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심장이란 무슨 의미를 가진 문장일까. 단순히 용기를 상징하는 사자를 넣어 용기를 잃지 않는 기세를 말하는 걸까? 아니다. 물러날 수 없는 순간에 미친 듯 박동하여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물씬 다가오는, 진한 죽음 속에서도 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을 우린 사자의 심장이란 문장으로 말한다.
빈센트는 어쩌다보니, 그냥 서서 줄을 서는 것에 맛을 들였다. 그에게 있어 줄을 서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기다린다고 무언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기다린다고 유명한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줄을 서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고, 지금 이 카페도 뭐가 유명한지도, 방송을 탔는지도 모르고 그저 들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줄을 설 만한 이유가 있으니 섰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나처럼 줄이 서고 싶어서 섰거나.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줄을 기다리다가, 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을 본다.
"지한 씨?"
빈센트는 지한의 이름을 읊조린다. 마치 운명이 조율한 것처럼, 포장을 사러 온 줄들이 전부 빠지고, 빈센트는 자연스레 무언가를 사서 지한의 옆에 앉게 되었다.
빈센트는 자기가 가지고 온 레모네이드를 내려다본다. 처음부터 사이다를 섞어서 만들어달라고 한 덕분에, 가격은 매우 쌌고, 빈센트는 싼 맛에 당분을 잔뜩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한은 빈센트와는 지향점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빈센트는 지한이 사진을 찍어서 남기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런 문화는 봤지만, 실제로 그러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나 어디서나, 사진을 찍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라면 전부 나오는 일이지만, 빈센트는 사람이란 게 그리 익숙한 인간이 아니다보니 생소했다.
빈센트는 어깨를 으쓱인다. 뒤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탄식하며 나가고, 일부는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나가는 것을 보고는 허허 웃었다. 빈센트는 저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큰 것이라야 만족하는 이들은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옛날에는 컸다고 생각하던 것도 이제는 작다고 생각해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빈센트는, 가벼운 무언가에 중점을 두었다.
"다른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굳이 저렇게 기분 나쁜 티를 내고 나가야 하는지."
빈센트는 누군가 시비를 걸면 바로 나가서 제압할 생각을 하다가, 다들 궁시렁거리기만 할 뿐 특별한 패악질은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말한다.
빈센트는 지한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잠깐 생각해보다가, 진짜로 줄 생각이 없었으면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먼 옛날, 신한국도 아니고 구 대한민국도 아니고, 일본 식민지 시대 조선도 아닌 옛날에는 누가 권하면 세 번은 점잖게 빼는 것이 맞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건 이제 와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고, 빈센트는 지한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작은 스푼을 하나 꺼내서 디저트를 아주 조금 덜어본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빈센트는 음식을 먹고는, 꽤나 느낌이 좋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툴툴대며 나간 이들이 있을 입구를 바라보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빈센트는 지한이 미리 포장하려는 것을 보고 말하낟. 디저트를 보니까, 아이스크림처럼 적시에 먹지 않는다고 녹아내려서 못 먹게 되는 종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분자요리라는 미명을 쓴 나온 지 30초만에 먹지 않으면 다 녹아버려서 못 먹게 되는 것들. 빈센트는 그런 것들이 싫었지만 이런 곳들은 그런 '기교'와는 담을 쌓은 곳으로 보였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받는다.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것인지 마음 한 구석에 꺼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빈센트는 옛날에 샀던 고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받기로 했다. 빈센트는 이것을 바로 먹을까, 가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서 먹으면 함께 먹을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는 공손하게 챙긴다. 베로니카를 내가 쓸 수 있는 살인병기가 아닌, 진짜 인간으로 대접하려면 이런 것도 선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바빠서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베로니카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다가도, 베로니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몰랐던 것 같아 말을 정정한다.
빈센트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기브 앤 테이크, 한국의 말로 주거니 받거니라지만, 그렇다고 네가 1000GP 쐈으니 나는 200GP 5개 같은 식으로 철저하게 계산하면 그건 친교의 관계가 아닌 비즈니스 관계다. 아니, 비즈니스 관계마저도 계속되면 어느정도씩 깎아 주어서 관계의 지속을 기하지 않는가.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한의 이야기에는 그것이 베로니카를 이른 말이 아니기를 빌었다.
"베로니카는 평범하게 단 것을 선호했으면 좋겠군요."
기껏 가져갔더니 거절하거나, 차라리 거절하면 낫지 빈센트가 가져온 것이라고 억지로 먹을 베로니카를 생각하면...
빈센트는 단 것을 좋아하느냐, 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옛날에 있던 일을 생각했다. 기억을 되뇌이다 보니, 빈센트는 참으로 많은 후견인을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빈센트가 그때그때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많은 후견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제 6번째 후견인이 식물학자 겸 게이트 생태학자였습니다. 돈이 정말로 많아서 식물원을 지었는데, 오아시스 사막 환경에 맞춘 식물원에서 대추야자를 길렀죠. 시간이 나면 그곳에 들어가서 대추야자를 먹곤 했습니다. 정말로 달달했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아프리카! 제가 미국인이긴 하지만, 솔직히 미국이 다른 세계로 잠깐 사라졌다는 것보다는, 아프리카의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대추야자의 본고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솔직히, 아프리카가 복구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간들이 다른 게이트로 건너가서 그곳을 제 2의 지구로 삼거나, 게이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타 항성계로 이주해서 새 문명을 파종하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빈센트는 씁쓸하다는 듯이 말한다. 듣기로는 그 후견인도 아프리카에 식생을 복원해서, 인류의 문명이 처음 발원하던 그 때 수준으로 아프리카를 되돌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완전히 무너진 아프리카에서 가능할 턱이 없었다. 빈센트는 그 사람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한다.
"You say you be gentleman, You go hungry, You go suffer, You go quench..."(넌 네가 신사라고 하지, 넌 배고프고, 넌 고통받고, 넌 목이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