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과 개학이 잦아들고 슬슬 어느정도 정리가 될 때쯤.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소식. 3월 말 즈음에 3월 모의고사가 있다고...?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먼저 시비 걸리지만 않으면 싸우지 아니 한단 말에 안도하는 척한다. 태식의 말버릇을 아는 넌 걱정하는 편이지만 이제 태식도 알아서 할 나이가 되었다. 더 참견하면 요즘 말로 꼰대라 불리요 어린아이 아니라는 말 귀로 들을까 싶어 이제 되었다고 긴하게 생각만 하는 것이다.
"치즈빵 말이여."
겉면 튀김옷 입히었고 속은 비어 매운 소스랑 치즈 들어있는 빵은 유달리 빨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1교시에 가야 좀 보일락 말락 하지 3교시만 지나도 음료랑 같이 들어있는 냉장고 매대 텅텅 비어있다. 식단 관리하는 사람 앞에서 잔인한 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너 자각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무심함이다.
"느이 몸 관리 열심이네. 내라면 몬혔다."
그나마 인간성 있다.
"에이, 그걸로 뭘 벌어먹고 산다구. 그것도 잘생긴 애들이 춰야지 내가 춰봤자 뭐여,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도 못 나가구 광탈이쟈."
너 아직도 춤사위 보이라면 당연히 출 수야 있지만서도 고3 딱 되고 나니 그마저도 버거웁다. 대학이요 어른이니 많아야 9개월 성큼 다가오니 춤이 대수랴, 중압감에 몸 눌려 뭘 하도 못한다. 남들 다 잘 하는데 의연치 못하다.
"인마, 암만 의욕이 있다 혀도 격투기는 느이 성격을 알아. 이 자식이 말이여."
너 툭하니 도끼눈 치뜨는 것이다. 팔이라도 퍽 칠까 했건만 바리바리 싸 든 점심밥 떨어질까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원하게 욕 갈기고 매점으로 비적비적 걸었다. 사람 참 많다.인파 헤칠 생각에 벌써 한숨이 땅을 뚫을 것 같으나 매진만 아니면 되었다.
"다녀온다. 자리 맡아줘."
인파 사이로 파아란 머리 비적비적 비집고 들어간다. 체구 작아 남학우 몇 우르르 과자 사러 몰리자 금세 가리어진다. 북적거리던 인파 뚫고 겨우 빵 사면 또 음료가 탐이 나 600원 하는 카프리썬 결제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레인지도 소시지요 빵이요 뜨겁게 먹고자 하는 사람 많았으나 운이 좋게도 자리 난다. 잽싸게 봉지 조금 뜯어 넣고 40초 기다린다. 뜨거운 김 풀풀 나는 빵 조심조심 들고 온다. 오는 길에 끼이고 치여 표정 벌써 진 빠져있다.
"너 근육 키운다며. 많이 묵어야지.. 나는 이따 나나콘 묵음 돼. 우리 할아버지도 안 그러는디 태식이 거 많이 컸어."
흐물해진 빵 입에 물다 뜨거워서 표정 구긴다. 이 맛에 먹는 거라 입술로 빵 지익 물어뜯고 우물댄다. 빵 단맛 혀에 묵직하다.
입으로는 부정을 표했지만, 몸은 솔직하게 나 배고파요! 밥 주세요! 라는 것을 토로했기에 그렇게 된 이유로 나는 그녀가 살짝 빼서 앉기를 권하는 의자에 우물쭈물 다가가서 앉았다. 와아아.. 엄청 쪽팔려!, 말 한번 나누어 본적도 없는 여자애 앞에서 꼬르륵, 꼬르으으으르르륵이라니!!!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를 통해 그녀는 내가 지금 이 상황을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응..."
앉아서 조금 기다리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원래도 말이 짧긴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꼬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배가 고파서 힘이 없었기 때문인 것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이제와서 그녀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있자니 단발 숏컷이 잘 어울리고 나른하게 풀린 눈매와 더불어 표정의 변화가 적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ㅡ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내게 듣고 싶진 않겠지만.ㅡ 반듯한 이목구비가 예뻐 꽤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얼굴이다. 물론,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내 멋대로 한 생각이었다.
여하튼,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두고 요리를 준비하러 갔고 나는 머쓱하게 구부러져 내려 온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요리부실이라는 이 곳을 곁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로 내어져오는 음식에 무심코 우.. 우와.. 라고 감탄사를 내뱉을 뻔했다. 거기에 덧붙혀 먹어 보지도 않고서 매일 아침 스테이크를 구워줘. 같은 말도 튀어나올 정도로 꽤나 본격적인 비쥬얼에 올라오는 향까지 매우 감미로운, 딱 봐도 나 맛있어요! 라는 어필이 듬뿍 묻어나오는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내가 그렇게 진중하지 못하고 호들갑스러운 성격이 아니라 헛나올 뻔한 말이 그저 미수에 그친 것과, 앞에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에 감사를 표하며 합장했다.
잘먹겠습니다.
종교는 없었지만, 굶주린 와중에 학교라는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진수성찬에 경외감 마저 느끼며 주기도문을 읊듯이 합장을 마친 나는 신중하게 식기를 들고서 무엇을 먼저 먹어볼지 탐색했다. 이내 결정을 마치고 손에 들린 식기가 뻗어진 곳은 로제 파스타. 가장자리를 포크로 찍어 돌돌 돌려서 감은 뒤에 입에 가져가 넣었다. 냠냠.
눈 앞에 지중해가 펼쳐졌다. 수염난 이탈리아 어부 ㅡ누군지 모르겠다.ㅡ 가 쪽배를 타고 그물을 거두자 신선한 새우나 바지락 같은 해산물이 풍요롭게 끌어올려지는 다큐인지 뭔지 모를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그 다음에는 시저 샐러드. 로메인 상추와 크루통을 함께 찍어서 입에 가져가 넣었다. 얌얌.
이번에는 솜브레로를 머리에 눌러 쓴 멕시코 농부가 ㅡ역시 누군지 모르겠다.ㅡ 튀어나왔다. 뙤약볕 아래 이마에 송골히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생그러운 상추를 재배하고 집 안에서는 그의 부인이 크루통을 튀겨내고있는 목가적인 그림이 보여졌다.
이게 배가 고팠어서 그런건지, 음식이 굉장히 맛있어서 그런건지 뇌가 자꾸 오버를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아직 손 대지 않은 것이 하나 남아있었다. 미디엄 웰던으로 구워진 안심 스테이크. 나는 나이프를 들고서 작은 조각을 썰어 낸 뒤에 입에 가져가 넣었다. 쩝쩝.
음메에에에에~~~ 푸르른 하늘이 지평선에 걸쳐있는 드넓은 목장. 행복하고 건강해 보이는 소들이 울며 나를 반긴다. 그리고는 장면 전환 ㅡ도축 장면 편집ㅡ 지글지글. 팬 위에서 구워지는 안심 위에 꽁지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 ㅡ소.. 솔트배..!?ㅡ 가 시그니쳐 포즈로 소금을 뿌린다.
맛스타, 나중에 치팅데이로 정해서 마라탕과 맛스타까지 꼭 사서 먹을 것이다. 한입 밖에 못 먹을지라도 그 맛이라도 느껴 볼 것이다. 꾹꾹 다짐 했다. 근데 식단을 언제까지 할지는 안 정했기에 언제 쯤 마음 것 먹게 될지 생각 해보았다. 적어도 선수 은퇴하거나 도중에 꿈을 포기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고기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지금은 탄수화물이 더 좋아졌지만 ‘ 내가 보기에는 형은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거 같은데 ’ 라고 혼자 속으로 말하였다. 이말을 내뱉었다가는 아까와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태식이는 지금 이렇게 학교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 상황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태식이가 보기에는 이국적인 외형하며 반쯤 감은 듯한 눈은 오히려 신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태식이의 기준이긴 하지만 휘야는 잘생겼다. 왠지 모르게 못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거 같았다. 하면 요령것 굉장히 모든 일을 잘 할 거 같았고 실제로 그것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도 몇 번 보았기에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 아, 역시 나를 너무 잘 알아 ”
눈치가 빠른 것도 있겠지만 같이 알고 지내온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척하면 척인 쪽이 더 강한 거 같았다. 금세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한 모습에 위와 같이 말하였다.
“ 으이, 다녀와 ”
인파 사이로 파란 머리가 비집고 들어가는데 나름 보는 맛이 있었다, 이윽고 다른 학생들이 매점으로 몰려 들자 금세 사리지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뚫어서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 했다. 밤 하늘에서 비행하는 UFO처럼 검은 색 머리의 친구들 사이에서 사라졌다가 슈웅하고 다시 나오는 것이 딱이였다.
“ 근육! ”
태식이는 많이 먹으라는 말에 마치 보디빌더처럼 포즈를 취하였다. 또래들 치고는 근육량도 많은 편이고 팔다리 그리고 덩치 도 큰편이였기에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나름 봐줄 만 하다고 여겼다.
“ 아 할아버지 이야기 나와서 그런데 아직 정정 하시지? ”
중학교 때까지는 예절교육 상으로 많이 갔었지만 본격적으로 운동 시작한 뒤로 부터는 그러니깐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방학에도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처는 지나갔어도 제대로 방문 한 적은 없었다. 아니면 전에 봤었는데 태식이가 기억 못하는 것 일 수도 있다.
“ 당연히 힘들지, 형도 나 고기에 환장하는 거 알잖아... 근데 지금은 고기가 물려... 빵도 먹고 싶고 마라탕도 먹고 싶지만 목표점 찍었으니 결과라도 보고 돌아가야지! 그거 하나 때문에 버티는 거야, ”
/ 크헝 비몽사몽... 이번에도 답레 올려주시면 나중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굿밤되세영...
대수의 생각대로 다운은 라면 끓일 이유 없는 아가씨는 아니었다. 그냥 라면을 잘 끓이는 식으로 진화하기 전에 뭘 먹든 먹을만하게 느끼는 식으로 진화 했을 뿐... 각설하고, 다운은 잠자코 라면이나 먹고 있었다. 음. 맛있다.
"해양탐사원이라. 멋진 직업처럼 들려. 나도 그런 멋진 직업을 생각해둬야겠어..."
그런 얼렁뚱땅 대수의 대답에도 다운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수영장 탐사원이라든가 수영장 레이서 같은 걸 업으로 삼아볼까... 물론 개소리, 아니 개생각이었다. 왈왈왈. 그 생각도 잠시, 갑자기 대수가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자 다운은 깜짝 놀란다. 눈 끔뻑이는 게 다였지만 요컨대, 놀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뭐지, 왜 안 웃는거지?'
이제와서 농담이라 하기에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설마 진심으로 받아들었나? 젠장... 내가 이래서 농담을 못친다. 어떡하지. 다운은 급격히 초조해진다. 그래봤자 얼굴에는 금 하나 안 갔지만 말이다. 음... 뭐, 상관 없나. 커서 돈 많이 벌면 좋은거지. 자기 멋대로 자기합리화를 한 다운이 영혼없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 응원할게."
잘 모르겠으니 대충 응원이나 하면 반이라도 간다 이 말씀이다. 그때였다. 다운이 표정을 굳히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잠시.
"엣취-!"
...이 추운 날씨에 젖은 채로 밖에 있었으니 기침이 나올 만 하다. 다운은 미간을 조금 모으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터벅터벅 걸어가 옆에 대충 던져두었던 보드를 옆구리에 낀다. 코를 킁킁거리더니 입을 툭 내밀었다.
"난 이만 가봐야겠네. 아무튼 오늘은 고마웠어."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이었으니 이렇게 갑자기 떠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운은 몇 번 더 코를 킁킁거리더니 -조금 신경질적여 보였다- 자리를 떴다. 발자국이 이어지다 바람과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비록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대도-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다른사람 앞에서 꼬르륵소리가 나는 것은 만국 공통의 부끄러운 순간일 것이다. 하물며 배고프지 않다 부정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만큼 우물쭈물 앉아선 귀까지 새빨개진 채로 부끄러워하고 있는 그가 어떤 기분일지는 대강 알고 있었기에 굳이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웃어보이는게 전부였다.
...단지 이전 기억이 떠올랐을까, 조금은 흐릿하기도한 막연한 기억에 지나지 않겠지만... 전혀 배고프지 않다며 잡아떼다가도 제 차려준 음식을 보고서 행복해하던 누군가가 기억에 맴돌았기에 무미건조한 표정에서 바뀌어진 미소만큼은 따뜻했다.
"......"
테이블에 음식들을 차례로 놓아두었을 때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꺼질 잔불마냥 맥을 못추던 모습이 아니었지만, 사람은 아무리 다죽어가도 앞에 음식이 놓이면 먹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는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듯 약간은 힘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들떴다 해야 할지...
"잘먹겠습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
가지런히 합장을 하는 모습은 적어도 음식 앞에서만큼은 경건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제 고향에선 으레 있는 일이었다지만 요즘은 간략화되기 일쑤였을까?
확실히 이렇게 먹고서 바로 체육이라던가 하면 배와 위장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미나가 알고 있는한 다음교시는 가만히 교실에만 있으면 되는 수업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걸 감안하고 만들었겠지만,
하나씩 음식을 맛보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딱히 부정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식사 중인 사람을 너무 빤히 보고있는건 실례이기에 자신 또한 조용히 포크를 들었을까,
그래도 역시 눈이 가는 것은 어쩔수 없는 버릇이었다.
"...... 다행이네."
한입씩 음식들을 맛본 그가 그때서야 고개를 들고 호평을 하자 미나의 무덤덤한 표정도 그때서야 안심한듯 활짝 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일반적인 코스에 비해서 많이 간략화되었지만, 그래도 즐기고 있다면 기쁘네."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미건조함이었지만 줄곧 처지기만 했던 눈매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미나의 심경을 대신해주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에 만족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은 언제든지 뿌듯했다. 물론 꼭 만족하지 않는다 해도, 그저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평소와는 다른 행복감을 느낄수 있었다. '혼자일 때의 행복함과 혼자가 아닐 때의 행복함은 전혀 다르다.'라는 것... 역시 부모님의 말씀대로였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점심 먹고 어딘가 갈 일이 있는게 아니라면... 비교적 시간은 널널할 거야."
딱히 가는 곳도 없거니와 점심시간은 대개 이런식으로 보내는 자신이었지만 그의 경우에는 혹시 모를 일이기에, 미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나의 호평에 그녀는 다행이네.. 라고 답하며, 안도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겸손한 말일 뿐이었을까.
확실히 나의 경우엔 음식을 가려먹거나 하는 호불호가 없는 타입이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차려준 음식에 대해 알러지가 있거나,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맛있다는 호평을 할만한 그 정도의 솜씨를 가지고있었다.
"나는 평소에 빵이나 레토르트만 먹으니까. 오랜만이야, 이렇게 제대로 된 음식은"
집에서도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시느라 평소에는 귀가도 늦었기에 가사를 돌 볼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나 동생이 요리에 흥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항상 끼니는 햇반에 밀키트 류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게 아니라도 뭐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된다는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것이 입맛에 호불호가 없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답하고서 다시 식기를 움직여 음식을 먹는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 마다 또 다시 세계일주를 반복하며 맛의 향연을 즐긴다. 이런 맛에 익숙해져버리면 앞으로 레토르트 따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잡념 해보지만, 어차피 오늘 하루 뿐인 기회인 것이다. 음식을 훔치러 왔던 주제에 뻔뻔스럽게 밥 달라며 이 곳을 다시 찾을 만큼 능글맞은 성격도 못 되니까. 그러니 충분히 즐겨놓자.
"특별히 할 일은 없는데.."
그렇게 식사를 이어가던 중에 덧붙혀진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이 곳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얻어 먹은 건 있으니까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하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리 인간관계에 미숙하다 한들 그 정도의 사회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설거지는 내가 할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주거니 받거니 실강이를 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나는 못을 박아두듯이 어조에 힘을 실어 말했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차려줬는데 오히려 값싼 대가라고 생각한다. 값싼 대가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이거,"
덧붙히며 빵을 사기 위해 ㅡ매점이 문을 닫아 그러지 못했지만.ㅡ 가지고 있던 현금 5000원을 꺼내 테이블 위로 밀어주었다.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부분에선 확실하게 해둬야 뒤 끝이 없다. 물론 그녀가 내어준 음식의 재료값이라 치기에도 턱 없이 적은 금액이었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알고 지내온 시간은 깊었다. 어릴 때부터 예절 교육이니 절에 오는 날만 해도 수두룩하였으니 눈치는 물론이요 조금만 신통하더라면 미래도 알았을 것이다. 다만 미래 알지 못하였던 것은 이리도 인파 바글바글하던 것이요, 기진맥진 다녀오니 빵에 혀까지 데이는 것이다.
"아따, 거 성났네."
옷 너머로 울룩불룩 솟아 친 근육 보고 경탄 금치 못한다. 너 저런 몸 가지라 하면 절대 못 하는 것이, 이미 네 몸 근육 없고 야들야들한 사람이요 지금 키로는 징글 하여 그러하고 싶은 마음 없다. 그것이 네 운동을 멀리하는 이유요 되먹지도 않는 합리화다. 빵 물어 제끼며 도톰히 드러난 소시지 씹었다. 다른 손 카프리썬 올리어 빨대 엄지로 누르기 무섭게 비닐 포장에서 뚫려 나온다.
"정정하니 걱정 말어. 요전번에두 목탁 대신에 한 대 맞았다니까."
그것은 너의 잘못이었다. 학교 담 넘었단 사실 들키어 목탁 대신에 머리 치는 소리 맑고 고왔다. 너 학업에 뜻이 없다 해도 최소한 학생의 본분은 해야 한다지만 도통 의욕 없다. 흐르는 대로 살며 덕 쌓고 깨달음 얻는 것 꿈꾸었으나 본분 다하지 못하여 깨달음 한참 멀었단 꾸짖음 소리 선하다. 그럼 어쩌잔 겁니까, 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학청년 나부랭이인데, 이제 와서 뭘 더 따라갑니까. 그것 대답 없는 네 속앓이다.
"고생이 많네. 그래도 해내는 게 어디여, 결과 보믄 꼭 말혀라. 마라탕 형이 사줄 텐게."
인간 되어 좋아하는 것 놓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욕망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들 하지 않았나, 발전은 욕구로 비롯되고 무릇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내려놓고 산들 그 내려놓는 것도 욕심으로 비롯된 것이요 그것 끝을 보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너 카프리썬에 구멍 내고는 빨대 문다. 소리 없이 빵 반절 먹어치웠고, 한 입 입가심 하고 비어가는 통 바라본다. 종이 씹는 느낌 나는 닭가슴살을 저리도 잘 먹으니 참 신통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