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그답지 않게 얇고 편한 옷을 입은 상태로, 숲을 거닐었다. 숲 속은 참으로 평온했고, 빈센트는 그 숲 속에서 넘어진 나무를 택해서, 그 나무의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었다. 물론, 빈센트는 온갖 세균 관련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기가 누울 곳은 불로 한번 지진 뒤,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개 사람, 나는 사람..."
빈센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눈을 떴다. 빈센트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접근하는 것을 감지해서였다. 빈센트는 손에 불을 든 채 머리를 들어 주변을 보다가, 그 강자의 익숙한 얼굴을 보고는 경계를 풀었다.
강산은 윤을 따라 걸으면서, 윤이 당당하게 외친 말에 감탄하며 박수를 친다. 조금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강산은 그 사람과 말도 못 섞어봤으니까. 그리고는 지금 향하는 곳의 추천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발이 넓으니까 그런 것도 잘 아는구나야. 그거 좀 부럽다. 나는 아무래도 그러긴 반쯤 글러먹은 거 같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그라고 기왕이면 다른 반 학생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청월고교 시열개정복'을 두고 교내에서 입고 다녀도 괜찮을지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강산은, 그것에 큰 미련이나 욕심을 갖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다시금 결론을 내렸다, 학기 초부터 영월 이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차피 범생이처럼 단정하게 입고 다녀도 날 고깝게 볼 사람은 고깝게 보겠지. 아무튼, 딸기 생크림도 있을까?"
다른 곳으로 새었던 화제를 다시, 크레이프 얘기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냥 편하게 말 놔."라며 덧붙이고는 키득인다.
"아, 론스타 진드기를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고기에 들어있는 알파갈 당이, 진드기가 피부를 물면 피부로 유입되고, 알파갈 당을 항원으로 인식하면서... 그냥 입으로 먹는 고기도 못 먹게 되는 것 아닙니까."
빈센트는 그거로 개고생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텍사스에서 본 그의 후견인은, 고기를 좋아하고 성경을 좋아하며, 세상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중공 빨갱이와 러시아 푸틴, 그리고 북한 김정은의 핵위협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광인이었다. 채식주의자 운동을 비웃고 돌아오던 그는 농사를 짓던 와중 론스타진드기에 물렸고... 모든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은 채 채식주의자들에게 맛있는 채식 레시피를 구걸했었지.
빈센트는 의념범죄자가 될 뻔했던 과거를 생각했다. 숲 속을 거닐다가 곰을 만났고, 빈센트는 살기 위해 곰에게 불덩이를 던졌다. 하지만 곰은 그것을 맞고 죽는 대신 온 몸에 붙은 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것 때문에 빈센트가 살던 마을 주변에 거대한 산불이 났다. 그것 때문에 빈센트는 의념범죄자가 될 뻔 했지만, 그 때의 빈센트는 고작 10살이었고, 방어를 위한 행동이었음이 참작되어 '나무 심기 봉사 100시간'으로 퉁칠 수 있었다.
"절 잡아먹으려는 곰을 막으려고 불을 붙였다가, 그 곰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산불이 났었죠. 그 때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러고보니... 이곳이 그렇게 인적이 잦은 곳은 아닌데, 어쩌다가 오게 되셨습니까?" //7
"환경이 어렵다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도 싸울 수 있도록 훈련한다. 좋은 방식입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경우 어떤 것에 대응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가령, 태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나, 아니면 태울 수 있는 게 없는 걸 넘어서서 불이 자꾸 꺼지는 곳(예를 들어 수중)이라던지. 그런 곳에 빈센트가 간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빈센트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편한 생각이나 하기로 한다.
마침 다음 칸도 다 채워 동화책이 든 종이상자를 책장 앞에 끌고 올 생각이었던 오토나시는 옆으로 걸어가 벽을 가볍게 뚝뚝 두드려봅니다. 벽의 두께를 가늠하기 위해서였을거에요.
" 음. 어려운 문제네. "
그렇게 말을 하곤 있지만 오토나시의 어조는 놀랄 정도로 평온하기만 합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지한의 의견으로 지금 당장은 못을 벽에 박아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거란 점이죠. 긴 못이 아니라 짧은 못.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상자를 끌고 온 오토나시는 두리뭉술한 말을 꺼내기만 합니다.
" 깨지지 않는 것을 다루는 단순한 반복활동. "
널리보자면 지한이 건낸 선택지 중에서는 세탁이 가장 비슷할 것 같네요. 세탁기는 쉽게 망가지지도 않고 세탁 자체는 지정된 물건을 집어넣어 정해진 버튼을 누르면 끝이니 말입니다. 말끔하게 세탁된 의류 등을 걸어서 말리고, 마른 세탁물을 걷어서 개어놓는것까지 단순한 반복 활동이기도 하고요.
" 응. 도자기는 잘 깨져서. "
지한이 오토나시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동화책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할겁니다.
"물론 현행법은 지켜야겠죠. 숲이니까 산지전용 허가도 받아야 하고, 도로도 내야 하고, 비용이 한두푼이 아닐 겁니다. 의념 각성자니까 몸으로 때운다쳐도,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집을 생각해본다. 통나무로 지은 2층집이었다. 난방은 난로로 해결하고, 그 난로에 공기를 공급하는 외부 흡기구와, 바깥으로 연기를 내뿜는 굴뚝을 제외하면 완전한 밀봉이 가능한 곳을 원했다. 통나무 사이 틈새는 이끼로 막는다 치고. 빈센트는 불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런 집도 아주 좋아했다. 어쩌면, 후견인들 중에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목공 아저씨와의 추억이 그 쪽으로 취향을 이끌었을지도.
"...생각해보니, 불태우는 걸 좋아하는 놈이 불에 잘 타는 나무집을 원한다라... 참 그렇군요." //11 죄송한데 킵하고 내일 이어도 될까요? 벌써 시간이 ;;;;
"허가나.. 도로나.. 그런 걸 하나하나 본인의 취향에 맞게 해내는 것도..." 사람들이 말하는 로망이긴 하겠지요. 라면서 숲 쪽을 바라봅니다.
"다만 그렇게 본인에게 맞춘 집은 매매나 대여를 할 때 힘들어지긴 하더군요." 지한이 굉장히 편하게 느끼는 공간은 키가 큰 사람들이 있기엔 좀 낮거나 좁은 느낌이라던가.. 아이들을 위한 계단 미끄럼틀은 크면서 조금 덜 쓰이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보편적인 구조가 생기는 거려나?
"태우는 걸 좋아하니. 가장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나무집인 건 이상하진 않아보입니다." 좋아함과 행동 사이에 좀 연결고리가 깊다. 정도로 보이네요.라고 말하면서 지한 스스로가 집을 짓는다면.. 이라고 생각해보네요. 지한주의 취향과 지한의 취향.. 많이 다르지 않을까.. 일단 지한 얘는 수련장부터 만들 성격 아니야?
이번에도 지한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오토나시네요. 그래도 0.0001%의 확률로 재수없게 이루어 질지도 모르는 법이니 오토나시가 속히 말하는 ' 힐러 ' 포지션인건 참 다행입니다.
" 의견 피력. 기억해 둘게. "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지한이 떠나고 나서 남은 책들을 정리하고 나면 오토나시의 머릿속에서 ' 집안일 '이라는 단어는 지워진 이후일거에요. 누군가가 네트워크에 말을 한다면 지금같은 대화가 반복될지도 모르겠네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책을 꽃아넣던 오토나시는 떠난다는 지한의 말에 고개를 돌려 고개를 끄덕입니다.
" 응. 바이바이. "
가본다고 해도 같은 숙소에서 지내는 이상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떠나는 지한의 뒤로 ' 허락. 줄. 총교관님. ' 따위의 단어를 읊조리는 오토나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따라붙다 곧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