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쾌히 승낙을 받았내니 추가 조건이 붙는다. 둘째 손가락을 맞대고서 대칭으로 구부러진 지팡이를 그린다. 시작점에서 만났다가 떨어지고 다시 끝점에서 만난 손가락 둘이 그린 그림은 ♡ 하트였다! 하트가 부끄러우면 오동통하게 살찐 벚꽃잎이라고 해도 되니까! 방긋 웃고 있는데 왠지 짓궂어보인다. 츠무기가 이 조건도 함께 받아줄런지 기대되는 듯 바라보고 있다가, 가방으로 주제의 흐름이 바뀌면 갑작스럽게 어깨 한 쪽에서 힘을 툭 뺀다. 가방을 걸치고 있는 어깨가 기우뚱 기울어서 무거운 척을 하지만 흔들리는 가방은 가벼워 보이기만 한다.
"파란 나무 두 그루는 들어있는 것 같아."
흡! 기합 넣는 소리까지 내면서 제대로 가방을 고쳐 메었다. 아무도 속지 않을 거짓말과 장난에 제일 먼저 웃음 소리를 내는 건 코로리 본인이었다! 일부러 파란 나무 두 그루를 찾은 건 츠무기와 하루나를 가리켰다. 이 우스운 장난에 내는 웃음 소리 후에는 책방의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진다. 달칵 잠긴 책방의 문을 등지고서 마츠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풍선 다트ー 알록달록해서 좋아!"
이런 저런 풍선들을 다트로 맞추면 터트린 갯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작은 인형 열쇠고리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어린다. 그러면서 코로리는 하루나에게로 손을 뻗었다. 키차이를 생각하면 츠무기보다는 코로리가 하루나의 손을 쥐는 편이 자세가 편할테니까, 선뜻 손을 내밀고 하쨩이랑 언니랑, 누가 더 손 오래 꼭! 잡고 있나 내기할까ー! 라고 하루나가 손을 잡도록 해본다. 하쨩은 하고 싶은 거 없어? 츠쨩은? 되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신경 안써도 괜찮아! 츠무기가 부를 것 같은 호칭으로 충분하다구 (´∀`) 늦는 건 나도 늦으니까 걱정마
사실 맞는다고 해도 맞은게 쓰러지지 않으면 따내지 못 했을 텐데, 요조라가 쏜 두발 중 한발이 제대로 맞았는지 화구통은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처음으로 오빠의 도움 없이 경품을 따낸 것이다. 요조라는 자신이 쏴서 맞춰놓고도 믿기지 않는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옆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는 아키라의 말에 이게 꿈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노점상이 가져다 준 화구통을 받고나니 더욱 실감이 났다.
"...고마워요..."
뒤늦게나마 아키라가 도와주려고 했다는 걸 알았기도 해서 요조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팔로 화구통을 안고 있어서 약간 가려진 얼굴은 웃을 듯 말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졸다 깼을 때처럼 느슨하지 않으니 표정은 금방 담담해진다.
요조라는 화구통을 들고 아키라가 남은 탄 쏘는 걸 지켜보았다. 딱히 노리던게 없는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뭔가 걸리는게 있었나보다. 정확히 경품대의 한쪽을 가리키는 총구가 그래보였으니까. 가리키는게 수건세트...인가? 그러나 남은 탄 두발로는 어림도 없었다. 노리는 것에 닿지도 못한 탄들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다 쏘고도 수건세트를 빤히 노려보길래, 어쩐지 그 눈빛이 심상치가 않길래 요조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번... 더 할래요...?"
아예 깔끔히 끝났으면 모를까, 아키라의 목표가 남아있는데 이대로 요조라가 원하는 것만 따서 가기도 조금 찝찝했다. 어차피 시간은 요조라에게도 충분했으니 아키라가 한번 더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니라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노점 앞을 떠났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두 발 다 확실하게 빗나갔기에 그것을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총알은 닿지도 않았고 그저 스쳐지나갈 뿐. 완전히 기회가 날아갔기에 아키라는 작게 칫-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확인해볼 방도는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미련을 가져봐야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그렇게 결론내렸다. 그렇기에 아키라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꼭 확인해야겠다 정도는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지금은 안내를 하는 중이기도 하고."
나중에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말 정도는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아키라는 깔끔하게 포기를 하기로 하며 우선 지금은 호시즈키당에서 부탁받은 것처럼 가장 큰 벚꽃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시 향하기로 했다. 노점 앞을 나온 후,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그는 방금 전, 그녀가 화구통을 상당히 노렸던 것을 떠올리며 가만히 화구통을 챙기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역시 그림 관련인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림 그리시나봐요? 화구통까지 보통 얻으려고 하는 이는 잘 못 봐서. 잘 쓰길 바랄게요.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거잖아요?"
싱긋 웃어보이며 아키라가 향하는 곳은 북쪽 산이 있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까지였지만. 산으로 가는 길목인지 꽤 벚꽃나무가 많이 배치되어있었고 가는 곳마다 분홍색 눈이 하늘에서 살랑살랑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번씩 털기도 하던 그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신경 쓰인다고? 갖고 싶은게 아니라 뭔가 걸리는게 있었던 걸까? 아키라의 대답에 그런 생각이 들어 요조라는 경품대의 수건세트를 한번 보았다. 수건세트에 신경쓰일 일이 뭐가 있을지, 요조라로서는 감을 잡기가 어려웠기에, 더 묻지 않고 노점 앞을 떠났다. 화구통을 한팔에 고이 안고서 말이다.
다시 앞을 보며 걷기 시작하자 잠깐 멈췄던 듯한 시간이 재차 흐르는 기분이었다. 사격 게임에 어지간히도 집중했었나보다. 따낸 것도 그렇지만 오빠에게 부탁할 일이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요조라는 생각했다. 부탁 한번에 어떤 조건을 내붙였을지 상상해보면, 어휴, 정말 다행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화구통을 소중히 안고 가는데 아키라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목소리도 들렸다.
"전에... 쓰던게, 너무 낡아서... 바꾸려던... 참이었어요... 네에... 아껴서, 잘 써야죠..."
요조라가 화구통에 꽂혔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지금 쓰는게 너무 낡아서 새로 바꿔야지 했던 것. 이런 와중에 딱 맞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니 어찌 갖고 싶지 않을까. 게다가 스스로 따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덤으로 도와주려 했던 아키라에 대한 생각도 살짝 바뀌었다.
"아, 그게..."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길을 걸으며 주변 풍경을 조금씩 눈에 담는 중에, 가벼이 던진 듯한 물음이 요조라에게 닿았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고, 대답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요조라는 조금 망설였다. 가장 큰 벚나무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처럼, 망설이다가, 화구통의 끈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장 큰 벚나무를 보고 싶은 거라는게 요조라의 대답이었다. 가족 외의 사람에겐 이런 얘기를 한게 처음이라 어쩐지 좀... 그랬다. 긴장된걸까. 애꿎은 화구통의 끈을 만지작거리는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시선도 위가 아닌 애매한 아래쪽 어딘가로 숨듯이 내려가 있었다.
벽을 채울만큼의 크고 거대한 그림. 즉, 벽화를 그리겠다는 것일까? 어디에? 아마도 호시즈키당의 벽이겠지. 설마 연고도 없는 남의 집의 벽에 크게 그림을 그릴리는 없을테니까. 아키라는 그녀의 그림 솜씨를 알지 못했다. 그래도 화구통까지 챙길 정도이니 꽤 전문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닐까.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그래요? 그럼 완성되면 구경을 해야겠네요. 제가 소속된 학생회 멤버들도 함께."
김에 학생회 멤버들과 함께 학생회 간식으로 호시즈키당에서 이것저것 사면 딱 좋겠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특히 예전에 학생회 멤버들이 당고를 엄청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며 반드시 가리라. 그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마치며 그는 다시 한번 머리에 묻은 분홍색 벚꽃잎을 털어내고 땅에 밟히는 꽃잎을 살며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밟지 않으려고 하며 절로 종종걸음을 유지했다.
"전에 추천해줬던 화과자 기억해요? 학생회 멤버들이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그렇게 추천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녀는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나 자신은 그녀가 추천해준 것을 구입했고 그것을 학생회 멤버들에게도 나눠줬다.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살짝 걸음속도를 높이던 그는 어느 한 나무 앞에서 멈춰섰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옆에 뿌리를 내린 벚꽃나무는 주변의 그 어떤 벚꽃나무보다도, 그리고 가장 오래된 벚꽃나무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그만큼 그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벚꽃잎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으며 멀리서 지켜보면 어쩌면 그야말로 분홍빛 무언가로 보이지 않았을까. 고개를 들어올려 가만히 벚나무를 바라보던 아키라는 고개를 돌려 요조라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게 가미즈미에서 가장 큰 벚나무에요. 이 가미즈미를 책임지고 있는 지하수의 일부가 이 길목으로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특히나 성장에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크죠?"
물론 벚나무인 이상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고개를 들어올려야 그 끝이 보일 정도로 그 나무는 거대했다. 이게 그녀가 찾을 정도의 거대한 벚나무일진 아키라로서도 알 수 없었으나 나름 기대를 하며 그는 미소지었다.
시이는 벼락치기한 숙제를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후미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어쩐지 불편해진 기분이 들어서 시이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치를 살핀다.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느낌이다. 궁중의 암투로 빚어진 예리한 감은 느낌만을 잡아채고, 이내 놓친다. 시이는 아둔하니까.
"여, 역시 싫어? 그럼 내가 먹으면 되니까-"
하던 찰나, 손이 올라온다. 시이는 반쯤 긴장하고 반쯤 기대를 건 눈으로 손을 계속 바라봤고, 그것이 머리에 놓여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고나서야 눈을 감았다.
손을 잡는 건 좋다. 쓰다듬어주는 것도 좋다. 좋아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좋아서 배알도 자존심도 없이 굽히고 마는 거겠지, 나는.
"나 말야, 미카쨩이 진짜 좋아. 물론 미카쨩은 말수도 없구,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은- 날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그치? 그럼 된 거야. 난 그러니까 미카쨩을 좋아할 거야..."
쓰다듬이 끝나자 아쉽다는 듯이 머리를 내민 그대로 잠시 있다가, 꽃구경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화색이 되어선 콩고물 당고를 쥐고는 다시 재잘재잘 떠든다.
"나는 사실, 카스테라가 젤 좋아. 카스테라는 포실포실하구 재료 본연의 맛이 다 나오잖아. 딸기쉬폰케이크라던가, 몽블랑이라던가, 그런 것도 예쁘구 맛있지만은 카스테라가 제일 각별하단 말이지. 근데 그 전에는 당고가 제일 좋았어. 쫄깃하구 미다라시도 짭조롬하니 맛있잖아. 헤헤, 이거 혼자 먹기는 싫었어-"
운 좋게도 큼직한 벚나무 그늘이 마침 비어, 시이는 냉큼 미카의 손을 잡고는 거기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