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서 뭔가 답을 찾은 거 같은데 2초만에 까먹어버렸지 뭐야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따 보자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818 !!!!!!!!!!!!!!!!!!!!!!!!!!!!!!!!!!!!!!!!!!!!!!! (머리위로 운석 하나 내리꽂힌 충격) 그 래 서 였 구 나 . . . . . . . (무한점) 아 이거 생각보다 훨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였었구나... 88 알려줘서 고마워
페로사의 진노에서 로노브와 포레가 보였던 것과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방금 전에 잡화점에서 제롬을 향해 신랄한 감정을 드러낸 로노브와 포레- 라 베르토의 창설 때부터 아스타로테와 함께한 두 명의 창립 멤버를 제외한다고 하면, 아스타로테와 같은 세대의 사람 중에 아스타로테와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다섯 명을 뽑아보라면 그 중에 페로사가 들어갈 정도로 그녀 역시도 만만찮은 세월을 아스타로테의 친구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다만, 페로사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힘껏 참아누르고 제롬을 손님으로 맞아준 것은, 예전에 제롬과 나눈 이야기가 있었을 뿐더러, 페로사가 아스타로테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제롬의 친구이기도 해서였다.
"조금 기다리셔."
그래서 페로사는 제롬의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냉장고 위에 수건으로 싸서 올려놓은 얼음을 끌로 찍어서 쪼개고는, 나이프로 능숙하게 삭삭 깎아서 말끔한 구형 얼음을 만들어 온더락 글라스에 담았다. 그리고 그녀는 선반을 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창문가의 줄리엣을 올려다보는 로미오를 그린 것이 분명한 라벨이 새겨진 위스키 병을 꺼냈다. 글라스에 또르륵 따라지는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선율 같았다. 거기에, 그녀는 냉장고를 열어서 웬 요일별로 약 나눠담는 약통을 꺼냈다. 약통에는 약 대신 이름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모양과 색으로 칸마다 한 송이씩 들어있었다. 그녀는 그 꽃 하나를 꺼내서 마무리 가니쉬로 올린 다음에, 제롬의 앞에 코스터와 함께 온더락 글라스를 소리없이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은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한 모금 머금어보면, 뚜껑을 열었을 때 느껴지던 선율과도 같은 캐러멜향과 깊이있는 씁쓸함, 헤이즐넛을 연상시키는 견과류의 향이 애잔하게 입 안에 흐른다. 코끝으로 와닿는 이국적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꽃향기가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같다.
"'비르투오소' 온더락 나왔습니다. 천천히 마셔."
바텐더는 손을 멈추지 않고 라임 하나를 꺼내서 반으로 자르고, 반쪽을 똑똑똑 썰어서 구리 머그잔에 던져넣고는 머들러로 툭툭 찍어으깨고는 그 안에다 보드카를 쭈르륵 따랐다. 그리고 잔에 자갈얼음을 몇 스쿱 퍼넣고, 잔의 남은 공간을 진저비어로 가득 채우고는 바스푼으로 가볍게 위아래로 저어주었다. 라임웨지 하나를 가니쉬로 올린 그녀는, 제롬에게 꽃을 꺼내준 약통의 다른 칸에서 연보랏빛의 꽃 한 송이를 꺼내 마무리 가니쉬로 올려서 아스타로테에게 내어주었다.
"달지 않고 가볍고 시원한 거. 모스코 뮬 나왔습니다."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생강향과 알코올 기운, 상쾌한 탄산, 상큼한 시트러스의 맛이 혀 위로 올라오면서, 가니쉬로 올린 꽃의 상쾌한 애플민트 같은 향과 섞이며 신선한 청량함이 되어 목구멍을 넘어간다. 아릴 정도로 차갑지는 않지만, 그것은 풍부하면서도 가벼웠다.
페로사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로테나 제롬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대답해주겠지만, 로테와 제롬 두 사람이 서로 나누는 대화에는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제롬은 가니쉬가 얹어진 온더락 글라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향은, 좋았다. 좋은 위스키를 사용한 것일까. 얼음이 녹으며 향이 옅어질 것을 감안해도, 이렇게 진하고 달콤한 향이라면, 오랫동안 즐기기 좋을 것임이 분명했다. 입 안에 머금어보니 제롬의 예상은 정확했다. 달콤하고도 씁쓸한 향은 입 안 전체를 감돌았고 목구멍 너머로 내려가며 긴 여운을 남겼다. 알코올의 매운 맛과 뜨거운 감각을 마지막으로, 제롬은 작게 숨을 뱉어내었다. 비르투오소가 무엇인지, 알고 싶기는 했으나 당장은 질문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여인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날, 집에서 본 그 분위기에 가까웠다. 자신이 싫어하던 그 분위기 말이다. 저 모습을 또 한번 보게 될 거라고는... 제롬은 쓴 입맛을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키며 씻어냈다. 여인은 물었다. 뭘 고를 거냐고. 제롬은 그 말에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연다.
"...나는 차라리 선택하지 않을래."
고개를 돌리는 여인을 보며, 제롬은 나직히 중얼거렸다. 지금까지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은 꽤나 아프게 제롬을 찔러들어왔다. 여인도 정말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도, 그가 여인의 얼굴에 남은 흔적들을 보고도 이전과 같이 행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을테니.
"네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건 의미가 없어. 그러니 나는 네게,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선택을 미루고, 내 행동을 지켜본 다음, 그 때 선택해."
자신이 선택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 관계를 끝내는 것도, 이어나가는 것도. 둘 다, 여인이 원하는 것이 아닐텐데. 제롬에게, 아스타로테에게 있어 그것이 과연 옳은 결과일까?
그는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뻗어진 손은 여인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봐 주었으면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대로 내버려두면 여인이 자신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여인을 마주하려 했다.
"...지금부터 말해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여인이 바라보았는지, 아니면 그저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입을 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페로사의 앞이었기에 밑바닥까지 드러내지는 못 했겠지만 그는 그가 숨겨왔던 것을, 아스타로테의 앞에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현재 라이벌 조직으로 추정되는 정체 모를 조직들에게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 이전에 다쳤던 것은 그 일 때문이라는 것. 그 일과, 자신의 친구이자 유명한 해커인 '에만'과 협력하기로 하여 당분간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는 것. 그러던 와중 르메인 배틀리언 소속 무라사키를 만나 친구가 되고, 그 일의 여파로 자신이 납치되어 고문받고, 그 일 때문에 의식을 잃어 일주일이나 연락도 못 받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까지. 여인이 보고로만 받았을 이야기가, 제롬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는, 무서웠어. 네가 나를 떠날까봐.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아봤자 널 피곤하게 할 뿐이라고, 네가 날 떠나는 계기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
숨기는 것이 오히려 여인을 괴롭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숨겼던 것은 단지, 그런 이유였을까.
"네게 숨긴 건 이게 끝...은 아니야. 나머지는 여기서 들려주긴 곤란해. 하지만, 내 밑바닥까지 네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전부 말해줄게."
페로사를 흘긋 본 그는, 다시 여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을까. 조금 전과는 달리 여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