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서 뭔가 답을 찾은 거 같은데 2초만에 까먹어버렸지 뭐야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따 보자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나는 안 참았어." 페로사는 바의 서랍을 뒤적여 납작한 원통형 용기 안에 담겨있는 립밤을 꺼내서 그것을 아스타로테의 앞에 툭 놓아주었다. "발라둬." 페로사는 아스타로테의 옆에 있는 스툴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난 걔를 찾아나섰어." 레이스 호텔에는 초대받아서 가고 싶었는데─ 하고 페로사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이해해, 그 비참한 감정. 정말 그게 어떤 감정인지 완전히 잘 알고 있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라보고 싸늘하게 대하는, 가면 쓴 그 아이의 목둘레에 남아있던 손아귀 자국을 봤을 때 느껴지는 충격과 좌절감이 얼마나 아득했던 것인지 페로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일이고, 굳이 꺼내놓을 필요 없는 이야기지만, 며칠 전에는 그로스만의 사생아가 그 손아귀로 죽어버린 에만의 목을 거머쥐고 낄낄 웃고 있는 꿈까지 꾸었더랬다.
"그거 참 어렵지. 손을 맞잡고 눈 안에 두고 있지 않으면 어느샌가 손을 풀고 빠져나가서 어딘가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데, 내가 둘도 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선가 상처를 입어버리는데... 어디로 갔을까 찾아내고, 품 안에 움켜안고, 또 어디에서 다치는 일 없을지 보살피려다 보면 속박해버리는 게 되어버리니까. 어디까지가 방임이고 어디까지가 속박인지 적정선을 잘 맞춰서, 아무 일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알아둔 채로 걱정 없이 사랑하면 좋겠는데, 그게 이 도시에선 젠장맞게 힘들지." 페로사는 아스타로테를 위한 두 번째 잔을 따랐다. "특히나 이 빌어먹을 도시는 균형을 잃고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잖아." 그리고 바 너머로 손을 뻗어서는 랙에 걸려 있던 데킬라를 꺼내곤, 자신도 니트 글라스에 데킬라를 뚜르륵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스타로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페로사도 새삼 울화통이 났기 때문이다.
"젠장, 선을 맞추기 어렵긴 무슨, 전부 다 말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어떤어떤 일이 있어서 한동안 연락이 안 될 것이다, 사전연락이 안 될 일이었다면 연락이 닿자마자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연락이 안 됐다- 적당히 둘러대기만 해줘도 기다리는 사람 마음이 훨씬 편해질 텐데 그것도 안 해주고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인형처럼 그대로 있으라니. 걱정을 시키기 싫으면 걱정 안 할 정도로까진 말해줘야 할 거 아냐. 말 안해주면 걱정을 안 한다니, 그건 쌩판 얼굴도 모르는 남일 때나 그러는 거지..." 페로사의 목소리에 점점 감정이 실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바에 붙어앉은 바텐더와 손님은 갓 스무 살의 연하 애인의 연락두절 때문에 속을 썩여본/실시간으로 썩이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인이라는 매우 많은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아스타로테의 고통이 페로사에게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페로사 역시도 그 감정에 어렵잖게 동조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두 잔째의 데킬라를 들이마셨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행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그놈의 최선이 필요할 때 똑바로 되어먹는 일이 없다니깐. 정말-" 하고 짜증에 가득찬 한숨을 쉰 페로사는 서버를 손으로 불러, 자기 일당에서 계산하라고 하고는 커다란 폭찹을 주문서에 휘갈겨서 쥐어주었다.
"특히나 제롬 그 녀석은 쓰잘데기없이 과하게 좋은 녀석이라, 자기 마음을 남한테 섬뻑섬뻑 퍼주고 다니니까 정작 자길 위한 마음을 남겨놓지를 않는다고. 그래서 남을 더 걱정시키게 된다는 건데, 마음을 퍼주어놓고는 그 뒷책임은 생각을 안 하니..." 페로사는 세 잔째의 데킬라를 잔이 거의 넘치도록 따르고는, 그걸 들이키기 전에 아스타로테를 바라보았다.
"아스타로테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을게. 포기하던가, 아니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고 희망을 거머쥐고 있던가... 어느 쪽이든 이제 더 이상 '똑똑한'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아. 골치아프지. 그러니까 결정을 내릴 땐 내리더라도, 적어도 여기서 이대로 끝내진 마. 기다리던가 찾아가던가 해서 제롬을 만나고, 제롬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롬의 입으로 들어봐야 돼. 그리고 네가 섭섭하고 서운했던 건 다 말해야 돼. 이미 말했다면 한 번 더 말해야 돼. 완전히 잘라내거나, 다시 이어가거나... 그러려면 결국에는 대면할 용기가 필요해." 이번의 사건은, 페로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롬의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 그러나 제롬은 이번 건 외에도 아스타로테에게 많은 것을 침묵해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침묵으로는 틀어막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일단은... 정히 아파서 못 견디겠거든, 그거라도 한 잔 마시자고." 페로사는 건배라도 하자는 듯 데킬라가 가득 찬 잔을 아스타로테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