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그 로맨스 만화의 내용도 거의 10년이나 20년은 더 된 옛날 내용일거라 추측했다. 요즘시대에 츤데레같은건 속성 축에도 끼워넣어주지 않는데. 도대체 언제적 로맨스 만화를 읽은건지. 게다가 관상이라고 했겠다. 그런 비과학적인 것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다니 이제는 폭거라고 해도 무방했다. 게다가 뭐냐, '나, 난 옷을 걱정했지- 따, 딱히 널 걱정한 건 아니니까!' 는. 너무나도 상투적이지 않은가! 만약 한다면..
"하아? 네가 다치든 말든 나랑은 전혀 상관도 없고, 성가시기만 하거든? 너보단 네가 입고있는 옷이 더 소중한걸? 아아, 옷 꼴이 그게 뭐야!"
이게 바로 요즘 트렌드에 맞춘 츤데레지! 사전조사도 부족해서야 남에게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나 있으련지. 쯧쯧...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고, 지금과 같은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땅히 지금 염려할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지금의 일상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렌은 히키의 대견하다는 말에 조금 민망해졌다. 양 손을 다 쓰고 있었기에 어깨로 볼을 문지르듯이 닦았다. 물론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히키도 종종 요리를 해 먹는다는 말에 렌은 내적 친밀감이 조금 더 올라갔다. 렌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적대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사람을 만나 호의를 쌓아가는 것은 늘 기꺼운 일이었다. 언젠가 히키가 만든 음식을 먹을 일이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으나 말로 뱉기에는 무례하다 생각되었기에 이내 묻지는 않았다.
“저요?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음, 좋아한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이나 가사일이라는 것이 해야만 하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그래도 음식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좋아한다에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삶은 달걀을 꺼내 찬물에 식히고 새로 냄비를 꺼내 이번에는 육수를 만들려는 모양이었다. 뭔가 비장의 재료는 없고, 일반 마트에서 파는 사골육수를 여러 봉지 뜯어 넣고 다진 마늘을 넣고 불에 올린다. 그것이 끓는 동안 고기가 다 삶아졌는지 간장 베이스로 조려진 고기를 꺼내 도마에 얹어 식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냄비를 꺼내 물을 올린다. 이번엔 면을 삶을 모양이다.
물이 끓기 전에 또 숙주나물을 꺼내 씻고, 쪽파를 잘게 썰고 하는 모습이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다. 렌은 식은 계란을 까고 열이 내린 고기를 썬다.
“뭔가 작년에는 1학년이어서 그런가 뭔가 새로운 느낌이 많았었는데, 올해는 2학년이라 그렇게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네요. 그래도 3학년은 조금 다르겠죠? 으음, 저도 히키 선배한테 받은 게 많으니 올해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까지 친한 후배는 없지만, 수영부나 아니면 다른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테츠야는 압도적인 대사에 마찬가지인 씹덕력으로 츳코미를 넣어주는 편이지 "안녕하세요 테츠야스오충씨." 하면 "누가 야스오충이라는 거냐! 참고로 나는 야스오가 아니라 랭겜에서 티모를 픽하고 트롤하는 타입이지만, 그보다 내 이름을 그런 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는... 실례, 깨물었어요.
별로 관심 없어보이는 태도에 나도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고선 그녀보다 살짝 뒤에 서서 주변을 지켜본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이곳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소녀를 그저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보다 까마득한 옛날에도 나는 그저 길을 가는 나그네인척하며 여러 사람들을 따라다니곤 했다. 원래 별이란 그 어떤 누가 보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빛이 나고 있고, 별도 그 어떤 누구든 바라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 뭐, 혼자서도 찾을수는 있겠지만 말이에요. "
사실 별이 잘 보이는 스팟은 별다른건 없고 지대가 좀 높고 주변의 광원이 별로 많지 않은 곳이면 충분했다. 인공위성들이 내는 불빛들도 같이 보이는 단점이 있지만 사실 빛을 내고 있는 인공위성들은 별로 없고 거기서 보이는 대부분이 별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려는 곳도 그렇게까지 특별한 곳은 아니지만.
" 오늘은 유성우가 쏟아진다고 했거든요. 그것도 꽤나 큰 규모의 유성우가요. "
사실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었다. 이 근처를 지나가는 천체도 없어서 대기권에 진입시킬 무언가도 찾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건 별의 신으로써 면밀히 생각해야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저 오늘이 축제이고 모두가 즐겁게 즐기고 있으니까 나도 그에 맞는 선물을 주고 싶었을뿐. 신으로써 내가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몇 안되는 은총과도 비슷한 것이다.
" 그래도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 먼저 가봐야겠네요. 사실 시간이 좀 촉박하니까요. "
벤치를 쓸어내고 앉는 그녀를 보면서 얘기한 나는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보고선 말했다. 한창 축제가 절정에 올랐을때 유성우가 내리는게 좋으니까 나도 나름 타이밍이라는 것을 신경 써야하는 것이다.
"맞아. 옷은 소중하지, 특히 무녀에겐 말이야. 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테두리를 두르며 경계를 긋는 일과 다름 한 점 없기 때문에..."
에니시는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며 다시 야키소바를 돌돌 말아내기 시작했다. 대화의 핀트가 한참 엇나갔고, 들은 것이 츤데레에 가까운 대사라는 사실조차 못 알아차린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정말이지 이 신은 상투적인 모에 속성밖에 배워먹지 못한 모양이다. 중매자를 하겠답시고, 역사 깊은 로맨스 책 벼락치기라도 한 것이겠지. 역사가 깊다, 라... 낡아 빠졌다는 말과 다름 한 점 없다.
"무시무시하지."
아- 하고 야키소바를 들고, 합- 하고 물었다. 어째서 훔- 이 아닌지는 제쳐두고. 이 권태로운 낯으로 어쩌면 '고기'도 한입에 휙 집어삼켜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애서 내 칭즈아 조어, 바아드이 거아 마 거아. (그래서 내 친절한 조언,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
아니 거기선 나의 깊은조예에 대해 감복해야하는 타이밍이 아닌가? 기껏 성심성의껏 대답해줬는데 그에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는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었다. 그걸 설명한다고 하면 그건 너무나도 비참한 일이고 이 목 깊은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억울함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그렇게 보여."
그래서 마음속에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말에 대충 동의했다. 야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녀인가보다. 세상에 이런 무녀가 있다니.. 세기말은 지난지 수십년이 지났을텐데.
"영 아니꼬운 기분이지만 받아들일것을 고려하는걸 생각해보는것도 괜찮을거라 봐."
눈 앞에서 야키소바가 '면 이었던 것' 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상대방이 눈치못채도록 뭔가 받아들일 것 같으면서도 결국 나중에는 의견이 변할것이라는 암시가 보이는 어투로 말했다. 거절하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도 같아 대놓고 거절하지는 못했다.
"......너, 은근히 회피하네? 뭐어, 그것도 좋나. 고려하는 걸- 생각해보는 걸- 괜찮다고 보다니, 응, 이 정도면 장족의 진보네."
면(이었던 것)은 고기라도 삼키듯 꿀꺽 넘어가 사라져버리고, 에니시는 이제 바닥이 깨끗이 보이는 그릇을 젓가락 끝으로 슬슬 매만지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테츠야는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겠지만, 이 신은 고대- 적게 잡아도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가 암굴에 숨어버리기 이전 어느 시점부터 줄곧 존재한 지나치게 오래되고 낡은 신인 것이다. 하물며 계시하는 눈마저 지닌 타에마누시妙目主이니... 그다지 통찰력이 있는데도 츤데레 대사는 도저히 못 알아들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