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한다면 믿어주냐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눈을 깜빡였다.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어주냐는 뜻인가? 하지만…. 워터파크에서 교복을 입고, 방금 물 속에서 나왔는데도 뽀송뽀송한 옷과 머리카락은 영 이질적인 것이라서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더 이상한 지경이기는 했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울상인 얼굴로 여자애는 자신을 올려다 보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렌은 갑작스러운 눈물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코로리 씨…? 저….”
우는 여자애는 어떻게 달래야 하는 걸까. 렌은 이러한 상황이 한 번도 없어서 쩔쩔 매고 있었다. 어찌할 바 모르는 손이 허공을 배회하는데 눈물을 닦은 코로리가 제 손가락을 꼭 쥐며 올려다봤다.
“피노키오…요…?”
후링 다음은 피노키오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간절하게 올려다 보는 얼굴은 뭐든 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영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렌은 잡힌 손가락을 뿌리치지 못하고 잡히지 않은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아…. 역시….”
꿈이 맞구나. 하긴 꿈이 아니면 이상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 이 소녀를 난처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그렇지 않던가, 그러니까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큰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니까. 아마, 이 앞의 존재도 그런 것이 아닐까. 문제는 렌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 앞의 존재가 인간은 아니라고 각인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음, 일단 울지 말고요. 그 제가 했던 질문이 코로리 씨를 곤란하게 한 것 같으니까, 아무 것도 안 물을게요. 미안해요.”
렌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사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왜 보건실에서 자신이 자고 있는지, 꿈 속에 코로리는 왜 나와서 울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이 앞의 소녀가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었다.
렌은 이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영 감을 잡을수가 없어 코로리에게 잡힌 손가락을 내려다봤다가 다른 손으로 머리만 긁적였다. 일단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하고.
>>691 나는.. 싫어해.. 아니 급전개는 진짜 무지무지 좋아하는데 그런 급전개를 못 따라가는 느려터진 내 뇌를 싫어해 83 사쿠라마츠리가 끝나고 다른 날에 다시 만난 상황인거지?
>>시점도, 상황도, 히키의 모습도 자유롭게<<
나는... 싫어해....... 아니 선택지가 주어지는 건 무지무지 좋아하는데 이런 선택지를 못 따라가는 내 판단장애를 싫어해 83.....!!! 답레는 일단 써보겠지만 자고 일어나서야 완성할 수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답레 기다리지 말구 자러가 :3 이런 불성실한 참치와 계속 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83
밑도 끝도 없는 고백이나, 도검의 신에겐 친구가 없다. 가미즈미 고교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에 친구가 없다, 라고 단언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몸과 마음을 완전히 맡길만한 정도의 인복은 일찍이 없었다. 친구라고 할만한 자들은 나름대로 있으나 그 친구라는 것이 실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좀처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방금 저 불한당 놈이, '친구'를 언급했다. 앞 뒤 재지 않고 불합리한 상황에 끼어들어 '여기는 내게 맡겨'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인가? 그 자가 전혀 면식이 없음에도? 그렇다면, 장본인 중 하나에게 조금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과연 친구인 것이느냐고. 이런 상황이니 기회가 아닌가. 무릇 탐구심은 검을 더욱 예리하게 만드는 법이렷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어라? 그렇다면 이 반응은.
'...나, 깔끔하게 무시 당했구나?'
그리 여겨 조금은 불만스러운 마음에 감겨있던 한 쪽 눈을 가벼이 뜨니, 전란말기 때보다도 더러운 다툼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앞에 나서서 이쪽에게로 미소를 보내는 스즈에게서 온전히 느껴지는 것은. 근육과 호흡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극도의 불안함.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누군가 들어올린 손이 속력을 붙이고 있었다.
이래서 요즈음의 젊은 피들 사이의 다툼은 어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벼려진 칼날보다도 예민하고, 주제에는 꺾이기가 쉬우니 다루기가 까다롭다.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없으며, 흘려버리자니 질척하게 감겨온다. 사쿠라마츠리에서 평화를 빈 것이 엊그제 같거늘. 벌써 이런 일이 되다니. 아아, 정말이지―
"무엇들 하느냐."
시간이 멎은듯 갑작스레 덮쳐온 이질적인 적막. 그 속에서 날카롭게 잘그럭 거리는 소리만이 흐른다. 어느새인가 벗겨진 천 안에서는 도검만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자루 위에 얹혀진 손은, 아직 날을 뽑지 않은 채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 될 것이다.
"지금, 그녀가 꽁무니를 빼도 묻지 않겠다며 자비를 배풀고 있지 않더냐."
하지만 어째서일까. 스즈를 제외한 그 무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 부근에 내려앉은 섬짓함과, 역류하는 강처럼 머릿 속을 흐르는 과거의 기억들에게서 근본적인 무언가의 공포를 느꼈다고.
"신세를 졌구나."
멀어져가는 뒷모습들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던 시로하가 그리 말하고는 땅에 떨궈진 검은 천을 들어올려 도검을 감쌌다. 그녀가 이번의 '부조리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여자아이'이다. 지금 그녀는 감긴 두 눈의 새하얀 그 얼굴은 무엇도 겪지 않은 것처럼 잔잔하고, 후일의 근심을 넘어 잔심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왜인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스즈에겐 제대로 보이고 있으려나.
비밀을 숨기는 방법 두 가지는 거짓말과 침묵이었다. 신비한 경험을 했다는 걸 입도 뻥긋 안 하는 것은 어려울테니까, 코로리는 거짓말이라도 부탁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꿈이었어, 내가 아니고 다른 친구가 이런 일을 겪었대, 같은 이야기를 한 번 꼬아버리는 거짓말. 요즈음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코로리는 처음부터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시피한 이름 없는 신이니까 거짓말로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괴롭혀서 비밀을 지키게 해야하는 거야? 괴롭히는 건 싫은데ー. 코로리는 촉촉한 속눈썹이 느껴졌다. 물에 빠져있던 코로리에게 유일한 물기는 눈에 있었다.
"그치만 벌써 신계로 돌아가기 싫단 말이야."
욱 하고 튀어나왔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인간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받는 신이라니! 사과는 코로리가 해야하는데 되려 사과도 받아버렸다. 튀어나온 말과 함께 눈물도 한두방울 똑똑 떨어진다. 아직 3년도 채 못 있었던 인간계를, 이런 우연으로 시작된 사고로 인해 떠나야한다니! 정말로 내년에 재입학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 하잖아ー! 신의 위엄, 존엄 그런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훌쩍훌쩍 울면서 손가락은 놓지를 않는다. 혹시 아프기라도 할까봐 손에만 힘이 들어가있고 쥐고 있는 것 자체는 부드러웠다. 코로리도 손은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다른 손으로 눈물을 몇 번이고 훔쳐냈다.
"나, 인간이라고 하는 거짓말은 어렵겠지이."
타협에 들어갔다! 코로리가 정말로 원하는 거짓말은 신이라는 이야기가 언급되지도 않는, 코로리가 인간이라는 거짓말이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간절하다. 노을빛 눈동자는 아래로 갈수록 노랗게 물들어있는데, 계속 눈물 방울이 똑똑 떨어지다보면 노을이 흐려지고 옅어져서 맑은 하늘로 갤 것만 같다.
"후링씨가 피노키오 하면, 나 열심히 도와줄게."
잠의 신으로서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후링씨는 꽃단내가 안 나니까, 꿈 정도 밖에 못 도와주겠지만ー 그래도 신의 능력인데! 후링씨가 싫다고 하는 인간, 악몽꾸게 해줄 수도 있어! 만약 꽃단내가 지독하게 나는, 잠을 제대로 푹 잔 지가 오래된 양귀비였더라면 더 꾀어내기 쉬웠을텐데 아쉬우면서도 기쁜 기분이 든다. 잠의 신이 잘 자는 아이를 싫어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