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서 뭔가 답을 찾은 거 같은데 2초만에 까먹어버렸지 뭐야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따 보자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199 끝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지.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끝내고 잘 살아갈 거야. 누군가는 우리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캡틴에게는 다른 이야기가 있잖아. 전문 작가들이 앞뒤 줄거리를 짜맞춰 써낸 잘 써진 시나리오에 비하면 좀 중구난방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이야기가.
제롬의 생각은 정확했다. 제롬이 옷과 머리를 걷아 부상의 흔적을 보여준다 한들 로노브가, 포레가 그걸로 납득 해줄 리가 없었다. 실제로 로노브는 더 차가운 시선으로 부상들을 훑어보기만 했다. 그것들로 인해 의식이 없어서 연락도 방문도 하지 못 했다는 설명을 들어도. 로노브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응대했다.
"그러십니까. 그래서. 이번엔 무슨 말로 그녀를 구워 삶을 셈이지?"
목소리에 한기는 그대로 였지만 정중하던 말투가 싹 사라졌다. 더 이상 같잖은 말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듯. 날카로운 말들이 제롬에게 향했다.
"너는 말했었지.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거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 될 거라고 생각했나? 그녀가 매일 이곳에 앉아있기만 하니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거라 자만했나?"
"이래서 우리는 어린 애를 싫어 해. 상대를 같은 수준 혹은 그렇게 여기며 행동하는 꼴이 아주 같잖지.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들이밀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생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 그걸 맞춰 주기 위해 상대가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르는지 모르고. 안다 해도 눈을 돌리지. 넌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로노브가 말을 끊었다. 그리고 기다렸단 듯 포레가 제법 큰 상자를 들고 와 셋 모두가 볼 수 있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말이 내려 놓은 거지 거의 던지다시피 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지는 소리도 났다. 안을 가득 채운 빈 술병들이 깨지는 소리가. 그걸 다시 발끝으로 걷어 찬 포레가 목을 긁는 듯이 내뱉었다.
"이거 보이냐? 네 놈이 숱하게 다쳐 들어올 때 부터 그녀가 혼자 처마신 양이다. 아예 안 보이게 된 후에는 거의 하루에 병 하나씩 비워댔어. 밖에 처나가지도 않고 매일 밤마다 위에서 술 처마시며 혼자 청승 떨어대고 있었다고. 그렇게 만든 원인이 뭐? 기회를 준다면 바로잡아? 개소리 집어쳐. 기회는 네 놈이 던진거나 마찬가지야."
포레의 윽박 다음은 로노브의 한기였다.
"그녀는 네가 말하지 않은 것들도 다수 알고 있다. 네가 언제 어디서 누구랑 노닥거렸는지. 어느 조직과 접촉이 있었는지. 너 뿐만 아니라 보이는 수준의 도시 상황은 대부분 알고 있어. 여기에 허투로 앉아있는게 아니란 거다. 넌 그런 그녀에게 말만 안 하면 될 거란 마음으로 그딴 헛소리를 지껄였고. 결국 사태를 이 지경을 만들었다. 지난 일주일간 만 해도 그녀가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아는 상황에서 그게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면. 우리는 널 용인할 수 없어. 죽여서라도 그녀에게서 떼어낼 거다."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니까.
"알아들었으면 꺼져."
금빛 눈 한 쌍과 붉은 눈 한 쌍이 적개심과 살기로 일렁이는 시선을 제롬에게 향했다.
[페로사]
냅킨을 뽑아오며 흐린 시야에 술이 찬 슬잔이 보였지만 차마 마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울기 전이었으면 모를까. 여인에게 술은 눈물이 나오기 전에 함께 삼키는 것이지 눈물을 머금은 채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잔에는 손끝도 대지 않고 냅킨만 끌어다 조용히 얼굴을 닦았더란다.
여인이 겨우 겨우 얘기를 꺼내 놓고 다시 눈물을 터뜨리자 페로사의 팔이 여인의 머리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모처럼 입은 옷이 여인의 눈물로 얼룩질 텐데. 생각은 들지만 울음을 멈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기에. 당장에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염치없게 페로사의 셔츠를 적시며 페로사가 해주는 말을 들었다.
제롬이 했다는 고민. 페로사가 생각하는 제롬에 대한 것. 그리고 변호. 듣다보니 문득 웃고 싶어졌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여인이 할 수 있는 건 울음을 추스르고 목소리를 짜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애, 너한테는, 얘기를 했구나..."
울음과 잠긴 목으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은 다 꺼냈었는데. 이래도 후회하지 않을 거냐고. 밑바닥까지 드러냈었는데. 중요한 얘기를 또 남에게 전해 듣게 만들었다. 그것이 서럽고. 그것이 비참했다. 왜, 자꾸 누군가의 입으로 네 얘기를 들어야 해?
여인은 다시 냅킨을 몇장 뜯어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이제 됐다는 듯 페로사에게서 몸을 떼고 바에 기대었다. 잠시 기대어 있다가 고개를 들고 잔을 들어 술을 탁 털어넣었다. 그대로 식도를 녹여버렸으면 하는 알콜의 향과 맛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대강 쓸어넘겼다. 붉게 부은 눈가와 지친 보라색 눈이 페로사를 보았다.
"로시. 내가, 남의 입으로 그 애 얘기를 듣는게, 몇 번 째인지 알아?"
킥. 비틀린 웃음이 붉어진 얼굴에 떠올랐다.
"내가 그 애 앞에서 엉망진창으로 고백 했던 날. 걔가 그러더라.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을 거고 말 하지 않을 거라고. 로시. 나는 그 전 부터 참고 있었어. 그 전. 한참 전부터. 한 동안 안 보이다가 약 냄새 풀풀 풍기면서 나타나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구는 거. 그런 꼴로 오면서 날 걱정 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말을 안 할 거래. 그런데 어떡하지. 난 다 알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일도 똑같아. 내가 생각한 그게 아니라고 해도. 사실은 아니라고 해도 걔는 또 아무 것도 말 안 해주겠지. 어딘가 잔뜩 다쳐와서.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생각도 안 해주고."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아랫입술이 찢겼다. 너무 세게 문 탓이었다.
"너는 참을 수 있어? 너는, 네 연인이 다쳐 왔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있어? 사실은 아는데 미움 받을까 봐 캐묻지도 못 하고. 그래 나도 숨기는게 있으니까 라며 넘길 수 있겠어? 난, 난 말야. 그 날, 최소한 내가 왜 고민하고 뭐 때문에 고민하는지 직접 얘기했어. 걔가 나한텐 말 안 하고 너한텐 얘기한 것처럼이 아니라."
"나는. 걔가 다른 사람에게 갔다는 것보다. 그게 더 비참해. 나는 모르는 걔에 대한 걸 남에게 듣는게."
차라리 바람인게 나을 만큼. 거기까지 말하고 여인은 빈 잔을 페로사 쪽으로 밀어놓았다. 한 잔 더 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