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대꾸에 이번에도 대답없이 어깨만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녀의 말이 백번은 맞으니까 내가 반박할 말이 있어야 말이지. 지금도 두 눈에 피로가 가득하게 몰려와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도 보일 것이다. 오늘은 밤에 틈틈히 눈을 붙여둘까 싶으면서도 정작 밤이 되면 걱정에 뜬 눈으로 지새우게 되지만.
" 그렇게 맛있지는 않겠지마.. "
아무리 잘 만든 가라아게라고 한들 어젯밤에 만들어서 밤새 도시락통에 들어있던 녀석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아침에 데워서 가져오기는 하지만 점심시간까지 그 온기가 남아있을리도 만무하고. 분명 가라아게를 입에 넣을때까진 미소가 피어있던 시로하의 표정은 금세 차갑게 굳어버린다.
" 사정이 있다면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
나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도 아니면서 그러는 이유는 나는 잘 모른다. 나중에 물어보면 알려줄 날이 올..수도 있겠지만 굳이 남이 곤란해하는걸 물어볼만큼 나쁜 성격도 아니니까. 가방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사온 물을 꺼내 한모금 들이키며 그녀의 말을 듣고선 물이 반병쯤 목으로 넘어갔을때야 페트병에서 입을 때고 답했다.
" 그런것치곤 잘 먹는데 말이지. 이건 어젯밤에 만들어뒀으니 어쩔 수 없다구. 나중에 집에 한번 놀러오면 갓 만들어진 가라아게를 만들어줄께. "
말하면서도 남아있던 가라아게를 입에 쏙 집어넣는 그녀를 보면서 웃어버린 나는 내 몫의 가라아게를 하나 더 밥 위에 얹어주며 얘기했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본적이 ... 없는 것 같네. 인간계에서 3년을 지냈는데 한번도 초대한적이 없다니 내 사회성도 참 좋은 편은 아닌듯 하다.
학생회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동아리가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예산을 타가고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예산낭비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 경영지식을 쌓고 있는 아키라는 그렇게 예산낭비를 하는 동아리는 쉽게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허나 모든 동아리를 한번에 돌 순 없었기에 오늘은 검도부를 찾아보기로 하며 그는 학생회실 밖으로 나섰다.
검도부 멤버들이라면 아마 검도장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부실이 아니라 검도장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향했다. 누군가를 데리고 올까 했지만 그래도 한번에 많은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 애매한만큼 학생회에서 잡무를 담당하는 몇명만 대동한 상태에서 그는 검도장의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학생회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괜찮을까요?"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시간을 뺏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당장 손이 한가한 사람,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사람. 그런 사람이 없을지 확인하려고 하며 아키라는 반응을 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바라보려고 했다.
파릇파릇하고 열의가 있는 1학년이 와야할텐데, 그러니까 나 같은 애들 말고. 홍보지가 필요하다해서 임시로 서점 포스터를 만들던 기억을 되살려 꽤 모양새는 갖춘 전단지를 이곳저곳에 붙여놓았다. 가미즈미 동아리의 꽃(이건 사실 거짓말이다. 허위광고로 신고가 들어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다.)! 청춘남녀의 로망! 심신단련! 검도부로 오세요! 그리고 대강 멋지게 나온 대련 사진. 덕분인지, 혹은 우연인지 홍보지를 붙인 이후로 구경하러 오거나 입부서를 내려는 1학년 두세명이 방문을 했다. 오늘은 시로하씨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마찬가지로 2학년인 검도부원 한명을 붙잡고 대강 시범 경기를 보여주던 참이었다.
똑똑,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1학년일까. 나는 잠시, 하고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면을 벗은 뒤, 땀이 나 이마에 붙은 앞머리를 대강 쓱쓱 치웠다. 호면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 목검을 어깨 위에 올린 뒤, 부실의 나무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가 났다.
" 안녕, 너도 1학년..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
1학년으로 착각하고 말을 건네다, 회장 특유의 회색빛 머리로 상대방을 인식하자 재빠르게 인사를 했다. 검사를 온 모양이었다. '검사'라는 말이 붙으니 잘못한 것은 없는데 역시 움츠러들게 되었기에, 괜히 갑을 입은 가슴팍을 더 당당하게 폈다.
돌을 두고 말을 옮기고 그리하여 이기고 지는 놀이 그뿐이라 여겨질지 몰라도, 대국이란 실상 상대와의 소리 없은 대화이다. 매 순간 최선의 수를 모색하며, 때로는 후차를 바라보고 멀리 돌아가기도 하며 의외의 수를 둬 상대를 떠보기도 한다. 하물며 한 발 물러나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지도하는 수를 두기도 하니. 승패만이 목적이 아니다. TRPG가 행동을 정하여 결과와 과정을 즐기는 놀이라고 하면 쇼기도 바둑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음은 그래서다......... 네, 다음 고리짝 사고.
"..독특하네. 들은바 후지모리 씨가 그러한 세상 속 세상을 창조하였고, 위화 없도록 관리하는 것이지? 이 책상 위에서."
일컫는 말 거창할지 몰라도, 말이란 힘이 실리는 것이다. 몰입이 중요한 놀이로 보이는즉 이 정도쯤은 말해둬야 도움이 될 성싶었다. 마치 여럿이서 소설을 써내려가는 일과 같구나.... 담담히 책상 위를 내려다본 마츠루는 손을 그러쥐더니 방금 전에 문을 두드린 것과 같이 손마디로 똑, 똑, 책상 위를 두드렸다. 딱딱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비뚤비뚤 모나기도 하지. 돌은 아니다. 유리라기엔 묵직하고. 단조롭게 울리는 소리로 헤아리건대.
"주사위......... 써?"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다가 말한 물건의 이름은 여태의 맥락만 보아서는 뜬금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RPG의 일종이라는 말로도 들으면 주사위도 생각보다 일리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마츠루는 제 직감을 알았다.
"아. 굳이 활동을 중지할 건 없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나요? 그래도 양해부탁드릴게요. 미리 공지를 하면 다들 미리 준비를 해버리기 때문에 순수하게 활동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거든요. 아오키 씨."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가미즈미 서점은 자신도 꽤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으니까. 당연히 그의 존재는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많은 것을 알고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의 눈동자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일단 분위기적으로는 착실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에 굳이 걱정할 건 없어보였으나 그것으로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활동은 착실하게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장부나 그런 것이 있으면 보여줄 수 있을까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내일까지 제출해주셔도 괜찮아요. 올해 예산이나 그런 것을 정할 때 필요하거든요."
정말로 꼼꼼하게 체크를 하겠다는 듯이 말을 끝낸 그의 안경알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일단 자신이 받아야 할 서류는 그 정도였고 남은 것은 회계쪽에서 체크를 하고 자신에게 또 보고를 할테니 굳이 그는 더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하지만 조금 흥미가 있는지 그는 근처에 있는 죽도를 바라봤다. 남아있는 물품인걸까.
"그리고 김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저도 잠깐 해봐도 괜찮을까요? 물론 잘하는 것은 아니라서 초보 실력이긴 하지만요."
겸손이 아니었다. 검도는 어릴 때 잠깐 해본 이후로 한번도 경험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회장을 두들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를 정도로 그는 검도를 잘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