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는 그동안 오락실을 즐겨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집을 나와서 오락실을 접할 기회가 없지는 않았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치 운명처럼 로직 봄 2층에 오락실이 있다는 이야기에 곧장 향헸다. 오락실에 있는 오락기기를 보며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살짝씩 손을 대본다. 마음대로 만져도 되겠지? 고민을 하면 알케스의 얼굴을 떠올리니... 괜찮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뭘 건들였다고 화낼 사람은 아니니까.
"다 재밌겠다."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다가 오락실에 가면 한 번씩 해본다는 펀치 기계를 발견했다. 딱히 신체를 단련시키지는 않아서 높은 점수는 나오지 않겠지만. 재밌어보이는 건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기에 자세를 잡고 가볍게 주먹을 질렀다.
로직 봄 2층에 있는 오락실에 렌이 온 건 순전히 우연이다. 오락실이나 그 외의 유흥을 위한 것들을 접하기엔 렌의 루틴이 굉장히 건강하기도 하고 지금도 이런데 어릴 때는 오죽할까. 여기까지 온 이유는 순전히 로직 봄 건물을 산책(이라고 하고 나름 유산소 운동)하듯 살펴보다가 도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락실을 기웃거리던 렌은 마침 펀치기계를 때리는 여성을 발견했으나 안으로 걸음을 옮기거나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아예 처음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면인 사람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넬만큼 렌의 사교력이 바닥을 기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렌은 오락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는 애매모호한 자세로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눈을 좌우로 굴리다가 조용히 오락실을 떠날 생각으로 걸음을 떼려고 했다.
발이 꼬여서 가까운 곳에 있던 오락기를 건드려서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렌이 원하던대로 조용히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점수판에 나타난 엄청 낮지는 않지만, 높다고 말할 수는 없는 애매한 점수가 조금 우스웠다. 그래도 클랜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을 안했던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앞으로 노력하면 999도 가능하겠는데. 위풍당당한 근육맨이 되어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펀치 기계를 바라보다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눈치 보는 강아지 같다. 단순한 감상과 함께 모르는 사람에 대한 흥미가 돌기 시작했다.
"방해가 될 정도로 집중하고 있던 건 아니에요. 그것보다 누구세요?"
오락기기보다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더 재밌을 건 안봐도 비디오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렌을 바라보다 아, 하고 탄식을 했다.
살려줘! 갑작스러운 큰소리가 나는 바람에 당황스러운데 거기다가 소리에 반응해서 펀치기계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이쪽을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누가 지나간다면 구해달라는 눈빛이라도 보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없을 것 같아서 렌은 좌우로 눈동자를 굴렸다. 물론 큰 소리를 낸 오락기를 잠깐 원망스럽게 보는 건 덤이었다.
"아! 아, 그-러니까 여기 소속이고..이름은-"
잠시, 렌의 눈동자가 여자에게 향했지만 기대하는 눈빛과 마주하자 천천히 다른 곳으로 굴러가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로드라고 소개하는 목소리에 헛기침을 한 렌은 여전히 시선을 피하는 것과 달리 썩 그럴듯하게 반듯한 목례를 해보였다.
"류구 렌입니다. 그, 만나서 반갑습니다.."
문장이 이어질수록 렌의 목소리는 불씨처럼 기어들어갔고 문장을 끝마치자마자 입을 다물기에 이르렀다.
맞닿지 않은 시선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자신이 지나치게 들이댔다는 자각했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도망갈 거 같았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좀 어려운 인상인가? 고민하다 피어싱과 염색까지 생각하니 납득됐다. 고개를 돌려서 렌에게서 시선을 떼고 펀치기계를 바라보았다.
"저는 반가워요. 로직 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클랜에서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좋네요. 저는 게임에 관심이 많아서요. 로직 봄에 오락실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아쉬울 정도로만 했거든요. 렌 씨도 오락실 구경하러 오신건가요?"
나름대로 무해하다는 걸 증명하는지 평소보다 신경 써서 친절한 어투로 말을 걸었다. 입가에 미소를 띈 채 조잘조잘 말을 이어가다 슬쩍 렌을 바라보았다. 효과가 있었을까?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겨우겨우 자기소개를 마친 렌은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시선을 움직여서 다른 곳을 보는 로드를 잠깐 관찰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잘 웃지 않는데다가 입까지 꾹 다물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펀치기계에 떠있는 숫자와 로드를 번갈아가며 보던 렌은 들려오는 로드의 친절한 말투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있던 몸을 조금 움직여서 로드와 거리를 약간이나마 좁혔다.
당연하게도 피어싱이나 염색 때문에 긴장한 건 아니고 본래 가지고 있는 낯가림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와버렸지만 이렇게 신경써주고 있는데 계속 긴장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게 이유였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렌은 로드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연다.
"저도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일단은 로직 봄 소속이니까 건물 내부를-음, 그러니까..네. 건물내부를 좀 둘러보다가 온겁니다."
중간에 말을 잠깐 멈추고 렌은 시선을 눈치채고 져지 지퍼를 애꿎게 만지작거리며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꽤 오래 침묵했다.
"이런 건 한번도 안해봤지만 말입니다."
조용히 펀치기계쪽으로 향했던 렌의 눈동자가 잠깐 로드에게 향했으나 곧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고 곧 렌은 한숨을 내쉬고 멋쩍다는 양 뒷목을 문지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혔다.
다행히 렌은 긴장을 풀고 가까이 다가왔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초면이니 이정도면 됐다. 여전히 크지 않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그러다 렌이 사과를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렌을 쳐다봤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낯을 가리는 건 사람의 성격이지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요. 저도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했던 때가 있어서 공감 돼요."
집을 나오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어울리지 못했던 시기가 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응했지만. 오히려 이젠 위험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지만. 이걸 이야기하면 다시 거리가 멀어질 거 같았다. 아무튼 그때의 경험으로 생각하자면 인간관계는 경험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라 판단이 되면 자연스럽게 편안해졌다. 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불안해지는 걸지도. 자신도 모르게 렌을 빤히 바라보았다. 곰곰이 생각하는듯 하다 펀치기계에서 살짝 떨어졌다.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이런 건 살면서 한 번은 해보는 게 좋아요. 만약 저한테 게임이 없었다면 심심해서 죽었을걸요? 아, 그때는 이런 오락기기는 없었지만... 아무튼 해보면 의외로 재밌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