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피는 꽃은 달맞이꽃이 아니라 양귀비꽃이라구ー.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서만 맡아지는, 오로지 코로리만 맡을 수 있는 꽃단내가 나지 않은 적이 없다. 하루라도 모든 인간들이 제때 잠을 청한 적이 없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목소리도 생글생글, 말갛게 대답했다. 하지만 링고아메를 와삭 깨무는 소리가 어쩐지 양귀비ー꽃단내가 나면 양귀비라고 부른다ー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코로리가 잠의 신을 그만두고 다트의 신을 하게 되는 날이 오려면, 모두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푹 잠들게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잠들면, 풍선 다트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쨩 말고 츠쨩! 나 산타클로스야ー"
서점의 두 남매가 살아온 시간을 합해도 쌍둥이 하나가 살아온 시간의 반의 반의 반에도 턱없이 모자르다. 그래서 꼬맹이라는 단어에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다가, 다른 이름이 나오니 고개를 저었다. 하루나의 몫은 오빠가 선물해줬으니까, 그 오빠에게는 코로리가 선물을! 다트하기 전부터 남매에게 인형을 안겨줄 작정이었으니, 성공적인 계획 맞다, 세이 선물! 일 뻔 했다.
"응, 이럴때만 오빠! 세이오빠, ¹달마씨가 넘어졌어!" ¹일본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달마씨가 넘어졌다고 한다.
달마씨가 넘어졌다고 외우자마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활짝 핀 벚나무 아래로 경로를 이탈했다! 풀썩 쭈그려 앉아서 제일 상하지 않은 벚꽃송이를 몇 개 줍는다. 한 송에는 링고아메, 한 손에는 벚꽃송이들을 쥐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코세이가 먼저 집에 가지 말라고 또 오빠라고 부른 것이다. 달마씨가 넘어졌으니까, 세이 움직이면 술래야! 다섯송이 정도를 주으면 다시 코세이의 옆으로 발을 놀려 돌아온다.
"우유!"
대답은 짧고 굵게, 지금은 주워온 벚꽃송이를 코세이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심고 싶다! 보통은 귓가에 꽂아주겠지만, 코로리는 꼭 머리띠를 쓴 것처럼 나란히 총총총 꽂으려고 한다. 벚꽃을 못 꽂게 하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볼게 뻔하다.
"...유급할래!"
일부러 눈썹을 휘었다! 동그랗고 처연하게 뜬 눈이 평소보다 자주 깜빡이면서 코세이를 바라본다. 졸업하면 신계로 돌아가자는 말처럼 들렸는지, 일단 졸업부터 미뤄보려고 한다.
리리가 말하는 양귀비들은 잠이 부족한 인간들을 뜻하는 것이고, 양귀비 꽃밭이 없어진다는건 모든 인간들이 푹 잠을 잔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나도 리리도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수준이라 그냥 상상 속의 행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선물은 꼬맹이가 아니라 다른 쪽이 받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 그 곰인형도 언젠가 하루나가 가지지 않을까 싶지만. "
아무래도 고등학생 남자애보단 어린 꼬마 아가씨가 더 좋아할법한 선물이니까. 오빠가 받은 선물이라는건 알고 있긴 하겠지만 결국 탐을 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착한 아이니까 때를 쓰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 응? "
갑자기 달마씨가 넘어졌다니,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멀쩡히 가던 길을 두고 이탈하는 리리를 보고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벚꽃이 한껏 피어있는 벚나무 아래로 향한 동생은 쪼그려앉아서 꽃송이들을 줍는가 싶더니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와 머리에 하나씩 꽂기 시작한다.
" 뭐하는거ㅇ.. "
우유와 함께 먹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출하고 머리띠 마냥 꽃송이를 꽂기 시작하는 리리의 손을 막으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올리자 가늘어지는 눈을 보고선 저항의 의지를 내려놓는다. 분명 집에 갈때까지 이러고 가기를 원하겠지. 중간에 내가 털어내기라도 할려면 또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볼것 같다.
" 유급은 청룡신님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
유급이 쉬운 문제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지금도 어찌저찌하면 유급 타이틀을 딸 수는 있겠지만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 무엇보다 교장선생님의 눈총이 따가울게 분명하다. 그렇게 눈치 받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는 없다!
" 나는 딱히 널 데리고 가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 너가 있는만큼 나도 같이 있어줄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
서로 오래 떨어져본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인간계가 좋지도, 싫지도 않으니까 그냥 동생의 의지에 따라 있을 생각일뿐이었다. 다만, 졸업 후엔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살아야할테니까 그게 조금 걱정일뿐.
" 아 맞다. 리리, 아까 만난 소녀가 하나 있는데, 잠을 잘 못자는 눈치더라. 혹시 나중에 도와줄 수 있어? "
이제 요리는 거의 끝이 난다. 끓는 물에 면을 삶고 그 면을 커다란 그릇 두 개에 나눠담았다. 그 양은 왠만한 점보 라멘 급일까. 그곳에 마지막에 숙주 나물을 넣어 익힌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숙주 건더기를 올린 뒤, 썰어놓은 차슈를 가득 올리고 녹색이 만연한 쪽파를 올려 색을 내었다.
“또 놀리시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라멘을 끓여 대접하는 후배가 많지 않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렌은 큰 그릇에 가득 담긴 라멘을 식탁 위에 올리고, 간단한 장아찌류의 찬거리와 수저를 놓아 금새 한 상을 내었다. 라멘의 양은 꽤 많았는데 지금까지 히키와 함께 점보라멘을 부수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딱 알맞은 양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렌은 히키의 맞은 편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보통의 라멘과는 꽤 많은 양의 라멘 위에는 차슈가 두 번은 더 추가한 것처럼 잔뜩 올려져 있다. 사실 집에서 해먹는 라멘의 묘미는 먹고 싶은 만큼 올릴 수 있는 차슈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렌은 잠시 히키가 먹는 것을 기다렸다가 히키가 라멘을 먹기 시작하면 이내 젓가락을 들었을 것이었다. 먹은 라면은 꽤 괜찮은 맛이 나왔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