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서 뭔가 답을 찾은 거 같은데 2초만에 까먹어버렸지 뭐야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따 보자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로노브와 포레에게 제롬은 아직 정수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였다. 어찌어찌 이 도시에 적응하여 살고는 있으나 아직은 핏덩어리나 다름 없다고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문답무용으로 내쫓아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을 어린애였으나. 이 애 하나 때문에 여인의 상태가 어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둘 모두 속에서 천불이 끓었다. 아무리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제롬이 재차 묻는 말에 포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스듬히 돌아 서서 제롬을 흘겨보고 또 혀를 차기만 했다. 그리고 제롬과 로노브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은 것은 로노브도 마찬가지였다. 곱슬거리는 적발 사이로 시린 금빛 눈을 가늘게 뜬 로노브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했다.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는 저에게 없습니다만."
두 사람은 지극히 감정적이었지만 그 감정으로 벽을 쌓은 것처럼 단단하기도 했다. 절제된 감정의 표현이란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로노브는 조용히 팔을 뒤로 넘겨 뒷짐을 졌다. 명백히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문턱이 닿도록 출입하실 적은 언제고. 연락도 없이 발길을 끊으셨다가 이제와 찾으시는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의 로노브의 말이 이어지던 중. 포레가 걸어간 쪽에서 덜걱대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포레의 뒷모습에 가려 정확히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로노브는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고 손에 든 핸드폰을 한번 확인한 후 다시 제롬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면 이제와서 당신의 우행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거라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요."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내리쏘는 시선이 말하고 있었다.
[페로사]
눈물로 인해 흐려진 시야를 잠시 드러내었을 때. 여인에게 보인 것은 작렬하는 화마와 같은 페로사였다. 페로사는 화를 숨길 기색도 없이 표정과 기운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마주한 여인을 향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지만. 페로사가 여인을 아는 만큼 여인도 페로사를 알았다. 페로사의 화가 무엇에 향해 있는 건지 알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흑. 하는 가는 울음 소리가 흘러 나온 건 그 직후였다.
"로시..."
어깨를 감싸며 참을 필요 없다고, 마음껏 울라는 페로사의 말에 여인은 숨 죽여 울었다. 머리는 무거웠고. 어깨는 사정없이 떨렸으며. 겉옷도 없이 밤거리를 달리고 헤매이다 온 몸은 울음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옆에 페로사가 없었다면 당장 바닥에 쓰러지고도 남았다. 그리고 과거 그 날처럼 손톱이 뜯어져라 주먹을 쥐고 처절하게 울었겠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옆을 지켜주는 벗의 기척과 어깨를 도닥이는 손길 덕분에 여인은 전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거 같았다.
페로사가 되묻고 얼마 지나서 여인이 조금 진정한 듯 고개를 반쯤 들었다. 꽤 지쳤는지 그리 오래 울지 않았음에도 숨에서 시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인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만 뻗어 냅킨을 집어왔다. 그걸로 조금 얼굴 정리를 하는가 싶더니. 먹먹함이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이라는 거 보니까. 알고 있구나... 됐어. 지금은, 그런 거 다 의미 없어..."
흐. 하고 짧게 나오는 소리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여인은 바에 팔을 올려 몸을 기대면서 중얼거렸다.
"..저번에, 너한테 그러고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 한번만 더 잡아보자고. 어떻게 해도 후회할 거면... 해보고 나서 후회하자고. 응. 그래서 그 애한테 고백하고. 그랬는데.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어진 얘기는 대강 요약하면 이랬다.
제롬과 우여곡절 끝에 성사는 됐지만 어느날 갑자기 연락도 만남도 끊겼다. 먼저 연락을 해도 받지 않고, 목격 소식도 없었다. 그게 일주일 정도 이어졌는데, 알고보니 연락이 끊긴 날, 제롬과 르메인 배틀리언과 모종의 만남이 있었고 그 뒤로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이걸 로노브와 포레가 감춘 탓에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르메인과 뭔가 있었다면 더 좋은 조건인 그쪽으로 갈아탄 거 아니냐. 거기엔 더 가깝게 지내던 여자애도 있었다더라.
어찌보면 억측 같은 얘기였지만 여긴 셰바였다. 이 도시라면, 이라는 가정 하나로 억측조차 진실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아니면 이렇게 사라질 이유가 없잖아... 이렇게 갑자기, 나를 죄다 부숴놓고..."
얘기를 하다보니 감정이 북받치는지 멎었던 울음이 다시 이어졌다. 여인의 원피스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진지해보이려하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에 브리엘은 느리게 눈을 한차례 감았다가 떴다. 그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리엘은 눈을 한차례 감았다가 뜨는 짧은 찰나,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제의한 것들 중 시안이 택했던 물을 담아서 내려놓은 이유는 정말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희미한 인간성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호의일지도 모르고. 어느쪽이든, 브리엘은 이미 물을 건넸고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잊으려고 노력했던 미약한 무언가의 흔적처럼 보이는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브리엘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런 걸 신경쓸 정도로 당신과의 사이가 가깝지는 않지 않아? 그러니까 내버려둬. 신경쓰지마."
자신을 걱정하는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무감한 목소리로 시니컬하게 말을 내뱉고는 브리엘은 머리를 쓸어넘겼던 손으로 잔을 다시 집어들었다. 머그컵 속의 커피는 분명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을테다. 아예 웃을 일이 없는 도시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신경질적인 웃음을 짧게 터트리며 잔을 비워낸 브리엘은 잔을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을 것이다. 신경질적인 웃음은 역시나 어처구니없다는 기색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한숨으로 바뀐다.
"그런거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거라고 생각해? 왜, 기억도 안난다고 하면 당신이 이제부터 날 웃을 수 있게 해줄려고?"
비어있는 크리스탈잔의 겉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브리엘은 노려보는 것처럼 당신을 바라보다가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포레의 행동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쓸 여유가 없는 것인지, 로노브를 향해 고정되어있던 시선은 그의 말에 잠깐 흔들렸다.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로노브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아스타로테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아스타로테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요구에 불과했다.
사무적인 말이 이어지자 그는 말없이 소매와 앞머리를 걷는다. 총상 몇개와 자상의 상처들, 그리고 붕대를 감은 상태인 이마. 그는 그것을 로노브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길게 설명하긴 어렵다. 네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애초에 그게 이유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일주일간 의식이 없어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였어. 발길은 커녕 의식조차 없었지. 그렇게 된 건 내 탓이 맞지만, 연락도 발길도 끊긴 건 의도한게 아니었어."
제롬은 자신의 단말기를 흘긋 보았다. 갱신된 연락은 없었다. 분명 병원에서 했던 연락을, 지금쯤 아스타로테가 확인했을텐데. 아니, 확인하지 못 한 걸까. 이미 늦은 걸까. 초조함에 입술을 씹고는 다시 로노브의 시선을 응시했다.
"만약 아스타로테가 내게 기회를 준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지."
그러니 아스타로테에게, 물을 수라도 있게 해주지 않겠어? 제롬의 중얼거림이 작게 로노브에게 향했을까.
페로사는 냅킨이 담긴 통을 쥐어서 아스타로테의 손이 닿는 데까지 드르륵 끌어다 주었다. 그리곤 샷 글라스를 꺼내서 아까 바 위에 올려두었던 위스키 병을 열어 한 잔을 따라 아스타로테의 앞에 놓아주었다. 마시건 말건 아스타로테의 자유다.
스트레이트 글라스를 쥐고 입안에 위스키를 탁 털어넣는다면, 네가 마시고 있는 게 위스키라고 혓바닥에 써주기라도 하듯 하는 묵직한 알코올향이 가장 먼저 입안에 스파이스하게 번진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희미한 피트향과 함께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나무 향기가 화끈한 열기를 뒷받침해주어, 마치 정말로 타오르는 모닥불을 잔에 담아 삼키기라도 한 듯한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몸에 번져나갈 것이다.
아스타로테가 마시면 마시는 대로, 그냥 두면 그냥 두는 대로 페로사는 아스타로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무겁고, 차갑다. 무너질 것 같아서, 페로사는 아스타로테가 무너지지 않도록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그녀의 어깨를 뚜덕여주었다. 다 괜찮다는 듯이. 그러다 아스타로테의 이야기가 더 이상 입에서 나오지 않고 눈물이 되어 후두둑 굴러떨어지자, 페로사는 황급히 아스타로테의 머리를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원피스 자락에 흘리지 말고 자기 셔츠 자락에 흘리라는 듯이.
"내가 그때 왜 너한테 그렇게 무모한 말을 대단한 확신이라도 있다는 듯 말해줬었는지 알아?" 그녀의 질문이었다. "걔도 앤빌에 자주 오는 건 알지? ─그래, 걔가 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
그 녀석 말이지. 네 이야길 하면서... 괴로워하더라고. 너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충만한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그래서 혼란스럽다고. 자신 같은 사람이 너와 가까이 지내는 게 분수에 맞는 일일까, 하고.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보통 자신이 원하는 사람 옆에 자신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기에 그런 것에 마음아파하고 신경을 쓰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녀석에게는 아스타로테가 원했던 것은 결국 제롬이니 이제 네 가치는 네 스스로 매기는 것뿐 아니라 아스타로테가 매긴 가치 또한 있다고 말해줬고, 네게는 다트를 던지지 않고 버려버리느니 맞건 말건 던져나 보라고 말해줬었지.
아스타로테, 그 녀석은 너한테 진심이었어." 인정하긴 싫지만. 하고 페로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 일주일간이나 연락이 두절된다는 것은 페로사에게는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당장 자신도 자신의 연인에게서 연락이 두절되자 바이크를 끌고 나가서 온 베르셰바를 휘젓고 다니며 찾아다녔고 마지막에는 분기탱천해서 부엉이 둥지에 쳐들어가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연인 역시도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연락을 끊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와 연락이 닿는 주변인이 고약한 변덕으로 페로사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해서 부추긴 점도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제롬의 마음을 지나치게 고평가한 게 아니라면) 제롬이 아스타로테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음에도 제롬이 일주일간이나 연락이 두절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게 페로사의 생각이었다. 페로사는 적어도 제롬을 믿고 있었다. 르메인 배틀리언과 관련되었다던가, 친밀해 보인다는 여자애의 이야기까지 나왔음에도, 그것이 결코 바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뉴 베르셰바의 폭풍에 휘말리다 보면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너도 그런 거 꽤 자주 하잖아. 상대의 걱정을 사기 싫어서 자신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대한테 감추는 거." 그래서 페로사는 제롬을 변호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너한테는 힘들고 잔인한 말이겠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러. 네가 한계인 것은 알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네가 좀더 기다릴 수 있도록 내가 같이 기다려줄게. 물론, 더 기다려보고, 만일 내 말이 틀렸다면... 내 말이 전부 다 헛소리가 되어버린다면 말야."
페로사의 눈에 다시 한 줌 불길이 왈칵 일었다. "내가 너한테 헛소리를 한 책임을 지고 그 놈 ─검열삭제─을 뽑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