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불호령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도 역시 씩씩하게 먹어삼킨다. 기왕 받은 것을 돌려 보내는 것은 역시 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느쪽 도이든 간에 말이다. 앞에 닥친 것을 거리낌 없이 일념으로 썩둑썩둑 잘라는 것도 역시 도다.
"초대에는 응하겠지만... 기대해도 되는게냐? 가라아게와 함께 날 방치해두고 방으로 들어가 퍼질러 자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것이 시로하에게 있어서 코세이의 이미지였으니. 별의 신, 그 이름을 떠올리면 흐르는 은하수나 별똥별같은 낭만적인 감상보다는, 잠에 빠져있다 마침내 눈을 뜨면 그 핸드폰? 이라는 걸 켜서 모바게의 쌓인 스태미너를 처리한다든가 일일임무 보상을 수령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는 그런 것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축제..."
시로하가 젓가락질을 잠시 멈추고 그 이름을 소근거려본다. 분명 사쿠라마츠리라는 이름이였지. 알기쉽지 않은가. 가미즈미를 비롯해서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벚꽂 축제다. 이런 유명하고 상징적인 축제가 열릴 때마다 시로하는 벚꽃의 신이라는 녀석이 아무래도 신앙 하나는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 뭐, 실력은 제가 감히 어떨지 평가는 못 했어도 정신적인 부분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준다던지. "
어쨌든 시미즈씨가 부끄러운 기색을 보였으므로 이 얘기는 이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도서부도... 고려도 했었지만요. "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왔을 때, 편하고 익숙한 검도부냐, 다른 동아리에서 새로운 경험이냐,를 두고 고민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때 '다른 동아리'의 후보에 도서부도 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도서부가 새로운 경험은 아니지 않나? 하는 판단에 금방 후보군에서 빼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사실, 서점 일도 할아버지의 일을 돕는거지 그 이상의 감정은 못 느껴서 말이에요. 검도부가 좀 더 저에게 편안하네요. "
할아버지가 들으면 뒷목 잡으실 소리지만. 나는 집안의 일을 이어받기 위해 경영을 공부 중인 아키라씨에 비해 바람직하고 효도하는 손자는 아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할아버지요? 여전히 정정하시죠. 온천! 꼭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진지한 얘기를 하는듯한 시미즈씨 덕에 덩달아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답을 했다.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께서 시미즈씨(그러니까, 지금 대화하는 시미즈씨 집안의 당주)가 좋아할만한 책을 들여놨다고 중얼거리셨으니 한 번 방문하시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 선택에 대해서 자신이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아키라에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검도부에는 꽤 실력자가 한 명 있다고 했던가? 오늘은 여기에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이 어떤 이인진 잘 모르겠으나 검도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어쩌면 그 사람에게 직접 묻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완전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살며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시찰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날 생각은 아니기도 했으니까. 또 이러다가 불시에 슬쩍 올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아버지가 좋아할만한 책이라. 전해줘야겠네요. 김에 저도 새로운 책을 볼까 싶기도 하고요."
만화책. 새로 들어온 거 있을까. 아니면 아예 없을까. 일단 가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기에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그냥 오늘 하교하면 바로 가볼까.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하며. 아무튼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며, 아니. 정확히는 바쁜 일정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지 아키라는 돌아갈 채비를 보이진 않았다.
"김에 여기서 연습을 조금 더 보고 가야겠네요. 이렇게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기도 하니까요."
괜찮냐는 듯, 허락을 구하며 그는 만약 허락이 떨어지면 조용히 벽으로 간 후에 등을 살짝 기대며 구경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막지 못하고 머리를 맞은 것에 대한 분함도 조금 있었기에 괜히 손으로 목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막레..느낌이라고 하니 일단 막레를 써야 할 것 같아서 막레를 써봤어요. 일상 수고했어요!
아마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요조라는 더이상 아무 반응도 없이 푹 잠들어 쓰러졌을 것이다. 아주 간당간당하게, 옆사람의 목소리가 요조라의 고막을 넘어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제인가 오늘 아침인가 간식으로 슈크림을 해주겠다는 오빠의 말을 상기하며 잠들어가던 요조라는 문득 잠이 슥 깼다. 점심시간, 후배님, 도서관,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낯선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가물거리던 정신이 한순간에 깨어들며 요조라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에... 누구세요...?"
눈을 뜨고 옆을 본 요조라가 한 첫 말은 그거였다. 누구세요. 그야 요조라의 기억에 옆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니 당연하지만. 방금 졸면서 이래저래 귀찮게 군 걸 깨닫지 못 한 듯 하다. 요조라는 졸음 가득한 눈을 깜빡거리다가, 느릿느릿 움직여 옆사람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좌석 등받이에 푹 기대서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하품했다.
"졸려..."
달랑 그 한마디 다시 중얼거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펼쳐 둔 잡지를 들어 페이지를 넘긴다. 그새 옆사람은 깜빡한 것처럼.
교문을 열고 들어가, 교무실에서 경음악부실 열쇠를 받아들고 별관 복도로 왔을 때 쇼는 기묘한 것을 목격했다. 못박힌 듯이 멍하니 서서 경음부실 안을 응시하고 있는, 쇼보다 눈높이가 미세하게 높아보이는 소녀. 머리가 짧아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잠깐 분간이 어려웠지만 자세히 보니 치마에 스카잔 차림이다. 입고 있는 치마는 확실히 가미즈미 학원의 지정교복이 맞지만... 쇼로써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보랏빛 눈으로 경음부실 안을 빤히 응시하는 시선은 왠지 애증의 대상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복도에 나타난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이름 모를 교우는 쇼에게로 고개를 홱 돌려왔다. 보랏빛 눈은 분명히 무기력했지만 쇼를 쏘아보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제서야 그녀의 목에 늘어져 있는 빨간색의 2학년 리본이 보인다. 2학년생인데, 분명히 작년에는 전혀 본 적 없는 얼굴. 그녀는 쇼를 자신과 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뭐라 가타부타 말도 없이 다시 경음부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뭘 바라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