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다. 물론 등교하는것도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는것도 볼 수 있겠지만 점심시간에 내가 점심을 먹는걸 볼 수 있을리가 없다. 난 점심시간에도 부실에 가서 밥을 먹으니까. 그리고 내 기억으로 그녀가 이 장소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굳이 점심시간에 부실로 이동한 나를 스토킹이라도 한게 아닌 이상은. 자랑 할 것은 아니지만 난 교우관계가 넓은편은 아니니까.
사소한 거짓말이다. 같은 반 학생을 얼굴도 처음본다고 하는건 좀 그렇겠지..
"음, 네 말이 맞아. 그저 말만으로는 상대가 어떤사람인지 알기는 힘들지. 그렇기에 난 너에게 농담을 한 거야. 처음 보자마자 이상형이 뭐냐고 묻는 사람한테 진정성 있는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아니거든. 네가 지금 말했지, 요즘인간은 믿을게 못 된다는걸."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 마지막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건 진짜로 대답한거야. 그걸 믿을지 안믿을지는 네 자유고."
어라,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첫눈에 반한다고?
"...첫눈에 반한다는 구닥다리 표현은 겐지모노가타리에서조차 안 나오는데."
맨 처음에 사람을 보았을때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건 결국 사람의 외견이며 시각정보. 그 사람의 내면과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방금전 요즘인간은 믿을게 못된다고 말 한 장본인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첫눈에 반할 수 있다고 하고있었다.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일것. 이것이 농담이 농담으로 성립되는 기본 조건이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조용한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별을 주관하고 있는만큼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단 이런 조용하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신으로 자각을 가질때부터 내 주무대는 밤이었기 때문에 밤과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은 그 누구보다 환영이다. 답지않게 눈을 반짝이며 전시관이니 조그마한 카페 등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사실 장보는건 다음에 봐도 충분한 것이라 상관 없었다.
이 거리를 꽤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따라올거면 마음대로 하라는 말에 그냥 계속 따라가고 있을뿐이다. 평소라면 말을 걸었겠지만 오늘은 주변을 구경한다고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그녀의 옆에서 걷기만 하고 있을뿐이었다. 그러다 가끔 힐끔하며 바라보는 요조라의 눈을 마주치면 그저 웃어주기만 한다. 그러다 커다란 전시관 앞에서 그녀가 멈춰서자 나도 자연스럽게 멈춰선다.
"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
딱 보기에도 규모가 있어보이는 곳이라 외관을 훑어보다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같이 들어간다.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넓어보이는 로비와 데스크였는데, 요조라는 데스크로 다가가 학생증을 건네주며 일행이라고 말했고 직원은 나와 그녀에게 팜플렛을 하나씩 건네주고선 내부의 다른 문을 가리키며 전시관의 방향을 알려준다. 그녀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들은 보통 그림이나 글을 상당히 잘 쓰는 편이라서 그림을 구경하는 것엔 익숙했다.
" 천천히 구경해볼까요? "
평소처럼 방글방글한 표정으로 속삭인 나는 그녀의 뒤에서 천천히 그림들을 하나씩 구경하기 시작했다. 말을 건다면 조금씩 대꾸하면서도 시선은 그림에 향한채로. 모두가 그림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 와중에도 조용하며 차분한 분위기는 나를 녹아들게 만든다. 밤에 별을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 그것은 전시관을 한바퀴 다 돌았을때야 끝이 났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스즈는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노려보았다. 순간의 서늘한 감각과 왜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누군가 뒷목에 칼을 대고있는 듯한 기분. 최근들어 이런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그람에도 스즈는 반응하지 않았다. 구해주겠다고 말했고 지켜주겠다고 이야기 했으니까. 그 무리가 멀어지자 스즈는 그제서야 뒤를 돌았다.
" 됐다. 다 간 것 같네. 그렇지? "
아직이다. 아직 보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더 태연한 척을 해야한다. 스즈는 어깨를 한 바퀴 돌리며 그대로 때려줬을 수도 있는데~ 하고 능청스레 말했다. 잠깐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스즈는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아무리 스즈라고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거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스즈는 이제 17살이 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 하아아아아아아............ 진짜 무서웠다.................. "
아직도 긴장이 가시질 않아 몸을 옅게 떨던 스즈는 신세를 졌다는 말에 응? 하고 고개를 들었다. 긴장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이 서려있는 눈으로 시로하를 바라본 스즈는 그제야 이 모든 것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위협을 가하던 것들은 사라졌고 무사히 살아남았다. 스즈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겁지만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시관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곧장 와닿는다. 평소라면 일단 몸부터 떨었을 요조라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는다. 어깨에 덮인 코세이의 외투 덕분에, 걸으며 데워진 몸은 충분히 내부의 서늘함도 견딜 수 있었다. 요조라는 보이지 않게 손을 움직여 어깨의 외투를 잠시 만지작거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세요..."
천천히 구경해볼까요, 라는 코세이의 말에 요조라는 작게 중얼거리고 그림이 걸린 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깨끗한 하얀 벽에 크기도 화풍도 제각각인 그림들이 드문드문 걸려 있어서, 그 앞을 지나치며 하나 하나 감상한다. 전시에 특별한 주제는 없는지 그림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림마다 작가의 이름과 제목이 걸린 작은 표찰이 밑에, 혹은 옆에 붙어있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게 되어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요조라는 말이 없었다. 코세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보고 한번씩 팜플렛을 펼쳐보기만 한다. 특별히 주의 깊게 보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허투로 지나치는 것도 없었다. 작품 하나 하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감상하고 지나간다. 그렇게 한바퀴 다 돌 쯤 요조라는 중얼거렸다.
"없네..."
그 말은 마치 요조라가 무언가 찾기 위해 온 것임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그림 앞에서 멈춘 요조라는 팜플렛을 들고 내용을 이리저리 살폈다. 팔락거리며 흔들리는 팜플렛의 제목은 '수상 기념 전시'. 돌이켜보면 그림마다 붙어있던 표찰에 수상 마크 같은게 붙어있던 것도 같다. 요조라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혼자 팜플렛을 보다가, 혼자 휙 돌아서 들어온 입구 근처로 간다. 그리고 문이 아닌 문 옆으로 들어갔다? 알고보니 특별 전시실이란 안내문이 붙은 공간이 그쪽에 있었고, 요조라는 그 안에 있었다.
그림 열 점 겨우 놓을 정도의 원형 공간은 딱 봐도 바깥과 다르구나 싶은 그림들이 다섯 점 걸려 있었는데, 요조라는 그 중에서 가장 가운데 걸린 그림 앞으로 간다. 약간 큰 사이즈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은 유성우가 쏟아지는 밤하늘과 얕은 언덕에 앉아 그걸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이다. 그림 아래쪽엔 별개의 스탠드가 있고 거기에 작가 이름과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름은 호시즈키 요조라, 제목은 그 날 밤, 함께 표시된 수상 마크는 반짝이는 금빛이었다.
1점도 득점이라고 해야할지, 기분이 애매해진 요조라는 다음 코드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방과후, 대부분은 부활동을 하기 위해 별관으로 옮겨가 적막하...지는 않고 코드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학생들 덕에 조금은 활기가 돈다. 그 사이에 요조라도 섞여서 벽이며 문틈이며 틈틈히 살폈다. 그러다 창문 한가운데 대놓고 붙은 것을 찾아, 들고 있던 폰으로 코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