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서 당신과 그녀는 여러 가지 형태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와 당신 사이의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당신과 그녀는 어쩌다 지금이라는 이 작은 지옥이자 낙원에 떨어지게 됐을까. 순식간에 당신의 육체를 죽일 수도 있을 만한 무시무시한 육체가, 애정 가득한 몸짓으로 당신을 보듬어주는 이 기묘한 지옥에. 설득력을 잃어버린 무섭지 않다는 강변이 당신의 입에서 꾸물꾸물 흘러나오자, 페로사는 당신의 어깨를 감싸안은 팔을 조금 들어 당신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래, 무섭지 않아도 보기 싫은 것들이 있으니까." (당신의 관점에서) 타인에게 꼴불견이라고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약점을 그녀는 품위있게 포장해주었다. 엎질러도 자신한테 엎지르는 것이면 상관없었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그렇게 말했던가?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진다는 것이라고. 당신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에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오늘 밤이 살얼음 위의 잠깐의 평화일 것이라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책임을 넘어서 그것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광기의 도시의 사람들은 어딘가 한 군데씩 미쳐있다. 어쩌면 그녀는 미치광이의 그것과 같은 미친 과소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켜낸 자신의 삶을, 새로운 삶의 의미에 죄다 탕진해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악마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지불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해야 되는 법. 악마의 거래다. 여기서 악마는 당신이다.
그런 섬뜩한 사실이 푸근하고 따뜻한 순간으로 포장되어 당신에게 다가온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파묻는 정수리에 대고 페로사는 자신의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예전에 101마리 달마시안이라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거기에 나오는 악역 여자가 딱 저런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말야." 하고, 영화 포스터를 보며 가볍게 말한다. 그 악역 여자의 이름이 바로 크루엘라라는 것은 잊은 것 같고, 이 영화가 크루엘라의 과거사를 소재로 한 실사영화라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라도 당신의 영화 선정은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그녀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스크린에 두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녀에게 뭐라 말을 붙이면 바로 시선을 당신에게 주겠지만.
(쫍!!!!!)(부비쟉)(품으로 파고들기) 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월루를 할 거야!! >:3 (당당) 오전에 잠깐 틈 나는 시간마다 시작되는 회사 뽕뽑기 월루.. 언젠가는 기둥도 뽑고 말겠어! (급기야) 응응.. 로로주도 피곤하면 푸욱 잠들자. 이제 안 아프니까 편하게 잘 수 있을 거야! 수면.. 징수.. 두고보자 쿨타임 차면 또 체납할 테니..(?)
이래서 계약서도 그렇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더니(?)(아님) 말레피센트.. 어, 말레피센트 에유.. 쩔잖아..(?) 동화 에유도 재밌을 것 같고..;0;..
서로의 과거는 모른다. 언젠가 말해준다 해도 그 순간이 언제일지, 어떻게 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눈물과 함께 고하는 감동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비명과 고성이 오가는 끔찍한 순간이 될지도 모르며, 죽기 직전의 넋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이 애정을 만끽하고, 낙원의 탈을 쓴 지옥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에 발을 들이며, 잊지 않게끔 담아두기로 했다.
에만은 고개를 든다. 정말 자신의 치부를 당신에게 엎질러도 괜찮은 걸까? 길들이는 것에는 책임이 든다더니, 커다랗게 다가온 맹수를 길들이듯 했더니 과분한 애정이 쏟아진다. 자신에게 욕심을 부리게끔 일부를 내어주었더니 맹수는 그만큼의 대가를 제공한다. 그 과정만큼은 지금껏 숱하게 해왔으니 익숙하지만 그 욕심의 종류도, 결과도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이 대가는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박에 탕진해 삶을 잃어버린 사람과는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가를 맛봤으니, 이 작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도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계속해서 계약을 제안하고, 악마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지.
"으음, 아마 그 여자 이야기일걸..?"
에만은 정수리에 뺨을 가볍게 문지르는 페로사를 눈만 들어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툭, 하고 고개를 다시금 기댄다. 길고 짧은 모순적인 밤, 차갑고 삭막한 도시에서 한 번도 제대로 겪어본 적 없던 잠깐의 평화에 욕심을 내는 모습이 낯설다. 당신도 처음이지만 자신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녕 맞나 싶다. "예전 거라서, 아직 101마리의 달마시안은 못 봤지만 악당이란 건 알거든.." 제법 세대 차이가 나는 말일지도 모른다. 디즈니를 섭렵한 에만이라도 아직 101마리의 달마시안은 못 봤다. 예전 것이기도 하지만, 에만이 어릴 적 tv에서 틀어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찾아보기에도 이미 내려간 작품이라 디즈니 플러스에서 겨우겨우 볼 수 있는 정도고. 가령 겨울왕국이 개봉할 적 에만은 11살이었고, 당신은 20살이라는 점과 같겠다.
에만은 고개를 기댄다. 어린 크루엘라의 이야기로 시작할 때, 에만은 당신의 품에 온전히 기대 화면을 같이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 크루엘라가 자라고, 에스텔라의 이야기로 시작될 때, 에만의 표정은 오물거리던 작은 짐승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수면 바깥에 평온하게 얼굴만 내놓은 꼴처럼 잔잔했다. 겉보기엔 영화에 몰입한 것 같았다. 그 안의 생각은 알 수 없으나 오늘 잠들 적에는 여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확실했다. 오늘 당신이 있으면 무시무시한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오지 않을 테야.
으아악 혐생.. 고통의 수요일... 로로주는 하루 잘 보내고 있을까? 몸은 어때? 말끔하게 나았나요! >:0!! (마이크 무작정 들이밀기)
여러 세계를 여행한다는 말.. 정말 예쁜 것 같아.. 우우 다른 세계의 파문전사(?) 로로도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지.. 주절주절 하는 말이지만 파문.. 파문... 죠죠를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이야..🤔 주변에서 다 죠죠를 보기 시작하는데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해서.. 기묘해진다고 하나..? 어쨌든 조금씩.. 어딘가.. 응.. 나도 저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싶어서 안 보고 있는데..(?) 응.. 그렇지.. 그.. 그게.. 응.🙄
맞다! 나, 오늘 하루도 힘냈어! >:3 그리고.. 점심에 잠시 병원 다녀왔는데, 수면패턴이 이상해졌어요.. 2시도 못 되어서 기절잠을 해요.. 하니까 황당하단 눈으로 당연한 거라더라.. 그게 정상인 거래.. 그래서 약간 혼났어..🥺🥺🥺 앞으로도 2시 이전에 잠들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에 로로주랑 많이많이 얘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하루에 답레 하나씩도.. 목표로... 잡.. 아니야 로로주가 무리하면 안 되니까 >:3!!! 하루에 내가 진단 하나씩 올리는 걸 목표로 하겠어!
우우, 만약 아직도 -재택- 당하고 있다면 힘내는 거야.. ;0;.. 하루 마무리 뿌듯하게 하자, 우리! 오늘도 좋아해! >:3!!!!!😘
여기서 갑자기 죠죠무브를? (당황) 초기에는 캐릭터 대사에 자꾸 죠죠 대사가 섞여들어갈 수 있으니 주의하구.. (경험자) 보고 싶으면 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응응, 오늘 하루도 고생많았어. (토닥토닥하다 말고) (황당하단 눈으로 바라봄) 그게 정상 맞아... 나한테도 혼나야겠다 에만주 😶
답레는.. 내가 하루 최소 하나씩은 줘야 하는데 😭 귀에 약 좀 넣고 쓸게.
재택당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고강도는 아니고, 쉬엄쉬엄 할 수 있는 정도야. 잡담 정도는 괜찮아. 에만주도 아직 혐생 남은 거라면 힘내. (쓰담담) 항상 응원하고 있어.
이.. 이 나쁜 짜식들 우리 로로주 괴롭히지 마라..!!! ;0;0;0;0;!!!!!! 로로주 아프지 말자아..;0;..(꼬옥)
뱀파이어 AU.. 로로.. 파문전사 로로.. 하니까 갑자기 떠올라서..ㅋㅋㅋㅋㅋㅋ.. 핫하 내 죠죠력..은 없구나 나..(뉴비) 주의할 정도인 거야?? •0•.. 주변에서 다들 너 왜 이 짤 올려. 너 죠죠 보고싶어? 이러면서 무섭게 다가오니까(?)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고..🤔 우에에 잠깐만 왜 혼나는 건데에 ;0;!!! 앞으로 푹 잘 테니까 혼내지 말아줘어 ;-;..
최소 하나..? 안돼! 아프면 푹 쉬고 느릿느릿 줘! 아니면 나랑 같이 하루에 진단 하나.. 이틀에 답레 하나.. 3개월에 답레 하나.. 이런 건 어때..?(?)
쉬엄쉬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무리하지 말구 답레는 편할 때 주는 거야 >;0!!!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최소 하나가 아니라 편할때 느릿느릿 본인 먼저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줘!!!!!! 무리하면 나도 무리한다!! >:0(급 협박) 나도 로로주 응원하고 있으니까!(부빗!)
으으.. 만약 20분 이상 말이 없으면 잠든 거야. 저녁 됐다고 몸이 전원 끌 시간이라면서 컨디션을 휘청휘청 흔드네...
미리 인사할게! 고통의 수요일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이제 아프지 말고 목요일도 잘 버텨보자. 할 수 있어 >;3!! 우리, 조금만 있으면 금요일이니까.(꼬옥) 예쁜 꿈 꾸고 개운하게 일어나자.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또, 다시금 말하지만 아프지 않았음 좋겠어. 항상 응원하고 있고, 좋아해요. 잘 자!😘😘(쪽)
세상에 이를 어쩌면 좋아... 먹는 약이랑 귀에 넣는 약이 같이 있는데, 귀에 넣는 약을 넣으려면 모로 누워서 넣어야 한단 말야...? >>22 쓰고 약먹고 점이액 넣고 누워있다가 항생제 먹고 약기운이 돌아서 덜컥 잠들었나 봐...... (얼굴싸쥠) 지금이면 잠들었으려나. 오늘 하루도 고생했고, 자꾸 너무 일찍 잠들어서 오래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 88 푹 쉬고 개운하게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너무 일찍 일어났다......... 에만주도 푹 잠들었기를 빌어. 좋은 꿈 꿔.
갱신하고 갈게, 맛있는 점심시간이야 >;3!!!! 응응, 이해해요. 약기운은 이길 수 없지. (뽀다담) 푹 잤다니 다행이지만 시간이.. 로로주..!!!😬 나는 푹 잠들고... 너무 푹 잔 나머지 알람도 못 듣고.. 대차게 지각했어..😂 그래도 하루 열심히 보낼 테니까! 로로주도 힘내!
여러 가지 의미로 잊을 수 없는 밤이다. 잊힐 수 없는 곳이자 잊을 수 없는 곳에 발을 디뎠다. 이 밤이, 이 순간이, 이 여인이 아직 당신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모르지만, 오늘 밤 당신은 난생 처음으로 당신의 삶의 지평선 너머를 내어다보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보면 보이는 그 지평선 너머의 풍경은, 금발을 플어헤쳐 늘어뜨린 채로 자신의 푸르른 눈동자를 당신의 새하얀 시선과 마주쳐온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당신의 백색이 담기고, 당신의 눈동자에는 그녀의 청색이 담긴다. 고요한 평온이 못내 따뜻해 품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면 그녀가 당신의 정수리에 한 번 뺨을 다시 기대었다가 들어올린다.
"아?" 영화사의 로고가 지나고 갓난아기가 출생하는 장면에서, 여자 목소리가 이걸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하고 툴툴대는 목소리를 배경으로, 페로사는 당신의 말에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눈을 치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그래. 그 여자 이름이 크루엘라였어." 세대 차이- 그래, 공휴일에 아이들을 위해 케이블 TV 채널에서 틀어주는 극장판 명작선 같은 것은, 이제 입에 담기엔 너무 케케묵은 옛날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돌아갈 수도, 다시 되찾을 수도 없는, 보름날 밤에 겪는 재밌는 마법을 뺀다면 다른 이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유년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페로사는 문득 지갑에 넣어둔 사진을 떠올리고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적였으나, 지갑이 들어있던 옷가지는 특수세탁 바구니에 넣어두었고 지갑은 자신의 방에 던져둔 지 오래다. 그래서 페로사는 주머니를 뒤적이는 것을 그만두고, "그래, 예전 거긴 하지." 하고 나직이 뇌까리면서 몸을 조금 들썩여 당신이 조금 더 품에 편하게 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신의 깡마른 몸이 품안에 배겨들어오는 감각이, 희미하고 느릿하게 맥동하는 맥박이 자신의 맥박과 섞이는 감각이 싫지 않다.
반은 까맣고 반은 하얀 머리를 남들의 눈에서 가려주는 주인공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좀 알겠다는 듯 씁쓸하게 쿡쿡 웃는 페로사의 귀에 당신의 질문이 들려왔다. "응?" 하고 스크린에서 당신의 눈으로 시선을 옮긴 페로사는 잠깐 당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너한테 달렸어." 그녀의 얼굴에 짓궂은 웃음이 나른히 걸려 있다. 단순한 짓궂음만은 아닌 것이 분명한.
대차게 지각한 건 안됐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모자랐던 수면은 잘 채워가고 있나 보구나. 응, 덕분에 오늘 하루도 힘냈어. 에만주도 오늘 하루 잘 보냈으려나? 저녁은 맛있는 걸로 먹었어? 내 오늘 저녁밥은 비엔나소시지를 넣어서 하는 잡채 레시피가 있어서 따라해봤는데, 당면이 좀 싱거웠지만 소시지랑 먹으니까 간이 딱 맞아서 맛있게 먹었어.
그러게, 모자란 수면은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이상하게 하루종일 속이 좀 쓰린 걸 빼면..🤔 저녁은 따끈한 우동 해먹었지롱! 시판 우동에 집에 있던 냉동 유부랑, 쑥갓 좀 사서 듬뿍 넣었어.😋 비엔나 잡채.. 신기하고 맛있었겠다.. 저번 그 빨간 잡채랑 섞어서 도전해볼까..(침 주륵)(?)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평선, 무작정 걸어보는 여행, 도전, 도박. 에만은 일단 발을 내디뎠으니, 푸르른 눈동자를 마주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고작 세 번 본 사이가 이렇게, 눈으로 대화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고요한 평온 속에서 뺨을 기댄다. 다시금 정수리에 뺨을 기댔을 적 따스한 온기가 와닿는다. 에만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크루엘라는 악독한 여자라 알려진 악역이다. 애초 풀네임이 크루엘라 드 빌이지 않은가. 에만은 페로사의 깨달은듯한 목소리에 "지금은 저 크루엘라지." 라고 답했다.
원작은 디즈니를 좋아한다면서 막상 잘 모른다. 그렇지만 크루엘라의 과거를 알려주지는 않았다는 점은 안다. 크루엘라가 악독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조금은 이야기를 비틀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빌런에서 안티 히어로의 삶으로 탈바꿈 된 현재의 영화. 이젠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된 악당으로서의 삶. 에만도 언젠가는 케케묵은 이야기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될까.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그나마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건 제법 괜찮았다. 화면에 집중하며 에스텔라의 삶을 살아가는 크루엘라를 가만히 본다. 크루엘라는 저 삶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같은 입장이기에 잘 안다. 에만은 주머니를 뒤적이는 모습에 슬쩍 눈을 굴려 페로사를 바라보다, 품에 폭하고 몸을 뉘었다. 단단하게 근육으로 들어찬 몸일 텐데도 포근하다.
"잘 거야?"
씁쓸하게 웃는 소리에 고개를 사부작대며 올려다보더니, 다시금 묻는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어버렸다.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집중하다 순간 흔들린 이유는, 당신의 얼굴에 걸린 짓궂은 미소 때문이었다. 단순히 짓궂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섞여있는데도, 그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은 아니고? 내면의 자신에게 한 번 질문을 건네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에만은 손바닥에 머리를 디밀듯 천천히 비빈다.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나버린 걸까, 술김에 쇼윈도를 자신의 스타일로 바꿔버렸던 에스텔라는 남작부인의 눈에 띄고야 만다.
"……나한테 너무 대단한 걸 맡긴 것 같아.."
남작부인의 밑에서 일할 수 있게 된 에스텔라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조잘거렸다. 이제 에스텔라의 삶은 바뀔 것이다. 사람들이 손을 뻗을 것이다. 구원인 줄 알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잡을 것이다. 미카엘이 부모를 잃던 날 그랬듯이.
악독한 여자- 성씨마저 그런데 이름까지 크루엘라이니 디즈니에서 정말 작정하고 지은, 세련되면서도 사악하기 그지없는 악역의 이름이다. 당신이 그녀에게 원작에서의 크루엘라가 어땠느냐 물어본다면 페로사는 당신이 이 도시에서 만나본 가장 히스테리컬한 여자를 떠올려보라고 했을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떠올리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인간 몇 명 정도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에누마 그룹의 산하에 있지 않은 은행인 '검은 여왕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검은 여왕이라거나, 이미 하나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런 이들 말이다.
"이런 시각에서 다시 보니까 신선하네." 하면서, 페로사는 아직 크루엘라가 아닌 에스텔라의 삶을 살고 있는, 현재에 새로이 펼쳐지는 과거의 이야기에 눈을 두었다. 강요당한 거친 삶이고,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남아있는 선택의 기회가 가득 펼쳐져 있는 야생의 삶. 조금 부러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잘못된 종착역에 도착해, 손에 쥔 것이라곤 없이 역사의 기둥에 목줄이 매인 채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대조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에스텔라는 방황이 아니라 방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당신을 품에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시선을 두고 있는 페로사의 푸른 눈동자가 유독 쓸쓸해 보였다. 탐욕에 이끌려 가까이 가자, 아직 보이지 않는-그럼에도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무언가에 붙들려매여서 광기의 도시를 방황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욱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상냥한 목소리는 매인 채 비루먹은 짐승에게 건네어지는 것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는지, 어딜 향해 가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푸른 눈의 짐승에게. 에스텔라가 남작부인의 눈에 띄었듯, 페로사 역시도 당신의 눈에 띈 것이다. 아니, 당신이 그녀의 눈에 띈 것일 수도 있다.
"언제는 우리 인생이 우리한테 그런 거 물어보고 떠맡겼니." 페로사는 얼굴에 걸었던 짓궂은 미소에 힘을 조금 풀었다. 힘빠진 미소는 공허해 보였다. 그걸 채우고 싶기라도 한 듯, 그녀는 당신을 한 번 더 꼭 끌어안았다. 추방당하고, 추격당하고, 구금당한 짐승이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애정어린 손길에 반응하는 것과 결이 같은 제스쳐였다.
당신, 대체 무엇을 하려고... (조무래기 페로사주는 공포에 질려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조심히 다녀와. (손수건 팔락) 설거지, 손조심하구...!
아,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말았으면 하지만, 혹여나 내 행동이나 답레에 기분나쁘거나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단호하게 이건 아니라고 말해줘. 이런 말 하면 무슨 멘헤라라도 된 거 같지만 최근에 멘탈에 큰 데미지를 입어서.. 스스로의 감정 때문에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는 게 당연하지만, 혹여나 내가 행동을 그르치거나 할지도 몰라서 미리 말해두려고. ;.;
응응... (쓰담쓰담) 에만주가 자도 되겠다 싶을 때 자면 되는 거야. 12시에? 답레는 느긋하게 써도 되니까 이건 그렇다 치고,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12시에??? 선 넘네? 되게 본격적으로 넘네??? 자고 있어서 못 받았다고 해버리면 안되려나?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써도 좋으니, 일 끝날 때까지 오늘은 잡담하자.. (토닥)
응, 자러 갈 땐 자러 가겠다고 말할 테니 걱정하지 마. (꼬옥 안아줌) 지퍼 앞섶 열어주기엔 날이 덥지.. (선풍기 틀어줌) 전부터 플립이 문제가 많았지 참 ㅋㅋㅋㅋ 일단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그런 문자 보낸 게..... 어차피 월요일에 처리할 거면 아침에 보내던가 하지. 나빴다!
아, 혹시 레스를 줬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면 잠든 거라 생각해줘.. 지금 누워있거든 +.+ 벌써 두 신데, 에만주도 잠든 거라면 좋겠네. 미리 인사하자면 금요일 하루도 고생했고, 오늘 밤도 같이 즐겁게 보내줘서 고마워. 혐생이 에만주를 너무 괴롭히지 않고 다 술술 잘 풀렸으면 좋겠다. 잠들 때는 푹 잠들고 좋은 꿈 꾸길 빌어.
당신의 말이 그렇다면, 이것도 인생이 물어보지 않고 떠맡긴 것이겠지. 에만은 품 안이 따스한지 뒤로 편하게 기대다, 고개를 살짝 들어 턱 밑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쳐다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에만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싫지 않아."
당신이. 에만이 오물거리듯 작게 입속말로 중얼거렸지만 당신의 귀에는 확실히 들렸을 것이다.
페로사: 350 현재 가까운 사람/측근은 누구이며,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까운 사람? 없지는 않아. 바에서 지내는 동료들도 있고, 단골들이라거나, 내가 종종 신세지는 친구들이라거나... 그렇지만, 요즘들어서..." (페로사는 말끝을 흐렸다.) "가깝게 지내는 이유? -그걸 물어보는 건 쿨하지 않은데."
029 단 것을 잘 먹나요? "좋아하냐? 는 질문에는 yes지만, '잘 먹는다'의 기준이 남들보다 월등히 잘 먹는다라는 의미면.. 글쎄?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다니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야."
051 휴대폰의 배경화면은? "딱히, 화면을 바꾸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해서. 그냥 기본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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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이상적인 애인은?" 페로사: "비밀이야." (에만에게 질문받았을 시) 페로사: "비밀이야... 너랑 나, 둘의 비밀."
"마음에 들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은?" 페로사: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이야 뻔하지 않나?" 페로사: "그렇지만, 역시... 음, 나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여겨주고 있는가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던 것과 상대가 진짜로 생각하던 것이 크게 차이난다면, 그 점에서 배신감을 좀 느끼지 않을까."
펀쿨섹좌 패러디였어 ◐◐ 어? 레트로풍? 내가 레트로에 환장하는 건 어떻게 아시구요? 아이스크림 카페 좋다. 두 번 가자.
배신에 대한 저 대답은.. 페로사가 에만네 집에 쳐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복선일 수도 있습니다 오호호
딸 이야기에서 페로사가 고민에 빠진 건 복선이 있다거나 씁쓸한 과거사에 대한 암시라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면의 복잡한 감정의 충돌일 뿐이야! 응, 그건 다행이네. 나도 쉬러 갈 때는.. 가급적이면 말하고 쉬러 갈 생각이고, 큰 고비(=항생제 먹어서 잠이 오는 상태에서 옆으로 누워서 점이액 넣는 거)는 넘겼지만, 혹시나 뭔가 올렸는데 아무 리액션이 없다면 잠들었다고 생각해줘 😭
원작의 크루엘라는 어떤 여자일까? 답변은 간단했다. 도시에서 만나본 가장 날카로운 성격의 여자. 에만은 그 날카로움, 즉 히스테리를 떠올린다. 무시무시한 성격이란 것이겠지. 일단 아버지가 늦게 들어온 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사람을 짚어 올라갔을 때, 검은 여왕이 뇌리를 스쳤다. 물론 자신은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의뢰를 맡기러 온 사람들의 푸념을 지하에서 들었다. 그 성격이 진국이라 만약 거래를 해야 한다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1순위라며 치를 떠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검은 여왕은 크루엘라일까? 엉뚱한 생각이었다.
에스텔라의 삶은 천천히 어긋나고 있다. 새로운 기회라 여겼지만 실은 누군가의 삶을 채워주는 소모품으로 야금야금 갉아먹히고 있었다. 에스텔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크루엘라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사악해지고, 마음껏 그 힘을 펼치고 다니겠지. 에만도 그 점이 부러웠다.
아니, 어쩌면 둘의 처지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에만 또한 지금 주체적으로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그렇지만 차이점은, 에만은 모두 잃어버린 뒤 불타기 시작했고 크루엘라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당신도 비슷한 점이 있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당신을 자극한 걸까. 슬쩍 눈을 굴려 올려다 본 당신의 푸른 눈동자는 유독 쓸쓸해 보인다. 당신은 어쩌다 이 도시의 방랑자가 된 걸까. 그날 당신이 마신 소노라의 방랑자와 같이, 이 도시에 정착한 듯하면서도 빙빙 돌고 있는 걸까.
에만은 천천히 고개를 올린다. 여기 새로운 남작부인이 있다. 처음 만난 남작부인과는 다른 사람이다. 어쩌면 자신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고, 당신이며, 나다.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다르게 쓰는 것도 좋겠지. 원작의 사악하기만 하던 여자가 이젠 주체적인 안티 히어로가 되어버렸듯, 우리 또한 이야기를 언제든 바꿀 수 있겠지. 마치 인생이 떠넘겨버린 짐을 청산하듯.
그러니까, 당신의 말이 그렇다면, 이것도 인생이 물어보지 않고 떠맡긴 것이겠다. 에만은 품 안이 따스한지 뒤로 편하게 기대다, 턱 밑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쳐다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에만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싫지 않아."
당신이. 에만이 오물거리듯 작게 입속말로 중얼거렸지만 당신의 귀에는 확실히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스스 웃더니, 여전히 화면에 집중하는 척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크루엘라는 지금 복수를 실행하고 있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복수를. 달콤하기만 한 이 와중에, 뇌리를 스친 것이 있다. 나는 이 상황이 싫지 않으니까, 당신과 나의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진심이야."
하나 일을 크게 쳐야겠구나. 다른 곳의 권력 구도를 틀어야겠다. 그 녀석이 다른곳에 신경을 쓰느라 당신에게 쓸 신경을 줄이게끔.
어쩐지 한순간에 훅 가더라니 푸린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군 👀 약발 아주 확실했다구... 아.. 잠들기 전에 잠든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생각보다 엄청 어려운 일이었네.. 🤦♀️ 말없이 잠들어서 미안해. 에만주도 어제 하루 고생 많았고, 일요일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길 바라. 항상 좋아해.
남의 의도에 떠밀리고, 이용당하며, 그 가능성과 자유를 제한당하고 잡아먹힌다. 그 모습이 왠지 자신과도 닮은 면이 있어서, 페로사는 에스텔라의 이야기에 약간 침울하지만 진지하게 몰입하여 에스텔라를 응원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플레이타임 내에 기승전결을 담아내어야 하는 영화이며, 예술영화 같은 것이 아니라 상업영화이기에 당연하게도 에스텔라는 자신의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에스텔라 스스로가 진짜로 바라지는 않았던 방식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여자는 어떨까. 남의 의도에 떠밀리고 이용당하며, 그 가능성과 자유를 제한당하고 잡아먹히고 있는 그녀의 삶에 그런 기승전결이 찾아올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신이 그런 기승전결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까지 꺼낼 필요 없을 것 같다. 소노라의 방랑자를 즐겨 마시는 이 여인을, 당신은 온전히 손에 넣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 여인도, 페로사도 그럴까. 당신이 턱 밑에 조그맣게 입맞춤을 남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페로사는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진심이야, 하고 덧붙이는 말에 페로사는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당신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추어주었다. "다행이네." 그리고 당신이 하는 것처럼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마, 더 원한다고, 내일 밤도 오늘 밤 같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머리에서 입끝까지 솟구쳐오른,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말들을 속으로 가만히 담아놓고 말이다. 단어의 정의가 조금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자신은 바텐더고 당신은 손님이지 않은가. 당신과 그녀 사이에서는 단어의 정의가 묘하게 녹아내려, 다른 여타의 바텐더-손님 간의 관계에서 쓰이는 것과는 조금 많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스크린 안에서의 에스텔라는, 스스로의 머리로 짜낸 간교한 계략을 스스로의 손으로 실행하여 자신의 삶에 지워진 멍에를 부수어버리고 에스텔라라는 껍질을 깨고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났다. "─너무 집중해서 본 바람에, 오히려 뭐라고 평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스탭롤이 올라가는 화면에서 시선을 당신에게로 옮기고 페로사는 푸슬푸슬 웃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지금 또 한 사람의 에스텔라가 어떤 멍에를 부수어버리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도 모르고.
(아이칼리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내가 생각하던 느낌이랑 똑같아서 충격) ((역시.. 에만주 취향이랑 내 취향은 평행이론이야...)) (좀 요런 너낌으로다가.. 사진에 빛 좀 낭낭하게 들어와서 전체적으로 난색 틴트 먹은 것 같은 사진이면 더 정확할 텐데 놋북에 포샵이 안 깔려있어서 어떻게 편집을 못하겠네)
아이칼리.. 빅토리어스.. 빅 타임 러쉬.. 낭낭한 하이틴 분위기.. 약간 인터넷 방송이 막 도입되고 유튜브가 처음 생겨서 이리저리 영상 찍는 무리나, 끝나고 대충 스무디킹에서 스무디 사먹고 뉴욕이 배경이라면 센트럴파크에서 축 누워있다가 가끔 시작하는 재미없는 행사에서 유일하게 재밌어보이는 회전 관람차를 타보다 역시 이건 아니라며 툴툴대고.. 차를 운전할 줄 아는 친구가 있다면 타면서 라디오에서 유행하는 노래랍시고 틀어주는 노래도 뗴창하고..
우우 맞아 딱 저런 느낌.. 재잘대면서 "이번 프롬 파티 때 조쉬가 춤을 같이 추자고 신청을 했다며? 진짜 웩이다. 걔는 자기가 잘생긴 줄 알더라." 같은 대화를 하고.. 스쿨밴드의 누군가가 잘생겼니 마니로 투닥거리고..(급기야)
너무 좋아... ;0; 농장 설정이 굉장히 멋진게..(적폐양산 시작)(주절주절 경보) 로로는 지금 본어장에서 늑대인간, 혹은 포식자의 위치에 있잖아.. 만약 동물을 키운다면, 동양권에서는 도축을 백정이나 하는 사회 하층민으로 보지만 서양에서는 지도자가 사냥에 대한 우선권을 가지고 배부를 하기 위한 행위로 보면서 지금까지 우대하고 있으니 여전히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거고..
무엇보다 현재 곡물이든 동물이든 작물과 생명을 키운다는 자체로 토지관리인이요 목축에 유통에 유지비가 많이 들고.. 서양권이니 땅도 엄청날 거고.. 즉 로로는 금수저다..(급기야)
잘생긴 애 없다고 하면 김에만 "엥?" 하면서 쳐다보고.. 누가 잘생겼냐 물어보다 어설프게 화제 돌리면 킥킥 웃으면서 어깨로 톡 치고.. 김에만씨는 중산층 가정일까..🤔 아니면 엄마가 하원의원 그런 느낌이려나..🤔🤔🤔
포식자의 속성이 있는 것은 맞지만 포식자의 위치까지 갖추고 있는지는 애매해. 오히려 자신이 늑대인간이기 때문에, 늑대인간이 갖고 있는 불로와 재생력을 탐내는 이들에게서 도망쳐온 거기도 하고.. 그런 이들을 막아주는 조건으로 에누마 그룹에 목줄이 매여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하이틴 AU의 페로사는 본편의 페로사보다 확실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겠네. 그만큼 성격도 더 밝아질 테고. 어쩌면 조금 까불거리지 않을까~
미국에서 농사지으면 수십~백수십 에이커가 기본이니 아주 부농까진 아니라도 전형적인 레드넥풍 시골의 대형 전원주택 정도는 있지 않을까. 농지를 뒤로 끼고 한 3~4층쯤 되는 커다란 마당 딸린 맨션에서 일가친척들과 우르르 모여사는 초 대가족 느낌으로? 페로사네 집안 일상만 찍어도 시트콤 한편인 그런 느낌으로?
...👀 우우우 그래도 하이틴 에유 로로는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다.. 까불거리는 로로 귀여워.. 하이틴 에만은 너드는 아니더라도 약간 괴짜끼 있고 두루두루 어울리는 부류일 것 같지.🤔 퀸비인 모브와도 하이파이브 하면서 다니는데 막상 같이 어울리며 놀지는 않고 가끔 드라이브 갈 때 조용히 인원 채워주는 정도..🤔
>>해포커 비설<< ((옛날에 참여했던 해리포터 기반 스레의 명문가댁 자제들이 하나같이 무거운 비설로 고통받던 추억을 상기함...)) >>야자시간에 티켓팅 했는데 학교 컴 프로그램 때문에 사이트 접근 자체가 막혀서<< 뭔데 귀엽지. 티켓팅 대신 해주고 싶어라 (그리고 티켓팅해줘야 할 가수가 마잭이었는데...)
"데이트신청 맞는데?"라고 직구를 갈겨버리는 페로사가 머릿속에 떠오른 페로사주는 AU를 돌린다 하여도 페로사의 목줄을 잡는 일은 요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응, 같이 잘래.. 우아아아악(무방비하게 다가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힘에 이부자리로 쏙 빨려들어가버림) 나도... (일하지 않고 돈이갖고 싶어 농담곰 짤) 어찌됐건 현생이 있어야 여기도 있는 거니까... 월요일이라도 저녁에는 내가 있을 테니, 이번주도 힘내자. 너무 과하게 힘내지는 말고 최소한의 힘만 내자구. 그것도 버겁지만.. 응, 나도 좋아해. 이제 자자. (쪽) 잘 자요. 좋은 꿈 꿔.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이라면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점이다. 에만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닮았다고 해도 결국 천운이 따르든,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든, 주변의 도움을 받든. 에스텔라는 화려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마침내 에스텔라를 벗어던지고 남들이 손가락질하던 크루엘라의 모습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우스운 일이다. 자신도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어떤 방식이 영화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방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에만은 당신을 올려다 보다, 의문을 거두기로 했다. 소노라의 방랑자, 도시의 방랑자. 그런 당신을 이미 손에 넣기로 한 것은 자신이다. 아니, 손에 넣는 것은 너무 물건처럼 취급하는 발언이다. 당신을 손에 넣기보다는, 함께 곁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굉장히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욕심이지 않은가.
어지간한 악당도 비명을 지르며 두려움에 떨 계획을 세운 에만이 실행한 것은 턱에 입을 맞추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었고, 안타깝게도 전직 히어로였던 세크메트는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반격하고 말았다. 이마에 닿는 말캉하고 따뜻한 촉감에 눈을 잠깐 홉뜨다 크게 한 번 깜빡인다. 시선은 스크린에 그대로 있었지만, 안 봐도 당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신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는 점이겠다.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왜 이게 다행인 점이라는 걸까 의구심이 드는 생각이었다. 당신과의 오늘이 평생 같았으면 하는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이는 바텐더와 손님일 뿐인데, 어째서인지 그 정의는 흐물흐물 녹아내린지 오래다. 이젠 그 윤곽만 희미하게 남고 다른 것이 차지한 감정.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감정을 알아채고 긍정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나머지 방해물은 처리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손을 뻗어보면 되는 일이니까.
간교한 계략으로 크루엘라는 마침내 모두 되찾고, 손에 쥔다. 크루엘라를 비웃던 원작의 노래가 피아노 선율과 함께 흐른다. 비웃음은 바뀐 영화에서 찬양의 의미가 된다. 스탭롤은 올라가고 크루엘라는 관객의 상상대로 이 이후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영화 밖의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도 이것이겠다. 에만은 푸슬푸슬 웃는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미소를 지어본다. 말갛고 보드라운 미소는 눈에서 시작되더니, 온 얼굴에 사랑스럽게 퍼진다.
"재밌었으면 됐어."
당신에겐 짧지만 최대한 비밀로 둘 크루엘라. 에만은 에스텔라처럼 마냥 순진한 태도로 고개를 당신의 품 속으로 가누더니 몸을 편하게 돌리고, 팔을 뻗어 당신을 꾸욱 끌어안았다. 그리고 순진무구하게 물었다. "잘 거야?"
그렇다면 천천히 주기야, 나 잡담도 좋아하니까.(토닥토닥)(털 빗질 샥샥) 날 마망으로 불렀겠다..😬 마망이라기엔 정이 없어서 문제인데에 •0•~~ 필사.. 좋아하는 소설을 하루에 10페이지 정도 타이핑 필사하고 있어. 문장 구성에 도움도 되고.. 가끔 일상 돌리다가 마음에 들던 에만이 문장도 옮겨적다가 자연스레 비교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그렇지 교류가 있어야지..😊 내 이 속 뒤집어놓는 레전드 재간둥이를 기필코 죽일것이다.(갑자기)
그것이 어떻게 피어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색으로 필지도 모른다. 영화와 같이 극적으로 피어날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아름답게, 어쩌면 더 처절하게 피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느 것도 없는 이 밤을 머금고 당신의 가슴속에 꽃봉오리 하나가 맺혔다. 페로사는 거기서 입술을 떼었다. 그리곤 다시 나른하게 소파에 몸을 푹 제껴눕히며, 당신을 품 안으로 다시 한 번 끌어당겨 고쳐안는다. 당신이 그 꽃봉오리를 위해서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모르고. 알 리가 없다. 당신은 당신의 비밀을 훌륭하게 잘 지켜내왔고, 여태껏 그녀와 함께하면서 마주친 모든 이들도, 그녀 스스로마저도 (앞서 언급했듯이) 당신이 이 바빌론 시티의 그늘에 가장 깊이 발을 들인 이들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녀는 이 바빌론 시티라는 무대 위까지 끌려온 꼭두각시 인형들 중 하나였고, 당신은 그 위의 그늘 속에서 꼭두각시 인형들을 쥐고 흔들고 있는 인형사였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꼭두각시를 마음 속에 들이게 되었으니.
무엇이 그녀를 당신의 마음 속에 들여놓도록 만들었을까. 꼭두각시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인형사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중 한 명을 자신의 목표로 점찍어놓은 허황됨에 가까운 대담함일까, 아니면 그녀의 손잡이가 당신의 손에 꼭 맞도록 생겼음일까, 어쩌면- 꼭두각시로 위장하고 무대 위로 내려와, 그 어느 무대보다도 조촐하고 조그만 이 작은 무대에서 둘이서만 오롯이 펼쳐, 같은 높이에서 마주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구미에 맞았던 것일까.
페로사에게 많은 것을 던져준 영화는, 그저 던져주기만 하였을 뿐 되받거나 그 이후로 또다시 무언가를 던지는 일 없이 스탭롤 너머로 유유히 퇴장했다. 올라가는 스탭롤을 보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당신이 그녀를 위해, 엉겁결이긴 하지만 골라준 이 영화는 그녀에게 무엇을 심어주었을까?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아직 모르는 것은 많고,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너무 적다. 당신을 품 안에 당겨안는 그녀의 손길이 유독 씁쓸하고 쓸쓸해보이는 것 같다는 것뿐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 붙들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라는 것처럼. 이 도시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너무 많은 부분이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의 얼굴에 피어나는 새하얀 꽃송이같은 미소가, 소노라 사막을 떠돈 끝에 광기의 도시에 도착한 방랑자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가로 다가왔을지 모르겠다. 페로사는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져 보았다. 순진하게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여인의 품 속으로 고개를 푹 파묻는 이 순간에는, 당신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라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순진하고 순수한 한 명의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페로사는 당신이 마음껏 파묻힐 수 있도록 자신의 품을 온전히 내어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던져져오는 질문에, 대답 대신에 손을 뻗어 당신의 턱을 살며시 쥐고는 들어올린다. 그 다음에 따라붙는 것은, 짧다기엔 길고 길다기엔 짧은, 쪽이라기보다는 꾸욱에 가까운 버드키스.
"네가 그러고 싶으면." 나른한 미소와 섞여 나오는 애매모호한 말과 함께, 그녀가 자세를 바꾸는 게 느껴진다. 어깨를 감싸안고, 당신의 허벅지 아래로 파고드는 팔을 느끼면, 그녀의 품 안에서 떨어져나가는 일 없이 그 품에 기댄 채로 당신의 몸이 들려올라가는 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책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필사라니... 난 우주악필이라 뭔가 필사 같은 건 전혀 못 하겠던데. (고릉고릉고릉고릉) 생각해보면 셜록홈즈, 반지의제왕, 해리포터, 베르나르베르베르, 메이즈러너 이후로 뭔가 제대로 시리즈물을 안 읽어봤어...! (여기서 드러나는 틀딱취향)
에그그.................. 모쪼록 잘 수습돼야 할 텐데....... (쓰담담) 정이 없다곤 하지만 에만주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응, 비가 엄청나게 오네. 후드득후드득하고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에만은 빗소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에만주는 빗소리 좋아해? (어깨에 상반신 걸침)
책과 친해져서 더 요망해지는 방법을 찾고있지! 후후.. 나도 제대로 된 시리즈물은 안 읽어봤네. 그나마 최근엔 추천을 받아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이거 읽어보고 있는데, 어째 주요 캐릭터들이 서로 스토리 진행이 된 느낌이라 보니까 시리즈물이더라고. 그래서 처음부터 쭉 정주행 하고 있어.🙄(같은 틀딱취향)
여기도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도 빗소리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비 오는 날의 습기는 좋아하지 않아..😔 비가 와서 습기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편두통이 심해지거든.🤦♀️ 10년 넘게 달고사는 편두통이라 그런가 장마철엔 빗소리가 그렇게 좋은데 몸은 갸아아악.. 하고 말지..🙄
밤의 도시는 화려하지만 이면은 칙칙한 잿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잿빛 사람, 잿빛 길, 온통 불타고 남은 재처럼 칙칙한 세상. 에만은 길 한복판에서 꽃봉오리를 찾았다. 그 하나만 유일하게 색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밟아버리면 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길 위에 자라난 꽃봉오리를 소중히 품기 위해 수를 쓰기로 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가장 자신이 잘 하고 강경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품 안으로 끌어당겨 자세를 고칠 적, 에만은 이제는 조금 익숙한 듯 몸을 비비듯 파고든다.
그 무시무시하고 흉악한 계획은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사랑스러운 면을 보인다.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간 비밀을 잘 지켜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연약하고 갓 성인이 된 도시의 작은 유령으로만 기억하지, 살기 위해 처절하게 발악하고 짓밟아 올라온 그림자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형을 움직이는 인형사인 것도 모르고, 무대 위로 올라서는 역할이 많은 지도 모른다. 자신이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듯, 서로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단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에만은 품으로 당겨안는 손길의 씁쓸함이다.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결국 당신도 비어버릴 대로 비어버려 이 도시에 도착하게 된 걸까? 당신의 손길은 겨울이 되기 이전 낙엽이 모두 진 가을과도 같이 공허하다. 그렇지만 그 가을이 겨울에게 소중하게 간직하던 여름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건네주듯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좋아, 눈을 느릿하게 감고 바스스 웃는다. 말간 미소를 뒤로하면, 에만은 당신의 품에 폭 파묻혀 고개도 파묻는다. 비어있는 곳을 채워주듯 한없이 조심스럽고, 꼭 맞는 모습이다. 순진하고 순수하게, 간교한 계략도 모두 내려놓고. 아무것도 아닌 척 순수하게 당신을 올려다본다. 색채 옅은 눈망울을 한 번 크게 깜빡인다.
"으응..?"
갓 성인이 되었지만, 이 나이가 되었어도 사실 성인에 대해 잘 모른다. 뭘 해야 어른스러운지, 뭐가 어른이 하는 행동인지 천천히 배워가는 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이 무뎌졌을 뿐이지. 다만 에만은 아직 그렇게 무뎌질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품에 파묻혀 아직 더 어리광 피우고 싶고, 충분히 예쁨 받지 못했다 생각하며, 당신에게 사랑받고 이렇게 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행복할 일인 것을 배울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배우고 있지 않은가. 동그랗고 순진무구한 눈동자가 그 반증이다. 당신이 버드키스를 해올 적에는 꾹 눈을 감고, 입술을 뗄 적에는 바스스 웃으며 눈을 뜨는 모습도 딱 그 나이대의 모습이다. 당신 덕분에 온전히 아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듯이.
"또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맡기는 거 아니야..?"
짐짓 목이 메는 소리지만 토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이 어깨를 안고, 허벅지 밑에 팔을 넣으면 세상이 높아진다. 몇 번 겪어보지 못한 것이나, 이젠 당신의 품에 꼭 맞고 익숙해진 모양새다. 그런 높아진 시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지 물끄러미 당신을 쳐다보다, 공격을 감행한다. 당신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것이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지 한 번 더, 또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듯 고개를 팩 돌리고 거실 전경을 둘러보는 척하니, 이 공격의 의미는 많은 것을 맡긴 대가요, 또 이 도시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공격이라 할 수 있겠다.
"밟고 싶어지는 인간상은?" 페로사: "인간상─이라기보다 인간이 하나 있긴 한데, 비밀. 바빌론 시티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꺼내도 되는 곳이 아니야."
"네가 가장 빛이 바랠 공간은?" 페로사: "─" (누군가를 찾듯이 둘러보다가, 창밖을 고갯짓하며 웃는다) 페로사(에만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알잖아. 네 옆이 아닌 모든 곳." (페로사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고 입을 맞추어왔다.) "그래... 내가 갖고 있는 색은 너한테만 보일 거고, 너한테만 보여줄 거니까."
"네 일기 한 장을 찢었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페로사: "일기를 딱히 안 쓰는- 가만, 내 프라이버시는 어디다 팔아먹었지?" (인상찌푸림) '사실 일기라고 해야 할까 꾸준히 기록하는 게 있기야 하지만, 그건 정말로 누가 보면 곤란해.'
"나를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말이야." #shindanmaker #그_눈동자 https://kr.shindanmaker.com/1043038
(무심코 돌렸다가 갈비뼈 복합골절)
페로사: "......이 개자식이. 하하하." ???: "그래서... 내가 하는 이 제안이, 내가 할 수 있는 인내와 양보의 선을 아득히 넘어선 것임을 이해해주기 바라. 여기서 승낙하지 않으면 네게 다음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화를 낼 게 아니라, 예쁘게 웃어야지. 기왕이면 그 눈을 그대로 하고 그렇게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이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 어딨겠냐만, 당신이 그렇듯이 그녀는 그 격차가 유독 심했다. 어느 면에서는 지나치게 단단하고 강인했으나, 어느 면에서는 30년에 육박하는 세월이 지나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하고 무르고 푹신했다. 그 자리가 당신에게 꼭 맞았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으나, 그것만으로 그녀의 곁에 머무를 이유는 충분하다. 아닌가? 텅 비어 있어 차갑고 서늘하게 느껴지던 그 곳이 당신으로 채워지는 감각이, 그녀 역시도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마음에 들다... 아니, 이 단어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더, 조금 더 시간을 보내어보면 마땅한 낱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그어놓았던, 당신이 무심코 넘어서 들어온 선은 틈도 없이 빽빽하게 자라 강철처럼 굳어진 강철의 흉곽이었으며, 당신이 그것을 무심코 열고 들어온 끝에 도착한 곳은 그녀의 가장 여린 부분이었다. 열사의 여름이 찾아오는 바빌론 시티에서, 뜨겁지 않고 따뜻한. 그래서 당신이 얼굴에 피워내는 그 앳되고 뽀얀 미소가, 그녀의 여린 부분에 가장 생생히 와닿았다. 그녀의 마음 한 켠에 당신의 미소가 자국으로 남았다.
그녀는 나른히 웃는다. "자기가 길들인 것에는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아, 그건 당신이 할 대사인데. 그녀는 방문 앞에 서서 당신을 내려다보다, 시선을 잠깐 피하며 덧붙였다. "멋대로 욕심부렸다가 네가 싫증이 나버리는 건 바라지 않기도 하고─" 그녀의 변명은 당신이 와르르 쏟아내는 공세에 중간에 뚝 끊겨 파묻혀버렸다. "......" 당신의 입맞춤이 열꽃으로 피어버린 뺨을 하고, 그녀는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불충분하다 이거지." 하고, 그녀는 웃어보였다. 당신을 품에 안아들고 있느라 두 손을 다 쓰고 있는 판이었기에, 페로사는 방문을 힐끔 고갯짓했다. "문 좀 열어줄래?"
나무 문에 달린 놋쇠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보면, 마침내 그녀의 개인실이 입을 열고 당신을 맞이한다. 코로 스멀스멀 와 닿는 살 냄새와 시트러스 향, 나직한 술냄새와 아가베 냄새.. 이젠 그녀의 향기라고 당신도 쉽게 식별할 수 있을 만한 냄새가 가득하다. 거실에도 술 진열장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진열장 수준까진 아니지만 술병을 놓기 위한 랙이 하나 있고 거기에 술병 네다섯 개가 올려져 있다. 눈에 익은 브랜드의 데킬라 두 병, 처음 보는 브랜드의 위스키와 코냑과 보드카가 한 병씩. 책상에는 가성비 사양으로 맞춘 데스크탑이 하나 놓여 있었고,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해두는 다용도 수납함과 구급함이 그 옆에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서랍장 딸린 옷장은 문짝이 없는 개방식이었는데, 거기에 걸린 옷들을 보자면 그녀가 패션 수준은 처참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야 똑같은 셔츠와 색이 다른 셔츠만이 몇 벌 걸려있을 뿐이고, 후드집업이 두어 벌, 예쁜 옷이나 치마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없이 바지만이 몇 벌 덜렁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도 누구나 예쁘게 입을 권리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자신의 센스로는 도저히 근육질 장신에 어울릴 만한 옷을 고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침대 옆의 서랍장의 스탠드 옆에, 읽다 만 잡지 위에 던져지듯 내팽개쳐져서 펼쳐져 있는 머니클립. 가족사진 같은 게 끼워져 있다.
두 명이 넉넉하게 누울 수 있을 법한 침대에는 얇은 침대보와 담요가 깔려 있었다. 베개는 한 사람이 베기에는 길다란 것이었으나, 지금까지 내내 한 사람이 베어왔다고 주장하는 듯이 한 쪽만이 움푹 패어 있었다. 오늘은 거기에 당신의 머리 자국을 남겨둘 수 있을까. 페로사는 침대 위에 당신을 부드럽게 뉘어주었다. 그녀의 냄새 한가운데로 푹 파묻히는 쿠션감이 나쁘지 않다. 당신을 뉘어두고, 페로사는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보았다. 그리고 입술만을 움직여서, 뭐라고 소리없이 말한다. 날 길들여줘.
졸았구나.. 응. 오늘도 고생했어. 느긋하게 하려구~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고. 오늘도 에만주랑 같이 있어서 행복했어. 에만주도 좋은 꿈 꾸고 피로 충분히 풀릴 만큼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길 바라. 새로운 좋은 하루를 맞이하길 기원할게. 이제 자러 가자.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저녁에 쓰기!!
당신의 푹신한 부분도, 단단한 부분도 자신에게는 딱 맞는다. 골디락스가 먹었던 아빠곰의 수프는 너무 뜨겁고, 엄마곰의 수프는 너무 차가웠으나 아기곰의 수프가 딱 맞았듯이. 당신은 자신에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사람이었다. 아는 것이 생겨 점점 뜨겁거나 차가워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온기에서 점점 적응하는 것이라면. 곁에 머무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에만은 품 속에서 꼼지락, 다소곳이 모아둔 손의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는 행동, 숱하게 해왔지만 전혀 다른 결과. 나른한 미소는 에만의 소중한 것을 담는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상자의 면적이 부족하니 이제 늘릴 시간이다. 길들인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본인이 해야 할 말인데, 당신의 입에서 나오니 꼭 자신이 길들여진 것 같지 않은가. 그게 제법 심통이 났는지, 두 번만 해야지 했던 것이 갑절이 된 것이다. 열꽃이 예쁘게 피어버리자 만족스러운지 팩 돌려 모르쇠로 일관하는 표정에 작은 웃음이 어려있다. 앳된 얼굴 때문인지 그 미소가 아무리 희미해도 보드랍고 사랑스럽다. 불충분할까? 에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응?" 하고 되묻는다. 눈을 슬쩍 굴리며 마주 웃는 모습이 대답이 된다. 부족하다.
"와아."
팔을 쭉 뻗어 놋쇠 문고리를 잡아 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익숙한 전경은 아니지만 그 냄새만큼은 익숙하다. 당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 모였기 때문이다. 나직한 술 냄새, 시트러스 향, 그리고 살 내음. 이제 보자니 여기에도 술이 있다. 보통 방 안에 들여둔 술은 관리하지 않으면 그 내음이 달큼하다 못해 시큼하여 절로 표정이 찌푸려지기 마련이나 여기는 다르다. 당신은 술과 함께 하고, 잘 관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은은하다. 에만은 이곳저곳 신기한 듯 바라보다 옷장에 물끄러미 시선을 고정한다. 예쁜 옷은 없고 투박한 옷투성이다. 그런 옷을 보자니 불현듯 불안한 감이 스치더니만, 아주 익숙하게 앨리스의 시선에서 옷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아.."
맙소사. 저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닌다는 거야? 과연 저 셔츠랑 바지가 매치가 될까? 저건 또 뭐야! 저 색이랑 지금 피부 톤이랑 안 맞을 텐데? 천천히 당신을 향해 시선을 보이다, 이내 거둔다. 어떤 옷을 입혀야 어울릴까? 치마를 입고 싶어 하면 한 번은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지금 체격이 어떻게 되더라? 펜슬스커트는 어떨까? 일단 저 셔츠와 후드 집업을 어떻게 손봐야 할 것 같은데. 앨리스는 내일 돌아가면 대뜸 에만, 윈터에게 화를 낼 것이다. 너!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왜 지금까지 방치했어! 라며. 다만 지금의 일이 아니니 차치하고, 가족사진 같은 것을 보니 고개가 또 갸우뚱 기울여지는 것이다. 가족. 정말 무섭고 슬픈 단어다. 이 순간만큼은 '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에만이든 윈터든 가까이 다가갔다 불가항력에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러 시선을 피해버린다.
베개는 길지만 눌린 곳은 한 곳뿐이다. 적적하다. 침대 위에 부드럽게 눕게 되니, 쿠션감은 나쁘지 않고 당신의 냄새가 가득하다. 양껏 취했음에도 부족하던 것을 한가득 채워주는 느낌이 만족스러워, 에만은 눈을 느릿하게 한 번 깜빡인다. 머리에 닿는 온기는 또 따뜻하고, 당신은 부드럽다. 입술을 움직여 말하는 것을 느릿느릿 더듬어보다, 이내 팔을 쭉 뻗어 당신의 목덜미를 향해 깍지를 낀다. 그대로 당겨 꾹 안고선, 그 작은 가슴팍에 당신의 머리를 당겨 품어낸다. 천천히 정수리 위에 입술을 대고 오물오물 속삭였다.
"오늘 나는 외롭지도, 춥지도 않았어. 앞으로도 같이 있어줄 거지? 그렇다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안아줘요!(쨥 달라붙음)(쓰다다담)(토닥토닥)(꾸욱) 에구,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그래도 내일은 일운도 좋고 반안살도 있을 거야. 오늘의 허탕은 미래의 액땜일 테니,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단 음식을 먹어보거나 포근한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3 날 만나서 많이 좋아졌다니 우우 로로주 말에 행복해졌어.. ;0;
단 음식이라는 말에 생각해보니 오늘 KFC에서 신기한 걸 배웠어. 스프라이트로 컵을 5분의 3쯤 채운 다음 파인애플 환타를 조금 넣고 나머지를 콜라로 채우면 미묘한 블루하와이 맛이 난다는 걸... 달고... 포근한 거? 여기 다 있잖아? (꾸왑) 상냥한 말 고마워. 기분이 좀더 좋아졌어. 답레는 느긋하게 기다려줘. 언제나 그렇듯 글뇌 부팅에 시간이 걸리니까.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꾹꾹이다~ >:3!!! 차가운 손으로 꾸욱꾹 누르다 냅다 끌어안기니까 팔 몇 번 파닥파닥 하던 김에만씨.. 햇살과 모래에 따뜻하게 덥혀진 선베드에 누워서 바닷물 다 닦이면 이제 선베드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겠지.. 바로 옆에 누웠으니까 옆으로 돌아누워 팔 뻗어서 로로 끌어안듯 배 위에 손 얹어주고..
잠깐 이렇게 되면 옆면만 타는거 아냐?(대체) 이자식 평상시에도 변신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대로 바빌론 시티의 멋진 바닷가를 배경으로 편안하게 낮잠을 자는 거군요. 바빌론 쇼어라인도 그레이존이니(그레이존이던가?) 마음편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겠네. 페로사가 파라솔 기울여주었다네요. 그리고 다리만 탄 페로사... (대체) 해 뉘엿뉘엿 기울어갈 때쯤 깨서 샤워장에서 씻고 갈아입은 다음에 해변가 경치 좋은 비스트로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보고 싶네. 아 여름 알차다
진짜 너무너무 좋다.. 어 맞아 나 아직 메모장에 복사 못했는데 한달 지났다구 설정 삭제됐더라구..;-; 기억에 열심히 의존하는 중이야..(용케 여기까지 옴) 파라솔 기울여줬대 스.윗.해~!!!! 다리만 탔대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 에만이가 .oO(가릴 겸 니삭스 신어달라 하면 구겨지겠지?) 같은 고민을 한 것은 비밀이라나 뭐라나..👀 우우 여름 알차다 누가 여름이었다 = 쨍한 열도 멘헤라정신나갈것같아살려줘물의 시작이라 했는가.. 이런 낭낭한 여름 분위기 좋아.. 어딘가 높은 습도..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각자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의 잔인한 일은 뒤로하고 환락을 헤매는 유령같은..
어, 나 그거 갈아타기 전 컴퓨터에 있는데 ._.) 그것도 가져올걸.. 내일 잠깐 옛날 컴퓨터 켜봐야겠다.
페로사: 나 어차피 발목까지 오는 청바지 입는 게 보통인데 니삭스는 무슨. 페로사: 에이 설마 수영복에 니삭스겠어. 페로사: 아니지? (파드메 표정 안면모사)
핫라인 마이애미 혹시 알아? 좀 그런 느낌이었으면 했어.. (욕망폭발) (이것도 정신나갈것같아물은 맞는데) 그래도 이 두 사람은 그런 정신나갈 것 같은 플로우를 마구 이끌거나 거기에 휘말리는 게 아니라, 그런 플로우 한가운데서도 그런 플로우에선 찾아볼 수 없는 포근한 환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게 좋아..
082 돼지고기 vs 소고기 페로사: 이거 어느 맛알못이 써놓은 질문이야? 페로사: 햄버그 스테이크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어야 맛있다고.
309 어떤 빙수를 좋아하나요 페로사: Shaved ice? 파란 시럽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었지. 페로사: 에스플레네이드 시내에 우유 얼린 걸 갈아서 내놓는 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쏠..빙이라고 했던가? 페로사: 아직 메뉴를 다 먹어보질 못해서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긴 아직 좀 그래.
026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페로사: 삼각관계 신파극만 안 나오면 뭐건 좋아. 로맨스, 액션, 공포... 아, 요즘은 공포영화 좀 시시하더라. 음악도 그렇고 공포영화도 옛날 게 좋아. (미드소마 아직안봄)
아열대성 기후에 속하는 바빌론 시티의 상당한 일조량 때문에, 바빌론 다운타운의 집들은 대체로 하얀 색이거나 밝은 색조의 파스텔 톤으로 외장을 꾸미는 것이 보통입니다.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와 대비되는 하얀 건물들, 밝은 색조의 아스팔트 위를 누비는 클래식 카들이 자아내는 레트로한 풍경은 바빌론 시티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지요. 적어도 해가 저물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법규가 유명무실해진 바빌론 시티에서도 바빌론 쇼어라인의 해수욕장의 운영시간은 엄격히 지켜집니다. 일부 야간개장이 허가되는 시기를 제외하면, 항해박명종료시각(EENT) 30분 전까지 모든 이용객들은 바닷물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만 해수욕장이 닫힌 저녁에도 바빌론 쇼어라인을 즐길 방법은 많죠. 버스킹을 하는 이들도 있고, 콘서트장도 있으며 야시장도 있습니다. 야경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화려한 색색깔의 네온 조명을 내건 식당들과 바들 중에는 숨은 진주 같은 가게들이 상당히 많답니다.
바닷바람 잘 와닿는다구!!!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나지만 다 익숙해보여 •0•.. 나도 변함없이 로로주를 좋아하는데에~~ 힘들여 칼 가는 이유는.. 당신에게 원기옥을 쏘기 위함이다!!!(나쁨)(?) 로로주도 부담 갖지 말고 취미는 취미니까, 편하게 써줘. 뭘 어떻게 해도 로로도 멋지고 귀엽고 예쁘니까!!!
그때 글뇌 저장이랑 이식이 시급하다..🥺
이곳저곳 가면서..🤔 일상을 만끽..하..고..🤦♀️🤦♀️🤦♀️🤦♀️ 아으으 순간 폰 쥔 상태로 잠들어버렸어..... 요즘 체력상태 진짜 꽝이네..🥺
너무 기다리지 말구 푹 쉬자..;-; 아무래도 5~10분 이내로 까무룩 잠들 것 같아서 인사 남겨.. 체력 진짜 바닥이다 큰일났다..
오늘 하루도 같이 있어줘서 즐거웠고, 설정 정말 재밌게 읽고 바다느낌 상상하기도 좋았어..!! 몸 좀 괜찮아진 걸까? 그러면 좋을 텐데, 아프지 않기야! 내일(오늘)도 잘 부탁하고, 목요일이야. 느긋한 금요일을 맞을 준비를 해보자구. 좋아해..!!(쪽)(꼬옥) 좋은 꿈..꿔..!!😴😴😴
^q^... (에만이랑 있으면서 쌓은 비석이 둘, 넷, 여섯, 여덟, 열... 세는 거 포기함) 나도 칼 갈 거야...!
편하게 써주고 싶지만, 텀이 계속 늘어져서 걱정이네. 에만주가 칼 가는 마음 알 것도 같고 👀 에만주가 잠들기 전에는 답레를 주고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이럴 때만 눈치없이 빠르게 가지 시간놈... 🤦♀️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피곤하면 얼른 자러 가자. (번쩍 안아듬) 왠지 졸았을 것 같더라니.
체력상태가 꽝이라기보단, 그만큼 몸이 휴식을 원하는 거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어두기야. (쫍) 자, 굿나잇 키스를 받았으면 자러 가야지.
아, 맞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어제 병원 갔다와서 완치됐다는 말 들었으니 몸은 걱정 안 해도 좋아. 나도 항상 좋아해.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시간 되는 대로 써둘게. 항상 기다려주고 함께해줘서 고마워. 목요일도 금요일도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보내자. 잘 자구, 좋은 꿈 꿔. 나도 슬슬 누워볼까나.. (옆에 슬쩍 누움)
딱히 온도와 습도까지 맞춰가며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상당한 애주가이기에 회전율(?)이 좋을 뿐이었다. 심심하면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다 섞어 저어먹고,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탄산음료를 하나 사서 타먹고 하다 보니 그녀의 선반에서 오래 버티는 술이 잘 없었다. 높은 층에 위치해서 지면의 복사열이 닿지 않는데다 아침의 잠깐을 제외하면 직사광이 잘 들지 않아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나름대로 시원한 방인 것도 한 몫 했지만.
개구리를 적당한 냉수가 담긴 냄비에 담아두고 수온을 천천히 올리면, 자신이 삶기는 것도 모르고 죽는다고 했던가. 물론 틀린 말이다. 변온동물은 오히려 온도에 더욱 민감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변한다 싶으면 잽싸게 도망쳐버린다. 지금의 이 편안함이 어느 순간 돌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 아니, 당신이 평소에 넘어오던 선과는 전혀 다른 선을 넘어버린 이 순간에서, 이 강철로 된 늑골 빗장 안에서 당신은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지금도 눈을 살짝 굴리며 웃어보이는 당신의 얼굴에서, 그녀의 시선은 떠날 줄을 모르고 있는데.
"오늘 누가 올 줄 알았으면 정리라도 좀 해둘 걸 그랬네." 앨리스의 입에서 나온 듯한 와아... 하는 소리에, 페로사는 멋적게 웃으며 당신을 침대 위에 뉘었다. 아무래도 와아 하는 탄성의 끄트머리가 짜게 식은 것이 자신의 형편없는 패션센스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 방이 퍽 어수선하긴 했다. 다시 말해,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살고 있다는 생활감이 한가득 묻어 있는 방이기도 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의식하지 않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지갑을 툭 덮어버린다. 이 도시에서 신분이나 돈에 대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고 있다고 대변해주는 듯한 에누마 그룹의 카드와, 아까의 그 통행증,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기에 어떤 풍경이 담겼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이 가죽 외장 너머로 사라진다. 당신의 손에 목이 덥석 걸린 것이 그 때였다. 양껏 취했음에도 부족하기에 더 채워줬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부족함을 호소하는 손길에 페로사는 그 커다랗고 강건한 신체가 무색하게 당신의 품 안으로 쉽사리 무너져내렸다. 그녀의 코 끝에 당신의 향기가 걸린다.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본다. 자신의 냄새는 자신이 잘 알아채지 못하기에, 거기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뚜렷한 당신의 체취.
페로사는 당신의 손 하나를 쥐고는 부드럽게 옮겨, 자신의 목 앞섶에 얹어놓았다. 정확히는, 목까지 끌어올려져 있는 그녀의 후드집업 지퍼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뚜렷하게 지어지는 눈웃음을 따라 지퍼를 내려보면 탱크탑과 속옷 겨우 두 벌로 싸여 있는 그녀의 품이 드러난다. 근육이 가득 들어차있음에도, 따뜻하고 푸근한 열기 머금은 체취를 띄고서. 페로사는 입을 벌렸다. "네가 같이 있어주는 만큼, 같이 있어줄게."
뭐야 에만 굇수였잖아............ (말잇못) 아니 하긴 그만큼 똑똑하니 졸업도 빠른 건 당연한가. 우리가 길게 돌려서 그렇지 겨우 하루이틀인걸. 우리가 돌리는 일상 특성상 비중이 적을 뿐이지, 세계관 속에서 에만을 더 바쁘게 만드는 건 미네르바의 부엉이 쪽 일일 테고... 그래도 학교 졸업하면 마음껏 쓰담쓰담해줄 수 있겠네. 졸업식에 가도 되나요?(?)
학점만 따면 조기졸업은 되는 일이지만 김에만 헤르미온느설이 유력하지..🤔 하버드 조기졸업자들 사례를 참고해보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이틀이라 한들 부엉이 일에 쏟아지는 과제를 견디며... 술도 짬내서 마시러 다닌다는 건.. 기만자같아 우우!(대체) 특히 술이!!! 원래 사람이 술을 마시면 다음날 못 일어나는게 정상 아니냐고 1교시의 망령씨 말 좀 해보세요
어떻게 술을 가볍게 마시지?(이런 발언) 농담이고 앨리스.. 그래도 사람이다 보니 1교시때 지각하고 강의실 문 열었는데 수업중인 교수님과 앉아있는 학생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자리에 앉아서 수업 듣다가 잠깐 한눈 팔았더니 1+1이 갑자기 엄창난 함수식으로 변해있는 걸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영화판이래 왜냐면 레비오사아가 아니라 레비오우-사니까..(?)
우우 대학교에 바래다준... 앨리스를 눈치챘나!(아님) 김에만 기껏 바래다주면 이제 "교..수..죽어.." 이러면서 터덜.. 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는 건가..🤔(대체)
페로사: 133 얼굴이 자주 붉어지는 편인가요? "어, 그랬었지......" "요즘들어선 붉히는 일이 좀 늘었어." "...너 알면서 물을래?" (뺨꼬집)
152 흑역사가 있나요? "흠. 흑역사라는 게 잊고 싶은 일을 모두 통틀어서 말하는 거면..." "누구라도 그런 거 하나씩은 있지 않겠어."
112 물건은 실용적인 것 vs 예쁜 것 "예쁜 걸 고르고 싶은데 내 심미안이 성치가 않아서." (킥킥 웃음) "그러다 보니 실용적인 것만 고르게 되네." "아, 가구는 내가 봐도 그럭저럭 예쁜 것들로 고른다고 생각해. 취향이 좀 레트로한 편이긴 하지만... 뭐, 이 도시가 워낙에 레트로한 도시니까."
(오늘 하루를 떠올림..)(경찰 부르던 일을 생각하고 납득..) 우우..(비비적) 깜빡 잠들 것 같네.. 잠이 훅훅 쏟아져서 지웠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금 이게맞나? 내가 지금 꿈인가..? 왜이리 생생하지.. 그래도 답레는 오전에 내가.. 원기옥을 쏘겠어.. 응.. 그ㅐ야만해..
에만은 타인의 선을 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잘 안다. 사람들이 조금 어리숙하게 여기지만 쉽게 넘어왔고, 에만은 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다른 뒤에 상대를 움켜쥐었다. 그러면 끝이다.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걸 잃고 망가진다. 그런 일을 수도 없이 해왔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르다. 지금까지 에만이 흥미가 생겨 선을 넘어 그 속내를 들여다본 사람은 많았지만, 에만이 직접 자리를 잡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발 들인 당신의 마음속은 꼭 울창한 나무가 드리운 숲 같다. 깊숙하게 들어가면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길 수 있다. 무시무시한 괴물도 그림자에 숨은 자신을 찾을 수 없으니 더는 쫓아오지 않는다. 정말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며 편안하게 몸을 웅크려 쉬던 도중, 빛이 들었다. 지금껏 어둠 속 희미한 윤곽 때문에 이 장소가 숲이고, 든든한 버팀목이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강철로 이루어진 늑골이었다. 그렇지만 무섭지 않다. 이 늑골 안이 정말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냐, 괜찮아.. 내가 연락도 없이 왔으니까."
만약 열이 더 올라버리고 식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막연하게도 당신이니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건 이 도시에서 아주 흔한 일이니까 당신도 그럴지도 모른다 포기하면 된다. 상실은 조금 오래가겠지만 훌륭하게 버티는 법을 안다. 그렇지만 두려운 것은, 자신이 달라져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 때다. 자신은 아주 변덕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잊어버리고, 손에서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때 당신이 옥죄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끔 하기 위해 각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이곳은 생활감이 한가득 묻어있고, 당신의 냄새로 가득한 방이다. 포근한 온기가 필요했다. 당신에게 소속됐다고 정확하게 증명하면, 나중에 광증을 앓다 잃어버려도 당신만큼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지갑을 덮었는지도 모르는 채, 아직 부족하다는 듯 당신을 끌어당긴다. 풍파를 막아줄 수 있을 커다란 몸이 쉽게 허물어져 품 안으로 들어온다. 에만의 품은 작지만, 그 품 안에 가득 들어찬 감각이 만족스럽다. 아무리 당신이 쓰는 샴푸와 바디워시로 몸을 채웠다고 해도, 아이에게 젖비린내 있고 노인에게 삶의 냄새 나듯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의 보송보송한 냄새가 난다. 에만은 그 온기 속에서 당신에게 이끌렸다.
"……."
에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랗게 뜨인 눈이 놀랍다는 듯 한 번, 두 번. 크게 꿈뻑거린다. 뚜렷한 눈웃음과 다르게 내린 지퍼를 보고 잠깐 당신의 눈을 한 번, 시선을 아래로 한 번 내렸다가 작게 웃었다. 온기가 선명하다. 따뜻하고, 푸근하고, 어쩌면 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 가득하다. 에만은 손을 떼고 후드집업 속에 안겼다. 고양이나 병아리처럼 온기를 찾듯 당신의 품에 폭 파묻히곤 고개를 들어 한 번 입을 맞추곤, 이마에 제 이마를 같이 기대며 입술을 벙긋댔다.
"약속한 거야."
이후의 입맞춤은 길었다. 입을 떼면 품에 당신을 다시금 가득 안아보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음.. 그리고, 배운 건 복습해야 한댔어. 욕심부리는 법말이야."
순수하고도 말간, 동글동글한 눈동자로 쳐다보다 샐쭉 웃더니 이내 손을 뻗어온다. 이윽고 온기 속으로 폭 빠져들었다. 한때 가장 바라던 온기를 손에 쥐듯이. 그렇게 여름날 아찔할 정도로 쨍한, 창백한 원반처럼 떠오른 태양을 직면한 첫 인류가 경외하듯, 당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속삭이다 어느새 툭하고 몽롱하고 잠이 꽉 들어찬 눈을 하더니, 에만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사르륵 잠들었다. 당신의 품 안에서, 안전하고 누구보다 편안하게. 생애 두 번째로 취해본 숙면이었다.
많이.. 많이 뇌 썼다..(필사적으로 아침이 찾아오게끔 조절함) 아침.. 아침은 어디갔지?(대체)
이번에 로로가 잠수타면 김에만씨..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내겠다 하며 이곳저곳 다 뒤져보겠지..🤔 그리고 찾으면 탁 붙잡곤 "이젠 내가 싫었던 거야?" 하고 무작정 물어볼 거고.. "어디까지 알아내서 그래? 내가 질려? 괴물 같아? 왜 피했어?" 조잘거리는데 어 이거 완전 멘헤라😶
녹이 아니라 이끼가 스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이 차가운 쇠창살이 안락한 나뭇가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여우가 머물기로 한 이 보금자리가 어쩌면 여우의 존재로 인해 조금씩조금씩 바뀌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아주 조그만 부분부터, 불가역적으로. 조금씩조금씩 지금이 쌓이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끌어당겨 당신의 품 안으로 끌려들어갔지만, 체격 차이가 있다 보니 페로사 쪽이 끌어안은 모양새에 조금 더 가깝게 되어버린다.
불가역적─ 이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쓴웃음을 지을까 했으나 쓴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당신과 페로사에게 있는 것은 지금뿐이니까, 지금 이 순간에는 이런 표정밖에 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보름마다 남몰래 사라지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거나, 자신이 자유의 몸이 아니라거나 하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품안에 생생히 안겨오는 이 조그맣고 가녀린 숨결이 더 이상 잊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입에 새겨지는 이 순간에 어른어른 취하듯이 빠져들어버릴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이며 품 안으로 무너져 들어오는 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품 안에 와닿는 당신의 몸집이 나약하다기보다는 섬세하게 느껴졌다.
"잘 자." 그래서 페로사는 잘 자, 그 정도의 말밖에 하지 못했다.
눈을 먼저 뜬 것은 당신이었던 것 같다. 딱히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잠이 깬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로를 다 회복하여 몸이 저절로 의식을 회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이 눈을 뜬 환경은 당신에게 조금 낯선 것이었다. 저녁까지 더웠다가 심야에 쌀쌀해져서 아침까지 쌀쌀한 바빌론 시티의 초여름 아침은, 당신의 체온만으로 데운 잠자리로는 아침에 이렇게 따뜻하고 푸근한 감촉을 느낄 수 없었다. 시선을 돌려보면, 어젯밤의 그 이상한 해후와, 이상한 저녁이 꿈이 아니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창가에 드리워진 블라인드로 산등성이에서부터 슬금슬금 고개를 내미는 바빌론 시티의 태양의 빛이 블라인드로 부서져들어오며, 당신이 잠든 이부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당신이 평소에 깔던 침대보도, 평소에 덮던 이불도 아니다. 당신이 평소에 베던 베개도 아니다. 사람의 팔이다. 그것도 상당히 단련되어 있다는 것이 명백히 보이는.
시선을 들어보면 곤히 잠에 빠진 얼굴이 있다. 때론 쾌활하고 때론 우울하다가 때론 자상하던 그 바텐더의 얼굴이 거기 있다. 활기와 어딘지 모를 날카로운 기색을 담고 치떠지던 눈은 부드럽게 감겨있었고, 활짝 찢어져 씨익 웃던 도톰한 입술은 살짝 벌어진 채로 소리없이 숨을 쉬고 있었다. 한데 묶여 뒤통수 높은 곳에서 치렁치렁 떨어지던 머리카락은 잠자리에 한가득 흩어져 어깨로, 목으로, 얼굴로 쏟아져 있었다. 이렇게 보니 느끼던 인상보다 조금 더 유순한 얼굴인 것처럼도 보인다.
머리맡에는 시계가 놓여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른 시간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로서의 삶은 모르겠지만, 앨리스로서의 삶에는 별 지장이 없을 만한 시간이다. 지금 그녀를 깨우면 아마 아침을 차려주마고 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숙면의 끝에 도달한 것은, 당신에게 있어 대단히 낯선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게도 기시감이 느껴질지도 몰랐다. 마치 원래 이래야만 했다고 하는 것처럼.
북부 에스플레네이드의 기라성과도 같은 빌딩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화이트 킹 빌딩입니다. 빌딩 전체가 화이트 존으로 선포되어 있는 화이트 킹 빌딩은 전체가 에누마 그룹의 소유로, 에누마 금융회사의 본사와, 에누마 그룹에 속한 각종 계열사들의 본부와 연락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해가 저물면 화이트 킹 빌딩의 첨단부에 설치된 붉은 라이트들이 점등되어 화이트 킹 빌딩의 끄트머리를 빨갛게 물들이는데, 보통 '붉은 왕관' 혹은 '붉은 빛' 등으로 불립니다만 종종 어느 유서깊은 판타지 연대기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을 빗대어 '사우론'이라는 농담으로 칭해지기도 합니다.
일단 어떻게든 범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생활 구조를 만들어두고, 도시의 각종 법규와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서 에누마 그룹도 뒷편으로 다른 도시였으면 어림도 없을 초법적 수단으로 돈을 긁어모으면서, 카드 이용자에게는 높은 카드 이용료로 수익을 올리면서도 다른 주에서는 범죄로 처벌될 수 있는 기록들을 수집해서 카드 이용자들(=바빌론 시티 주민들)을 바빌론 시티에 꽁꽁 묶어두고 있거든. 바빌론 시티의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사우론 같은 존재일 거야.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은 확실히 사망으로 못박아둔 상태. 아래로 동생 셋이 있는데, 동생들은 출연시킬까 말까 고민중이야.
말투는 어때요? 예의바른가요 모나있나요? '예의바른가 모난가'가 '사교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뜻하는 거라면 예의바른 편이겠지, 페로사는. 애초에 접객업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상대를 어느 정도 배려하는 태도가 말이나 행동에 묻어나오는 편이야.
버킷 리스트에는 뭘 넣어둘까요? 페로사의 버킷리스트는 여러 개인데, 평범한 버킷 리스트가 있는가 하면 위험한 버킷 리스트도 있지. 위험한 버킷 리스트는 아직 몇 개인가 남아있는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하나를 해결해야 다른 것들을 해결할 수 있어. 평범한 버킷 리스트라면, 술이라던가 여행이라던가?
미카엘이 죽고 나서 누군가의 제대로 된 품도, 온기도 한 번도 겪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유대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정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온기를 알아버렸는데 돌아간다면, 복에 겨운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이 도시의 머저리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속으로 되뇌며 입을 맞추고, 경배하듯 몇 번이고 당신의 이름을 속삭이다 잠에 빠져들었다. 평상시에도 적었지만, 오늘 고된 하루를 보냈기에 아슬아슬하던 체력이 결국 바닥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예술 작품을 끌어안듯 섬세하게 자신을 안아주는 손길을 마지막으로, 에만은 끝없을 것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알람 없이 눈을 뜨는 건 오랜만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3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지만, 그건 앨리스의 것이라 에만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만의 생활 습관은 불규칙했다. 어느 날은 새벽에 잠들어 아침에 깼고, 어느 날은 아침에 잠들어 정오에 깼다. 시간도 때도 제각각인 삶의 습관 속에서 에만은 제대로 피로를 회복해 본 적이 없다. 에만의 삶이 끝나기도 전에 앨리스의 삶을 살아야 했거나, 일기예보에 비라도 떴다간 날엔 앨리스마저 머리를 맞대고 '걔'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여름 아침이 되면 눈을 뜰 때마다 늘 어딘가 썰렁한 느낌도 들었다. 사무치게 외롭고, 피곤한 것이 정상이며 그게 당연해 무뎌지는 것이 에만의 삶이었다.
에만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의심했다. 일반 민간인이라면 조금 피곤하다 싶을 정도지만 에만의 기준에서는 씻은 듯이 없고, 침대는 따뜻하고 푸근하다. 분명 꿈일 것이다. 몽롱한 기운 속에서 모든 것이 낯설단 느낌이 들었다. 창가에 드리운 블라인드는 햇빛을 조각내며 이부자리를 비추고, 한없이 낯선데도 코에 익어 익숙해져 버린 누군가의 냄새가 가득하다. 평소에 덮던 이불도 아니며, 베개도 낯설다. 온통 따스하고 포근하다. 에만의 삶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다. 이건 꿈이 분명하다. 무뎌졌던 것이 따끔하게 다가올 꿈. 내가 언제 약을 했길래 이런 망상에 빠졌지? 에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스스한 시선을 돌렸고, 베개라고 생각하던 단단한 팔을 마주하며 꿈이라는 생각을 철회했다.
꿈이 아니다. 어제의 이상하던 일도, 온기도. 지금의 이 상황도 모두 현실이다. 약을 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시선을 들어 당신을 온전히 담는다. 잠에 빠진 타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낯설다. 당신은 어딘가 날카롭지도, 쓸쓸하지도, 쾌활하지도 않다. 부드럽게 눈이 감겼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있다. 머리카락은 나슬나슬 흩어져있는 것이 유순하다. 자상하던 얼굴을 떠올린 에만은 유순함이 몇 스푼 더 얹힌 모습을 가만히, 한참이고 응시했다. 눈을 조금 더 들어보니 시계가 놓여있다. 에만은 오늘 스케줄을 떠올린다. 부엉이, 그러니까.. 에만은 오늘 비번이다. 법적 보호자인 용왕이 아르카디아의 지하 투기장에서 '피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오늘 무슨 일이 있더라. 잠시 고민하던 에만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공강이다.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안전하고 편안하게 잠들고 나니, 모든 것이 낯설다. 이상한 나라에 혼자 뚝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원래 앨리스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 때문이었지. 자신은 이상한 나라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과거에 살던 인간 세상을 낯설게 여기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일 텐데. 에만은 제법 양극적인 감정 속에서, 페로사의 품에 조금 더 기대기를 택하기로 했다.
"으응."
잠든 척, 조금 더 품에 파고들고 눈을 살며시 내리감는다. 당신의 품이 더 필요하다는 듯. 하루를 다 준다고 했으니 이 하루가 끝나는 시점이 다가오기 전에, 둘 다 각기의 인생을 살아가기 전에. 조금만 더. 발을 살짝 까딱이며 꾸물꾸물거리다, 불현듯 이대로면 정말 더 잠들겠다 싶어 몸을 살짝 일으킨다.
잠에 들며, 페로사는 문득 그렇게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뜻밖의 순간에 잠시나마 다시 그것에 닿은 것 같다고.
포식자나 피식자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강하거나 약한 것 따위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다. 몰려오는 고난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건져내고 싶었다. 삶에 피가 묻었다. 말간 빛은 붉은 색에 절여져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움키고 담으려고 뻗어낸 손아귀와 뼈대는 마치 강철과 같이 차갑게 굳어져 쇠로 만든 흉골이 남았으되, 정작 그 안에 담아야 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상실하고, 그녀는 생물학적 내구연한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조용히 감퇴되어 가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에 색은 남았으나 빛은 없었다. 심장이 뛴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그것은 너무나도 남루한 몸부림이었기에.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커녕 이름조차 똑바로 모르는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된 이 밤이 유달리 따뜻했던 건,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피로 쓴 모든 이야기를 빼앗기고 텅 비어버린 마음에, 더 이상 쓸모없어진 쇠로 만든 흉골 안에 어쩌면 네 자리는 있을지 모르겠다고. 네가 편안하게 머물다 갈, 따스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자리가 있으리라고. 어쩌면 네가 이 곳을 원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리라고.
그런 그녀의 품 안에서 당신은 눈을 떴다. 실재감이 없었으나 실제였고, 현실감이 없었으나 현실이었다. 마치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만으로 당신이 여태껏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툭 굴러떨어져버린 것만 같았다. 약이 만들어낸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곳에 있었고, 나직이 숨을 내쉬며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물론 핸드폰을 켜보면 당신이 여러 인격으로 시행하는 일들에 대한 이런저런 연락이라던가, TV를 켜보면 에누마 그룹 계열사인 에누마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뉴스라던가, 창문 밖을 들추어보면 보이는 물류지구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너머로 내어다보이는 바빌론 시티의 아름다운 수평선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여긴 바빌론 시티라고 당신을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그건 오히려 역설적으로 바빌론 시티에서 피할 수 있는 이 조그만 피난처가 바빌론 시티라는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는 아주 강력한 반증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증까지도 필요없었다. 당신이 고개를 파묻을 때 당신의 얼굴에 느껴지는 촉감과 온기, 코로 와닿는 그녀의 살냄새며 비누 냄새, 시트러스 향 같은 것들은 명백히 현실에 단단히 발을 내리고 있는 감촉이었다. 약에 취해서 보는 환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어쩌면, 약기운보다도 더 지독할. 당신이 품 안으로 부드럽게 파고들어오자, 그녀의 팔이 반사적으로 당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아왔다.
스스로의 기준에서 기록적일 정도로 질 좋은 수면을 취한 것은 당신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더구나 자고 일어난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바텐더고, 당신이 바텐더와 친하다면 잘 알겠지만 보통 바텐더들의 출근시간은 아무리 일러도 점심때고, 세 시~네 시쯤의 오후 시간대에 출근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적어도 느긋한 오전까지도 그녀와 함께하면서 삐댈 수 있을 테고, 24시간을 넘겨도 그녀가 딱히 뭐라 당신을 책망하거나 쫓아낼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그녀는 오늘 출근을 해야 하지만, 출근하면 또 어떤가. 그러면 당신이 원한다면 손님이라는 정당한 명분으로 그녀의 시간을 합법적으로 사버릴 수도 있다. 분명 페로사의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에는 방문/예약/출장 상담을 받는다는 각주가 달려있었었지? 물론 내일 스케줄을 생각해두어야겠지만 말이다.
문득 당신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커다란 손이 부드럽고 느릿느릿하게, 애착이 가득 담긴 움직임으로 쓰다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면, 아직 잠기운에 뭉근히 잠긴 푸르른 눈동자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페로사: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하는 거지, 뭐. 페로사: 어머, 오늘은 내가 2시에 퇴근할 텐데. 그 때까지 기다리게? 페로사: 아니면, 나를 살래? (눈웃음) (출장비 내고 데려가는 건데 단어선택의 상태가?) 페로사: 페로사: (깔깔 웃음) 그래, 오늘은 뭐 볼까... (쓰담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지만, 매일 이런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당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식사를 하며, 같은 잠자리에 눕고, 하루를 마무리 하며 때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싫지 않다. 평생 이렇게 여운만 남기며 살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날선 감정과 말다툼이 있을 것이고, 예민한 뒷걸음질과 눈물이 폭발하듯 흐르는 날도 있겠지.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거리감이 생겨도 당신은 자신을 품었고, 자신은 이 안에 있으니까.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해야하는 걸까. 고작 몇 번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나 커다란, 인생과 직결될지도 모르는 무거운 감정을 떠안겨도 괜찮은 걸까? 고민은 곧 해결됐다. 명료한 해답이 머리에 와닿았다.
이 도시는 따뜻하다 못해 더운 기후를 가졌지만, 그 무엇보다 차가운 도시다. 에만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는 걸 봤다. 그중 미카엘이 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버텼는데, 차가운 냉기는 발끝부터 시작해 혈관을 타 구석구석 몸을 얼렸고, 끝내 심장까지 얼리며 마지막 숨을 뒤로 하나의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동상을 깨부수고 나온 건 에만이었다. 처음부터 추위 자체를 당연하게 안고 태어난 에만은, 늘 어딘가 결핍된 것도 모르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마침내 당신을 만나는 순간까지.
그렇기에 이 도시 사람치고 제법 많은 걸 바라는 것 같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도시 사람이 원한다기엔 지나치게 따뜻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귀한 보석의 원석을 덩어리째로 찾은 것과도 같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에게서 이런 원석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에만은 당신과 함께, 매일 이런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당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식사를 하며, 같은 잠자리에 눕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때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싫지 않다. 물론 평생 이렇게 여운만 남기며 살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날선 감정과 말다툼이 있을 것이고, 예민한 뒷걸음질과 눈물이 폭발하듯 흐르는 날도 있겠지.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거리감이 생겨도 당신은 자신을 품었고, 자신은 이 안에 있으니까.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고작 몇 번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나 커다란, 인생과 직결될지도 모르는 무거운 감정을 떠안겨도 괜찮은 걸까? 이 무게가 너무 무겁고 부담이 될 텐데.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고, 이제 사소한 것도 대단한 결정의 무게를 지니게 될 텐데. 그걸 당신은 받아줄 수 있을까? 고민은 곧 해결됐다. 명료한 해답이 머리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느릿하게 닿는 손길은 당신의 것이며 애착이 담겨있다. 에만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 것도 그 순간이다. 분명, 당신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몇 번이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더니 먼저 선택했다. 당신은 이 무거운 감정을 같이 떠안기로 결정했고, 에만은 잠시 고민하다 이 감정을 같이 떠안을 사람이 있으니 더 이상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하기엔 이미 길들여졌고, 따뜻함에 깊게 매료된 뒤였다. 에만은 부스스 잠에서 막 깨어나는, 아직은 잠이 꽉 들어찬 파르란 눈동자를 마주하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아침인데다, 피로가 풀렸다 한들 목소리는 풀리지 않았기에 입을 몇 번 벙긋대자 자그맣고 약간이나마 눌린 목소리가 속삭이듯 흘러나온다.
"……일어났어?"
당신의 품에서 몇 번 바르작대다 꼬물대며 한 번 파묻히더니, 아이처럼 바스스 웃었다. 나른하게 풀어져 버린 하루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결핍된 것을 양껏 채워도 모자라기에 앞으로 이런 삶을 지속해도 질릴 일도 없을 것 같다. 고개를 들고 당신의 뺨에 입을 맞춘다. 잘 잤느냐 묻고 입을 맞춘 행위가 제법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 당신과 함께 할 시간이 조금이나마 더 있음을 아는 탓도 있으나, 없었어도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양. 이내 몸을 다시금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옆으로 돌아누운 몸을 천장을 바라보게끔 누웠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이불을 꼬옥 그러쥔다.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판단하고 있다. 그 의미들을 모두 열거하는 것은 아무리 대단한 철학자를 데려다놓는다 해도 완전히 이룰 수 없는 일인데, 그 중 하나만 지나치게 결여되어도 그것은-흔히 사춘기의 감정의 격랑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말하듯이- 살아가는 것에서 죽어가는 것으로 변하고 만다. 철이 덜 든 젊은이의 헛소리가 아니라, 완전하지 못한 사람의 고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어쩌면 당연하게까지 여겨질 정도로 당신의 삶은 불완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어떤 지옥을 헤쳐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는 댓가로 많은 것을 지불했으며, 그 중에는 그녀의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그 안에 고이 모셔둘 무언가만이 없어졌을 뿐, 울타리가 되어줄 강철 뼈대와 따뜻한 온정의 품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를, 자신의 따뜻하고 여린 부분을 기꺼이 당신에게 내어주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당신에게 고작 몇 번 만난 사람에게 떠넘겨도 될까 의심할 만큼 무거운 짐덩이와 같았던 그것이 그녀에게는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신 채워줄 어떤 것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다. 그저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무엇이 자신에게 그것을 그렇게 느끼게 하는지 따위는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품안에서 바르작대는 당신이 좀더 편안하게 파묻힐 수 있도록 당신을 꼭 안아줄 뿐이다.
"좋은 아침... 다 일어나진 않았어." 바스스 웃으며 옆으로 돌아눕는 당신의 머리 뒤에는, 여전히 그녀의 팔이 괴여 있었다. 근육이 들어찬 굵은 팔은 옆으로 돌아누워 벨 때는 높이가 맞았으나 똑바로 누워서 베자 조금 높은 것도 같았다. 그녀가 팔을 조금 돌리자, 높이가 다시 얼추 맞았다. 일어날 생각 없다는 듯 느릿하게 이불을 틀어쥐는 당신을 바라보며, 그녀는 당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가 일어나면."
당신이 바르작대는 양을 보면서 졸음이 덜 떨어진 눈으로 그녀는 눈웃음을 짓는다. 어젯밤에 지었던 눈웃음과는 조금 다른 감정에서 나온 눈웃음이다. 불가해한 애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나른한 눈웃음임은 똑같았으되, 지금의 눈웃음은 좀더 느긋하고 편안한 것이었다. "아침밥, 먹을래?" 마치 함께 사는 가까운 누군가가 할 법한 대사다. 그래, 당신이 그녀에게 청구한 오늘 하루 동안, 그녀와 당신은 함께 살았다. 서로가 맞이한 낯선 아침에서, 그녀는 낯선 향수와도 같은 말을 당신에게 제안했다. 어쩌면 앞으로 더, 더 많은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강철 흉골 속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길 잃고 헤매이던 사막여우를 가슴속에 더 오래 담아둘지도 모르겠다.
(물린자리에 쫍쪼) 조직과도 나름대로 우호적인 관계를 알음알음 맺어둔 페로사인지라... 길거리의 캔디샵 갱 같은 애들이 피해다닌다기보다는 이미 누군지 알아서 허물없이 잘 어울릴 것 같지. 헬스 조언(?) 해준다던가 길거리 고민상담이라던가 하면서 (주인과는 달리 인싸재질인 페로사) 함부로 까불었다가 된통 혼나는 일이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
페로사: (여행객들한테 손 흔들어줌) 그렇다니까. 아무튼 바빌론 시티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구. 페로사: (에만 데리고 어느 정도 걷다가 에만 내려다봄) (눈웃음) 삐졌어?
에만주한테만 귀여움받을 수 있으면 상관없어. (골골고릉고릉) 에만주랑 에만이가 페로사 아껴주는 게 너무 좋아.. 어쩌면 페로사도 나중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에게 위조신분 만들어달라고 생각을 해두고 있지 않았을까? 아, 보드에 에만에 대한 내용도 넣어둘걸... (뒤늦은 후회)
페로사: 그래서 그냥 보냈잖아. (쫍) 페로사: 아무렴, 너랑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우선인데. (쓰담담) 페로사: 너를 두고 어디 갈 생각 없으니까. 응?
결여된 삶이 당연한 도시다. 결여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자신과,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당신이 여기 있다. 작은 여우는 당신의 거듭된 고민 속에서 마침내 내어주기로 한 강철로 된 늑골 속이 아늑하다 판단했고, 당신은 이 무거운 짐을 같이 짊어질 것 같다 느꼈다. 온기를 만끽하는 품은 초여름 쌀쌀한 아침 공기도 피할 수 있어 불편하지 않다. 옆으로 돌아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낯설고 꿈만 같다. 편안하고 안락한 이 순간이 정말 꿈이라면, 영영 깨고 싶지 않다. 이불을 그러쥐며 남몰래 혀를 자근 깨물어 본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꿈이 아니라니. 이것만큼 희망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 조금만 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면 아침부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을 것이다.
"으응. 그렇구나.."
그렇지만 에만은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못 됐다. 대신 단단한 팔의 높이를 가늠할 뿐이다. 근육이 들어찬 팔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크겠지. 그 반증인지, 높이가 맞는 듯싶어도 똑바로 누워보니 조금 높은 느낌이 들었다. 에만은 팔이 다시금 수평을 유지하자 높이가 얼추 맞는 것에 이불을 그러쥔 손을 위로 올려 입가를 가렸다. 눈을 흘끔 돌리면 당신이 있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었다. 희미하지만 분명 눈웃음이다. 에만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웃고, 대담하게 일을 벌이며, 감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 무시무시한 그림자. 그렇지만 당신 앞에서는 한없이 수줍고 소심해서 감정이 드러나지 못하는 작은 여우. "내가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줄 거야?" 이불을 쥔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다.
아직도 잠이 조금 들어찬 눈동자를 보니 어제 일이 실감이 난다. 그렇지만 어제와 오늘은 확실히 다르다. 당신의 웃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른하다 해도 감정이 다르면 그 의도가 달라 보이기 마련인데, 당신은 아마 자신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편안하고 느긋한 것 같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막상 당신이라면 편안하게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도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이 있으니 당신과 비슷한 마음이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아침밥?"
에만은 잠시 눈을 깜빡이며 이불을 다시금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몇 번의 잼잼과 함께 고민하는 이유는 에만이 아침을 잘 안 먹는 사람이기도 했고, 아침을 먹을 여력이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기도 하다. 잠시간의 고민 이후 에만이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당신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곤 바스스 웃었다. "응, 대신 나 많이는 못 먹어." 하고 조근조근 답한 뒤 당신의 품에서 빠져나오듯 바르작댄다. 낯선 향수가 드는 날, 춥지 않은 초여름 아침. 하루가 아닌 제안.. 에만은 비가 올 듯 저 멀리 꾸물꾸물 뭉치기 시작하는 검은 구름도 모른척하고, 이불을 팔랑여 몸을 일으킨다. 안 일어나면 입 맞춰야지, 그렇게 조잘거리고 한 번 더 기어이 쪽, 소리를 내버리며, 여우처럼 자그맣게 웃고 어린 왕자처럼 순수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바빌론 시티의 소란스러운 듯 안온하고 평화로운 지상과, 잔잔한 듯 요동치며 부딪히는 지하의 불협화음은 평소와 마찬가지다. 당신은 당신이 맡은 사람들의 일을 차곡차곡 해내면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 그녀에 대한 일들을 알아볼 수 있다.
행동 포인트: 4 계정 접근권한 신뢰도: 2 (에피소드 2에서 +1)
0. 세계관 중간 변화 특전 메인 캐릭터의 러닝 도중의 설정 변경을 감안하여, 캐릭터 간의 서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특전. 요구 사항: 계정 신뢰도 1 권한 있는 계정의 보안작업을 소실하는 조건으로 아래의 3가지 정보 모두를 행동력 소모 없이 접할 수 있다. 늑대인간에 대한 정보 뉴 에덴에 대한 정보 에누마 사의 페로사에 대한 심리 프로파일링
1. 페로사의 통화 내용을 감청한다. 요구 사항: 행동 포인트 1 결과: 에피소드 3에서 페로사가 나눈 전화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부작용: 1~4 다이스를 굴린다. 공개되지 않는 특정 값이 나왔을 시, 반동인물이 누군가가 통화를 감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누군가가 에만이라고 특정하지는 못하나, 그것이 그 '휴민트'라는 사실은 알게 된다.)
1-1. 페로사의 핸드폰에 백도어를 심는다 요구 사항: 1번, 행동 포인트 소모 없음 결과: 이후 제공되는 에피소드 중 반동 인물과의 통화는 별도의 행동 포인트 소모 없이 자동으로 에만에게 제공된다. 부작용: 페로사는 바로 누군가가 자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누군가가 에만이라고 특정하지는 못한다.)
2. 권한 있는 계정을 통해 하는 작업 설명: 2번째 에피소드에서 취득한 권한 있는 계정을 이용해 추가적 작업을 한다.
2-1. 추가적인 보안 작업 요구 사항: 행동 포인트 1 결과: (세계관 중간 변화 특전을 이용했을 시) 금지된 정보를 열람한 흔적을 지우고, 계정에 추가적인 보안 작업을 하여 계정이 의심을 살 일이 없도록 처리한다. 접근권한 신뢰도 1점을 얻는다. (세계관 중간 변화 특전을 거부하거나, 이용했음에도 행동 포인트 2점을 지불할 시) 계정에 더욱 복잡화된 보안 작업과 암호화 작업, 위조된 인가, 신분 우회 등의 작업을 실시하여 계정의 보안과 신뢰성을 크게 높인다. 접근권한 신뢰도를 4점으로 만든다.
2-2. 권한 있는 계정을 이용한 정보 수집 요구 사항: 매 정보마다 행동 포인트 1, 계정 신뢰도 1 (중복해서 소모 가능) 결과: 행동 포인트와 계정 접근 권한을 소모한 갯수만큼 아래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다. - (요구 사항: 1번) 보름에 바빌론 시티로 파견되는 정부 소속의 인원들. - 바빌론 시티에 존재하는 늑대인간들. - 정부와 에누마 그룹 사이의 유착관계에 대한 대략적 정보. 부작용: 접근권한 신뢰도가 0이 되면 계정의 접근권한이 차단되며, 정부에서 인가되지 않은 접근을 알아채게 된다.
3. 일반적인 정보 수집 요구 사항: 매 정보마다 행동 포인트 1 결과: 행동 포인트를 소모한 갯수만큼 아래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다. - 페로사와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인물의 정체 - 페로사와 커넥션이 있는 지하 조직들 - 페로사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
4. 건너뛴다 행동 포인트를 모두 사용하지 않고 건너뛸 수 있다. 에피소드 3에서 사용하지 않은 행동 포인트는 에피소드 4로 이월될 수 있다.
추천 조합: 0, 1, 2-1, 3에서 첫번째 정보 계정 접근권한 신뢰도를 2점으로 유지하고, 페로사의 정체와 반동인물의 정체까지 알면서 행동포인트가 1점이 남는데 이건 2-2나 3에서 정보를 더 얻거나 2-1에 행동포인트 1점을 더 투자해서 신뢰도를 높게 유지하거나 할 수 있어 >:3
알고 지내던 애들 중에 술버릇 고약한 애가 있었거든... (먼산)
그게 그렇게 되나!??!??! 에만주는 천재인가...??
아, 천재 맞았구나.. 캡틴이었다니 그런 어마무시한 일을. (부비부비) (골골고릉고릉) 굳이 멋진 선택지가 아니어도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줘. 가볍게 생각해서 에만주가 보기에 불만족스럽더라도 내가 보면 다 어마어마한 선택지가 되니까... 선택지 상대성 이론이라구(의미불명)
그러면 나도 보송보송해지러 가볼까.. 쩝쩝박사 에만주 귀여워. (쫍) (<ruby 사실 백도어 설치는 페로사가 에만한테 쳐들어오는 상황 밑밥이야> <ruby>) (그런데 이제 페로사랑 다 터놓고 네 목줄을 쥐고 있는 놈이 있다는 걸 갈고 걔한테서 널 빼앗고 싶다고 하면 페로사가 알아서 반동인물이랑 이런이런 이야길 했다고 전해줄... 이것은 순정인가 NTR인가)
0. 세계관 중간 변화 특전 당신은 정부 기관에 침투하여 얻어낸 정보를 통해 매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정체, 저번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골목 안에서 하고 있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당신이 그녀의 방에서 찾아낸 그 정체모를 생소한 상표... 트란작, 브로말, 베이로스 같은 이름의 약들이 어디서 났고 어디에 쓰는 것들인지, 그녀는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는지...
(situplay>1596463088>883에서 발췌) 이 도시의 심연으로 들어가면 그녀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자들도 있다. 탐욕스런 아귀같은 작자들도 있고, 미식가라도 되는 마냥 사람과 부위를 골라서 우아하게 냅킨을 두르고 품평을 하는 작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광기의 도시의 그늘에 잠식될 대로 잠식되어 뒤틀려버린 자들의 말로이다. 그런 극단의 말로에나 치달아 도달할 끔찍한 그것을, 그녀는 저주받은 본성처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앞서 말한 뒤틀려버린 자들에겐 없는 것이 남아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들이다. 이 도시의 광기에 뒤틀려버린 자들은 그런 말로로 치닫는 동안 그런 것들을 잃거나, 아니면 성품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광기에 오염되어버리거나 해서 그런 것들이 그런 행동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테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을 온전히 보존한 채로 저주와도 같은 괴물의 본성을 품고 있기에 광기 어린 본성과 아직 사람이고자 싶어하는 성품이 충돌하여 이러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에 스스로 그렇게도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괴물이 되길 선택한 이들과 반대로, 괴물로 태어나 사람이고 싶어하기에.
평소라면 그런 짓을 할 것도 없이 충분한 식사를 배불리 하는 것만으로 그녀의 괴물의 본성들 중 가장 위험한 식탐 정도는 잠재울 수 있을 테지만, 보름이라면 다르다. 에누마 사를 통해 공급받는 이런저런 약들을 통해 인간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고, 변이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허기는 억제할 수 없다. 그것을 눌러참는 것은 온전히 그녀에게 달려 있으며, 보름 밤 동안 어떻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견디는지는 그녀의 몫인 것이다.
뉴 에덴은 거대한 실험장으로 마련된 통제도시였다. 여러 희귀한 특성을 지닌 능력자들을 강력한 통제도시 안에 잡아가두어 놓고, 그 중에서 늑대인간들을 실험체이자 또한 간수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누구도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의 유태인 수용소의 카포와도 같은 위치였다고 생각하면 될까. 그들은 뉴 에덴이라는 거대한 수용소의 카포였으며,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실험체이기도 했다.
늑대인간들은 늙지 않았으며, 놀라운 재생력을 지니고 있고, 또한 본인들이 물리적 오류를 일으키는 변칙성 존재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다른 능력자들이 이능력으로 발휘하는 변칙성에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염 능력자가 뿜어내는 화염에 불타지 않았고, 전격 능력자가 쏘아내는 전격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받았으며, 정신 간섭 능력에도 놀라운 저항력을 보였고, 괴력 능력자가 발휘하는 괴력도 늑대인간에게는 그 위력이 크게 감소되었다. 태양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광선 능력자가 뿜어내는 광선에도 일반적인 유기체가 그 광선에 노출되었을 때에 비해서 현저히 적은 영향을 받았다. 변신 능력자의 경우에도 냄새나 버릇 등등 누군가가 동일 인물임을 추리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완전히 지우고 변신을 한다 해도 알아채는 모습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능력 저항성은 선택적이었기에, 능력의 행사가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능력을 수용할 수도 있었다.
기존의 이능력 무효화 능력과는 다른 형태로 발휘하는 특이한 기작 때문에,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재현이나 복제 및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이능력 무효화 능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능력에 대한 저항력, 다시 말해 능력자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 정부는 주목했으며, 이것은 늑대인간의 불로성과 재생력 이외에도 권좌에 앉은 이들이 늑대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 된 또다른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인체실험을 당하고, 해부를 당했으며, 뉴 에덴의 간수로 이용되었다.
뉴 에덴은 늑대인간들 중 어느 한 명이 뉴 에덴의 장벽을 통제하고 있던 이능력 무효화 겸 천리안 능력자인 "오버시어"와 접촉하면서, 알 수 없는 협상을 통해 오버시어를 설득하여 뉴 에덴의 장벽에 둘러져 있던 이능력 봉쇄장을 해제하면서 뉴 에덴 내부에 수용되어 있던 이능력자들과 늑대인간들의 봉기로 무너졌다. 뉴 에덴에 수감되어 있던 모든 이능력자들은 현재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정부 기관은 그들을 찾아내어 사로잡거나 포섭하거나 죽임으로써 입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절대 다수의 늑대인간들은 뉴 에덴에 수감되어 있었기에 정부 기관으로써는 늑대인간을 사냥할 이유가 하나 늘어났을 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에누마 사는 그런 정부 기관으로부터 페로사를 바빌론 시티 안에 숨겨주는 조건으로 페로사를 자신의 사냥개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2-1. 당신은 한 번의 접속으로, 기적적으로 대단히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위의 모든 정보들을 단 한순간에 습득할 수 있었으니. 이 계정을 계속 이용하는 것은 불안정한 일이 되겠지만, 당신은 다른 경로로 접속기록을 조작하고 인가를 위조하는 작업을 거쳤으며, 다행히 이 계정은 한 번 정도는 별 뒤탈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계정으로 무언가를 더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이것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전화가 끊기는 소리는 한 번만이 들렸다.
"...그리고 네가 그 휴민트겠군. 그렇지 않나?"
남성의 변조된 싸늘한 목소리가 선 너머를 통해 당신에게 날아왔다.
"방금 내가 한 말을 잘 들었겠지? 걱정 마라. 바로 지금 당장 널 잡아 죽이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너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좋은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 침착하고, 현재의 삶을 유지해도 좋다."
그는 당신이 에만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당신의 얼굴은 안다.
3. 그러나 너무 좌절할 필요 없다. 아직은 당신이 우위에 있다. 당신은 이제 그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안드라스 레저. 에누마 금융 그룹의 채무자산관리부 부장. 정확히 말하면, 거의 모든 법이 사문화되어 버린 이 도시에서 거주민들에게 제재를 내릴 유일한 수단인 과태료와 채무상의 불이익, 압류 등의 모든 절차의 시작과 끝을 도맡고 있는 채무자산관리부의 장인 그는 이 도시에 있어 경찰청장이자, 검찰총장이자, 대법원장이기도 했다. 또한 당신의 큰 고객들 중 한 명이기도 했고.
페로사의 목줄을 직접적으로 옥죄고 그녀를 사냥개로 부리고 있는 인물은, 당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인물이었다.
하늘은 맑고 넘실대는 바다는 아름답다. 치안이 좋은 장소는 웃음이 꽃 피고 사람들이 제각기의 일상을 살아가며, 관광객의 떠드는 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평온하기만 하다. 바빌론 시티의 겉모습은 빛나는 별 이자, 하나의 지상낙원이다. 누군가 웃지 않는다면 웃게 만들고, 근심이 있다면 눈 녹듯이 녹인다. 답답한 현실을 내려놓을 수 있고, 삶의 고통 또한 내려놓게끔 만든다. 그런 지상낙원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됐고,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눌어붙게 되는 사람들은 천천히 낙원의 이면을 엿보게 된다. 하나하나 들추며 고통받기도 잠시, 낙원이라는 이름만 있다면 섭섭하다는 건지, 도시 전설로 나도는 장소를 듣게 되기도 한다. 지하. 빛나는 별의 이면이자 낙원의 이면. 지나치게 차갑고, 지나치게 뜨거우며, 지옥도를 그려내며 그 자체인 곳. 어둡고, 피로 이루어진 분수가 있으며, 울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그 비명은 지상에 닿지 못한다고 한다. 아직 가본 사람은 없다지만 소문은 무성하다. 어쩌면 가고나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발언은 묻히고, 그 공포만 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점이 있다. 지하는 마냥 어둡고 음침하지 않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막상 살다 보면 저 지상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도시 전설처럼 피와 비명이 난무할 적도 있지만 적어도 매일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껏 살아오며 본 지하는 화려한 연회장을 방불케 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상이 있고, 샹들리에도 있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정답기까지 하며, 마시는 음료는 그 맛이 넥타르에 비견된다. 비록 그 조각상에서 시취가 나고 석고가 부서져 사람이었던 것의 형태가 보이고, 샹들리에가 정적을 깔아뭉개며, 같이 다니는 사람의 손이 서로 강제로 꿰매 이어지고, 음료를 마시면 이제 그 음료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약에 취해 기어 다닌다 해도. 사람들은 누군가 울면 축하해 주고, 웃으면 끌어내렸다. 끝나지 않는 춤을 추며 하루하루를 지새운다. 음침하기는커녕 광인의 낙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 광기의 중심에는 '거꾸로 뒤집힌 이름'이 기거하는 곳이 있다. 그것은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미지의 인물이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지하를 손에 쥐고 흔드는 지배자를 만들어낸, 이른바 킹메이커다. 많은 빌런이 이 킹메이커를 동경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치고 올라오듯, 아니면 그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에누마 그룹의 입김과 이간질로 이루어진 지하의 권력구도를 뒤집어엎고, 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한 달이나 흐리게 만든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업적 때문인지 킹메이커요 거꾸로 뒤집힌 이름은 지하의 정신적인 지주, 그리고 어르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킹메이커는 기대와 달리 자신이 기거하는 곳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준비된 자리엔 제법 화려하지만 실용성을 중시했는지 푹신푹신한 왕좌와도 같은 무언가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그마저도 주인이 앉지 않은지 제법 오래됐는지 먼지가 앉아있다가 가끔 먼지만 툭 털 정도로 앉고 가는 날이 허다하다. 많은 빌런이 이 자리가 하루라도 더 오래 채워지기를 고대했으나 킹메이커 밑에서 자라 지금쯤 도시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빌런들은 차라리 그것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고대하던 빌런들도 한 수 무르며 오지 않기를 빈다. 아예 그 기간에는 지하를 뜨는 빌런도 있다. 비가 오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던 권력구도의 다툼이 삽시간에 멈춘다. 킹메이커가 나타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암묵적인 규칙이 생긴 것이다. 그만큼 킹메이커요, 뒤집힌 이름인 에만은 지하에서 영향력이 강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기, 드디어 주인이 돌아왔다. 비가 내릴 듯 지상은 우중충하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는 누군가 무릎을 꿇린 채 제압당해 고개를 바닥에 박은 채 벌벌 떨고 있고, 그 앞에 주인이 늘어지듯 앉아있다. 이 자리의 주인은 늘 바뀐다. 어느 날은 소년이었고, 여인이었으며, 노인이었다. 그렇지만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잘 짜인 인형같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생각은 조금이나마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정보를 말해도 그 속에 내포한 의미에 희미하게나마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앉는 존재들은 달랐다. 다른 숨결, 억양, 목소리로 얘기하지만 전달하는 의미가 일절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혹자는 에만을 무시무시한 세뇌 능력자로 생각했고, 에만이 생명을 창조해낸 과학자라 생각했다. 심지어는 신이라 주장하는 자도 있다. 그런 괴팍하고 흉흉한 소문 속에 앉은 오늘의 주인은 소년도, 소녀도 아니다. 옅은 백금발에 붉은 모발이 군데군데 섞였고, 눈은 겨울을 닮았다. 벌써 10분째의 침묵이다. 시선에는 소리가 없는데도 칼로 무언가를 베듯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오늘 내가 뭘 하려 했는지 알아?"
정적을 깬 목소리는 잔잔하다. 누군가에겐 아침을 같이 보냈기에 더없이 달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일 것이나, 애석하게도 눈앞의 남성에겐 아닌 듯싶다. 용왕은 뒷짐을 진 상태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남성의 고개를 향해 구둣발을 까딱였다. 강제로 고개를 밀어올려진 남성은 겁에 질려 딱딱 맞부딪치는 잇소리를 내며 답했다. "아, 아르카디아의.. 피갈이..?"
"대화의 격이 떨어지는데."
기분이 나빠졌는지 표정이 옅게 일그러진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자 용왕은 흘끔 에만을 살폈다.
"예약 잡고 술 마시려 했어."
검지에 벌써 카람빗 한 자루가 빙빙 돌고 있다.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뚫린 고리 형태의 구멍에 검지를 넣고 빙빙 돌리는 버릇이 누구의 것이더라. 용왕의 시선이 점점 가늘어진다. 에만의 독백이 이어진다.
"나도 보고 싶었거든. 대체 누가 쥐새끼 하나를 더 만들게 했을까? 얼마나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길래 지하를 내팽개칠 생각까지 했을까? 누가 기쁘게 할까, 감히 이 도시에서."
용왕이 눈을 홉뜨며 남성의 머리를 세게 짓밟아 제압한다. 눈을 홉뜨기가 무섭게 에만이 의자에서 튕기듯 달려 나왔고, 밟는 순간 카람빗이 머리가 있었을 허공을 거세게 갈랐다. 용왕의 발이 더 빨랐는지 쿵 소리가 났지만, 힘 조절을 제대로 못했는지 대리석 바닥에 피가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에만이 허공을 갈랐던 팔을 느릿느릿 거뒀다.
"아무리 네가 나선다 해도 상품 훼손은 용납 못한다." "저게 다 망쳤잖아. 왜 살아있어서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지? 왜 아직도 숨이 붙었냐 묻잖아." "곧 투기장에 갈 녀석이니 아량을 베풀지그래." "못 갔잖아, 못 봤잖아.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잖아. 고작 투기장? 아량? 용납 못하지.. 내가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이 도시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쥐새끼를 둘이나 홀렸지? 심지어 그중 하나는 새로 생긴 새끼인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에만이 목에 핏대를 세우자 용왕은 직감했다. '걔'다. 그것은 애정을 증오한다. 온정을 끔찍할만치 혐오하며, 동정을 같잖은 사치로 여긴다. 누군가 손을 뻗으면 그 손목을 자를 사람이다. 용왕은 그것을 이해하고, 지금 이 상황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여겼다. 그것은 카람빗을 역수로 쥐고 대리석에 고이는 피를 바라보다 남성의 머리를 한 번 거세게 걷어찬다.
"쓸모 없는 새끼!!!"
사람이란 것은 상처라는 것도 딛고 올라서니 제법 오만하고도 이기적인 존재다. 어쩌면 어리석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득과 실로 움직이는 것이 이 도시이거늘, 굳이 애정이니 온기요 각종 단 것을 찾는다. 허울뿐인 것이 그리도 좋은 것이다! 이리도 우습다. 역겹다. 짜증이 난다. 익숙한 향수라고? 거짓말! 그 쥐새끼들에게 한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그것이 파르르 떨며 몸을 팩 돌렸다.
"눈을 뽑고 발목을 잘라 사자 우리에 던져버려." "자비를 베풀어줘서 고맙군."
적어도 너는, 겪은 일이 있으면 그러질 말았어야지. 멍청한 미카엘 같으니라고. 비가 온다. 지하의 도시 전설이 현실이 될 시간이다.
안타깝게도 늦었습니다, 휴먼. 지금 이 순간 나를 재울 수 있는 방법은 에만주가 자러 가는 것뿐이야.
🤔 에만이 때때로 저 모습 그대로 지하의 왕좌에 앉기도 하는구나. 안드라스가 머리카락과 체격만 봤고 에만의 얼굴은 못 봤다고 해둘까, 음음.
페로사와 안드라스와의 악연을 끝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안드라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버릴 수도 있고, 에누마 그룹까지 무릎꿇릴 수 있고(아마 두 번째로 어려운 방법 아닐까), 안드라스의 눈을 속이고 바빌론 시티를 떠나버린다던가, 아니면 안드라스와 협상을 한다던가...
그리고 바빌론 시티의 서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페로사주의 에피소드 말고도 에만주의 에피소드도 동등한 지분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 >.0
소중한 에만주의 소중한 글인걸요... 88 내가 제공하는 에피소드의 선택기 말고도, 선택기에서 "당신은 당신이 맡은 사람들의 일을 차곡차곡 해내면서"라고 썼는데, 이 말인즉슨 당신이 맡은 '사람들의 일', 즉 에만이 받은 의뢰 같은 게 아니라 '당신이 맡은 사람들'의 일, 그러니까 에만(과 다른 인격들)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선택기 이외에도 에만의 다른 행동(=에만주의 서사)으로도 안드라스와 에누마 그룹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으로 써둔 말이었으니까.
아무리 누군가의 삶이 바뀐다 한들 바빌론 시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양껏 발버둥 쳐보렴, 네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마치 그렇게 속삭이는 양, 오늘도 당신은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한여름의 백일몽과도 같던 순간을 떠올리며, 당신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고, 어쩌면 꿈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아갈 수 있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 4 추가 인간관계: 2 [일상] - 인간은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고, 일상 속에는 소문이 있기 마련입니다.
1-1. 엘리시온의 바텐더. - 일 포인트 1 차감 "홀리몰리과카몰리뻐킹헬.. 저 새끼 이상한 것만 주구장창 시키는 것 봐라.. 미친 새끼 안주로는 케이크에 에그노그가 말이냐.. 지 혼자 초여름의 크리스마스지. 설거지 쌓이는 것 봐라.. 네? 하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 네.. 에그노그 한 잔 더요? 네.." ─ 선배 바텐더.
결과: 오늘도 당신은 일을 합니다.. 꿀 같은 휴식시간, 입 가벼운 엘리베이터 보이의 손짓과 발짓이 더해진 생생한 소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3가지로, [앨리스/아르카디아/로즈밀]입니다. 앨리스에 관해 추가 정보가 있습니다. 부작용: 그 추가 정보가 다갓이며 우리는 다갓과 멱살을 잡는 사이라는 걸 잊지 맙시다.
*
1-2. 휴식의 느긋함 - 일 포인트 1 차감 "누가 아직도 신문을 읽어요? 핸드폰 뉴스가 있는데? 선배.. 설마.. 기계치는 아니죠? 어쩐지 그럴 것 같더니만- 악!" ─ 깝죽대다 한 대 얻어맞은 후배 바텐더
결과: 엘리베이터 보이는 저기서 뭔가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떠벌대는 소리를 무시하고 당신은 신문을 펼쳤든, 펼쳤든. 뉴스를 보든.. 고정된 결과인 [아미티스 대학]과 무작위 1개의 키워드를 얻게 됩니다. 다이스 범위는 공개됩니다. 부작용: 장악된 언론은 신뢰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스 값은 총 4개로, 그 중 2개는 입맛대로 조작된 정보입니다.
[선행] - 이 도시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행위
2-1. 엘리시온의 경호원. - 일 포인트 1 차감, 인간관계 포인트 1 차감. 선행 조건: 1-1, '엘리시온의 바텐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하마터면 거래처의 대가리를 따버릴 뻔했지 뭐예요.. 나도 참, 숙녀가 이런 말은 실례인가? 역시 모가지라 했어야 더 우아하지요." ─ 의문의 인물
결과: 엘리시온 내부에도 진상은 있기 마련입니다. 정확히는 안 그런 척, 민폐 끼치는 경우 말이죠. 거래처의 갑이니 을에게 희롱을 하라고 한 적은 없을 텐데. 원래는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을, 오늘따라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호적인 인물관계'가 형성되며, 관련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모든 일에는 은원이 있습니다. 원한 관계가 자동적으로 형성됩니다. 다음 선택지에서 '부정적인 일'에 1포인트가 확정적으로 차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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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겨울의 보호자 - 일 포인트 2 차감, 인간관계 포인트 +1 "차라리..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어!" ─ 희생양의 단말마
결과: 골목에서 나는 피냄새. 누군가 죽을 것 같았기에 당신은 살렸을 뿐입니다. 확정적인 정보를 하나 획득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은원은 다음 일상에서 바로 적용됩니다.
[행동] - 오른손의 이름은 대화, 왼손의 이름은 합의.
3-1. 원 펀치 쓰리 강냉이 - 행동 포인트 1 차감 "너 이자식, 우리 어르신이 가만 안 둘 걸?" "팍씨" "아, 타임! 타임! 암 쏘리! 잘못!! 했어요!! 저 이제 맞을 곳도 없어요!" ─ 어딘가 어리버리한 빌런
결과: 지하에서 올라와 막 설치기 시작하는 빌런과 '대화'를 했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하나 직접 질문해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 아니나 다를까, 은원은 확실합니다. 이 빌런이 다음에 행동 포인트를 하나 까먹게 됩니다.. 행?운: 다이스도 은원이 확실한 존재지요. 행동 포인트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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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행동하는 비양심 - 행동 포인트 2 차감, 인간관계 포인트 1 차감 선행 조건: 2-1, '엘리시온의 경호원' "저게 뭐야?" "어.. 저희집 멈머요." "..저건 사람이라고 부르는 ㄱ.." "..아무튼 도와주세요!" ─ ?
결과: 곤란한 의문의 인물을 돕습니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추가되며, 확실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 세상의 이치를 하나 깨닫습니다. 에만이 당신의 행동을 눈치채며 경계합니다.
[건너뛰기] 결과: 에만주는 착하니까 남은 포인트를 이월할 수 있다! 부작용: 안알랴줌! >:3
1-1. 엘리시온의 바텐더 "고오갱님께서 해달라시는데 어쩌겠어." "야, 페로사, 턱관절에 힘 들어간 거 다 보여." "턱관절에 쥐가 나서 그래. 라모스 진 피즈가 아닌 게 어디야?"
"주문하신 에그노그 나왔습니다."
2-1. 엘리시온의 경호원 "고객님? 실례지만 엘리시온 이용수칙을 한 번 더 숙지해 주시겠습니까? 엘리시온 내에서 상호간의 합의 없이 그런 행위를 하시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엘리시온에서의 음주는 즐겁게, 안전하게, 화목하게.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페로사, 미쳤어?" "잊었어? 나는 미친 여자잖아."
3-2. 행동하는 비양심 그 날 내내 페로사는 상당히 착잡해보였다. 자신이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저희 집 멈머요, 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그 사람과, 저희 집 멈머라고 일컬어지던 그 사람의 모습이 자신의 처지에 겹쳐 보여서였기 때문이다.
#1. "음모론이라기엔 기일이 얼마 안 남았죠?" 당신의 하루는 바쁩니다.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유달리 바쁜 하루였다 정의합시다. 애당초 술이라 하면 감정노동이고, 새벽에 퇴근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한 사람의 감정만 처리하면 좋겠지만 오늘은 예약이 잡혀있지 않는 날입니다. 선배의 속사포 같은 불만은 물론이요, 턱관절에는 힘이 들어가며, 눈치 없는 손님은 기어이 라모스 진 피즈까지 시켜버립니다. 결국 터져버린 선배의 Fu-....nny truck을 뒤로, 잠깐 깊은 한숨이 주변을 채웁니다.
"페로사, 내가 할게. 가서 좀 쉬고 있을래? 내가 저거 보내버리고.." "언니, 참아요." "응, 보내는 건 너무했지? 역시 묻어버리고.."
선배의 배려 덕분에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찾아옵니다. 마침 운도 좋게 지난번 당신에게 딱밤을 맞은 엘리베이터 보이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휴식을 위해 들어오더니, 입이 근질근질한지 주변 눈치를 봅니다. 소파에 드러누워 쉬고 있던 다른 바텐더가 묻습니다. "그래, 오늘은 뭐야?"
"그게- 음모론을 들었거든요." "재밌겠다. 뭐야? 역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미티스 대학 여신이 사실은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래? 내 말이 맞지?" "글쎄, 앨리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설마 너, 디엠에 답장 한 번 해줬다고 노후계획 세웠니? 왜 그런 반응이람!" "아니라니까! 아무튼, 손님들끼리 '그것'이 알아서는 안 된다고 수군대는 거 있죠?" "그것? 뭔데? 말해봐. 궁금하다." "그게… 붉은 마녀가 그날 자긴 살해당할 거라고 했대요. 남편이 알아서는 안 될걸 알았다고.." "그냥 미친놈 아냐?" "그렇지만 들어맞지 않아요? 흰 손도 사고사잖아요. 희생이라고 해도 공표된 게 말 아니면 없고.." "재미없다. 역시 대학 여신이.." "으악, 페로사! 이 사람 좀 어떻게 해봐요!"
#2. "내 이름은 셴-샹이라 해요. 천향이요. 발음하기 어렵죠? 쉽게 마오라고 불러요. 그게 더 편하거든요." 엘리베이터 보이와 바텐더의 싸움 아닌 싸움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휴식 시간은 없고 다시금 일할 시간이 찾아옵니다. 기진맥진한 선배의 교대하자는 소리가 이렇게 지옥 같을 수가 있나? 있습니다. 없을 리가요. 뭐든 쉬다 일하라 할 때가 제일 고된 법입니다. 그래도 곧 퇴근이니 그 점을 위안 삼읍시다. 바에서 여러 바텐더가 칵테일을 주조하고 당신 또한 셰이커를 흔들 때, 눈에 유달리 밟히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 근처 바에 앉은 두 명의 사람입니다. 여인과 남성은 둘 다 정장 차림이며, 연인이라기엔 비즈니스 관계인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묘합니다. 은근슬쩍 여인의 손을 만지작대며 웃는 남성은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나, 여인에 비견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을 헐겁게 쪽진 여인은 눈에 박히는 미인이고, 대놓고 어색하게 웃고 있습니다. 여인이 손을 계속 뒤로 물릴 적 남성이 손을 덥석 쥐고, 당신이 그 광경을 정확히 보았으니. 남은 일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남성을 제지합니다. 남성은 당황한 듯하다, 이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거래는 일단 성사된 걸로 알겠습니다, Ms. 셴." 하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떠버립니다. 잠깐의 정적을 뒤로 다시금 소란스러움이 자리를 채우지만, 당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인이 웃고 있으나 세상이 조용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무시무시한 감이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마터면..
"정말 고마워요. 운수 나쁜 날은 피했네요."
저 남자는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인의 소맷단에서는 독 냄새가 납니다. 숙련된 킬러인 건지, 당신의 제지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남성은 돌아가는 길에 중독되어 죽었을 테지요. 여인도 당신이 뭔가 눈치챈 걸 알았는지, 당신을 향해 명함을 밀어줍니다.
"내 이름은 셴-샹이라 해요. 천향이요. 발음하기 어렵죠? 쉽게 마오라고 불러요. 그게 더 편하거든요. 보다시피 평범한.. 카지노 딜러에요. 놀러 오시면 후하게 대접해 드릴게요. 고작 칩이지만."
그리고 여인은 입을 벙긋거립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당신의 무시무시한 동체시력은 정확하게 입모양을 알아봅니다.
당신도 나랑 같은 존재죠? 사람 찢는 것에 도가 터 보이는데.
현 시간부로 용궁, '마오'는 페로사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입니다. 해당 호의는 선택지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3. "가끔은 모른 척 지나가면 좋을 텐데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당신과 밤을 보낸 작은 여우는 최근 보이지 않습니다. 불야성의 도시는 시끄럽고, 접어든 인적 드문 골목도 다르지는 않습니다. 보름은 며칠 남았지만 달이 환하며, 그 달빛의 끝에 마오가 있습니다. 옷이 찢어진 것은 물론이요, 머리는 헝클어졌습니다. 마오는 당신을 마주하자 다급하게 무언가를 손끝으로 가리킵니다.
"아, 바텐더 씨!! 마침 잘 됐다! 저거, 저거 좀 잡아주실래요?"
저거라며 가리킨 손가락 끝으로 마오와 대치한 무언가가 보입니다. 마오가 말한 '저거'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닙니다. 긴 털 짐승의 꼬리가 돋아나있고, 손발톱은 날카롭습니다. 동족인가 싶어도 동족의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뺨에는 털 짐승이 아닌 물고기의 비늘이 돋았고, 돋아난 비늘이요 털이 전신을 덮어 인간의 형태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이 능력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게 무엇이냐 묻자 마오는 태연하게 답합니다. "저희 집 멈머요."
저걸 과연 개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오도 제법 다친 듯싶으니 제압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생긴 것은 흉악했고, 당신이 제압하기 위해 다가올 적 입을 벌려 드러낸 이빨 또한 뾰족했지만 단 한순간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늑대인간의 강력한 힘 앞에서 이길 수 없었는지 손쉽게 제압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당신에 의해 제압될 적, 찢어지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목을 타고 흐르기 시작합니다. 발음은 분명하지 않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잡았네. 감사해요! 하루를 꼬박 쫓았거든요." 소란 속에서 마오가 한숨을 내쉬며 '멈머'라 불린 그것을 향해 다가가더니, 당신이 놓아주는 틈을 놓치지 않고 꾹 짓눌러 제압합니다. 멈머는 울부짖으며 눈물까지 줄줄 흘리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이 도시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고개를 처박고 훌쩍입니다. 마오는 잘 했다며 멈머의 머리를 몇 번 토닥이며, 어르고 달랩니다.
"그러니까 왜 도망을 갔어. 멈머야, 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 없다니까? 도망쳐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아, 으으, 시,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요. 잘못했어요. " "그렇지만 멈머야, 어쩔 수 없잖아. 너는 리로보다 약하잖니. 이제 뚝 그치자. 따거가 네가 우는 걸 알면 화를 내실 거야. 그건 싫지? 우리 멈머, 뚝 그치자." "잘못했어요.." 막다른 골목임에도 누군가 담을 넘어오듯 가볍게 높다란 곳에서 착지하며, 당신을 쉽게 지나치며 멈머와 마오를 향해 걸어갑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오셨네요?" "비명 소리가 원체 커야지. 상품에 흠집은 없고?" "없어요!" "다행이네. 그걸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동족의 목숨이 필요했는데." "당연히 알죠! 돈만 해도 얼마람? 아참! 그리고, 저 분이 도와주셨어요." "누구? 아. 아! 맙소사."
당신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는지 남성이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옵니다. 순간 당신은 경계합니다. 대단히 익숙하고 위험한 냄새가 납니다. 당신은 저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모를 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인자한 미소. 흰 머리카락은 물론이요, 화려한 장신구 일색에, 세로로 죽 찢어진 금색의 눈동자를 가진 그를 압니다. 다만, 당신이 활동하던 시기에 같이 활동하다 어느 날 불명예 퇴출로 그 삶을 마무리 한 히어로 용왕도, 미드나잇 파크에서 당신의 작은 여우를 에스코트하던 의문의 존재도 아닙니다.
"대단히 감사해요. 덕분에 상품을 제대로 경기에 내보낼 수 있게 됐군요." 이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딘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깊숙한 저 너머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 하나 뿐. 용왕도 그건 마찬가지인지 몇 번 가늠하다,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세크메트임을 알아차린 걸까요? 아니면? 용왕의 입에서 세크메트 소리도, 보호자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그가 손을 뻗습니다. 악수라도 하자는 양. "그것보다 우리, 구면이죠?"
기묘하고 거북한 느낌이 듭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마치, 도시의 이방인은 아직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알게 되어버린 것만 같은.. 익숙하고 포근한 냄새가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흐릅니다.
"다시 만나는 첫 단추를 잘못 꿰긴 했지만, 아주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렇지만 고개를 들면 밤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위에서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 저 너머로 휙 달아날 뿐입니다.
마치 단추를 잘못 꿴 듯이.
현 시간부로 용궁, '용왕'은 페로사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입니다. 해당 호의는 선택지에도 변동되지 않습니다.
"아니, 됐어 됐어... 선배 팔뚝심으로 1분 동안 셰이커를 흔들다간 팔이 빠질걸- 아니, 굳이 선배가 하게?" 페로사는 귀엣말을 했다. "보내버릴 거면 그냥 아무도 모르게 스피리터스를 좀 섞어버려." 하고 페로사는 어휴, 하는 한숨을 내쉬며 탄산수를 들이켰다. 그러다 수다스러운 엘리베이터 보이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붉은 마녀라..." 바빌론 시티에서 사는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인데, 왜인지 그 전에도 몇 번인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기시감에 페로사는 무심코 그 히어로의 활동명을 한 번 읊어보았다.
"미스 마오?" 페로사는 그렇게 떠보듯 모천향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세스는 아니겠다 싶었나 보다. "엘리시온에서 한 잔 마신 손님이 그날 밤에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돌면 곤란하니까요." 페로사는 씨익 웃었다. 코끝이 찌릿찌릿했다. "영구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질 만한 사안이 생기는 건 엘리시온에도 달가운 일이 아니고요." 손님 한 명이 후다닥 달려나간 출구를 보며, 페로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 내가 저 사람 목숨을 구해준 셈이라는 거, 저 사람은 영영 모르겠네요." 하며 그녀는 농짓거리를 한다. 누군가가 독살당하는 게 농담만큼이나 가볍게 오가는 광기의 도시의 바텐더다운 태도다.
그러나 당신도 나랑 같은 존재죠? 하고 입모양으로 건네어지는 말에, 그녀는 눈동자만을 모천향에게로 데룩 굴렸다. 그리고 나직이 으르렁댔다. "입 조심." 나직하되 사납고 광폭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행동하니, 나는 사람이야. 사납고 광폭했으되, 사람도 짐승도 되지 못한 이물이 읊조리는 보호기제에 가까운 비참한 변명이었다.
"당신, 카지노 딜러라며."
그 멍멍이라고 불린, 반은 사람이고 반은 용이 되다 만 기괴한 이무기의 형상을 한 그것이 덤벼오는 바로 그 순간 페로사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는 것으로 그것의 돌진을 피했다. 그것의 헛친 공격은 페로사의 옆구리 사이로 흘러나갔으나 온전히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바로 그 다음 순간 페로사의 팔과 몸통이 그것의 상반신을 콱 죄었던 탓이다. 그것을 옆구리로 콱 끼어 사로잡을 때, 문득 그만 뉴 에덴에서의 시절이 떠올라 페로사는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방금 사로잡은 그것을 모천향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여인에게 넘겨주는 과정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으나, 페로사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난동을 부리는 능력자를 연구원들과 보안요원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주는, 몸이 기억하는 대로의 움직임을 실행했을 뿐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에 묶여있던 페로사를 일깨운 건 또다른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당신은." 하는 말이 절로 나왔으나, 용왕이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페로사 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뭐였습니까?"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못한 말이 휘청거리며, 용왕의 손을 맞잡아 악수하는 페로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밤거리를 배회하던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엔리코는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서 날짜를 확인하고는, 눈동자만을 들어 철창을 열고 들어온 이를 쏘아보았다. 미간이 구겨졌다. 아직 보름까진 며칠 정도 남았는데.
"며칠 정도 갖고 노시다 드시는 건 어떤가 해서 말이지요." "...내가 고양이야?"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따거께서 보내시는 선물이 하나가 아니라서요." "...뭐야, 이건." "이제 엔리코 형제께서도 성인이시니까요. 술입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되는. 형제야말로 이런 향기로운 것의 진가를 가장 잘 알아볼 사람이라는 생각이셨나 봅니다. 안심하고 드실 수 있는지 아닌지는 형제께서 제일 잘 아시겠지요." "......어디서 가져온 거야?" "엘리시온의 믿을 만한 딜러에게서 사온 것입니다."
위에서도 잘문 마구 했으니까 >:3 페로사는.. 눈앞에서 아른대는 멈머 없어지고 나면 이번엔 새로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착잡해하겠네. '그래, 결국 발버둥쳐서 도착한 곳은 여기구나.' 하고... 그런데 또 이런 침체에 적절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어' 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거든요 이런 모먼트 존맛(??)
페로사: (만들어주긴 하는데, 에만이 삐진 것 같아서 묘하게 침울해져 있음) 페로사: ...여깄어. 주문하신 블러디 메리 나왔습니다.
>;3 도망치지 않는 로로 최고야.. 그 모먼트를 만들도록 노력하게써!!! >:3 김에만씨 로로랑 용왕이랑 꼭 접선하는 것 같아서 삐졌대. 왜 너 쟤 도와! 네가 여기에 발 담그면 안 되는데!인 에만의 생각이랑 네가 여기에 오려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왜 내 사람 뺏어가? 하는 걔의 생각이 한꺼번에 충돌한 것도 있구.
에만: (흘끔)(손에 쥔 잔 노려보기)(호록) 에만: ...(잔 내려놓음)(냅다 손 잡더니 뺨에 부빗) 에만: ..나아아아쁘진 않네...(입술 오물오물)
페로사: (손수건 꺼내서 눈가 콕콕 찍어서 닦아줌) 페로사: ...... 페로사: (에만 손 잡아서 자기 가슴팍에 올려둔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심박) 페로사: ...이건 네 거야. 세상 그 누가 가지려 한다고 해도 이건 네 거야. 내 눈이 잠깐 다른 곳을 보고 내 귀가 다른 곳을 향한다고 해도, 이건 널 위해서 뛰고 있는 거야. 페로사: (에만 손을 꼭 잡아다가 손등에 쪽) 그리고 이미 너랑은 벌써 손 많이 잡아봤는데. 기억 안 나지, 요녀석. (빤히)
>>>험악한 눈나 때문에 울어버리는 그런 클리셰<<< 페로사의 약점을 정확히 짚었군요 관광객이 잃어버린 아기 오디네이터한테 맡겨줬는데 아기가 내내 빽빽 울고 있었다는 그런 썰이
아무래도 이번에는 비가 주야장천 오는 장면이라 에만주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물어보려던 참인데, 컨디션이 안 좋다면 오늘은 잡담이나 실컷 해야겠다 >:3 오늘도 고생 많았어, 누워서 푹 쉬자... (나도 주말쯤엔 파김치가 돼있겠지.........)
에만: (입술 꾸욱) 에만: (잡힌 손 물끄러미)(눈 동글) 에만: ..진짜 내 거야..? ..안 뺏길 거야. 안 내줄래. 에만: (머뭇) ..기억 안 난다고 할래.. 더 잡아줄 거잖아.(시선 맞추고 눈 깜빡) 에만: ..그러니까, 기억 안 나.(당당)
아기 울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로 약점이었구나.. 괜찮아 로로야 에마니는 아직 안 울었어(?) 곧 울겠지(?)
;0; 몸뚱아리 하자처리 해줘.. 양치 다 했는데 토하게 하지 마시옵고 우우우..🥺 응응, 선레는 내가 쓸게. 오전 즈음에 올라올 거야.. 저번거에 살 붙이고 묘사 더 넣으면 되지롱!🤔 비가 오니 지하에서 '걔'가 올라와 도망친 쭉정이 물갈이에 나설 것 같은데 괜찮을까..🤔🤔 로로주도 고생 많았구 푹 쉬자..!(꼬옥) 주말에 바쁠까..;0;..(토닥토닥)
페로사: 응. 잊지 못하게 해줄게. 페로사: 오늘 밤 내내, 네가 어떻게 되든 꽉 잡고 절대 안 놔줄 테니까. 페로사: (버드키스 쪽) 네 안놔줍니다.. 바쁜 건 아니구요...... 에만주도 잘 아는 "그녀석"이야...... (먼산) 에만주도 별탈없이 지나갔으면.. (쓰담담)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써줘. (쫍) 응, 어린이날이네... 에만주는 그때 쉬어?
달달빌런 로로주..;0; 너무 좋아아.. 꽁냥꽁냥 요리 배우고 머뭇대다 첫 입은 먹여주고 싶다면서 자유로운 손으로 떠먹여주기..(히어로)(?) •0•!!!!!! 엘리베이터 보이의 피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려..!! 셀카 찰칵 찍고 약간 보정(?)도 하고 픽셀아트로 문지르고(?) 셀카 올리면서 #요리빌론그램 #럽빌론그램 #멋있어 같은 태그 다닥다닥 붙여대는 앨리스..
우우우 귀여워 ;0; 오래오래 봐주는 거야..;-;..(쓰다담)(토닥팡팡)(빗질샥샥)(턱긁긁)(꼬옥 안고 쿠션더미로 폴싹 누움) 왜 하루는 24시간밖에 안 될까..?🤔
그러니 얌전히 투항해라! 그렇다면.. 안아주겠다! >;3 로로 진짜 너무 귀엽다.. 방금 너무너무 귀여워서 공자님 뺨 치고 로로 보고 와야 한담서 졸았다 깨서 오는 길이야(?)
엘리베이터 보이: 인스타 답장도 해줬으면서ㅓㅓㅜㅜ(오열)
낭만적인 말이네, 하루가 모자라면 이틀, 사흘.. 그렇게 일년.. 정말 멋지고 좋은 말이야. 모자란 만큼 천천히 채워가자..!!(쪽) 크아악ㄱ 이제 진짜.. 자야지..🥺🥺 그래도 오늘 로로주랑 대화해서 정말 기뻤어. 로로주가 내게 온 건 정말 큰 행우닝라 생각해!! >:3
그러니까, 어제 하루도 고생 많았구 오늘도 힘내자. 많이 좋아해요!(꼬옥)(쪽) 푹 자고 좋은 꿈 꾸고 개운하게 일어나길 바라. 아침에 봐 >;3..!!!
바빌론 시티는 낙일이 하루의 본격적인 시작인 도시라고들 하지만, 해가 뜨는 순간 또한 찬란하기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그 찬란함이 숨을 죽일 때도 있다.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다. 바빌론의 여름은 빠르게 찾아와 늦게 떠난다. 늦게 떠나는 만큼 비가 오는 날도 잦다. 장마는 일 년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대기에 전기를 잔뜩 머금고 찾아올 때면, 여명이 다가올 적 사방을 섬세한 적황색으로 물들이고, 지평선에서 불타는 공처럼 떠오르는 태양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가 습기만 머금은 채 대지를 싸늘하게 식혀주는 얼마 없는 날이기도 하다.
에만은 그런 여름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장마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비단 에만 뿐만이 아닌 앨리스도, 하물며 이 도시를 떠돌던 윈터마저도 장마를 싫어한다. 비가 오는 날을 제일 싫어하는 것은 '걔'겠지만. 이번 장마는 길다고 했던가, '걔'가 어지간히 고생할 것이다. 윈터가 따뜻한 온기를 만끽하고 싸늘한 도시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공기가 눅눅해지기 시작했으니까. 하루 정도는 괜찮지만 이틀이 지나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하늘에 달린 일을 곤란하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두 방울씩 떨어지더니, 온 도시를 적셔버렸다. 굵고 무거운 빗방울이 바닥을 세차게 때리자 정신이 아득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버틸 사람이 많았다.
장마의 시작, 앨리스는 교환일기를 쓰는 것을 그만뒀다. 자신의 뭘 하는지도 모를 친구인 에만을 위해 일기를 쓰던 중, 펜이 거대한 지네가 됐기 때문이다. 펜을 침대 구석 어딘가로 집어던지고 높은 비명을 내지르며 베개 사이로 머리를 박았다. 용왕이 들어오자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약이 필요하다며 '그'는 어디로 갔냐 새된 비명을 질러대다 목덜미를 맞고 기절했다. 이틀차, 에만은 일을 처리하다 자신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일이 이미 시작된 뒤였고, 사람이 죽었다. 에만 때문이었다.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그'를 찾다 용왕이 도착하자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며 떨다 기절했다. 사흘 차, 윈터는 비를 맞고 온몸이 녹아내린다며 비명을 질렀다. 몸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처음 겪는 공포에 페로사를 찾아 울다 마오의 위로를 받으며 지하 투기장 내부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는 것으로 어찌어찌 버텼다. "마오, 약은 어딨어?"
문제는 오늘이다. 아무도 버틸 수 없는 하루가 되어버렸고, 누군가 울기 시작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세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차다. 꼭 옷장에 숨은 자신을 찾기 위해 벽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 조용히 있어야 할 텐데, 훌쩍이는 소리가 제법 컸다. 지하에서 울면 표적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도. 울음소리엔 배신감과 고통, 이루 설명하지 못할 설움이 어려있다.
미카엘이다.
비가 오면 사람이 죽고, 유약한 자신이 죽는다. 죽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다. 잘 안다, 달콤한 말로 현혹해 꾀어내고 안아주겠지. 다 괜찮다며 토닥일 것이다. 그리고 죽여버리겠지. 나는 취해있다 죽을 거야. 그때처럼! 그 사실이 괴로웠다.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욱신거린다. 아무도 받지 않고 싶은데, '그'는 어디에 있을까? 왜 다들 내게 이러는 걸까! 차라리 영영 사라져버리면 좋을 텐데. 한참을 울었다. 서럽던 울음이 잦아든다.
고개를 든 미카엘의 표정이 덤덤하다. 눈은 부었고, 주변이 짓물려 붉은 기가 어려있다. 미카엘은 상처를 많이 받았다. 에만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상처에서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고, 앨리스의 삶을 분리한 이유는 복수 말고도 일상을 살고 싶어서였다. 윈터는 갑자기 생겨난 인연 때문에 임시로 만든 역할이다. 그렇지만 그 셋 중 미카엘을 지키는 것은 아무도 없다. 아니, 단 하나 있다. 미카엘이 우는 이유를 알고, 미카엘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둔 가장 사나운 가시. '걔', 혹은 '그것'. 뒤집힌 이름이 기거하는 곳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는 표적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오늘은 용왕도, 마오도 없다. 용왕은 '일'이 있고, 마오는 오늘 투기장의 사회자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지하에서, 약해 보이면 아무리 그림자를 움직이는 손이라도 공격하려 드는 멍청이가 있다. 그 쭉정이들이 미카엘을 죽이기 전에 내가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역시 사람은 믿어서는 안 돼.."
미카엘에게 더 이상 온정을 줄 사람이 존재하면 안 되니까. 그것은 행동에 나섰다. 비가 오면 반드시 죽을 사람들이 고작 몇 시간 덜 살 뿐이다. 그게 그것의 행동 지론이다. 멍청이들이 살아봤자 고작 몇 시간 더 살 텐데, 차라리 몇 시간 고통받느니 일찍 보내주는 것이 낫지 않냐는 것이다. 지하의 도시 괴담 처럼 사람이 죽었다. 긴 궤적을 따라 쭉 그여 죽고, 물려 죽었으며, 두 동강이 난다. 남은 쭉정이를 추격하는 일은 쉽다. 보이면 일단 쭉정이 아니겠는가.
익숙한 골목에 도착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다녀간 골목이다. 이번엔 멈머도 없고, 용왕도, 마오도 없다. 당신도 없는 것 같다. 있는 것이라고는 작은 여우 한 마리와 도망치다 막다른 길에 머무른 토끼 한 마리다. 벌써 이 안에서 세 마리를 보냈다.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다는 양, 자신이 만든 붉은 웅덩이 사이에서 천사처럼 말갛게 웃었다.
"걱정 마. 무서웠지, 내가 널 구원하러 왔어."
사랑스러운 어조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어, 방금 전까지 죽어간 지하의 사람들이 있음을 목격했어도, 천사가 그 상황을 보다 못해 나선 것은 아닐까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혼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시끄러워." 그것이 침묵 속에서 선고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로지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도록, 인과율의 역전을 인간에게 강요하듯 그것이 속삭였다. "좀 조용히 해봐."
당신이 두 번은 방문하기 싫었을 골목에서, 선명한 냄새가 난다. 포근한 냄새와 피비린내. 공존해서는 안 될 조합과 비명소리.
에구구 그랬구나... 머리 예쁘게 됐음 좋겠다. (토닥) 답레는 천천히 줘, 늘 그렇지만, 좋아해요. 로로주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기분 좋은 일만 있음 좋겠어. 진부한 말일까? 그래도. 정말.. 음.. 로로주에게 많은 감사를 느끼고 있고 미안함도 느끼고 있어. 늘 함께해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다시금 말하지만 좋아해, 우리 로로주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으응..나 눈치 안 볼게요..(꼬옥) 나도 행복해. 그렇지만 눈치가 아니라, 정말 로로주가 행복해졌음 좋겠는걸. 어떻게 이런 행운 덩어리가 내게 왔을까? 나는 늘 행복하니까 걱정 말아요. 피곤하면 자러갈게, 로로주도 무리하지 말고.. 또.. 응. 역시 좋아해. 큰일이네, 이렇게 내가 취중진담을 하다니.(농담) 피곤하면 쉬어요, 답레는 늦게 줘도 돼.
하얗게 환하여 아무 것도 내어다보이지 않는 베란다.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더 익숙한 배치로 놓여 있는 사물들과 가구들. 그러나 바빌론 시티의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안락함과 안온함. 오후의 나른한 햇살에 가득 잠겨 있는, 바빌론 항구에 인접한 그녀의 세이프하우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거리낌없이 보낼 수 있게 된 나날들의 두번째 날. 페로사는 그렇게 말을 건넸다. 다리를 꼬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손에 쥔 커피잔을 들어 마신다. 향긋하다.
어쩌다가? 하고, 맑게 울리는 반문을 건네어오는 네 잔잔한 목소리가 느긋해서, 페로사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빙긋 웃음을 띄었다. "글쎄, 그냥 어느날 네가 거짓말이라도 됐던 것처럼 없어져 있었어." 하며 페로사는 바스락 하고 신문을 펼쳐들었다. 오늘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눈에 담아둘 내용은 없다. 어차피 에누마 사에서 쥐고 있는 언론사에서 나오는 어용언론 섹션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결같이 뻔하고 느긋하다. 몇 자 읽다 거기서 거기인 소리라 던져버리고 만다. 너에게 눈을 맞추기도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입가에 서린 웃음을 더 크게 키웠다. "개꿈이겠지, 뭐." 하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구나, 하고 바스스 웃는 웃음이 보인다. 웃음은 보이는데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페로사는 눈을 깜빡여보고, 부벼도 보았다.
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왜 그래? 페로사, 페로사.
"페로사."
눈을 떠 보면 흔들리고 있는 어깨. 선량하고 유순한 비취색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게 보인다. 첫째 동생인 다니엘레다. 정신을 차려보면 빳빳한 셔츠로 꽉 옭매인 흉곽 너머로 정장 바지가 입혀져 있는 자신의 하반신이 내려다보인다. 일인용 소파에 앉혀져 있는 다리는 꼰 채다. "앗." 페로사는 가물가물 다시 감기던 눈을 퍼떡 뜬다. 후다닥 손목 안쪽을 들여다보면,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는 휴식 시간 끝나기 3분 전임을 페로사에게 알려주고 있다. 페로사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묻어있는 잠기운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홰홰 저었다. 묶이지 않은 금발 머리카락은 조금 눅눅한 공기 사이로 평소보다도 덜 흔들린다. 제아무리 에어 컨디셔너가 공기 중의 습도를 인공적으로 조절해준다 한들, 자연이 직접 선사하는 건조한 공기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바빌론 시티의 본격적인 여름은 스콜과 함께 찾아온다. 페로사는 나직이, 못다한 잠꼬대를 하듯이 중얼거렸다.
"...이상한 꿈을 꿨어." 무슨 꿈인데? 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바텐더 업무 시작하시기 전에, 어디 다녀오셔야 될 데가 있어요." 쪽잠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는 것은 자신의 언니이자 몬테까를로 가의 장녀 되는 사람의 유서깊은 버릇이었기에, 다니엘레는 이 인간이 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걸 잊어버리는 꿈이었어."
페로사가 헛소리를 계속하자, 다니엘레는 하이볼 글라스에 탄산수 한 잔을 가득 담아서 페로사에게 내밀었다. 페로사는 멍한 눈으로 하이볼 글라스와 다니엘레를 멍하니 번갈아 바라본다. 그리곤 하하, 하고 무기력하게 웃어버리고 만다. 페로사는 꼬여있던 다리를 풀고는, 다니엘레가 건넨 잔을 받아들었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페로사는 자다 깬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다니엘레가 건네어준 탄산수 잔을 받아서 마신다. 입안이 따갑다. 라임향.
"빅토리아 데이먼에서 납품 준비가 완료됐대요." 단가가 높은 상품은 바백이나 직원을 시키지 않고 바텐더가 직접 가서 받아온다. 이번에는 페로사가 갈 차례였던가. "이 친구들 자꾸 납기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네." 달력을 힐끔 바라본 페로사의 말이었다. 다니엘레가 내미는 화이트 하우스 직원차량의 차키를 페로사는 힘없이 받아들었다. 묘하게 아직도 꿈에 잠겨 헤매는 것 같은 페로사의 모습에, 참다 못한 다니엘레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무슨 꿈이었길래 그래요?" 페로사는 잔을 마저 비운 뒤에, 툭 내려놓았다. "개꿈이겠지, 뭐." 하면서 페로사는 어깨를 으쓱한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졸음운전 하지 마시고." 다니엘레의 걱정스러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페로사는 잠을 깨기 위해 눈을 깜빡여보고, 부벼도 보았다.
...역시,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갔다올게."
"기억났다." 그녀가 무심코 흘린 혼잣말이었다. 달칵 하고 뭐가 부딪는 소리가 났으나,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고 빗소리 사이로 파묻혀버리고 만다. 두 블럭 너머가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일순간에 붉게 칠해진 골목은 빠르게 그 색을 잃어간다. 아니 모든 색이 씻겨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어깨에서부터 와이셔츠의 흰 색이 씻겨내려가고, 그녀의 정수리에서부터 찬란한 금색이 눅눅하게 씻겨버리고 만다. 붉은 피부마저도 창백하고 칙칙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개의치 않고, 페로사는 우산도 손에서 떨어뜨리고 몽유병 환자처럼 빗속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당신의 양 귀의 귓구멍을 부드럽게 꾹 눌러 막으려 했다. 당신이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니 어쩌면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은 기억은커녕 생전 겪어보지 못했을 그 거칠면서도 따뜻한 손끝으로, 두 귓구멍을, 부드럽게.
시체에서 씻겨나간 피가 도착하는 곳은 하수구다. 누군가의 숨이 바닥으로 꺼지고, 지하도 아닌 비참한 곳으로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 남아있는 쭉정이가 쉬는 숨도 거슬린다. 울고 있었으니 약자고,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한 멍청한 녀석이다. 막상 역으로 사냥을 시작하니 저렇게 떨리는 숨소리를 낸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역했다. 몰아간 것은 생각하지 않고 몰린 것만 생각한다. 위험이 될 테니 어서 끝내야겠다. 팔을 휘두르자 골목에서 비명소리가 울렸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고장 난 테이프처럼 몇 번의 끊어지는 단말마와 발버둥을 뒤로 조용해진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지만, 그것에겐 제법 쉬운 일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세차다. 가녀린 얼굴에 묻은 피도, 골목에 튄 단말마도 물감에 물을 타듯 점점 그 색을 잃고 투명해졌다. 카람빗에 묻은 피도 금세 씻겨나간다. 그런데 자신은 투명해지지 않는다. 빗줄기를 맞으면 맞을수록 창백해질 뿐이지,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차라리 나도 저렇게 물 탄 듯이 흐려지다, 영영 투명해지면 좋겠어. 그러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텐데.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과거, 미카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다. 새카만 옷을 입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얼굴을 손으로 덮어 가리고 울었다. 아무도 미카엘을 돕지 않았다. 천둥이 쳐도, 번개가 내리쳐도. 아니, 단 한 사람이 미카엘을 도왔다. 천둥이 칠 때 다 괜찮다며 귀를 막아주었다. 마치 지금처럼.
누군가 거칠면서도 따뜻한 손으로 귀를 덮어 가린다. 세상이 먹먹해지자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질문이 신체를 타고 선명하게 들렸지만 대답은 없다. 오늘의 일기, 윈터…(중략). 식사를 대접받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쉬었지. 얼마 없는 휴식에 미카엘도 좋아하는 눈치였어. 어쩌면…(후략). 교환일기에서 본 문장의 사람이 당신이구나. 당신도 달콤한 말로 현혹해 꾀어내고 안아주겠지. 다 괜찮다며 토닥일 것이고, 사람을 무르게 만들 테지. 그리고 어느 순간, 본색을 드러내 죽여버릴 것이다. 안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비록 쥐새끼 두 마리가 넘어간 것 같지만 자신은 아니다.
"저게 시끄럽게 굴어서."
손끝으로 가리킨 것은 시체다. 사람을 저것으로 부르는 것은 차치하고, 어딜 어떻게 베면 죽는지 정확하게 알았는지 상태가 깔끔하다. 그것이 눈을 들고 시선만 굴린다. 사랑스러움을 따라하지만 창백한 원반 같은 눈동자는 세로로 죽 찢어진 동공이 사냥감을 발견한 작은 맹수처럼 작고, 그 자체로 깊은 경계심에 가득 차 있다. 분명 겉껍질은 같은 사람인데, 모습만 같고 다른 사람 같다.
...또한 본인들이 물리적 오류를 일으키는 변칙성 존재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다른 능력자들이 이능력으로 발휘하는 변칙성에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염 능력자가 뿜어내는 화염에 불타지 않았고, 전격 능력자가 쏘아내는 전격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받았으며, 정신 간섭 능력에도 놀라운 저항력을 보였고, 괴력 능력자가 발휘하는 괴력도 늑대인간에게는 그 위력이 크게 감소되었다. 태양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광선 능력자가 뿜어내는 광선에도 일반적인 유기체가 그 광선에 노출되었을 때에 비해서 현저히 적은 영향을 받았다. 변신 능력자의 경우에도 냄새나 버릇 등등 누군가가 동일 인물임을 추리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완전히 지우고 변신을 한다 해도 알아채는 모습을 보였다...
"...너, 걔가 아니구나." 작은 맹수와 커다란 맹수의 시선이 엇갈린다. 문득 두통이 나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던 이미지가 다시 흐려진다. 그 눈매, 그 콧대, 그 향기, 그 입술, 그 심박. 그러나 그 몸을 입고 있는 이는 자신이 기억하던, 자신과 하루를 보낸 그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아이가 아니다. "담배 한 대 피러 나왔다가, 달갑잖은 냄새가 나서." 페로사는 그제서야 골목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여기, 아마 며칠 전의... 페로사는 미간을 폈다.
페로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럭저럭 비를 피할 만한 처마가 있었기에, 페로사는 그리로 당신을 이끌려 했다.
세상에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 많다. 가령 어머니의 손에서 피어나던 불꽃이나, 마오의 인간을 초월한 모습과도 같은 일. 미카엘도 예외는 아니다. 남의 껍질을 뒤집어쓸 수 있는 능력뿐만이 아니다. 미카엘에게는 역할이 있다.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그 정체성이 완벽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다중인격이라기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주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체성이 '한 사람'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로 비롯된 괴리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앨리스와 에만이 타인의 앞에서 똑같은 목소리와 말투로 같은 문장을 말해도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의심하면 되레 불쾌해진다. 미카엘은 그런 훌륭한 정체성을 가지고, n분의 1의 인생을 살아가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습을 스스로 구분한 것은 용왕을 이후로, 당신이 처음이다. 그것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앨리스가 찾았던 정보는 애석하게도 교환일기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신을 제법 신기한 눈치로 쳐다봤다. 그리고 "너." 라며 당신을 부르더니, 삽시간에 인상을 구겼다.
"네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라고 나를 부정하지 마."
그것이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불쾌감이다. 그것은 윈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미카엘의 육신을 공유하는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구겨진 인상은 금방 펴진다. 손잡이 끝부분의 링에 검지를 끼우고 빙빙 돌리던 카람빗을 금세 잡아채더니, 능숙하게 소맷단에 만들어놓은 공간에 숨긴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봐줄게, 어떤 사람인가 대화라도 해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너도 저거랑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하게 되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조잘거리며 다시금 시체를 가리킨다. 달갑잖은 냄새는 습한 날씨이니 제법 많이 났겠지. 비를 피할만한 처마로 이끌 적엔 잠시 손을 내치려 했다. 날 지금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런 야생성을 지닌 길고양이 같은 눈길로 당신을 쳐다보다, 처마로 향할 적에는 군말없이 따라갔다. 시체도, 비를 맞는 사람도 무시하는 게 이 도시 사람들인데, 바깥사람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는 건지. 표정이 영 달갑지는 않다. 비를 맞지 않자 달갑지 않은 표정이 한김 가신다. 팔짱을 끼며 당신을 노려보듯 올려다 본다.
"일단 대화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해둘게. 윈터를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아. 투기장에 가서 데려올 수는 있어도 내가 활동하기 전까지는 아편에 취해서 자고 있었으니까."
아니야 지금 페로사가 "왜, 부정당하기 싫으면 인사로 키스라도 해줄까?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었다는 정도로만 나를 알고 있는, 나와 초면인 너한테?" 하고 대놓고 빈정거리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달래야 할지... (얼감) 아니 이건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쳐도 그 뒤에 게.....
바이오그래피 특성상 그녀는 꽤 많은 능력자를 만나보았고, 꽤 많은 인물상을 만나보았다. 변신 능력을 갖고 있는 이도 있었고, 변신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보인 반응은 그들과도 사뭇 달랐다. 페로사는 문득 제각기의 인격이 깃든 여러 육체를 하나의 영혼이 통제하고 있는 군집영혼 능력자를 떠올렸다. 페로사의 눈에는 똑같은 사람 여러 명이 제각기 다른 분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늑대인간이 아닌 이들은 누가 그 군집에 속해있는지 잘 구분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당신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그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와 매우 유사했다. 육체가 하나일 뿐.
이번만큼은 봐줄게, 하는 말에 페로사는 입을 다물고 당신을 처마 아래로 데려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흉골 안에 자리는 하나뿐인데, 너는 하나이면서도 하나가 아니었다.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가득찬 습기는 흉골의 내부부터 서서히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문득 두통이 들어서, 페로사는 손을 들고 한쪽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그러나 당신은 도무지 한 번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당신이 이어서 꺼낸 말에, 페로사의 꾹 감은 눈이 치떠졌다. "뭐, 아편...?"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아편중독자의 인생이 망가지는 과정을 우연히 이 도시에 오기 전에도 두어 번 본 적을 있고, 이 도시에 와서는 아주 질리도록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얼굴 위로 또다른 당신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창백한, 그렇지만 말간 모습이 아니라,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걸 드러내는 것 또한 눈앞의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아할 테지. 타인의 삶의 방식에 함부로 간섭한다고. 당장 자신만 해도 보름 때마다 먹고 꽂아대는 약이 벌써───
집어치우라지. 페로사는 관자놀이에서 손을 뗐다. "잠깐만." 그리곤 주머니를 뒤적였다. 앞쪽 바지주머니 깊숙한 곳에 들어 있던 손수건은 용케도 젖지 않았다. 아니, 젖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모서리가 살짝 젖은 것뿐이고 전체적으로 아직 손수건의 기능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보였다. 페로사는 그것을 들고 당신의 비에 젖은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적어도 당신이 가만히 있는다면, 머리의 물기까지 어느 정도 덜어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이렇게 비에 쫄딱 젖어 있다면 그녀가 할 두 번째 행동일 테니까. 적어도 당신이 당신이라면 말이다.
누구도 미카엘이 역할을 나눈 이유를 모른다. 가장 측근인 용왕은 그 배경을 알고 있지만, 지하의 사람도, 지하 바깥의 사람도, 당신도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그것'이 답해줄 이유는 없었다.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졌으니 호감을 산다면 당신에게 고분고분 답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운이 나빠 하나의 기회를 잃었다. 다만 만회할 기회는 많다. 그것이 보여주는 모습은 경계심 가득한 야생의 고양이와 같다. 당신은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대화를 청했고, 당신은 현재 반강제적으로 대화에 응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시체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과 함께, 그것은 자신의 모습을 자신대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것을 윈터로 보고 다가가서는 안 된다.
"표정이 안 좋네. 유감스럽게도 난 나야.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
아무도 그것을 미카엘의 한 면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다른 객체로 인정해 보자. 두통이 들어 관자놀이를 누를 적에 그것은 빗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말을 툭 던지고는, 치뜬 눈에 의외라는 듯 물끄러미 당신을 쳐다본다. 당신의 모습이 진심인지, 아니면 허울 좋은 연기인지 가늠하는 듯싶다. "내가 설명해도 그쪽은 이해하지 못할걸." 당신의 반문에 덤덤하게 답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았다. 당신도 결국 달고 보드라운 면을 보고 찾아왔을 텐데, 보드라운 면을 파헤치면 썩었다는 걸 알 텐데. 실망할까? 그리고 당신도 떠나버릴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떠난다면 그것은 윈터와 에만에게 속삭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더 잔인해져야만 해. 나를 지킬 건 나밖에 없어. 만약 당신이 여기서 수긍하고 넘어가버리면 역시 그렇겠지 생각할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것은 표정을 구긴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다, 얼굴을 닦아주려 손을 뻗자 눈을 질끈 감는다. 반사적인 행동이다. 팔을 들고 머리를 가린다. 그리고 비에 젖은 얼굴을 닦아줄 적, 눈을 가늘게 뜨며 당신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본다. 얼굴을 닦는 정도는 누구나 해줄 수 있어. 팔을 내린다. 머리의 물기를 덜어줄 적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중략) 페로사, 그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수를 느꼈다. 흥미로 다가갔다가 큰코다쳤지. 내가 다시 온기를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이야.그 냉정한 에만마저 넘어간 이유가 있었구만. 걔보다 낫다. 아니, 걔였다면..
"나는.. 이렇게 해도 안 넘어가. 그 배신자들은 몰라도."
퉁명스럽지만,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 이상할만치 잽싼 자기방어를 뒤로하면 지금 당신에게 얌전히 머리를 맡겼으니까. 눈빛은 아직 사납지만. 윈터와 에만을 두고 그것은 '배신자'라고 표했다. 그것은 온정에 기겁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당신은 이 의문의 경계심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나는 로로가 지뢰를 밟는 것도 로로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비설 털이 특화캐...(?) 농담이야 0.<(앙큼) 그렇지만 로로가 매력적인건 농담이 아니지롱!! >:3
나는 수습하는 방법을 모두 알지만, 로로주는 내 뇌세포가 아니라 모르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지문에다 유도를 해봤어. 만약 어려운 점이 있거나 하면 언제든 질문해주고, 이건 아니야 싶으면 꼭 말해줘야해. 알겠지? 일상은 서로 즐겁게 돌리기 위해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니까.(꼬옥)(쓰담)
미카엘의 육신을 공유하는 같은 존재임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은 그 중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라고 별개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어쩌다 아편 같은 걸 입에 대었는지 물어보려고 해도 먼저 봉쇄당했다. 그러나... 내가 설명해도 그쪽은 이해하지 못할걸, 하는 당신의 단호한 일침에도 불구하고, 페로사는 눈을 가늘게 뜰 뿐이다.
"상관없어. 어떻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전혀 생각지 못한 면에서 발견한 한가득 썩어있는 부분을 보았으나, 그녀는 놀랐을지언정 질겁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표정을 다잡고는 손수건을 쥔 손을 당신에게로 뻗어올 뿐이었다. 마음이 썩은 건 많이 봤다. 자신의 마음이 썩은 것도 고쳐봤다. 원인을 알면 가능성이 크게 올라가지만 원인을 모른다고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다. 실패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네가 넘어가건 말건 알 바 아냐." 페로사는 딱 잘라 말했다. "외투가 있었으면 너한테 걸쳐줬을 거야. 네 머리에 흐르는 물을 다 닦으면 아까 팽개쳐둔 우산을 가지러 갈 생각이고. 점퍼를 차에 벗어둔 게 아쉽네." 온정이 두려운 당신에게는 가장 두려운 종류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고하기 그지없는 온정. 이런 것이 해가 된다면 물러서되, 이런 것으로 당신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면 전혀 개의치 않는 그런 것 말이다. 애석하게도 페로사는 그런 사람이었으니.
"여기서 기다려. 우산을 가져와야 되니까."
손잡이가 아래로 가게 떨어져 흡사 조그만 천막 같은 모양새가 된 우산이 저만치에 나뒹굴고 있었다. 페로사는 당신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쏟아지는 빗속을 전혀 개의치 않고 가로질러서는 우산을 쥐고 당신에게로 돌아왔다. 그녀와의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당신이 도망치려 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늘의 일기, ─. 오기가 들어 약을 끊어보려 했다. 잘 안된다. 서있는 것도 아프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다. 방은 엉망이다. 다 괜찮을 거야. 버티면 돼. 사실 안 괜찮다. 어항이 깨졌다. 키우던 물고기가 결국 죽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마지막 가족인데, 정작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묻어주려고 수습하는데, 닿는 곳 하나하나가 아프다. 분명 보드라운 비늘을 만지는데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만약 내가 약을 끊어도, 이 고통이 계속되면 어쩌지? 그리고 내가 약을 끊었다는 사실을 들키면 어쩌지?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나는 종이장이 될 거야. 부모님이 보고 싶다. 더는 버틸 수 없다. 전부 한통속이다. 속았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해놓고 버티지도 못한다. 나는 이 정도의 사람밖에 못 되나 보다…(후략) 그것은 한때 보았던 것을 떠올린다. 찢어진 일기장. 그 이후로 교환일기에서 볼 수 없게 된 모습. 단호하게 밀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얘기를 해도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직 그것은 대답할 이유가 없다.
"……거짓말. 친절한 척 전부 숨길 거면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씹어뱉지만, 당신의 초월적인 청각은 그 소리를 정확히 들었을 것이다. 그 안의 썩어버린 감정마저. 사람은 변한다. 주변은 반드시 변할 것이다. 본색을 숨기고 드러낼 것이다. 마오도 변할 것이고, 용왕도 언젠가 자신을 버릴 것이다. 비록 맹세까지 했다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득을 위해 언제든 내치겠지. 다만, 당신의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왔으니 안심하자. 이 앙칼진 야생의 것이 표현하는 방법이 이상할 뿐이다. 얼굴을 닦아줄 적에 보인 눈빛은 여전히 앙칼지다.
"이렇게 해서 네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넘어가든 말든 알 바는 아니라니. 끔찍하다. 싫다고 내쳐도 완고하게 밀어붙인다. 그렇지만 난 속지 않을 테야, 너도 결국엔 떠날 거야. 날 인정하지 않고 잘못 됐다면서 밀어내겠지. 이미 나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의존하고 있을 거고. 취해있다 나는 죽을 거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다, 기다리란 말에 세게 깨물고야 만다. 입술의 안쪽, 가장 보드라운 살을 짓씹자 비린 맛이 올라온다. 피가 난다. ..여기서 도망쳐버릴까? 그렇지만, 지금 도망치면 저 사람이 쫓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까? 당신이 빗속을 가로지를 적, 그것은 단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처마 밑으로 빗방울은 물줄기가 되어 뚝뚝 흐르더니, 뒤로 뻗은 발목을 적신다. 흠칫 놀라 결국 발을 앞으로 다시 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시금 비를 맞고 싶지는 않다. 이 몸뚱이를 가장 효율있게 쓰는 건 본인이지만, 오늘 추격은 길었으며 미카엘은 지쳤다. 더는 못 버틴다.
"…이상해."
당신이 우산을 가져올 적, 그것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눈길로 당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나 적어도 도망은 치지 않았다. 난 배신자처럼 넘어가서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냥 비가 맞기 싫을 뿐인 거야! 내가 온기에 닿아버리면 안돼!
"너,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진짜 이상해!"
대신 그것이 툴툴대는 것은 들을 수 있었겠다. 그나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다. 거기다 그쪽도 아닌 너. 당신의 윈터에게 대하듯 마냥 상냥하지만 않고 강단있는 온기는 제법 효과가 있던 것 같다.
들었으나 침묵했다. 나직이 흘러나온 그 말은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보다 감정이 입 밖으로 흘러넘친 것에 더 가까웠으며, 또한 그것에 페로사가 찔리는 바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것에 대답하려면 말이 구차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은 변하지 않으나 보름이 찾아오면 몸은 변한다. 전부 숨긴다는 말은 부당하나, 전부 내어놓을 수도 없다. 아편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비밀. 인간도 짐승도 되지 못하는 추물의 모습을 어떻게 감히 내어놓을 수 있을까... 이미 그것이 들켰다는 것도 모르고. 그녀의 청각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당신이 정부의 전산망에 접속하는 소리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밀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밀려날까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페로사는 이 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느니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편해져. 자기만족이라는 거지." 이해득실을 날카롭게 따지고 드는 당신에게, 페로사는 가장 근본적인 이해득실이자 인간의 가장 우선되는 행동동기를 내밀었다. 자기만족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악행도 선행도 악이라 선이라 할 수 없는 일반적인 행동도 결국에는 자기만족이 그 동기가 아니던가. 당신이 뒷걸음질을 치건 말건, 페로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옆에 다가붙었다. 당신의 머리 위로 까만 우산이 드리워진다.
"─'걔'가 너한테 안 알려주든?" 당신이 툴툴대는 소리를 듣자, 페로사의 얼굴에 씨익 그녀다운 쾌활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미친 여자라고." 그녀는 고갯짓을 했다. "가자. 손해배상 딱지 날아오기 전에. 아무리 뉴 고모라라고 해도 지상인 이상 자기 집이나 가게 근처에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걸 달갑게 여길 인간은 없어. 그리고, 비는 피해야지."
계획은 없었으나, 선택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당신이 어디론가 갈 데가 있거나 피난처가 있으면 그리로 데려다줄 생각이고, 갈 데도 피난처도 없다고 하면 이대로 화이트 나이트 호텔의 직원용 객실에 데려다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니엘레더러 캠 재머를 가져오라고 해야겠네- 하고 페로사는 생각했다.
# 미안합니다. >>599를 띄워놓고 답레를 쓰고 있었기에 어디가 바뀌었는지 다 알아.. 👀 오타가 나도 글이 너무 예쁜데 뭐.
그레이 존도 화이트 존도 블랙 존도 아닌 일반적인 등외지역(대표적으로 뉴 고모라, 바빌론 다운타운)에서 주민이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무장, 둘째는 사설경호원, 셋째는 에누마 사를 통한 손해배상 금융소송입니다. 바빌론 시티에만 존재하는 이 독특한 금융소송은 법원의 재판이 아닌 금융사의 심사를 통해 조정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자신에게 가해진 금전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 이외에도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범죄 등에 대해서도 매출 저하와 정신적 피해를 명목으로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빌론 시티 지역 거주자만이 가입할 수 있으며 바빌론 시티 거주자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에누마 금융사의 계좌 특약으로 보장되는 조항으로, 에누마 금융사가 등외지역의 치안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등급이 책정되지 않은 외부 지역의 치안을 관리하면서도 에누마 사에 소속된 인물들은 해당 사항에서 자유롭도록 설치해놓은 장치이기도 합니다. 심사는 (에누마 그룹에 소속된 인물의 증언을 최우선으로 하고 차선적으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를 동원하여 엄격하게 진행되기에, 자해공갈과 같은 제도를 역이용한 얕은 꼼수가 성공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물론 이 특약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최후의 수단으로, 생전 본 적도 없는 남남이면 모를까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의 상대에게 이 특약을 행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디스풋과 마찬가지로 그간 쌓아온 관계를 모조리 파탄내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해당 특약은 블랙 존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심사를 거부한다고 명기해놓고 있습니다. 블랙 존이 블랙 존으로 취급되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밀어낸다. 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수단을 쓴다. 손해배상 소송도 아니고, 사설 경호원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몸뚱이는 고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가장 날카로운 가시로 사람을 찌르고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영영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침묵은 가장 좋은 수단이다. 당신이 더 덧붙였다면 아마 또 가시를 세웠을 것이다. 네 말을 어떻게 믿어? 하고 툴툴대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선택적인 침묵은 큰 도움이 되었다.
"말도 안 돼."
자기만족을 위해서 남을 위하는 선행이라니, 이 도시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악행이라면 모를까! 이상한 사람. 당신을 그렇게 낙인찍은 것 같다. 그래도 '저기 있는 시체'와 동급은 면했다. 당신이 곁으로 다가설 적엔, 보이지 않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일어난 것 같다. 만약 그것이 고양이라고 치면 말이다. 분명 험악하게 입을 벌리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솜털을 세웠을 것이다. 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울 적, 그것의 눈동자가 그림자에 가려져 온전한 색을 발한다. 창백한 원반 같은 눈동자. 어둠 속에서도 특징적이고, 지나치게 개성적이다. 누구의 것인지 멀리서 보아도 확실히 알 테지.
"안 알려줬어."
대답은 뾰족하다. 그렇지만 가시는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아마 얘기해 주지 않은 다른 '걔'를 향한 것이겠다. 에만 녀석은 안 하던 사고를 치고, 윈터는 약에 취해 뻗었다. 말썽이라곤 피울 수 없는 철두철미한 녀석과, 말썽을 피우기엔 지나치게 보드라운 녀석인데, 이래서 비 오는 날이 싫다. 미친 여자라는 말에 그것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다. "빙글 돌아버린 미친 새끼는 싫고 미친 여자는 좋다 이거지." 빈정대는 모습도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듣자 하니 당신을 받아들이는데 자신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영 달갑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제법 강했으니까.
"저번에 여기서 비늘 달린 이상한 녀석이 난리 칠 때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당신을 흘끔 쳐다보던 그것은 더 말하지 않는다. 묻는다면 악의를 담아 답하겠지만. 시체가 널브러져 손해배상이 날아오든 말든 중요치는 않지만, 이 모습을 들키는 것은 제법 큰 문제가 있다. 안드라스가 얼굴을 봤다는 걸 용왕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 건데. '그 피난처'는 지금 못 들어가."
그것은 그래도 미카엘이며, 모든 역할이 공통적으로 쉬는 쉼터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피난처는 지금 들어갈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제어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럴 사람마저 없는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가 어떤 참사가 일어났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필 그때 통수를 쳐 에만의 눈이 돌아버리고, 조직 하나를 쓸어버린 일은 지하에서도 아주 유명하며 각 역할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어두운 곳은 싫어. 차가운 곳도 싫고, 습한 곳도 싫어."
여전히 미친 여자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다. 제법 자존심이 강한지 뭔가 얘기하려다가 꾹 참기를 반복하더니, 잠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금 입술을 꾹 다물더니, 시선을 피했다.
말도 안 돼, 하는 당신의 퉁명스러운 반응이 마치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하는 소리를 내는 고양잇과 야수 같았다. 우산 그늘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눈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았다. 상대가 그런 위협이 씨알도 안 먹히는 크고 나쁜 늑대인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면 직접 겪어봐야지." 당신의 뾰족한 대답에 대한 그녀의 웃음을 잃지 않은 반응이었다. 당신이 빈정거림 반 투덜거림 반의 소리를 내놓자, 페로사는 손을 들어 당신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왜인지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어디서도 집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 퍽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당신과도, 자신과도.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한 군데씩 고장났어." 하고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당신의 손을 잡으려 했다. 당신이 손을 잡건 말건, 당신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려 할 것이다.
"스위트룸까진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호텔이니 걱정 마." 당신의 걱정에 페로사는 대답했다. 건조하게 잘 관리되어 있는 화이트 나이트 호텔의 직원용 객실. 직원용이라고는 하지만 손님용과 다를 바 없이 관리되고 있는 곳이었다. 어두우면 불을 키면 되고, 차가우면 난방을 틀면 된다.
그녀를 따라가면 저만치에 빅토리아 앤 데이먼이라는 상표가 걸려 있는 허름한 유통사가 보인다. 허름함은 뉴 고모라에서 아주 쓸만한 위장이다. 우산을 접으며 가게 옆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이런저런 차들이 멈춰서 있다. 연식이 꽤 되어보이는 레트로한 SUV 한 대 옆에 신수 훤칠한 남자와 부하인 듯한 키가 조금 더 작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살가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페로사를 맞이했다.
"세뇨리따 몬테까를로, 말씀하신 대로 뒷좌석에 실어뒀습니다." 하던 남자는 페로사와, 아까는 없던 동행이 나란히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깜빡이더니 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건을." 부하는 잽싸게 가게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더니, 두 장의 수건을 가지고 돌아와서 페로사와 당신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려 했다. 그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페로사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다.
부하가 당신에게도 수건을 건네주려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것은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를 묵인해주는 것이었다. 당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겠다는 거부가 아니라, 사려 깊은 침묵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매너있게 납득해주는 행동이었다. 아마 당신이 이 사람은 누구냐고 먼저 물어보면 페로사가 그를 소개시켜 주거나 하지 않을까.
아무리 유순하다고 해도 제법 앙칼진 면이 있던 건지, 아니면 이게 진짜 모습인 건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눈으로 아무리 쏘아본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통하지는 않는 것 같다. 크고 거대한 맹수에게 작은 맹수의 하악질 정도야 아무것도 아닐 테니. 열심히 경계했는데 당신에게 통하지 않으니 기분이 다시금 나쁘다. 하물며 직접 겪어보라고? 눈썹의 각도가 다시금 삐죽해진다. 똑같이 앞에 미친이라는 접두어가 붙었으면서, 미친 사람이 거기서 거기지 않은가. 당신이 손을 들어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려 하자 그것은 잠깐 손을 쳐내려는 듯 팔을 중간까지 올리다, 손이 더 빠르니 괜히 당신만 팩 쏘아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질문은 뾰족하지만 대답은 없다. 온기가 와닿자 눈동자에 아주 잠시 스친 것은 혐오보다는 공포다. 공포가 스쳤음에도 소맷단의 칼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언급한 어딘가 한 군데씩 고장이 났다는 말 때문이겠다.
"…너도 고장 났어?"
소맷단 대신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미카엘도, 걔도, 윈터도.. 놀랍게도 이 모습으로 활동하는 역할은 전부 떠돌아다니는 존재다. 미카엘은 없는 존재고, 자신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정처 없이 떠돌며, 윈터는 도시의 유령과도 같다.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존재. 특히 이쪽은 부정되었기에 만들어진 역할이라 더욱 고장 났다면 고장 난 모습이겠지. 그렇다면, 당신도 이렇게 고장 났을까? 당신은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줄까? 당신이라면 날 내치지 않을까? 손을 잡으려 들자 조용히 손을 뒤로 무르려다, 손가락을 하나만 내어주기로 했다. 당신을 아주 조금이나마 믿어보겠다는 장족의 발전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맡긴 것은 아닌지 여전히 눈의 경계심은 가시지 않는다. 호텔이라는 말에 그것의 눈이 한 번 감겼다 뜨인다.
"호텔?"
되묻는 걸 보니 그 누구도 이 맹랑한 고양이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반항하지 않고 제법 얌전히 따라가는 편이다. 당신에겐 떼를 써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도 들었나 보다. 당신의 옆을 걷는 걸음이 느렸다가, 잠시 당신의 걸음에 맞추듯 박차를 가한다. 허름한 유통사가 호텔은 아닐 텐데. 물끄러미 고개를 올려 쳐다보던 그것은 눈을 감았다 뜬다. 갑작스러운 일이다. 조잘거리며 퉁명스럽던 그 작은 육체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지하주차장에서 인기척이 가까워지던 그 순간부터 그것은 점차 말이 없어지더니, 이내 입을 다물어버린다. 남성이 있든지 말든지, 살가운 영업용 미소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단 한 번 시선이 갔을 때, 당신의 뒤로 숨어버린다. 옷깃을 조심스레 잡고, 조그마한 손이 그 새하얀 셔츠에 옅은 주름을 남긴다.
"……."
수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파묻어 숨어버린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윈터와 비슷한 행동이었다. 친절한 남성은 그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저 사람도 약을 주며 다 괜찮아질 거라 말할지도 몰라. 배려는 나쁜 일이 아니라지만. 그것이 살짝 고개를 들어 당신을 한 번, 그리고 남성을 한 번 쳐다본다. "……누구야?" 조그맣게 물어보는 목소리는 기가 죽어있다. 눈도 동그랗게 뜨여있다. 거대한 개를 처음 본 주먹만 한 고양이처럼, 당신의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 아까와는 달리 제법 우습다.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정당하는 형태는 아니었으나, 대신 배척당하고 사냥당하는 형태였다. 늑대인간 부족과 정부의 협상이 결렬된 것은 그녀의 부모 세대보다도 조금 더 일찍 일어난 일이다. 한 세대를 지나오면서 이미 늑대인간은 정부 지정의 공식적인 히어로들의 사냥대상, '회색'의 일원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로잡혔다. 어릴 적에는 참 생각해보면 이사를 많이 다녔더랬다. 동네 친구들과 조금 안면을 트게 된다 싶으면 이사를 가게 되곤 했지. 그러다 어느 날 뉴 에덴이라는 곳에 사로잡혀 끌려가게 된 것이다. 늑대를 길들이는 교육소에서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고, 자라나서도 뉴 에덴의 간수로 혹사당했다. 뉴 에덴 붕괴 당시 어느 히어로의 손에 거두어져 히어로로 자라났으나, 그녀는 회색이었기에 제대로 등록된 히어로도 되지 못하고, 다크 히어로라는 온 사방에 적뿐인 회색의 삶을 강요당해야 했다. 바빌론 시티에서 회색이란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만, 그녀에게 회색은 다른 의미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바빌론 시티를 고른 것은, 몇 안 되는 도피처임도 있지만 아마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트로페아의 바닷가를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호텔? 하고 되묻는 말에 페로사는 당신을 곁눈질했다. 그러나 더 묻지 않고, 순순히 자기소개를 내어놓았다. "─내가 바텐더거든. 호텔에 딸린 바에서 일해. 엘리시온이라고 말하면 알려나? 몇 달 전에 발주 넣은 물건이 오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서 받으러 온 참이야." 아, 그럼 이 이상할 정도로 허름한 건물은 그녀가 말한 호텔이 아닌 모양이다.
지하주차장에서 데이먼이 페로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본 당신이, 부하가 수건을 내미는 손길에 페로사의 등 뒤로 쏙 숨어버리자 페로사는 조금 놀라면서도 자연스레 옆으로 반 걸음을 옮겨 당신이 몸을 더 잘 가릴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그리고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부하의 손에서 두 장의 수건을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프린치." 부하는 타올을 건네어주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데이먼의 옆으로 돌아가 시립해서 섰고, 페로사는 수건 한 장은 자기 팔에 걸치고는 다른 수건 한 장을 집어들려 했다. 그 때 톡 끼어든 게 당신의 목소리였다.
"아하." 데이먼은 당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예절바른 미소를 지었다. "이쪽은 데이먼 씨, 그 옆은 프린치 씨. 수완 좋은 거래상이야. 귀한 술을 구하려면 여기 의뢰하는 게 제일 빠르지. 데이먼 씨, 이쪽은──" 하다가, 페로사는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당신에게로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널 뭐라고 소개하면 될까?"
645페로사 - 에만 (쓰고 싶었던 내용 보충) ◆uoXMSkiklY
(EY9JkgquJY)
2022-05-06 (불탄다..!) 22:42:47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정당하는 형태는 아니었으나, 대신 배척당하고 사냥당하는 형태였다. 늑대인간 부족과 정부의 협상이 결렬된 것은 그녀의 부모 세대보다도 조금 더 일찍 일어난 일이다. 한 세대를 지나오면서 이미 늑대인간은 정부 지정의 공식적인 히어로들의 사냥대상, '회색'의 일원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로잡혔다. 어릴 적에는 참 생각해보면 이사를 많이 다녔더랬다. 동네 친구들과 조금 안면을 트게 된다 싶으면 이사를 가게 되곤 했지. 그러다 어느 날 뉴 에덴이라는 곳에 사로잡혀 끌려가게 된 것이다. 늑대를 길들이는 교육소에서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고, 자라나서도 뉴 에덴의 간수로 혹사당했다. 뉴 에덴 붕괴 당시 어느 히어로의 손에 거두어져 히어로로 자라났으나, 그녀는 회색이었기에 제대로 등록된 히어로도 되지 못하고, 다크 히어로라는 온 사방에 적뿐인 회색의 삶을 강요당해야 했다. 바빌론 시티에서 회색이란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만, 그녀에게 회색은 다른 의미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래, 단단히 고장난 삶이었다. 둘째는 운명이라고, 셋째는 병이라고, 막내는 저주라고 일컫는 그런 삶을 그녀는 살아오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고장이 났다면 어떤 형식일까. 당신의 삶은 이 작은 머리로 품기엔 한없이 크고, 서러우며, 감당하지 못할 메마른 감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아이는 당신이 배척되고 사냥 당했음을 알지 못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가령 비상한 머리를 지닌 앨리스와 에만이라든지, 아니면 그 모든 이야기를 듣는 미카엘 정도다. 스스로 단절하며 사는 그것이 삶을 이해하고자 세운 척도는 고작 자신의 역할이 주어진 계기뿐이다. 누군가의 삶이 고장 났다 표현하려면, 그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장 났다 얘기하는 타인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라 의심한다. 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보다 큰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고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렇게 피어난 의심은 망상이 되고, 망상은 약간의 신뢰가 된다. 당신에게 손가락을 내어준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있으니까.
곁눈질. 마주하는 시선은 경계심이 어려있으나 순진무구하다. 정말 몰랐다는 듯. 시간은 멈췄으니 타인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기를 읽으면 될 일이지만 오늘은 미카엘이 하도 서럽게 울어서 달래느라 읽지 못했다. 미카엘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면 그 무시무시한 녀석들이 다시금 손을 뻗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이상한 무리가 나타나서 사냥을 시작한 탓도 크다. 당신의 자기소개에 고개를 기울인다. 엘리시온, 들어본 적은 있다. 언제더라. 아마 그가 연회가 열린다고 귀띔해 주던 날이었던 것 같다. 벌써 그게 몇 년 전이다. 그래도 아는 것이니,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나 걸렸다는 말은 차치하고. 이 허름한 건물은 호텔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안도하면서.
숨어버린 것은 절대 두려워서가 아니다! 아아아안무서워. 그렇게 생각했다. 등 뒤로 숨어버리자 당신은 경계심 많은 고양이를 숨긴다. 자그마한 몸집은 금세 가려진다. 입술을 자근 깨물며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아까처럼 솜털이 서있을 것만 같다. 친절한 사람을 남녀 가리지 않고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도 나를 잡아먹으려 들까 싶다. 그러면 당신도 한통속일까? 의심하듯 누구냐고 조그맣게 물었을 적, 고개를 살짝 들었을 뿐인데 시선을 마주치자 다시 당신의 뒤로 쑥 숨어버린다.
영 익숙하지가 않다. 그것이 그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남성은 용왕 정도다. 그마저도 서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고, 이해득실이 그렇게 좋지 못하며, 탐탁지 않기 때문에 으르렁대며 싸우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데이먼이라 불리는 남성은 편하게 대하기엔 지나치게 낯설다. 예의 바른 사람은 싫다. 잘 웃는 사람도 싫다. 그런 사람들은 꼭 다가와서 다 괜찮을 거라면서 약을 건네준다. 이제 더는 아프지 않게 될 거라면서, 안심하라고 한다. 그렇게 점점 취해가고,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 자비였다고 표현하며 내칠 것이다. 의심하게 된다. 데이먼이라는 사람도, 프린치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면 어쩌나 싶었다. 그나마 당신의 의심하지 않는 표정을 보고 약간의 신뢰를 가졌을 뿐이다. 수틀리면 공격하고 도망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함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연구 자원으로 여겨지고, 인적 자원으로 취급되었다. 단 하나, 늑대인간이라는 이유뿐이다. 마치 태생부터 그렇게 살기를 강요받았다는 듯이. 천부의 저주라는 듯이. 이제 에만 혹은 윈터는 알고 있을 사실이다.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페로사는 에만 혹은 윈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손가락을 내어주고, 그걸 부드럽게 거머쥘 뿐이다. 아주 실낱같으나마 이 순간에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잠깐이나마, 아니 어느 정도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비록 그런 사람의 시간이나마, 페로사는 당신에게 나눠주기로 한 모양이다.
아까의 피에 젖은, 지금은 다 씻겨내려가버리고 시체는 아마 지나가던 장의사의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손길에 진작에 바빌론 시티의 그늘로 끌려들어가 먹어치워지고 잊혀져버렸을 그 붉은 조우에 대해서 페로사도 아까부터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던 자기소개와 비를 피하느라 여기까지 오는 바람에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미행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 이상한 교전이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나 걸렸다는데 페로사도 딱히 책망하는 기색이 없고, 데이먼도 딱히 페로사에게 뭔가 비굴한 기색이 없다. 아마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물건이겠지. 정히 궁금하면 페로사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딱히 당신에게 숨길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헤로인, 하는 해괴한 이름. 가명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는 이름이다만, 페로사의 얼굴이 아무리 그래도 그 이름은 좀 심했어, 하는 표정이 됐다. -어쨌든 그 이름으로 소개해달라 하니까, 뭐. "헤로인- 아는 친구인데, 이 빗길에 얘 혼자 덜렁 있길래." 페로사의 말에 데이먼은 구변좋은 미소를 띈다. 상대를 칭하는 이름은, 아무리 괴상하더라도 상대가 알려준 이름이면 족하다. 그것이 바빌론 시티의 영업인들의 매너니까. "그렇군요. 미스터... 미스.."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구변좋은 미소에 혼란이 섞인다. 데이먼은 페로사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으나, 페로사는 어깨만 으쓱했다. 이름은 어떻든 상관없는데, 당신을 미스터라 불러야 할지 미스라 불러야 할지가 헷갈린 모양이다. 2인칭 명사가 남녀로 구분되는 서구권 언어가 이럴 때는 참 곤란하다. "헤로인." 좀더 멋적어진, 그래서 그나마 좀더 인간미있는 영업용 미소를 지은 데이먼은 당신을 향한 인사를 어정쩡하게 마무리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도 됐다고 판단했는지, 페로사는 한 손에 집어든 타월을 당신의 얼굴로 갖다대어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크게 거부하지 않으면, 이내 얼굴을 슬슬 문질러 닦더니 머리를 쓱쓱 비비면서 쓰담쓰담이라기보다는 뽀담뽀담이라는 의태어가 더 적합할 모습으로 당신의 머리와 몸의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머리, 팔, 몸통과 다리까지...
난생 처음 목욕을 당한 새끼 고양이가 딱 이럴 것이다. 뽀담뽀담에 종잇장처럼 몸이 수건에 닿으면 닿는대로 흐물흐물 이끌려먼서도 눈빛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너 지금.. 날 닦고 있는 거야?'를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옳겠다. 뽀담뽀담 뽀송뽀송, 그리고 기어이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정전기가 올라오고 말았다.
당신과 데이먼. 둘은 꽤 좋은 비즈니스 관계인 것 같다. 발주를 넣은 물건이 몇 달이 지났는데 서로 간의 표정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표정이 나오려면 그만큼의 신뢰가 있거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 텐데. 창백한 원반 같은 눈동자가 당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그 배신자들처럼 당신에게 넘어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내리깐 눈동자가 어두워진다. '걔'라는 존재는 온정에 녹아 사라질 테니까. 그것의 이름은 헤로인이다.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미카엘이 일상을 살기 위해 이 도시에 맞는 광인의 역할을 뒤집어쓰고 지어낸 이름이 앨리스고, 도덕관념이 뒤집힌 지하에서는 에만이라는 이름을 썼으며, 윈터 본의 외형을 가진 떠돌이 유령을 윈터라고 지었듯이. 헤로인에 취해 처음 자신을 버렸던 날 지어진 이름이다. 그 이름은 심했다는 듯, 당신의 표정이 썩 좋지 않지만 그것은 개의치 않았다. 되레 눈길이 뾰족해진다. 내 이름에 불만이 있다면 네가 어련히 지어보시든지. 그런 표정을 적반하장으로 지어 보이는 것이다.
점잖은 미소. 저런 영업용 미소를 잘 안다. 수도 없이 본 얼굴이다.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뒤에서 눈을 흘끔 들어 데이먼을 쳐다본다. 아까는 눈도 못 마주치고 혼란스러워하더니만, 당신이 뒤로 숨도록 허락한 덕분인지 이것저것 마음속에서 정리를 끝마친 것 같다. 그렇지만, 눈동자에 서린 약간의 경계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데이먼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사슬에 얽매어있는 사람은 아무리 마음을 놓는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이 혼란스러움은 그것만이 아닌 데이먼에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미스터와 미스 사이의 혼란. 앨리스는 대외적인 성별이 정해져있지만, 미카엘은 딱히 성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에만도 모습이 늘 바뀌었고, 자신도 이렇다 할 것은 정하지 않았다. 윈터는.. 모르겠다. 당신은 알겠지만.
"..응."
보편적으로 2인칭으로 칭할 수 있는 수는 정해져있으나, 최근엔 이것저것 생기는 추세다. 그것은 자신의 앞에 Mx를 붙일 수 있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하고 경계심 어린 눈인 척.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는 걸 보니 혼란스러운 미소가 제법 재미났던 것 같다. 데이먼의 선택은 이름을 부르고 급히 마무리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어떤 인사를 해야 할지 그것은 잘 안다. 잘 부탁해요. 그렇지만 깊은 연을 만들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게끔 직접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한다.
당신의 거래로 인해 생겨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나,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 당신의 행동이다. 보드랍고 좋은 감촉의 수건이 뺨에 닿을 적엔 첫 만남에 귀를 막아주질 않나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질 않나.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체념한 듯싶더니, 얼굴을 문질러 닦기 시작할 적엔 점차 빳빳하게 굳는 것이다.
"에븝.."
얼굴을 닦을 적에 뭔가 얘기하려다 딱 막혀버린다. 에브브브. 난생처음 인간의 손에 주워지더니, 목욕을 당한 새끼 고양이가 딱 이럴 것이다. 뽀담뽀담 닦는 것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몸이 수건에 닿으면 닿는 대로 흐물흐물 이끌리면서도 눈빛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정확히는 경악과 충격으로 가득한 눈치다. 지금 날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대놓고 닦고 있는 거야? 네가 온기 주는 사람이다 그거야? 미쳤나? 를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옳겠다.
"혼자 할 수 있거든..!"
눈으로 한참을 욕하더니만, 당신이 수건을 떼자마자 기어이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동동 떠오른다. 물기가 닦였다고 정전기가 올라오고 만 것이다. 한결 보송보송해진 그것이 당신을 쏘아본다. 지금까지 경계하듯 털 세우는 고양이 같다고 여러 번 서술했으나, 그 상황이 실제가 됐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녀가 속한 바인 엘리시온과 빅토리아 앤 데이먼이 꽤 좋은 비즈니스 관계인 것이다. 당신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이름난 바가 거래처로 이 유통업자를 선택했다면, 아마 겉보기로는 허름해보이는 건물 안에 그만한 가치를 숨겨놓고 있겠지. 당신과 비즈니스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인 용왕이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기에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뉴 고모라와 다운타운 등지의 중산층들 사이에서는 건물의 아웃테리어를 일부러 오래되거나 낡은 모습으로 내버려두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위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생활풍조로 정착해 있었다. 이 빅토리아 앤 데이먼이라는 낡은 창고 같은 유통사도, 데이먼이라는 남자의 소개를 받아 들어가면 에스플레네이드 중심가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부티끄가 안에 차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윈터가 겪은 일이지만, 그녀의 편안하고 푸근한 집 역시도 물류지구의 창고들 사이에 숨어있지 않은가.
페로사는 당신의 뾰족한 눈길에 뭐 네가 그렇다면야, 하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데이먼이라는 남자가 Mx라는 2인칭 존칭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안다손 치더라도 당신이 Mr로 불리길 원하는지 Ms로 불리길 원하는지 Mx로 불리길 원하는지는 당신이 알려주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와 자주 만나볼 사이도 아니니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지 않겠나.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쳐로 충분하다. 그리고 일단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방금 생기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까지 비를 맞으셨나요?" "아하하하하, 우산이 바람에 날려갔지 뭐에요. 메리 포핀스처럼 휭 하고... 수건은 금방 쓰고 돌려드릴게요." 당신의 머리에 수건을 얹으며 페로사가 그들에게 너스레를 떨자, 데이먼은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얼굴에 걸었다. "하하하,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세뇨리타 몬테까를로. 다른 용무는 없으십니까?"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데이먼." "별말씀을요. 저희는 가게로 올라가보겠습니다. 별탈없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바빌론 시티다운 인삿말과 함께, 허름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두 남자는 페로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아까의 그 계단으로 총총히 멀어져갔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그녀와 달리 그들은 눈치가 빠른 모양이다.
당신의 몸에서 물기를 덜어내는 손길은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눈빛으로 욕설을 쏟아부어도 그녀의 푸른 눈은 흔들림이라곤 전혀 없이 뭐 어쩌라고 ^오^ 하는 기색이다. "할 수 있지만 안 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나서야, 그녀는 다른 수건을 집어들고 자기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허름함으로 본모습을 위장하는 것은 이 도시에서 제법 보편적인 방법이다. 물론 지하는 그럴 필요가 없이 원하면 뺏고, 뺏기엔 힘이 없을 것이라 도발하기 위해 화려한 것을 드러내곤 한다지만 모습마저 화려해, 대놓고 공격할 기회를 주는 사람은 드물다. 용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 용왕과 함께 하였으니 잘 와닿지 않겠지만, 막상 무엇보다 가까운 풍조였다. 헤로인 또한 유약하고 앳된 미카엘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으며, 에만은 여러 모습으로, 앨리스는 화려하게 생겼지만 골 빈 금발의 여인의 성격으로 타인의 방심을 사는 방법으로 본인을 훌륭하게 위장하고 있었으니까.
위장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도 헤로인, 그것이라 불리던 것은 오늘의 일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금껏 배워온 것이라고는 자신의 역할, 다른 역할과 달리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법, 지하에서 미카엘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 복수해야 할 대상, 사람을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유약한 척하는 방법 정도였다. 그렇지만 오늘 다른 것에 비해 유달리 부족한 사회생활에 대한 것을 당신의 등 너머로 배우게 됐다. 당신과 데이먼이 하는 대화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 거는 법도, 너스레를 떠는 법도, 용무가 없냐 되묻고 눈치껏 빠져주는 법과 흔한 인사를 고급 지게 포장하는 방법도. 다만 적용할 것이냐 묻는다면 이런 면은 에만이 도맡고 있으니 자신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당당하게 답할 사람이라는 것이 흠이었다. 언젠가 이 존재에게도 쓸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어볼 수밖에. 확실한 것은, 지금은 아닐 것이다. 당신을 노려보는 눈길에서 이미 불만 가득한 욕설을 품고 있었으니까.
"아까 그 사람들이 가면 하려고 했단 말이야!"
흔들림이 없는 눈길이다 못해, 당신의 눈길은 짐짓 얄미울 정도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쏘아보는 시선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 경계심보다 더 큰 감정이 눈에 크게 담긴다. 성가심과 투정이다. 혼자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 온기를 주려고 틈새를 파고든다. 정말 못된 사람이야! 이제 보는 사람도 없겠다 한 번 열심히 바둥거려봤지만 남는 것이라곤 보송보송한 몸과 정전기 때문에 방실방실 뜬 머리카락이다. 입술을 꾹 깨물고 다른 수건을 집어 머리를 닦는 당신을 쏘아본다. 그리고 팔을 쭉 뻗더니, 당신이 머리의 물기를 닦을 적 손을 휘적였다. 당신의 머리를 닦아 주려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다른 의도가 있겠다.
가령 당신의 머리를 파바박 흩어내려 했다든지. 당신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막지 않는다면 제법 유치한 복수겠다. 실패해도 유치한 행동임은 달라지지 않지만.
((나란 사람 이전에도 쿨하게 인정했던 사람)) 그러니 이제 에만도 귀엽고 예쁘다고 인정하시지 >:3 사실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내 눈에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보이겠지만... (에만주 무릎 위에서 몸 둥글게 말고 드러누움) (꼬리 흔들흔들) 응, 얼른 마무리하고 누워야지 +.+
당신 어! 자꾸 이러면 어! 나도 어마어마한 떡밥 들고 오는 수가 있어 어! (손패 없는 자의 서글픈 블러핑)
페로사가 하필이면 그런 사람인 것이 당신에게 참 안된 일이었다. 선의 안팎이 분명하지만 한번 자신의 선 안에 들어온 존재에게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자상하게 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자기만족을 갈구하는 것이다. 아마 당신도 어쩌다 보니 그 선 안으로 끌려들어온 모양이다. 어쩌면, 그저 당신이 자신의 선 가장 깊은 곳에 들어온 존재와 같은 육체를 공유하고 있을 뿐이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않고, 허름하게 감추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그 여인의 행동방식은 당신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그건 미안하게 됐네." 당신의 날카로운 눈빛은 그녀에게 이빨도 먹히지 않았지만, 타당한 반박까지 무시할 정도로 막귀는 아닌 모양이다. 만물이 갖고 있는 투쟁심에서 당신 또한 예외는 아닐 테니까. 더군다나, (그녀는 몰랐지만) 당신은 당신의 내면들 중에서도 특히 그런 투쟁심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도록 조율된 존재이니까. 얕보인다거나 하는 일이 질색일 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손길이 주춤하거나 멈추는 일은 없었고, 그녀는 결국 당신의 몸에서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물기를 덜어내고 나서야 수건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몸에 묻은 빗물들을 다른 타월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 이 망할 곱슬.." 하고 툴툴대면서.
당신의 팔이 자신에게로 뻗어올 때, 그녀는 막거나 피하거나 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응? 하는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녀가 당신을 자신의 마음 속 어디까지 들여놓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적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닦아주게?" 결과적으로 그녀의 말이 반은 맞긴 했다. 어찌되었건 당신의 움직임은 그녀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물론 그것은 그녀가 손도 못 쓰고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머리를 당신의 파바박에 내어줘버리고 말았다는 결과에 도달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당신에게도 악수였다. 빗소리에 묻혀 머리카락에 묶여 있던 샴푸 내음이며 시트러스 냄새가, 당신이 머리를 마구 부비는 손길 사이로 풀려나 당신의 손이며 코에 마구 묻었기 때문이다. 옅은 온기와 함께. "아니, 야!" 페로사의 얼굴이 >:( 모양이 됐다. 그렇잖아도 곱슬곱슬하고 숱 많아서 비 오는 날이면 신경써서 에센스를 바르는 머리카락인데, 꽁지머리가 거의 두 배는 되게 부풀어올랐다. "요녀석이."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 상황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푸흐흐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닦아줄 거면 얼른 닦고 가자고. 나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하이틴 AU에서 십대 페로사와 에만이 페로사네 엄청 큰 헛간에서 숨바꼭질하다가 대뜸 페로사가 에만 덮쳐서 밀짚더미 위에 나란히 넘어지고 서로 깔깔 웃으면서 밀짚더미에 누운 채로 머리에 묻은 지푸라기 떼주다가 페로사가 문득 에만 꼭 끌어안고 부비부비하는 장면이 생각나버림) (사람이 졸리면 이렇게댑니다,,,)
당신의 자상한 면이 싫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도 싫다. 그렇게 사람을 안심시켜도 나는 통하지 않는다. 당신도 이 도시에 속해있는 이상, 똑같은 존재일 뿐이다. 당신도 결국 날 버릴 것이다. 영원한 건 없고, 이 도시의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러니까. 그렇게 세상을 흑과 백으로 재단하며 결론짓는 것이 이 앙칼진 야생 동물이다. 무엇보다 당신은 이것이 아니라 그 애를 더 좋아할 테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아니라 윈터를 더 좋아하겠지. 그렇다면 더 싫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숨기지도 않고, 제멋대로 온정을 주고, 그게 당연한 듯 사니까.
"진짜 미안한 거 맞아?"
그것의 눈이 여전히 모난 이유도 그 때문이겠다. 투쟁심 가득하고, 아이처럼 대해진다는 것도 그 투쟁심에 불을 붙인다. 그것은 수건이 거두어지자마자 악의 담긴 계략을 떠올렸다. 당신의 머리를 보니 북슬북슬하게 만들면 딱일 것이다. 자신의 머리도 지금 방실방실 떠있는데, 당신이라고 그러지 않을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망할 곱슬이라 하였으니 이 못된 짓이 성공하면 제 나름의 무시무시한 복수지 않겠는가. 팔을 쭉 뻗을 때, 그것은 제법 이상하다고 느꼈다. 막는 기미도 없고, 싫은 기색도 없고. 당신은 얼마나 내게 경계심이 없는 걸까? 역시 이 몸 때문에 그런가.
"으응, 아주-"
복슬복슬하게! 끝 단어의 악센트가 높게 올라간다. 머리에 덮인 수건이 흘러내릴 정도로, 손으로 머리를 파바박 흩어내기 시작했다. 복수는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다. 내가 이겼지! 뿌듯한 표정도 잠시, 그것은 샴푸요 시트러스 내음이 손이요 코에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제법 낭패인 일이다. 역할을 마치면 윈터나 에만 중 하나가 역할을 대신 받아 갈 텐데, 당신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면 교환일기에 구구절절 따지고들 테니. 무엇보다 온기까지 닿았다. 이건 정말 좋지 않아. 속으로 낭패를 뇌까렸지만 속과 달리 맑은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장난을 친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아주 약간의 악의가 담긴 웃음이다. 복슬복슬 해진 당신의 모습을 봤으니 불가항력이지 않겠는가.
"으응- 그게, 할 수 있는데 혼자는 못 할 것 같아 보여서."
당신의 외침에 그것은 딴청을 피운다. 요 녀석이,라고 일갈해 봐도 그것은 약간의 악의 섞인 눈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운다. 당신마저 웃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제안은 제법 괜찮게 다가온 것 같다. 단순하게도 이 존재는 '내가 복수했으니 이제 이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기 싫으면 따뜻하게 굴지 않겠지! 비를 피할 때만 경계를 해도 될 테야.' 같이 생각했나 보다. 이것의 시간은 아주 오래전 멈춰, 그 순간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과 같다. 기분이 나쁘던 순간, 경계하던 순간, 우위에 있다 생각하던 순간. 시곗바늘은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지금은 제일 마지막 부분에 멈춰 섰다.
(정신을 차리니 로로주 꼭 끌어안고 있었음) 고르릉 골골골 로로주 너무 귀여워.. 쓰읍.. 분명 레스 쓴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이제 답레 확인해야지~의 답까지만 생각하고 그대로 뻗어버릴 줄이야..(침 닦음)(부스스) 몸뚱이.. 수면 징수가 과하다..!!
하이틴 AU 귀엽잖아 ㅠㅠㅠㅠ 너무 좋아.. 지푸라기 떼어주면서 서로 뭐가 재밌는지 또 키득대고 그러다가 꼭 끌어안고.. 10대면 펜이 바닥으로 떨어져도 그게 또 즐겁다고 웃을 시기니까 응응(끄덕) 진짜 귀여운 AU야... ;0;...(자고 있거나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로로주 뽀다담)
학창시절 가장 마음에 안 들던 애와 울며 겨자먹기로 오월동주의 심정으로 같이 협력하다가 결국 다시 관계 파탄나서 묶어놓고 두들겨패는데 그 뒤에 닥쳐올 인실奀이 두려워서 전혀 상쾌하지 않은 꿈이라던가... 죽어가는 사람이 꾸는 꿈의 전형적인 클리셰 범벅인 꿈이라던가......
응응, 천천히 주기야.(뽀담) 앗, 예전 어장에서도 말했던 건데. 담요로 몸 돌돌 둘러싸고 다이소 인형 베개 삼아 끌어안고 무리에서 조용한 것 같지만 힐링 토템이라 데리고 다니는 애.. 학교 밖에서 코노 조질때 제일 잘 놀고 엽떡 먹을 때 주먹밥 기깔나게 적셔주는 애...
아니, 그건 끝물이지만...... 현실 일이 좀 많이 뜻대로 안 돼서, 오늘 하루는 마냥 평소처럼 말갛게 있지는 못할 것 같아. 이해해줘서 고마워. 8.8 (에만주 발 베고 드러누움...) 텐션이 안 나와서 답레가 좀 오래 걸리거나 오늘은 못 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끝물이라니 다행이다.(도담) 일은 늘 뜻대로 안 되는 법이지. 사소한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게 사람 사는 거 아니겠어.😔 그래도 더 나은 쪽을 결정하고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게 우리니까, 너무 낙심하진 말자.(쓰담) 답레는 내일 줘도 돼. 어차피 우리 느긋하게 하기로 처음에 합의했고, 무리하면 쉽게 지치니까 오늘은 달달한 것도 먹으면서 편하게 쉬자.😊
"진짜긴 해." 페로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심각할 정도로 미안하진 않고." 그리고 웃는다. 아, 역시 마음에 안 든다. 당신은 그 댓가를 혹독하게(?) 징수했다. 부바바바박, 하고 토라진 고양이가 버릊는 손길처럼 페로사의 머리를 두 배는 부풀려버린다. 그렇지만 당신이 더 손해인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왜인지 손끝에 묻은 시트러스 향기가 그러셔? 하고 얄궂게 반문하는 것만 같다. "참 고오맙다, 요 녀석." 하면서 페로사는 자신의 등을 닦고 있는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당신의 머리로 손을 뻗어서 정전기 때문에 뻗친 당신의 며리를 살살 다듬어준다. -그녀는 당신의 시간이 멈추어있는 줄 모른다. 당신이 자신에게 투쟁심을 불태우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빗속에 혼자 버려져 있는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에. 그래서, 도저히 버려두거나 모른 체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찌 지나친단 말인가. 빗속에 외로이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오늘 밤 일하는 내내 떠오르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에 밟힐 텐데. 그러나, 말하지는 않는다. 예민한 당신에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자극일지 모르고, 페로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스콜이 쏟아지는 오늘 밤을 더 이상 이 도시의 그림자에 휘말리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보내는 것뿐이니까. 당신이 네가 뭘 아냐며 발칵 화내는 것이 아니라. ─첫만남이잖은가, 당신과는. 이번의 당신은 그런 것을 고려할 정도로 사려깊은 성격은 아닌 듯하고.
물기를 정리하는 게 끝나자, 페로사는 한켠에 주차돼 있던 연식 오래돼 보이는 레트로한 SUV로 향해서는 조수석 문을 당신에게 열어주었다. 뒷자리는 이런저런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상자며 궤짝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허름한 가게에서 납품받아오기에는 무언가 대단히 고급스러운 물건들 같다. 코끝에 흐릿하게 걸리는 오래된 차의 닳아빠진 방향제 냄새와 가죽 냄새 사이로, 나무 냄새와 향기로운 술 냄새가 걸린다. 그리고 시트러스와 데킬라의 냄새가 조금 더 분명히 느껴진다.
"그럼, 가자구." 당신이 지금까지 별 반감을 표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페로사는 SUV의 조수석 문을 닫아주고는 운전석으로 돌아와서 차에 타서는 시동을 걸 것이다. 딱히 뭐 볼 일도 없다고 했고, 갈 곳도 없다고 했으니 여기에 다른 볼일이 있냐고는 물어볼 필요 없겠다. 열쇠를 돌려서 시동을 거는 고색창연한 방식이다. 부르릉 하고 시동 걸리는 소리와 함께, SUV는 정차되어 있던 자리를 벗어나 슬로프를 타고 올라간다. 덕 덕 덕 덕 하고 와이퍼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들 것이다.
대체 심각할 정도로 미안하지 않은 건 뭘까? 그것은 당신의 발언이 또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난 눈을 한다.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자존심을 긁는 것도 그렇고,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어딘가 얄궂은 느낌의 시트러스 잔향도 그렇고. 차라리 다른 쭉정이처럼 공격해버릴까 생각했지만, 막상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기엔 당신이 선으로 줄을 타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더 얄밉다. 이 작은 맹수가 앞발을 휘두르기엔 당신은 선 밖으로 도망쳐있고, 거두면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불만을 당신의 등에 있는 물기를 계속 파바박 닦는 걸로 대신한다. 고양이가 실뭉치를 발견해 냅다 앞발로 때리다 뒹구는 것처럼, 손이 멈추지 않는다.
단 한 번, 머리를 다듬는 손길에 그것이 멈추더니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머리를 이렇게 만져주는 건 싫다. 윈터도 제법 온기를 좋아했고, 앨리스는 아무에게나 쓰다듬는 걸 허용하지만 미카엘은 더 이상 머리를 쓰다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서워한다. 미카엘의 기억 속에서 머리를 쓰다듬던 부드러운 손길은 이제 가시가 된다. 두피를 만져보면 피가 배어 나오고, 이내 시야도 새빨갛게 변할 것이다. 헤로인은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당신의 손길은 피를 부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당신을 신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직 이것이 당신을 받아들이기엔 넘어야 할 벽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SUV. 그것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잠깐 주변을 한 번, 당신을 한 번, 차 안을 한 번 쳐다보더니 조수석에 미심쩍은 듯 미적미적 올라탄다. 뒷자리를 흘끔 바라보자 이상한 것이 있다. 고급스러운 상자며 궤짝이다. 허름한 가게 같았는데, 생활 풍조에 맞춰 그 속내를 숨기고 있었거니 하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나무 냄새와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알코올 향이 나는 걸 보니 술인가 보다. 그리고 당신의 냄새인 것 같은 무언가도 코에 걸렸다. 거슬린다. 당신이 가자고 하는 말에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경계심 가득한 눈동자로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팩 돌려버린다. 안전벨트를 매는 걸 잊지 않았으니, 타겠다는 의사 표명이다.
당신이 운전석에 올라탈 적, 그것은 잠시 손을 모아 허벅지 위에 올리고 꼼지락댄다. 이제 춥거나 습하지도 않고, 어두운 곳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일하고 있다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작고 앙증맞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것에겐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가령 엘리시온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는 것이라든지. 화이트 나이트 호텔에서 열렸던 파티.
"……Ms. 몬테까를로."
핸드폰을 꺼내드는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아까 전의 호기로움도, 경계심도 없다. 당신을 부르는 호칭은 제법 익숙하다. 입을 다물고 담담한 얼굴로 입술을 벙긋거린다. 무언가 생각이라도 났는지 제법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어디로 가도 좋아. 그렇지만 이 모습이 남에게 보여선 안 돼."
잠시간의 침묵 뒤로 그것은 고개를 돌렸다. 비가 내리고, 와이퍼는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고요한 차의 적막 속에서 당신의 초월적인 청각은 다시금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었다.
에구.. 오늘은 오래 버텼네 <:3.. 먼저 들어가볼게. 로로주도 일찍 들어가자.(꼬옥)(도담) 오늘은 좋은 일만 가득할 거야. 어제 하루 기분 나빴던 것까지 모두 보상 받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나날 되길 바랄게. 로로주가 아프지 않았음 좋겠구, 한 주도 힘내자. 늘 고맙고 좋아해. 행복한 꿈 꾸길 바라!🥰🥰🥰!(쫍!)
"때라도 밀 생각이야?" 당신은 심술궂게 파바박 등을 밀고 있지만, 페로사에게는 깜찍하기 그지없는 심술 정도라 짓궂게 웃을 뿐이다. 젖어버린 면 와이셔츠 등짝에 보풀이 생긴 건 꿈에도 모르고...... 뭐, 들켜봐야 요녀석이 하는 소리와 함께 헤드락이 걸리기밖에 더 하겠냐만. 자신에게 벌어진 일도 모르고, 자신의 손길이 방금 당신의 어떤 선을 넘나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안에 둘 이상의 인격(그녀는 앨리스의 존재까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저, 빗속을 떠도는 당신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뿐이다. 그녀 역시도 방랑자였으니까. 달카닥 하고 차 문이 닫히고, 안전벨트 채워지는 소리와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는 소리, 기어 레버가 철컥철컥 돌아가는 소리. SUV는 슬로프를 올라 비가 내리는 뉴 고모라의 뒷골목으로 나선다. 세상의 풍경이 차창에 묻힌 빗방울들로 산산이 쪼개진다.
핸드폰을 꺼내들다가, 당신의 말에 페로사는 그것을 잠시 대시보드 위에 올려두고는 콘솔박스를 덜컥 열어서는 뭔가 하나를 당신에게 건네어준다. 와이셔츠에는 어울리지 않는 스냅백이다. 접혀 있느라 재봉선을 따라 접힌 흔적이 있긴 했지만 잘 펴서 머리에 쓰면 그럭저럭 쓸만할 것이다. 다만 머리에 꼭 맞게 쓰려면 끈을 좀 조절할 필요는 있겠다. 색깔이 씻겨 담담한 회색이 되어버린 차 안의 분위기가 고요하다. 페로사가 어디로 전화를 걸고, 수신 대기음이 들리는 순간마저.
"스피커폰 좀 킬게." 페로사는 핸드폰을 거치대에 올려두고 시선을 앞으로 둔 채로 말했다.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고, 이내 통화가 연결된다. -네, 언니.- 그녀에게 여동생이 있는 모양이다. "다니엘레, 지금 돌아가는 길인데... 괜찮으면 내 담배 한 갑만 갖다줄래?" 잠깐 침묵이 흐른다. -언니 사물함 열어보면 되는 거죠?- "어. 바에는 별일 없지?" -평소의 오후 타임이네요.-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별 내용 없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어, 곧 갈게." -빗길에 운전 조심하세요.- 달카닥, 하고 전화는 끊어진다. 비가 차창과 루프를 두들기고, 전화를 하느라 부산한 동안에도 그녀는 당신이 흘린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나는 늦어버린 사람... 88 응, 이것만 쓰고 들어갈 참이었어. 에만주가 같이 있어줬으니 그렇게 나쁜 날이 아니었는걸. 오늘도 에만주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거라 생각해. 에만주도 열이 빨리 내리거나 아니면 오늘 하루는 푹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또 한 주의 시작이네. 같이 힘내자. 나도 항상 좋아해. 에만주도 푹 자구 좋은 꿈 꿔 3.3
페로사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페로사 「....」 페로사 「그냥 혼잣말이야.」 페로사 「....」 페로사 「무언가 다른 얘기를 할까?」
언젠가는 행복한 일이 있지 않겠어요. 다만 저녁노을이 짙을 뿐입니다. #shindanmaker #당괜아 https://kr.shindanmaker.com/1120581
(몹시 뭔가 아련한 진단이 눈에 뜨여서 해봄...)
페로사,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왜 이제 말한거야』 # 일상에서, 에만이 아닌 단골 손님과 "거봐. 그럴 거 같더라." 페로사는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단골손님을 바라보며 으이구,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주먹만한 얼음 하나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예쁘게 보석 모양으로 깎아다 담고는, 위스키를 한 잔 따라서 건넸다.
# 일상에서, 에만에게, 일상적인 상황 "─나한테 말 안 한다고 내가 모를 것 같았냐." 페로사는 구급낭에서 해열용 쿨링 패드 한 장을 뜯어다가 당신의 이마에 착 붙여주었다. "아플 때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서러운데." 당신이 이불을 잘 덮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페로사는 소테한 닭고기를 찢어넣은 폴렌타 한 숟가락을 당신의 입가에 내밀어보았다. "몇 숟가락이라도 먹어둬."
# 에만에게, 감정적으로 첨예한 상황 "......" 절대로 바라지 않았던 시기, 절대로 바라지 않았던 장소, 절대로 바라지 않았던 방문객.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페로사의 눈에 인광이 흐릿하게 일렁이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널 너무 상냥하게 사랑해줬나 보다. 그렇지?"
행복해에에..;0;..(녹아버림) 오래 있어줘서 나도 고마워. 행복하다..🥰 정말 좋아해, 앞으로도 쭉 오래오래 지내자!
에만: 약속한 거야. 약속. 에만: (빤히) 에만: (품 안에서 부빗)(다시 빤히)(배시시) 에만: 오늘 밤이 너무 길어서, 이렇게 자도 모자랄 것 같은데..
직원실이 아닌 정도는 잘 안다. 204호는 그것에게 있어 제법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호텔에서 특히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카엘은 204호에서 아름다운 바깥 광경을 보고, 블라인드를 쳐냈다. 세상은 어두워진다. 햇살이 리넨 커튼을 뒤로 넘실대며 들어온다고 해도 마냥 어둡다. 그리고 그것이..
나름 복수한다 생각했는데 당신에겐 아닌가 보다. 젖어버린 와이셔츠에 보풀이 생겼다는 걸 알면 달라질까? 언젠가 남에게 알게 되겠지. 지금은 약이 오르지만, 나중에 이겼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그것은 당신에게 이런 장난 아닌 장난(그것은 비록 복수라고 칭하긴 했지만)을 칠 정도로, 그나마 덜 앙칼진 모습을 보였다. 차에 타지 않고 도망갈 수 있음에도, 당신의 차에 얌전히 오르는 것도 제법 신뢰를 샀다는 증거겠다.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고, 자신은 그 온정 따위에 절대 넘어가지 않겠지만. 일단 당신의 행동에서 악의를 발견하지 않았으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기본적인 상호 신뢰의 반열에 들었기 때문이다. 뉴 고모라의 뒷골목으로 나설 때, 그것은 조수석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차창에 묻은 빗방울에 이리저리 맺힌 도시를 눈에 담는다. 세상은 여러 개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다. 약에 취하면 미카엘이 살던 세상은 여섯 개가 넘었다. 아니, 일곱 개였나. 어느 세상은 미카엘을 품었고, 어느 세상은 미카엘을 내쳤다. 원하는 세상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은, 세상을 직접 만들고자 함이었다. 눈이 가라앉는다.
뭔가를 건네주자 얌전히 받는다. 스냅백이다. 당신의 와이셔츠와 매치를 해보려 무진 노력했으나 잘되지 않는다. 잘 펴서 쓰면 얼굴 정도는 가릴 수 있곘다. 내릴 때 쓰겠다는 듯 일단 무릎 위로 올린다. 그것은 고요한 차 안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의 전화까지 방해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은 아니니까. 다만 이상하다. 차라리 전화를 하고 말지, 왜 내용을 들려주는 건지.
그보다 여동생이 있나? 걔네는 알지도 못할 정보를 자신이 알았다. 알려주지 말아야겠다, 심술궂게 생각하고는 단란하고 일상적인 대화에 귀 기울인다.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카엘에게는 형제도, 자매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형제나 자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형제나 자매라고 부르기엔 피가 섞이지도 않았다. …오래전 일이다.
"……."
그것은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직원실이 아닌 정도는 잘 안다. 204호는 그것에게 있어 제법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호텔에서 특히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카엘은 204호에서 아름다운 바깥 광경을 봤다. 연회가 있던 날이다. 부산하고 시끄럽던 연회가 지나가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곧 체크아웃 할 시간이 다가왔다. 사람이 올 것이다. 미카엘은 블라인드를 쳐냈다. 세상은 어두워진다. 그날은 햇살이 찬란했는데, 우습게도 비가 왔다. 햇살이 리넨 커튼을 뒤로 넘실대며 들어온다고 해도 마냥 어두운 것 같았다. 미카엘은 넘실대는 어두운 햇살과 쏟아지는 비를 벗 삼아 잠들었다.
"거긴 여전히 햇살이 제일 잘 들어와?"
그것은 의뭉스러운 말을 던지고 턱을 괴고 조수석 창문 밖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의 자존심 때문이요, 정면에 있는 화이트 킹 빌딩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릎 위에 놓인 스냅백을 만지작대다, 그것은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다..(갸릉갸릉삑삑뽁삑)(부빗부빗) 우우..🥺 안 그래도 이참에 팩이나 하자.. 해서 차가운 팩도 붙여보고 있답니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으니 원.. 배달료를 감안하고 확 시켜버릴까 싶기도 한데.. -"- 응응, 아프지 않을게. 로로주도 아프지 말자.(쪽!)(볼부빗)
그 스냅백이 신원을 가릴 필요가 있을 때 커다란 점퍼와 함께 입는 거라면 당신이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핸드폰을 스피커폰 상태로 거치대 위에 올려놓고 통화를 하는 것은, 양손으로 운전을 하는- 그리고 옆자리에 사람을 태워본 일이 별로 없는, 옆자리에 누굴 태운다 치더라도 옆사람에게 내용을 숨길 필요가 있는 전화를 해본 적이 없는 페로사의 버릇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고. 화이트 하우스 앞에 도착하면 다니엘레가 담뱃갑 하나를 건네줄 것이다. 그 안에 조그만 핸즈프리 같은 것을 담아서.
사방이 밀폐되어 있는 차 안. 주변의 풍경은 차창에 맻힌 빗방울에 부스러지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전면 창의 와이퍼로 보이는 세상은 어째서일까 차 밖의 세상이라는 기능을 상실하고 그저 단순히 이 차량이 어디로 가면 되는지에 대한 이정표의 의미만을 남기고 모두 이 비에 씻겨내려가 버린 것 같았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이 창백한 세상 속에 던져져서는─ 문득 페로사의 머릿속에 아까 물어보려다 잊혀져버린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입을 떼려 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입을 떼는 것이 한 박자 빨랐다. 그리고 건네어져온, 이상한 질문.
문득 거긴 여전히 햇살이 잘 들어와? 하고 물어보는 당신의 옆모습에서, 페로사는 잠깐 뭔가 그리운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립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를 것 같은 그런 느낌. 마치 길을 지나가다 들은 노래인데 제목도 모르고 이젠 가사까지 잊혀져가지만 멜로디만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편린이 조금 보인 것 같아서. 페로사는 당신을 멍하니 곁눈질하다 지금 자신이 운전중임을 깨닫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다행히 마침 타이밍이 맞게 출발 신호가 들어와, 시선을 돌리고 있는 동안 별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페로사는 입을 열려고 했다. 204호에 묵어본 적이 없노라고. 그러나 입을 열어 대답을 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입을 닫고 말았다. 페로사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알았어." 하고 대답하고는 차를 몰아갔다. 질문은, 좀 있다 하면 되겠지. 핸들에서 한 손을 떼고, 손을 뻗어서는 라디오를 튼다. 음악방송 채널에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던 라디오에서는 때맞춰 고색창연하기 그지없는 전주가 흘러나온다. 마침, 페로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그녀는 무심결에 나직이 흥얼흥얼, 그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Why, who me, why? Feet don't fail me now Take me to your finish line Oh my heart it breaks every step that I take But I'm hoping that the gates, they'll tell me that you're mine Walking through the city streets Is it by mistake or design? I feel so alone on a Friday night Can you make it feel like home if I tell you you're mine? It's like I told you, honey Don't make me sad, don't make me cry Sometimes love is not enough and the road gets tough, I don't know why Keep making me laugh Let's go get high The road is long, we carry on Try to have fun in the meantime Come take a walk on the wild side Let me kiss you hard in the pouring rain You like your girls insane So choose your last words, this is the last time 'Cause you and I, we were born to die
어느샌가 건물들이 제법 으리으리해지기 시작했고, 뉴 고모라의 중심가가 가까워왔다. 저만치 멀리, 이 빗속에서도 커다란 게이트에 되어 있는 말 조각 장식이 하얗게 선명한 건물- 화이트 나이트 호텔이 보였다.
>>632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냐면...... 여기 혼자 있기 싫거든 엘리시온으로 내려와서 한잔 하라는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미리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페로사주가 바라는 추후전개가 어떤 방향인지 알려주고, 에만주가 원하는 방향이랑 조율해보고 싶어서 미리 말하기로.. 👀
(고르르릉고르릉)(부빗부빗부빗) 수업이 많은 만큼 성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수업에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잠에 들지 않는 일이에요. 피로가 쌓이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다수의 학생이 전공에서 잠들지는 않습니다. 내 수업은 잠을 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어려운 수업도 아닙니다.
잠에 들지만 않는다면 A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허억...!!! 수.. 순간 교수님의 영혼에 빙의됐어.. ;0;.. 우아아 잘 거면 같이 자야지이 >;3~
차 안은 조용하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이따금씩 귀를 후드득 간지럽힌다. 차 유리에 맺힌 빗방울은 세상을 하나하나 자그맣게 담고, 이따금씩 흘러내리며 부서진다. 개중엔 뒤집힌 세상도 있다. 그런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그저 목적지가 저기라는 이정표만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스쳐가는 길은 익숙할 텐데도 한없이 낯설고, 이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곳이 맞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전부 씻겨내려간 세상에서 그것은 처음으로 불평이 아닌 단어를 뱉었다. 그곳은 여전히 햇빛이 넘실거리는가. 나의 유일하던 마지막 안식처는 여전히 누군가를 품어줄 정도로 따스한가.
그마저도 이내 포기한다. 햇빛이 넘실거려도, 비가 내려도. 혹은 그 둘이 전부인 여우비가 내린다 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아무것도 없던 일로 돌릴 수도 없다. 애초에 그렇게 되는 상황이 정상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행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면, 미카엘이라는 존재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휘둘리고 자기 자신도 잃어버렸을 테다. 너무 많은 걸 겪고 알아버렸는데,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도시니까. 그 당시의 자신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세상은 야속해서, 막으려 해도 손끝의 모래처럼 바스스 흩어지게 놔둘 것이다. 잘 안다. 몇 번이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되뇌며 합리화했다. 오늘도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다만 아쉽고도 쓰라릴 뿐이다.
"질문은 들어가서 들어도 될까."
아마 그것은 알고 있었나 보다. 침묵이 이어진다. 그것은 어딘가 침울한 기색으로 창문 밖 애꿎은 물방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음악방송 채널에 맞춰진 주파수는 음악을 내보낸다. 비 오는 날 듣기 퍽 좋은 노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것은 그로부터 머지않은 순간이다. 당신이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이 순간을 언젠가 겪어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다만 이것은 헤로인의 기억이 아니다.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잔인한 영화. 헤로인은 거기서 자신이 조금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잘 부르네."
건물은 중심가의 위용에 걸맞은 모습을 갖췄다. 고개를 정면으로 하며 본 것은 말 조각 장식이다. 그것은 무릎 위에 놓인 스냅백을 꾹꾹 누르듯 펴서 접힌 선의 흔적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흐트러 놓더니 머리 위에 뒤집어쓴다. 백금발의 오묘한 머릿결이 새카만 스냅백에 온통 가려진다. 걸치고 있는 커다란 점퍼는 체구를 확실하게 가려준다. 그것이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그리고 검은 마스크를 찾아내고야 만다. 대체 누구의 것이냐 묻는다면 윈터가 사놓고 까먹어 방치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신원을 가리는 것엔 가히 구원에 가까운 수준이겠다.
"저기, 있잖아. 같이 내려줘."
뒷말이 없어도 들리는 것 같다. 혼자는 싫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은가 보다. 물어본다면 고개를 팩 돌리고 네가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바락바락 대들겠지만.
무너진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고, 속이고, 얼굴에 가면을 쓰는 능력자들은 많았지만 그들 중에서 인과를 취소하는 이는 있었을지언정 인과를 뒤집는- 적어도 당신의 것을 되찾는 데에 필요한 시점까지 인과를 뒤집는 이는 아직껏 없었다. 리와인더라 불리는 역행 능력자도 누군가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직후에 시간을 되돌리면, 거기에 남는 것은 이미 영혼이 떠나가버린 몸덩어리뿐만이 아니던가.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앞길로 떠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다. 잡아먹혀 버린 과거는 뇌리에 남아 사람을 잔인하게 괴롭힐 것이요, 그것이 없다고 해도 무언가를 새로이 찾아내거나 지어나가는 과정은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거나 고되기 그지없다. 이 잔인한 세상이 자신이 앗아간 것의 대체품을 그렇게 쉬이 허락해줄 리 없으니까. 당신도 잘 알지 않는가. 발버둥쳐도, 도망쳐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런 당신의 삶에 이 여자는 예기치 못한 예외변수로 끼어들었다. 따뜻한 손으로 눈사람을 거머쥐려 하면 녹을 뿐인데,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이 소녀같은 여인이, 당신과, 이 차 안에 단 둘이. 여름 소낙비는 속도 모르고 후두둑 쏟아질 뿐이다. 그녀는 당신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에 침묵이 감돈다. 그녀가 손을 뻗어서 라디오를 킨 것은 그 침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시도인 모양이다. 다만 당신이 잘 부르네, 하고 말을 건네자 페로사가 시선을 피하는 게 보인다. "잘 부르긴." 부끄럼타는 건가?
2절의 가사가 지나고 나면, 어느덧 SUV는 화이트 나이트 호텔 앞에 도착한다. 당신의 요청에, 페로사는 당신을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었어. -그 전에, 잠깐만."
저만치 멀리 운전석에 앉은 여인과 똑같은 머리색을 한 사람이 서있는 게 보인다.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알아볼 수 있다. 차이점이라곤 그녀와 달리 머리를 뒤통수 높은 곳에서 묶는 게 아니라 그냥 등으로 쏟아지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정도겠다. 페로사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더니 그 사람이 자신이 찾던 사람인 것마냥 차를 몰아 인도에 차를 붙였다. 조수석 창문 쪽으로 그 사람이 고개를 디밀어온다. 한때 순진무구하고 자상했을 법한,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낙담해 있는 비취색의 눈이 여기서도 보인다. 전체적 인상이 페로사보다 훨씬 유순하다는 것을 빼면, 페로사와 퍽 닮아있는 여인이었다. 페로사는 "잠깐만." 하더니 조수석- 당신이 앉은 자리 쪽으로 몸을 뻗으며 조수석 창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어요." 하는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NOSTALGA TROPIC이라는 상표가 난잡한 폰트로 인쇄된 담뱃갑을 손이 건네어주고, 페로사는 그것을 넘겨받았다. "고마워." "조심하세요." 뜻모를 인사를 남긴 그녀는 당신에게 눈짓으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더니, 호텔 정문으로 총총히 멀어져갔다.
페로사는 담뱃갑만을 받아들고 다시 조수석 창문을 올리고는 화이트 나이트 호텔의 직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까의 그 허름한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당신의 몸이 아니라 눈에 좀 더 익숙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는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슬로프가 눈앞에 보인다. 페로사는 한 손으로 담뱃갑을 툭 열었다. 그 담뱃갑 안에는 담배가 가득차 있지 않았다. 열댓 개비쯤 될까. "그 안에 보면 핸즈프리 같은 게 있을 텐데, 꺼내서 옷깃에 단 다음에 스위치 눌러."
그녀의 말을 따라 담뱃갑을 들여다보면 언뜻 보면 옷의 아일렛 장식 정도로 보고 지나칠 수 있을 만한, 옷에 부착할 수 있는 조그만 기계장치가 하나 있다. 톡 털면 굴러나온다. 에만의 지식이 당신에게도 공유된다면, 이것은 주변의 감시장치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종말 단계에서부터 이미지를 해킹해서 합성하여 감시카메라 기록에서 사용자의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재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담배 어쩌구저쩌구 했던 건 미리 이렇게 말을 맞춰두었던 걸까? 하긴, 여기를 들리는 VVIP들 중에 자신이 여기에 들렀다는 사실마저 숨기고 싶은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페로사는 주차장의 직원 구역에 차를 댔다. 다시 기어봉 움직이는 소리, 사이드 브레이크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동이 꺼지고, "이제 벨트 풀어도 돼." 하는 말과 함께 페로사는 벨트를 풀고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갔다. 운전석 문이 탁 닫히고, 정면 창으로 그녀가 조수석 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페로사는 조수석 문을 열고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답레쓰다 30분 정도 잠들었다... 3.3 에만주는 잠들었으려나? 나도 답레만 남겨놓고 자러 갈게. 에만주의 몸이 하루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네... 오늘도 저녁 같이 보내줘서 고마웠어. 푹 쉬고,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고. 좋은 꿈 꾸고 피로없이 푹 자길 빌어. 잘 자. (쫍)
돌아갈 수 없기에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세상이 남긴 상처는 낫지 않는다. 한 번 일어난 일은 어떻게든 되돌아오지 않는다.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은 청천벽력처럼 떨어지고, 남겨지게 된 사람은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상처가 곪고 썩어도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비참한 삶이 마침내 끝날 때까지. 잔인한 세상에서 빛을 찾는다 해도 그 썩어 문드러진 상처를 다시금 회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발버둥 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헤로인의 삶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된 미카엘의 삶에도, 하물며 그 앨리스의 삶에도 상처는 있다. 내색하지 않고, 혹은 가시를 완벽하게 드러내며 살 뿐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 온기를 주려 한다. 이미 나는 꽁꽁 얼어붙어서 더는 다가오면 안 되는데. 침묵과 함께 그것은 눈을 잠시 내리감는다.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는 여우비가 왔는데, 쏟아지는 비는 아주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묘한 날이었다. 후드득 쏟아지는 빗속에서 편하게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뜨니.. 그것은 눈을 떠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부끄러움이라도 타는지 시선을 피하고 있다. 어느덧 노래는 2절을 시작했고,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잠시 사그라든다. 다시금 기력 없이 눈을 감는다. 스냅백을 꾹 눌러쓰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며, 점퍼를 잠가 체구를 가린다. 호텔 앞에 도착할 적 잠시 차의 속도가 느려진다. 같이 내려달라 했는데, 지금이 내릴 순간은 아닌 것 같다.
눈을 가늘게 뜨자 한 사람이 보인다. 커다란 장우산을 썼지만 당신만치 키가 크다. 아까 전화를 했던 동생인 걸까? 머리카락은 등으로 쏟아지고, 조수석 창문 쪽으로 고개를 디밀자 마치 자신은 없는 사람이라는 양 몸을 차 등받이에 가까이 붙인다. 낙담한 비취색 눈이 창문 너머로 보인다. 당신과 비슷한 여인이고, 가족은 확실한 것 같다. 동생 쪽이 조금 더 유순한 것 같다. 그것은 스냅백의 캡 부분을 꾹 눌러쓴다. 당신이 이쪽으로 몸을 뻗는다.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는지 마스크 속 입을 꾹 다문다. 조수석 창문을 열자 당신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담뱃갑 하나를 손에 쥐여줄 뿐이다. 그게 다다. 뜻 모를 인사도, 자신을 향한 눈짓의 인사도. 그것은 눈을 굴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끝까지 침묵했다. 담뱃갑 하나 때문에 여동생을 이곳으로 부른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
직원 주차장으로 향할 적, 그것은 익숙함을 느낀다. 지하도 이렇게 스스로를 과시하며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짧은 감탄사를 뱉은 것은 그 이후 당신이 담뱃갑을 열어젖힐 적이다. 담뱃갑을 툭 열 적에, 그것은 가만히 당신을 쳐다보다 시선을 내린다. 담배는 가득 차 있지 않다. 담뱃갑을 받아들고 톡 털자 무언가 굴러 나온다. 옷깃에 단 다음에 스위치를 누르란 말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아까 그건 암구호 같은 느낌이었나. 지하에서도 흔한 일인데 왜 의심조차 못 했을까. 에만의 지식 선에서가 아닌 그것의 선에서도 잘 알고 있다. 이건 재머다. 우스운 일이다. 왜 세상 물정이라곤 단 하나도 모르던 미카엘에게서 돋아 나온 가시가 이런 것을 알고 있는 건지.
그것도 제법 머리를 잘 굴리는 편이었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에만의 머리에 비교 당하거나, 앨리스만큼의 잔머리가 없어 보일 뿐. 그것은 짧은 시간 머리를 굴린다. 이런 재머를 평소에 가지고 다닐 정도면 그만큼의 손님을 접대한다는 뜻이고, 그 손님 중에서 모습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정적이 많기 때문에 이곳에 올 수 없단 것인지. 이 도시에서 단순히 수줍다는 이유로 재머를 요청할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건수를 물렸다간 귀찮아질 일 투성이인 사람들이 주 고객이란 건가.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옷깃, 정확히는 아무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부분에 장치를 슬쩍 단다. 익숙한 모습이고, 어디에 숨겨야 눈썰미 좋을 사람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일지 아는 것 같다. 당신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릴 적, 그것은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본다. 벨트를 풀며 당신이 문을 열고 나가는 걸 본다. 조수석 문을 열고, 손을 내미는 것까지. 분명 몇 분 채 안 되기 전에는 당신의 손 하나마저 끔찍하게 여겼던 것 같은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것은 잠깐 머뭇대다 손을 쭉 뻗어 당신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폴짝 내렸다.
"…가자."
당신을 흘끔 올려다본다. 그리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그래도 넌 이상해도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네. 손바닥에 독이라도 발랐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매를 알아서 잘 버는 법이다.
불가사의한 하루다. 당신에게. 아니 요 근래 들어 불가사의한 일이 많다. 자신에게 불가사의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영향이 당신의 차갑게 소리없이 쌓여있는 만년설과도 같은 당신의 삶에 불가사의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발자국이 생겼고, 예기치 못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예기치 못하게 면했고, 더 이상 외롭다고 느끼지도 못할 공허함에 침잠되었어야 할 어느 날 저녁이 나른한 일상으로 변했다. 칼을 거머쥔 채 빗속에서 유령처럼 떠돌았어야 할 오늘도 예기치 못한 손길이 귀에 드리우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 처음 만나보는-과즉 틀린 말은 아니다-여자의 차에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러는 걸까. 손에 넣을 자격 같은 것은 없음을 알면서. 손에 넣는다손 쳐도 그것을 유지할 방법도 없을 텐데. 하나의 사실만으로 순식간에 깨어져 바스라져버리고, 자신에게는 결국 당신 모양의 흉터자국밖에 남지 않을 텐데. 그때 왜 나는 몸을 던져서 당신에게 날아드는 .308 탄환을 막은 걸까. 한때 등록되지 않은 몸이나마 히어로로서 활동했던 정의감일까? 분명 시작은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 걸까.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증오하고 있는데. 이젠 없었던 일로 하기엔 늦어버렸어. 슬로프로 천천히 올라가는 그녀의 얼굴에 어린 회색빛은, 그저 모든 빛이 씻겨내려가는 바빌론 시티의 거센 장맛비 때문일까.
그런데도 바보같이, 당신이 말을 건네어올 때면 그녀의 얼굴은 원래의 빛을 되찾곤 하는 것이었다. 붉은 편에 속하는 그녀의 피부, 그 푸른 눈동자, 물기를 머금은 금발까지. "손바닥에 독을 왜 발라." 그녀는 키들거리며 웃었다. "내가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곤 당신의 손을 끌고 프론트로 향하려 했다. 체크인부터 해야지 않겠는가. 혹시 204호에 장기투숙 계약을 맺어놨거나 한 거면 그녀에게 미리 말해두자.
불가사의하다 묻는다면 맞는 말이다. 불가사의한 일이 가득하다. 살아오던 삶에 격변이나 격동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거창하고, 그렇다고 변화가 아예 없다기엔 선명하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처음엔 우연으로 만났고, 흥미 때문에 다가갔던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크게 한 걸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시야에 아주 작은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잠깐 한눈을 팔고 보니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다가올수록 공허함은 따뜻하고 나른한 공기가 되며, 시트러스 내음과 데킬라 향을 머금는다.
이미 당신에게 매료된 윈터나 에만, 그리고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앨리스(그 사람 나보다 키 커? 잘생겼.. 뭐? 여자야? 뭐 어때, 예쁘고 잘생기고 나보다 키 크면 장땡이지. 낚아! 잡아! 당장 키스해! 갈겨! 망설이지 마!!! 라고 외쳤지만 그 발언은 무시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와 다르게 헤로인은 처음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제 와서 고하는 사실이지만, 처음에 당신을 만나면 무조건 칼을 내지르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당신이 이 정신을 해이하게 만들고 지금껏 잘 지켜온 가시를 굽히게 만들게 둘 수는 없었다. 지하에서 버티며 살아왔는데, 다시금 물렁물렁하게 변해서 배신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온정은 언젠가 식고 마는 것이니까. 그런데 당신이 귀를 막아버릴 적, 그 생각이 잠시 사라졌다. 어쩌면 헤로인도 에만과 같은 절차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흥미 혹은 짜증에서 시작해서, 당신이라는 존재가 어느덧 성큼 다가와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 말이다.
당신에게 회색빛이 어리는 것 같다. 당신에게 말을 걸었다. 매를 버는 것 같던 그 발언도, 당신의 색을 되찾아보고자 한 번 던져본 것일지도 모를 정도로 상황에 맞지 않았다. 바보 같다. 내가 왜 당신을 신경 쓰고 있는 건지. 나는 자신을 지켜야 해서 남에게 신경을 쓰거나 뭔가를 알려주면 안 되는데.
"많을 걸."
손바닥에 독을 왜 바르냐는 질문도 그렇고,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키들거리며 웃는 당신의 목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더니 물끄러미 쳐다본다. 제법 오래전부터 당신을 이렇게 쳐다보는 것 같다. 앙칼지고 날카롭게 노려보던 것도 질린 건지, 당신을 쳐다보는 시선은 여타 감정 없고 잔잔한 이 도시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텅 비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담기엔 흐려져버린 눈.
"이 호텔에서 죽은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닌다는 정보 자체가 큰 소득일 테니까."
가시를 세워도 소용이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가시를 내리고 알려줘서는 안 되는 것까지 말하게 된다. 운을 뗐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생각했다. 그것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미로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나를 원해! (원해!!!) 넌 내게 빠져 (빠져!!!!) 노래방 추임새 원탑곡이지..>:3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거 말고도 이상한 짤은 많지만(?) 그중 가장 찰떡인게 블랙 울프의 깔이라서..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일찍 들어가려 했는데 왜 3시지..?🥺 우우.. 곧 들어가려구. 병원 가야하는데.. 앞날이 캄캄하네. 안내문 보니까 자차 이동을 권하는데 운전하기엔 마땅치 않은 컨디션이야..🤦♀️ 몸은 막 죽겠다! 는 아니니 걱정 말아. 아직 정상이다!에는 모자라지만 이 정도면 코로나 치고는 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직 페로사는 자신이 꿈에서 다 깨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악몽의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깨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또다른 꿈 속으로 끌려온 것만 같다고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잠이 못다 깬 듯한 느낌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당신과, 차 속에서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앉아서 빗방울 사이로 흐릿하게 부서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이 호텔로 오는 순간, 그리고 지금 차에서 내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주차장을 가로지르기 위해 발을 떼어놓는 이 순간까지. 비가 한가득 쏟아지는 날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심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만큼의 수준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그녀 역시도 날씨에 영향을 퍽 받는 편이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었지, 하고 회상할 수 있는 씁쓸한 기억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이게 다 그렇잖아도 만월도 가까워오는데 찾지도 않은 비가 쓸데없이 꿉꿉하게 쏟아져서 그래, 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탈탈 털면서 자신을 재우쳤다.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자신을 물끄러미 주시하는 당신의 새하얗게까지 보이는 파르란 눈동자.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묘하게 흐려서는, 초점을 잃은 것같이. 너도, 나도 둘 다 갈 곳을 잃은 방랑자구나- 하고 페로사는 무심결에 생각했다.
"......"
당신의 가시 너머에서 솟아나온 말에 그녀는 당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당신의 말을 놓치지 않고 귀에 담았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당신을 붙잡고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추궁할 정신머리까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그런 것을 물어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백일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의 머리로 내린 판단이라기엔 지극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이유였다. 페로사는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가자고."
지하 주차장은 다행히도 그녀가 느낀 것만큼 영원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그녀는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도달했고, 곧 당신과 함께 호텔 로비로 향할 수 있었다. 환한 샹들리에 빛에 감싸여 바로크·로코코풍의 호화로운 양식에 휘감긴 새하얀 홀의 풍경은 시대착오적인 화려한 궁정마저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품격있게 꾸며진 홀에 걸맞게 번듯하게 차려입고 있는 이들과 저마다의 나 여행객이요, 하고 써붙인 캐주얼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호텔 가운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홀을 누비며 로비의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에스테틱 룸이나 바-엘리시온- 같은 부대시설로 향하는 이들도 없잖이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당신처럼 딱히 내 얼굴 내놓고 다니고 싶지 않소, 하듯이 마스크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도 당신의 옷차림이 여기의 드레스코드에 과하게 눈에 띌 정도로 어긋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림도 업따!!! (앙냥냥!!!) 응응. 이상하면 바로 병원 갈게!! 몸살도 낫고 무사히 지나갔다니 다행이야. 오늘은 금요일이고, 초저녁에 잠들어도 괜찮으니까.(꼬옥) 로로주가 행복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아 •0•~ (부빗) 답레는 일단 되는대로.. 써볼게.. 약을 먹었더니 머리가 많이 멍하네 으으 -"-...
미카엘은 어느 순간부터 이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락하던 이 도시는 끔찍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가 되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을 늘 동경해왔고, 아예 나가 살고 싶었다. 막연히 나가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지의 세계로 몸 담기 때문에 무서울 수도 있었을 텐데도 그리 생각했던 이유는 바깥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린 미카엘은 바깥에 나갈 기회가 많았고, 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가고 싶다는 갈망은 더욱 커졌으나, 미카엘은 나갈 수 없었다. 참혹한 세상에 갇혀 현실의 벽을 직면한 미카엘은 결국 스스로 삶을 끝내기를 선택했으나, 잔인하게도 신조차 죽음을 허락하지는 못했다.
미카엘은 이 도시가 안락하지 않다면 자신이 안락한 곳을 찾고 그에 맞춰 변하면 된다 결심했다. 그렇게 에만의 삶을 살아가게 됐고, 안락함을 찾는 것은 예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 여파로 새하얗다 생각이 들 정도로 파란 눈동자는 방향을 잃었다. 나침반의 바늘과 같은 동공은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니, 쓸모가 있었을까. 멍하니 자신을 향하는 눈동자를 마주했으니까. 방향을 아예 잡지 못했다면 당신도 향하지 못했을 테다.
"응."
헤로인은 한 번 받은 상처로 만들어진 존재라 사람을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숱하게 설명했고, 표현했고, 말해온 바다. 그 누구도 이 가시를 꺾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당신이 추궁하지 않는 것에서 결국 이것은 무너진 것 같다. 아마 네가 계속 있어준다면 나는 사라져도 될 거야. 미카엘을 네가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곤 손을 꼭 잡자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움직이는 손가락이 꼭 윈터가 당신의 손을 잡으면 하는 행동 같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향하자 익숙한 전경이 눈에 담긴다. 사람들은 여전하다. 호텔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 여행객임이 확실한 옷차림,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과 같은 부류. 당신의 손을 잡고 머뭇거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데스크에 있는 직원의 앞이다. 그것은 잠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더니, 당신의 웃는 얼굴을 흘끔 쳐다본다. 직원은 당신을 한 번 보고 농담 섞인 핀잔을 줬다.
"정말이지, 페로사. 객실 정보는 가장 큰 보안이라고 말했죠? 반갑습니다, 손님. 어느 정도 묵다 가실 건가요?" "하루." "여기에 인적 사항 적어주시고, 디피짓은 현금으로 하시겠어요, 카드로 하시겠어요?" "…카드로."
그것은 느릿하게 주머니를 뒤져 제 몫의 카드를 꺼내고, 인적 사항을 느릿느릿 적었다. 모난 성격과 달리 또박또박한 글씨가 제법 귀엽다.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도달한 곳은 여기였다. 뉴 에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늑대인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범죄였다. 지금은 없어진 도시 뉴 에덴. 그곳에 거주했다는 것 자체가 기밀로 분류되 연방 특별법률에 의해 사형 혹은 무기징역에 준하는 중범죄로 취급된다. 현상금 사냥꾼들과 히어로들의 타겟에 올라있었고, 정부의 늑대사냥꾼들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가면을 벗고 페로사 몬테까를로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곳은 몇 군데 없었고, 그녀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바빌론 시티뿐이었다. 다만 이 도시는 또 다른 대가를 요구했다. 노예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 연합국 내부에 위치한 또 하나의 에누마 그룹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정부라고 해도 쉽게 손을 뻗치지 못했으나, 정부의 눈길을 피해 그늘에 숨는 데에는 그만한 댓가가 필요했다. 이 도시에 숨어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댓가를 치르고 있었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당신과 그녀는 이 도시에서 만나게 되었을- 그래, 그 얄궂은 운명이라 해도 되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 만남의 형태가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면 다를까. 생각해보면 그날 당신을 노렸을 그 저격수의 무덤에 꽃다발 하나 정도는 놔줘도 되지 않을까? 윈터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한 손길에 페로사는 힐끔 자신의 손을 거머쥔 조그만 손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물론 거기에 있는 것은 윈터가 아니라 당신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페로사는 윈터가 자신의 손을 그렇게 쥘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손 역시 꼭 맞잡아주었다. 자신의 손을 이렇게 잡아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고 해도 이렇게 잡아줄 것이다. 당신에게도 예외는 없다.
"조심할게요." 하고 직원의 웃음서린 핀잔에 평소의 그 느긋한 웃음으로 대답한 페로사는 체크인을 마치고 다시금 자신의 손을 쥐어오는 당신과 눈을 마주쳤다. 두 번째라고 다를 것도 없다. ─당신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기대고자 한다면, 자신은 할 수 있는 만큼 당신의 모든 것을 끌어안아줄 생각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도 그래." 페로사는 조금 씁쓸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당신의 손을 잡고 객실로 향했다. 한번 귀를 기울여보았으나, 지금까지는 딱히 문제될 만한 사항이 감지되지는 않는다.
회복하려 노력중이니 로로주도 건강했음 좋겠구 확진은 절대 안 됐으면 좋겠고...(먼산) 진짜 안 됐음 좋겠어.. 이 고통을 로로주까지 겪게 할 수는 없지..😔 격리 해제까지 3일 남았는데, 해제 전까지 호전될 수나 있으려나...(흐려짐)
약을 먹어서.. 약기운이 다시금 올라오고 있긴 해..👀 아마 답레 쓰다가 잠들 것 같아서(플래그: 10분 내로 기절잠) 미리 인사할게..😂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주말이니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도 조심하고, 같이 있어줘서 기뻐. 늘 로로주가 좋은 꿈꾸고 개운하게 일어나기를,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고 있어.🥰 좋아해, 푹 자고 아침에 보자!😉
내 최근 생활패턴이 상당한 폐쇄성이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빨리 호전되기를 바라... 응,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주말 동안 푹 쉬고 주말 내로 호전되기를 바라. 에만주도 무리하지 말고, 푹 쉬고. 나야말로 에만주랑 같이 있는 시간이 기쁜걸. 자고 일어날 땐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으면 좋겠네. 나도 좋아해. 잘 자. 자고 일어나서 보자.
도시에 살고 있는 이상,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징수당하는 삶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이런 인연이 있었으니까. 한 번 마주치면 우연이고, 두 번 마주치면 인연이자 필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 마주하게 된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무려 그 헤로인이 시답잖은 우스갯소리를 믿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얄궂고도 잔인한 운명을 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볼 때면, 그것은 여전히 덤덤한 눈길로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앙칼지고 모난 눈은 잠시 넣어두고 잔잔하게 쳐다보고 있지만, 윈터나 에만의 잔잔함과는 다르다. 윈터의 눈이 정서적인 안정을 찾았기에 잔잔한 물결처럼 보인다면, 그것의 눈은 언제라도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의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당신은 그런 자신을 붙들어주었다. 잠시 인적 사항을 적기 위해 손을 놓았을 때, 못내 아쉬운 듯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릿하다.
"…왜 그래?"
체크인을 마쳤을 무렵, 그것은 당신의 손을 잡아온다. 씁쓸한 눈웃음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는 당신과 함께 객실로 향했다. 아무런 위험도, 위협도 없는 것 같다. 위협이 있었더라면 당신의 예민한 귀가 반응했겠지만, 그것의 만만찮은 감도 움직였을 테니까. 그것은 유달리 감이 좋았고, 특히 생명에 직결되는 감은 여타 능력자를 방불케 했다. 보통 감이 아니었다. 그 용왕에 비견될 만큼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것은 살아남고자 했다. 겪은 것이 있었다. 히어로의 일면을 알았고, 이용당했으며, 두 번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객실 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현관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본다. 안락한 객실이다. 한때 햇살이 쏟아졌을 것이고, 지금은 거센 빗소리마저 은은하게 소리를 즐여버린다. 편안함만 주는 객실. 처음엔 벽면과 거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손을 잡고, 없는 짐을 내려두는 공간을 지나친다. 드러난 객실의 전경은 고급졌다. 커다란 창문을 도톰한 커튼으로 가리고, 바닥은 보드라운 카펫이 깔려있다. 한눈에 봐도 안락해 보이며 깔끔한 침대는 새하얗고, 주름 하나 없었다. 커다란 침대에 눕는다면 정면으로 커다란 tv가 있다. 그 밑으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테이블이 보인다. 손바닥만 한 잭다니엘과 봄베이 사파이어, 보드카와 와인을 비롯한 주류가 한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소파 앞엔 티 테이블이 있었다. 아마 곧 호텔리어 하나가 웰컴 티를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이 방의 구조처럼 그대로라면 향긋한 얼그레이를 내오겠지. 그것은 당신의 손을 꾹 붙들어 잡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그것처럼 이 장소마저 멈춰버린 듯싶었다.
"그대로네."
그게 마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거짓이고 한순간의 백일몽인 것 같았다. 사실 약에 취해, 죽기 전 보는 마지막 순간인 것 같아서. 그것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비가 오는 소리가 여실하다. 당신을 올려다보기가 두려운지, 한참을 그대로 서있는다.
그렇지, 아팠다가 복귀하는 걸..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이미 7일간 생활 패턴.. 개 같이 멸망..👀👀 2시간 수면으로도 살아왔는데 며칠 조금 더 그렇게 산다고 죽겠어..? 로로주도 같이 있어주니까 힘내야지! >;3 지금은 잠이 좀 깨서, 머리가 그나마 맑은 것 같아..😇 저녁에 또 약에 취해서 머리가 흐려지겠지만..🙄
사라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사라지기 직전의 사람이 하고 있는 그런 눈. 페로사는 그런 눈을 서글프게도 잘 안다. 몇 번이나 봐왔다. 나는 이제 그런 눈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너는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당신의 손을 두 번째로 맞잡는 손길은 기분 탓일까, 당신의 손끝에 조금 더 간절하게 와닿는 것이 되었다. 그녀 스스로는 사라질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여기는 바빌론 시티고, 그녀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이었다. 언제고 당신의 삶에서 자신의 의도에 반해 사라져버릴 수 있는... 당신만큼이나, 어쩌면 당신보다도 더.
수그러진 가시들을 넘어 조그맣게 날아온 질문에, 페로사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남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본다. 회한 묻은 쓴웃음은 어디 가고 응? 하는 표정만 남아서 손으로 얼굴을 더듬는 것 갖고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짚이는 것은 있었기에 페로사는 이내 얼굴에 평소에 짓던 것과 똑같은 쾌활한 미소를 꾸며내보았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꾸민 것이라 역시나 조금 공허하고 조금 허전해하는 것이 되어 있었지만. "별 거 아냐. 날씨 타나 보지, 뭐." ─말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모든 좋은 것들은 나를 너무도 쉽게 떠나갔다고. 발버둥치고 도망쳐도 그것들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고.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그 사실이 떠오른다고. 아직도 그것들이 뽑혀나간 빈자리가 공허하고 아리다고. 그 자리에 들어앉은 너도 내가 잠깐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 어디론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이미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이대로 보름이 오면 보름 동안에는 정말로 사라지게 될 거라고. 어쩌면 보름이 왔을 때의 내 모습을 너에게 들키면, 보름이 끝나도 너를 되찾을 수 없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당신을 잊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이런 말까지 다 터놓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은가.
그녀는 항상 남겨진 사람이었다.
입을 떼면 그게 기정사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녀는 객실에 갈 때까지 되도록 말수를 줄이기로 했다. 애초에 감시카메라에는 자신밖에 찍히지 않을 텐데 자꾸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모습이 찍히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고. 객실 문도 그녀가 열었다. 그렇지만 문을 연 것은 그녀인데, 당신이 그리로 들어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왜인지 그리웠지만 달갑지는 않은 옛날 집으로 돌아온 모습 같다. 그대로네, 하는 말까지. 분명히 말했었지- 자기는 여기서 죽었노라고.
자신의 손을 마주잡고 가늘게 떨리는 손이, 왜인지 어째서 떠는지 알 것 같다. 당신이 자신과 같은 눈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페로사는 당신의 손을 꼭 마주쥐었다. 그리곤 당신에게로 고개를 숙여서는... 당신의 뺨에 쪽, 하고 짧은 입맞춤을 남겨주었다.
지극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할지도 모를. 어쩌면 자신이 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언제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다. 지하에서 살고 있는 이상, 그 안의 가장 깊숙한 곳, 가장 위에 있는 특성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에누마 그룹과 서로 득실이 일치하기에 지금처럼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낌새를 눈치채고 견제를 시작하면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끔찍한 최후를 맞으며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이것의 삶이었다. 서로는 잘 모르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것은 쾌활한 미소에도 공허하고 허전함을 쉽게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허함과 허전함을 이것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꾹 참아낸다. 언제부터 내 탓이 아닌 일이 있었나? 이것은 설탕과 향신료, 온갖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 대신 아주 자그마한 열등감을 한 스푼, 자책감을 두 스푼, 그리고 고통과 불신, 약물을 여러 컵 넣어 만들어진 존재였으니 당신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으니까. "그렇구나." 그것은 조용히 침묵한다. 당신은 날씨 탄다고 말하겠지만, 진짜일까? 의문을 삼켜낸다. 다른 의심이 싹튼다. 내가 괜한 얘기를 꺼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차라리 미카엘의 존재를 꽁꽁 숨겨버렸다면 이렇게 무안해지지 않았을 텐데. 내가 또 이렇게 망쳐버린 건 아닐까. 작은 자책감은 그것의 몸을 갉아먹었고, 침묵은 의심을 망상으로, 망상을 진실로 믿게끔 만들기 시작했다.
결정타가 된 것은 객실 내부였다. 객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헤로인의 시간은 미카엘의 죽음 아닌 죽음을 기점으로 멈춰있었다. 이 멈춰버린 시간 같은 객실에서 죽었고, 달라진 것은 하나 없으니, 아무렇지 않게 버텨온다 해도 줄곧 내리던 비와 윈터가 손댄 약으로 불안하던 정신 상태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건 모두 미카엘이 아주 긴 환각을 맛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느꼈던 감정을 모으고 모아 만들어진 마지막 환각. 윈터도 그 환각의 일부고, 지하의 왕도, 당신도 그것의 일부지 않을까?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원하던 것을 모두 느껴보고자 해서 만든 것이라면. 그러면 말이 된다. 내게 온기도, 권력도 허용될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의 손에 휘둘리며 얌전히 샘플이 되다가 전부 잃어버리고, 꼭두각시가 되어 히어로의 삶으로 전향되어야 하니까. 그것의 손은 점점 거세게 떨려온다. 지금 이 순간이 죽어가는 순간이라면, 아예 확실하게 사라지고 싶다. 차라리 이 빗소리에 묻혀서 같이 사라져버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당신이 손을 꽉 맞잡아주는 감각이 남았다. 위태롭고 어딘가 아득히 떠나가던 정신은 이내 뺨에 닿는 온기에 번쩍 돌아온다. 현실에 돌아오고 나니, 다른 점이 보인다. 그 당시에는 여우비가 내렸고, 커튼은 저 색이 아니었다.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 위엔 잭다니엘이 없었다. 황급히 숨을 돌리자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이제 됐어."
당신의 충동적인 행동은 기어이 가면을 박살 내고 만다. 당신이 일깨워준 현실에 헤로인은 결국 미카엘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헤로인은 부들부들 떨다 당신을 향해 부서질 듯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크게 뚝, 하고 떨어졌다. 전부 현실이다. 망쳐버린 일은 없다. 헤로인의 눈길이 당신을 빤히 쳐다본다. 바스스 쏟아지는 미소가 신기루 같다. "너라면 다 맡겨도 될 거야. 그렇지?" 그렇게 속삭이고는 당신을 향해 팔을 뻗는다. 비가 오기 때문에 헤로인은 저 멀리 숨어버린다. 당신도 그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차갑기만 하던 아이의 주변 온도가 삽시간에 가라앉았으니까.
"그러니까 가지 마. 혼자는 싫어."
미카엘의 행동은 지극히 충동적이었다. 이 현실에서 당신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이곳에 남도록 해야만 한다. 팔을 뻗어 당신의 목덜미를 꽉 안듯이 했다. 이어지는 말은 차분했다. 헤로인이 아닌 윈터와 같은 어조였다. 당신을 꾹 끌어안으며 볼을 천천히 비빈다. 눈을 내리감자 무언가 또르르 흘러내린다. 투명한 물줄기가 당신의 어깨를 한 방울 적셨다.
"페로사, 나랑 같이 있어줘. 응..? 혼자 남겨지면 그 사람들이 올 거야.. 난 그게 무서워. 제발."
원하건 그렇지 않건, 상황은 순식간에 변한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언제 깨어질지 모를 유리알 같은 이들이었다. 그녀도, 당신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언제 사라질지 모를 희미한 두 사람인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확실히 존재하기를 갈망한다. 살아숨쉬기를 갈망한다. 어쩌면 그것에 가장 위태로이 매달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죄인이 되어있었고 괴물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미소가 허전함을 훑어보는 당신의 눈이 그녀에 머물 때, 음울한 날씨가 자아내는 앰비언트에 빛바래인 푸른 눈이 당신을 마주보았다. 그 손을 꾹 거머쥐어온다.
그 조그만 움직임은, 그녀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당신에게 조그만 진실 하나를 깨우치게 했다. 나 때문이야? 하는 그 질문에, 그 반대야, 하는 대답이 되돌아온 것이다. 오히려 이 공허함과 쓸쓸함을 잊기 위해 내가 붙잡을 것은 너뿐이라는, 입으로 나오지 않고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되 손끝의 조그만 움직임만으로 당신에게 전해져온 대답이. 모두가 들어차기엔 비좁을 것만 같았으나 결국은 당신도 그 안으로 끌려들어와 버리고 만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당신을 아니 당신들을 모두 안아줄 각오가 되어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도 빠짐없이. 의심의 여지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위험한 짓 하지 말고... 나를 찾아와." 뺨에 입을 맞추기 전에는 나직한 속삭임 한 마디가 덧붙여졌다. 내가 같이 있어줄게. 나와 같이 있어줘. 그 말이 무엇을 두드렸는지, 무엇을 깨어버렸는지 그녀는 알기나 할까. 아니 정말 알았던 걸까. 안다기보단- 윈터라는 이름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준 사람은 사실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며, 그 사람은 하나이자 여럿이라고 명시된 문장으로 머릿속에 가지런히 정렬된 지식으로 안다기보단,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얼음으로 된 가시들이 거짓말처럼 사르륵 녹아내렸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겠다. 충동적으로 전혀 다른 인격을 드러내버린 당신의 모습. 다 맡긴다더니, 정작 너는 어디 가니.
그러나 페로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기는커녕 손끝 하나 흠칫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럴 겨를이 있는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목덜미에 손을 걸어오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 당신이 와르르 쏟아내는 말에 당신을 내려다볼 뿐이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말. 아니 애초에 단 한 번도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했던 말. 그래서 자신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줄 수 없었던 그 말... 남겨지고, 버려지고, 도망친 자신에게 그 말을 이제는 당신이 입에 담고 있다. 이제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어.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래도 오늘 저녁 근무는 글러먹은 모양이다.
페로사는 당신에게 끌어안긴 반대쪽 팔을 들어서,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전히, 끔찍하게도 따뜻한 손이었다. "난 여기 있어." 페로사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음울한 날씨가 자아내는 흐릿하고 탁한 앰비언트 한가운데에서도, 그녀의 새파란 눈은 빛을 잃지 않고 선명하게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올렸는데 내가 대답이 없다면 잠든 거라고 생각해줘. +.+ 오늘 저녁도 같이 보내서 행복했어.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에만도 에만주도 정말 좋아해. 약기운도 병기운도 에만주 너무 괴롭히지 말고 얼른 지나가길 바랄게. 자게 되면 잘 자구 좋은 꿈 꿔.
(로로주 뽀담뽀담) 스르르 잠든 걸까? •0• 로로주가 푹 잠들면 좋을 텐데! 나도 저녁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기뻤어.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을 거야. 나쁜 혐생 훠이훠이 물럿거라! >:3 나도 로로랑 로로주를 정말정말 좋아해!💓 열심히 낫고 있으니 걱정 말라구! 로로주도 푹 자구 좋은 꿈 꾸기를 바라. 답레는 오전~오후 중에 올리도록 할게. 아무래도 필사 하고나서 올려보는게 조금 더 말끔해질 것 같아서..🤔
"오, 뭐야. 이거 정리 싹 다 새로 했네요?" (엘리시온 바의 한켠에 마련된 무대. 한동안 커튼이 쳐진 채로 커튼에 쌓이는 먼지만 털어내는 정도로 잊혀져 있는 존재였는데, 오늘은 안쪽의 플로어까지 깨끗하게 닦여있을 뿐 아니라 새 음향장비를 설치해놓고 있다. 걸레가 담긴 양동이를 옮기던 지긋한 나이의 홀 매니저가 사람좋게 웃는다.) "이제 다시 여길 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해서 말이지요. 쇼어라인의 젊은이들만큼 화려한 무대는 아니겠지만, 품격있는 바에는 품격있는 무대가 필요한 참이니까요." "괜찮게 들리는데요. 여기서 노래할 가수는 구하셨구요?" "섭외가 어렵진 않을 겁니다." "흐음." "하하, 말 안 해도 알겠군요. 한 곡 불러보시죠. 아직 개장 준비 중이라 손님도 없고, 테스트도 한번 해봐야 했던 참이니까요." (홀 매니저는 무대 조명을 키고는, 무대 한켠에 놓여있는 피아노 의자를 끌어당겨 거기 걸터앉는다.) "언젠가 마음에 드는 분이 생기면, 초대해서 한 곡 불러드리는 것도 좋겠군요." "하하, 이런 걸 걔가 좋아해줄지는 모르겠네요..." (페로사의 얼굴이 조금 빨개진다.) "오, 이미 있습니까?" "아차. 비, 비밀이에요 매니저. 내가 한잔 살 테니까." (페로사의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하하하, 골든 브리즈 온더락으로 부탁드립니다."
나 때문일까, 당신이 이렇게 쓰게 웃는 것도, 공허한 것도, 쓸쓸한 것도. 모두 미카엘이라는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은 아닐까 두려웠다. 헤로인은 버림받는 것에 상처받고 남겨지는 자들에 의해 고통받아왔기에 생긴 부산물이었고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당신마저 자신을 내칠까 두려웠다. 괜히 드러냈나 보다. 차라리 약에 취하더라도 윈터를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카엘의 일면도 보여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차라리 달고 보드라운 모습만 보여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끝내 위태로운 정신이 이 모든 것이 환각이고, 죄책감과 욕망으로 비롯된 마지막 환상이라고 생각했을 때, 당신은 그 반대라는 대답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헤로인은 현실을 마주하고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판단은 어렵지 않았다.
에만은 미카엘의 죽음을 기점으로 히어로의 쇠락을 위해 나타난 역할이고, 앨리스는 미카엘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나 지금은 그 유산을 상속하여 일상을 대신 살아가는 역할이다. 미카엘은 지금껏 숨어 살았고, 죽은 존재였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온정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기에 온정도 받지 못했고, 위로받지도 못했다. 맡길 수 있는 사람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윈터와 공유하는 것은 이 역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묵인에 가깝다. 뺨에 온기가 닿기 전에 속삭인 말로 모든 결심과 판단은 사실이 됐다.
지금 이 역할은 필요가 없다. 당신이라면 모두 맡기고 잠시 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여러 역할을 품어주었듯, 이 작은 역할들의 주인을 품어주며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신 또한 잊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헤로인은 당신에게 미카엘을 맡기고, 미카엘은 당신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외로운 존재이며, 당신이 공허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면 미카엘이 나온 의미가 없으니까. 당신이 날 바라는 만큼 나도 당신을 바라니까.
"……날 떠나지 마.."
자신의 말이 쏟아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짧은 침묵에서 미카엘은 속삭였다. 당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작게 읊조린 말이 간절했다.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이 작은 존재가 알기나 할까? 꺼내지도 못 했던 말이었음을, 대신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저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애정에 배신 당하고 싶지 않았고, 당신과 함께하고 싶었다. 홀로 남겨지고, 배신 당하고, 이용당하다, 버려지며, 기어이 현실에서 도망 쳐버린 자신과 당신. 당신을 확실하게 잡아채는 말을 뒤로 눈물이 뚝 떨어지던 눈동자가 바르르 떨린다. 당신이 이 눈을 보지 못해 다행이다. 더 많은 것을 들켜버렸을 테니.
"…정말?"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따뜻하다. 차갑기만 하던 인생에 따뜻한 것이 닿자 고통스럽지만, 당신의 손이었기에 버티는 듯싶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빛을 잃지 않은 선명한 바다가, 하늘이 물기 어린 눈밭을 마주할 적, 미카엘은 천천히 당신을 마주하듯 하며 품에 고개를 기댔다.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마.. 날 싫어하지 말아 줘."
이곳이 현실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기대도 될 거야. 실낱같은 희망을 찾았으니 도망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거야. 이 도시에서 당신이라는 존재를 찾았으니까. 말을 꾹 삼켜내고 물끄러미, 그저 당신만 쳐다보며 애원하듯, 어린양을 부리듯 속삭였다.
그래, 당신 때문이 맞았다. 아니, 당신의 모습이 밉거나 꺼림칙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당신이 그 자리에 너무 잘 들어맞았다. 낯선 곳에 버려져 안식처를 찾아헤매는 조그맣게 할딱이는 숨소리가 그녀에게 산들바람이었고, 강철 골조만을 남긴 채로 텅 비어있던 그녀의 황무지가 당신에겐 따뜻하고 포근한 피난처였다. 그게 두려웠다. 무언가를 다시 마음에 맞아들이는 것이 두려웠다. 무엇인가 불타버리고 뽑혀나가고 쓸려나간 황폐한 황무지에 또다시 무언가를 담아두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을 담아둘 자신이 없었다.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더럭 욕심이 났고, 그 욕심이 무서웠다. 당신을 위해 불을 피울 수는 있겠지만, 당신이 어느 순간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면 그 불길에 자신이 잡아먹힐 것 같아서. 아니, 그 불길이 어쩌면 당신을 다치게 할지도 몰라서.
그리도 가슴속에 잘 들어맞는 당신은 어느 날은 달빛처럼 선명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안개처럼 여렸다. 어느 순간 바람이 휙 불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훅 떠나가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그녀는 남겨지고 버림받는 데에 익숙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말이 덜 고통스럽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그녀 쪽의 사정도 결코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고, 보름마다 특히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꼭꼭 숨어들어가야만 했다. 보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보름이 다가옴에 따라 그녀는 조금씩 우울해지고 있었다. 이번의 보름은 특히나 우울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행복을 느껴서였다. 그 행복을 느낀 만큼 자신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저주가 가져올 단절이 더욱 뼈아프게 도드라져보였던 것이다. 계속 같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데, 보름달이 뜰 때마다 얼마간은 떨어져있어야 하는데, 아니 어쩌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꿈과도 같았던 그 함께 있는 순간이 정말로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아스라져 버릴 텐데. 이번의 상실은 확실히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날 떠나지 마, 하는 그 미약하고 가녀린 속삭임이, 그녀의 꿈 속에서 흐려져 있던 당신의 모습을 다시금 한 번 있는 힘껏 그녀의 가슴속에 쾅 하고 박아넣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말. 아니 애초에 단 한 번도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했던 말.
그래. 그녀는 도망치기를 포기했다. 이제 그따위 것들은 아무짝에도 상관없어. 누군가에게 외롭다고 말할 수 있다면. 누군가 외롭다고 건네어오는 말을 받아안아줄 수 있다면. 같이 외로워할 수 있다면. 날 떠나지 마. 그녀 역시도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당신이 그 말을 했으니, 그래서 그녀는 그 말을 조금 바꾸어서 돌려주었다.
"네가 날 싫어하지 않는다면, 네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녀는 당신에게로 천천히 몸을 돌려, 당신을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나도 그렇게 해줄게." 정말이야. 하고 속삭이듯 하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딱히 청력이 좋지 않더라도 들을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빗소리만이 먹먹히 흐려져가는 204호실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서로의 말소리와, 서로의 심박음뿐이었으니까.
"정말로 날 싫어하지 않을 자신 있어?" 당신을 끌어안은 그녀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당신을 아프게 할 목적이라거나 아플 정도로까지는 아니고, 그저 마치 무언가에 조금 겁먹고 있는 것처럼, 정말로 조금... 살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