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말야, 날 봐주지 않는 게 날 싫어하는 것보다 싫어. 미카쨩, 내가 뭘 해두 덤덤하고 뚱-한 얼굴 하고 있었는데, 이젠 조금 움직이는걸. 그러니까 좋은 거야- 모르겠어? 몰라두 돼."
도닥이는 손길을 만끽하며 하는 말은, 정말 기분 좋아보인다. 묻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부끼는 머리를 굳이 정리하지 않고, 후미카를 꼬옥 맞껴안은 채로 볼을 부비고, 그럴 때마다 힛, 하면서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으니까. 사실, 져도 좋았다. 아소비코쇼랑 쌍륙을 할 때면 몇 번이고 일부러 져줬으니까. 주사위를 한 번 더 뒤집어주는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배려를 인간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시이는 해주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니 네가 이기라며 승리를 양보해주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시이는 기분이 좋냐며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얼굴은 사람의 제정신을 양식으로 삼는 재액신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해맑았다. 그저, 후미카의 손길 하나에 기뻐하는 어린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후미카의 부탁에 시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있지, 그럼 그거 말야, 다음에도 또 만나잔 거지? 그거... 맞지? 응, 또 만나면 그 때도 상냥한 바보로 있어줄게. 그러니까 다음에도 만나줘야 돼?"
"탐사라니. 아기자기한 맛이 있네." "말만 그렇고 책상에 엎어져 있는데, 우스아카리 씨. 다들 이렇게 열심히 찾는데 혼자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 '움직이기 귀찮아..."
쩍 하품. 흐느적대는 슬라임처럼 꾸물꾸물 상체만 일으키고서는 허공을 보며 따분히 눈을 깜박이다가, 노트를 찢어 무언가를 척척 접어내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학이다.
"이 아이가 나의 대신이 될 거야." "뭐... 부하라는 거야?" "식신式神." "우와, 역시나 무녀. 그럼 이게 움직이는 거야?" "그럼. 힘든 것은 남에게 맡기고, 가만 버텨서 남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몹시 JK다운 행동이라고도 생각해." "음... 요즘 JK라면 자기 몸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 같은데. 그야 그렇잖아, 시대도 변했고, 의지도 신체도 강한 여성- 뭐 이런 거지." "이상해. 그야 순정만화에서는-" "언제 적 순정만화를 이야기하는 거야~! 사실 순정만화 같은 것도 아-무 상관 없어. 잘 들어, 우스아카리 씨. 연약한 겉모습과 다르게 강하고 굽히지 않는 소녀라고? 갭모에라고 들어보지 않았어?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요즘 와서도 착실하게 먹히는 녀석이라고. 유약하고 청순한 무녀! 이것도 오래된 속성인데, 여기에 우리는 다시 고전적이지만 동시에 트랜디하기도 한 갭모에를 끼얹는 거야. 어때, 흥미 돋지 않아? 대화가 산으로 간 것 같지만 무시하고 계속 들어보라구. 그러니까 이제 모에라는 게............"
......... .........
"..........그러게, 정말. JK는 갭모에가 있어야지."
단순한 무녀 상대로는 그럴싸한 일장연설로 세뇌하다시피도 가능하다.
의외로 에니시는 휴대폰이 있었다. 무뚝뚝하게 졸졸 걸어가다가 고개를 홱 하니 돌리면 그곳에 쪽지가 있고, QR코드에 렌즈를 가져가면-
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은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것이었다. 렌은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쌍둥이었구나. 쌍둥이 일수도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쌍둥이 신이라는 것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이 사람도 신인 건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는데. 렌은 눈을 깜빡이며 코세이의 말에 대답했다.
“눈 색이 비슷해서 가족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머리색도 비ㅡ,”
비슷하다고 말실수를 할 뻔 했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말했다.
“ㅡ슷했으면 바로 쌍둥이라고 다들 알 것 같아요. 음, 인상도 비슷하신 것 같고요. 하하….”
가까스로 수습하며 렌은 머릿속에 피노키오 해줄 거냐고 물었던 했던 코로리를 떠올렸다. 코로리 씨, 저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아냐, 방금은 잘 수습했으니 괜찮으리라. 렌은 코세이가 다른 화제를 꺼내자 바로 물었다.
“4교시에 다친 게 있어서 보건실에 갔었는데, 코로리 씨가 계시더라고요. 보건 선생님이 안 계셔서 손바닥 치료하는 걸 도와주셨어요.”
많은 그림들이 있었고 하나하나 주의 깊게 바라보고 지나간다. 그림들의 크기도, 화풍도 제각각이지만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 답게 서로 비교해도 전혀 부족한 점이 없는 그림들만 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잘 표현되면서도 과하지 않은 그림들이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은 전시회를 한바퀴 다 돌았을때 끝났다. 좋은 구경이었다고 생각하며 요조라쪽을 바라보자 무언가 찾는듯 없네, 라는 말과 함께 팜플렛을 바라본다.
무엇을 찾는것일까 싶어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갑자기 들어온 입구로 나가버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빠르진 않았으므로 말없이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문 옆의 공간이었는데 특별 전시실이라는 곳 같았다. 팜플렛을 살펴보니 특별 전시실엔 수상작들이 따로 전시되어있다는 내용이 써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호시즈키양 ... 이름이네요? "
바깥의 전시회와 비교해서 그림이 몇점 없긴 했지만 이곳의 그림은 밖의 그림과는 비교도 불허하겠다는듯 그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깥의 그림들도 분명 충분히 잘 그린 것들이지만 여기에 들어오니 그 차이를 실감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운데에 그려져있는 그림은 밤하늘의 유성우를 검은 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금상을 수상했는지 마크는 금색이었고 작가의 이름은 호시즈키 요조라, 라고 되어있었다.
" 그날 유성우를 보여준 보람이 있네요. "
기분이 내키는대로 보여준 유성우기는 하지만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면 그 당사자로써도 기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진이라도 찍어가고 싶었지만 전시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된 행위이므로 그저 눈에만 담아야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나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요조라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
대단하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느낀 바를 말할뿐이다. 조용한 전시실에 내 목소리가 작게 울려퍼지고 평소의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다시 그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 이 검은 고양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구요. "
밤하늘과 잘 어울린다는건지 요조라 본인과 잘 어울린다고 하는건지. 구태여 말은 안했지만 사실 둘 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46 이거 굉장히 적폐... 인 선물이거든. 그래서 사실 조심스러웠지만. 그 탓에 은유 투성이로 텍스트를 구성해버렸는데, 괜찮다면.. 정말 괜찮다면, 시이주의 눈에는 어떤 뜻으로 읽혔는지를 먼저 들어볼 수 있을까. 은유라 해도 억지 투성이니깐, 편히 말해주면 좋겠어. 없으면 패스해도 물론 괜찮으니 모쪼록 부담없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