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잠든 시간, 호시즈키당의 특별 다실은 낮처럼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다다미 네장 반 크기의 공간은 문을 열면 그림이 채워지다 만 벽이 눈에 확 들어오고, 아크릴 물감 냄새가 코에 물씬 풍겨온다. 수북한 물감과 빈 캔버스들 사이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이는 다름아닌 요조라. 앞에 놓은 캔버스에 묵묵히 붓질을 하고 있는 요조라를 향해, 얄미운 남매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요루." "......"
역시 한번으론 안 들리나 보다. 그럼 그렇지. 마히루는 문턱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가, 문 옆 벽을 똑똑 두드렸다. 똑똑, 똑똑, 연달아 두드리자 어느 순간 소리를 깨달은 요조라가 붓을 멈추고 문가를 돌아본다. 장시간 작업 중 눈의 피로를 덜어줄 도수 없는 안경알 뒤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검은 눈이 깜빡인다.
"간식 먹고 하라고. 이 오빠님이 특별히 수플레 구웠다 이 말이야." "하... 안 먹어..." "아 알았다 알았어. 헛소리 안 할게. 그러니까 제발 먹어주세요." "진작, 그럴 것이지..."
잠시만, 이라고 말한 요조라는 붓질 몇번을 더 한 뒤 캔버스를 멀찍이 치워놓았다. 때마침 다 그린 것이었기에 마무리만 한 거다. 붓은 별개의 그릇에 옮겨두고,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난 요조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마히루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으쓱, 움직인 마히루는 손을 들어 요조라의 손을 잡아준다. 그러면 요조라는 그 손에 의지해 그 한복판을 조심히 빠져나온다. 한참을 앉아있었더니 다리에 힘이 없어 그런 것이다. 게다가 한두번이 아닌지, 마히루의 반응도 자연스럽다.
"약골 어디 안 가네. 슬슬 체력 좀 기르지? 너 아직도 체육 안 나가지?" "당연하지... 자는데..." "아이고 답답아. 아냐. 됐다 됐어. 야식이나 먹자." "야호..."
마히루는 가게에서 쓰는 시식용 테이블을 가져와 그 위에 수플레 그릇 두개와 머그컵 두개를 올리고 보온병에 담은 홍차를 컵에 반씩 따른다. 먹을 준비가 끝나면 남매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나란히 앉는다. 요조라는 수플레에 먼저 손을 뻗고, 마히루는 홍차를 먼저 마신다. 폭신한 수플레를 티스푼으로 폭 떠서 냠 하고 먹는 요조라를 지그시 바라보던 마히루. 한숨 돌렸다 싶을 쯤, 슬슬 말을 꺼내본다.
"꽤나 많이 했네. 저건 언제 끝날거 같아?" "오늘, 이면... 끝나..." "엥, 정말? 아직 벽 하나 남았는데?" "그 쯤이야... 세시간이면, 충분하지..." "아니 무슨 타임어택 하냐? 저걸 세시간? 건성으로 하는거 아냐?" "꼬집는다...?" "앗 아 그것만은 제발 하지마... 옆구리 멍든다고..." "흥..."
부루퉁한 얼굴로 수플레를 내려놓은 요조라는 자기 몫의 머그컵을 들어 그 위를 호오 호오 불었다. 뜨거운 건 잘 못 먹으니 차를 마실 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서너번 불고 잠시 기다려 적당히 식은 홍차를 조금 머금자 연하게 입힌 자스민의 향과 수플레의 달콤함이 홍차맛에 어우러지며 목에 넘어간다. 고된 작업 중에 먹는 당분과 카페인은 그야말로 천국의 음식이다. 요조라와 순서를 바꿔 수플레를 먹던 마히루가 흐물하게 풀어진 요조라의 표정을 보고 실소했다.
"표정 봐라. 극락 가겠다?" "안 가..." "어련하실까~ 아, 야야, 너네 아직 그거 하지 않냐?" "그거, 뭐..." "마니또! 오늘은 또 뭐 줬냐? 편지는?" "그게... 뭐가, 그렇게, 궁금해..." "궁금하지~ 너, 받은거 은근 잘 챙겨놨잖아~ 카메라도 필름 꽉 채워서 사진 찍어왔고. 관심 있는거 아냐? 그 '견우'라는 애한테?"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관심..." "모르니까 더 관심이 생길 수도 있지! 너도 슬슬 아 아야야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하여간... 매를 벌어..."
결국 옆구리를 꼬집힌 마히루를 보며 요조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길래 적당히 했어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머그컵과 수플레 그릇을 바꿔든다. 식었어도 맛있는 수플레를 폭폭 떠서 열심히 먹고, 남은 홍차로 입가심을 싹 한다. 요조라가 다 먹을 동안 아픈 옆구리를 붙잡고 있던 마히루는 어휴 저걸, 하는 눈으로 요조라를 째려보다가, 자업자득임을 깨닫고 먹던 거나 마저 먹는다. 요조라는 가만히 앉아 휴식을 좀더 취하고 있었다. 잠시 누구도 말하지 않는 시간이 흐르던 중, 요조라가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책갈피..." "어? 뭐라고?" "책갈피, 받았다고... 네잎, 클로버, 들은 거..." "그게 무슨, 아, 선물? 네잎 클로버 책갈피라. 뭔가 좀 진부하네." "그런가..." "그렇지~ 여자애한테 주는데 좀 반짝반짝 예쁜 악세사리 같은 걸 주지, 뭘 그런, 아 키링 줬구나. 아무튼." "하...? 받는 건 난데, 왜 히루가, 불평이야... 하여간, 이상해..." "참나, 내가 아무리 이상해도 너만 하겠냐?"
남매는 언제나처럼 티격태격하고, 서로를 세상 미운 듯 째려봐도, 곧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도란도란 얘기한다. 어느새 수플레 그릇이 비고 머그컵의 홍차도 모두 마시고나면 요조라는 다시 화폭 사이로, 마히루는 빈 그릇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나 간다. 적당히 그리다가 쉬어." "응... 잘 자, 히루..." "오냐."
아무리 얄미워도 하나 뿐인 남매이자 이해자를 손 흔들어 배웅한 요조라. 다시금 홀로 남은 공간에 꾸물거리며 자리를 잡고서 새 캔버스를 가져온다. 내려놓았던 붓을 들어 연분홍 물감을 듬뿍 묻히고서, 하얀 캔버스 위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어둡던 하늘을 샛노란 해가 떠오르며 밝힐 무렵, 요조라는 마지막 캔버스에 마지막 붓질을 하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시킨다. 이제 대강의 정리만 하고 조금 쉬었다가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 된다. 물감이며 붓을 정리하기 위해 손을 뻗은 요조라는 문득 남은 캔버스를 보았다. 앞서 썼던 것들보다 작은 그 캔버스는 물감의 발색 시험용으로 준비한 건데, 쓰지 않은게 두엇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집어든 요조라는 잠시 무언가 생각한다.
이거, 하나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자 손이 절로 움직여 깨끗한 붓을 집어든다. 붓은 짙은 초록색 물감을 푹 찍어 캔버스로 가져온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 캔버스에는 섬세하게 그린 커다란 네잎 클로버 한 송이와 그 밑에 살짝 웅크려 선잠을 청하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진다.
그리고 토오루주... (석고대죄 자세) 네가 어제 다시 일상 확인하다가... 내가 글을 잘못 읽어서 토오루가 속으로만 생각한걸 미즈미가 답하는 엥 스러운 전개를 만들어버렸네 미안해,,,, 내가 그때 정신이 없었나벼,,,,,,, 다음에는 꼭 이런일 없이 할게 웅,,, 미안혀,,, 어제 밤에 발견하고 비명질렀어.....
협회장님, 안녕ー 못 해! 네번째는 못 안녕이라구, 못 안녕. 지금도 모래바람 속에서 꼭꼭 숨어있으면서 오아시스를 내가 어떻게 찾을 수 있다구! 가미즈미 고양이들한테 전국방콕협회장님이냐고 물어보고 다니는 방법 말고는 모르겠단 말야. 과수원에서 자란 고양이인거야? 협회장님이 누구인지 맞추려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전혀 모르겠는데! 하나도 안 무서워해도 괜찮잖아! 협회장님 만나면 서운하다고 울거야. 그렇게 들키는게 싫었냐고 울거야!
그래도 있지, 협회장님한테 주려고 편지도 쓰고 선물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만날거야. 못 만나면 이 편지들이랑 선물들은 갈 곳이 없어지니까 만나줘야 해!
사실은 협회장님이랑 나랑 아는 사이인 걸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비밀 친구에서 비밀은 떼어버리고 친구할 수 있지 않을까. 정체 맞추고 싶은데 역시 전혀 모르겠어. 협회장님이 립밤을 선물해줬을 때 '여성분이 쓸만한 물건' 을 보낸다길래, 협회장님은 남자아이인걸까ー 생각했지만 학교에 남자아이가 한 명 뿐인게 아니잖아. 일부러 속이려고 그런 말을 한 거면?! 협회장님이 선물이랑 같이 해줬던 말들이 전부 꾸며낸 말일 수도 있는 건데. 만약에 협회장님이랑 나랑 아는 사이였고, 그래서 내가 못 맞췄다고 서운해하면 한 여름에 눈 내리게 해버릴거야.
그래도 초콜릿은 맛있어. 다 안 먹을테니까 만나게 되면 나눠 먹자!
🍫 코로리로부터!
/ 마니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갱신! 점심 먹고나서 일상 구해봐야겠다 싶기도 하고 (*´ω`*) 다들 점심 맛있게 챙기고 오늘도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