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라의 말이 과연 벽화를 그리겠다는 의미일지는, 아마 다 그린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조라 본인도 그저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 아직 벽화로 할지 캔버스에 그릴지 정하지 않아서다. 단지 그리고 싶기 때문에 그릴 것을 찾는거라, 요조라는 고개를 갸울뚱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완성이... 언제일진, 몰라서... 기다리진, 마세요..."
그림의 완성이 당장 일주일 뒤일지, 계절이 바뀐 뒤일지는 요조라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라고 하곤 자박자박 걸음을 옮겼다.
느릿한 요조라의 걸음은 굳이 신경 쓸 것도 없이 꽃잎 위를 사뿐히 걸었다. 소복히 쌓인 꽃잎길은 어지간해선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멈춰서 뒤를 돌아봐도, 내가 저 길을 걸어온게 맞을까 싶을 만큼 말이다. 잠시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기분으로 걷던 요조라는 아키라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고맙긴요... 좋아했다니, 다행이죠..."
부모님이 하시는 접객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접객이었는데, 그럼에도 기다려주고 사간데다 좋은 평을 들려준 아키라에게 더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다음에 오면, 그 때에도 요조라가 있으면 덤을 좀 더 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조라도 아키라를 따라 걸음을 멈췄고,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온시야를 가득 채우는 분홍빛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나무의 크기도 물론 주변에 비해 압권이었다.
"진짜... 크네요... 이런 나무는, 처음 봐..."
벚나무의 긴 행렬로 이어지는 풍경을 보고 장관이라 느낀 적은 있었지만, 단 한 그루를 보고 이런 전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얼굴에서 잠기운이 싹 사라지고 그저 멍한 표정만 남았다.
요조라는 잠시 올려다보기만 하다가 돌아서 총총 걸었다. 나무가 간신히 시야에 다 들어올만큼의 거리를 두고 보다가, 다시 걸어서 나무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양 팔을 벌리고 감싸도 택도 없는 나무의 크기에 새삼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진다. 조금 떨어져서 나무 주위를 한바퀴 빙 돌고오자 어깨와 머리가 꽃잎으로 한가득이었다. 그걸 털어낸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는지, 그대로 아키라에게 돌아온 요조라가 말했다.
"정말, 딱, 생각하던... 상상했던, 그런 곳이에요... 오는 길도, 이것도...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요..."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은 요조라는 화구통을 만지작거리다가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보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사쿠라마츠리가 될 때 아는 사람은 오는 명소 중 하나인 그 벚꽃나무를 바라보며 아키라는 살며시 손바닥을 내밀었다. 분홍색 꽃잎이 하늘하늘 춤을 추다 몇 개씩 그의 손바닥에 착지했다. 떨어지는 꽃잎이 많기에 잡을 수 있을 가능성도 높았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잡을 수 있는 꽃잎 또한 늘어났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착지한 꽃잎을 역으로 후- 불어 저 멀리 날려보내며 아키라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산길로 올라가서 조금 가다보면 이 가미즈미에 흐르는 물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샘이 있거든요. 엄청 크고 넓은데. 아무튼 그 물의 영향으로 이렇게 자라지 않았을까 하고 어르신들은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인진 모르겠지만, 저는 그럴 것 같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큰 벚나무가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있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주변 나무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그 나무를 바라보며 아키라는 괜히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위로 올렸다. 그 와중에 살짝 요조라의 모습을 보니 꽤 놀란 것 같은 모습이 보여 그는 괜히 소리없이 웃었다. 하긴 이 마을에 사는 이라고 해서 전부 이 나무를 아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에 올 일이 없으면 모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래요? 그러면 그 그림을 역시 기대해봐야겠어요. 기다리진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런 미소까지 보일 정도면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요?"
보여줄지, 보여주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기다린다고 한들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이 마을에서 나가서 살 일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것에 대해서 불만 또한 없었다. 자신은 이 마을을 좋아했고 이 마을에서 뼈를 묻기로 결심했으니까. 굳이 멀리 나가서 살 이유가 있을까. 그러면 자연히 얼마나 걸리더라도 그녀가 감추지 않는한 그리는 그림을 볼 수는 있지 않을까. 나름 추측할 뿐이었다.
"마음껏 구경하세요. 저도 조용히 구경할테니까요. 그림 그리려면 관찰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말을 마치며 아키라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살며시 등을 기대며 고개를 올려 그 거대한 벚나무를 바라봤다. 하늘을 분홍색으로 물들일 것처럼 무수히 많은 꽃잎을 떨어뜨리는 나무와 하늘하늘 춤을 추는 꽃잎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다 아키라는 요조라를 바라보며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름모를 신의 영체는 당신에게 철이 박혀있는 지팡이와 모양이 일정한 뾰족한 철조각 26개를 당신에게 건내었고, 당신을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확인. 대상 물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확인을 위해서 해당 물품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십시오.
"무사여, 이 물건은 나와 계약을 맺은 보상이라고 생각하여라. 다른것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라 뭐라 지껄이겠으나 그대에게는 필요없는 말이겠지. 분명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그 행동이 나에게 득이 될 것이니.. 나는 그저 재미있는걸 구경만 하면 그만이니 그저 자네가 원하는 일을 하시게. 그 물건은 '무라타 소총 18년식' 이라네. 무슨 20년도 더 오래된 물건을 주느냐고? 크흐흐흐.. 오래된 물건이긴 하네만 성능은 좋을것이야. 철조각을 그 철을 덧댄부분에 넣고 뾰족히 튀어.. 에이 귀찮아. 나중에 쓰는법을 알려주도록 하지."
당신은 신의 영체에게서 '무라타 소총 18년식' 의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이 무기의 숙련도는 다른 무기와 호환하지 않습니다.
일상 소재로 쓰려고 했지만 쓰지 못한 썰... 야사이는 오늘 벚꽃 사진을 찍으려고 벚나무가 있는 곳들을 부단히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사쿠라마츠리를 기념한 아마추어 사진 콘테스트에 출품할 사진을 찍고 싶었다나, 그래서 일상 상대를 대상으로 "벚꽃만으로는 승부를 못 보겠어! 내 사진의 스토리가 되어줘!" 라는 걸로 운을 띄우려고... 했는데... 밤이네요. 갱신합니다.
수요일에는 꼭 일상...을... 캡틴... 돌리다가 이벤트 기한이 초과한 경우엔 돌리던 것까지는 마저 돌려도 될까요...? (울먹)
벚꽃 피는 봄날에 열린 사쿠라마츠리는 꽤나 성대했다. 예쁘게 꾸며진 마을 정경이나, 노점과 부스가 와글와글 차려진 걸 보면 대도시의 축제도 남부럽지 않다. 오랜 겨울을 지낸 뒤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것처럼 봄이 찾아온 가미즈미에도 활기가 넘쳐흘렀다.
쇼는 어김없이 공연 준비로 바빴다. 올해의 사쿠라마츠리에도 선보이는 무대 공연은 지역 주민들의 재능과 특기를 내보이는 장이다. 인근 학교의 동아리들도 이름을 올리곤 했는데, 가미즈미고의 경음악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쇼도 부지런히 리허설에 참가해 부원들과 합을 맞췄었다. 곧 다가올 공연이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 시간. 모두가 연습으로 지친 몸을 달래는 중이다. 단상 아래 기대앉아 잠깐 졸던 쇼는, 예고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조금 놀라버렸다. 황급히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전화가 걸려왔음을 알려주는 화면이 나타나고 있었다. 발신자의 전화번호를 찬찬히 뜯어보던 쇼가 문득 얼굴을 찡그렸다. 익숙한 앞자리로 시작하는 그 번호는 분명, 어머니의 것이었다.
제일 먼저 한숨을 푹 내쉬는 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가족에게서 오는 전화는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애초에 집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 어머니와의 통화라고 반갑겠는가. 이걸 받을까, 끊어버릴까 생각하게 되는 건 역시 달갑지 않다.
쇼의 성가신 고민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시끄러운 알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아쉽게도. 이렇게 된 거 무슨 말을 늘어놓을지 보자고… 그런 생각으로 통화를 수락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릴 뿐이다.
'넌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 거니?'
대뜸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어머니는 간단한 안부 인사도 하나 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달갑지도 않은 전화를 기껏 받았는데, 처음 듣는 말이 이딴 식이면 화가 나지 않을 리 없다. 참 어머니다운 행동이기에 역시 짜증난다.
"평생 정신 차릴 일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정신 차린다는 것은 다시 부모에게 속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정말이지 죽을 만큼 싫다. 그렇기에 날선 반응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갔다.
'참, 얘는 어떻게 사람이 달라지지를 않니.'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따박따박 말대꾸하자 스피커 너머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그 뒤에 이어질 잔소리는 보나마나 뻔하다.
"계속 그런 소리 할 거면 앞으로 전화하지 마."
그게 듣기 싫어서 냅다 쏘아붙였다. 그러자 기막히다는 듯 당황한 목소리가 몇 번 들려오고는. 어머니는, 쇼가 지독히도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내뱉어버린다.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시끄러. 끊는다."
인상을 팍 구긴 쇼는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를 누른다. 홧김에 애꿎은 스마트폰도 내던져버리려다가 말았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곱씹어보니 더욱 화가 난다. 속이 부글부글 들끓는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도대체 부모란 작자들이 왜 그러는 거야? 자기 자식의 꿈을 응원해주기는 커녕, 짓밟을 생각뿐이 없잖아. 왜냐면 그들에게 있어 나는 말 안 듣는 반항아일 뿐이니까. 인형처럼 순종하는 아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자식'이라고.
"……"
쇼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구겨넣고 몸을 일으켜세운다. 지친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앞선 참가자들의 무대가 끝나고 이제는 경음악부가 나서야 할 때. 분주히 장비를 옮기는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부원들은 막이 내려있는 무대로 오른다. 쇼의 자리는 무대의 제일 앞, 이번에 서브 보컬을 맡은 부장의 옆자리.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받아들고 나니 온 몸에 서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관중들 앞에 설 때의 떨림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건 아마 다른 부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에는 떠오르는 샛별! 천상의 하모니! 가미즈미 고교의 경음악부, 셀레스티얼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커튼 너머 사회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건 긴장한 탓일까. 박수가 쏟아진다. 요란하고 우렁차다. 마이크를 쥔 손에서 땀이 축축히 배어나온다. 갈증에 침을 삼키자, 금세 텁텁해진 목에 자극이 느껴진다. 곧 무대의 조명이 꺼진다. 막이 오른다. 그와 함께 박수 소리는 점차 잦아들어간다.
탁 트인 시야 앞에 무수한 인파가 보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무대 아래의 청중들을 쇼가 내려다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잔뜩 모여서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에 서려있는 것은 분명한 기대감. 모두가 나를, 우리를 보고 있어.
키보드 전주를 선두로 각자의 악기들이 음색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무대 앞으로 나아가니 스포트라이트가 이쪽을 비춰온다. 명멸하는 빛이 시야에 가득 담긴다.
돌연 가슴이 끓어오른다. 아까의 일이 응어리진 분노가 되어 속 깊은 곳에 고여있었다. 분명 이 자리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다. 그런데도 쇼는 당신들더러 보라는 듯이. 쌓인 감정을 그러모아 터트렸다. 갈 곳 없는 분노가 목소리의 형태로 화한다. 그건 분명 자유를 갈망하는 외침이었다.
힘 가득 실린 보컬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아버지는 검사, 어머니는 의사. 쇼의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질적으론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들은 자녀에게 정 주는 법을 몰랐다. 설령 그 방법을 알았더래도 크게 바뀌는 건 없었을 것이다.
부부의 욕심은 너무 지나쳤다.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뭐가 그리 부족했는지. 그들은 자식에게까지 어려운 삶의 방식을 강요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 그들은 항상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너는 우리처럼 살아야 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알량한 만족을 위해서였다.
공부가 전부인 인생이었다. 그런 삶도 중학교에 들어가니 슬슬 진절머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부모님이 진정으로 나의 성공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그때는 정말 철석같이 믿었으니까. 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도, 어른들의 칭찬을 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평소처럼 지친 모습으로 하교하던 어느 날이었다. 어둑어둑한 골목을 지나는데 저 뒷편에서 현란한 조명이 보였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어째선지 기분이 요상해졌다. 어머니가 질 나쁜 사람들이 많은 길이니 들어가지 말라던 당부를 하던 곳이었는데. 그런 경고는 그땐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 불빛이 어찌나 밝고 환해보였는지, 같이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리가 얼마나 매혹적으로 느껴졌었는지.
이끌리듯 뛰어가 그 앞에서 마주한 것은. 화려한 밤거리에서, 젊은 어른들이 공연하는 모습이었다. 책에서나 본 악기들을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적극적으로 열정을 노래하는 선두의 청년들. 그 무대가 가슴 속의 무언가를 깨운 것 같았다.
그렇게 지루한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공부는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여러 음악을 들었다. 그날 들었던 노래를 직접 불러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묶은 사슬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아버지에게 솔직한 심정으로 고백했다. 음악이 너무 좋다고.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 음악? 당치도 않는 소리 말아라. 넌 광대가 되고 싶은 게냐?
그러나 아버지의 불호령은 매서웠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인정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실은 조금이나마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구속은 더욱 심해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단단히 조여진 사슬을 내리쳐 억지로 깨부쉈다. 그래, 꼭두각시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로운 광대로 살겠어. 학교도, 학원도, 과외도 전부 내던졌다. 시내로 나가 머리를 화려하게 물들이고 귀도 잔뜩 뚫었다. 그런 꼴을 하고 들어오니 어머니는 아연실색했다.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선 언성을 높였다. 전부 우습기만 했다. 그리고 후련하기도 했다.
연주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그리고 끝에 다다라서는 뚝 멎으며 곡의 끝을 알린다. 빛나던 조명도 일제히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