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 사실 교내에서는 아무래도 학년이 다르니까 마주치기 힘들지 않을까요? 일단 아키라는 학생회장이니까 학교가 끝나면 학생회실에 있겠지만 요조라가 학생회실에 올 것 같진 않으니 말이에요! 그렇기에 호시즈키당에 학생회 일을 하면서 먹을 간식을 아키라가 사러 가면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요조라주 생각은 어떠신가요?
학생회 일을 마치고 아키라는 겨우 하교했다. 새학기 시즌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할 일이 많았고 그에 따라 피곤함을 느끼는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하품했다. 이런 순간에는 무의식 중에 달콤한 것이 끌리는 법이었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하나 살까 싶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내일 학생회 일을 하면서 먹을 간식들도 미리 구입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앞으로 가다보니 화과자점인 '호시즈키당'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 이름이 있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아키라도 알고 있었다. 몇 번 찾아가서 간식거리를 산 적도 있었기에 더더욱. 당고와 도라야키 정도만 사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발걸음을 호시즈키당으로 향했다.
닫혀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과자 특유의 향이 솔솔 풍겨왔다.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여러 당고와 도라야키 중 뭘 사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역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가장 맛이 좋은 것이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 후에 카운터 쪽에 있는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례합니다. 당고와 도라야키 종류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어떤건가요? 각각 한 상자 정도만 사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오늘 몇 개 먹고, 내일 학생회 일을 보면서 임원들과도 나눠먹을 수 있을테니 충분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돈은 걱정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받는 용돈은 제법 되는 편이었으니까.
온종일 자면서 하교 시간만 되면 잠이 깨는 건 요조라에게도 기가 막힌 현상이었다. 가끔 늦게 깨기도 했지만 항상 비슷하게 깼지. 등교할 땐 환하게 밝은 하늘이 어느새 노을로 물들어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오묘해졌다. 요조라는 깨서 한동안 그 하늘을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걸어 귀가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아... 나 왔어어어..." "어, 아. 요루 왔니?" "으응..."
요조라의 집이자 가게인 호시즈키당에 들어가자 달콤한 앙금 구운내가 요조라의 의식을 살살 녹여온다. 이대로 올라가서 바로 잠들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요조라의 엄마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잘 됐다. 엄마 잠깐 요 앞에 나갔다올게. 자리 좀 봐줄래?" "...나 졸린데..." "히루가 과자 구워놨으니까 그거 먹으면서 기다리렴." "다녀오세요..." "호호. 다녀올게~"
정말 정말 자고 싶었지만 그 마음보다 오빠인 마히루가 구운 과자의 유혹이 더 커버렸다. 결국 요조라는 엄마를 대신해 카운터 자리에 가서 앉았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요조라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 시간엔 손님이 거의 안 오니까 조금 졸아도 괜찮을 거였고. 그래서 졸아버렸고...
"...ㅇ, 에, 네, 네?"
앉아서 졸고 있던 요조라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아. 나 집에 와서 엄마 대신 카운터에 앉아있었지. 잠에서 깨어 거기까지 파악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한 1분, 아니 2분? 제멋대로인 자아 성찰의 시간 후에 요조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카운터 너머의 손님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으차... 요조라는 카운터를 짚고 일어났다. 일어났다기보다 상체를 똑바로 세웠을 뿐이지만. 하-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번 하고서 느긋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확히는 조느라 못 들은 주문을 다시 물었다는게 맞겠지만.
"주문..하시겠어요...?"
다크서클로 푹 패인 검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물은 요조라는 그새를 못 참고 카운터에 늘어져버렸다. 한쪽 볼이 푹 눌려 얼굴이 찌그러지는데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오늘은 우당탕탕 동네를 둘러봐봤다~ 라구. 갑자기 멋진 녀석에게 헌팅당할지도 모르니까 마음이 연약한 육수들은 관람에 주의를 요하는 컨텐츠야. 훗훗후, 이런 컨텐츠 함부로 방송했다가 쾌락신 논란 문서에 한 줄을 더하겠지만… 이미 더 떨어질 평판도 없는 쾌락신으로서 힘내줄게.”
[ㅇㅇ님이 새전함에 100엔 후원! 그냥 깡촌 마을 아님?]
“시끄럽네~ 이래서 도쿄놈들은 안 된다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슈-르하게 촌구석 살인사건 같은 것도 가십으로 주워듣구, 그래야지 깡촌을 무시하지 못하는데. 하아, 슈르에 한 발짝이라도 더 기여하기 위해 조울인 내가 힘내주겠어요- 이얍, 나의 미모에 지져져 사망해라~”
[ㅇㅇ님이 새전함에 100엔 후원! 대로변에서 살인을 예고하다니 철면피w]
길거리를 걸으며 셀카봉으로 이리저리 얼굴을 비추는 이상한 소녀. 불량한 복장과 깡총거리는 걸음으로 헛소리를 일삼고 있다.
자고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아무런 말 없이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두 눈을 깜빡이며 몇 번 확인을 해봐도 일단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었다. 가미즈미 고등학교의 학생일지, 아니면 다른 곳의 학생일지. 아무리 자신이라도 가미즈미의 모든 사람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집이 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닌만큼. 아무렴 어떠랴. 일단 자신은 다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카운터에 늘어지는 모습도 그렇고, 두 눈도 그렇고 그로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주문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많이 피곤해보이는데 괜찮아요?"
다른 건 몰라도 다크서클로 패여있는 눈은 잠을 그렇게 많이 못 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밤에 뭘 하는건지. 아니면 요즘 무슨 일이 있어서 잠을 못 잔건지. 자신의 반에 있는 정말 잠 잘 자는 여학생을 떠올리며 그는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혹시 이 애의 잠을 그 애가 다 차지한 것은 아니겠지... 같은 아무래도 좋은 바보 같은 생각을 잠시.
"아무튼 당고와 도라야끼를 한 상자씩 사려고 하는데 가장 잘 나가는 것이 어떤 건가요?"
잘 못 들었다면 다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좋을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더 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의 성정이었다.
"...많이 피곤해보이는데 오늘 밤은 푹 주무시는게 낫지 않겠어요? 잠을 잘 못 주무신 것 같은데."
"구땡*." "..13광땡*, 입니다. 제가 이겼군요." "그대, 내 뜻 받드는 자야. 그대 필히 손에 무슨 짓을 해 나를 농락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혹 내가 아닌 행운의 신에게 참배라도 드렸습니까?" "무슨 소리십니까, 약속대로 컵라면은 압수입니다." "그대, 내 안이 공허하여.." "컵라면을 찬장에 쌓아두었다고요? 야채 절임은 보기도 싫고요?" "여주 절임은 컵라면과 어울리지 않아서.." "신과 내기를 해서 이기면 이긴 것이지요, 경망스레 굴지 마시고 압수입니다." "오늘은.. 이부자리를 떠날 생각입니다."
컵라면을 뺏긴 힉긔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밤.
* 화투 중 9월과 9월이 들어맞는 조합. ** 화투 중 1월과 3월의 광패 조합. 둘 다 섯다 용어이며 돈을 거는 순간부터 확실한 도박이니 착한 참치는 따라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