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방과후에 마주칠 수 있도록 가게에 내보내두겠다고, 그리 얘기한 그녀는 부모님들은 다 같은 법이라며 다시금 유순하게 웃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귀하지 않겠는가. 호시즈키 집안이 조금 유별나긴 했지만, 그건 별개의 얘기일까.
요조라를 노점 밖으로 보내준 뒤 그녀는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고 마침 다가오는 다른 손님의 접객으로 돌아갔다. 요조라는 노점 쪽을 흘끗 보고 옆으로 조금 비켜났다. 자신이 노점 앞에 있으면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될 테니까. 비켜 서서 아키라를 보다가, 두번째 받는 자기소개에 시선을 옆으로 굴렸다. 아주 잠깐 피했다가 아키라에게 시선을 되돌린 요조라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시미즈 씨... 인사, 저번에, 했으니까..."
요조라의 말은 딱 그 의미였다. 알면서 모르는 척, 낯선 척 했다는 것. 아는 사이라고 얽히는게 싫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저 검은 눈만 봐서는 의도도 이유도 알기 어렵다. 요조라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꽃을, 많이, 볼 수 있으면... 그러면, 좋아요..."
애당초 요조라가 데려가 줄 가족을 기다렸던 이유도 수월하게 꽃구경을 하고 싶어서였다. 체질이랄까 움직임 때문에 혼자서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기 어려웠으니까. 그래서 매년 이 시기엔 집 지키기만 했지만, 올해는 모처럼 나왔으니까. 동행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조곤조곤 하고 싶은 걸 늘어놓던 요조라가 잠깐 머뭇거렸다. 이걸 아키라에게 말해도 되나, 싶은 그런 눈치를 보면서. 이번에도 고민은 길지 않았고 조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에서... 제일 큰... 벚나무를, 보러 가려고... 했어요... 알아요? 그런 나무가, 있는지..."
알고 있으면 데려가 달라던가, 그런 부탁조의 말은 없어도 이미 머뭇거림이나 조심스러운 말투가 다 드러내고 있었다. 어지간히 보고 싶은가보다, 같은 느낌도 같이.
꽃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고, 더 나아가 가장 큰 벚나무라. 제일 큰 벚나무가 어디일까. 잠시 고민을 하면서 그는 가만히 자신이 아는 가미즈미의 정보를 떠올렸다. 이 나무는 아니고, 여기 이 나무도 아니고. 그렇게 가만히 생각을 하다 어느 한 나무를 떠올리며 아키라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오래된 벚나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사실, 그렇게 유명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고 하니 안내할게요. 여기서 그렇게 안 멀어요."
아마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이면 자연히 벚나무들을 많이 보게 될테니 꽃들도 많이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아키라의 생각은 그랬다. 호시즈키 당에서 방금 산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으며 그는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조용히 만끽했다. 이어 그는 따라오라는 말을 하며 앞으로 천천히 향했다. 그녀의 걸음 속도가 어느정도인진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리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느리게 걷더라도 따라올 수 있도록.
가는 길목, 길목마다 분홍색 눈은 근처 벚나무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저기 저 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이라도 까먹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방금 받은 봉투 안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낸 후에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나 드실래요? 전에 보니까 오빠 분이 만든 과자나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혼자서 남은 하나를 먹어도 상관없겠으나 어차피 같이 걸어간다면 나눠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선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을까. 어쩌겠는가. 자신이 주고 싶어서 준 것인데.
머리가이 상해…?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이상한 데까지 있는 이름을 듣자니 후미카도 미미하게 눈을 키우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뭐 어떠리. 그러는 여는 겨울열매향기라는 이름이다……. 본인이 그렇게 지은 거라면 이상할 것도 없지. 풍어신은 납득이 빨랐다.
"A반이란다. 1학년이었니?"
학년이 안 나오고 바로 반을 언급한 걸 봐서는 그럴 것 같다. 아타마오카라고 하면 상당히 특이한 성인데도 들어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유는 여럿일 테다. 우선 후미카는 주변에 그리 큰 관심이 없고, 교우관계도 나쁘지는 않지만 규모가 협소했다. 빠르게 이어지는 시이의 말에 그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묵묵하게 아이스크림을 한 번 퍼먹었다. 천성이 말수 적고 조용하며, 사회생활의 깊은 곳을 파고들려면 시간이 드는 풍어신으로서는 신이 난 쾌락신의 박자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자연스럽게 미카쨩이라 불리게 된 거리감을 따진다든지―이 부분은 아무래도 괜찮긴 했다―, 신당이 번쩍번쩍하지 않겠냐는 말에 맞다고 하면 어쩐지 시무룩해질 것 같다. 어느 말에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동의를 표해야 하는지, 혹은 어느 말이 그저 꺼낼 뿐인 빈말인지를 구분하려니 이미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잠시 의도치 않게 침묵만 하다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기분은 이제 괜찮니?"
복스럽게 먹는 시이에 비해 그가 먹는 속도는 느긋할 뿐이다. 하지만 한 번 휘적거린 아이스크림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녹는 속도가 느리다. 틀림없이 이런 사사로운 일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일 테다.
"담백한 쪽을 선호하지만 옛 방식의 과자라면 싫어하지 않는단다. 단맛을 싫어하지는 않거든. 하지만 요즘 음식들은 갈수록 설탕이 더 늘어나니 너무 달기에 자주 찾지는 않게 되는구나."
요컨대 어르신 입맛이라는 소리다. 아이스크림으로 말차맛을 고른 것도 그래서고. 하지만 싫지는 않다는 말이 사실인 듯 말을 마치곤 또 한 숟가락을 퍼올렸다.
요조라가 말한 제일 큰 벚나무에 대해 짚이는게 있는지 아키라가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요조라의 눈이 아주 잠깐 반짝, 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어서 그럴까? 잠깐의 반짝임은 곧 실바람에 흔들리는 앞머리 사이로 가려진다. 안내한다는 아키라의 말에 요조라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느릿느릿 걸음을 떼어 아키라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키라가 산 초콜릿은 연분홍 벚꽃 모양에 세심하게 결이 그려져 있었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으며 깨물면 잘 말린 산딸기 조각이 살짝씩 씹힌다. 꽃잎은 상큼한 산딸기맛, 잎사귀는 진한 녹차맛으로 손바닥만한 포장지 안에 제법 큼지막하게 들어있었다.
앞에서 아키라가 초콜릿을 음미하는 사이, 요조라는 뒤를 따라가며 길가의 풍경을 감상했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보이는 만개한 벚꽃들과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꽃잎들. 그 아래를 걷고 있으면 꽃잎들이 요조라의 머리와 어깨에 얹어졌다. 딱히 털어내지 않았다보니, 아키라가 초콜릿을 내밀었을 땐 이미 서너개의 꽃잎이 장식마냥 머리 위에 얹어져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예상했듯 그 권유는 요조라에게 조금 뜬금없었다. 자신의 가게 노점에서 산 걸 자신에게 권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요조라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초콜릿과 아키라를 번갈아 보았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듯이. 결국 유혹을 못 이겼는지 손을 뻗어서 초콜릿을 받아갔다.
"고마워요..."
그렇게 받은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자 달콤상큼한 맛이 혀 위로 사르르 번진다. 만들 때 이미 맛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먹으니 새롭게 느껴졌다. 주변 풍경 덕분이었을까. 요조라는 드물게도 먼저 질문을 꺼냈다.
"시미즈 씨는... 신을, 믿어요...?"
상황만 아니었다면 무슨 도를 아십니까로 오해받기 딱 좋은 질문이지 않았을까. 정작 질문한 요조라의 얼굴은 아무 기색도 없이 평온했으니 보면 그냥 묻는건가보다 하고 알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