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쏜 것과는 별개로 코르크 탄은 목표의 근처에도 못 갔다. 본디 이런 건 첫발에 성공하기가 어려운 법이라지. 사실 요조라는 이런 게임에 약했다. 요조라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맞추지 못 해서 아쉬운 건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더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네에..."
아키라가 쏘겠다고 하자 요조라는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자리를 만들었다. 그도 하겠다고 했을 땐 그냥 갖고 싶은게 있나보다 싶었다. 과녁이 될 만한 상품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아키라가 겨누는 자리가 화구통인 걸 보고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조라가 분명 저걸 노린다고 했는데, 아키라도 같은 걸 노린다? 보통이라면 대신 따서 주려나 보다 하겠지만 요조라는 오빠가 있었다. 그것도 매우 짖궂은 오빠가.
간식 먹을 때 일부러 남겨놓은 딸기를 홀랑 먹어버린다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한정판이면 먼저 사버려서 재고를 없앤다던가, 매번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지 좋을 때 교문 앞에 와서 상주하고 있다던가 등등. 오빠로부터 당한(?) 일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경계심부터 들었다.
아, 생각해보니 아키라도 연상이다. 분명 3학년의 학생회장이었나 그랬는데. 일순 설마 학생회장이 그러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켜진 경계심의 스위치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그 탓에 요조라는 빗나간 아키라의 탄을 보고 속으로 안심했다.
"그... 러게요... 아, 에, 네..."
요조라는 안심한게 뜨끔해서 말을 더듬거리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침착하자. 침착. 속으로 자신을 진정시킨 요조라가 코르크 탄을 총에 끼우고 화구통을 조준했다. 내가 먼저 발견한 거니까 내가 가질거야. 드물게 소유욕이 발동되고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통에 요조라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어째서인지 조금 어색한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아키라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투는 처음 만날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것 같으니까. 아무튼 아키라는 요조라가 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하지만 2번째 탄도 아무래도 실패로 끝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맞추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며 아키라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이대로 쏘기만 하면 그냥 다 실패로 끝날 것 같은데. 총에 살짝 조작이 되어있거나, 혹은 총탄이 잘 못 날아가게 뭔가 설정이 되어있다던가. 이 사람들도 돈을 벌어야하니 그냥 순순히 상품을 따게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아키라는 일단 총알이 어디로 발사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주 살짝 옆으로 겨냥했다. 화구통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인형 쪽으로 이렇게 하면 총알이 다른 방향으로 휘는지, 아니면 정면으로 제대로 발사되는지 알 수 있었을테니까. 그렇게 잠시 날카롭게 앞을 겨냥하던 아키라는 총알을 발사했다.
뿅. 작은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던 총알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빗나갔다. 인형마저도 빗나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정면으로 바로 날아가게 제작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거 골치 좀 아프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총알이 정면으로 바로 발사되는 구조는 아닌 모양이네요. 약간 엇나가게 세팅이 된 것 같은데. 그걸 감안해서 쏘면 좋을지도 몰라요."
나름대로 요조라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아키라는 그녀가 다음 것을 발사할 수 있도록 살며시 옆으로 비켰다. 허나 시선은 화구통 쪽으로 쭉 향했다. 다음번에는 일단 맞춰나보자. 라는 심리를 살며시 품으며.
/생각보다 맞추기 힘든 다이스! 하지만 이러니 재밌지요! 아무튼 답레를 살짝 남겨놓을게요!
그런 말은 흔하게 들었다. 인간이든 신이든, 자신은 무엇을 하든 반응이 미미하니 대부분은 다가왔다가도 난감해하며 멀어지기 마련이다. 풍어신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유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까지 아이스크림을 사준 것밖에 없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니, 그러고자 한 일이라지만 이것으로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귀엽다는 말은 더더욱 들어본 적 없고. 후미카는 공연스레 숟가락질을 하며 남은 아이스크림을 모두 처리했다.
시이의 외침에 그는 하릴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말릴 만한 사안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목적이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미카는 시이가 가져온 그것들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서둘러 가져온 만큼 표면이 마를 새도 없이 훈기 도는 당고다. 싫어하지 않는다 말했으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틀린 말은 아니니 기특하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의기양양한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하게도 무감각하다. 틀림없이 웃어준다면 시이는 기뻐할 테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즐겁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이는 단지─ 마음에 든 이가 좋아하는 듯한 것을 곧장 가져다주려는 그 행동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유기(乳氣)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저 정 얻고 싶고, 사랑받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 그렇기에 웃을 수 없다. 이런 때에 해묵은 후회가 겹쳐진다.
"그래, 고맙구나. 앞으로는 더 좋아하도록 마음먹어 보마."
그러니 한 치의 변화 없는 무표정한 낯으로, 후미카는 발끝을 들었다. 손을 높이 들어 시이의 뒷머리를 쓰다듬듯 가지런히 쓸어주었다. 무감하지만 매정하지는 않고픈 마음이 전해졌길 바란다. 별달리 말 없는 공치사가 한동안 이어졌다. 발끝이 저려올 정도는 충분히 되는 시간동안 그렇게 있은 후에야 후미카는 제 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세 접시로 나온 당고 중 하나를 집어 시이에게 쥐여주려 했다.
"너는 좋아하니? 양이 많으니 느긋하게 먹어야겠구나. 계속 서 있기도 무엇하니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떻겠니?"
이왕이면 꽃구경할 자리를 찾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한 마디를 덧붙이며 그도 당고 꼬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시이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조용히 물러날텐데, 그렇지 않은 상대를 만난건 오랜만이다. 사실 이 유치한 기싸움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입부원서를 남발하고 다녔을때, 달랑 낡은 컴퓨터 한 대뿐인 부실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다. 결과는 당연히 입부 거부. 그때 날 내쳤던 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관심 밖에 있는 일은 금방 까먹고 마니까.
어쨌든 신경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선배에게서 과자나 뺏는 녀석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겉모습만 닮은 반쪽짜리 양키일뿐이지. 그렇게 조용히 끝날까 싶었지만 점원 앞에 팔락이는 지폐 틈으로 과자봉투가 쑥 들어온다. 빵빵한 봉투 위로 동전 몇닢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젠 대놓고 내가 더 빨랐다는 둥 내리까는 눈빛을 흘기며 새치기를 해버렸다.
“하? 졸린 눈이 먼저 손을 뻗었지만 이캬멘이 조금 더 빨랐던 모양이네요. 유감~”
계산이 끝난 과자를 집어들고 티알피지 마스터를 흉내내듯 능청스레 한마디를 흘린다. 악의 없는 장난이라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기분 나쁠수도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재수없게 흘려대는 눈빛에 이미 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