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미는 경건한 신사에서 굳이굳이 경박스럽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짝짝, 작게 손뼉치는 소리와 목소리가 맞물린다. 미즈미는 눈을 슬쩍 감고 -이미 감고 있어서 티는 안나지만-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신이 신에게 참배를 한다니 난생 처음 있어본 일이었지만 미즈미는 기꺼이 감사를 표하기로 했다. 나베 맛있잖아. 응. 얌전히 있다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사 안으로 들어가서 그저 목례를 하고 잠시 눈을 감다가 공물을 바치고 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보였고, 그 수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공물이 모였겠지. 과연 어떤 나베가 완성될까. 궁금한 마음이었으나 그 결과는 어차피 나중에 알 일. 지금은 근처를 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제는 다른 반의 낯선 여자애를 따라 사쿠라마츠리에 끌려갔다가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해괴한 저녁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에는 너도 야미나베 행사에 갔다오라고 외할머니께서 보따리를 쥐어주시는 바람에 시니카는 억지로 집 밖으로 떠밀려나오게 됐다. 오늘도 저 소란스럽게 흥성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안식처를 찾기는 글러먹은 모양이다. 문득 보자기 안에 들어있는 게 뭐건 그냥 왁 쏟아버리고 대충 다녀왔노라고 둘러댈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외할머니께서 정성스레 준비한 것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기에는 허허벌판 꼴의 가슴팍 한가운데 남아 있는 한 그루 썩어빠진 나무 그루터기 같은 양심이나 예절, 염치라는 녀석들이 그래선 안 된다고 왁왁대는 통에 그러지도 못할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시니카는 다시 사쿠라마츠리로 향했다. 자신의 발로. 그나마도 어제의 그 기괴한 하루가 예방접종과도 같이 되어 견딜 만했으나, 여전히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골이 울리는 것 같다. 얼른 해치우고 돌아가야지. 뭐가 들어갈지 어떻게 알고. 야미나베 재료를 넣는 곳에 가서 할머니께서 마련해주신 보따리 안에 있는 조그만 병과 작은 되 안에 든 것을 부어넣고 돌아나왔다.
새전함에 가서, 새전도 바쳤다. 박수 두 번을 짝짝 치고, 합장한다.
그런데, 딱히... 뭔가 빌 게 없었다.
무엇을 빌면 좋을까.
소원이 없는 제게 소원으로 삼을 만한 걸 주세요.
신님이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되묻는 것 같아서, 시니카는 돌아나오면서 소리없이 웃었다.
서로서로 천막 안엔서 얼굴을 텄을지도 모르고 혹은 천막에 들어가지 않고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시간은 그럼에도 분명하게 흘러갔고 이내 그나마 최근에 넣은 재료들끼리 모아서 만든 나베가 드디어 조리되었다. 하얀색 냄비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무녀는 조심스럽게 천막 안에 그 나베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나베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하얀색 김이 파앗, 하고 올라오며 잠시 주변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 연기가 걷히자 보이는 것은 누군가는 경악할지도 모를 무언가였다.
선지로 보이는 뭔가가 떠 있었고, 너무나 많은 두부가 아주 한 가득 들어있었다. 하얀색 두부가 절대 다수였으며 그 중에는 연두색 두부도 들어있었다. 허나 국물은 뭔가 모르게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향으로 보아 인스턴트 가루라도 들어있었던 것일까? 그 와중에 옆구리가 터진 찹쌀 경단이 동동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부근에선 꿀 향기가 가득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맥반석 계란으로 보이는 삶은 계란이 들어있었고, 풍미가 절로 돋는 향신료 향이 솔솔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맛술도 조금 들어갔는지 그 향도 살짝 녹아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가운데에는 정말로 싱신한 대게가 있었으나 그 옆에는 식용이 가능한 개구리도 들어있었다. 그 와중에 무슨 버섯은 이리도 많은지. 새송이 버섯, 만가닥 버섯, 참타리 버섯, 팽이 버섯은 특히나 더 많이 들어있었다. 이내 아키라가 국물을 한 모금 떠마시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지.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아무래도 드링크 같은 것도 들어간 것이 아니었을까?
일단 무녀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베를 나눠줬다. 개구리나 대게는 확실하게 잘라서 나눠줬고 누구 하나에게 불공평하게 더 많이 가는 일 없이 정말로 다양하게 재료들과 국물을 나눠줬다.
"많이 드세요. 여러분."
싱긋 웃는 무녀의 표정이 무섭게 보이는 이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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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재료는..
맥반석 계란, 피, 대량의 두부, 네모난 두부(기본 두부+말차 두부), 라면스프, 꿀이 들어간 찹쌀경단, 맛술과 향신료, 식용 가능한 통개구리, 홋카이도산 대게, 홍삼정 농축액 다섯 병, 모듬 버섯(새송이, 만가닥, 참타리, 팽이버섯), 팽이버섯 이상 12개랍니다.
외할머니가 무엇을 주었는지는 냄새로 대충 짐작하고 있었고, 결과물이 나왔을 때에는 국물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풍미가 그것을 확신케 했다. 외할아버지의 지인 되시는 분이 아주 유명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기에, 명절마다 거기서 요리술에 쓰기 아주 좋은 정종이 들어온다던가.
그러나 한 입 떠먹어 봤을 때에는......... 도저히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비주얼만 놓고 봤을 때에는 꽤 훌륭한 나베다. 커다란 대게가 들어간데다, 무난하게 두부도 있고, 풍미 좋은 버섯들도 있고, 무엇으로 간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당하게 매콤한 감칠맛에, 심지어 개구리라고 해도 일단 먹어서 맛이 있다면 시니카는 식재료가 얼마나 불쾌한지에 대해 크게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루왁 커피는 아웃이었지만, 식용 개구리 정도라면 납득가능한 수준이었다. 이상한... 선지같은 것은, 잘 모르겠으니 패스.
..... 그렇지만 대체 혀끝에 와닿는 이 눈치없는 단맛은 무엇이며, 거기다가 대체 누가 뭘 넣었길래 이렇게 떫고 쓴 맛이 난단 말인가.
일단 시니카는 딱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꿀경단을 넣은 게 누군지 알게 되면 아마 야구배트를 집어들게 될 것 같다고.
시니컬한 시니카 양은 평온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도저히 시니카 양을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일단 피부터 먹어보는 게 순리겠지. 개구리의 입에 반절 가른 선지를 집어넣고, 머리째로 우물우물 먹으면 느껴지는 건 초-HAPPY-랄까. 아, 역시 쾌락신의 피는 이런 맛이지! 하게 되는 맛. 순식간에 HIGH해져서 꿀경단도 버섯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감칠맛은 좋지만 그 이외의 다시는 부족하달까. 피만으로 보충할 수는 없었던 거겠지. 아무도 다시마나 가다랑어 넣지 않은 거냐구, 2%의 불평이 생기는 맛이었습니다. 그래도, 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