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을 사과했더니 괜찮다는 대답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덧붙혀서 따라오자 처음 만난 사람과는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방황하던 눈동자가 슬그머니 로드에게 향했다. 찰나였지만 시선이 잠깐 마주쳤기 때문에 렌은 곧바로 가장 만만한 펀치기계로 시선을 고정하고 뒷목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며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속으로 살려달라고 울부짖기는 했지만.
"..네? 어? 괜.."
괜찮습니다만, 하고 나올 뻔한 말을 렌은 입을 강제로 막아버렸다. 신경을 써주고는 있지만 역시 공통된 무언가가 없으면 이야기거리가 금방 끊길테니 여기서는 차라리 저 펀치기계를 때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까지 해줬잖아? 둥글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눈매를 조금 더 둥글게 만들면서 펀치기계를 보던 렌은 져지 소매를 걷어올리고 기계로 걸어간다. 살짝 떨어져준 로드에게 목례로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권유받았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만- 이런건, 자신이 없어서 말입니다.."
할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을지도. 아까보다는 긴장이 조금 더 풀렸는지 기어들어가듯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약간 나아져 있었다. 잠깐 준비자세를 잡은 렌은 펀치기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제 좀 익숙해졌을까? 기대를 하다 눈이 마주치자 바로 피하는 렌을 보고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반응이 재미있다고 말하면 화내겠지. 낯가림이 정말 심한가 봐. 초면에 눈에 띌 변화가 있을거라고 기대하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작은 것에도 놀라는 렌의 반응이 제법 재밌었다. 낯을 가린다는 사실은 알고도 놀리면 안 되지만... 재밌는 걸 참는 건 어렵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말의 양심을 상기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게임일 뿐인걸요. 즐기려는 게 목적이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예의 바른 렌에게 맞춰서 선을 지키며 응원했다. 렌의 준비과정을 보며 본격적이네. 라는 생각도 잠시 곧 생각보다 묵직한 소리가 들리고, 높은 점수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했다. 눈을 반짝이며 렌의 점수를 보더니 묘하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대단하네요! 로직 봄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다고 하셨는데 오기 전부터 꾸준히 훈련하신건가요? 아니면 능력이 그쪽?"
부담스럽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흥미가 이성을 이겨버렸다. 렌을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빠르게 질물을 던졌다.
진지하게 펀치기계를 때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큰소리가 나는 바람에 되려 이쪽이 좀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게다가 높지 않은 점수가 나올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높은 스코어에 한번 더 당황하는 건 렌으로서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라, 이건 좀- 하고 생각하고 있던 렌은 로드의 반응, 그러니까 흥미로움이 잔뜩 묻어나는 높은 목소리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슬그머니 돌리고 말았다.
"어,음- 능력이 이쪽이라기보단 능력을 쓰기 위해 훈련을 했다는 쪽이..맞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높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기는 했는지 렌은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긴 했으나 붙임성 있는 말투였다. 그래도 역시 시선을 마주하는 건 어려운지 반짝거리는 로드의 눈빛을 한번도 마주하지는 않았다. 헛기침을 다시 하고는 렌은 말을 덧붙힌다.
흥미가 이성을 지배했는지 시선을 피하는 렌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로직 봄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을 본 경험이 그다지 없기도 하고 예상을 웃도는 렌의 힘에 큰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능력이 이쪽이 아니라는 말에 더 들떴다. 그렇다면 자신처럼 전투계열 능력은 아닌 걸까. 아니면 전투와 연관이 되어있는 쪽? 누가봐도 관심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렌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능력을 쓰기 위해서? 어떤 능력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제 능력이 뭔지부터 알려드려야겠구나. 저는 초재생능력이에요.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빨라요."
나름 체면을 차리고자 남이 대답하긴 전에 먼저 말해주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이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말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다른 건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렌이 착실하게 대답해주자 기분이 좋아졌다. 눈은 마주쳐주지 않지만... 렌 씨랑 친해지고 싶다!
알케스는 로드를 향해 얄밉게도 말하며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 일 아니라는듯이 방관하고 있었다. 테온이 달려드는 와중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고. 갑자기 사라진 미나를 찾던 디스포의 머리부분은 그대로 테온의 검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공략법? 내가 알겠냐."
당당하게도 그런걸 나한테 왜 묻냐는듯 미나에게 말한 알케스. 그는 잠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시우가 다가오자 무언가를 시우쪽으로 던졌다. 무엇인가하니 기절한 루온이다. 아까 미리 구해둔걸까. 다행히 그렇게까지 상처가 큰거같진 않으므로 회복시키는데 큰 문제는 없을것이다. 딱히 뭐라고 더 말하지 않는거보니 자신은 문제가 없다는 소리겠지.
수호까지 다시 달려들어 디스포의 머리를 공격했고. 늑대 머리의 혼은 꽤 크게 디스포의 머리를 뜯어넘겼다. 렌때도 그렇고, 테온과 수호의 공격에도 그렇지만 위협적인 공격력에 비해 의외로 내구가 높진 않다. 위험도 150의 디스포는 그야말로 몸에 칼도 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도 공격이 완전히 다 먹히고 있는것까진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건지 화가 난건지. 양팔과 머리는 정신을 차리고 수호와 테온을 노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린의 총구가 불을 뿜고 있었고. 납탄이 동체의 중심부를 제대로 가격했고 눈에 띄게 동체는 파손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추가타로 린의 주먹이 그곳을 한번 더 공격하자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꽤 데미지가 들어간건지 머리와 양팔의 움직임이 둔해지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