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ㅡ 그건 다행이네요. 책임감으로 버티기만 하는 사람은 그만큼 쉽게 부러지더라구요. 진정으로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적지않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 어울린다- 저희 가족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여기에서 있던 이야기는 묻어버리죠- 그녀 역시 그렇게 말하고는 그를 따라하듯이 가벼운 손짓으로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무조건적인 봉사보다는 다소의 욕망으로 채워져 있는 편이 아름답다. 이전의 그녀였으면 반대였겠지만 이것 또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생각한 대로 될 때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각오라니, 그렇게까지 필요할까요? 저는 키라키라땅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데- 제가 들어가면 열심히 해주시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에게서 멀어졌다. 아직은 초조하지도 않았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봄은 이미 왔고 이 시간이 가기 전까지는 그것보다도 먼저 할 일이 있으니 본격적으로 부활동을 정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연애를 도와주는 건가요? 그거라면 좋지만- 아쉽게 되었네요 그건 이루어질 수 없어요. 누군가의 사랑을 도와주는 것은- 제 능력의 범주 밖이라.”
마치 시간을 맞춘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그것이 그리도 즐거운지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쩐지 초연한 듯한 웃음으로 답하는 것을 대신하였다. 그래 마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버틸 수 없다는 듯이.
“그런 걸 만들어버리면 누군가가 긴장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어버려요. 저의 가치관하고는 정반대.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거랍니다 키라키라땅-“
"그 정도로 힘든 일도 많다는 의미에요. 그래서 말했잖아요? 그렇게 권장하는 곳은 아니라고 말이에요."
그보다 키라키라땅이라는 말은 대체 언제까지 쓰나 싶어서 아키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1학년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회장을 이렇게 부르는 일은 여기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는 괜히 두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까지 저 호칭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필시 호칭을 바꿔주는 것은 어림도 없겠지 싶어 그는 결국 마음 속으로 납득하고 포기하기로 했다. 꽤 재밌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 것 같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알기는 힘들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사람. 지금까지 대화를 하며 느낀 감상은 딱 그러했다.
사랑에 대한 동아리 역시 부정적 입장인만큼 그는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 해당하는 동아리는 사실상 찾기 힘들었다. 동아리는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활동을 해야만 하는 곳이었으니까. 허나 그러다가도 좋은 곳을 찾을 수도 있으니 그 이상 자신이 뭔가를 말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며 그는 그녀의 말에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겠네요.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 더 보기도 좋고 아름다우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여기서 더 의견을 내진 않을게요. 그쪽이 카미야 씨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이 나오기 좋을테니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말하는 후배가 과연 무엇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뒤이어 그는 쭉 기지개를 켠 후에 고개를 돌려 꽃들을 바라보다 근처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봤다. 분홍빛 꽃잎이 아직 떨어지진 않았으나 머지 않아 떨어지게 될테고 필시 아름다운 풍경이 발현하리라 생각하며 그는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면 저는 다른 곳도 둘러보면서 남아있는 이들이 있으면 의견을 좀 더 들어봐야겠네요. 동아리 찾기. 힘내요. 그리고 김에... 머지 않아 만개하게 될 벚꽃도 기대해주면 감사하고요. 여긴 흐르는 물이 좋아서 그런지 벚꽃도 상당히 예쁘거든요."
또 볼 수 있으면 보자라는 말을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슬슬 가볼 생각인 듯 보였다.
"절대적 시간인가... 상대적 시간인가.. 같은 이야기지만요." 어릴 때 시간이 빨리 간다 같은 건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차서 그렇다- 같은 거였던가. 그러니까 정신적 시간은 어릴 때가 빨리 가고 육체적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리 나아간다.. 였나.
"으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매우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고.. 라고 생각하며 토와는 가볍게 넘깁니다.
"너무 친숙해지면 곤란할지도 몰라요?" 뭐.. 3학년인 이상 그렇게까지 곤란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겠죠.. 그럼 잘 찾길 바란다고 미리 말하는 게 좋겠지요." 못 찾으면 헛걸음하게 된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찾을 수 있겠지..? 오늘 갑자기 도서부 부장님이 본가로 내려갔다거나! 사건에 휘말려서 경찰서행이라던가! 같은 게 아니라면야
"그런 일을 보답이라고 하는 건가요..?" "음 그래도 반찬가게에서 같은 거 집었을 때 양보받는 건 좋을지도요?" 고개를 갸웃할만한 일이 아니던가..? 라는 반응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토와는 정말로 도달하면 저녁을 먹으러 다이닝 공간으로 향할 거고.. 야사이는 도서부 부장을 찾으러 갈까?
" 물론 괜찮고말고~ 오늘보고 못 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엄청난 인연이니까! 그렇지? "
스즈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까. 이 나라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이 작은 마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까. 그 희박하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오늘 이 순간에 만나게 된 건 분명 우연이 아니리라. 누군가와 만나던 간에 엄청난 확률을 뚫고 만나게 된 것은 감사할만한 일이고 또 그렇기에 매 순간과 모든 만남과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즈는 '그럼 스즈라고 불러줘~' 하고 말했다.
" 음.. 그렇.,지? 눈으로도 안보이고 물질적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말야, 그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그래! 그리고 또 나는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
'분명히 신 님은 계셔.' 하고 당찬 목소리로 말한 스즈는 또 미소를 지어보였다. 궁금할 법도 하겠지만 스즈는 그것이 왜 궁금한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3대째 이어지는 세습무로서 또 미나미 신사에서 지내는 무녀로서 신이라는 것은 스즈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마저 끼쳐준다면 굳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조차 없지 않은가.
" 어.. "
스즈는 순간 말을 멈추고 가만히 두 눈동자에 소녀를 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공기가 살짝 가라앉고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볼을 스치는 감각.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고 안심이 되는 기분. 그러고 보니 새로 만난 후미카라는 소녀가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뭔가 신비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신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제 기도에 응답해준 풍어신이 이 자리에 온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스즈는 그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또 미소를 지어보였다.
" 뭔가 신기했어.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뭔가 신비한 기분이었어! 되게 신 님처럼 말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 기분나빴다면 미안해. 그냥 조금 신비한 기분이 들어서~ "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한 스즈는 엇차- 하고 적당히 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 통을 열었다. 두 개의 주먹밥이 들어있었고 스즈는 '정말 안 먹어도돼?' 하고 한 차례 더 물어보았다. 조금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다른 것 보다 주먹밥의 사이즈였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나서 점심때에나 먹을 법한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주먹밥 두 개. 스즈는 에헤헤.. 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가득 물고 우물거리던 스즈는 '우우웅!' 하고 웅얼거리며 말하며 후미카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더 우물거리다 삼키고, 또 크게 한 입을 물고 우물거리다 삼키고.
" 맛있다! 이거 진짜 맛있어! "
친구들도, 어른들도 그렇게 말했다. 너는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예쁘니 신들도 그 모습을 좋아하실 것이라고. 그 때마다 스즈는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먹는 모양 따위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주먹밥 하나에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은 스즈는 또 한 입을 물고 한 참을 우물거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올려 후미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