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할당량을 다 채웠다. 이제부터는 클랜에서 놀기만 하면 되는데 마땅히 자신과 놀아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는 재미가 없는데. 실망한듯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디포스들과 어울릴까. 고민을 하던 차에 눈에 띄는 붉은 머리를 보고 반가움에 눈을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알고 있는 사이라 착각할 정도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린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힌다. 로드는 부담스럽게 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방긋 웃습니다.
로드는 마음에 드는 린의 대답에 들뜬 듯 웃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모르는 사이인데 말을 걸어도 받아주는 사람은 대부분 재밌다. 당연히 위험할 사람일 가능성도 높지만 심심한 로드에겐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재미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건 더 묻지 않고 하고 싶은 게 있냐는 말에 고민하는지 몸은 흔들거리며 중얼거렸다.
"마작은 적어도 셋은 필요하고, 술은 지금 즐기기에는 애매하고, 산책은... 나쁘진 않지만 싱거워요. 대화는 이미 하고 있네요. 저는 매번 새로운 걸 찾다보니 하고 싶은 게 있냐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재미만 있다면 뭐든 괜찮은데, 그래도 하고 싶지 않은 건 있어요. 독서! 예전에 독서 밖에 할 일이 없어서 책만 읽고 살았더니 글에 질렸어요. 린 씨는 보통 심심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묻지도 않은 정보를 알려주더니 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혼자서 의견을 내는 건 결론이 나지 않을 거 같았다. 이대로는 시간만 버리는 꼴이니 같이 놀기로 한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했다.
뭔가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는 로드의 모습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기 전부터 기분이 썩 괜찮았던 모양인데 아마 같이 놀겠냐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들어서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럼 이제 느긋하게 뭘 하고 놀지 결정되는 걸 기다리면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자니 몸을 흔들거리면서 여러 가지 놀이거리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주의가 자연스레 쏠렸다.
"음... 심심하면 잠이라도 자는데, 둘이서 같이 잠을 잘 순 없잖슴까? 아, 책 많이 읽으셨슴까? 재밌는 책이라도 있었슴까?"
심심할 때 뭘 하고 보내냐는 질문에 뭔가 그럴싸한 답을 해줄 수 없어서 조금 머쓱해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던 그녀는 문득 책을 많이 읽었다는 로드의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걸치며 웃었다.
잠을 자는 것도 시간 보내기에는 좋기는 하지만, 둘이서 하는 놀이가 될 수 없어서 아쉽네요. 꿈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Os를 가진 사람도 있을까요?"
몸을 흔드는 걸 멈추고, 고민하는 티를 냈다. 많은 책을 읽기는 했지만, 지루함을 달래려는 목적이다 보니 말 그대로 읽기만 했다. 내용을 곱씹거나 인상이 깊었던 책은 없었다. 재밌는 책은 더더욱 기억 나는 게 없다. 그래도 대답을 해주려고 과거의 일을 떠올려봤자 재미없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만 되새기는 꼴이라 생각을 그만두기로 한다.
"적게 읽지는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있어도 `재밌는 책`이라는 주제를 잡으면 말하기가 어렵네요. 거기서 읽은 책에서 재미를 느낄 상황이 아니었어서.... 린 씨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걸 알면 추천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꿈을 같이 꾸려고 찾았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적어도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그런 Os를 가진 사람은 없었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녀는 꽤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재미있는 책이라도 읽었냐며 이야기를 이어가긴 했지만, 책을 적게 읽지는 않았어도 재미있는 책을 딱 잘라 이야기하지 못하는 듯한 로드의 모습에 뭔가 느끼는 바가 있는지 표정을 유지하던 그녀는 잠시 고민하듯 흐음~ 하고 소리를 냈다.
"좋아하는 이야기라~ 역시 화끈한 게 최고라고 생각함다, 협이라고 아심까?"
의리! 뭐 이런 거 말임다. 어쩐지 눈이 반짝이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