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은 안자면 일에 지장이 있잖아. 자다가 별이 삐끗하기라도 하면 ... 어휴, 얼마나 피곤해질지. "
별의 운행은 상당히 엄격해야한다. 과거에는 인류의 지식이 별로 풍부하지 않았기에 조금 삐끗하는 정도로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내가 일일이 손으로 옮겨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프로그램이 버그가 걸리듯이 가끔 이상한 일이 생기곤 하는 것이다.
" 그래도 주말에 몰아서 자면 나름 괜찮으니까. 생활 리듬이 와장창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
덕분에 주말에 여가생활을 즐긴다거나 하는 일은 한달에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횟수다. 일단 주말 하루는 잠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한 주는 일주일 동안 밀린 일들을 하니까. 그래도 생활 자체에 불만을 가졌던건 꽤나 예전의 일이다. 이어진 시로하의 말에 그저 어깨만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그녀의 도시락을 보고선 작게 한숨을 쉬고서는 말했다.
" 그렇게 먹으면 힘이 안난다니까. 적어도 먹는건 제대로 챙겨먹어야지. "
하얀 쌀밥 위에 장아찌만 올라가 있는 도시락. 싸여있던 보는 고급진 것이었는데 막상 내용물은 그렇지 않으니 옆에서 누군가 보고 있었으면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내 몫의 가라아게와 샐러드를 반 정도 뚜껑에 덜어서 시로하쪽으로 밀어준다. 애초에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어서 별로 식욕이 돌지도 않고.
" 무녀 한두명쯤은 있어도 괜찮은거 아니야? "
그녀가 기대어둔 검을 곁눈질로 쓱 보고나서 다시 그녀를 바라보자 감겨있던 눈이 살짝 떠져있었다. 붉은 색이 감도는 눈은 내 눈과 다르게 그 어떤 다른 색도 섞이지 않은 붉음을 갖고 있었다. 물어보는 질문은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와버렸지만.
" 내가 리리 것까지 챙겨주는걸. 왜, 네 것도 챙겨줄까? "
하나쯤 더 싸는건 일도 아니니까 말이야. 장난스런 웃음과 함께 가라아게를 한 입 베어문다. 이미 다 식어서 딱딱해져 있었지만 굳이 신경은 쓰지 않는다. 맛있으려고 먹는 것도 아니고.
>>361 앗 이거 완전 흥미로운 질문! 음~~~ 후미카는 화가 나더라도 남들이 100만큼 화가 날 동안 20정도밖에 못 느껴서 말이지~ 어지간하면 대충 참는데 진짜진짜진짜지인짜 화가 난 거라면 30 이상으로 넘어갈 때가 되겠네. 차가운 분노 유형이라 난폭하게 굴지는 않지만 주변이 풍랑 이는 바다처럼 서늘해지고 숨 쉬기 무거울 정도로 습해져~ 그리고 본모습이 조금 드러나 :3 흰자위가 검어지고 비늘이 돋는데 눈이 완전히 까매져서 좀 무서움...
살짝이나마 떠올렸던 눈꺼풀을 닫고는 코세이의 말에 자력으론 잠에서 깨지도 못하고 끼니를 거를 뻔한 주제에 잘도 그렇게 말해준다, 라고 대꾸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남의 눈엔 이게 당최 어느 시대 도시락일까 싶을진 몰라도 시로하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보통의 식단이었다. 본질적으론 인간이 아니라 날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시로하에게 있어서는 이정도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요즘의 인간들의 밥상이 너무 화려해졌다고 생각하는 편일까. 지상과 달리 신계에는 그다지 먹고 즐길 것이 없기도 하고...
"...뭐, 그래도? 주는건 사양하지 않고 감사히 받겠느니라. ...고맙구나."
그런 의미에서라도 코세이가 건네는 닭튀김과 샐러드 뭉치를 선뜻 받아들인다. 우연이라고 해야할지, 마침 닭튀김은 시로하가 상당히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 탓인지 모처럼 그 서리같은 얼굴에는 기대만연의 미소가 피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라아게를 한 입 베어물자 급속으로 굳어버린다. 이 가라아게, '...차게 식지 않았더냐?'
"사정이 있는게야."
그렇게 뚝 잘라 답하고는 아쉬운대로 풀때기를 오물오물 씹는다. 신인데도 신사에서 모셔지지 아니하고 무녀조차도 두지 않는 그 사정이란 것이 무얼지. 그런 신세의 탓인지, 아니면 기대했던 가라아게의 배반 탓인진 몰라도 얼굴엔 다시 엄한 표정이 올라가 있었다.
"흥. 됐구나. 오라비 된 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네게 부탁해봤자 오히려 손 아니더냐. 대체 무엇이더냐 이 가라아게는. 이미 식어서 굳지 않았느냐! 전대미문이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서도, 방금 먹고있던 가라아게의 나머지 조각을 입에 마저 넣는 시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