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본인들이 물리적 오류를 일으키는 변칙성 존재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다른 능력자들이 이능력으로 발휘하는 변칙성에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염 능력자가 뿜어내는 화염에 불타지 않았고, 전격 능력자가 쏘아내는 전격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받았으며, 정신 간섭 능력에도 놀라운 저항력을 보였고, 괴력 능력자가 발휘하는 괴력도 늑대인간에게는 그 위력이 크게 감소되었다. 태양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광선 능력자가 뿜어내는 광선에도 일반적인 유기체가 그 광선에 노출되었을 때에 비해서 현저히 적은 영향을 받았다. 변신 능력자의 경우에도 냄새나 버릇 등등 누군가가 동일 인물임을 추리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완전히 지우고 변신을 한다 해도 알아채는 모습을 보였다...
"...너, 걔가 아니구나." 작은 맹수와 커다란 맹수의 시선이 엇갈린다. 문득 두통이 나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던 이미지가 다시 흐려진다. 그 눈매, 그 콧대, 그 향기, 그 입술, 그 심박. 그러나 그 몸을 입고 있는 이는 자신이 기억하던, 자신과 하루를 보낸 그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아이가 아니다. "담배 한 대 피러 나왔다가, 달갑잖은 냄새가 나서." 페로사는 그제서야 골목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여기, 아마 며칠 전의... 페로사는 미간을 폈다.
페로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럭저럭 비를 피할 만한 처마가 있었기에, 페로사는 그리로 당신을 이끌려 했다.
세상에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 많다. 가령 어머니의 손에서 피어나던 불꽃이나, 마오의 인간을 초월한 모습과도 같은 일. 미카엘도 예외는 아니다. 남의 껍질을 뒤집어쓸 수 있는 능력뿐만이 아니다. 미카엘에게는 역할이 있다.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그 정체성이 완벽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다중인격이라기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주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체성이 '한 사람'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로 비롯된 괴리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앨리스와 에만이 타인의 앞에서 똑같은 목소리와 말투로 같은 문장을 말해도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의심하면 되레 불쾌해진다. 미카엘은 그런 훌륭한 정체성을 가지고, n분의 1의 인생을 살아가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습을 스스로 구분한 것은 용왕을 이후로, 당신이 처음이다. 그것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앨리스가 찾았던 정보는 애석하게도 교환일기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신을 제법 신기한 눈치로 쳐다봤다. 그리고 "너." 라며 당신을 부르더니, 삽시간에 인상을 구겼다.
"네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라고 나를 부정하지 마."
그것이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불쾌감이다. 그것은 윈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미카엘의 육신을 공유하는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구겨진 인상은 금방 펴진다. 손잡이 끝부분의 링에 검지를 끼우고 빙빙 돌리던 카람빗을 금세 잡아채더니, 능숙하게 소맷단에 만들어놓은 공간에 숨긴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봐줄게, 어떤 사람인가 대화라도 해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너도 저거랑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하게 되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조잘거리며 다시금 시체를 가리킨다. 달갑잖은 냄새는 습한 날씨이니 제법 많이 났겠지. 비를 피할만한 처마로 이끌 적엔 잠시 손을 내치려 했다. 날 지금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런 야생성을 지닌 길고양이 같은 눈길로 당신을 쳐다보다, 처마로 향할 적에는 군말없이 따라갔다. 시체도, 비를 맞는 사람도 무시하는 게 이 도시 사람들인데, 바깥사람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는 건지. 표정이 영 달갑지는 않다. 비를 맞지 않자 달갑지 않은 표정이 한김 가신다. 팔짱을 끼며 당신을 노려보듯 올려다 본다.
"일단 대화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해둘게. 윈터를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아. 투기장에 가서 데려올 수는 있어도 내가 활동하기 전까지는 아편에 취해서 자고 있었으니까."
아니야 지금 페로사가 "왜, 부정당하기 싫으면 인사로 키스라도 해줄까?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었다는 정도로만 나를 알고 있는, 나와 초면인 너한테?" 하고 대놓고 빈정거리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달래야 할지... (얼감) 아니 이건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쳐도 그 뒤에 게.....
바이오그래피 특성상 그녀는 꽤 많은 능력자를 만나보았고, 꽤 많은 인물상을 만나보았다. 변신 능력을 갖고 있는 이도 있었고, 변신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보인 반응은 그들과도 사뭇 달랐다. 페로사는 문득 제각기의 인격이 깃든 여러 육체를 하나의 영혼이 통제하고 있는 군집영혼 능력자를 떠올렸다. 페로사의 눈에는 똑같은 사람 여러 명이 제각기 다른 분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늑대인간이 아닌 이들은 누가 그 군집에 속해있는지 잘 구분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당신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그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와 매우 유사했다. 육체가 하나일 뿐.
이번만큼은 봐줄게, 하는 말에 페로사는 입을 다물고 당신을 처마 아래로 데려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흉골 안에 자리는 하나뿐인데, 너는 하나이면서도 하나가 아니었다.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가득찬 습기는 흉골의 내부부터 서서히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문득 두통이 들어서, 페로사는 손을 들고 한쪽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그러나 당신은 도무지 한 번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당신이 이어서 꺼낸 말에, 페로사의 꾹 감은 눈이 치떠졌다. "뭐, 아편...?"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아편중독자의 인생이 망가지는 과정을 우연히 이 도시에 오기 전에도 두어 번 본 적을 있고, 이 도시에 와서는 아주 질리도록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얼굴 위로 또다른 당신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창백한, 그렇지만 말간 모습이 아니라,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걸 드러내는 것 또한 눈앞의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아할 테지. 타인의 삶의 방식에 함부로 간섭한다고. 당장 자신만 해도 보름 때마다 먹고 꽂아대는 약이 벌써───
집어치우라지. 페로사는 관자놀이에서 손을 뗐다. "잠깐만." 그리곤 주머니를 뒤적였다. 앞쪽 바지주머니 깊숙한 곳에 들어 있던 손수건은 용케도 젖지 않았다. 아니, 젖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모서리가 살짝 젖은 것뿐이고 전체적으로 아직 손수건의 기능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보였다. 페로사는 그것을 들고 당신의 비에 젖은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적어도 당신이 가만히 있는다면, 머리의 물기까지 어느 정도 덜어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이렇게 비에 쫄딱 젖어 있다면 그녀가 할 두 번째 행동일 테니까. 적어도 당신이 당신이라면 말이다.
누구도 미카엘이 역할을 나눈 이유를 모른다. 가장 측근인 용왕은 그 배경을 알고 있지만, 지하의 사람도, 지하 바깥의 사람도, 당신도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그것'이 답해줄 이유는 없었다.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졌으니 호감을 산다면 당신에게 고분고분 답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운이 나빠 하나의 기회를 잃었다. 다만 만회할 기회는 많다. 그것이 보여주는 모습은 경계심 가득한 야생의 고양이와 같다. 당신은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대화를 청했고, 당신은 현재 반강제적으로 대화에 응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시체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과 함께, 그것은 자신의 모습을 자신대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것을 윈터로 보고 다가가서는 안 된다.
"표정이 안 좋네. 유감스럽게도 난 나야.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
아무도 그것을 미카엘의 한 면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다른 객체로 인정해 보자. 두통이 들어 관자놀이를 누를 적에 그것은 빗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말을 툭 던지고는, 치뜬 눈에 의외라는 듯 물끄러미 당신을 쳐다본다. 당신의 모습이 진심인지, 아니면 허울 좋은 연기인지 가늠하는 듯싶다. "내가 설명해도 그쪽은 이해하지 못할걸." 당신의 반문에 덤덤하게 답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았다. 당신도 결국 달고 보드라운 면을 보고 찾아왔을 텐데, 보드라운 면을 파헤치면 썩었다는 걸 알 텐데. 실망할까? 그리고 당신도 떠나버릴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떠난다면 그것은 윈터와 에만에게 속삭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더 잔인해져야만 해. 나를 지킬 건 나밖에 없어. 만약 당신이 여기서 수긍하고 넘어가버리면 역시 그렇겠지 생각할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것은 표정을 구긴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다, 얼굴을 닦아주려 손을 뻗자 눈을 질끈 감는다. 반사적인 행동이다. 팔을 들고 머리를 가린다. 그리고 비에 젖은 얼굴을 닦아줄 적, 눈을 가늘게 뜨며 당신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본다. 얼굴을 닦는 정도는 누구나 해줄 수 있어. 팔을 내린다. 머리의 물기를 덜어줄 적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중략) 페로사, 그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수를 느꼈다. 흥미로 다가갔다가 큰코다쳤지. 내가 다시 온기를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이야.그 냉정한 에만마저 넘어간 이유가 있었구만. 걔보다 낫다. 아니, 걔였다면..
"나는.. 이렇게 해도 안 넘어가. 그 배신자들은 몰라도."
퉁명스럽지만,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 이상할만치 잽싼 자기방어를 뒤로하면 지금 당신에게 얌전히 머리를 맡겼으니까. 눈빛은 아직 사납지만. 윈터와 에만을 두고 그것은 '배신자'라고 표했다. 그것은 온정에 기겁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당신은 이 의문의 경계심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나는 로로가 지뢰를 밟는 것도 로로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비설 털이 특화캐...(?) 농담이야 0.<(앙큼) 그렇지만 로로가 매력적인건 농담이 아니지롱!! >:3
나는 수습하는 방법을 모두 알지만, 로로주는 내 뇌세포가 아니라 모르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지문에다 유도를 해봤어. 만약 어려운 점이 있거나 하면 언제든 질문해주고, 이건 아니야 싶으면 꼭 말해줘야해. 알겠지? 일상은 서로 즐겁게 돌리기 위해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니까.(꼬옥)(쓰담)
미카엘의 육신을 공유하는 같은 존재임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은 그 중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라고 별개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어쩌다 아편 같은 걸 입에 대었는지 물어보려고 해도 먼저 봉쇄당했다. 그러나... 내가 설명해도 그쪽은 이해하지 못할걸, 하는 당신의 단호한 일침에도 불구하고, 페로사는 눈을 가늘게 뜰 뿐이다.
"상관없어. 어떻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전혀 생각지 못한 면에서 발견한 한가득 썩어있는 부분을 보았으나, 그녀는 놀랐을지언정 질겁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표정을 다잡고는 손수건을 쥔 손을 당신에게로 뻗어올 뿐이었다. 마음이 썩은 건 많이 봤다. 자신의 마음이 썩은 것도 고쳐봤다. 원인을 알면 가능성이 크게 올라가지만 원인을 모른다고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다. 실패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네가 넘어가건 말건 알 바 아냐." 페로사는 딱 잘라 말했다. "외투가 있었으면 너한테 걸쳐줬을 거야. 네 머리에 흐르는 물을 다 닦으면 아까 팽개쳐둔 우산을 가지러 갈 생각이고. 점퍼를 차에 벗어둔 게 아쉽네." 온정이 두려운 당신에게는 가장 두려운 종류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고하기 그지없는 온정. 이런 것이 해가 된다면 물러서되, 이런 것으로 당신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면 전혀 개의치 않는 그런 것 말이다. 애석하게도 페로사는 그런 사람이었으니.
"여기서 기다려. 우산을 가져와야 되니까."
손잡이가 아래로 가게 떨어져 흡사 조그만 천막 같은 모양새가 된 우산이 저만치에 나뒹굴고 있었다. 페로사는 당신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쏟아지는 빗속을 전혀 개의치 않고 가로질러서는 우산을 쥐고 당신에게로 돌아왔다. 그녀와의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당신이 도망치려 들지 않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