, 그걸 부드럽게 거머쥘 뿐이다. 아주 실낱같으나마 이 순간에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잠깐이나마, 아니 어느 정도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비록 그런 사람의 시간이나마, 페로사는 당신에게 나눠주기로 한 모양이다.
아까의 피에 젖은, 지금은 다 씻겨내려가버리고 시체는 아마 지나가던 장의사의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손길에 진작에 바빌론 시티의 그늘로 끌려들어가 먹어치워지고 잊혀져버렸을 그 붉은 조우에 대해서 페로사도 아까부터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던 자기소개와 비를 피하느라 여기까지 오는 바람에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미행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 이상한 교전이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나 걸렸다는데 페로사도 딱히 책망하는 기색이 없고, 데이먼도 딱히 페로사에게 뭔가 비굴한 기색이 없다. 아마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물건이겠지. 정히 궁금하면 페로사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딱히 당신에게 숨길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헤로인, 하는 해괴한 이름. 가명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는 이름이다만, 페로사의 얼굴이 아무리 그래도 그 이름은 좀 심했어, 하는 표정이 됐다. -어쨌든 그 이름으로 소개해달라 하니까, 뭐. "헤로인- 아는 친구인데, 이 빗길에 얘 혼자 덜렁 있길래." 페로사의 말에 데이먼은 구변좋은 미소를 띈다. 상대를 칭하는 이름은, 아무리 괴상하더라도 상대가 알려준 이름이면 족하다. 그것이 바빌론 시티의 영업인들의 매너니까. "그렇군요. 미스터... 미스.."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구변좋은 미소에 혼란이 섞인다. 데이먼은 페로사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으나, 페로사는 어깨만 으쓱했다. 이름은 어떻든 상관없는데, 당신을 미스터라 불러야 할지 미스라 불러야 할지가 헷갈린 모양이다. 2인칭 명사가 남녀로 구분되는 서구권 언어가 이럴 때는 참 곤란하다. "헤로인." 좀더 멋적어진, 그래서 그나마 좀더 인간미있는 영업용 미소를 지은 데이먼은 당신을 향한 인사를 어정쩡하게 마무리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도 됐다고 판단했는지, 페로사는 한 손에 집어든 타월을 당신의 얼굴로 갖다대어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크게 거부하지 않으면, 이내 얼굴을 슬슬 문질러 닦더니 머리를 쓱쓱 비비면서 쓰담쓰담이라기보다는 뽀담뽀담이라는 의태어가 더 적합할 모습으로 당신의 머리와 몸의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머리, 팔, 몸통과 다리까지...
난생 처음 목욕을 당한 새끼 고양이가 딱 이럴 것이다. 뽀담뽀담에 종잇장처럼 몸이 수건에 닿으면 닿는대로 흐물흐물 이끌려먼서도 눈빛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너 지금.. 날 닦고 있는 거야?'를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옳겠다. 뽀담뽀담 뽀송뽀송, 그리고 기어이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정전기가 올라오고 말았다.
당신과 데이먼. 둘은 꽤 좋은 비즈니스 관계인 것 같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 지났는데 서로 간의 표정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표정이 나오려면 그만큼의 신뢰가 있거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 텐데. 창백한 원반 같은 눈동자가 당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그 배신자들처럼 당신에게 넘어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내리깐 눈동자가 어두워진다. '걔'라는 존재는 온정에 녹아 사라질 테니까. 그것의 이름은 헤로인이다.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미카엘이 일상을 살기 위해 이 도시에 맞는 광인의 역할을 뒤집어쓰고 지어낸 이름이 앨리스고, 도덕관념이 뒤집힌 지하에서는 에만이라는 이름을 썼으며, 윈터 본의 외형을 가진 떠돌이 유령을 윈터라고 지었듯이. 헤로인에 취해 처음 자신을 버렸던 날 지어진 이름이다. 그 이름은 심했다는 듯, 당신의 표정이 썩 좋지 않지만 그것은 개의치 않았다. 되레 눈길이 뾰족해진다. 내 이름에 불만이 있다면 네가 어련히 지어보시든지. 그런 표정을 적반하장으로 지어 보이는 것이다.
점잖은 미소. 저런 영업용 미소를 잘 안다. 수도 없이 본 얼굴이다.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뒤에서 눈을 흘끔 들어 데이먼을 쳐다본다. 아까는 눈도 못 마주치고 혼란스러워하더니만, 당신이 뒤로 숨도록 허락한 덕분인지 이것저것 마음속에서 정리를 끝마친 것 같다. 그렇지만, 눈동자에 서린 약간의 경계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데이먼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사슬에 얽매어있는 사람은 아무리 마음을 놓는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이 혼란스러움은 그것만이 아닌 데이먼에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미스터와 미스 사이의 혼란. 앨리스는 대외적인 성별이 정해져있지만, 미카엘은 딱히 성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에만도 모습이 늘 바뀌었고, 자신도 이렇다 할 것은 정하지 않았다. 윈터는.. 모르겠다. 당신은 알겠지만.
"..응."
보편적으로 2인칭으로 칭할 수 있는 수는 정해져있으나, 최근엔 이것저것 생기는 추세다. 그것은 자신의 앞에 Mx를 붙일 수 있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하고 경계심 어린 눈인 척.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는 걸 보니 혼란스러운 미소가 제법 재미났던 것 같다. 데이먼의 선택은 이름을 부르고 급히 마무리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어떤 인사를 해야 할지 그것은 잘 안다. 잘 부탁해요. 그렇지만 깊은 연을 만들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게끔 직접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한다.
당신의 거래로 인해 생겨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나,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 당신의 행동이다. 보드랍고 좋은 감촉의 수건이 뺨에 닿을 적엔 첫 만남에 귀를 막아주질 않나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질 않나.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체념한 듯싶더니, 얼굴을 문질러 닦기 시작할 적엔 점차 빳빳하게 굳는 것이다.
"에븝.."
얼굴을 닦을 적에 뭔가 얘기하려다 딱 막혀버린다. 에브브브. 난생처음 인간의 손에 주워지더니, 목욕을 당한 새끼 고양이가 딱 이럴 것이다. 뽀담뽀담 닦는 것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몸이 수건에 닿으면 닿는 대로 흐물흐물 이끌리면서도 눈빛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정확히는 경악과 충격으로 가득한 눈치다. 지금 날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대놓고 닦고 있는 거야? 네가 온기 주는 사람이다 그거야? 미쳤나? 를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옳겠다.
"혼자 할 수 있거든..!"
눈으로 한참을 욕하더니만, 당신이 수건을 떼자마자 기어이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동동 떠오른다. 물기가 닦였다고 정전기가 올라오고 만 것이다. 한결 보송보송해진 그것이 당신을 쏘아본다. 지금까지 경계하듯 털 세우는 고양이 같다고 여러 번 서술했으나, 그 상황이 실제가 됐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녀가 속한 바인 엘리시온과 빅토리아 앤 데이먼이 꽤 좋은 비즈니스 관계인 것이다. 당신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이름난 바가 거래처로 이 유통업자를 선택했다면, 아마 겉보기로는 허름해보이는 건물 안에 그만한 가치를 숨겨놓고 있겠지. 당신과 비즈니스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인 용왕이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기에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뉴 고모라와 다운타운 등지의 중산층들 사이에서는 건물의 아웃테리어를 일부러 오래되거나 낡은 모습으로 내버려두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위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생활풍조로 정착해 있었다. 이 빅토리아 앤 데이먼이라는 낡은 창고 같은 유통사도, 데이먼이라는 남자의 소개를 받아 들어가면 에스플레네이드 중심가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부티끄가 안에 차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윈터가 겪은 일이지만, 그녀의 편안하고 푸근한 집 역시도 물류지구의 창고들 사이에 숨어있지 않은가.
페로사는 당신의 뾰족한 눈길에 뭐 네가 그렇다면야, 하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데이먼이라는 남자가 Mx라는 2인칭 존칭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안다손 치더라도 당신이 Mr로 불리길 원하는지 Ms로 불리길 원하는지 Mx로 불리길 원하는지는 당신이 알려주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와 자주 만나볼 사이도 아니니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지 않겠나.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쳐로 충분하다. 그리고 일단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방금 생기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까지 비를 맞으셨나요?" "아하하하하, 우산이 바람에 날려갔지 뭐에요. 메리 포핀스처럼 휭 하고... 수건은 금방 쓰고 돌려드릴게요." 당신의 머리에 수건을 얹으며 페로사가 그들에게 너스레를 떨자, 데이먼은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얼굴에 걸었다. "하하하,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세뇨리타 몬테까를로. 다른 용무는 없으십니까?"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데이먼." "별말씀을요. 저희는 가게로 올라가보겠습니다. 별탈없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바빌론 시티다운 인삿말과 함께, 허름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두 남자는 페로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아까의 그 계단으로 총총히 멀어져갔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그녀와 달리 그들은 눈치가 빠른 모양이다.
당신의 몸에서 물기를 덜어내는 손길은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눈빛으로 욕설을 쏟아부어도 그녀의 푸른 눈은 흔들림이라곤 전혀 없이 뭐 어쩌라고 ^오^ 하는 기색이다. "할 수 있지만 안 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나서야, 그녀는 다른 수건을 집어들고 자기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허름함으로 본모습을 위장하는 것은 이 도시에서 제법 보편적인 방법이다. 물론 지하는 그럴 필요가 없이 원하면 뺏고, 뺏기엔 힘이 없을 것이라 도발하기 위해 화려한 것을 드러내곤 한다지만 모습마저 화려해, 대놓고 공격할 기회를 주는 사람은 드물다. 용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 용왕과 함께 하였으니 잘 와닿지 않겠지만, 막상 무엇보다 가까운 풍조였다. 헤로인 또한 유약하고 앳된 미카엘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으며, 에만은 여러 모습으로, 앨리스는 화려하게 생겼지만 골 빈 금발의 여인의 성격으로 타인의 방심을 사는 방법으로 본인을 훌륭하게 위장하고 있었으니까.
위장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도 헤로인, 그것이라 불리던 것은 오늘의 일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금껏 배워온 것이라고는 자신의 역할, 다른 역할과 달리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법, 지하에서 미카엘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 복수해야 할 대상, 사람을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유약한 척하는 방법 정도였다. 그렇지만 오늘 다른 것에 비해 유달리 부족한 사회생활에 대한 것을 당신의 등 너머로 배우게 됐다. 당신과 데이먼이 하는 대화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 거는 법도, 너스레를 떠는 법도, 용무가 없냐 되묻고 눈치껏 빠져주는 법과 흔한 인사를 고급 지게 포장하는 방법도. 다만 적용할 것이냐 묻는다면 이런 면은 에만이 도맡고 있으니 자신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당당하게 답할 사람이라는 것이 흠이었다. 언젠가 이 존재에게도 쓸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어볼 수밖에. 확실한 것은, 지금은 아닐 것이다. 당신을 노려보는 눈길에서 이미 불만 가득한 욕설을 품고 있었으니까.
"아까 그 사람들이 가면 하려고 했단 말이야!"
흔들림이 없는 눈길이다 못해, 당신의 눈길은 짐짓 얄미울 정도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쏘아보는 시선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 경계심보다 더 큰 감정이 눈에 크게 담긴다. 성가심과 투정이다. 혼자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 온기를 주려고 틈새를 파고든다. 정말 못된 사람이야! 이제 보는 사람도 없겠다 한 번 열심히 바둥거려봤지만 남는 것이라곤 보송보송한 몸과 정전기 때문에 방실방실 뜬 머리카락이다. 입술을 꾹 깨물고 다른 수건을 집어 머리를 닦는 당신을 쏘아본다. 그리고 팔을 쭉 뻗더니, 당신이 머리의 물기를 닦을 적 손을 휘적였다. 당신의 머리를 닦아 주려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다른 의도가 있겠다.
가령 당신의 머리를 파바박 흩어내려 했다든지. 당신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막지 않는다면 제법 유치한 복수겠다. 실패해도 유치한 행동임은 달라지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