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빨간 빛이야 눈을 좀 가릴게, 자기야. 놀랄 것 없어 요즘에는 도무지 저것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어 이것은 그저 우리가 굴러떨어진 또다른 막장의 날일 뿐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이곳이 원래 맛이 간 동네긴 하다. 에만은 동의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눈앞의 여성은 긴장감 하나 없는 것 같은 모습이 조금 이질적이었다. 어쩌면 여유로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기인과 악인이 넘치는 곳에서 은둔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그렇지만 그런 은둔하는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다. 에만은 장난기 있는 표정에 얕게 웃었다. 기운 없는 웃음소리였다.
"이런.. 함부로 대했다간.. 큰일 나겠는데요..?"
상담을 위해 오는 사람들은 셰바의 가장 큰 가시에 찔려 온 사람이거나 적응하지 못한 바깥사람이겠지. 그렇지만 험하고 누군가 죽어가는 곳에서, 목숨을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같은 광인이거나 더 큰 광기를 숨긴 사람이겠다. 제법 당찬 포부가 들어있는 말과 자조적이고 쓴 진심에 에만은 가면 속 얼음같이 차가운 색의 눈동자를 천천히 휘었다.
"대단하네요.."
그렇지만 정상인을 찾기 힘든 건 아니랍니다. 어쩌면 이 비탄의 도시에서 제일 정상인 사람은 미쳐서 돌아오는 사람일지도 모르니. 에만은 그 말을 혀 밖으로 뱉지 않고 꾹 집어삼켰다. 비밀유지서약 때문에 말하지 못한다는 언급에 에만은 펜을 잠깐 빙글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필사를 시작한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느린 속도도 아니었기에 어느덧 반절을 채울 수 있었다.
"좋은 칭찬 감사해요.. 얼마 없는 재주거든요."
내용을 보지 않는다는 점은 괜찮은 사람이라 평할 수 있다. 어느덧 끝마무리를 지을 때, 비스듬하게 펜을 기울여 흘려 쓴다. 흘림체라도 읽는 것에 지장 하나 없을 정도로 바른 글씨였다. 에만이 가진 얼마 없는 재주 중 하나였다. 아무리 어머니의 손에서 오래 자랐으며 어머니는 본인도 가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날려 썼다지만, 글을 떼는 건 한참 이전이고 아버지 덕분이었으니 그 탓이 크겠다. 에만은 마침표를 찍고 펜 끝을 엄지로 누른다. 딸깍 소리가 나며 펜촉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종이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서류철을 덮었다.
"...아야야야, 큰일은 무슨 큰일인가요. 애초에 함부로 대해지기 쉬운 일 하고 있고-" 가면 뒤의 옅은, 기운없는 웃음을 알아차린 아야는 에만을 바라보다 이내 사탕을 깨물었다. "그리고- 대단할 거는 하나도 없는 일입니다. 애초에 진짜로 뭘 해주는 건 아니고, 말이라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게 다인데-" 방금의 말은, 약간은 자조스럽게 들렸을 지 모르겠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 안을 드러다볼수 없는 가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따라 아야는 자신의 평소 생각을 조금씩 털어놓고 있었다.결국 아야 본인은 자신이 실제 이룬 거 하나 없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기도 잠시. 예상치 못한 감사인사에 겸연쩍어하기도 잠시, 필기를 끝낸 것을 보고는 이내 다시 몸을 일으킨다. "아야야야, 그러면 이만 나가볼까요- 수고하셨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라거나 받아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지하실 밖으로 나가서,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아야였다.
이 미친 도시에서 함부로 대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어디 있을까. 에만은 천천히 가면 속의 표정을 굳히며 필사를 마친다. 과연 대단할 것 하나 없을까. 그마저도 듣기 위해 바라고 비는 사람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에만은 서류철을 돌려주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의지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나서자 그 뒤를 따라나선다. 에만은 인사치레의 감사 인사에 괜찮다는 듯 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지하실을 나서 카운터로 다시 돌아오며 돌려받은 카람빗을 다시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상담 받을 일이 있다면.. 연락할게요."
나서기 전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명함을 카운터 위에 올려둔다. 남색 명함에 금색으로 부엉이가 그려져있고, Owl of Minerva라 적혀있다. 뒷면엔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없다. 문을 나서고 몇 걸음 걷기가 무섭게 구부정하던 자세를 천천히 펴며 주머니 속의 필사한 대화록을 다시금 읽는다.
— 요양 병원에는 여러 사람이 있어요. 셰바가 늙어 가는 곳이니까요. 도살자의 서커스에 관여했다는 사람도 있고.. 프릭쇼도 있었죠. 가장 인기가 많았던 상품은..(중략) 사실 알고 있어요. 위랑 저도 그곳 출신이니까..(후략)
[미래를 바꿀 팀의 일원으로 여러분을 모시게 된 걸 환영합니다. 이곳까지 오신 여러분은 아마 각지에서 이름난 과학자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혹은, 그런 학위까진 없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지요.
우리 모두 인조인간이나 강화인간 같은건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애당초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을 여러분이기도 하죠. 전자는 오로지 살육을 위해 만들어진 결전병기이며 후자의 경우도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새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이들은 주어진 목적에 알맞게 행동하며, 명령을 하달한대로 행동하죠. 물론 안정적인 경우도 많았으나 일부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고, 다른 일부는 탈선을 일으키며 저항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계획인 겁니다.
우리는 일찌기 보다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빠르게 사고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이며, 세상 모두와 소통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인공두뇌를 개발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 어떤 의미로는 감정, 생각 또한 담기로 했습니다. 계산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호의적이며, 때로는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힘 또한 있다면 그 어떤 일에도 우리에게 충분한 전력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녀를 만들 때 인간을 이용했습니다. 가장 완벽한 샘플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 의료수준의 외과적 상담 및 정신감정을 끝마쳤고, 본인의 확고한 의사와 부모측의 명확한 동의 하에 진행된 것입니다. 다만... 그 근본이 인륜을 저버렸다는 죄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달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시죠. 우리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어쩌면 인류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녀는 우리처럼 숨을 쉴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으며, 음식을 소화해 영양분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질병에도 걸리기도 하며 후대를 남길 생식활동 등 인간으로서 작용할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은 배고픔, 목마름, 체력, 외상 등... 그 어떤 것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정밀한 감각이 부여되어있지요. 본사의 정수 자체인 그녀가 보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눈 앞의 불한당들을 처단하기 위해 존재하나, 언젠간 우리 인간을 대체하며 살아갈 가능성도 전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이것은 그 초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나, 후에는 주춧돌로서 작용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금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함께 인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탁해진 웅덩이를 맑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봅시다.]
"맙소사... 이거 완전 미친놈들 한바구니에 감자튀김을 추가한 기분이군..."
"어라... 클라비스 박사님, 감튀 싫어하지 않으셨나요?"
"자네 말이 맞네. 웨일런, ...그만큼 엿같다는 거지."
"에이~ 섭하게 그러시면 안되죠~ 저희 모두 박사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아닙니까? 다들 이정돈 이해하고 있을겁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변함없이 박사님을 따르고 있구요."
"...알고는 있다네. 그런데 그 믿음이란게 말야... 가끔은 광신도 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복음을 받았다 지껄이는 덜떨어진 교주를 따르는 사교도들, 그리고 과학저서를 저들 성서인 것마냥 떠받드는 배라먹을 추종자들 말일세."
"이런... 오늘 베라 아이스크림 시켰는데요?"
"자네는 내가 농담따먹기나 하는줄 아는가, 웨일런?
...무슨 맛인가?"
"제가 그럴줄 알고 박사님건 체리맛으로 사왔죠~"
"...이게 바로 자네가 플라스크의 찌꺼기가 되지 않은 이유일세."
"하하하하~ 농담 한 번 살벌하셔라~ 그럼, 전 잠깐 이것 좀 돌리고 오겠습니다~?
...아, 미네트씨랑 샤를로트양의 몫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그것도 냉동실에 좀 넣어주지 않겠나? 그 친구들은 오늘 좀 바쁠 예정이니 말일세."
"거 참, 박사님도 그렇지만 그 두분은 항상 열심이시네요~ 연구소에서도 다들 두분만큼은 좀처럼 마주친적이 없다 하니까 말이죠."
"그래, 참 열심이지.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일 수록, 제 발치에 떨어진 불씨를 끄는 것조차 잊을만큼 시간을 다투는 법이야.
아마 그 몸이 전부 타들어간걸 깨닫는건,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겠지."
"...결국 우린 세상의 암세포와 다르지 않다네. 그건 저기 밑바닥 또한 마찬가지고, 비록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지라도, 넖게 보면 생태의 순리대로 움직이는 셈이지. 다만 무언가에 심취하고, 깊이 빠져들수록 각종 모순과 자기기만, 감정상실 같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폐단 속에 휘말릴 뿐이야.
이 세상은 질서나 혼돈 따위로 특정할수 없다네. 웨일런, 밝고 어두움의 개념조차 무의미한 거야. 클리포트의 나무가 사실은 세피로트의 뿌리일줄 누가 알았겠는가?"
"...벌써 갔나보군.
그게 바로 자네가 플라스크 속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일세... 저 아이와는 다르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