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결혼하기 딱 좋은 날씨인데. 나는 원형으로 된 유리 탁자에 뺨을 묻고 맥없이 벽을 바라본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벽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서 오돌토돌 표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냉기는 유리의 그것이며, 창문을 타고 넘어온 산들바람은 그보다 따뜻하다. 나는 누군가 오는 것이 느껴져 허리를 곤두세웠다. 뼘에 붙은 종이자락을 떼어냈다. 도통 알 수 없는 색목인色目人들의 언어가 내 눈을 어지럽힌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선생이 들어왔나 싶어 나는 눈동자를 굴려 나무문쪽을 살핀다. 그러나 선생은 없고 웬 남자 인간이 서있지 않나. 나는 연필로 종이에 무언가 쓰는 시늉을 하며 그를 이래저래 칩떠보았다. 보아하니 나보다 선배인데다가 얌전하게 생겼다. "아, 아들이 참 성실하시네요-"의 인상이라고 해야할까. 하긴, 인간이면 뭘 하든 나보다 영어를 잘하겠지. 나는 선생이 올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저기요- 들리시나요- 이쪽이요, 이쪽."
나는 손을 들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인사하지 않는 손으로 종이를 내보이며 그에게 묻는다.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짜 별 거 아닌데. 완전 쉬워요. 그냥 영단어 암기 시험인데."
조금 구겨져 있는 그 종이에는 미즈미의 이름과 학번만이 써져있을 터였다. 답 하나 적혀지지 않은 시험이라 아예 처음부터 보는가 싶지만 이름 위에 빨갛게 적혀있는 '?' 와 그보다 큼지막하게 쓰여진 '0점'을 본다면 그도 아니다.
긴교스쿠이도 경품 교환이 있었나? 옛날부터 있었던 놀이라지만 세대에 따라 조금씩 생기는 차이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유행에 빠릿빠릿하지 못한 신의 눈길이 뒤늦게 가판대 뒤의 인형들에 닿았다. 둘의 대화를 멀뚱멀뚱 관망하던 후미카는 천천히 다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서야 무엇을 하나 보려 했는데, 때마침 시이가 턱하니 내민 물건을 살며시 받으면서 반사적으로 의문감을 표한다.
거북…?
"내가 대모신이기도 하다고 좀 전에 말했었니?"
둥글둥글한 데포르메의 귀여운 인간 캐릭터 인형을 보는 인간이 이런 기분이었나. 깜찍한 동족의 모양을 보려니 새삼스럽게 감상이 묘하다. 하지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나쁘지 않으니 이 정도면 마음에 드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같이 받은 선물인 셈이니 멀뚱히 인형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고맙구나. 나까지 챙겨주고 말이야."
분명히 고맙다는 뜻을 전했건만,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감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시이가 후미카에게 조금 적응했다면 이것이 제법 정성들인 인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받은 인형을 신력으로 미리 치워 보내거나 하지 않고, 품 안에 들어가도록 가볍게 안아 드는 것도 정성의 표현이었으니.
잔꾀를 부리는 아이에게는 장난 삼아 살살 딱콩을 해줘도 좋을 텐데, 불필요할 정도로 너그러운 풍어신은 그저 다 들어줄 생각인가 보다. 농담 삼아 맞받아치는 말이라도 하면 유쾌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저 처음에 하고 싶었다던 뱃놀이를 할 수 있겠으니 괜찮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후미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가에 내려가서, 대여 비용과 주의사항 설명 등을 처리한 후 먼저 배 위에 올라섰다. 아직 앉지는 않고 선 채로 물결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이렇게 묻는다.
"유속은 느린 게 좋니, 빠른 게 좋니?"
노는 저을 필요 없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흐르게 될 테니, 이보다 편안하고 분위기 좋은 선유(船遊)가 어디에 더 있겠나.
"여친없는게 뭐 어때서. 애초에 여친만들려고 한 적도 없고! 굳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두가 너 처럼 연애에 목마른건 아니거든?"
여기에 더해서 괴롭힘은 당해본 적 없다는 말도 추가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하면 뭔가 다른 말로 놀리며 부정할 것 같아 그만 말을 삼켰다.이제는 머리가 아파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마치 머리를 감는 듯 매만지다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그 매만지는 손이 빨라진다.
"거짓말 하지마! 네가 비웃고있잖아?!"
애초에 너도 남친 없잖아! 있으면 이러고 있을리가 없지! 라는 말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은 손에 멈췄다. 좋아, 쓰다듬는건 좋다고 치자. 그런데 왜 볼까지 그 손이 내려간단말인가. 이러다가 턱까지 만지겠네.
1.아미카에게 포장을 뜯지 않은 유선 이어폰 하나 선물, [저번에 산건데 필요가 없어서 주는 거. 참고로 싸구려는 아니야] 라고 쓰인 쪽지와 함께 =>12시 30분
2.에니시에게 고풍스러운 빈 앨범을 선물상자에 넣어 선물합니다.
메세지-제가 보내드린 하월시아 옵튜사는 잘 지내고 있나요? 적당한 빛을 주는 것이 잘 자라는 비결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드린 것들로 기쁘셨다면 다행입니다. 마지막입니다. 앞으로 이 앨범에 봄에 찍은 사진이나 앞으로의 사진들을 넣어두면 추억이 될 것 같다 생각해서 골라보았습니다. =>금록
3.짧은 주간이었으나 무엇을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아 기묘하게도 길었던 주간이었습니다. 보내드린 것들이 한 시기를 추억하기에 용이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다가올 나날, 무탈하십시오. 크리스탈볼이 올라간 오르골을 후유키에게. 참고 이미지 https://i.postimg.cc/prymr3Cd/f12387d128a6498184841666052d1a5f.jpg 오르골의 곡 https://www.youtube.com/watch?v=zlTAYMpIjc8 =>카시아리
4.츠무기에게 도토리 한 알. 그리고 작다고 하기에는 커다랗고, 커다랗다고 하기에는 작은, 적당한 크기의 새카만 상자. 노란 리본으로 묶여있고, 리본 아래로 푸른 나뭇잎 모양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적혀있는 내용은 'ね'. 리본을 풀고 상자의 뚜껑을 열면 플라네타리움이 들어있습니다. 가정용인지 크기가 커다랗지는 않으며 불을 밝히진 않았을 때는 검은색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불을 밝히면 하얗게 반짝반짝 온 방 안을 밤하늘로 비춥니다. https://postimg.cc/dLcDzt2x =>도토리씨
5.스즈에게
가미즈미 스파에서 파는 청룡 팔찌. 선물용으로 구매했는지 잘 포장되어 있다. 비싸보인다...
"요즘은 이게 예쁘다며? 네 눈에도 예쁘길 바랄게.
마니또라는 건 참 어려워. 하고픈 말도 다 못하고 말 줄이게 돼." =>미즈미
6.To. 테츠야
어느새 마니또의 마지막 날이네. 선물이 가지 않은 날은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 뭐야. 하루 보내지 못했다고 서운해말기. 마지막이니까 뭔가 거창한걸 보낼까 싶었지만 그런걸 받으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으니 평소처럼 보내기로 했어. 내가 보낸 선물들은 앞으로 잘 쓰였으면 좋겠네.
[잘 포장된 상자가 편지와 함께 리본으로 묶인채 놓여있다. 상자를 열어보면 푹신한 방석이 하나 들어있다.] =>몰?루
7.「감미는 좋아하십니까? 꽃은 어떠십니까? 선물을 고르던 중 당신을 떠올리게끔 하는 물건을 발견하여 이리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 작가에게서 동명의 시집이 출간된 바 있으며 어느 나라의 여왕이 즐겨 찾았다 하여 낭만 있는 간식이라 하더군요. 향이 진하니 몸의 감각뿐만 아닌 정서의 甘美에도 이로울 터입니다.
비밀스레 만난 그간의 낭만 역시 이 향훈과 같이 오래길 삼가 바라 봅니다.」
─보랏빛 리본으로 포장된, 제비꽃 설탕절임이 든 작은 상자가 마사히로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유즈
8.코로리에게 사쿠라모찌를 선물.
마지막 선물입니다. 벛꽃은 봄에 피는 일본의 대표적인 꽃이기도 하고 봄에만 핀다는 특수성과 그 흩날리는 꽃잎의 아름다움으로 인기가 많은 꽃 입니다.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듯이 벚꽃은 그 끝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지곤 하지요. 당신도 제 선물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니또도 이번으로 마지막. 다음에 또 다른 기회에 사쿠라모찌를 보낼 수 있기를 빌며. =>전국방콕협회장
9.오리박사가 히키에게 손목시계를 보냅니다.
『 네. 오리박사입니다. 오늘은 손목 시계입니다. 비싼 녀석을 고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조금 드네요. 많이 비싸진 않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담았고 어느 정도 값이 나가는 것으로 골랐습니다. 앞으로 1초 1초를 보낼 때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제가 당신의 무운과 행운을 기도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앞으로의 1초 1초에 이렇게 나마 제가 함께함을 기억해주세요. 』 =>오리박사
10.시니카에게 정교하게 장식된 머리띠를 선물
[저번 선물을 다른 거랑 바꿔치기 했다는 걸 들켰어. 취향에 맞지 않아도 나도 이걸 보내고 싶어서 보낸게 아니니 어쩔 수 없어. 여자애들은 이런 걸 더 좋아한다는데 난 잘 모르겠고. 뭐, 진짜 싫으면 날 알아내서 직접 오든지. 원래 다른 사람 선물인데 그 사람보다는 너한테 주는게 백배는 더 나을 것 같다. -Gamer] =>Gamer
11.후미카에게 군청색 져지를 선물. 갈색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색감의 군청색 져지. 가슴 위쪽으로는 흰색으로 바뀌어, 단순히 학교 체육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크림색 줄이 세겹으로 어깨를 타고 내려와 스포티한 인상을 남깁니다. 메모가 동봉되어 있습니다. [冬るい服にさようなら] 애교가 느껴지는 작문입니다. 후루이후쿠, 후미카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장난을 쳤군요. 낡은 옷이라고도 읽을 수 있으며 겨울 옷이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후미카에게 선물하는 봄옷이네요. 고지식한 인상을 흐릴 법한 겉옷입니다. 잘 입어주세요. 낡은 옷에게 안녕. =>주사기
12.토오루의 책상 위에 껌과 감자칩이 올려져 있습니다. 위에 놔둔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군요. '아마 이게 마지막 선물이겠지? 그동안 잘 받아줘서 고마워..!' =>더 클리너
13.오토하 쇼님께
늦봄 문안 인사 드립니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바람이 어느새 봄과 함께 멀어져 가는 계절, 평안하십니까. 이 편지를 보는 것도 어느새 이번이 마지막,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토하 쇼님과 함꼐한 이 시간은 대단히 무게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오토하님은 어떠셨을까요. 제 소박한 선물은, 도움이 되었습니까? 아주 별것 아닌 것들이었지만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선물들이, 오토하님께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행복할것입니다.
당신에게 따듯한 바람이 불기를 -전신주 [작은 함에 담긴 압화] =>전신주 =>허나 마감 시간 이후에 들어온 것이기에 직접 가진 않고 열심히 쓰셨으니 그냥 메시지만 올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