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월 초이니 가끔 엄청나게 추운 날이 있기도 해. 봄에 오는 꽃을 시기해서 찬 바람이 부는 거래. 그래도 3월에 눈이 오는 건 심하지 않아? -3월 초순, 눈이 오는 날에-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착착 통을 열고 정성스럽게도 분리해 놓은 사탕을 꺼내어서 다시 아래층을 나누어 만들어진 통에 넣고 흔드는 것을 해인은 바라보았다. 수많은 양의 사탕에 정말 많이도 가져왔네 2학년들은 원래 이런가 아니면 이 사람이 지나치게 아는 사람이 많은건가 생각하던 소녀는 단순하게 사탕을 움켜쥐고 꺼내는 것이 아닌 칸 마다 동일한 수로 내려놓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선배라는 사람이 1학년 복도까지 내려와서 이름도 모르는 후배를 불러서 세워놓고는 요란한 장난을 치지는 않을거라 믿은 해인은 은우의 동아리가 이벤트를 좋아하는 부서인가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아주 간단해. 라고 진지하고 이어지는 말에 해인은 귀를 세웠다. 이미 참여하기로 했으니 어느정도 성의는 보여야 재밌겠다 싶어서 듣고 있자니 어느새 팔짱을 끼고 누가보아도 나 집중하고 있어요.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타바스코가 나오는 부분에서 끄덕임이 멈추었다.
"어, 왜 하필이면 타바스코인가요? 우승상품에 꽤 큰 게 걸려있나봐요."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오는 동아리 홍보 게임은 처음 보았다. 해인은 웃으면서도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하며 질문을 했다. 공평한거야 전제 조건 자체를 처음부터 속였다면 제가 속아넘어가도 그 진실을 알 방법이 없으므로 신경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게 이런 확률성 게임의 룰이기도 하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거람? 어느새 승부욕과 계획광이 머릿속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는 통에 해인은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넘어가 술에 물을 타듯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좋아요. 속는 셈 치고 해볼게요. 대신 보상은 확실히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신X떡볶이도 곧 잘 먹는다는 평을 듣는데 타바스코 정도야. 타바스코를 별로 접해보지 못한 해인은 딱히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에 시원스럽게 "지금 시작하면 되는 건가요? 순서는 제가 먼저 할까요?" 라 물었다. 이견을 제기한다면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은우가 상자를 섞었으니 해인 본인이 상대보다 불리하다는 말로 첫 순서를 고집할 생각이었다.
"그거야 그게 더 재밌으니까. 그냥 어설프게 조금 신 사탕으로는 게임의 재미가 안 나잖아?"
해인의 말에 은우는 정말 태연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그것 이외에는 이유가 없었다. 상대를 골탕먹이겠다거나 그럴 생각이라면 자신은 입에 담지 않았고 이렇게 보란듯이 섞지도 않았을테니까. 오히려 그냥 아무거나 하나를 주고 도망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남을 괴롭히는 것일 뿐이며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다. 자신도 함께 똑같은 무대에 올라서야 재밌는 게임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녀가 조건을 받아들이자 그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게임의 조건은 달성되었고 그는 보상에 대해선 염려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주머니를 손으로 톡톡 쳤다. 아무래도 보상은 그 주머니 안에 따로 들어가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페이크 동작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가 먼저 하겠다는 말을 하자 그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누가 먼저 해도 그렇게 불리한 게임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운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먼저 해도 돼. 아. 참고로 너무 매우면 바로 포기해도 괜찮아. 무리하게 먹다가 진짜 큰일날 수도 있으니 말이야."
타바스코 소스는 그렇게 쉽게 볼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중도 포기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정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해인이 사탕을 고르고 먹는 것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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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은 매우 간단해! 1~10까지 돌려서 홀수가 나오면 노말 사탕. 짝수가 나오면 타바스코 사탕이야! 이미 나온 번호가 뜨면 +1 처리야! 자. 먼저 돌려보라구!
단순히 재밌어서라고? 초면인 선배를 단순하게 동아리 홍보 나온 선배에서 뭔가 이상한 선배로 격하시킨 해인은 순간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고 "하다가 중간에 교무실로 끌려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 말을 받았다. 교칙상에 어딜 보아도 선후배간 타바스코 캔디룰렛을 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칙을 정한 사람들이 음식으로 내기를 거는 기상천외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지금의 서해인 본인처럼 말이다.
재미를 찾아 화이트데이를 틈타 자신마저 데스매치 치킨게임의 대상자로 올린 은우를 학업 스트레스에 벌써부터 정신이 나갔나 보다 라고 정리한 해인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은우의 주머니에 한번 눈길을 주다 고개를 끄덕였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건넌강은 되돌아 갈 수 없었다. 보상이 시원찮다면 그때가서 해결해도 될 일이겠지. 인생을 직진 한 방향으로 살아온 해인은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통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난 원래 사탕이 있던 두 칸쪽 어느쪽이 정상적인 칸이었는지도 모르잖아? 묘하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눈썹을 살짝 오므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탕이 흔들려 이리저리 이동한 방향을 떠올려도 무엇이 매운맛 폭탄이 아닌지 알 수 없게된 무력함에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매운 거 먹다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해서요." 한 문장으로 그녀의 굳건한 의지를 표명한 소녀는 "한 번했으면 끝까지 가야죠. 물론 선배님도 각오 되셨을거라 믿어요." 라 뒤에 덧붙이고 포장지를 재빨리 까서 입안에 넣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무언가 내게 닥친 사고나 상황이 아닌,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평생 내가 행동함에 있어서 자신에게 놀라는 일 없이 살아갈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생활을 해 왔을 터이다. 내 행동에 나답지 않다든가, 믿기지가 않는다든가 그런 느낌을 받으며 놀라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오늘 점심 시간의 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나의 굶주림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꼬르륵..
나는 곯는 배를 움켜쥐고 혹여나 그 소리가 주변으로 샐까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지금 굶주리고 있는 것은 등굣길에 항상 들러 빵을 사오는 매장이 오늘은 문을 닫았던 까닭이다. 공휴일을 제외하고선 매일 새벽 5시 부터 문을 열고 따끈한 새 빵을 구워 ㅡ매점 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에 가격도 저렴했다.ㅡ 내오는 곳이었기에 복작이는 학교의 매점이나 식당 경쟁을 피하고자 매일 같이 그 곳에서 빵을 사왔던 것인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그런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ㅡ점주의 개인사정으로 오늘은 휴업합니다.ㅡ 따위의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두지 못했던 것이었다. 리스크 관리 실패다. 프로페셔널(?) 하지 못했다.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거기에서 더 이상 생각을 그만 두었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 놀랄 만한 이후의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식당을 이용 할 일이 없어 급식 신청도 해두지 않았었고, 수중에 돈은 있지만 살벌한 매점 경쟁에 끼어들 자신도 없었기에 그저 주려가고 있던 배가 이성을 걷어 차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늘! 나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요리부로 가자! 아무래도 방과후 부실이니까 지금 이용하는 사람도 없을테고. 거기서 먹을 걸 조금 슬쩍하자~! 라고. 그리고 그 시점에서 굶주림에 의해 이성이란 억제기가 날아가 버린 나의 뇌는 그것이 합리적인 의견이라는 쪽에 거수했다.
너희들 정말 내 몸 뚱아리가 맞는거니?
여하튼간, 그렇게 된 연유로 나는 계속해서 찡얼대는 배를 움켜잡고 조심스레 요리부실을 향해 나아갔다. 그 곳에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럴 마음이 없다면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않았어. 게임은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페어하게 해야 맞는 거잖아?"
그녀가 사탕을 고른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은우는 자신도 사탕을 하나 집어들었다. 자신 또한 어디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외울 수 없었기에 방금 잡은 사탕이 무슨 맛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먹어봐야 알 수 있었고 그는 정말 여유롭게, 그리고 태연하게 사탕을 입 속으로 집어넣고 천천히 혀를 돌려 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은우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입을 꾹 다물고 발을 동동 굴리면서 뒤로 돌아선 후에 자신의 옷자락을 꾹 잡아당기던 그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겨우겨우 다시 몸을 제대로 돌린 후에 해인을 바라봤다. 두 눈에서 눈물 기운이 보인다면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다. 허나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애써 태연했다. 물론 어떻게든 쥐어짠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처, 처음부터 타바스코. 어우. 매워!!"
이내 그는 발을 동동 굴린 후에 자신의 입가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애써 웃어보였다. 아직은 괜찮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운 그는 다시 통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어느쪽이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로 물고기 하나 낚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만 하다. 적어도 다운이 느끼기엔 그랬다. 보통은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지 바다에 나와 낚시를 하고 싶어하진 않으니까. 다운은 털썩 포트 앞에 주저 앉아 자리를 잡았다. 불어터졌지만 문제는 없다. 다운은 나무 젓가락을 집어 들어 라면을 올렸다. 너무 불어버린 탓에 헛손질을 몇 번 하고, 면발 한 가닥을 죽처럼 만들어 놓고 나서야 겨우 짚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 그 일련의 과정 역시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다운이다.
"...! 맛있다."
다운의 음식 허들은 몹시 낮은 편이었다. 물론 대수가 신의 요리 솜씨를 가져 다 불어터진 라면도 맛있게 만들었다라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요원해보인다. 모로가도 서울에만 가면 된다던데 다운도 만족, 대수도 만족이라면 이 라면은 성공적인 셈이다. 은은한 미소가 감돈다. 다운이 젓가락을 들어올리며 평소와 비교하자면 명랑한 어투로 묻는다.
"혹시 꿈이 횟집 사장이라도 되는거야?"
농담은 아니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물어봤다. 여기서 분위기가 싸해진다면 다운은 눈치껏 '농담이었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생긴것과 달리 실로 옹졸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말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했지만 내심 많이 떨렸던 해인은 입안에 퍼지는 달달한 맛에 다리에서 살짝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계속 가기만 하면 좋을것 같아. 바짝 긴장이 들어간 처음과 다르게 한 번의 성공에 자신감(?)을 되찾은 소녀는 의기양양하게 은우가 사탕을 집어드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처음에 별 다른 일이 없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볼을 우물거리던 상대가 갑자기 움찔하더니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아. 왔구나 해인은 자승자박에 안쓰러워 해야할지 아니면 자신이 제안해 놓고 당하는 것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웃는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닌 오묘한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확률적으로 첫 턴을 가져가는 것이 맞았나 보다.
"뭐어..선배님 말대로 정정당당하게. 매우 페어하게 하는 거니까요."
"그러게 왜 하필이면 1학년을 붙들고 장난을 하는 거에요." 결국 안쓰러워하면서 할 말을 하기로 결론을 내린 해인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애써 괜찮은채 하는 은우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선배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할까...동생이 저보다 한 살을 더 먹으면 저런 모습일까 생각을 하면서 해인은 다시 사탕을 집어들었다. 이번에도 제발. 굵고 짧게 속으로 빈 해인은 입안에 알을 넣었다.
겨우겨우 자신의 혀를 진정시키며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생각보다 꽤 매운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넣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면 재미없지! 결국 또 다시 재미에 몸을 맡기며 그는 그녀가 사탕을 들어올린 것을 확인한 후, 자신도 근처에 있던 사탕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 쏙 집어넣었고 천천히 혀를 움직여 녹여내렸다.
"우와아아악!!"
혀가 겨우 진정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민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후끈거리던 혓바닥에 또 다시 타바스코가 천천히 녹아흘러내렸고 은우는 눈물이 핑 도는 눈으로 뒤로 돌아선 후에 머리를 잡고 으으- 소리를 내며 신음을 내뱉었고 이내 차가운 공기를 흡입하려는 듯 빠르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잠시동안 그렇게 호흡을 거칠게 하던 은우는 다시 뒤로 돌아선 후에 해인을 바라봤다. 방금 전보다 눈물이 더 핑 도는 느낌으로 해인을 바라보던 그는 겨우겨우 입을 열어 다시 이야기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애초에 게임을...한 시점에서 각오한거야."
몸을 부르르 떨지만 그럼에도 이 짜릿함이 나름 재밌었는지 그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짜릿하고 재밌는 화이트데이가 아니겠는가. 피식 웃어보이며 은우는 해인에게 사탕을 고르라는 듯, 다시 통을 내밀었다.
그의 질문에 다운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검지 손가락을 올리니 -단순 습관인듯 싶다- 제법 진지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요리를 정말 못하거든. 내가 라면을 끓이면 항상 짜거나 싱겁거나 불어터지거나 덜 익었거나 하는 편이야."
저주받은 손재주는 미술 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아직까지는 어디가서 요리 할 일 없어서 문제된 적은 없었다만 입맛이 날이 갈수록 너그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스파게티를 하려다 모든 것을 태운 것 역시 말할까 고민하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함구하기로 한다. 이제 막 만난 동급생에게 방화범의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제 2학년이잖아. 슬슬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돼."
네네. 대충 진로 탐색 선생님이 할법한 말을 늘여놓는다. 다운은 어쩌면 꼰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긴 건 어디가서 삥뜯고 다닐 것 같이 생겨놓고 이런 교훈적인 말을 하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네가 커서 횟집 사장이 된다면 내가 홍보해줄게."
협소한 인간관계로 과연 도움이 될련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말로는 천냥집도 갚을 수 있다잖는가. 속담의 쓰임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넘어가자. 다시마를 보여주자 다운이 고개를 기울인다.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알 지 못해 생긴 일인데 이내 대수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아, 내 말은 횟집에서 라면도 팔면 좋겠단 소리였어. 그래도 횟집이니까 특색있게 해물라면이 좋잖아. 거기에 미더덕이랑 낙지, 새우를 넣고 20000원에 팔아버리자. 멋 모르는 관광객들이 좋다고 사먹고 가겠지."
이건 정말 농담이 맞았다. 문제는 전혀 농담같지 않은 분위기와 표정탓에 진지하게 바가지 씌우는 음모를 모의하는 꼴이 되어서 그렇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진지하게 횟집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소심한 변명을 덧붙여 보자면, 그냥 해산물이 땡겨서 그렇다.
방심의 대가였는지 안도하자마자 찾아온 벌칙에 해인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렇다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대놓고 울수도 없고. 음식점에서 먹어본 타바스코 소스가 이렇게 매웠던가 피자에 뿌렸을때는 그냥 적당히 톡 쏘는 맛이었는데? 있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인은 제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에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 이 선배가,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소스를 발라놓는데요! 라는 소리없는 비명을 꾹꾹 누르고 얼얼한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래도 생리적인 눈물이 나와 눈을 감고 뜨니 그래도 처음이라고 참아낸 저와 다르게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은우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기를 제안한 본인이 연속으로 당하는 몰골에 할 말을 잃은 해인은 멍하게 막 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심호흡 하는 상대를 보았다.
"...미안한데, 전혀 안 괜찮아 보여요. " 간신이 얼얼한 입을 떼고 말을 한 해인은 내밀어지는 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이렇게까지 상처밖에 남지 않는 게임에 사활을 거는 건지. 본인도 사활을 걸고 있으면서 남말하듯 생각한 해인은 머리를 굴렸다. 남은 사탕은 6개 그 중 타바스코는 은우의 말에 따르면 2개. 타바스코 사탕을 연속으로 먹어서 질 확률은 1/3X1/4. 10%보다도 더 떨어졌다. 90% 이상의 승률이면 할만하지. 마음을 다시 한번 비가내린 후의 땅처럼 굳게 다진 해인은 비장하게 손을 내밀어 사탕을 집었다.
물론 혀가 얼얼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듯, 그는 이를 악물면서 잠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기합을 넣고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두 번 연속 이렇게 먹을 수 있는건지. 이제 남은 사탕은 다섯 개 뿐이었다. 그리고 타바스코는 두 개. 이 이상 먹으면 자신의 패배가 확정이 나는만큼 은우는 조금 더 신중하게 사탕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어 근처에 있는 사탕 하나를 집은 후, 그는 아까전과는 다르게 정말로 신중하게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혀를 천천히 돌리니 이번엔 상큼한 오렌지 맛이 느껴졌다. 겨우 살 것 같은지 그는 정말 여유롭게 웃으면서 방금 전과는 다르게 단 맛을 제대로 즐겼다. 마치 목이 타 들어가는 가운데, 시원한 탄산음료가 들어간 것처럼 여유롭게 웃음까지 보이면서 사탕을 먹은 은우는 살며시 통을 두 번 정도 흔든 후에 다시 배치를 섞어냈다.
"그건 그렇고 넌 괜찮아?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먹는 것이 꽤 힘들어보이던데 말이야."
아주 살짝 걱정스러움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먹은 것이 조금 걱정이 되긴 한 모양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자신은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통을 한 번 흔들어서 또 사탕을 섞어낸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 이젠 네 턴이야. 어때? 꽤 기억에 남는 화이트데이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냥 평범하게 사탕만 나누면 뭔가 자극이 부족하잖아? 이런 날일수록 재미와 즐거움이 있는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야 나중에 추억이 되는거고! 생각해봐. 졸업할 때가 되면 1학년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 가 이런 일도 있었지. 이렇게 된다니까. 백퍼센트."
싱긋 웃어보이며 은우는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가슴가를 손으로 톡톡 친 후에 팔을 아래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