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았다? 뭐, 솔직한 것도 나쁘진 않으니. 선배가 되묻는 말에 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토와 선배."
어쩌다 보니 통성명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TV 보러 휴게실에 온 것 뿐인데…? 쇼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 출근 준비를 하고 나서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기에 지금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잘 때는 시간이 빨리도 지나가는데, 자고 있지 않을 때는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누가 시계바늘에 모래주머니라도 달아 놓은 걸까? 아니면 시간에 족쇄라도 채운 걸까? 그런 상상을 해도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하늘은 여전히 깜깜하고, 밖은 어둡다. 그렇다. 요조라는 오늘도 길게 느껴지는 밤을 잠들지 못 한 채 보내는 중이었다.
"흐아... 밤... 너무 길어..."
곧 날이 바뀌는 자정이지만 요조라는 깨어서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은 건 익숙해진지 오래라, 이제는 못 자는 것보다 이 시간에 할게 없어서 괴로운 것이 더 컸다. 새로 읽을 책도 없고, 영상은 볼게 없고, 다른 가족들은 다 자고 있어서 놀자고도 못 한다. 그러면 결국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요조라는 침대 위에서 뒹굴던 몸을 꾸물꾸물 움직여 창가로 다가갔다. 계절에 맞춰 바꾼 파스텔톤 커튼을 걷어 창문 너머로 하늘의 상태를 보곤,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청바지에 얇은 긴팔 티, 그 위에 헐렁하지만 따뜻한 오빠의 후드집업을 입고서 조용히 1층으로 내려간다. 이럴 때는 느릿한 움직임이 도움이 되서 좋다. 살금살금 내려갈 때 딱이니까. 무사히 1층에 내려온 요조라는 부엌에 잠깐 들렀다가 현관으로 갔다. 걷기 편한 운동화에 발을 꿰고서 조용히 문 밖으로 나오면 휴... 하는 안도의 한숨부터 새어나왔다.
"자... 가볼까...."
조금만 놀다 올게요, 라고 집 쪽을 향해 소곤소곤 하고서 요조라는 느릿하게 걷기 시작했다. 부스스한 머리 위로 후드집업의 후드를 대강 쓰고서,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거리를 발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걷는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적막의 시간. 이 시간을 이렇게 즐기게 된 것도 제법 되었더랬지.
가로등만 켜진 주택가를 따라 쭉 걷다보면 작은 놀이터가 하나 나온다. 요조라의 걸음은 곧장 놀이터로 향했다. 밤에 나오면 늘 여기까지 걸어와서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만끽하는 것이 요조라의 루트였다. 혼자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는 혼자라 못 타니까 손으로 잡고 삐그덕삐그덕 움직여댄다. 그러다 질리면 미끄럼틀에 슬쩍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에... 저게... 뭐더라..."
별이 반짝반짝한 밤하늘을 보며 어설프게 별자리를 찾고 의미 없이 별을 세기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미약하지만 죽도의 검풍이 내불고 지나간 검도부실의 한켠. 이것 또한 시작의 바람이라고 말 할 수 있으려나. 그것을 목도하며 말없이 있던 시로하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것은..."
그리고 감긴 눈을 조금은 더욱 질끈. 하더니,
"―전혀 글러먹었구나!"
하고 떼엑- 외치는 것이다. 그리곤 금세 연신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올린 탓이다. 이건 모처럼 골이 아파오는구나... 하가네가와 시로하. 아니, 도검의 신은 제 목을 매만지며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문외한을 상대로 열을 낼필요도 전혀 없건만, 이렇게 기본도 되지 못한 자를 상대하는 건 또 오래간만의 일이라 멋대로 몸이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말하자면 감정이 이성을 이긴.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커흠..."
이대로 방치하면 분명 사단이 나겠다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 테츠야에게 다가가 보아라, 라며 운을 땐다. 이 뒤로는 한동안 교정이란 이름의 잔소리 밭길이었다.
"먼저, 네가 가져온 그것은 양손으로 잡는 물건이다. 오른손으로 베고 왼손으로 검을 다스린다고 마음을 먹는게다. 여기서 어깨는 더 펴고, 발을 앞으로 더 딛어야지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지 않겠느냐. 게다가, 아직도 상완근이 뭉쳐있구나. 유약한 몸이 쉽게 해지듯이 단단한 몸 또한 금방 부서지는 법. 칼을 움직이는 것은 몸이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롯이 네 안의 일념이다. 유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각자 다르다고 하나 이 균형을 처음으로 이루었을때야말로 무언가를 벨 수 있는 몸이 되는게다."
따박따박 정갈하게 언질을 하며 손을 가져다대고 테츠야의 자세를 하나하나 조정해주는 시로하. 마치 관절 목각인형을 움직이듯이, 직접 맞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칼이나 자세에 대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일념이라든가 유파가 추구하는 검리 따위의 이야기를 고교 2학년생이 알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런건 아랑곳도 하지않는지, 눈썹이 살짝 미간 안으로 당겨져 있는 그 얼굴에서 상당히 단호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럼, 이번엔 내 지시에 따라서 다시 휘둘러보거라."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겨우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시로하가 그제야 뒤로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다만 역시 아주 시원하지는 않은가, 자세를 풀지 말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는 검지를 올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자세 그대로 팔을 들어올려 검을 이빨처럼 치켜세우고, 가상의 적에게 먹여준다고 일념하며 내리치거라. 그 과정에서 도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느껴라. 직선을 그리는지, 곡선을 그리는지, 그도 아니면 중간에 이탈하여 다른 길로 세어버리는지. 말하자면 이미지를 연상하고 기억하는게다. 여기서, 그 뒤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 검 끝이 바닥을 향한 후에도 절대 자세를 허물지 말거라. 지금은 이 점들만을 명심하며 한 번 휘둘러 보자꾸나."
그렇게 일장연설이 다시 한 번 끝나고 나서야 다시 일합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소년. 이 즈음 되어서 검도부 체험에 대한 의문이 들고 있어도 무리는 아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