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은 질문에 조금 뜸을 들이며 고민했다. 지옥에 대한 생각이야 나름 가지고 있지만 이 질문의 본질이 그냥 이런 주제가 나와서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인지 아미카의 반응을 조금 살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사실 지옥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왜냐하면, 잘못한 사람의 영혼이 가게되는 곳이 지옥이라면 제일 처음 인간이 있었을 때부터 지옥이 있다는 것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영혼을 수용할만한 공간이 있느냐가 첫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얘기 재미없으려나?”
렌이 말을 하려다 끊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재미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궁금해하면 이어서 이야기하겠지만.
“맞아. 여름은 덥지만 에어컨 아래에 있으면 시원하니까. 겨울에도 코타츠 안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하지. 눈이 내리면 예쁘고.”
시이의 근간은 인간이다. 먼 옛날, 쇼군에게 이름을 하사받은 여걸의 망념이 핵이 되어, 방울소리 울리는 복도의 폭풍을 맞으며 만들어진 유령이다. 유령은 괴담을 먹고 자라 신이 되었다.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마다 소문이고 풍문이다.
그러므로 시이는 과하게 인간답다. 평생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의지해버리고, 배신당하면 깊게 원한을 품는. 인간된 신이다.
그러므로 반쯤 인간인 자손을 둔 후미카가 시이를 자식처럼 대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처럼 대해주는 후미카를 시이가 졸졸 따라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고.
"에헤, 에헤헤... 뱃놀이 할 수 있는 거야? 시이는 오리배보다 나룻배가 더 좋아. 오리배는 지붕이 있어서 하늘이 안 보이잖아. 꽃놀이에는 하늘이 있어야 하는걸..."
교토 풍의 화려한 꽃놀이는 정말로 보기 즐거웠었다. 시이는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바보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재잘대다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번민했다.
후미카가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몇 초간, 타임세일에서 나물을 앞에 두고 집어가느냐 마느냐의 고민처럼, 시이는 고민했다. 그리고 본인의 카드를 꺼낼까 말까 하는 속물의 싸움에서 졌다.
꺼내지 않았다.
그래, 돈 없단 말이야!
나, 나는 과일도 타임세일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구-
신인데도 궁상맞은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이 사람도 아닌 녀석들아!
아무도 질타하지 않았는데 속으로 변명을 바락바락 외치며, 시이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아... 아, 나는 트로피칼후르츠 맛이야. 괜찮다면 나눠먹지 않을래? 나, 초코도 말차도 전부 좋아하니까. 싫으면은 어쩔 수 없지만-"
흥미롭다는 말에 렌은 뺨을 긁적였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듣고 싶다는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나쁜 짓을 하여 지옥에 가는 사람을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수용해둔다면 말이지. 가장 첫번째로 지옥으로 들어간 사람이 가장 불리하고 제일 마지막에 태어난 영혼이 가장 유리한 구조이잖아. 그렇다면 그건 불공평한 처우가 아닐까... 지옥에 갈 정도를 정하는 것도 애매하다고 생각되고.”
렌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다가 뺨을 긁적였다.
“뭐,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니까. 지옥보다는 윤회 쪽이 취향이기도 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렌은 좋아하는 계절을 묻는 질문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여름. 여름이 좋아. 덥고 습하고 해도… 바다도 가고 계곡도 가고, 차갑고 시원한 것도 많이 먹고. 아, 나 그리고 수영부거든. 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렌은 아미카가 승낙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자 그새 또 몸 위에 올라앉아있던 벚꽃잎이 툭툭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죠. 처음 지옥에 간 사람만큼 억울한 사람이 없겠네요. 그리고 지옥에 갈 기준이 애매한 것도 맞고요.."
그저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마지막 인류가 나올때까지 고통받아야 한다니, 지옥을 말하는 사람은 영원히라는 개념으로 이를 무마하려 했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불공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죄의 기준은 늘 바뀌는데 과거엔 죄였던게 지금은 죄가 아니라면 그 죄로 지옥에 간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언... 죽으면 그저 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마치 컴퓨터처럼 완전히 끝나는거죠. 물론 사람과 컴퓨터를 비교하는건 아니지마안.."
어쩌다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미카에게 죽음은 그저 끝, 영원한 깊은 잠 같은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서 아미카가 죽음을 숭상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잠은 지금밖에 못 잘태니 오히려 더 자두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수영부라, 확실히 여름을 좋아할만 하네요..! 전 물이랑 엄청 친한 편은 아니라 딱 빠져 죽지만 않을 수준인데에.. 멋지네요!"
렌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미카도 자리에서 일어나 렌 선배와 같이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벚꽃을 지나며 아미카는 나중에 또 벚꽃을 보러 올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누구랑 보러 올까..? 그건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