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대하고 즐거워했던 축제도 끝은 있다. 오늘밤 별이 뜰 새도 없이 세상을 환히 밝히고만 있을 것 같았던 축제 노점 불빛이 사그라든다. 불 하나가 줄어들면 별 하나가 뜨고, 세이 까마귀됐나봐, 어디 숨은거야! 코로리는 손 하나에 링고아메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레몬맛 사탕을 좋아하는 코세이에게 레몬아메를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레몬은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레몬 대신 사과라도! 오늘 먼저 아르바이트가 끝났다고 홀라당 마츠리에 와버린 것에 대한 뇌물이었다. 벚꽃 사진을 찍어보내면서까지 정성스럽게 약 올려놓고, 링고아메로 퉁치려는게 더 얄미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나마도 코세이가 마츠리에 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고작 링고아메였다. 아무도 몰랐던 유성우가 오늘밤 하늘을 수놓았기 때문에 마츠리가 한창이었던 이 거리 어딘가에 제 쌍둥이가 있다고 확신했다.
"세ー이!"
저 뒷통수, 저 걸음걸이, 원래 코로리의 색이였던 하얀 머리카락! 몇백 몇천년을 같이 보낸 쌍둥이를 못 알아보는 것도 어렵다. 코세이를 발견하고 나니 양 손 나란히 들려있던 링고아메 중 하나가 높이 들렸다. 저러다 떨어트리면 볼만하겠다! 코로리가 손을 붕붕 흔드니, 손에 쥐어져있는 달게 굳은 사과도 어깨 한쪽에 걸쳐져 있는 가방도 흔들흔들 속절없이 흔들린다.
"가정부나 사용인. 가족이 아니지만 집에 머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인 거죠. 음, 큰 집이 아닌 평범한 집엔 거의 없는 개념 아닌가요? 토와 선배님은 사실 상당히 도련님?"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토와주도 신경쓰지 않는 사실이지만 소년은 일단 찔러본다. 지금은 산후조리나 맞벌이 등의 가정에서는 보조로 부르기도 하는 등 예전과 같은 위치는 아니지만 흔히 접할 만한 것도 아니니.
"떡이 아니라 만쥬도 좋죠! 팥이 들어간 것과 들어가지 않은 것 중 무엇이 더 옳은가로 논쟁이 자주 일어난다던가, 식으면 수분이 빠져나가서 딱딱해져서 먹을 수 없게 된다던가 여러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네요. 달콤한 된장이 들어간 소스라면 저는 앙금은 들어가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 논쟁까지 갈 정도라면 나름대로 어떤 맛이 있는 모양이에요. 야끼만쥬도 찾아볼까요─."
소년은 말을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나설 분위기는 아니다. 관심은 생긴 모양이지만.
"메일라드... 요리할 때 재료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더 맛있어진다는 것밖에 모르는데, 고기요리가 아닐 때도 적용되는 걸까요?"
관심분야를 벗어난 내용이 나오자 급격히 줄어든 상식 범위로 소년은 대답했다. 맛이나, 향이나 사람들을 돋우게 할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그 정도.
"앗, 저도 제대로 축제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에요! 처음의 동지네요."
축제가 열리는 것도, 여러 사람의 재주가 모여서 단지 축제라는 상징성 뿐이었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모여서 즐겁게 노는 사람들도 모두 정말 좋아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소년에게 바쳐진 축제는 즐거움을 뺀 공물뿐이었던 것이다.
"좋아요! 이제 거의 다 익어가는 것 같으니, 주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다 사 가기 전에 빨리 2인분 받아와야겠어요. 철판 가득이라 그렇게 빨리 줄어들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많아서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예를 들어 부딪쳐서 쏟는다던가이다. 별일이 있지 않으면 소년은 / "그러면 제가 다녀올게요, 후배니까요─." / 라고 장난스레 손을 흔든 후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봉투를 들고 나타났을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 두 개에 나누어 담은 2인분이 끈으로 한 번 더 예쁘게 묶여 반투명한 봉투 너머로 비치는 게 보였을 것이고.
"음식 노점들이 모인 곳의 끝에 이어지듯 노는 부스들이 배치되어 있는 거군요. 놀다가 배고프면 먹으러 오라는 걸까요, 배부르면 그 다음엔 놀기도 하라는 뜻? 실용적이지만 몇 번 왔다갔다하면 금방 돈을 써버릴 것 같은 구조네요─."
불평하는 건지 아닌지 모를 말투로 소년이 인파 너머를 내다보며 말한다. 명확히 정해진 구역은 없지만 대충 갈라지는 부분에서는 몇 시에 단체로 진행하는 빙고용지를 나눠주는 사람이나, 고리 던지기 게임을 하다가 잘못 날아온 듯 바닥에 나뒹구는 플라스틱 고리가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자요이 쌍둥이 좋아해줘서 기쁘다, 세이 자리에 사탕을 갖다둔 건 역시 코로리 자리에 둔다면 오빠에게 갖다주기 전에 하나 빼먹을 거 같아서?! 좋은 선택이었어 ( ◠‿◠ ) 그리고 모두에게 사쿠라모찌, 카시와모찌, 과일사탕 고맙다구! 매주 모두를 챙겨주는 상냥함 감동이야~! ( ´∀`)
이익-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는 말에 스즈는 그렇지 않다던가 하는 대꾸는 하지 않으면서 꺄르륵 하고 웃을 뿐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스즈는 고래가 아니고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다. 귀엽다던가 예쁘다던가 하는 말이 귀에 듣기 좋고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몇 번이나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시작된 통화가 끝났다. 데이트라는 말에 놀란듯한 소리에 스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기 무릎에 기대고 배시시 웃었다.
" 응. 데이트! "
친구와 둘이 놀러나갈때 스즈는 곧잘 '데이트'라는 말을 사용했다. 오늘은 누구랑 데이트했어 내일은 누구랑 데이트 할거야 지금은 누구랑 데이트하고있어. 그런 말들. 조금 더 사이가 가깝게 보이게끔 하고 그냥 '놀고 있어'라는 말 보다 더욱 깊이가 있어 보였다. 미즈미에게 이 '데이트'라는 말이 조금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눈치챈 스즈는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 에- 싫다~ 나는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쨩은 아니었던거야? "
다분히 장난이 가득한 말이었다. 스즈는 반응을 살피듯이 조금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장난이 지나치면 좋을 건 없지. 스즈는 금새 '라는건 농담~' 하고 덧붙이며 꺄르륵 하고 웃었다. 굳이 남이 싫어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해서 밉보인다면 멀어지고 잊혀진다. 그런건 이제 싫으니까.
" 그래도 데이트라는건 맞다고 생각해. 둘이서 이렇게 놀고 있으면 데이트잖아! 이이쟝~ 축제에서 데이트라니 낭만있어~ "
그리곤 그물 하나를 더 해먹었고 이익...! 하고 부들부들하며 터진 그물을 옆으로 빼두곤 친구라는 말에 또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 확실히 스즈는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많은 편이었다. 여기저기 문어발처럼 인맥을 늘려가서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두 세 다리 안에 가미즈미 고등학교의 모든 사람을 알고있다. 미즈미를 처음 보자마자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 응. 친구 많은 편이지~ 세 다리 안에 가미즈미 고등학교의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어. 이건 농담이 아니다? "
그리곤 우리도 친구냐는 말에 스즈는 뭐가 즐거운지, 혹은 우스운지 꺄르륵 하고 웃으며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 미쨩 재밌네~! 응. 당연히 친구지! 오늘 이렇게 같이 데이트했잖아? 그럼 친구지! 라인 교환할래? 전화번호도! "
그리곤 파우치를 열었다. 여기저기를 뒤적이던 파우치 안은 화장품이나 지갑따위가 들어있었다. 누가봐도 놀기를 좋아하는 여고생의 파우치다. 스마트폰을 꺼낸 스즈는 잠금을 풀었다. 배경화면은 친구가 찍어주었을 법한 스즈 본인의 사진이었다. 벚꽃이 수놓아져 있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골목에 쪼그려 앉아있는 사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이런 모습들이다. 놀기 좋아하는 불량학생이자 문제아. 속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어쩌면 의외의 반전 포인트 일지도.
학생회실은 유난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전교생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학생회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마니또를 섞어서 맺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록 도시처럼 큰 학교는 아니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또 작은 학교는 아니었다. 학생 수가 생각보다 많았던만큼 적절하게 잘 섞는 것이 중요했기에 아키라는 물론이며 부회장, 그리고 다른 임원들까지. 온갖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이것저것 준비하며 열심히 짝을 맞춰나갔다.
그리고 정확하게 3일 뒤.
학교 게시판에는 마니또에 대한 것이 공지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참가하는 이들에 한해서 학생회실로 오면 자신이 마니또로서 선물을 줘야하는 학생의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정말로 사소한 정보를 제공해줬을 것이다.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참여를 한 시점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당신 옆의 같은 반 친구. 어쩌면 당신의 비밀 친구, 마니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이주의 소원권에 따라 마니또 이벤트를 앞당겨서 하기로 했어요! 일단 참가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마니또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들은 [마니또 이벤트 참가] 라는 머릿말을 붙이고 자신의 캐릭터 이름. 그리고 자신의 마니또로서의 이름을 적어서 보내주세요. 그러니까 공지할 때 아키라 -> 부회장. 이렇게 쓸 순 없잖아요? 4DX -> 부회장. 이렇게 적어서 올릴 예정이기에 마니또로서의 이름을 꼭 같이 보내주세요! 캐릭터 이름이 없거나 마니또로서의 이름이 없으면 신청은 무효 처리에요!!
위험하다던가 모함당할 것이라는 말에 스즈는 꺄르륵 하고 웃었다.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단순히 그것 하나 뿐이다. 처음 사귄 또 다른 새로운 친구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덧없이 지내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즐거운건 즐거운 것이지만 남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멀어지게 된다. 멀어지게 되면 친구가 아니게 된다. 친구가 아니게 되면 잊혀진다. 잊혀지고 잊혀진다.
" 에- "
꺄르륵하고 웃던 입가에 미소가 조금 가신 것은 '나쁜 거잖아' 하는 말이 들린 다음이었다. 스즈는 한 차례 숨을 들이마시곤 조금은 다급하게 잠금을 풀고 시이에게 건넸다. 갤러리까지 열어서 직접 그 손으로 지워도 상관 없다는 눈치였다. 자신을 찍은 셀카부터 해서 이 친구와 저 친구와 찍은 사진들과 그 날 그 날의 추억과 하루가 담긴 갤러리는 Camera(17426)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 미안, 미안해. 시쨩이 그렇게 싫어할 줄은 나 진짜 몰랐어. 지워. 지워도 돼. "
미움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잊혀지게 된다면 그 마저도 싫다. 엄-청 잘해줬다는 말에 스즈는 '응. 그랬지.' 하고 답하며 조금 바뀐 분위기로 말했다. 직접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잠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이 스즈는 오! 하고 손뼉을 짝 쳤다.
" 있지있지- 시-쨩, 그럼 같이 사진 찍자. 지워진건 지우고 새로 찍자! 이이쟝~ 오늘을 기억해야지! "
그 정도는 괜찮지? 라고 말하듯 스즈는 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금새 화색을 되찾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늘은 새 친구를 사귄 기분 좋은 날이다. 이런 날에 실수따위의 것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망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하던 요리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스즈는 잠시 다듬어두었던 채소를 확인하곤 뭔가 생각하듯 음~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뭔가 들고 찍었으면 좋겠는데.. 귀여운 거 뭔가 없을까. 귀여운게 좋아! 아. 그래도 지금 나 메-챠 보코보코라서 별로 안 귀여울지도~ 시-쨩이 귀여우니까 상관없나~ "
스즈는 꺄르륵 하고 웃었다. 상처입고 다치기야 했다지만 소중한 친구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한 녀석을 혼내주었으니 만족이다. 영광의 상처다, 이런 것 쯤은. 스즈는 시이가 자신의 갤러리 안을 얼마나 뒤져보던 상관이 없다는 듯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었다. 사진을 지우고 돌려준다면 다시 더 예쁘고 귀여운 사진을 찍어서 남기면 될 일이라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