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은 얌전히 자리에서 숫자 셀 거니까 땡땡이 아냐! 나는 목에 방울 달고 있는 양이 좋아. 코로리가 정의하는 땡땡이는 수업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는 것이어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체육 시간에만 적당히 그늘지고 눈에 안 띄는 곳에 숨어서 자고, 다른 시간은 얌전히 자리에 엎드려서 잠드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말은, 잠의 신이라는 업이 있는 코로리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코로리는 다른 반이었어도 그냥 못 두고 본다는 거, 역시 비밀친구라서 그런거지?! 다른 생각하기 바빴다. 물론 가만 서서 놀지는 않았다. 시미즈가 가져다준 의자에 신고 있던 신을 벗고서 올라가니 폴짝 뛰어서 닿았던 곳에 손이 쉽게 닿아 편했다.
"아수라 남작 맞아ー"
그럴 수 밖에! 코로리가 시미즈를 보고서 아수라 남작이라고 한 것은, 반반 나눈듯 코로리에게 잘해주었다가 못해주었다가 한다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니또라고 생각할 만큼 잘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아닌 것처럼 땡땡이는 못 치게 하고! 코로리는 알아야했다. 땡땡이는 하면 안 되는 것이 맞다.
"심술은 시미즈 씨가 부리고 있는데?! 나그네가 된 기분이라구!"
나그네가 외투를 벗게 하겠다고 구름이 바람을 거세게 불게 했다가, 태양이 햇살을 내리쬐어 덥도록 하며 고생했던 그 나그네! 코로리는 손에 닿지 않아 못 닦던 부분을 닦다 말고 시미즈를 바라본다. 눈을 얇고 가늘게 뜨며 시미즈가 방금 한 그 말은 내가 할 말이란 듯이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햇님 시미즈씨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코로리의 몫도 가져와달라고 답한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말하지 못한 것인데, 그럼 햇빛이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미즈의 이름인 아키라는 밝게 빛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한자도 빛과 관련된 걸 쓰고는 했다. 하지만 언제 구름될지 모르니까 안 불러줄거야!
어쨌건 땡땡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아키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째서 저렇게 체육시간을 빠지려고 하는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듯, 아키라는 다시 X를 그린 후에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학생회장으로서도, 그리고 같은 반으로서도 그것을 두고볼 수는 없었기에 말은 하지 않았으나 당분간 체육시간에는 좀 지켜봐야겠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정말 작정하고 숨어버린다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저는 심술 부린 적 없어요. 햇님도 아니고요. 물론 이름은 밝다는 의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햇님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키라키라도 아니고."
일전에 어느 일학년에게 비슷한 별명으로 불렸던 것을 떠올리며 그는 괜히 불만족스럽게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가 일단 다녀오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교실 밖으로 나섰다. 걸래는 보통 화장실에 모여있을테니 거기로 가면 있지 않겠나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자 아니나다를까 주번용 걸래들이 여럿 걸려있었다. 그 중 두개를 챙긴 후에 물을 묻혀서 물기를 쭉 짜내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실력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말에는 스파에서 일을 돕는 그였으니까. 뭔가를 닦기 위해서 걸래를 사용한 것이 절대 이번 한번만은 아니었다. 일단 물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쭈욱 짜내고, 그렇다고 해서 물기가 아예 없을 정도는 아닐 정도로 나름 조절을 한 후에 아키라는 걸래 두 개를 챙긴 후에 다시 반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만큼 작업이 대충 끝났을까 싶어 아키라는 코로리 쪽을 힐끗 바라보다 교탁 위에 걸래 하나를 조심히 내려놓고 이것을 쓰면 된다는 듯 손으로 가리킨 후에 창가로 향했다. 일단 한쪽은 자신이 맡으려는 듯, 그는 가볍게 손을 뻗어 창틀을 천천히 닦아냈다. 그렇게 더러워진 것도 아니고 대청소 기간도 아닌만큼 그냥 가볍게 닦아내는 수준으로 하며 아키라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마니또는 잘 즐기고 있어요? 저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 재밌게 즐겨줬으면 해서.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학생회에서 계속 연말행사처럼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이것만큼 학생들이 친해질법한 방법을 찾진 못했거든요."
불러달라고 해도 안 불러! 비밀 친구여도 시미즈씨는 구름이야, 비오는 날에 안 구해줄 거니까! 불만이 차오르고 넘치는 표정으로 시미즈를 바라보다가, 시미즈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 따라했다! 코로리도 불만족스럽다고, 입술을 삐쭉 내미는 건 할 수 있단 듯이 똑같이 굴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면 고개를 휙 돌렸다. 토라진 듯이 보일법도 했으나, 코로리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다. 시미즈 없이 교실에 혼자 남은 지금이 기회였다!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분필을 하나 쥐고, 칠판의 제일 끄트머리로 향하더니 아랫쪽 구석에 무언가 끄적거린다. '심술쟁이 아수라 남작 구름 학생회장님' 이라고 적었는데, 이름을 적지 않은 건 구름이어도, 비밀 친구도 친구니까 봐주는 거야! 그러고나서 다시 의자 위로 올라와 칠판을 깔끔하게 닦아냈다. 시미즈의 의자도 빠르게 제자리도 돌려두었다. 창틀을 닦을 때도 의자가 필요할텐데 왜 그러느냐고 하면, 구름 의자는 발이 폭 빠질걸! 유치하다!
"엑?"
코로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의자를 드르륵 끌었고, 시미즈가 닦고 있지 않는 쪽으로 향했다. 무사히 창틀을 닦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우당탕 소리가 났다! 당연하게 시미즈가 마니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코로리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발을 헛디뎠다. 의자에서 발이 주륵 미끄러져서 뒤로 기울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아프기보다는 속았다는 허망감에 자리에서 못 일어났다.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지 보통 넘어졌으면 아프다는 말부터 할텐데, 코로리는 달랐다.
"테루테루보즈 100개 달아버릴 거야ー"
해가 뜨려면 구름이 개어야 하니까, 맑음을 바라는 테루테루보즈를 싫어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코로리에게 시미즈는 구름이니까!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혼자 속은 코로리는 억울하다!
우당탕 소리가 들리자 아키라는 깜짝 놀라 손을 멈추고 코로리가 있는 위치를 바라봤다.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넘어져있는 모습에 그는 깜짝 놀라 걸래를 내려놓고 코로리가 있는 곳까지 다가온 후에 당황한 표정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코로리를 바라봤다. 보아하니 의자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몸은 괜찮은걸까?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장악하려고 했으나 그보다도 빠르게 아키라는 코로리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이자요이 씨?! 다치지 않았어요? 발목이라던가 허리라던가 괜찮아요?!"
의자에서 떨어져서 넘어진 상태라면 역시 발목 쪽에 가장 타격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테루테루보즈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테루테루보즈를 100개 달건, 1000개 달건 그건 자유롭게 하세요. 그보다 걸을 수 있으면 그냥 자리에 앉아계세요. 남은 것은 제가 할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의자에서 넘어진 이에게 창틀을 마저 닦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창틀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적당히 먼지를 닦아내는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혼자 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은 그런 창뜰보다 의자에서 넘어진 자신의 반 친구가 괜찮은가였으니까.
불행 중 다행인 점 하나는 의자에 올라가려다가 넘어졌다는 점, 불행 중 다행인 점 둘은 코로리가 신이라는 점이었다! 안 아프다고는 못 하겠지만 정말 엉덩방아만 찧었을 뿐이었다. 지금 제일 아픈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마니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가 배신당한 마음이었다. 시미즈에게 악몽을 꾸게 한다면 햇빛 쨍쨍한 여름날 하늘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있는데 시미즈가 깜짝 놀라서는 옆에 와 있었다. 이러면 또 비행기 못 타겠잖아ー! 시미즈씨 심술쟁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넘어진 것 때문에 이렇게 놀란 것 같은데, 잡고 일어나라는 듯이 내민 손까지! ...아수라 남작도 아니다! 코로리는 내민 손을 잡고 사뿐 일어났다. 우당탕 요란스럽게 났던 소리에 비하자면 누가 봐도 별로 안 아파보인다.
"시미즈씨, 시미즈씨가 안 괜찮아 보여ー"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건 태평하다는 말이랑도 어느 정도 통했고, 코로리는 태평했다. 태평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시미즈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서 진정하라는 듯이 토닥이려 한다.
"그럼 10개만 달, 엑."
넘어졌을 때 났던 소리가 또 났다.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라니,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물론 하기 귀찮기야 했지만 양심이라는게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잖아요. 바로 옆에서 그렇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안 놀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의자에서 떨어질때의 충격이란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었다. 물론 코로리는 신이기에 별로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아키라는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의 상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그다지 아파보이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어린 눈빛은 치우지 못하며 일단 그녀가 손을 잡고 일어서자 그는 손을 풀고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 와중에 코토리가 멀쩡하다는 듯이 어필을 하자 아키라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분명히 넘어진 것 같았는데 뛸 수 있다고? 몸 엄청 튼튼한가? 분명히 넘어졌는데 아프지 않은거야? 운 좋게 안 접질러진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하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지 않다면 다행이고요. 그러면 조심조심 닦아주세요. 괜히 또 발목 삐였을까 싶어서. ...넘어지면 자주 다치는 곳이잖아요."
일단 아파보이지도 않고, 다친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는 안도하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맡은 창뜰을 천천히 닦아내니 머지 않아 그의 작업이 온전히 끝이 났다. 가볍게 손을 털면서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 되었냐는 물음을 가볍게 던졌다. 물론 아직 덜 끝났다면 천천히 기다려줄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대신 해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다쳤다면 모를까. 다치지 않았다면 남의 몫을 자신이 대신 해주는 것 자체가 타인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했기에.
"그것만 닦고 하교하시면 될 것 같아요. 쓰레기통이나 그런 건 어차피 전 학생회실에 가서 학생회 활동을 해야하니 제가 비울게요."
어차피 학교에 더 남아있어야 하니, 학교에 남아있는 이가 가볍게 비우고 문단속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아키라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