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과 개학이 잦아들고 슬슬 어느정도 정리가 될 때쯤.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소식. 3월 말 즈음에 3월 모의고사가 있다고...?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제가 성실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1학년이 주가되는 행사이다 보니 입학식에 참여한 재학생들이 행사에 집중을 그리 하지 않을거라 생각한 해인은 조금 놀라웠다는 것처럼 침묵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저번에 심부름을 하다 도와준 선배님도 자신를 알아보었는데 해랑고가 명문고라 평균적인 학생들도 다 기억력이 좋은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석적인 공부파의 분위기라기에는 무리가 있던 태식과 앞의 은우를 생각하며 "선배님도 성실하시니까 해랑고에 온 게 아닌가요." 라 말을 했다.
"적어도 다음에 제가 찾아가고 난 다음에 안하는 것으로 하죠."
"잘 모르겠으니까 더 겪어봐야 알지 않겠어요? 그리고 매점 자판기는 아직 못 들어봤는데. 같은 반의 누군가가 얘기하던걸 듣던 것 같기도? 그림 잘 그리시나봐요." 일부러 지지 않겠다는 듯 살짝 웃으면서 대꾸하고 사탕을 삼켰다. 긴장하면서 살살 굴리니 단맛이 입에 붙고 그리고...아무일도 없었다.
"...."
눈이 살짝 커지고 이내 작은 웃음이 제법 알아볼만한 크기의 미소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앞에서 약속하기라도 한것처럼 비명이 들렸다.
마침내 여유를 되찾은 해인은 괘씸죄로 30초 정도 은우가 괴로워 하는 것을 두고만 보다가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을 뒤적거렸다. 무사하네. 녹지 않고 본래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초코바를 확인하며 안심하고서 손을 휘휘 저어 그 옆에 있던 차가운 무언가를 꺼내었다.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냥 이거 드세요." 해인은 의기양양하게 음료수 캔을 건네들었다. 친구들과 마시기 위해 몇 캔 사온것이 여기에 쓰일 줄이야. "대신 다음에 장난 칠때는 봐주지 않고 똑같이 갚아드릴거에요." 이름은 뭐..그 매점에 가본 친구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것 같고. 그렂니 숨을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내 입으로 내 스스로 난 성실해! 라고 하긴 좀 그렇잖아?"
일단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은 명문고였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올 수 있는 곳인만큼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증명서 한 장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제 입으로 말하는 것도 참 멋없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에 은우는 그녀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는 그녀가 좀 더 성실하게 느껴졌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자신과는 다르게 달콤한 사탕을 먹었는지 환하게 웃는 표정을 바뀌자 그는 조금 얄미운 듯이 삐죽 입을 내밀었다. 저리도 이긴 것이 기분이 좋을까. 그러면 만약 졌을 때는 어떤 느낌일까? 괜히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일단 그녀가 내미는 음료수 캔을 받아든 후에 황급하게 그것을 따고 입에 털어넣었다. 매콤한 타바스코 맛이 조금은 시원하게 가시며 그는 겨우 안정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 것 같네. 설마 이렇게 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 물론 내가 꼭 이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이런 건 이긴다라는 생각을 해야 조금 더 재밌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똑같이 갚겠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 또한 신선한 자극이 될 것 같으니까. 나에게 있어선 플러스면 플러스지. 절대로 마이너스는 아니거든."
경우에 따라선 조금 변경해서 웹툰 소재로 쓸 수 있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아무튼 그녀가 이겼으니 그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상품'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이건 약속한 상품! 그렇게 비싼건 아니고, 요 근처에 있는 디저트 카페의 무료 이용권이야. 최대 한 명까지 데려갈 수 있으니까 데려가고 싶은 이가 있으면 데려가. 타바스코의 무서움을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한 후배에게 보내는 선배의 화이트데이 선물이야!"
물론 이용권은 따로 돈으로 사야 했으나 그에게 있어서 크게 부담이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원고료야 작품을 연재할 때마다 들어왔으니까.
먼저 시비가 걸려와도 잘 안 싸우지만 말이다. 싸워봤자 주변에 소문만 키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아버지에게 손 벌리는 것도 싫고 엄한 일로 피보는 것도 싫다. 아무리 인자하게 지낸다 한들 모기가 앵앵거리면 잡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모기들만 주변에 없기 바랄 뿐이다.
“ 맛스타? ”
맛스타라고 하길래 최근에 유투브에서본 군대를 배경으로 한 시트콤이 바로 떠돌랐지만 스테비아 빵이야기 다음에 나온 것이기에 바로 빵을 이야기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빵 이야기가 나오자 태식이의 머리에는 빵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 왔지만 간식히 억눌렀다.
“ 근육량 좀 늘릴려고 그냥 내 생각인데 어릴 때 근육량 늘릴 수 있는 만큼 늘려놓으면 유지 하기 쉬울 거 같아서 성장 호르몬 팍팍 나올 때 근육도 팍팍 키워야지! ”
“ 형 춤 기깔나잖아, 그걸로 밀고 가는 거 아니였어? ”
태식이는 머릿속에 기억을 최대한 짜내기 시작했다. 언제인지 잘 기억은 안나는 듯 했지만 휘야가 댄스부 였고 간혹 춤 추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댄스부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이 휘야의 춤이였다.
“ 근데 형은 뭘하든 다 잘 할 거 같은데 의욕이 없어 보인다 말이지.... 이참에 형도 나랑 같이 격투기 하자 재미있어! ”
사실 스파링을 빌미로 휘야를 괴롭히고 싶어하는 속셈이 숨어 들어있었기에 다소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태식이는 프로반에서 맨날 지고 그러니 의욕이 꺽이는 중이였다. 그와 동시에 승부욕과 호승심이 생겨서 더욱더 열심히 하고 있지만 노력을 해도 성과가 안보이거나 허사가 된다면 사실상 포기 할 생각 이다. 문을 나서자마자 태식이 기준에서 다소 시원하다고 생각되는 바람이 불었고 바람소리에 제대로 안들렸지만 휘야의 욕설도 같이 들은거 같았지만 적당히 무시하였다. 여차 저차 학교매점에 도착했고 태식이는 빵 같은 것을 사러갈 휘야를 대신하여 자리를 잡기 위하여 자신이 바리바리 싸고 온 도시락을 두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살색 테이프를 꺼내어 자신의 오른쪽 눈에 있는 수술자국에 붙였다. 가끔 휘야가 그 상처 자국을 애잔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고 태식이는 그런 반응을 보기 싫었다. 그때 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함을 느끼곤 하는데 태식이는 그 어색함이 무엇보다 싫었다.
“ 형, 근데 빵만 먹어도 배불러? 고구마랑 같이 먹을래? ”
빵 말고 다른 군것질도 할 거 같기는 했지만 괜히 친한 사람이 끼니 제대로 안 먹으면 뭐라도 한소리 하고 싶어진다. 잔소리를 할까도 했지만 꾹 참았고 급식이 맛있으면 아주 맛있게 먹을 형이니 상관 없겠지 싶어 했다.
"그건 그래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 성실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선배님도 그 범주내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겠죠?"
오히려 터무니 없는 일을 겪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더 풀어진 해인은 웃으며 은우의 말을 긍정했다. 한창 폭풍우 속을 헤매이다 탁 트인 바닷가로 나온 뱃사공들의 느낌이 이러할까. 긴장이 탁 풀려 평소에도 다소 단정하게 자른 듯한 표정을 만들어내던 얼굴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그려졌다. 누군가는 제가 정말 성실하다고 할지도 모르며 실제로 그런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각자의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해인은 말 없이 객관적인 지표로 생각되는 해랑고를 함축하는 대사를 던졌다.
막상 지니 조금 심통이 난듯 여태의 쾌활한 행동을 멈추고 입을 삐죽이는 은우에게 캔을 쥐어주었다. 진짜로 선배와 척 질 생각은 없었으며 미움받는건 더더욱 싫은 해인의 지금까지 게임을 하며 했던 틱틱거림을 무마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자신이 이겼지만 이를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 다음 게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핑계도 되겠지만은. 이윽고 은우가 안정된 표정을 지으며 금방 유쾌하게 신선한 자극에 대해 연설을 하자 소녀는 그러면 그렇지가 이마에 쓰인 것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저 선배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회복력이 끝내주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괜찮아요. 제가 이기기도 했으니 기분이 좋아서 드리는 거에요. 혹시나 제게 쌓인게 있다면 풀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해인은 털털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주고받았다. 손에 걸친 가방줄이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왔다 갔다 자그마한 포물선을 그렸다. "무엇이든 이긴다는 생각을 해야지만 의욕이 나서요. 단순하게 경험이 소중해서 이런 게임을 할때도 이기면 기분이 좋았던 것이 떠올라서 더 의욕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기분 좋게 웃는 앞에서 마주 웃으며 당당하게 화이트 데이 선물이라고 치켜든 물건을 보았다.
"디저트 카페 이용권...?"
하나가 좋아하겠네라는 생각 뒤로 매운것 주고 달콤한 것 주기인가 뭐야.라는 감상이 잇달아 떠올라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지못해 감정을 누르는 대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이없고 즐거웠고 또 짜증나도록 매웠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은데 그러기가 힘드네요." 조그맣게 이어진 웃음뒤로 여전히 그 흔적이 남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여태 놀아주신건 음...그래요 감사해요. 선배님도 좋은 화이트데이 보내세요. 다음에는 제가 기프티콘하고 통과 함께 찾아갈게요." 이용권 잘 쓸게요.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해인은 웃으면서 다시 반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표정하나 없는 포커페이스였던 미나였지만 다른 학년인 학생도 아니거니와 자신과 같은 반이었기에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을까? 나른하나 싶을 정도로 처진 시선으로 훑어본 그의 모습은 확실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알고 있다, 라곤 해도 그녀가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입장이겠지만... 키에 비해 좀 말라보이는 인상이라던가, 저 같이 검은 머리카락이 자칫 헝크러지기 쉬운 곱슬기가 있음에도 까치집보다는 훨씬 나아보이는 스타일, 무엇보다 나른해보이면서도 꽤 미형으로 잡혀있는 이목구비가 굳이 명찰을 살피려 노력하지 않아도 강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학생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
돌아오는 인사는 살짝 어색했을까, 무엇보다 미나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배가 고프기에 이곳에 온것이 아니냐는 자신의 물음에 아니라고 부정을 표함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해를 못했다는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을까? 눈 앞의 동급생이 딱히 사람을 꺼리는 인물이었던 기억은 없지만 먼저 어울리려 했던 적도 없었기에 자신을 보려고 이곳에 올 이유도 없을 뿐더러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서야 자신이 점심시간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는건 그저 우연일 뿐이었을까? 라고 하기엔 다른 동아리 부실이 아니라 굳이 요리부에 들어온 것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
하지만 진짜 말하려던 대답은 그의 입이 아닌 배쪽에서 들려왔을까? 그저 소화가 안되어 고록거리는 소리와는 달리 명백하게 배고플때 내는 신호라는것을 알고 있던 미나는 살풋 웃어보이면서 식기를 한세트 더 집어내 테이블에 올려두고서 자신이 늘 앉아있던 맞은편의 의자를 살짝 빼어 앉기를 권했다.
"금방 준비될 거니까, 여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줄래?"
그가 먹지 않겠다 해도 할 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먹이지 않을 이유도 없는 그녀였기에, 속속들이 놓여지는 것들은 음식점이라기엔 단촐했고, 학교 급식이라기엔 호화스러운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