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살피듯 이어지는 조금은 가라앉은 듯한 한 마디 말 없는 눈빛에 스즈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곤 덩달아 고개를 내려 자신의 채비를 살폈다. 빨간 치마에 하얀 상의. 흔히들 '무녀복'이라고 부르는 그것. 별 다른 이상없이 정갈하게 차려입고 신을 만나러 왔던 그 상태 그대로였다. 스즈는 '저기' 하고 운을 떼려다가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말에 아하하- 하고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 괜찮아 괜찮아! 예쁜 마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미나미 신사는 항상 열려있으니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왔다면 신 님께서도 분명 좋게 봐주실거야. "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나쁜 마음이 아니고 3월 벚꽃처럼 예쁜 마음을 지니고 왔다면 신 께서 그 마음을 살펴보지 않으실리가 없을테니까. 스즈는 항상 그렇게 배워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이 늦은 시간에도 일을 하냐는 말에 스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 음.. 그래. 어떻게 보면 일일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일단 나한테는 일이 아니야! 여기서 사는건 아니지만 거의 여기서 살다시피 하니까.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내가 여기서 지내는 시간만큼 신 님이 나를 보살펴주실테니까. "
한 번도 신에게 화답을 들은 적도, 그 모습을 본 적도 없으나 스즈는 진실하게 그것을 믿고 있었다.
" 조난? "
농담따먹기라도 하자는 걸까. 스즈는 그래..? 하고 조금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조금 당황한 것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었으니까. 이런 식의 농담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른다. 뒤이어 농담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말에 '그러지 뭐~' 하고 사람 좋다는 미소를 지어보인 것은 덤이었다.
" 아무튼! 다시 한 번, 미나미 신사에 어서와. 나는 미나미 스즈. 여기서 지내는 무녀야. "
무녀. 스즈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아직 신과 독대한 적도 없고 행사 따위의 것을 직접 주도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여러 잡일이나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스즈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바닥에 떨어진 빗자루를 주워 가지런히 정리하곤 다시 뒤를 돌아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 있지, 내일은 배가 나가는 날이야. 그래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 그 분들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바다에서 풍어신께서 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분명 전해졌을거야~ 그렇지? "
테츠야가 마지막에 잔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죽도가 머리를 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완전히 장담은 할 수 없지만서도...
다만 그랬다고 한다면 테츠야는 지금 병원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 분명하며 시로하도 정학내지는 모종의 징계를 피하지 못했을 터다. 가미즈미 고교의 룰은 신에게조차 통용되는 엄격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테츠야가 검도에 대해서 실제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없다. 미처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고 죽는 일은 없다.
"아니, 틀렸다."
그리하여 대신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단호한 부정으로,
"태어나서 삶의 반평생, 일야몽중으로 검을 붙든다 하여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일문자도 제대로 긋지 못하는 고교생이 어찌 구전만으로 깨우친다는 것이냐. 아니면, 그대는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전생장수라도 된다는 말이냐?"
라며, 오히려 담담한 기색으로 말해보이는 것이다. 준비된 자조차 쉬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르침과 공부라는 것의 속성이 본디 그런 것인데, 검의 길이라고 달리 피해갈 수 있겠는가. 특히나 칼이란 적당히 주방에서 굴러다니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현세에 있어선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쇠퇴한 도의 자세를 비웃는다 하여, 가벼이 배움에 임한다 하여, 누가 감히 탓 할 수 있을까. 정세의 흐름이 그런 것을. 그 또한 도검의 신이라는 위치에 있는 자가 마주해야 할 필연이었다.
"―하여 체험은 여기서 끝인게야. 진땀빼며 따라온다고 고생이 많았구나."
하가네가와 시로하는 이 자리를 마무리하려는듯 질문있느냐, 라고 물으며 테츠야를 닫힌 눈으로 쳐다보았다.
굳이 손까지 이마에 대어주며 어필했는데 죽은자의 온기라니. 더이상 얘기하는 것은 입만 아플것 같아서 그저 어깨만 한번 으쓱해보일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갔을텐데 오늘은 무슨 생각이 들어서 참견까지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긴 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고 가버리는 것도 이상해보이니까.
" 그쪽이 말이 적은건 아닐까 싶네요. "
내가 말이 많다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 그래도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거니까 상대방이 느끼기엔 많아 보일지도 모른다. 미끄럼틀에 등을 기대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자 크고 작은 별들이 수놓아져있다. 누군가가 매일 똑같은 밤하늘을 보는데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왔고 나는 그저 고개만 저어보였다. 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
" 먹는거 ... ? "
보는건 그렇다치고 먹는거라니. 별을 먹어봤다는걸까. 나도 못먹어본 별을 먹어본 이 소녀를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대화의 핀트가 살짝 어긋나있다는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뜻대로 흘러가는 삶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 레몬맛 사탕이에요? "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소녀쪽을 바라보니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 있었다. 밤이었지만 샛노란 사탕알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 빛깔은 분명 레몬맛 같았다. 사실 노란색인게 레몬맛만 있는건 아니었지만 평소 레몬맛 사탕을 신봉하고 있으니까. 신이 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가? 나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모르게 실소만 살짝 터뜨린 나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항상 먹는 레몬맛 사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