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말야.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되게 신기한 일이야! 그리고 그만큼 소중하지. 그 귀중한 인연을 상처입히는데 쓴다면 아깝잖아~ "
그렇지? 하고 덧붙였다. 어려서부터 배웠던 것들 중 하나는 인연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이던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너와 내가 만날 수 있던 것은 절대 허투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으며 절대 뚫을 수 없는 이 극악의 확률을 뚫고 만난 것에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너와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신이 도와주었으니 그렇게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만난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우관계가 완만하고 주변에서 좋은 평을 듣는 것은, 그리고 주변에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 것에는 스즈의 이런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 고마워 "
스즈는 물을 받아 들고 한 두 모금을 마시곤 이제야 살겠다는듯 햐~ 하고 미소를 지었다.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고나니 머리가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상황의 이상함을 조금 눈치채게 되었다. 스즈는 '엇' 하고 잠깐 멈칫했다. 그리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연의 시간을 잠시 뒤돌아 보았다. 후미카는 짐을 가지고 있던가? 이 정도의 물병이 들어있을 주머니가, 가방이 있었던가? 나는 그녀의 두 손을 계속 보고 있었던가? 그렇다면 이 물병은 어디서 나왔다는 걸까. 스즈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는지 '어어..' 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 1학년 A반. 역시 후배님이었네~ 그럼 앞으로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해도 되지? 요리라.. 잘 하는 편은 아니야! 나는 먹는걸 더 잘해. "
그렇게 말하고 나자 잠깐 품었던 의심과 이상한 마음이 금새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거나, 신기하다고 느낀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나자 다시 의식의 흐름이 그 쪽으로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왔고, 그녀가 하는 말들은 이상하게도 신이 내 눈앞에서 방금의 기도를 들어주었다면 그에 대한 답변으로 했을 법한 말 들이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신이 아닐까. 신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던가 하는 것은.
" ... 그럴 리가 없지. "
스즈는 푸흐흐, 하고 조금은 기운 빠지게 웃고는 자신의 이상한 생각을 저 멀리 치워두었다.
>>281 재밌는 질문을 하셨기에 조금 늦게나마 떡밥을 물어보자면... 텐노였던 시절에는 시종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해주었기에 가사의 ㄱ도 몰랐지만, 가미즈미에 강신해서 에스테미야노류우카미가 된 이후부터는 좀더 행동이 자유로워지니까 신관이나 무녀들이 가사를 하고 있으면 뽀르르 달려가서 여가 좀 도와주겠느니라 하고 도와주는데, 보통 가사노동을 하는 신관이나 무녀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견습이나 신참, 혹은 기간제 아르바이트다 보니 류카를 그저 세습무녀 집안의 따님이거나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 괜찮습니다~ 하면서도 류카가 방해되게는 하지 않겠다, 하고 떼를 쓰면 어쩔 수 없이 돕도록 해줬다네요. (물론 류카가 진짜 신인 걸 알고 있는 직업신관이나 직업무녀가 보면 기절초풍) 그걸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젠 상당히 능숙해졌다고 합니다. 요리도 완전히 전문적이진 않지만 남부럽잖은 도시락을 쌀 수 있을 정도는 되네요.
>>이하 선관을 구한다닌 불법 팝업 광고<< 원하는 선관은 소꿉친구(같은 학년 아니어도 오케이), 물의 신인 어머니의 친한 지인이어서 일방적(?)으로 지켜보고있는 관계, 전애인(???/초등학생 때 장난으로 나중에 크면 결혼하자 같은 귀여운 것 포함) 등등으로 다양하게 받고 있어~ 물론 초면도 좋아하니 생각이 없다면 스루해도 좋다!
'왜 제가 나눠 주는 겁니까?'라는 말보다는 '네, 선생님.'이라는 말이 앞서는 성격이니까. 게다가, 의외로 힘이 세서 겨우 백지장 백여 장 정도 드는 것으로는 힘들지 않는 체질이니까. 렌코가 어울리지도 않게 복도를 성큼성큼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종잇장을 넘기며 세고 있는 광경은, 그래서 나타난 것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무서운 눈매로 소문이 난 렌코였지만 그럼에도 심부름은 잘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요긴히 써먹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그 결과 렌코는 새학기부터 바쁘게 통신문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오래된 전승에는 흰 까마귀가 온 세상의 대장간에 불씨를 날랐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종이와 불은 사뭇 다르지만 까마귀는 같으니 이것도 신의 업무인가 하고 렌코는 생각했다.
'한 장이... 남네.'
왼손에 쥔 종이의 '카나가시마 렌코'를 들추어 밑에 받친 종이의 이름을 살폈다. 토와 엔. C반. 힐끗 본 성적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총애를 잔뜩 받았나 싶을 정도로 별이 총총 박혀 있다. 카나가시마 렌코와는 꽤나 딴판.
이런, 잉크 무게로 육중한 종이를 붙잡고 있기에는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서둘러 C반으로 향했다. "토와 엔 씨." 굳이 풀네임을 부르면서,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그리고 똑똑똑 미닫이문을 두드린 다음에 열어젖히면서 "토와 엔 씨!" 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