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미가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을 흉내내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몰랐기에, 미즈미의 스트라이크 존이 태평양 사이즈라는 것도 모르고 시니카는 그렇게 대답했다. 인테리어도 예쁘고 서비스도 좋다는 말을 시니카는 여상스레 넘겼다. 평소라면 음식 맛은 어떠냐며 지적을 해왔을 테지만, 이야기를 수다스레 많이 늘어놓는 것이 미즈미의 전술이었던 것이라면 미즈미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야기의 홍수 속에 정작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깜빡했으니까. 무엇보다 그 다음에 따라나온 이야기가 시니카의 신경에 아주 거슬리는 이야기이던 것도 한 몫 했고.
"없어, 그딴 거."
미즈미의 곱게 꾸민 얼굴과 친구 이야기, 그리고 정신없는 말투로 감성팔이를 시전하는 태도. ......내 흉터가 더 커, 하고 자랑하는 바보짓 따위는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다만 미즈미가 어떤 느낌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아서, 시니카는 미즈미의 말이 끝나자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가식 안 떨어도 돼."
시니카는 다시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깊이 들이키곤 후, 하고 내쉬었다. 바람에 실려 우연찮게도 미즈미의 손등으로 흘러와 닿은 라즈베리향의 숨결이 선득하니 차가웠다.
"말 놔도 좋아. 같은 학년이니까."
그리고 그걸 주머니에 끼워넣고, 시니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저 흥성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는 곳에서 평온하게 휴식을 갖는 것은 영 글러먹은 계획인 것 같다.
사쿠라마츠리가 열린 가미즈미는 꽤나 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 모두가 가족 혹은 친구, 연인과 손을 잡고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런 사이좋은 무리들 사이에서 쇼는 홀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왜냐면 친구가 없었으니까. 거기에 딱히 유감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원래 혼자인 쪽이 편하다.
쇼는 노점에서 산 벚꽃 초콜릿을 입에 한 조각 털어넣고, 벚나무 아래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람이 불자 벚꽃잎이 우수수 흩날린다. 쇼의 머리 위에 꽃잎이 몇 개인가 떨어진다.
축제라면 당연히 친구들과 함께다. 당연히 아끼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게 당연하다. 사람이 둘이면 추억도 두 배. 사람이 셋이면 추억도 세 배.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렇게 한 참을 친구들과 함께 이리가고 저리가고 하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스즈는 그 쯤에서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먼저들 가 있으라고 말한 스즈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잠깐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즈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잠깐 뒤떨어져서 쉬었다가려고 했다.
" 벚꽃 예쁘네~ "
떨어지는 벚꽃잎이 보기에 좋았다. 지쳤던 것도 잠시 잊고 스즈는 어린아이라도 된 듯이 폴짝폴짝 점프하며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아챘다. 손을 펼쳐보자 들어있는 벚꽃잎을 보곤 또 으헤헤, 하고 웃으면서 좋아했다. 축제라고 하기에 스즈는 온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고 옷 입는 것과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스즈는 그 비싸다는 후리소데도 세 벌이나 가지고 있었다. 연하디 연한 하늘색에 연분홍색 벚꽃이 수놓아져있는, 그야말로 백화요란이었다. 스즈는 벚꽃을 이리저리 채가다가 슬슬 다리가 아픈지 주변을 둘러보다 익숙한 얼굴을 찾아냈다.
" 요 - "
그리곤 스스럼없이 다가가 어깨를 톡 치곤 무표정과 웃는 낯 그 중간 어딘가의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이라던가 '뭐해?' 라던가 같은 인사가 아닌 요- 하는 한 마디로. 스즈는 혹시라도 자기를 모를까 싶어 '미나미 스즈야' 하고 한 마디를 더 건네곤 '오토하 쇼, 맞지?' 하고 한 마디를 더 건넸다. 그리곤 스스럼없이 옆자리로 가선 앉아도 되겠느냐는 허락따위는 구하지도 않은채 털썩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 위에 손이 올라왔다. 사자랍시고 표정을 이리저리 찡그렸는데, 눈이 이렇게 뜨여서야 놀란 토끼 눈과 다를게 없어졌다. 사자라고 말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노랗게 물드는 붉은 눈이 동그랗다. 누가 사자 머리에 손을 올려! 의 도발에 눈만 깜빡거리며 놀란 티가 난다. 하지만 손에 머리 위에 올라온 것보다 그 말 때문이었다. 잠 자고 있는 걸 깨웠다고 잡아 먹어버리면 그건 혼낸다고 하기에는 과한 처사로 보인다. 애초에 코로리는 혼낼 생각이 있기는 했었나 싶을 만큼 그럴 생각이 없었다! 토끼신님이라고 생각하고는 당근 꿈, 겨울잠쥐신님이라면 치즈꿈을 꾸게 해주겠노라고 하고 있는데 어딜 봐서 혼낸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계에서 같은 신을 우연찮게 만난게 반가워서, 어떤 신인지 맞추는게 즐거워서 그새 잊어먹었던 이야기다. 코로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혹 사자한테 먹히기를 원하는 걸까봐서 고민하듯 몇번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런 꿈은 꾸게 해줄 수 있어!"
겨울잠쥐신님은 겨울잠을 많ー이 자서 치즈꿈은 이미 많이 꿨는지도 몰라.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있는 웃음이 당찼다. 겨울잠쥐신님 맞나봐! 맞췄다! 심지어 어떤 신인지도 맞췄다! 짓는 웃음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배부른 고양이의 미소같았다.
"나 당근 먹는 사자 아냐."
당근을 먹는 사자도 있겠지만, 우선 코로리는 아니었다. 인간계의 음식은 신계의 것보다 훨씬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크 푸드를 좋아한다. 바삭하고 노릇하게 튀긴 감자튀김을 샛노란 치즈소스에 찍어먹는 걸 즐기는 코로리에게 당근이라니! 과하게 건강하고 싱싱한 음식이다. 일부러 골라내고 빼먹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골라서 찾아먹지도 않는다. 잘 생글이던 얼굴에 옅게나마 불만감이 드러난다. 눈썹이 내려오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다 매트에만 끌리고 있을 머리카락에서 다른 움직임이 느껴져 그곳으로 기운다.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서 배배 꼬여 감기고 있다. 겨울잠쥐신님이 닿으면 얼어버릴까? 코로리의 원래 머리카락 색, 신의 모습으로서 갖고 있는 머리카락 색은 흰색 위에서 유리조각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며 다른 여러 색을 담아냈다. 한창 피구하느라 바쁠 학생들이든, 아직도 둘이나 사라진 학생을 찾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창고에 들이닥쳐도 문제없을 만큼만 머리카락을 얼려버린다. 체육창고에 별로 들지도 않는 햇빛을 받았는지, 손가락에 감긴 부분 조금이 하얗게 부신다.
"얼어버렸다ー"
머리카락이 풀려나면 다시 새카만 흑색으로 물들여버리고, 이 작은 장난에 웃음을 품었다. 당근은 안 먹는다면서ー 하고 물어보는 목소리 다음은 다시 한 번 풀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옷깃이 잡아당겨지고, 매트를 두들기는게 무슨 뜻인지는 어젯밤 악몽에 깨었길래 단잠을 선물했던 아이도 눈치챌 수 있겠다. 겨울잠쥐신님, 졸린가봐! 어떤 꿈을 선물해주는게 좋을까 계속 고민했지만 코로리는 꿈 없는 잠이 제일 단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잘 자아."
목소리 크기를 조용히 낮추고 소곤소곤 전한다. 이번에는 코로리의 손이 푸르고 짙은, 꼭 아까 전에 세고 있던 고래가 유유자적 노닐던 어두운 바닷빛 머리카락 위로 손을 올리려 한다. 한 번의 쓰다듬, 허락해준다면 체육시간 동안의 쪽잠은 정말로 단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