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데이트라는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 거렸다. 물론 나는 서로 마주보면서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헤어지기까지를 데이트라 칭하고는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에게 들은 것은 처음이라고 해야할까. 지금까지는 내가 적극적인 포지션이었는데 반대의 상황이 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역시 여기서 바로 결혼하자고 말하면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또 아닌 것 같다. 일전에 인간 벗에게 사랑한다 하더니 본인도 사랑한다 답하고, 결혼하자 했더니 '에~ 진짜? 나야 완전 좋지!' 거리더니 결혼은 커녕 나 버리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었나. 한 두번이면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인간 여자들의 풍조처럼 보였다. 입 안이 아리고 속이 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인간들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사실 저도 줄곧 데이트라고 생각해왔답니다. 그래서 저희 결혼식은 언제로 잡을까요?"
아. 분명 결혼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하려 했는데 말이다. 이 입이 문제라 가끔 나와 상의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참에 결혼까지 약속을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눈을 슬쩍 돌려 스즈의 눈치를 본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신노릇 좀 하면서 눈치를 본 적의 거의 없는데 요즘 들어 자꾸 안절부절 못해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농담이라는 대답인지라...
"저도 농담이었어요! 와-! 저희 개그 코드 잘 맞는 것 같아요, 그죠? 아하하하! 아하하....."
너랑 결혼까지 생각했어... 나는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또 흐르지 못하게 살짝 웃기로 한다. 다행히 내 눈은 여전히 퍽퍽하고 건조한지라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몇 번 하늘을 보고, 또 통 속의 물고기를 보다가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통도 나는지라 잠이나 자고 싶었다.
"어라? 진짜요? 그렇죠! 둘이 즐거우면 데이트잖아요!"
지금 말을 무려 두 번이나 번복한 것 같은데 나는 기분탓이라 여겼다. 응응. 일단 저 인간 여자가 날 보고 데이트라고 했고, 밀당 솜씨가 아주 제법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봐라. 지금도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고 있지 않냔 말이다.
"....그래요? 그러면 혹시 애인은 있을까요?"
일단 남자친구도 친구고 여자친구도 친구다. 그러니 저 많은 친구 중에 애인의 비중이 얼마나 차지하는지가 내 주요 문제다. 첩도 괜찮고 양다리도 괜찮지만 나와 결혼하지 않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아무튼 친구가 되고 나면 애인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들었으니 나는 핸드폰을 꺼낸다.
"정말? 좋아, 좋아. 나 라인 친구 100명 구하기가 목표였어."
이것은 정말로 빈말이 아니다. 일단 100명 친구를 구하고 나면 한 명은 나랑 결혼해주겠지. 그마저 안된다면 1000명 친구를 목표로 삼는다. 나는 핸드폰 번호를 찍어달라는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도 스즈의 핸드폰을 받아들어 내 라인 아이디도 쳐주고 핸드폰 번호도 저장했다. 둘 다 잘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장하기도 했다. 일단 처음 목표는.... 이 배경 화면이 내 사진으로 바뀌는 걸로 해볼까.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포즈를 고민했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내 벗이 어떤 포즈를 취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러면 지금 바로 찍을까요? 마침 저기 벚꽃도 예쁘게 폈네요."
나는 몸을 일으켜 핸드폰 사진 앱을 켰다. 나도 강호의 도리를 알아서 그냥 카메라로 찍으면 대역죄인이 되는 것 쯤은 안다. 요즘 가장 유행중인 사진 앱인데, 신통방통하게 실물보다 더 예쁘게 찍어준다고 한다. 나는 손을 쭉 뻗어 핸드폰을 들고 벚꽃과 스즈가 모두 잘 나오게 화면을 조정했다. 하나, 둘, 셋, 작게 속삭이고는 브이를 올렸다.
가벼우면서도 진정성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스즈 본인의 잘못이 맞았다. 장난이었어도 상대가 싫어할 법한 행동을 했고 그걸 가지고 장난까지 쳤다.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굳이 미움을 살 필요는 없다. 스즈는 눈을 돌려 가까운 거리에 있던 고기망치에 눈길을 한 번 주고 다시 시이에게 눈을 돌렸다. 항상 무리지어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 안에서 불협화음이 있기도 마련이다. 여자아이들 싸움이란 것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겉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진다.
마치 산불처럼. 그런 산불을 조기 진화가 중요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시작과 동시에 잘 끈 모양이다.
" 에- "
스즈는 자신을 토닥이는 손길에 잠깐 눈을 감았다. 꼬질꼬질한 고양이라는 말처럼 살짝 눈을 감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잠깐 부비적댔다가 번쩍 하고 눈을 뜨곤 다시 한 번 에- 하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낼법한 소리를 내곤 꺄르륵 하고 웃었다.
" 시-쨩 나보다 후배인데! 나보다 어린데! 아하하! "
자기보다 어리고 키도 작고 심지어 같은 학교 후배이다. 그런데 지금 완전 자신이 한 학년 후배인 것 마냥, 더 어린 여동생인 것마냥 행동했다. 조금은 부끄러운 것도 느껴져서 스즈는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넘겨버렸다. 한 장의 추억이 사라지면 두 장, 세 장으로 채워나가면 된다. 그것으로 잊혀지지 않으면 된다. 어느 날 난 너 같은 사람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사진이 증거라고 들이밀 수 있고 누군지 긴가민가 하다면 그 때도 사진으로 기억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잊혀지지 않는다.
" 편집해준다면 안심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할래. 조~금 보코보코긴 하지만 오늘은 보코보코인 날이니까! 우왓, 이거봐. 반응도 의외로 좋아. "
스즈는 스마트폰을 한 손으로 휙휙 조작해 아까 소파에 혼자 앉아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보여주었다. 빨개져서 부은 눈가와 터진 입술. 굳어서 말라붙은 피. 그리고 미소짓는 자신의 사진. 화면 가득 자신을 채워넣은 사진은 이런 모습도 귀엽다던가, 역시 스즈라던가 하는 친구들의 말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방인들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칭찬 일색이다.
" 에, 그러고보니 시-쨩 꽤 유명한 스트리머인거야? 오..! 그건 개쩔지않아? 갑자기 대단해 보여! 멋있어! "
" 결혼식은 좀 이르잖아~ 벌써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라구~ 음, 그래도 어떨까? 음~ 으음... 모르겠다! 어려워~ "
농담이라는 말과 개그 코드가 잘 맞는다는 말은 은근슬쩍 넘겨버렸다. 이것 만으로 충분히 즐거우니까. 그저 지금 둘의 즐거운 데이트라면 그걸로 만족이다. 스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한 번더 얇은 그물이 잡고 물 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물고기가 이리저리 도망치는 모습이 뭐가 우스운지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연민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고 동질감도 조금은 느꼈는지 모른다. 어디서 동질감은 느끼느냐면 저 녀석이나 나나 열심히 노력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였을까.
" 애인? "
스즈는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그물이 또 찢어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지금은 없네. 친구만 잔뜩이야~ 애인은 구하는 중이라고 해둘까? 남친도 여친도 좋아~ 구직중이야! "
그렇게 말하며 스즈는 건네받은 스마트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어 기록을 남겨두곤 라인 아이디도 찍었다. 친구 추가가 된 것 까지 확인하곤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 자신이 맞는지 한 번을 더 확인했다.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있다. 그 날은 유독 날이 좋은 봄이었고 또 친구들과 놀던 날이었다. 바이크를 타는 친구가 있어 그 바이크의 뒷자리를 빌려 앉아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 에, 지금 바로? "
스즈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럼 그럴까? 하고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확실히 벚꽃축제다. 여기저기 벚꽃이 멋지게 피었다. 풍성한 분홍빛을 흩날리는 벚꽃들이 한가득이다. 금새 사그라들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예쁜 추억을 선물해 준다면 그걸로 만족인 셈이다. 스즈는 하나, 둘, 셋, 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으며 항상 처럼 미소를 지었다.
" 한 장으로는 아쉬우니까 더 찍자. 더 많이 찍자! 오늘의 데이트를 기억해야지! "
금새 또 즐거운 일이 생긴다. 스즈는 꺄르륵 하고 웃으며 신난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려던 참이었다. 그리곤 큰 벚나무 하나를 찾았다. 이 나무가 좋겠어. 스즈는 그렇게 말하며 '미-쨩! 여기여기!'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예쁘게 찍어줘' 라는 말과 함께. 벚나무 앞에 선 스즈는 어떤 포즈가 좋을지 고민하는가 싶더니 자신이 입은 오늘의 후리소데를 자랑하듯 그리고 그 나이대 또래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자신이 최대한 귀엽고 예쁘게 나오도록 그리고 떨어지는 벚꽃이 예쁘게 동화되도록 포즈를 취했다.
" 미-쨩! 같이 사진 찍을까? 저기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하고 같이 찍자. 분명 예쁘게 나올거야~ "
>>165 아~~ 그 기분 알지 (:D)~~ 천천히 줘도 괜찮아! 느긋~하고 여유~있게 줘도 좋아! 왜냐면 즐거우면 그걸로 오케이니까! 아니 근데 괴롭히고 싶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해.......... 사실은 스즈즈도 그런.... 그........ 그런거 쪼아해.........^w^...!!!!!!!!!!!!!
음~ 아마 그러면 겉으로는 내색 안하겠지! 그런데 연락 읽씹 당하는 빈도가 늘거나 놀자 그랬는데 바쁘다 그래서 그럼 다음에 보자 했더만 SNS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신나게 놀고있는거 막 올라오고 그러면.. 스즈즈 많이 불안해 할거야 (:D)~ 예쁘게 한 네일도 물어뜯고 라인 보내볼까 말까, 전화해볼까 말까 많이많이 고민하겠지..!
>>173 시이쨩한테 고민고민 하다가 전화하면서 지금 바쁘냐고 물어보고.. 지금은 바빠서 통화하기 힘들다는 이야기 들으면서 응 알겠어~ 하고 말하지만 왜인지 SNS에 바쁘다 그랬으면서 노는 사진 올라오고 :3..! 불안증세(...) 도졌다가 나중에 또 만나서 하루 즐겁게 놀고 돌아가면 역시 그 때는 사정이 있었던거야~ 시-쨩이 날 잊을리가 없지! 하고 안심하지만 한 쪽 구석에서는 또 그러면 어떡하지. 진짜 또 잊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스즈즈... (:D)...!!
>>174 이런거에 취하면 배탈나서 취하면 안돼 >:0!!!! 별의 신님이랑 일상은 기대하고 있다구! 카페에서 제일 귀여운 메뉴가 뭔지 물어보면 뭐라고 하려나~
>>175 스즈즈의 불안함은 시이의 신앙을 차근차근 불려주고 있어 자기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목 매는 게 쾌락신 신앙이니까 스즈에게 변화가 생기면 시이 쪽에서 이질감 느끼고 매달릴 거란 게 재밌지 시이는 근본적으로 세상에게서 사랑받고 싶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인간이니까 둘은 정말... 재미있어...
>>177 지금은 일단 뭔~가 스즈즈가 시쨩한테 매달리는 느낌이 들고 있는데 그게 반전되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밌을거 같다.. 흥미로워 흥미로워...! 스즈즈가 어느 날 부터 슬슬 바뀌려는 조짐이 보이면 반대로 시-쨩이 네일 물어뜯는거야.....? ^w^..............
>>176 받고나서 '에- 귀엽지 않은데-' 하는 그런.. 싹바가지 없는 모습이 잠깐 떠오르고 ^w^................
별자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물고기자리..? 왜냐면 지금 미즈미랑 물고기 잡기 하고 있으니까...?
이미 여태까지의 발언에서 충분히 오타쿠라고 짐작을 하고있었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도대체 이 머리에서 뭘 더 손질해야하느냐는 말도 일단은 묻어놓고 그녀의 말을 얌전히 듣는걸 선택했다.
"그렇구나."
하지만 방송을 보는 이름모를 오타쿠들이 조금은 불쌍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인터넷 방송의 폐해인게 아닐까. 역시 세상사람 믿을 사람 없는데 인터넷에서 보는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나보다. 얘가 방송하는곳에 가서 얘가 언제 오타쿠들의 관심은 기쁘긴 하지만 기분나쁘데요! 라고 하는것도 머리속에서 상상했지만 상상한지 1초도 안되서 그 광경을 부정했다.
끔찍하다.
"음침하게? 주사위 굴리면서? 웃는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지?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부실쪽으로 끌어당기며 외쳤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치사하고 배은망덕할까! 서로 사과하고 훈훈하게 끝내려는데 이렇게 배신을해!! 이리와봐! 사이버펑크 2020, 웨이스트랜드, 던전앤드래곤 전부 플레이하게 만들어줄테다!"
"나는 이 세대의 문물에 관해 익힐 것이 많으니 외려 좋단다. 하지만 연락을 자주 확인하지 않아서 답신이 늦어질 수도 있어. 나는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만 네가 답답할 수는 있겠구나."
싫지는 않지만 성향이 달라 맞지 않는 합이라면 불만이 쌓여 터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설사 불만이 터진다 해도 풍어신은 그것을 담담하게 흘려낼 수 있겠지만, 그 언제나 한 발 벗어난 여유가 공평하지 않다. 후미카는 그저 싫지도 좋지도 않고, 이 제안이 제게도 나쁠 것 없으니 잡아당기는 대로 일부러 흔들려주는 것이다. 사실은 언제든지 뿌리치고 떠날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을 뿐, 이 지점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여전하게 모르는 채다. 차라리 두려워 거절을 바라는 마음 역시도. 타인을 이해자고자 노력하는 중이라 한들 자신은 다치지 않고 상처 입지도 않는 존재이므로 필연적인 간극이 벌어지고 만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더 꺼내는 태도도 시여하듯 여일했다.
"정 기다리기 힘들다면, 네가 괜찮다면 바닷가에 나와 날 불러도 된단다. 나는 언제나 이곳 바다에 있을 테니 말이야."
그렇게 아주 덤덤하게 라인에 친하치 않은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요즘 기술이 좋아졌대도 물 속에서 스마트폰을 만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원한다면 폰이 물에 젖지 앉게는 할 수 있지만 수심 500m 지점에 일반 통신용 전파가 닿을 리가 없으니.
후미카마저 말을 마치니 순간 정적이 도래했다. 풍어신은 조용한 분위기에도 아랑곳않고 느긋하게 눈을 깜빡이다, 새로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전심을 쏟았다가는 장사꾼들이 폐업할 테니 봐주자꾸나."
후미카는 곧바로 저 먼저 걸음을 떼었다. 지나오며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자리를 본 적 있다. 그렇게 앞서서 몇 걸음을 걷다 돌연 걷기를 멈춘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천천히 뒤돌았다. 여전하게도 무덤덤하고 속 모를 낯으로, 후미카는 시이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