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이가 현민이 놀래켜주려고 저번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있다가 깜빡 잠들어서 현민이 침대에서 이불 속에 폭 파묻혀있기 현민이는 랑이 어떻게 깨우려나 반대로 현민이가 자고 있으면 랑이는 옆에서 셀카 찍을 거 같다....ㅋㅋㅋㅋ 잘 자고 있는 현민이랑 브이하고 있는 랑이.. 사진찍고나서 볼꼬집고 손장난치면서 깨울듯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현민이랑 랑이 같이 있는 걸 봤다던가 시내에서 목격했다던가 목격담 많이 나오지 않을까 현민이 성적 올라간 것도 올라간 거고 현민이가 이전에 한번 우리가 가까이 지내는 거 남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그냥 랑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맞다고 대답할까? 하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래─ 자랑해야겠네. 누가 가방 멋지다고 하면 너한테서 선물받은 거라고 대답할 거니까."
현민은 여우 키링을 보더니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내놓고 다니면 때를 탈 것 같고, 집어넣어 두면 네 선물이라는 표시를 숨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여우인형은 '배하랑 꺼!' 라는 표시를 동화적으로 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러나 현민은 결국 그 키링을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기로 했다. 이미 알 녀석들은 다 알고 있을 테고, 무엇보다 너의 이 북극여우같은 모습은 자기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퍼에 달린 키링의 고리를 조심스레 풀러서, 더플백 가방을 조금 열고는 안쪽에 덧대어져 있는 메쉬 주머니 하나에 여우를 쏙 집어넣었다. 가방 안의 주머니에서 머리만 빠끔히 내밀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앗, 안에 넣어둔 편지를 들켜버린다─ 허나 다행히도 운동하는 애들 더플백이 다 그렇듯이 그것도 상당히 커다란 물건이었고, 현민은 지퍼를 전부 다 열어젖힌 게 아니라 한쪽 모서리만 빠끔 연 것이라 다행히도 편지를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편지는 네가 생각했던 데로 헌 가방의 내용물을 옮기려고 더플백을 열어보았을 때에야 발견될 것이다. 그는 다시 지퍼를 지익 잠그고, 부드럽게 웃고 있는 네 눈앞에서 가방끈에 팔을 꿰어 그걸 옆구리에 걸어보았다.
자랑하겠다는 너의 대답에 쿡쿡 장난스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그러다 네가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면, 그런 네 시선이 여우 키링에 닿고 있는 것을 알면 너를 바라보며 눈치를 조금 살피는 것이다. 키링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조그맣고 부드러워서 만지고 있으면 말랑말랑한데- 네가 닮았다고 말해준 북극여우인데- 하고서 고개를 갸웃인다. 결국 키링의 고리가 풀리면 인형 같은 걸 달고 다니진 않는걸까, 표정이 좀 시무룩해진다. 그도 찰나, 랑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키링이 안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범고래 안에 있는 북극여우. 랑에게는 하나의 생각만 든다.
"잡아먹혔어...?"
동글동글 놀란 눈을 깜빡거리다가, 네가 가방을 옆구리에 걸면 다시금 베시시 부드럽게 웃었다.
현민은 당황해서 너와 똑같이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홰홰 저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당히 빈약한 편인 동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바깔에 매달려서 흔들리면 때 타고 털 빠지고 그럴까 봐 품안에 꼭 끌어안은 거래."
인정해주자. 그는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하고, 그는 가방을 옆구리에 건 채로 어정쩡한 동작으로 네 어깨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가 놓았다. 으악, 낯간지러워...... 네게는 들리지 않을 절규를 흘리며, 그는 다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마룻바닥에 발을 내려놓고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옷장을 열어보았다. 옷장 안에는 잘 안 입는 외투들과 이너웨어, 언더웨어들이 정리된 서랍장이 들어 있었고, 문에 전신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방을 찬 모양새를 한 번 살펴본다. 그 말마따나 커다란 범고래와 아가 범고래다.
"정말 네 말대로네."
하고 부드럽게 웃고는, 현민은 가방을 벗어 책상 아래, 원래 쓰던 낡아빠진 더플백 옆에 놓아두고는 그제서야 그 투박한 가죽외투를 훌렁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자연스레, 그가 즐겨입는 폴라티 차림이 되었다. 그는 여름이 아니라면 폴라티를 상당히 즐겨입는 듯했다. 셔츠는 교복으로 충분하다는 걸까, 검은색, 회색, 차콜, 남색... 오늘은 검은색 바탕에 옆선에 하얀색 라인이 들어간 폴라티였다.
이렇게, 시범을 보이는 네 품 속에서 랑은 그 어정쩡한 동작에 어색함을 느끼고 말았다. 너를 안고 안겼던게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드문 일은 아닌데, 아니, 오히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서로의 품에 있었다. 랑은 최대한 동심을 이끌어낸 너의 대답과, 자신과 너를 각각 북극여우와 범고래로 역할잡아 대답을 그대로 몸소 행동으로 옮겨 설명해주는 이 짧은 시간에 동했다. 네 낯간지러움을 같이 느꼈다. 즐겁고 부끄러운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도 같이 기분 좋아질 맑은 소리였다.
"그치- 어, 나도."
범고래 이야기 비유를 잘 했음을 뿌듯해하다가, 네가 외투를 벗으면 랑도 그 빨간 리본 포장같은 외투를 벗었다. 안에 입고 있는 옷은 네가 입은 것과 같은 폴라티와 비슷하게 생겼다.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니트 원피스였는데, 어찌보면 체구에 맞지 않는 커다란 폴라 니트티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색깔은 흰색이었는데, 새하얗기보다는 따스한 느낌이 도는 아이보리-혹은 크림색이었다. 랑의 외투는 이전에 두고갔었던 외투가 걸린 적 있던 벽걸이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