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 Picrewの「랭구포」でつくったよ! https://picrew.me/share?cd=R2z8KXnFhF #Picrew #랭구포 꽤 가무잡잡해서 색에 무게감이 있는 아이- 그러나 정확히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채도가 높다기보다는 명도가 낮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새까만 머리카락, 까만 눈동자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색이지만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좀 심해서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는 부분. 가지런히 선이 곧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고, 속쌍꺼풀이 있는데 눈을 크게 치뜨거나 뭘 잘못 먹고 자서 얼굴이 부은 게 아니면 잘 안 보인다. 그 외에 얼굴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왼눈에 찍힌 눈물점과, 후술할 피어싱 자국. 몸은 운동부라는 이름값을 하는 건지 잘 관리되어 있고, 근육 비율이 높은 신체형상은 전체적으로 날렵하면서도 어깨도 충분히 넓어 옷발이 좋은 스타일. 키는 184센티미터. 한쪽 귀에는 아웃컨츠와 스너그를 따라, 반대쪽 귀에는 귓바퀴를 따라 피어싱 자국이 줄줄이 나 있다. 왼어깨에는 기계로 된 심장 문신이 새겨져 있다. 여러모로 '학생의 방정한 품행과 단정한 용모' 같은 것과는 담 쌓은 듯한 모습이지만, 그나마 평소에 교복은 그럭저럭 잘 차려입고 다니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피어싱도 끼지 않는다.
성격 / 해야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이외의 쓸데없는 일은 피한다는 본인의 주관적인 합리주의에 입각해 살아가는 말수 적고 무뚝뚝한 소년. 그러나 천성 자체는 상냥해서, 지금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같은 게 있다면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게 된다. 그 찢어진 눈과 짙은 눈썹, 딱벌어진 어깨에서는 쉽사리 연상할 수 없지만 쑥스러움을 매우 많이 타기에, 무뚝뚝한 얼굴 뒤에 쑥스러움을 숨겨놓고 인간관계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기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정말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꽤 경계가 풀어져 그 나잇대 소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해야 되는 일은 확실히 해야 한다는 주의이기에 다른 사람과 협동을 해야 하는 의무적 활동, 특히 축구부 활동 같은 것에서는 충분히 훌륭한 노력과 협동심을 보여준다. 또한 탐미적인 기질이 있어 본인이 한번 마음에 든 것은 손에 넣고야 마는 성격인데, 귀의 피어싱이라던가 문신 역시도 그런 기질의 일환인 모양이다. 교칙에 대해서는 본인 멋대로의 합리주의에 입각해, 범죄 안 저지르고 소동 안 일으키고 다른 사람 학교생활 방해만 안 하면 되지- 하는 입장이다.
기타 / * 기타? 상당히 잘 친다. 밴ㄷ 어쩌고 하다가 말 돌린 것을 기억하는가? * 정확히는 축구부라는 듯하다. 팀에서는 에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의 주축 중 하나라고 한다. * 발이 매우 빠르다. 교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 공부를 배우고 싶다고 한 이유는,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 유별난 이유는 아니다. * 위로 나이터울이 꽤 있는 친형이 하나 있다. * 종종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일 아르바이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정 선택이 자유로운데다, 일당으로 받기에 월급이 떼일 일이 없어서라고 한다. * 가족이 집에 모이는 게 드문 일이다. 아버지는 외지에서 근무하고, 형은 독립했으며, 어머니도 야근이 잦다. 그나마 형과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 어머니 명의로 된 혼다 줌머가 있는데, 현민 본인도 이륜원동기 면허가 있어서 종종 타고 다닌다. 아르바이트 갈 때 요긴하게 쓴다고 한다. 형이 두고 간 커다란 바이크가 있지만,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기에 내년에 취득할 예정... 이었으나 지금은 좀 고민중이다.
외모 / https://picrew.me/share?cd=ATuZWBp2Cz 유달리 색이 연했다. 흰 물감을 섞어 연해진 것이 아니라, 맑았다. 검은 머리칼도 새카맣지를 않았고, 하늘색의 눈동자는 저 멀리 푸른 것을 투명한 물방울로 비춰보는 듯했다. 노을지는 하늘 아래 서 있으면 주홍빛으로 물들고, 아이가 보는 풍경은 거울에 비춘듯 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크게 구불거리는 반곱슬은 가슴 아래까지 닿는다. 숱이 많아 복슬복슬해보인다. 꽤나 두꺼운 눈썹이 살짝 보일 정도로 단정히 내려온 앞머리 옆으로, 왼쪽 귓가의 옆머리는 굵게 땋아 귀를 드러냈다. 오른쪽 귀에는 뚫은지 얼마 안된 피어싱이 세개. 귓볼에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한다. 키는 아직 크고 있는 중으로 157cm. 몸무게는 평균.
성격 / 구름 같다. 머리 위 하늘에서 동실동실 떠 있는 구름처럼 그저 있을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지는 않았지만 혼자였다. 조용하고 묵묵히 자리에 머물고 있다가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짓는다. 다가갈 거리를 내어주지는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다가와 있고는 했다.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 볼 수 있는 구름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듯이. 쉽게 호의에 가득찬 말을 건넸고, 짓궂은 장난을 치고, 보드라운 미소가 상냥했다. 구김없고 밝은 아이라는 건 대화 몇 번으로 알아챌 수 있지만, 그뿐이었다.
기타 / · 쉽게 넘어진다. 무릎과 손바닥에 반창고가 없는 날이 드물 정도. · 걸음 속도가 느린 편. · 갑자기 나는 큰 소리에 약하다. 화들짝 놀란다. · 비 오는 날, 비 구경, 장마철을 좋아한다. 비 맞는 것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듯. · 눈물은 적은 편. · 학교랑 집은 매우 가깝다. 등교는 아침 일찍, 하교는 밤 늦게 한다. · 귀에 뚫은 피어싱 셋 중 하나만 범고래 모양 피어싱을 하고 다니며 남은 둘은 다 투명이다. 교칙이 신경쓰여서.
랑이(현민이 몸) : (볼 부풀림) 랑이(현민이 몸) : (입술 댓발 나옴) 랑이(현민이 몸) : 너도 그럼 진도 나가! 랑이(현민이 몸) : 어제 복습 하다 만 거 끝내고, 오답노트도 작성해야하고, 영어 두챕터 풀어야하고, 단어는 당연히 외워야 돼. 그리고 오늘 진도 나간 부분 노트정리 해야하고. 예습은 특별히 내일 할 과목만 하는 거로 봐줄게.
현민(랑이 몸)(이미 그동안 랑이와의 공부를 통해 공부에 상당히 익숙해짐): (대화하는 동안 얼굴을 대화상대에게 귀 들리는 쪽 방향으로 45도 각도로 돌리는 버릇이 생겼음) 현민(랑이 몸): 복습이랑 진도 노트정리는 끝냈고, 영어 두챕터랑 영단어 대 줄넘기 2천개 매점빵 콜? 현민(랑이 몸): 내 몸 유지하려면 그거 말고 해야 할 거 엄청 많은데 다 빼고 줄넘기만 시키는 거야.
랑은 자신에게서 떠날 줄 모르는 너를 보았다. 네가 보는 동안 랑도 너를 바라본다. 웃고 있는 표정, 이제는 네게서 웃는 표정이 더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직은 주홍빛 찌푸린 표정이 제일 자주본 것도 같다. 그래도 하나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있다.
"너 웃는 거 예뻐."
방금도, 그 전도. 네가 그리는 미소도 웃음도 하나같이 랑에게 지어주는 것만 같았고, 랑 때문에 짓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낄 뿐이라서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랑이 네 웃음을 좋아하는 건 달라지지 않을 듯 하다. 그리고, 그래서 랑은 몰랐지만- 네 웃음을 닮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뺨을 물들이기도 해보고, 따스함을 한가득 담은 고운 모양을 눈매와 입매에 그려보기도 한다. 네가 앞머리를 정리해주는 동안에도 그랬다.
"좋지만- 데려갈거면 너희 집으로 데려가자."
모든 이유를 제치고, 무엇보다도 랑은 너를 집에 들일 준비가 안 됐다. 나한테도 누구인지 모르겠는 그 사람을, 너에게 무어라고 소개해야할 지 모르겠어.
다행히도 너의 집에 대한 생각은 잠깐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네가 뜬금없이 던진 강속구가 현민의 가슴팍 어딘가에 있는 홍조주머니에 제대로 직격했기 때문이다. 너희 집을 언급할 때마다 네가 취하던 태도라던가 하는 생각 같은 건 머릿속에서 슥 자취를 감춰버리고, 발갛게 물큰물큰 뺨과 귀를 물들이고 있던 혈색이 온 얼굴로 번져간다. 아, 홍시 농사가 풍년이다. "긋, 그." 저도 모르게 얼굴에 함초롬히 얼굴에 머금고 있던 미소를 자각하자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몸둘 바 모르는 표정이 된다. 시선의 위치와 입모양을 잠깐 자각 못해 버버대다가, 결국 >:( 표정이 되어버린다.
"정말이지."
하고 툴툴거린 현민은, 그렇지만 꼭 맞잡은 네 손은 놓지 않았다. 나머지 한 손으로 앞머리를 정리해줄 뿐이다. 현민은 너한테 뭐라고 말을 하려 몇 번인가 입을 열려 했으나, 뭐라 할 만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결국 빨간 얼굴을 수족관 쪽으로 돌리고 만다.
"아, 그러고 보니 집에 아버지가 쓰던 어항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키우면 될지도."
그러면 들어가볼까, 하고 수족관의 문을 연다. 그렇게 큰 수족관도 아니었고 팔뚝만한 물고기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경할 것들은 많았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케이지며 수족관들. 엔젤피쉬나 테트라 같은 관상용 열대어에서부터 케이지 안에서 느긋하게 라이트를 쬐고 있는 땅거북이나 겍코도마뱀 등. 그리고 그런 반려동물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가구들. 나이 지긋한 가게 주인이 문 닫을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쏙 찾아든 두 나어린 손님을 반긴다. 현민이 진열장에 장식된 베타 어항을 가리키며 베타를 살까 해서 왔다고 하자, 한 눈에 알아본 건지 처음 키우는 거니? 하고 물어보더니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해준다. 베타는 생명력이 강하지만 수질이 지나치게 더러워지면 아름다운 지느러미가 다 녹아버리니 어항을 꾸준히 관리해주라거나, 베타는 커다란 지느러미 때문에 잘 때 수면의 부유물을 침대삼아서 자는 습성이 있으니 아몬드나무 이파리를 사가라거나 하는 조언과 함께 알맞은 크기의 수조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 온도계, 어항 밑에 깔 히터, 천일염, 물맞댐 키트, 스포이드, 에어호스, 해수염과 수질관리용 약품까지. 서비스로 가격을 어느 정도 깎아준다는 모양이다. 물맞댐은 절대로 까먹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4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 나왔다. 열대어 입문자를 감지한 고인물의 진심어린 가이드 겸 훈수가 이어지는 10여 분 동안, 너는 그것을 현민과 함께 주의깊게 듣고 있었을까, 아니면 숍을 이리저리 구경해보았을까.
어항에서 살랑살랑 웨딩드레스 같은 꼬리를 흔들던 물고기는, 커다란 물봉투에 담겨 다른 사욕용품들과 함께 스티로폼 박스에 담겼다. 봉지에 담으니 집까지는 가뿐히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베타 물고기가 깜깜한 스티로폼 박스 안에 갇히게 된 셈이지만,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라고 그렇게 했단다.
더 이상 수족관에 볼 일이나 할 이야기가 없다면, 이제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올라도 될 것 같다.
랑이네 새엄마는 화려한 미인 스타일 여러모로 랑이랑은 반대라고 생각해 외적으로 닮은 구석도 하나없고 외강내유 타입 그래서 랑이에게 엄청 조심스러워 새엄마가 마음을 열고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도 랑이가 엄마라고 생각해주질 않는이상 그건 오히려 랑이를 괴롭히는 것 밖에 안 되니까 랑이에 대한 배려가 매우 부족했음을 알고 있고 때문에 랑이네 아빠를 혼낸 적도 있는 사람 (랑이는 몰라)
엥 아냐! 저녁값만 결제된 30만원이 30만원어치가 다 저녁값이라는게 아니라 저녁값 빠져나가고 남은 30만원(이었던)의 잔액 이란 뜻이었어 ㅋㅋㅋㅋㅋㅋ
이혼귀책사유는 둘이 안 맞았던 거지만 제일 걸리는 부분은 랑이네 아버지의 과보호 특수학교에 보내려고 했을 정도니까 다만 이혼하고 재혼하고 이사해야하고 정신이 바빠 + 그리고 랑이는 특수학교 기준에 미달 이사를 가는 집에서 최대한 가깝고 시설이 좋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무마됐어
현밍이는 잘하고 있는데 랑이가 문제입니다 현민이 언제 봐줄거야 랑아 나의 언제나 큰 고민은 현민주가 재밌을까 랑이한테 매력이 있나 현민이 힘들어서 우짠대 등이 있어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
근데 현밍이... 현밍 오타인데 귀엽다 언젠가 애칭으로 삼아야지 현민이 귀여워 사랑해 애틋해 ~냐 라는 어미 사용할때마다 귀여워서 죽어 그나이 남자애 같은 부분 너무 귀엽고 랑이 배려해주는 묘사 볼때마다 콘크리트 벽에 머리박고 싶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현민주가 절대신 유일신이라 가능한게 아닌가
파란 그림자 아래서도 너는 주홍빛으로 물든다. 그러니까 랑은, 이렇게까지 큰 파도가 칠 줄 몰랐다. 이번에는 일부러 너를 놀려먹으려고 한 말도 아니었거니와, 늘 그렇듯 사근거리는 말도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느껴서, 네가 웃음짓는게 예쁘기 때문에 말해보았는데-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느냐고 물어볼 뻔 했던 랑은 네가 해주었던 답이 떠올랐다. 싫은거면 얼굴이 빨개지는게 아니라 정색을 할 거라고 했었으니까- 좋아서 빨갛게 된거야. 이번에도 그런 거라면-
"나 주황색 많이 좋아질 거 같아."
난 너의 그 색이 많이 좋아. 네가 앞머리를 정리해주는 동안 랑은 네가 걸고 있는 목걸이 끝, 곰돌이 팬던트를 톡 건들여 본다. 장난치는 듯 한번의 건들임은 하필 주황색으로 칠해지고 있는 곰돌이 팬던트에 닿았다. 말을 끝맺을 때는 곰돌이에게서 네게로 랑의 시선이 올라갔다. 주황색, 주홍색- 네가 날 좋아해주는 색.
"이름은?"
네 말을 들고 있던 랑은 하얀 베타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 현민이 동생이네- 라고 생각하며, 으레 애완동물이 생길 때의 절차 중 하나가 떠올라서 물어보았다. 이름 지어주기. 그리고, 랑은 그만 네 옆에서 조금 떨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런게 다니는 곳만 다녀버릇하던 랑에게 수족관은 구경하고 싶을만한 장소였고, 가게 안은 그런 랑의 기대에 부응하듯 가득 채워져있었다. 바다에 사는 동물들만 있는 건 분명 아니겠지만- 랑은 이 곳이 꼭 작은 바닷속 같다고 생각했다. 파랗게 빛나는 건 수조의 물빛인지 랑의 눈빛인지 헷갈린다. 네가 설명을 듣는 시간은 10여 분 정도였다지만, 랑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잠깐새였다. 물 속에서 저렇게 자유롭게 헤엄치는 지느러미에 홀리지 않을 새가 없다. 랑은 너도 같이 구경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너를 돌아다 보았고, 그 사이 너는 박스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구경했나, 아니면 실제로도 시간이 짧았던 걸까- 랑은 알 수 없으니 걸음만 도도도 네게로 옮겼다. 나름대로 발걸음을 재촉해보았다가 네 옆에 서자마자 코트 자락을 꼭 잡았다. 이제 가는 거냐고 물어보듯 너와 시선을 맞춘다.
답레를 쓰고 싶긴 한데 사실 에너지드링크 마셨다는 건 뻥이고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세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대로 누울 수밖에 없어 ( 8 8) (+ 물고기 이름 생각해야됨) 일단은, 오늘 하루도 같이 놀아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오늘 하루도 행복했어 시간이 늦었는데 랑주도 얼른 자러 가 새해날 좋은 꿈 꾸길 바래
네게 대답을 할 날이 조금씩 가까워오고는 있었지만, 아직 그 날이 되지는 않았는데. 네가 소년에게 들인 그 색깔이 숨길 수 없이 소년의 얼굴에 온통 핀다. 너에게도 없는 색이었건만 네 옅은 하늘색이 소년에게 닿았을 때 그것은 소년의 가무잡잡한 피부 위에 주홍색으로 남았다. 네가 갑자기 톡 내어놓은 진심에도 빠짐없이, 아니 오히려 그만큼 진하게 물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속일 수도 감출 재주도 없다. 그래서 현민은 시선을 더 맞추지 못하고, 비스듬히 피해버린다. 그러나 네가 목에 걸린 펜던트를 톡 만져보고 그의 얼굴로까지 시선을 끌어올렸을 때, 마침내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앞으로도 계속."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좋아한다고 말해줘."
그리곤 네 손을 맞잡은 손을 좀더 꾹 쥘 뿐이다.
언젠가 나중에 먼 미래가 된다 하더라도, 네가 계속 주홍색을 좋아한다면 나는 네 앞에서 이렇게 발개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미래를 속단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사실도 잠깐 잊을 정도였다.
"이름은─"
현민은 잠깐 생각했다. 음, 글러먹었다. 아직 2년쯤 전(중학교 2학년)의 감성의 잔재가 남아있는 현민의 머리에선 네게 꺼낼 만한 이름이 선뜻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 시절 감성의 잔재가 없는 다른 이름을 생각해봐도, 역시나 네게 꺼낼 만한 이름은 아니다. 하얀 물고기한테 주홍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나중에, 얘가 우리 집에 적응하거든. 같이 짓자."
해서, 현민은 손에 스티로폼 상자를 든 채로 네게 조그만 유예 하나를 청했다. "그래줄래?" 네가 또르륵 다가와서 코트 자락을 꼭 잡을 때, 네가 마음놓고 기댈 수 있도록 네 옆에 반 발짝 더 다가붙으면서. 맞춰오는 시선에 현민도 눈길을 맞췄다. 여기에서 더 보고 싶은 게 있냐는 듯. 네가 딱히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면, 현민은 남은 손으로 네 손을 꼭 맞잡고는 수족관을 나서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얇은 미소와 함께 답하는 목소리는, 누군가 보기에는 성급했을 지도 모른다. 좋아한다고 말해달라는 그 말의 목적어가 주황색인지 너인지는, 말해준 너만 알겠지만- 랑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널 좋아할거야, 랑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겠다고 마음을 정해둘 수 있었던 걸까. 랑은 이미 마음이 네게 향하고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는게 분명했다. 너에게서 조금씩 배우고, 조금씩 닮으면서, 친구라는 이름을 붙인 너에게 랑은 간지러운 싹을 하나 틔우고 있었다.
"그래. 채씨라서 벌써 반은 예쁘다~."
랑이 네 이름 세글자를 조목조목 뜯어서 예쁘다니 귀엽다니 했던 것을 기억할까. 그때 했던 말도 빈 말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랑은 비슷한 말을 했다. 채로 시작하면, 리라고 지으면 이름이 채리가 되고- 그러고보면 랑은 네게 온갖 붉은 과일을 붙여줬던게 생각났다. 분명 그중에 체리도 있었다. 그래서 랑은 혼자서 쿡쿡 소리죽여서 웃었다. 하얀 물고기라서 채리라고 지어버리면 안 어울릴 지도 모르지만- 네가 키우는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나중에 얘기해봐야지- 랑은 이름 후보에 채리를 올렸다.
마주친 눈길에서, 너는 꼭 더 보고 싶은 게 있냐는 듯 묻는 것 같았고 랑은 이미 혼자서 실컷 구경을 해버렸다. 네가 구경할 생각이 없다면 랑은 더 보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올 때처럼 똑같이- 네 손을 꼭 잡고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앉아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소모성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면서.
알고 빠지면 자신이 어디까지 빠지는지 아니까 늦기 전에 돌이킬 수라도 있지. 모르는 새에 빠지면 정신 차리고 보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빠져있지 않은가. 현민이 그랬다. 싹도 알고 키우면 주의하고 관리하면서 조심조심 키워나가다 관두던가 때 되면 수확이라도 할 것을,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싹이라 생각했던 것이 한가득 자라 네 정원을 다 뒤덮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드리 나무일까, 담쟁이 덩굴일까.
"채씨?"
하던 현민은, 곧 어- 하고 무언가 기시감을 느낀 사람의 표정이 되더니 또 >:( 표정이 된다. 그러나 뭐라 반론은 못하고(또 당할까 봐), 쿡쿡 웃는 너를 보고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너와 그는 수족관을 나섰다.
"이 시간이면 버스 타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니 앉아서 갈 수 있을 거야."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가벼운 이야기가 몇 마디 오갔다. 모평 시험범위라거나, 그러고 보니 시내에 아쿠아리움이 있었는데 다음에는 거길 가보자거나, 넌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없냐거나... 그리고 언젠가 여름방학이 되면 너와 같이 여행을 가보고 싶다거나.
그의 말마따나, 버스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되 서너 명 정도였다. 벤치 하나가 남아있기에 현민은 벤치까지 널 데려다 앉혔다. 손은 쥔 채로, 그리고 네 옆에 나란히 붙어앉는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버스 위치가 표시되는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몇 분 뒤면 버스가 오겠다. 현민은 문득 호오, 하고 입김을 불어보았다. 늦가을 밤하늘로 하얀 입김이 뭉게뭉게 솟아올라간다.
"공기가 차갑네."
하며 그는 조금 뒤척였다. 이미 네 옆에 딱 붙어있었기에 너와 그의 거리가 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네 >:(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방금은 진짜로 별 말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랑은 네 표정이 그렇게 된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웃는 걸 보고 고개까지 젓지 않나. 랑은 표정으로 물음표를 그리고 눈을 깜빡거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너에게 답을 보채지는 않았다.
"평일에도 그래?"
주말에야 도서관에서 집을 왔다갔다하니 버스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기다 랑이 버스를 타는 시간은 아침과 밤. 그럴 수 밖에 없는 노선과 시간대였다. 조곤조곤 대화가 이어진다. 시험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고, 동네에 아쿠아리움이 있었냐며 눈을 반짝이다가- 가보고 싶은 데라면 방금 말한 아쿠아리움이 가고 싶다고. 여행 이야기에는 두리뭉실한 답을 했다. 갈 수 있으면 가자고, 랑은 부모님에게 여행 허락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호자 없이 여행이라니 아무래도 불안해하시고 만다. 그 이전에, 말을 걸 용기도 없다.
"조금- 바람 불면 다리 시려."
버스 정류장 벤치에 나라히 앉아서, 랑은 다리를 쭉 뻗어 보았다. 안 넘어졌다. 휘청거리지도 않았다. 줄곧 너의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랑의 무릎에는 반창고 한두개가 붙어있으니까. 다리를 내리고서 랑은 네게 폭 기대었다. 랑의 머리가 네 어깨쯤에 닿을까,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잡고 있었던 네 손을 두손으로 꼭 쥐어본다. 이런다고 따뜻해질지야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분명 따뜻할테니까.
글쎄 1학년 때는 우연히 경기일정이 겹쳐서 불참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현민이는 그때 오히려 좋아했어 현민이가 중학교 때 감쌌던 아이가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시간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는 걸 본 이후로, 그 아이와 관계는 어찌됐건 수련회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말야 현민이에게 여행은 랑이랑 같이 가서 맘껏 꽁냥댈 수 있는 걸로 충분해
현민의 추론은 그냥 단순히 '이 시간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귀가했을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추론의 결과였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면 10시에 야근을 마친 지친 직장인들이 열너덧 명쯤 버스정거장으로 몰려올 거란 사실은, 조금 구슬픈데다 너와 이 소년의 이야기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니 제쳐두자.
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현민은 네 두리뭉실한 대답에 담겨 있는 우물쭈물하는 기색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예 숨길 수도 없고, 아예 눈치채지 못할 수도 없고, 아예 외면할 수도 없는 골치아픈 문제다. 그래서 언젠가는 대면해야 할 문제다. 그렇지만 그게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현민의 시선은 네 무릎으로 내려갔다. 네 무릎에 붙은 반창고가 많이 마음이 쓰이는지, 현민은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릎보호대를 하나 사줘야 되나. 네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받으면서, 팔과 몸통 사이의 틈새로 네 어깨를 안아주면서 현민은 네 손을 꼭 마주쥐어주었다. 너를 위해서 여전히 그 손은 따뜻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던 게, 너와 소년을 집으로 태워다 줄 버스가 얼마 안 가서 도착했기 때문이다. 현민은 "자..." 하고 너를 부르면서, 네 손을 꼭 잡고 네가 일어나도록 도와주었다. 네 손을 꼭 잡고 네가 버스에 다 오르기까지 도와주고 나서야, 현민은 교통비를 계산했다. 밤의 버스라, 승객이 많지 않고 한산하다.
뒤쪽을 보면 2인용 좌석이 많이 비어 있다. 다행히 조금 더 기대어있을 수 있겠다. 교통비를 계산한 현민은 네가 버스에 잘 올라왔는지 힐끗 돌아보더니, 네 손을 꼭 쥐고 버스 뒷칸의 2인용 좌석 쪽으로 네 손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네 손을 잡고 일어나서, 너를 따라서 버스에 올라탔다. 교통카드가 삐빅 소리를 내면서 태그되고, 랑은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 버스 좌석을 보고- 2인용 좌석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그곳에 앉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겠지, 하고 버스의 뒷쪽 2인용 좌석으로 향하려던 랑은 어딘가에 꽁 부딪혔다. 너였다. 아야, 조그만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감싸쥐던 랑은 너를 바라보았다. 넌 랑을 돌아다보고 있었고, 하필 그 타이밍에 랑은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무슨 일로 돌아보고 있던 건지, 랑은 왜에, 하고 물어보듯이 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 손에 이끌려서 다시 벤치에서처럼- 서로 나란히 앉고 나면, 랑은 벤치에서와 똑같이 네게 톡 기댔다. 그러면 방금 꽁 박아버린게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아프다고도 못 하겠는- 애매한 통증을 남기고 있었다. 랑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네 어깨에 기대고 있다가 얼굴을 부빗거렸다. 아프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아파- 말하고 싶은, 나름대로 랑의 앙탈이었다.
"아."
네 어깨에 얼굴을 부빗거리다가, 랑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시내로 오던 버스에서는 네가 랑의 머리에 뺨을 부빗거렸었는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랑이 네 어깨에 뺨을 부빗거렸다. 그러다 네가 아까 정리해주었던 앞머리도 흐트려먹고, 하지만 그것까지 알아챌 만큼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랑이 제일 좋아하는 스킨쉽이 이것이었고, 그걸 별 생각도 아무 생각도 없이 네게 해버린 걸 알게되고, 네가 했었던 것까지 오버랩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때도 랑은 얼굴을 붉혔었는데, 직접 해버린 지금이 당연히 더 붉게 물들었으면 물들었다. 랑은 얼굴에 열이 점점 오르는 걸 느꼈지만 네게서 떨어지면- 그럼 얼굴이 더 잘 보일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고 네 어깨에 기댄 채로 굳어버린 것이다.
할 때는 이미 네가 툭 하고 어깨에 얼굴을 박았다. 얼굴을 싸쥐면서도 왜 그래? 하는 듯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랑을 현민은 걱정스럽게 살펴보았다. 우선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생각에 현민은 널 자리로 이끌었다. 발걸음 속도가 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걷는 느낌이 조금 서두르는 것 같다. 아까 벤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널 창가에 앉히고 현민이 그 옆에 앉는다. 너한테 뭔가 물어보려고 그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이 딱 네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순간이었다. 문득 자신의 어깨에 머릴 기대고 있는 모습에, 현민은 언어영역 공부를 하다가 지문으로 나왔던 어떤 글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말문이 막혔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현민은, 네가 그의 어깨에 네 부드러운 향기를 한 겹 더 잔뜩 묻혀버리는 모습을 가만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너를 가만히 보다가, 네 정수리 위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그리고 네가 방금 자신의 어깨에 그러했듯 부드럽게 부볐다. 숨길 것도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애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잠깐 들고 너를 내려다보았다. 늦가을에 갑자기 머릿속에 찾아온 여름의 페이소스에 떠밀려나갔던 질문을, 조금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꺼낼 수 있었다.
"너... 코 괜찮아?"
그리고 그제서야 현민은 네 얼굴에 온통 낯선 색이 피어있는 것을 깨달아버린다. 너한테는 익숙한 색일 텐데, 현민에게는 아직 낯설다. 네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현민은 후다닥 다시 자기 머리를 네 정수리 위에 조심스레 기댔다. 아아, 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지만, 그걸 입에 올려버리면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그것이 물거품같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생각하는 것마저 조심스러워 현민은 눈을 꾹 감았다.
이건 그냥 아무 뜻 없이 이야기하는 잡지식이지만, 두피는 온도변화를 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다.
간질간질, 어디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분명 방금 전 벤치에서 바람이 불면 다리가 시려온다고 했는데, 겨울로 치닫고 있는데- 꽃가루를 품고 날라오는 바람이 따스하다. 간지러운 가루는 코가 아니라 마음에 내려앉아서 재채기를 하지도 못 하고 연신 의문만 품는다. 이 바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왜 불어오고 있는거야? 네가 기대오면서 부빗거리는게 간지러운 건지, 랑은 작은 움직임조차 허락할 수 없었다. 이 기분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인지 알아내야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느꼈다.
"응, 많이 아프진 않아."
어떻게 대답을 했었는지 순간 잊어먹었다. 어떤 목소리, 어떤 말투, 어떤 높낮이, 어떤 크기, 말하는 속도에 숨을 쉬는 포인트까지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랑은 순간 곤란했다. 다행히도 별 다를 구석없이 평소처럼 답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긴장한 탓인지 랑은 심장 소리를 들었다. 네게 아니라- 내거잖아. 간지러움이 느껴지는 곳에서 울리고 있는 소리.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크기에서 점점 집중해도 듣지 못할 소리로, 랑은 그 소리를 잠재웠다. 이상했기 때문이다. 랑은 몰랐지만, 그 이상함은 분홍빛을 띄고 있었다.
"넌 괜찮아?"
뜨거워. 네가 또 빨개졌나봐. 내가 어깨에 기대서? 아니면 내 얼굴색을 본걸까. 괜찮냐고 물어본 이유는 어깨에 부딪쳤을 때 넌 아프지 않았냐- 물어본 것이었지만, 어쩐지 네 얼굴에 오른 열에 대해 묻는 것만 같다. 랑의 얼굴에 오른 열기는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만큼은 아니었어서 조금씩 옅어져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도 저번보다는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확신해도 좋다.
현민은 무언가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집이나 가족 같은, 그의 삶에서 불가분의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는 몇몇 존재들을 제외한다면 그는 거의 대부분의 것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쉬이 받아보지 못했다. 학교도 낯설었고, 또래 아이들도 퍽 낯설어서 정을 붙이는 데에 오래 걸렸다. 현민과 척을 지는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현민과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아이도 적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더랬다. 그리고 늦게나마, 그는 네 옆에 도착했다.
"...다행이다."
많이 아프진 않아, 하는 대답에 확인이 돌아오는 데에는 2~3초간의 시간간격이 필요했다. 네 대답에 실린 떨림을 느낀 것인지, 현민도 똑같은 증상으로 대답에 잠깐 곤란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 현민이 예전부터 네게 그런 증상을 보여왔다는 것을 굳이 새삼스레 지금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너를 앓으면서 충분히 다양한 증상을 보여주었었으니까. 현민은 어느 쪽인지 별말 하지 않고, 계속 당신에게 어깨를 내주고 당신의 정수리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나?"
네 질문에 대답하다가, 현민은 열이 식어가는 게 조금 쓸쓸하다고 느꼈다.
"항상 그렇지."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래도 랑이 원래 의도했던 질문과는 다른 방향성을 띄고 있는 대답이었다. 네가 어깨에 부딪힌 곳보다는,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두고 하는 대답 같았다. 이래 보여도, 너는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냉소적이라는 말을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 앞에서 여느 소년처럼, 아니 여느 소년보다도 더 쉽게 얼굴에 열꽃을 피웠고, 네게 두는 시선에 분명한 빛무리를 담아놓고 있었다. 항상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오늘은 항상 그랬던 것만큼 얼굴이 홧홧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따뜻한 게 얼굴에 닿아있어서 그랬을 뿐이지만.
버스는 어느새 내려야 할 승강장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
"내릴 준비 하자."
네 정수리에서 뺨을 떼지 않고 그가 말했다. 네가 그래, 하고 대답하면 그제서야 떼어내겠지. 그리고 네 손을 꼭 잡고 널 일으켜세워 줄 것이다.
현민: (속삭)그래. 현민: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 왜. 현민: 야 잠깐 (신발털림)
>>잠결에 손길 붙잡고서 조금 부빗거릴 거 같고<< 이사람 또또 사람죽인다...... 랑이는 비몽사몽인데 현민이는 표정관리하려고 무진 애쓰겠네 그런데 자신은 잠깐 심부름하러 온 거라 곧 가봐야될 뿐이고 현민은 결국 랑의 귓가에 대고 금방 돌아올 테니 조금만 있으라고 속삭이게 되는데..
랑은 네가 돌려준 대답에 무어라 답하지 않았다. 모른체하기에는 네 대답이 물어본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이란게 느껴졌고, 무어라 답하기에는 랑은 아직 느렸다. 그저 랑은 네게 기대고 있었다. 기대고 있는 머리를 조금 꾹 디민듯도 하다. 랑이 몸에서 힘을 빼고 온전히 너에게 의지하며 기댔기 때문인지, 아니면 일부러 고갯짓에 힘을 실은건지 넌 알 수 없다. 랑만이 알테고, 랑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 응."
시내에 갈 때보다 돌아오는 버스에 타고 있던 시간이 조금 짧았던 것 같다고- 랑은 그렇게 느꼈다. 시내에 갈 때는 사람도 많은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 아니다. 즐거웠던 시간을 보내고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쉽고 짧게 느껴진다. 그런 이유에서 그렇게 느낀 것이지만, 랑은 짐작도 못하고서 네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난다. 교통카드가 다시 삐빅 태그되고, 그래도 따스했던 버스에서 내린 직후 닿은 서늘함이 집에 갈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기 달 떴다."
문득 하늘을 바라본 랑의 시선에 달이 들어왔다. 차가운 밤공기 못지않게, 집에 가야할 시간이라고 일러주며 하늘에 떠 있다.
대답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조금 더 꾹 하고 다가오는 네 머리를 현민은 말없이 자신의 품에 받아주었을 뿐이다. 지금은 이 정도로 족하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너와 보낼 수 있어서, 소년은 정말로 행복했다. 그저 여기서 다시 멀어지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까지 꿰매어진 나날들보다 앞으로 꿰메어져나갈 나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렇기에 현민은 품안에 좀더 깊이 실려오는 무게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차가운 밤공기에 현민은 문득 네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서야 네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돟아오는 길이 왜 이리 짧았는지. 서늘한 밤공기와 차가운 달이 두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반감이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변덕이었을까. 너와 함께 달을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너를 돌아다본다.
"달이 아름답네요."
하고 한 마디 톡 던지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네 손을 부드럽게 잡아끈다. 아까는 현민의 집 쪽에 가까운 다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내린 곳은-원래 너와 그가 버스를 잡아타려고 했던- 네 집에서 아주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다. 고개를 들면 바로 저만치에 너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정문이 보이는. 현민은 너와 함께 걸었다.
네가 만류하거나 저지하는 게 아니라면, 그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긴 거리를 따라들어왔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가 아니라, 당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동의 현관까지.
달이 아름답다는 말이 언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하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랑이 얼핏 들어 알기로는 «I love you» 라는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할 때 «달이 아름답다» 라고 비유한 것에서부터 퍼져 나갔다는 것 뿐이다. 랑은 네가 직접 골라준 머리끈으로 조심스럽게도 땋아준 머리카락이 목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랑의 머리에는 햇살 조각과 하늘을 걸어놓고, 캄캄한 밤의 달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랑은 어떻게 답할지 고민했다. 답하지 않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나랑 같이 봐서 아름다운 거에요- 라고 답하려니 짓궂었다. 오늘 하루종일 네게 못되게 군 것 같은데, 지금은 데이트의 끝을 짓는 중인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달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말은 아직, 아직 이른 것 같았다. 가까워지고 싶은 건 맞지만, 랑은 아직 너와 많은 발걸음이 차이난다고 생각했다. 나란히 섰을 때 하고 싶은 말이라서 두번째 말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달이 아름다워서 기쁘다고 말하면, 그게 제일 무난해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인데, 무언가 조금 아쉬웠다. 기쁘다고만 말하기에는 네가 랑에게 싹을 트고 말았다. 너에게 바라는 점 하나, 그걸 말하면 되겠다고 정해졌을 때는 아파트 단지 입구도 아니고, 아파트 동의 현관이었다. 언제 여기까지- 놀라기 전에 고심한 말을 건넸다.
"달이 계속 아름다우면 좋겠어요-"
네가 날 계속 그렇게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랑은 네게 생글생글 웃었다. 달빛 아래서 햇빛을 품고 피어난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것도 짓궂은 말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처음 떠올렸던 말보다는 나은 것 같다. 열심히 고민한 끝에 나온 문장이라 만족스러웠다. 답을 돌려줄 때까지 걸린 시간이 길어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을런지, 너도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집의 코 앞까지 와버린 이상 인삿말을 건네야한다.
"여기까지 바래다줘서 고마워."
자연스럽게 너의 코트 주머니 속에서 손을 뺀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바로 집에 가- 짐도 있으면서."
베타가 들어있을 박스를 향해 슬쩍 눈짓하고는 줄곧 너와 잡고 있었던 손을 들어보였다. "잘 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네가 건넨 말에 현민은 너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그 순간, 현민의 마음에 달 하나가 새로 더 떴다. 현민의 머릿속에서 달은 지구의 위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가슴속에서 현민의 달은 너와 함께한 시간과 네 함박웃음으로 대체되었다. 그러기로 했다. 그는 깔끔히 인정했다. 새삼스럽지만, 아무래도 나는 사랑에 빠져버린 게 맞는가 보다, 하고. 현민은 너를 바라보았다. 주머니 속에서 네 손이 빠져나갔지만 잡지 않았다. 현민도 알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제 헤어져야 할 때라고.
그렇지만 이대로 그냥 헤어질 수는 없어서, 현민은 나름의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현민은 나풀나풀 흔들리는 네 손을 살며시 잡았다.
"언제까지고 계속 함께 봐주세요."
그리고 네 손등 위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사실 그의 입술 표면이 썩 부드럽지는 못했고, 아마 네 손등보다도 거칠 것이지만, 그래서인가 그 온기는 네 손등에 분명히 남았다. 다음에도 같이 해달라는 약속에 도장이라도 찍은 것처럼.
"-이 정도는 괜찮아."
자신이 아파트 단지에까지 들어왔다가 나갈 발걸음은 현민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냥 조금이라도 네 얼굴이 더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헤어지고 싶었다- 그런 유치한 욕심을 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오늘 잠들어야 내일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니까.
"오늘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 행복했어." 그는 나름의 작별인사를 마무리했다. "너도, 잘 있어."
/ 행복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대답이 될까 싶어서 써온 찐막레입니다 / 랑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 그럼 이제 진짜 심부름갔다올게 ( + +)
현민이가 산타를 안 믿게 된 지는 꽤 오래됐어 크리스마스라는 개념을 증오하게 된 지도 오래됐지
형네 밴드를 따라서 아마 크리스마스 공연을 다니고 있거나 (그런데 이건 밴드 공연 하는 현민이를 마주치는 일상은 랑주가 나중에 돌리고 싶다고 했으니까 패스) 아니면 가족끼리의 저녁외식을 제외하면 평소의 휴일대로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현민이네 아버지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바빠서 불참
이야기하다보니까 랑이랑 친엄마랑 시간 보내다가 학교 이야기 -> 친구 이야기 -> 실수로 현민이 언급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생겼다 정도) 친엄마는 드디어 랑이가 이겨내는 거 같아서 "그 친구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가자"며 들뜨신거지 그래서 갑자기 예상외 일정으로 쇼핑에 시달린 랑이가 이제 친구 만날 시간 다됐다고 둘러대버리고 결국 선물이랑 같이 현민이네 앞에 덩그러니 있게된 랑이 같은 상황이 생각났어
>>245 현민: 나도 크리스마스에 괜히 돌아다니는 건 싫어. 현민: 시끄럽고, 사람 많고.. 현민: 무엇보다 다들 행복에 가득차있는 게 나만 따돌림당하는 기분이라 좀 샘났어. 현민: 그렇지만 이제 너랑 내가 여기 같이 있잖아. 현민: 그러니까 바깥 일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오늘 하루는 게으르게 보내자. 둘이서, 여기서. 같이.
그리고 아마 쿠키나 마들렌 마카롱같은 디저트도 한박스 손에 쥐고 있을거 같아 크리스마스에 빈 손으로 가긴 그렇고 케이크는 부담스러울 거 같고 ㅇ.ㅇ 대신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나는 아기자기한 거로 사와서 현민이네 어머님 드릴 거 같다 갑자기 와서 죄송하다고 현민이 선물만 주고 금방 가겠다고 도도도 묘하게 부끄럼타면서 말하기
현민이네 어머니: 어머- 이런 선물까지 다 주고. 굳이 이런 것까지 안 들고 와도 괜찮은데, 얘도 참. 현민이네 어머니: 부담갖지 말고 현민이네 방에서 쉬고 있으렴. 현민이 방에 보일러를 꺼놨지 싶은데, 지금 켜둘게. 너무 추우면 현민이 방에 탁자난로가 있으니까 그거 켜두고. 현민이네 어머니: 늦게까지 있어도 괜찮으니까, 어디 다른 곳에 가야 되는 게 아니면 금방 가겠다는 말 안 해도 돼.
선레는... 내일 가져오겠습니다 ( + +) 오늘은 11모 잡담이나 하다 랑주랑 같이 자러갈까
절망편: 현민이 성적 잘나온 걸 보고 갑자기 반의 공부포기조 아이들에게 '축구부인 현민이도 이만큼 성적을 내는데 너희들은 뭐냐'고 일갈을 날려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담임선생님 희망편: 아무 말 없이 반에 모두 나눠진 성적표, 점심시간에 "배하랑, 점심 나랑 같이 먹자." 하고 찾아와서 점심 같이 먹다가 "...고마워." 하고 톡 한마디 할 현민이
같이 자러갈까였어 자러갈게가 아니었어.......... 자러갈게인줄 알고 먼저 잔 난..... ㅠ.ㅠ.....
담임선생님 왜그래요...? 왜 현민이도 애들도 불편하게....? 절망편이 너무 절망적 희망편은 귀엽다 데이트 이후니까 성적내기에 뽀뽀 유효하겠네 하지만 이건 진짜 일상으로 굴리고 싶고 현민이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 어느정도인지 모르니까 11모 말고 기말고사 성적 말한건데~ 하고 꺄륵 거릴 랑이
>>담임선생님 왜그래요...?<< 담임선생님 딴에는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 선생님 겪어봤기에 나와버린 절망편이야 짜증이 학생을 위한 것인 줄 아는 그런 물론 랑주가 질색팔색을 하니 담임선생님은 온화하신 분인 걸로 하자 아마 인자하게 웃으면서 현민이가 웬일이니? 그렇지 체대입시 노리는거면 성적도 중요하지, 성적 이대로 유지해보자 올리면 더 좋고 같은 덕담정도 하신 걸로
진짜 일상을 굴리고 싶으면 나중에 그것도 굴려보자
현민: 그래, 내기 유무에 상관없이 모의고사도 중요하지. 현민: ......확실히 기말인 거다? 현민: 점수컷까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아니면 아예 고등학교 기말이 12월경이니까 12월경에 기말고사 치고 난 뒤에 지금 일상에서 만났다는 건 어때?
전교 3~4백 명의 학교에서 전교 10위권이면 내신은 확실히 1등급 아니려나 현민이와 랑이가 다니는 학교는 편차치 높은 명문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신등급이 모의고사 등급보다 올리기 더 어려울지도
현민이가 랑이가 공부 도와준다고 말하면 아마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선생님이랑 교무실에서 이야기 좀 할까? 아니었을까
선생님: 그... 랑이 말이야, 너 알고 있니? 랑이는 다른 애들이랑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거든. 네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현민: 네, 알아요. 랑이의 귀... 선생님: 랑이가... 너한테 말해줬어? 현민: ... (쓴웃음) 현민: 랑이랑 있으면서, 그 점에 깊이 유의하고 있어요...
랑이 상황도 상황이니 담임선생님도 확실히 인자하신 분인 것으로.. (끄덕)
기말고사 보고 만난 크리스마스 데이트(성적표 첨부) 그래서 랑이가 그어놓은 커트라인은 어디까지였나요
겨울방학 방학식이 찾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빨간 날인데, 너는 졸지에 뜬금없이 낯익은 주택가에 똑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네게는 이 동네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야트막한 이층집들이 저마다의 별난 모양으로 쪼그만한 마당 하나씩 거느리고 고만고만하게 붙어있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베드타운이 상당히 익숙할 것이다. 그 날, 11월 11일의 데이트 이후로 너는 꽤 많은 시간을 이 곳을 오가며 보냈으니까. 그렇지만 역시 이 집들 중 네가 그 안쪽까지 익숙한 집은 한 군데뿐이다. 며칠 전엔가, 아마 성적표 발급 전날에, 현민이 너더러 크리스마스는 같이 있어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너는 언제나처럼 살랑살랑거리며 현민을 떠보기만 하고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었던가.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국에는 또 그 새까맣고 눈치없는 운동부 녀석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모양이다. 깐쵸도 당신 발걸음소리를 기억하게 된 모양인지, 당신이 서성거리는 발걸음을 알아채고 다가와서 한번 발목에 고양이털을 한가득 묻히며 아는 체를 하고는 네가 어디 갈 것인지 안다는 듯이 현민의 집 담벼락을 타고 올라서 마당으로 쏙 들어간다.
딩동, 하고 집의 벨을 눌러보면, 나가요- 하는 목소리와 함께, 현민이 말했던 대로 집에 있던 현민의 어머니가 너를 마중나온다. 크리스마스에 웬일이야, 이렇게 만나서 반갑네, 자 어서 들어와요 하는 상냥한 환영과 함께 너는 다시 그 익숙한 거실이 보이는 현관으로 접어든다. 헤링본 패턴으로 깔린 바닥타일과, 로코코 양식의 양탄자, 마음이 편해지는 나무 가구들. 너는 이상하게 부끄럼을 타며 현민에게 선물만 주고 금방 가겠다고 도로록 말을 쏟아냈지만(>>266), 네 말을 들은 현민의 어머니는 금빛의 눈동자로 따뜻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을 해준다(>>269). 11월 이후로 너는 현민의 집에 꽤 자주 왔을 테고, 너의 방문은 이미 현민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에게도 꽤 익숙한 일이 되었을 터다.
크리스마스의 점심 약속은 어쩌다보니 쇼핑까지 이어졌다. 랑의 품과 손에는 선물이 바리바리 들려있었다. 리본으로 묶여있는 자기 몸집만한 커다란 상자 하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데코의 각종 디저트가 가득 담긴 케이크상자 하나, 코스메틱 브랜드 로고가 박힌 종이봉투, 고양이가 그려진 종이봉투까지도- 랑은 선물들을 한아름 안고 쥐고 있었고, 입고 있는 선물도 있었다. 크리스마스하면 빨강과 초록이 군데군데 장식으로 물들고- 오늘이 그 크리스마스라서 랑도 빨간 모직 코트를 선물받아 갈아입은지 한시간도 채 안 되었다. 넥 부분이 꼭 리본처럼 마무리되어 있었고, 얼핏 보면 미니원피스- 혹은 선물 포장처럼 보였다. 늘 땋아내리는 옆머리 매듭도 붉은 리본이어서 더욱이 그랬다.
얼굴에 남은 다홍빛 흔적들도 랑이 받은 선물이었는데, 코스메틱 브랜드 로고가 박힌 종이봉투 안에 있는 것들의 흔적이다. 랑은 워낙 색이 옅어 과한 화장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티가 났다. 특히 뺨이나 입술색이 도드라졌고, 이건 랑이 답지 않게 조금 부끄러워한 이유였다. 깐쵸가 다가왔을 때도 맘껏 귀여워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너의 집 앞에 서는게 최선이었다.
"아, 현민이 방에서 기다릴게요- 현민이가 방에 있으라고 했었어요."
그동안 자주 들락날라거리며 마주쳤다지만, 그래도 화장하고서는 처음이라 어쩐지 행동거지에서도 수줍은 티와 어색한 티가 난다. 랑은 꾸벅 공손히 인사를 하고서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간다. 무사히 네 방문을 열고서 들어가면 선물들부터 내려놓았다. 랑이 받은 것을 제하고 너를 위한 선물이 커다랗게 한 상자, 깐쵸와 하얀 베타를 위한 선물이 담긴 종이봉투. 네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눈에 보일 위치에 선물들을 놓고 앉아서 어떻게 놓으면 예쁨직할까, 외투를 벗어둘 생각도 않고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있다. 네 방에 선물들이 한가득이다.
랑주는 둘이 결혼하길 바라는 못난 참치라........ 하루 묵는건 밀어붙이고 싶을 정도 하지만 랑이가.... 랑이가 바라지 않는 이유는 불청객같다는 생각 때문이니까 ㅇ.ㅇ.... 어머니가 현민이가 상냥히 말해줘도 랑이는 배려해서 그렇게 말해주는 거라 생각해버려 예의상이라는 느낌
현민이가 기절하겠네, 하고 현민의 어머니는 너스레를 떨었다. 잠시 뒤에 들어올 현민이를 보고는 너 이눔 짜식 랑이는 크리스마스라고 곱게 차려입고 왔는데 넌 꼴이 그게 뭐냐고 뜬금없이 비난받을 현민의 가죽점퍼를 위해 미리 묵념. 네가 수줍어하는 것을 알아챈 건지, 현민의 어머니는 얼굴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쭈뼛거리거나 불편해하지 않아도 좋아. 어딜 가도 네가 주인공이니까- 거기다가, 너 오늘 얼마나 예쁜데." 그리곤 계단으로 향하는 너를 볼 때면 늘 하던 소리를 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좀 가파르니까, 옆에 난간 잡고 조심조심 오르내리렴."
그게 평소보다 좀더 걱정스러운 목소리인 건, 그의 방으로 향할 때면 두 번에 한 번은 네 옆에 있었던 현민이 오늘은 없어서였을까. 그래도 계단 모서리마다 회색으로 닳아빠져서 있으나 마나였던 미끄럼 방지패드를 새로 붙였는지, 까만 새 미끄럼 방지패드가 붙어있어서 적어도 계단을 올라가는 데 발이 미끌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의 방이 어디인지는 이제 굳이 기억을 되짚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른쪽 첫 번째 방. 열고 들어가보면 익숙한 풍경이다. 언제나처럼 어수선하게 정리정돈된 책상과, 두툼한 남색 솜이불이 깔린 침대와, 책장에 꽂혀있는 이런저런 책들과, 피어싱을 담아두는 케이스와, 벽에 걸려있는 시커먼 옷들.
그러나 이제 소년의 방을 구성하는 익숙한 풍경들에 조금씩 네가 묻어있다. 어수선하게 정리정돈된 책상 한켠에는 모니터만한 수조가 놓여있었고, 잘 관리되고 있는 듯한 맑은 물 속에서 새하얀 베타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틀 전에 도착했음직한 성적표 봉투가 놓여 있었고, 두툼한 남색 솜이불은 언젠가 네가 그것을 두르고 숨어있다가 왁, 하고 소년을 놀래키다 말고 그 바람에 그의 품 안에 굴러떨어진 적이 있었다. 아마 아직도 네 머리카락이 두어 가닥 묻어있을지도 모른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는 네가 만들어주거나 추천해준 문제집들이, 책장의 한켠을 보란 듯이 차지하고 순서대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피어싱 케이스를 열어보면 거기에 있는 빈자리로 현민이 오늘은 어떤 피어싱을 끼고 나갔나도 얼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벽에 걸려있는 옷들 중에는 완전 새카만 옷들뿐만 아니라 너와 함께 다닐 때 입는 무난한 브라운컬러의 코트나, 깔끔한 포인트가 들어간 야구점퍼 같은 옷들도 걸려 있었다. 곰돌이 인형은 너한테 안 보이도록 옷장 안에 집어넣어놓아 둔 모양이다.
그리고 일층에서,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랑이는 크리스마스라고 곱게 차려입고 왔는데 넌 꼴이 그게 뭐냐'고 힐난하는 소리도.
예쁘다거나, 현민이가 기절하겠다거나, 주인공이라거나-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뺨을 물들인 색이 더 짙어졌다. 랑이 뺨을 붉혔기 때문이다. 칭찬을 너무 많이 해주셨다거나, 비행기가 너무 높이 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공손하면서도 웃음지으며 답을 하기는 한 것 같은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이었다. 너와 너의 어머니는 그 따스한 마음이 꼭 닮아서 분명 너와는 아직 만나지 못 했는데 덩달아 네 생각이 났다. 계단 이야기를 똑같이 해주고, 어디 다른 곳 가야하는게 아니냐고 묻는 건 아예 같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 그렇게 많은 칭찬들을 늘어놓을까- 하고 떠올리는 순간, 이 생각이 미래가 되는 상상으로 남든 상관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랑은 얼굴을 붉힐 수 있었다. 어딘가에 얼굴을 묻고 싶었지만 낯선 화장이 묻을까봐-그렇게 진하지도 않아 묻는다면 틴트 정도였겠지만 랑은 몰랐다- 그러지도 못 했다.
어느 정도 선물상자가 제일 주인공처럼 보이게 놓았다 싶었다. 네가 해준 선물만큼 의미있을지는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귀에 달린 범고래를 만지작거렸다. 랑은 그 선물상자 옆에 앉아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랑의 계획은 정말로 선물만 주고 가겠다는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곰인형은 어디로 갔을까, 기타도 없고. 베타는 오늘도 예쁘다- 그러던 때 어렴풋하게 소리가 들린다. 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 도어락 소리. 네가 돌아온 걸까, 랑은 왜인지 긴장되고 말았다. 다시 선물상자에게로 관심이 돌아간다. 안에서 모양이 망가지진 않았겠지, 조마조마하다. 곁을 내주지 않고 곁으로 가지 않으려 하던 랑에게, 이런 선물을 주는 건 큰 고민이었다.
그 랑의 몸집만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더플백이었다. 네게 쓸모있으면서도, 랑이 너를 생각했다는 흔적이 느껴지는 선물- 랑은 유난히 흰색과 검은색의 배색 조합이 범고래 무늬같아 보이는 더플백에 눈이 꽂혔다. 그리고 새하얀 털뭉치같은 키링을 찾아다녔다. 털뭉치인가 싶어서 잘 보면, 귀도 꼬리도 제대로 있고 귀여운 발자국과 눈코입도 제대로 있는 북극여우같은 키링을. 다행히도 찾는데 성공해서, 랑은 직접 더플백에 키링을 채웠다. 그리고 지퍼를 지익 열어서 더플백의 안에 편지를 넣었다. 편지라기에는 카드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네가 곧 올라와서 읽을 거라 생각하면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얼마나 떨리면, 자주 와서 너와 공부를 하던 장소임에도 앉아있는 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차림새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면, 이제사 눈을 들어보면 소년이 항상 메고 다니던 회색 더플백이 방구석에 놓여있는 게 보인다. 꽤 낡은데다, 닳아해진 부분도 있었고, 옆구리가 터진 걸 꺼먼 고무테이프로 때워놓은 부분도 있었다. 현민의 아버지가 쓰던 걸 현민의 형이 옷장에서 찾아내서 썼었고, 그걸 다시 옷장에 박아놓은 걸 현민이 축구부에 입부하면서 좋은 가방 없나 하고 뒤적이다가 찾아서 쓰는 이대를 물려쓴 가방이니 그럴 만도 하다. 현민의 어머니가 '다 닳아해진 가방인데 좀 바꾸라'고 닦달하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네 뭐 인터넷에서 가방 좋은 거 파나 알아볼게요, 하고 코대답하고는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낡은 가방을 써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까. 끈 하나 끊어진 적 없고 지퍼가 부서지는 일도 없었으며 내용물이 흘러나갈 정도로 해진 일도 없었다. 기실 현민이 좀 그런 성격이기도 했다. 큰 지장이 없으면 으레 그냥 그렇게 계속 쭉 써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민에게는 네 손길이 닿은 것들로 채워넣어줄 곳이 참 많이 있었다.
랑이 위에 와있죠, 하는 소리와 함께 현민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하고, 방문 앞까지 다가와서. 무엇인가 내려놓는 듯 부스럭부스럭 하고 덜컥 소리가 난다. 그리고 똑똑.
"배하랑. 안에 있어? 나 들어가도 돼?"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도 된다고 하거나 문을 열어주면 그 자리에는 소년이 있다. 방으로 들어온 그에게서 싸한 겨울바람 냄새가 났다. 새까만 가죽자켓에, 짙푸른 데미지드 진 차림이다. 귀에는 네가 기억하는 깜찍한 팩맨 피어싱이 아니라, 까만색의 스파이크 피어싱들이 깔쭉깔쭉 박혀있다. 귓바퀴에는 귀 위쪽을 크게 가로지르는 화살 모양 피어싱도 꽂혀있었고, 귓바퀴를 따라 피어싱 홀을 낸 쪽 귀에는 링 피어싱들이 줄줄이 매달려있다. 이것이, 네가 있는 삶을 살기 이전의, 순전한 채현민다운 그의 겨울 차림새인 모양이다. 그러나 귓바퀴 끝의 딱 하나, 네가 한 달쯤 전에 사주었던 뛰노는 여우 모양의 피어싱은 그 귀 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의 머리카락 한켠에 웬 새하얗고 조그만 조각 같은 게 얹혀있었다. 손을 대보면 큼지막한 눈송이다.
# 기타 가방도 메고 오긴 했는데, 방에 들어오기 전에 방문 바로 옆에 벗어다 내려놨어 ( x x) 랑주가 원한다면 기타가방도 봐도 돼 # 뭔지 안알려줄거야
답은 태연하게도 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랑은 선물상자의 리본 모양을 꼭 잡았다. 때문에 문을 열어줄 수는 없었지만, 방으로 들어온 너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열심히 하며 선물들을 옆에 두고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안녕, 늘 하던 인사에 어린 작은 부끄러움이 네게 느껴질 것 같다. 랑은 오늘 여러모로 붉었다. 네 선물포장을 한 붉은 리본같은 옷을 입은 것도 그랬고, 얼굴에 올린 옅은 칠도 그랬고- 그래서 너와 인사를 하며 눈이 마주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짧았다. 랑의 시선은 너에게서 바로 선물에게로 흘러갔다.
"제일 커다란 건 네 선물이고, 저 종이봉투에는 깐쵸 간식이랑 어항에 넣을 장식 들어있어."
주홍빛의 산호 장식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베타에게 예쁜 장식을 선물하는 건지, 네가 생각나는 색이라서 홀린듯 사버린 건지- 랑이 너처럼 얼굴에 열이 오르거든 띄우는 연분홍빛의 산호 장식도 함께 있었다. 그 색이 자신이 물든 색이라고 생각해서 산 것은 아니었고, 산호는 보통 코랄빛이라고 하는 연분홍색이기 때문에 함께 산 장식이었다. 무튼 선물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끝낸 랑은 다시 너를 바라보았다. 이제 집에 가려는 속셈이었고, 헤어지려는 인사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잠깐만."
네 머리카락에 무언가 하얀게 보였다. 돌아가기 전에 그걸 떼어주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랑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에 닿은 하얀 것은 차가운 온도와 함께 녹아 사라졌다. 랑은 눈을 마냥 깜빡거렸다. 네 집 앞에 막 내렸을 때만 해도 눈은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버린게 폐끼치는 기분이라 @@ 괜찮다는 거짓말을 많이 하니까 다른 사람의 괜찮다는 말도 불신을 잘 해... ㅇ.ㅇ.... 그래도 안가 못가 어딜가 두달 가량 같이 지냈잖아 썸 아닌 썸 탔을 거잖아 (그래서 화장한거 부끄러워하는거기도 해 원래 랑이가 화장한 걸 부끄러워할 성격은 아니니까 ㅇ.ㅇ)
네가 그의 방 안에 새로이 놓아둔 것은 많았지만, 역시나 방문이 열렸을 때 그가 제일 먼저 눈길을 준 것은 너였다. 그래서 그는 잠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냥 하얄 줄만 알았던 구름에 분홍빛의 아침놀이 곱게 묻어있는 것이, 네 차림새가 새삼스레 예쁘고 고왔기 때문이다. 무언가 미사여구 같은 것으로 치장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았지만, 그는 감상이 너무도 단순한 편이었다. 한번 매료되면 무언가 단어를 떠올릴 틈도 없이 그 순간에 흠뻑 빠져들어버리고 마는 것이 현민이었으니까. 그의 입에서 예쁘다, 라는 말이 나온 것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한 것이었다. 그의 뺨이 발갰다. 바깥바람에 쓸려서 빨갛게 언 것인지, 아니면 그의 뺨을 빨갛게 만든 다른 것이 있는 것인지. 너는 현민에게서 시선을 피해 네가 사온 선물들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래도 현민은 넋을 잃고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민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의 머리에 네 손이 톡 닿을 때였다. 네가 조금 발돋움해서 가까이 다가와 손을 뻗을 때 소년은 움찔 놀라며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려봐도 앞에 있는 것은 고운 너였다. 이렇게 가까워지니, 그의 뺨이 왜 빨개졌는지 충분히 알겠다. 바깥바람에 빨갛게 언 자국이라기엔 그의 몸 주변에 감도는 공기가 너무 따뜻했던 것이다.
"눈이라니?"
그는 자기 머리 끄트머리에 눈송이가 내려앉은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가, 네가 건넨 질문에 그제서야 멍한 표정을 추스렸다. 그나마도 의아한 표정이다만.
너와 빼빼로데이에 데이트를 하고도 한달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랑의 시간은 대부분이 너였다. 단조로운 무채색의 재미없는 랑의 일상에, 재미없더라도 이 흐리멍텅한 나날을 고집하던 랑에게 색을 칠하고 색을 나누어주었다. 랑은 네 마음이 쉽게 꺼질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그때도 지금도 다를 것 없었고, 정말 오만하고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았다. 랑은 그 시간동안 싹을 잘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꾸민 모습을 보인다고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예쁘냐고 물어보며 살랑거리는게 익숙한데- 왜 부끄럽고 마는지. 예쁘다는 말에 그런 말은 많이 들어봤다거나, 알고 있다고 답할 수 없었다. 얼굴을 붉힐 뿐이다. 블러셔로 올린 것보다 더욱 고운 색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딴청을 하며 선물로 관심을 돌리려고 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응, 너 머리에 눈..."
너도 랑도 빨간 채로 눈이 마주치면, 랑은 알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뺨을 물들이는 이유가 되었다는 걸- 그래서 네게 붙어서 머리에 손을 뻗고 있던 랑은 거리를 떨어트렸다. 간지러운 기분을 견딜 수 없었다. 싹이 열심히 자라고 있었고, 깊고 얽혀가는 뿌리는 길게도 내리고 있었다. 랑에게는 창문 밖을 확인한다는 좋은 핑계가 있었다. 네 침대 위에 폴싹 올라앉았다.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조금 젖혀서 창문 밖을 내다본 랑이 본 것은 눈이었다. 방금부터 내리기 시작한건지, 랑은 올 첫 눈이 크리스마스에 내리는게 반가웠다. 비록 눈이 쌓이고나면 곤란한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너와 함께 있으니까- 랑은 커튼을 활짝 젖혔다. 너도 올해의 첫 눈을 시야에 담을 수 있도록, 그리고 랑은 몸의 방향을 틀었다. 너를 뒤돌아본 랑은 환하게 웃었다.
현민의 나날은 검은색에 가까운 음침한 회색이었다. 그는 청춘을 부정했고, 우정을 부정했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모든 긍정적 관계를 부정했다. 급기야는 삶의 특정 구간에 불과한 것을 뭔가 특별한 의미라도 있다는 듯 청춘이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치장하고, 어리고 어리석은 아이들을 그 안으로 몰아넣는 청춘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증오를 품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조그만 소년이 무언가 극적인 일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건 당연히 없었다.
한때는 기적이라는 것을 믿어 어리석은 시도도 해보았지만 그 시도마저 처참히 짓밟히기 일쑤였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인 도망을 택했다. 그는 일탈했다. 이미 청춘에서 멀찌감치 벗어나버린 형을 따라다니고, 거친 음악을 손끝으로 타면서 오토바이도 서슴없이 탔다. 귀에 피어싱도 뚫었고 타투도 했다. 담배는 맵고 술은 써서 이건 일탈이 아니라 셀프고문이라는 생각에 거기에 맛을 들이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황량한 불모지로 남을 것만 같았던 소년의 가슴속에 어느 날 네가 툭 떨어졌다. 누구에게도 향할 일 없이 고요히 썩어 양분 없는 먼지가 될 운명이었던 소년의 마음은 네가 씸어준 씨앗 하나를 품고 조그만 싹을 틔워냈다. 그 이후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지금 네 앞에 이렇게 서 있는 이 소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다.
현민은 네게서 받은 조그만 씨앗 하나를 곱게 피워내었고, 이제 그것을 네게 돌려주고 싶어하고 있었다.
"눈이 있었어?"
하고 말하며, 그는 네 뒤를 무심코 자박자박 따라왔다. 네가 침대 위에 폴싹 올라앉아서 무릎으로 기어 커튼을 젖힐 때는, 그도 청바지 바람의 무릎으로 침대 위에 올라와서 널 따라 창가로 다가왔다. 네 뒤에 바짝 다가붙어서는, 창틀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너와 함께 크리스마스에 펑펑 내리는 첫눈을, 한웅큼 탐스러운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하늘을 눈에 담았다. 도로에 희끗희끗하게 쌓이는 자국들이 생기는 것으로 봐서 아마 함박눈이 쌓이게 될 것 같았다. 소년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네─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리고 네가 이 소년을 뒤돌아봤을 때, 네가 함뿍 웃기에는 이 소년이 너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거의 네 등뒤에 달라붙기 직전까지 다가와 있었고, 양 팔로 창틀을 짚고 있었으며, 너는 그의 두 팔 사이에 갇히다시피, 아니 거의 안기다시피 하는 모습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뒤돌아보는 것도 방향을 완전히 틀지 못 했다. 랑의 등 뒤에 네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있어서, 어정쩡하게 멈춘 랑은 다시 방향을 돌리지도 못하는 불편한 자세로 굳었다. 앞은 창문, 양 옆은 창틀을 짚고 있는 너의 손, 뒤는 너의 품.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웃으면서 인사했는데 웃음이 뚝 굳어버렸다. 그리고 심장에서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랑은 얄궂게도 자신이 먼저 다가가고 멀어지는 건 잘도 했지만, 남이 다가올 거리는 안 주다못해 밀어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이렇게 다가오는 건 랑에게 낯선 일이고 어색한 일이다. 네가 마음을 주는 것조차 의심하고 불신하던 랑이, 과분할 만큼 넘치도록 준 네 마음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마음들은 랑에게 차곡차곡 쌓였다. 가만 쌓이기만 한게 아니라 너를 향한 랑의 마음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근데 주는 방법도 모르고, 무엇이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랑에게 너와 거리가 훅 가까워져 있다는 건 작은 스파크가 튄 것 같았다. 도화선에 불씨가 일어 불꽃놀이가 펑 터진다.
"혀, 현민아."
목소리가 조금 떨었다.
"채현미인-"
네 이름 세글자를 부르는데 끝이 늘어졌다. 랑은 눈을 꼭 감았다. 너무 가까워- 깜짝 놀랐어, 그래서 심장이 이렇게 뛰나 봐.
달칵 하고 무언가에 걸린 듯 굳어버린 네 모습을 잠깐 무심하리만치 단순하도록 의아하게만 생각하던 현민은, 곧 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덜컥 굳어버리게 됐는지 알아챘다. 뚝 멈춰버린 네 모습이 거의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다시피 했던 것이다. 고운 분칠을 하고 선물처럼 예쁜 옷을 차려입은 네 얼굴에, 분칠마저도 무색하게 만드는 아침놀이 불꽃놀이처럼 톡톡 피어오르는 모습이 현민의 눈에 선명하게 담겼다. 그와 동시에, 현민은 네 얼굴에서 피어난 색깔이 자기 얼굴로 옮겨오는 드문 경험을 했다- 보통은 그 반대였는데. 품안에서, 네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채현민, 하고 부르는 소리에 그는 입을 열어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왈칵 치솟아올라온 욕심이 부끄러움의 발목을 와락 붙들었다.
"왜 그래."
그의 입에서 나온 되묻는 말은, 평소의 응? 하는 조금 다정하고 조금 무심한 것보다 좀더 선명한 것이었다. 창틀을 짚고 있던 두 손 중 한 쪽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네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건 네 어깨 옆에서 비켜나 네가 몸을 빼낼 틈을 만들어주는 대신에, 반쯤 뒤로 돌다 만 네 뺨을 살며시 감싸쥐었기 때문이다. 미지근하게 따뜻했다. 현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부딪히는 건 싫어?"
그리고 현민이 네게 부딪혀왔다. 아니, 그 충돌은 물리적으로 따지자면 부딪힌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었다. 네 어깨 한켠에 그의 가슴팍이 천천히 살며시 닿아오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네게는 그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놔줄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같이 있어달라고 했는데- 넌 싫어? 이번에도 거절할 거야? 가입약관의 마지막 부분의 동의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과 비슷한 위치의 질문이, 전혀 다른 거리에서 네게 살며시 다가온다.
이것도 크리스마스 선물인셈 해버리면, 그러면 좀 나을 것 같았다. 랑은 창문과 네 품으로 가로막힌 공간에서 몸을 틀었다. 네가 뒤에 바짝 달라붙은거나, 지금 살며시 닿아오는 거나- 랑은 네가 안고 싶어서 그러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뺨에 올라온 네 손을 들어다 허리로 옮겼다. 너와 더 부딪히거나 랑의 어깨가 네게 꾹 닿았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서 아예 뒤돌아 앉았다. 눈 내리는 창문을 뒤로 하고 너를 앞에 두었다. 앞에 두었다고 해도 너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던 탓에 시야는 전부 네 품 속이었다. 이것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랑은 되뇌었다. 덜 부끄러운 것도 같았다. 네 품 속에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폭 떨어진다.
"안 싫어. 놓지마."
밖에 있다온 네 옷이 조금 차갑게 닿는다. 묻어도 모른다고 한 것은 화장이었지만, 얼굴을 꾹 디민 것은 아니라 묻는 일은 없었다. 묻었다고 한다면 다른게 묻을지도 모른다. 가령 아까부터 조그맣지만 확실하게 울리고 있는 랑의 심장 소리라거나. 랑은 본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고, 그게 방해되서 생각을 잇질 못했다. 너희 집에 민폐니까 돌아가야한다거나, 눈이 와서 지금은 못 돌아간다거나, 선물을 받은 네가 기뻐하는 모습은 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들이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훨씬 커다랗고 단단한 손인데, 현민의 손은 항상 네 손에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이끌려오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네 허리에 부드럽게 얹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듯 살며시 허리를 붙든다. 네가 부시럭거리며 돌아앉는 동안, 현민은 자켓의 단추를 떼고 지퍼를 지익 하고 내렸다. 자켓 아래 받쳐입고 있었던 스키니한 회색 목티가, 차가운 겨울 바깥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쌓여있었던 그의 체온을 머금은 가슴팍의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놓지마, 하는 네 말이 무슨 신호라도 된 것처럼 그는 너를 품에 꼭 안았다.
아직 차디찬 바깥바람이 묻어있는 외투 표면은 꽤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쪽의 안감과 그가 받쳐입고 있던 목티가 드러난 그의 품은 네가 기대기에 딱 안락한 온도가 되어 있었다. 네 생각을 하면서, 너를 그리면서,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서 뛰고 있던 심장이 만들어놓은 온도일 것이다. 마치 애초에 그 지퍼 너머에 있던 모든 것이, 지퍼 너머에 잠겨있던 소년이라는 존재까지도 모두 다 네가 찾아오는 이 순간을 위해서 널 맞이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만 같았다. 네가 오늘의 이 순간을 그를 위한 선물로 마련했듯이. 품 안에 안긴 너를, 현민은 새치름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툭 떨어뜨렸다.
조그맣게 떠는 소리다. 추워서 떠는 소리일 리가 없다. 너는 랑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었고, 랑도 그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랑 또한 조금씩 부끄러워 하느라 추울리가 없었다. 새치름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널 올려다보면서, 랑도 눈을 가늘게 뜨고서 대꾸하다- 네가 입맞춰서 작게 놀란 소리다. 묻혀달라는 말과 네 입맞춤이 연결되면서 랑은 하나가 떠올랐다. 네 기말고사 성적을 두고서 했던 말.
"그러고보니까 너, 성적표는?"
네가 이번 기말고사에서 평균 5점이 올랐다면, 그래서 지금 네게 입맞추게 되면 분명 묻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에 대뜸 물어보았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더할 나위 없이 빨갛게 익어버리고 말았다. 괜히 물어보았단 생각이 들었는데, 후회해보아도 이미 돌이킬 수 없고- 랑은 그래서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아마 랑이 물어보지 않았어도 네가 얘기해서 결국은 해야할 일이 됐을 거라고. 랑이 기댈 수 있는 가능성은 네가 5점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 뿐인데, 네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고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5점이 오르지 말았어라고 바라지도 못하게 됐다. 랑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 품에 파고들었다. 네 가슴팍에 머리를 톡 기대고서 얼굴을 감싸쥐었다가-
"6.2점." 현민은 자신의 방의 책상 위로 턱짓을 해보였다. 아까 현민의 방을 돌아보면서 너도 보았겠지만, 현민의 책상 위에는 기말고사 성적표가 담긴 열려있는 봉투가 11월 모의고사 성적표와 함께 놓여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성적표를 확인한 모양이다. 물론 성적표를 확인할 것도 없이 시험을 친 직후에 반마다 등수와 점수가 기재된 순위표가 나붙었을 것이다만, 네가 딱히 그것을 확인하지는 않았을 테고. 명확하게 두 개의 숫자만을 대조해서 확인하려면 역시 두 가지 성적표를 대조해보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리고 굳이 그럴 것도 없이, 현민은 자신의 점수가 몇 점이나 올랐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오른 점수만을 말했다. 그 뒤의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너 나와 약속한 거 있지 않아? 라던가, 책상 위에 있으니 확인해 봐, 라던가, 시험 끝나고 나서 반마다 점수표 싹 붙었는데, 그거 보면 알잖아, 라던가. 그러나 네 바람을 꺾어버리는 데에는 소숫점 1자리가 포함된 숫자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현민은 거기에 뭔가 말을 더 덧붙이지 않았다. 너를 품 안으로 꼭 끌어들이고 있을 뿐이다.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나직이 말했다. 그리곤 너를 안은 채로 모로 고꾸라져서 침대 위에 풀썩 드러누웠다. 그의 품이 따뜻한 것인지, 네 얼굴이 따뜻한 것인지 분간하긴 힘들다.
"앞으로도 말야, 앞으로도."
그렇지만 품에 안겨들어오는 네 온기라거나, 조그만 맥박, 네가 살아서 내 옆에 실재하고 있다는 그 모든 흔적들과 자취들이 가져다주는 간지러움이며 행복한 마음이 너무 달갑고 좋아서, 겨우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를 괜시리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현민은 누운 채로 너를 꼭 안았다.
진짜냐고 물어보거나, 직접 확인하겠다고 들쑤실 의사는 없다. 랑은 귀에 들린 점수가 5.0보다 크다는 것을 알자마자 한 가지 고민만 할 뿐이다. 언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미 모의고사 때 기말고사를 말한 거였다며 꼬리를 내빼고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말한 거였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도 없다. 그래도, 랑은 네가 성적이 오른게 기뻐서 꾹 끌어안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입 맞추는 건 입 맞추는 거고, 축하는 별개다. 고생 많았다, 정말 축하한다, 가족들한테 자랑해라, 그런 말들이 나오고나면 더 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그, 언제 해 줘?"
랑은 괜히 몇 마디 더 얹으며 툴툴댔다. 오늘 안에 안 하면 없던 일이라고, 끝나는 거라고- 그러다가 몸이 기울었다. 랑은 기우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침대에 풀썩 몸이 닿는 느낌에 너와 같이 누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침대 위로 흐트러졌고, 너의 향기가 짙게 나는 공간에 랑의 향을 주장하고 있다.
"2학년 반배정 붙길 빌어야지- 떨어져도 보러 갈거지만."
몸을 조금 움직이면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랑은 배시시 웃으면서 네 움직임에 저항하지 않았다.
"나 이제 곰돌이 대신이야?"
까르륵 웃음소리와 함께 짓궂은 소리를 한 랑은, 간식 이야기에 고갯짓으로 너를 바라본다.
"케이크 말고도 간식 엄청 많아- 나 엄청 다양하게 골라와서! 근데 먹어도 돼?"
랑이 먹어도 되느냐와 네가 먹어도 되느냐 둘 다를 묻는 질문이었다. 랑은 갑작스러운 손님이고, 너는 운동을 하느라 간식을 제하는 거 같았으니까.
차라리 현민이 더 모진 일을 당하고 더 고달픈 환경에서 더 메말라버린 상태로 너와 이렇게 되었더라면, 그는 아마 내일 따윈 생각지도 않고 거침없이 네게서 상품을 징수해갔을 것이다. 노골적이고 탐욕스럽게.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민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의 욕심은 조금 다른 형태였다. 맛있는 것부터 가장 먼저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최대한 나중까지 남겨두는 그런. 그래서, 현민은 입으로 6.2점이라는 숫자까지 올렸고, 네가 도망도 가지 못하도록 널 끌어안은 채로 모로 드러누워버리기까지 했으나, 그러나 언제 해 줘? 하는 네 질문에는 눈을 깜빡이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대답이 아니라 반문을 해 왔다.
"이번이 지나면, 다음은 언제야?"
다음은 3월 모평? 중간고사? 이제 12월인데. 이번에 하고 나면, 나 또 오래 참아야 하잖아. 너한테는 아직, 해줘야 하는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현민은 부루퉁하게 토라진 듯한 시선으로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론 토라진다고 해서 갑자기 너를 품에서 내치거나 밀치거나 하진 않는다. 여전히 널 품에 꼭 안은 채로 그러고 있는 거다. 심통이 난 모양이다.
"좀더 생각해 보고."
그러니까 기왕 오래 기다리기 전에 마지막 입맞춤이라면, 좀더 예쁜 순간에 하고 싶어서, 현민은 대답을 보류했다. 얼마 전에 네가 현민의 이불 아래에 파고들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때보다, 은은한 숲향기가 더 선명하게 나는 것 같다. 데오드란트 냄새는 오늘은 별로 안 난다. 오늘은 어딘가 차려입고 나갔다 올 일이 있어서 땀 흘리는 일을 자제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현민이 가장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냄새는 숲 냄새니 스킨 냄새니 데오드란트 냄새 같은 것이 아니라, 네가 지금 잠자리 위에 퐁퐁 묻혀놓고 있는 비누 향기였다. 그는 무심결에 눈을 감은 채로 소리없이 길게 호흡했다. 그러느라 완전히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린 현민에게 네 말이 툭 떨어진다.
"곰돌이? 어-"
부끄러움보다 너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뻔뻔하게 널 꼭 끌어안고 있던 현민의 얼굴에, 네가 툭 떨어뜨린 말이 갑작스런 홍조로 피어난다. 아, 오늘도 홍시 색깔이 참 곱다.
"-싫냐고 물으면 싫다고 한 적 없다고 할 거잖아, 너." 하다가, 발갛게 된 얼굴로 현민은 눈을 가늘게 뜬다. "이러고 있으면 되게 푹 잠들 것 같아..."
그대로 잠에 빠지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꿈뻑하다가, 네 말에 현민은 게슴츠레 감았던 눈을 뜨며 투덜댔다.
"먹으면 먹은 만큼 운동 더 하면 돼.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날 정도는 군것질 좀 해도 되잖아."
랑은 너의 반문을 듣고서 눈을 깜빡거렸다. 다음 시험에서도 네게 목표치를 달성하면 뽀뽀해주겠다- 말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야 랑이 무심코 뱉어버린 말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리고 대게 이런 류의 보상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보상도 점점 더 양이 늘어나든 좀 더 원할만한 무언가로 바뀌고는 했다. 너와 고등학교 졸업까지 있는 모든 시험마다 이런 내기 아닌 내기를 한다는 가정을 해본 적조차도 없었다. 다음 시험은 3월, 중간고사는 4월 즈음이겠다. 랑은 다음이 있을지 없을지부터 정해야겠는지라 반문에 반문으로 답을 하였다.
"그게... 도움은 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무슨 부끄러운 문답 시간인지, 밖에 내리는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는데 랑은 꽃이 피고 있다. 그 꽃잎 색이 갈수록 짙어지는 것만 같은데, 분명 착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랑은 세상 누군들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뽀뽀해준다고 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냐는 물음, 답이 무엇이든 상관없을만큼 부끄러운 것이다.
"왜에- 오늘 지나면 끝이라고 해서 그래?"
토라진 시선을 보았다. 랑은 아이를 어르듯, 너를 달래듯이 말하며 시선을 꼭 맞추었다. 살랑이는 건 잘 했지만, 깊게 달래는 것은 해버릇라지도 않았다. 그런 랑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곰돌이 인형을 언급한 탓에 네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응, 들켰네~. 하지만 싫다고 한 적 없는 거 맞잖아."
랑은 보송보송 햇볕에 깨끗하게 세탁하여 말린 이불향이 난다. 포근하고 따스하되, 상쾌하고 달콤한 향. 푹 잠들 것 같다며 눈을 꿈뻑거리는 널 보고 랑은 네가 조금 졸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너보다 조금 윗쪽으로 올라가 다시 너를 보고서 누웠다. 이러면 아까와는 반대로 네가 랑을 올려다보고, 랑이 너를 내려다본다.
"졸리면 자도 돼- 안아줄게."
아까 토라진 듯한게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랑은 네 품안에 폭 파묻혀본적이 많았으나- 너는 랑의 품에 들어와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랑은 일부러 누워있을 때, 조금 위에 눕는 것으로 네가 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바꾼 것이었다.
랑이 : 진짜 졸린가보네! (까르륵) 랑이 : 나 진짜 뭐어- 랑이 : 어떻게 재워주지~. 랑이 : 자장자장해줄까? (토닥토닥)
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는 걸 생각하지 않았어 익숙해지는건 이미 그렇고 그래서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싫어서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하고 있는 상태고.... 내가 성장이라고 생각한 건 상처를 돌볼 수 있게된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거
울면... 선물 못받는다....! 뚝해 뚝 ㅠ.ㅠ
들켰다 엄청 맛있게 먹었어....ㅋㅋㅋㅋㅋ 지금 친밀도 기준이라면 현민이가 눈 꼭 감았을 때 냅킨으로 장미꽃 만들거 같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눈 뜬 현민이 시야에는 냅킨 장미꽃 보여주면서 장난꾸러기 웃음 짓는 랑이 그리고나서 새 냅킨으로 꾹꾹 닦아줄거야
우와 반대 추위 잘타! 일상에서 그렇게 떠는 묘사 해놓고 사실 겨울바람에도 치마 입고 다니니 어쩔수 없다 싶지만 독백에서도 나왔지만 그냥 바지를 죄다 무릎 찢은 바지로 만들어버려서.... 슬랙스도 넘어지면 무릎 찢어지고 이미 찢어진 찢청은 바지가 걸레짝이 되더라고.......
아냐 고치지 않아도 돼 현민이가 잘 짚어줬다고 생각해 말 안하면 랑이는 뭐가 잘못된지도 몰랐을거고 나도 신경쓰이는 부분이기도 했거든..... 랑이는 더 긴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단거 (현민이와의 시간이라는 미래 뿐만 아니라 모든 미래를 안 생각하고 있는거긴하지만) 더이상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지
목적과 수단이 역전됐다. 현민이 공부를 잘하게 할 목적으로 키스를 상품으로 내거는 수단을 사용했는데, 현민에게는 그만 너와 함께 있는 나날들이 수단이 되어버렸고 공부는 목적으로 전락해버린 모양이다. 큰일났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꽤 많은 시험을 거쳐야 할 텐데. 대학교까지 같은 데로 가버리면? 현민은 책상을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너를 돌아보며 약간 침울하게 말했다.
"그런데 날씨가 풀려서 시합이 많아지면, 공부에 쓸 시간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야."
하고 현민은 귀를 긁적였다. 공부에 쓸 시간이 어째 네 귀에는 너와 함께할 시간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리곤 누운 자리를 좀더 위로 바꾼 너를 보고는, 네 어깨에 손을 올리는 대신 네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그런데 그 순간, 현민의 표정이 변했다. 웃음기라거나 편안한 기색이라거나 하는 것이 싹 사라지고, 무언가를 추궁할 때 지을 법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되어있다.
"그보다 너 말야."
문득 생각이 그리로 닿아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이 말을 할 순간을 벼르고 있었던 걸까. 표정과는 달리 현민은 네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다. 놔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지금은 도망칠 곳이 없다. 현민은 네 품에서 너를 째릿 올려다보았다. 미간에 주름이 새겨진다. 너에게는 어쩌면 현민과 같은 대학교로 가게 될 것이 걱정일지 모르는데, 현민은 너와 같은 대학교로 가지 못하게 될 것이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그렇게 시험에 보상 같은 걸로 내걸고..."
평균점수 5점 이상을 올리면 주어지는 한 번의 입맞춤. 현민의 머리는 단순했다. 성적은 올리는 데에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계속 평균 5점씩을 올려가다가 어느 날 전과목 100점을 맞아버리면 다음 시험에서 평균 105점을 맞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현민은 자신의 머리가 그렇게 똑똑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축구부를 그만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축구부를 그만둬서 그 정도로 공부를 잘하게 되더라도, 그런 것들을 내걸 수 있는 시험에는 횟수 제한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더 이상 시험 같은 걸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라면..."
네가 걸어둔 그 제한이 현민에게는 정말로 야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라던가, 나와 가까워진다던가 하는 게 싫어서 그렇게 분명한 제한이 있는 제약을 자꾸 나한테 거는 거야? 아니면 그게 네 방식인 거야?
"그러면 나 떠날 거야?"
간식이니 잠이니 다 제쳐놓고 일단 이것부터 들어야겠어. 하고, 네 품에서 너를 올려다보는 현민의 눈빛이 말하는 듯했다.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랑은 다음에도 입맞춤을 내걸 생각이 있었다. 네가 공부하는 목적은 수능에서 평균 4등급이랑, 네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대학교의 등급컷이겠지- 정말 하고싶은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지만, 우선은. 랑은 가르쳐주는 것도 앞으로 열심히 할 생각이지만, 작은 보상 정도는. 그랬다. 작은 보상이었다. 랑은 자신의 목소리, 생각, 움직임, 모든게 의미없다고 생각했고 아직도 그랬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그랬던 것이다. 랑은 뒤돌아보지 않았고, 앞을 내다보지도 않았고, 지금 서있는 이곳을 보고서 단 한 발자국 앞이 낭떠러지가 아닌지만 보고서 발을 옮긴다. 너에게는 좋아하는 아이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같이 있어달라고 말한 아이가 해주는 입맞춤이란 걸 네가 그렇게 바라보았을 때서야 떠올렸다. 그리고 네가 공부하려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나서, 랑이 했던 말도. 너 행복해보이면 알려줄게.
네게서 조금씩 물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랑은 행복했었던 기억이 산산조각난 조각들로 흩어져서 배운 것은 큰 행복은 크게 아프고, 큰 사랑도 크게 아프다- 였다. 그래서 랑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그게 끝이었다. 네가 날 좋아해주고, 곧잘 주홍색으로 칠해지고, 가끔은 랑도 네 색을 따온 꽃을 피워보고. 나중에도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도 지금만 같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거나 지금보다 더 기쁜 나날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물음은 없다. 그러고 있었는데, 랑은 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는데 정작 지금 랑을 바라보는 네 표정은 행복해보이질 않았다. 행복해보이면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안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찾아버렸다.
"현민아."
찌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 웃은 거 엄청 예쁘잖아. 다시 웃어주라.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랑은 조금 전 네가 해줬던 게 생각났다. 네가 꼭 끌어안고 있지 않더라도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랑은 너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눈이 감기며 시야가 흑으로 덮힐 때 입술에는 무언가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네 미간에 깃털 하나가 사뿐히 내려앉은 듯 소리도 없이 입 맞추고서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깃털인들 수면에는 파동이 번지니까, 랑은 너에게도 그렇길 바라보았다.
"나는 한번도 떠난 적 없어."
다들 날 떠났어.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는 누굴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어.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네가 안 떠나면 안 떠나."
랑은 너처럼 웃음기가 지워지거나 편하게 느끼고 있는 기색이 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랑은 웃기 힘들수록 밝게 웃는게 낫다는 걸 느꼈었다.
"놓지 말라고 했잖아. 나도 너 안 놓을거야."
으레 네가 했던 것처럼 랑은 네 머리 위에 턱을 괴고, 네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너처럼 너른 품이 아니라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랑은 지금 너에게 널 놓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영원은 믿지 않았지만, 넌 영원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욕심부렸다.
현민이네 아버님 만나보고 싶어 나쁘신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수능 평균 4등급이.... 만약 4등급 미달이면 어떻게 되는걸까 싶고 현민이가 밴드 공연하는 거랑 축구 경기 뛰는거 둘 다 봐보고 싶다 랑이 운동에 별로 관심없지만 월드컵이나 tv에서 축구 나오면 보고 있을 거 같지 나중에 현민이 경기할 때 잘 이해하려고... 경기장은 보통 시끄러우니까 해설소리 제대로 못 들을 거 같으니까
4등급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기준이고 수능 점수가 좋지 않고 대입 성과도 신통찮으면 일단 추후 진로 어떻게 잡을 것인가 물어볼 거야 (대입 성과 이야기한 것은, 수능 이외에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거기서도 대답이 명확하지 않다 싶으면 잡아다가 기숙학원에 집어넣습니다 수능 다시 보게 한 다음 무역통상학과로 보내서 자기 뒤를 잇도록 키우려고 하지 않을까 현민이네 아버지는 호탕하고 쾌활하신 분이지만 자식을 사람으로 키우겠다 생각하시는 분이고, 훈육방식과 '사람'의 기준이 꽤 옛날 스타일이신 그런 분이야
배하랑, 하랑이라고 불리는 건 그것만으로 가라앉게 돼 영영 가라앉아서 못 헤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어릴때는 아빠랑 엄마가 하나씩 있고 나까지 다같이 있는 이름이라고 좋아했었는데 이혼을 하고 새엄마가 생기고 날 떠난 친엄마를 만나고 새엄마의 성으로 하에서 소, 그래서 배소랑으로 개명될 뻔도 했지 하랑도 싫었지만 소랑은 더 싫었던 랑이가 하랑에 더이상 의미는 없다고 쓰던 이름이 편하니까 바꾸지 말자고 그냥 하랑으로 살겠다고 했어 친엄마와 추후 만나서 랑아하고 불렸을 때도 이제는 하랑이라고 했고 그래서 아빠고 엄마고 할거 없이 랑이라고 불리는 건 특별한 의미야
근데 하루종일 하랑아, 하고 친엄마한테 불리다가..... 현민이한테 랑아 하고 불리고 있던 중이니 으으음 잘 모르겠어가 됐다
현민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현민에게도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할 만한 일이 있었다. 네가 받은 고난에 비하면야 토닥거리는 애들 다툼에 불과한 것이겠다만, 그래도 염세적인 소년이 인간관계라는 것을 포기해버리기에는 충분한 일들이었다. 너와 마찬가지로, 그 아이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나 같은 것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런 지장 없이, 나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잘 굴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기로 했다. 살아가는 것을 그만두고 천천히 죽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가슴팍에 어느 날 네가 떨어졌다.
"그런데, 나... 새삼, 정말 욕심 많은 놈이더라."
현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 선생님한테서 숨겨준 답례로 공부에 도움을 받는 관계. 그런 조금 불공정한 거래를 했을 뿐인, 평범한 반 친구.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됐다. 네가 처음에 현민과 공부 약속을 잡았을 때 했던 말, 기억나는가? 같이 놀진 말고 공부 도와줄게, 했던 그 때. 물론 서로 만남의 목적-공부-에는 충실했지만, 노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애초에, 같이 공부를 시작한 지 사흘째에 서로 데이트를 했었고. 그뿐만 아니라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공부를 할 때도, 네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목소리 하나, 생각 하나, 움직임 하나... 그런 것들이, 현민도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그렇지를 못했던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너에게 원래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바람을 품어버리고, 생각했던 거리를 넘어서 이끌려버리고 만다.
"시험이 아무리 자주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칠까 말까잖아. 더군다나 솔직히 말해서, 네가 제시하는 내기에 매번 이길 수 있으리란 자신도 없어. 4월을 넘어가면 공부에 최대한 시간을 쏟아도 가을까지는 현상 유지가 전부일 것 같아서."
현민은 눈을 감았다. 불충분했다. 너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너와 보내고 싶은 시간들이 많은데, 네게 품고 네게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이 많은데 그것들이 너한테는 시험의 내깃거리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슴팍이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너는 떠나지도 않지만, 가까워지지도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 자꾸, 네가 내어주는 거리보다 더 가까워지고 싶어."
그것은 이미 너도 알고 있었다. 현민은 네게 뛰어가겠다고 했고, 너를 기다리겠다고도 했다. 그는 실제로 네게 왔고 너를 기다렸다. 그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네가 그의 이마 위에 지금 떨어뜨린 것처럼, 지금까지 네가 떨어뜨려온 그 크고작은 행동 하나 순간 하나 말 하나가 일으킨 파문들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호수처럼 잔잔히 말라가고 있던 현민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 한 번도 말해준 적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모호하지 않은, 의미가 문장의 소리 그대로인 말을 하는 것조차 랑에게는 드물었다. 나는 너랑 달라, 현민아. 나는 못됐고, 겁쟁이고, 무서운게 너무 많아. 해주고 싶은 말이, 해줘야하는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소리내려고 하면 숨이 모자른 듯 콱하고 목이 막혔다. 이렇게 못난 부분을 보고서 네가 도망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네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 겨우 두 문장 말하고서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떨리는 목소리가 또박또박 울리고 사라졌다. 불안함을 티내지 않으려고 한 목소리는 음 하나하나를 힘주어 발음한 듯했다. 품안에 너를 안고서 있는 곳은 분명 푹신한 침대 위인데- 랑은 늪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니, 원래도 랑은 늪에 있었다. 너를 끌어들이고 있는 기분을 느낄 뿐이다. 질척거리고 무겁게 끌어당기는 늪은, 랑이 더욱 더 구름처럼 굴게 만들었다. 저 구름같은 아이가 사실 늪에 빠지고 있고 늪에서 헤어나올 생각조차 없다고, 누가 생각할까.
"너랑 같이 있으면 많이 좋은데, 근데."
랑은 본인에게만큼이나 다른 누군가에 대한 기대치도 현저히 낮았다. 랑이 네게 부렸던 욕심은, 이 정도 거리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네가 계속 함께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이뿐으로 랑은 벌써 버거웠다. 랑이 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그마저도 네가 먼저 그렇다고 말해주어서 용기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네가 그렇다고 말하니까, 그렇다면 계속 그렇다고 해달라는 바람을 얹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 랑이 누군가 좋아한게 된다거나 서로 같은 마음을 품는다거나 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그런 행복은 없는 셈 살기로 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네가 웃고 있으려면 그걸 없는 셈 치면 안 되는 건가봐.
"...그만큼 무서워, 현민아."
지금은 네게만 허락하고 있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오늘 만나고 온 사람이라던가. 계속 잃기만 해서, 버려지기만 해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는데- 널 가졌다가 너도 똑같이 없어지면 어떡해.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겁쟁이어서는 지금에 안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네가 슬픈 이유가 되었다. 무섭다고 말하면 너는 무슨 반응일까. 내가 무서워서 너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말에 화가 날까, 지칠까, 아니면 싫어질까.
둘이 여름나는게 보고 싶어서 앓아눕고 꾀병으로 집에서 하루종일 여기서 놀고싶어 청춘이라 그런지 여름 속 현민이랑 랑이가 보고 싶다 (여름이 아니어도 청춘스러운 장면은 많지만 여름의 그 분위기가 있으니까)
방과후교실 새파란 하늘 뭉게구름이 들어찬 창문 부대끼는 여름바람 그리고 둘이 공부중 현민이 훈련하는 거 보러 몰래 찾아간 타이밍에 갑작스런 소나기... 다들 체육관으로 뛰어가는데 둘이 져지든 셔츠든 하나 같이 쓰고 손 꼭잡고 가자 비슷하게 여름 장마철 시도때도 없이 예고에 맞지도 않는 비오는 날 우산없어서 뛰어가려던 현민이한테 까치발로 겨우 우산 씌워주는 랑이 아직 에어컨 안 틀어주는 초여름 교실 선풍기만으로는 지쳐서 둘 다 아이스크림 물고 교실에 늘어져있기 현민이 손풍기 쐬주기
다녀왔어 그냥 배가 빵빵한 정도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 + +) 청춘 하면 여름이지 여름이었다 그렇잖아도 배가 빵빵한데 랑주가 여름재질 썰 한가득 풀어줘서 나는 행복한 참치야
시골로 둘이서만 놀러가는 것도 좋아 부대끼는 여름바람 방과후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문득 야 랑아 우리 여행가자 같은 말 현민이가 하는거 보고싶다 현민이네 할아버지 집이라던가 가서 옥수수밭 한가운데 원두막 같은 데서 산들바람 맞으면서 수박을 먹는다던가 두 사람밖에 없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쳐도 좋고
샤워하기 전에 현민이가 빛의 반응속도로 손 잡아줘서 아마 뒷머리 젖는 선에서 끝날 것이라 예상 아무튼 물장구 끝나고 나면 둘 다 발갛게 익어서 푹 젖어있겠지 그 상태로 원두막에 가서 드러눕고 할머니가 한통 따온 수박 둘이서 갈라먹고 공부 좀 하다가 해거름하니 기울어지면 둘이서 손잡고 집에 와서 저녁먹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어깨에 담요 두르고 여름밤 별 헤다가 서로 기대어 까무룩 잠드는 저녁
물놀이라고 하면 머리카락은 양갈래로 땋거나 묶어올리는게 보통이지 이건 현민이한테 어떻게할지 물어볼거 같다 머리 어떻게 할까~ 하고 물장구친거 너무 귀엽다 둘다 풍덩 빠지는 것도 보고싶지만 말야 원두막서 바람소리랑 멀리서 들리는 매미소리 배경음악삼기 (그정도 작은 소리는 랑이가 못듣긴 하지만... ㅇ.ㅇ) 대청마루가 있다니 엄청나..... 분명 은하수도 잘 보이겠지 랑이 학교에서 배운 정도로 별도 조금 찾을 줄 알것같은데... 현민이한테 별 찾아주기
현민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말을 해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거리를 두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현민은 뒤늦게야 뒤늦게야 이제서야 알아버리고 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네가 그 이후로 지금껏 내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조그맣고 미약한 메아리, 손짓, 눈빛, 그에게 그저 네게 사랑에 빠질 이유로만 와닿았던 그 모든 것들로 네가 조금씩 말하고 있었던 것을. 네가 벽 너머에서 보내고 있던 조그만 생각들과 말들을.
너의... 구조신호를.
"네가 무서워하는 거, 이해해."
현민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네가 왜, 어떻게 그 무서움을 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네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는 나도 알아. 나도 비슷한 걸 무서워했고 지금도 무서워하고 있으니까. 이유는 모르지만 네가 그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네가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던가,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이해한다. 누군가를 좋아해주었는데 자신이 마음을 준 사람에게 최악의 형태로 배신당해본 적이 있어서 안다. 너보다야 얕고 너보다야 적은 상처지만 너와 똑같은 종류의 그런 상처다. 그래서 그런 상처를 입은 네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려고 한다.
"괜찮아."
현민은 네 품에 머리를 한없이 파묻고, 너를 꼭 끌어안았다. 아플 정도로 꽉 끌어안지는 않았지만, 네가 충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꼬옥 안았다. 너를 그렇게 그러안은 채로 그는 계속 말했다.
"무서워해도 괜찮아. 지금 당장 좋아해주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
네가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면, 내가 늪까지 들어가줄게. 돌이키기엔 너무 늦게 왔다. 너를 이렇게 부둥켜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늪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조금은 겁난다. 조금은 슬프다. 그러나, 후회는 전혀 되지 않는다. 나는 다 괜찮아. 여기에 네가 있으니까. 늪에 있고 싶으면 늪에 있고, 다른 곳에 있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자. 우리 둘이 있으면 늪에서 머무를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천천히 떠날 수도 있을 거야.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
"다 괜찮을 거야. 슬프게 만들어도 괜찮아. 그래도 결국 너랑 나랑 여기까지 왔잖아."
상실. 이해한다. 이 순간이 영원무궁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가는 길에 어쩌면 잠시 갈라져야 하는 갈림길도 있을 테고, 어쩌면 서로 한동안 떨어져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몸이 멀어지는 순간도 마음이 멀어지는 순간도 찾아올지 모른다. 그 모든 순간을 넘어선다고 해도 종내에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끝이라는 것이 찾아올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런 불가피한 엔딩이 찾아오더라도, 서로가 없어졌다는 사실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도록 서로를 사랑하면 된다. 무엇보다, 미래에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으로 현재의 이 마음을 외면하기에는, 그게 너무도, 밝고, 뜨겁고, 눈부시지 않은가. 종말을 두려워하기엔 현재가 너무 따스하고 소중했다. 네가 현민에게 안겨준 현재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현민은 그런 현재를 너한테도 안겨주고자 했다.
이해. 들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대도 하지 못했던 말이다. 내가 사랑스럽지 못하니까, 그만큼 힘들어도 견뎌낼 만큼 좋아하질 않으니까- 그래서 다들 떠나버린 거라고 생각하던 랑에게, 이해한다는 말은 큰 충격이었다. 네가 안겨주는 충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괜찮다. 랑의 한쪽 귀가 멀어버리고, 괜찮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세상의 소리가 반절 사라진 어린 아이에게 부모님이 제일 먼저 보였던 반응은 당황이었다. 일어나서 걸음을 떼니 몸의 감각도 이상해 휘청 넘어졌다. 부모님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아이가 괜찮다고 먼저 말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무언가 달랐을 지도 모른다. 랑은 너와 시선을 맞추지 못 했고, 무슨 말을 하지도 못 했고, 다만 움직였다. 랑을 꼭 끌어안아주는 너를 꼭 끌어안았다. 울음을 참는 건 자신있었지만, 지금은 참는게 전부였다. 너와 마주보기라도 하면, 줄곧 상냥히 바라봐주던 네 눈을 마주하면 참기 힘들 것 같았다.
"이해하면 안 되는데~."
구름처럼 구는 그 목소리다. 이해하지 말아달란 뜻이라기 보다는, 이해할 수 있으면 너도 비슷하게 아파야하는 거 아닐까. 아니, 너도 그런 적이 있어서 이해하는 걸지도 몰라. 사람들 모두 각자만의 상처를 안고 있다고, 그래서 함께 서로를 보듬고 살아간다고- 어디서 그런 말을 보았던 걸 떠올렸다. 너는 역시 과분하게 좋은 사람이고,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야.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준다는 건, 드디어 찾아온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믿어도 될까?
"괜찮다고 너무 많이 말하지마."
랑은 네 귓가에 조용히 속살거렸다.
"언제든 오늘처럼 말해줘. 나도 너 안아줄 수 있어-"
너보다는 분명 많이 서툴겠지만, 너보다는 못하겠지만 랑은 그러고 싶었다. 네가 준 것들을 두배로, 세배로, 몇 배가 되든 상관없으니 너에게도 한아름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도, 응. 너랑 있어서 괜찮아."
입고 있는 옷, 평소에 하질 않던 화장, 친어머니의 손길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랑이 거절해도 한사코 부담스러울 정도로 안겨준 선물. 이런 크리스마스 선물은 원치 않았고, 받아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예쁘다고 해줘서 괜찮았다. 하랑아, 하랑아- 끊임없이 불리다가도 네가 랑이라고 불러주면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너도 괜찮을거야."
"나랑 같이 있잖아."
"있지, 꼭 말할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랑은 살며시 안고 있던 힘을 풀었다. 더이상 안지 않으려는게 아니라, 너와 마주볼 틈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화장이 아니라 눈물을 참다가 붉힌 눈가, 그럼에도 수줍고 설레는 마음에 뺨에 피운 분홍꽃, 너를 담아 까맣게 비치는- 네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새벽하늘빛 눈동자. 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웃었다.
"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야, 현민아."
작은 웃음소리는, 낯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이었다. 말하고 싶어서 말했지만 그래도 오글거린달지- 간질거리는 기분에 소리내고 말았다.
랑이는 본인이 직접 하는게 아니면 안무서워해 균형감각이 떨어진다는 건 술취해서 넘어지는 줄도 모르고 넘어지는 거랑, 넘어지는 걸 알아도 몸의 균형을 잡아 바로 서지 못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현밍이 신뢰도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 근데 자전거가 더 무섭구나........ 랑이가 큰소리를 싫어하기도 하고(경적소리) 속도가 더 빠르니 당연히 오토바이가 더 무서울 줄 알았다
귀가 아프다기보단 정말 놀라는 것뿐이니까 @@ 평범한 사람들이 신경 안쓰고 그냥 경적 소리 듣고 놀라잖아 랑이는 언제나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보니까 그런 커다란 소리(청력 문제와 상관없이 크게 나는 소리)가 갑자기 나면 남들보다 더 깜짝 놀라는 것뿐이야 경적 소리 안들린다면 더 상관없지~~
그러나 현민은 견뎌냈다. 견뎌내고, 그럼에도 너를 사랑했고, 너를 가슴에 심었고, 한가득 붉은 꽃을 피웠다. 이해하면 안 되는데- 하고 언제나처럼 몽실몽실하게 피어오르는 그 목소리에, 현민은 목이 메는 것을 있는 힘껏 눌러참았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네 품안에 있지만 네 하늘같은 말간 눈동자가 보고 싶은데 이래서야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다. 그 대신에 현민은 한 팔을 들어서 네 뺨을 매만져보았다.
"언제고 말해줄게."
생각해보면 네가 현민에게 실어준 의미가 정말로 많았다. 너는 그에게 너를 자유롭게 해줄 너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었고, 네 시간을 그에게 주었고, 그의 시간을 받아주었다. 별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모이고 모여 거대한 의미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네가 나랑 있는 게 괜찮다면 언제고 있어줄게."
너는 소년을 꼬옥 안아주기까지 해주었다.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했다. 그리고 현민도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다.
"...기다릴 테니까,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와. 알았지."
그 보답으로 그는 새로운 약속을 네게 건네어왔다. 네게 행운이고, 행복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네가 팔의 힘을 살며시 풀자, 현민도 네 품에서 떨어져나왔다. 품에 끌어안긴 바람에 헝클어진 새까만 머리카락. 누가 칠해준 것도 아닌데 넘쳐흐른 감정의 색깔이 곱고 연연한 빨간색으로 들어있는 눈가. 너한테서 옮겨 칠해진 걸까 감색이 되어있는 뺨. 아까 현민이 묻혀달라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하던 툴툴대는 소리가 그 위로 겹쳐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까만 눈동자는 마치 거울처럼 네 말간 모습을, 그가 좋아하는 네 하늘빛 눈동자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그의 눈 안에 오직 너만이 있었다.
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현민은 더 이상 무언가 네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너는 이미 이 소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들인 모양이니. 그래서 현민은, 발을 짚고 스르륵 매트리스를 떠밀어 몸을 끌어올렸다. 딱 네게 눈높이가 맞을 만큼.
그의 눈에 비친 네가 점점 가까워온다. 가까워올수록 그의 눈꺼풀이 닫혀간다. 가깝고 가까워서, 이제는 그의 잘 보이지 않는 속쌍꺼풀 아래 나 있는 속눈썹의 갯수를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그것보다 네게 더 가까워져 왔다. 그리고, 네게 입을 맞춰왔다.
"고마워."
꿈꾸는 것처럼 현실성없는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간 이후에, 현민이 꺼낸 첫 마디였다. 그리고 다음 마디는 이거였다.
"......간식 가지러 갈까."
그리고 때아닌 크리스마스에 또 홍시가 현민의 얼굴에 와르르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겨울 내내, 내년 봄까지도, 어쩌면 앞으로 오래오래 꽤 지겹게 홍시농사 짓고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너의 집에 처음 온 날, 돌아가던 길 전봇대 아래에서 네가 랑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방글방글, 구름같이 굴더니 지금은 봄해가 뜬것같이 화사하게도 웃고 있었다. 구름이 개었다면, 분명 네 덕분이다. 뺨에 닿은 손, 몇번이고 말해주는 목소리, 그리고 여전히 느껴지는 품 속의 온기까지.
랑이 너와 마주보기 위해서 힘을 풀었는데, 마주본 얼굴은 서로를 꼭 닮아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하며, 발간 눈가와 뺨, 서로를 비추고 있기 바쁜 눈동자까지. 없는 셈치고 살기에는, 서로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게 무엇인지 랑은 지금 느껴버렸다. 이렇게 따뜻한 감정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데 표정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 동그랗고 오밀조밀하게 랑의 얼굴을 채우고 있던 웃음이 사라지고 다른 표정이 생긴 건, 너와 눈높이가 맞았을 때였다. 이전 주제의 마지막 대화를 미루어 볼때, 자려고 했던게 아닌가- 그래서 너를 안아주고 있던건데- 눈높이가 맞아버린다. 랑은 눈을 깜빡거렸는데, 네가 눈높이를 맞춘 이유는 생각보다 금방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까워지면서 눈을 감아오는 너를 바라본 순간, 연애고 사람이고 다 자기 좋을대로 살랑거린 랑이라고 한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기말고사 성적에 대고 그런 내기를 내건 이상 그래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언제 해주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는 생각해보겠다더니! 이런저런 생각이 튀다가 눈을 꼭 감아버렸다. 열일곱의 겨울,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첫뽀뽀였다. 랑은 그야말로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네가 첫마디를 꺼내고, 두번째 마디를 꺼낼때도 조용히 얼굴만 새빨갛게-정말로 새빨갛게 올라있었다. 입고있던 옷의 색과 비교해도 다름없을 정도로- 물들여놓고 너를 보았다가, 다시금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너를 보았다. 노려보고 있었다. 뭐가 간식 가지러 갈까야!
"너어, 첫뽀뽀 가져가놓고! 내가 주려고 했는데!"
선물을 주겠다고 했었다. 랑이 주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네가 그냥 해버렸다. 이건 시험에 대한 선물로는 무효다! 랑은 조금 심술이 올라서는 네게 다가갔다. 네가 랑에게 다가올 때와 똑같았다. 네게 다가가면서 눈을 감더니, 콕. 부끄러워 새빨간 얼굴에, 하늘빛 눈동자를 곧게 뻗은 속눈썹 아래에 감추더니 쪽 대신 콕이다. 랑은 네 아랫입술을 이로 물어버렸다. 콕 물고서는 뒤로 물러나다 못해 아예 몸을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아버렸다.
"다음 시험에는 이런거 말고 다른 선물 줄래. 문제집 줘버릴거야."
심술부리던 랑의 눈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챙겨왔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선물도 안 열어봤잖아.
그런 말을 입맞춤 전에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세상 감정 다 끌어모아서, 너에게 매몰돼서 널 함뿍 담은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사람 다 홍당무가 됐다.
그렇지만 꽃이 아니라 홍당무라도, 부끄러워도, 낯뜨거워도, 역시 행복한 건 행복한 거라서. 네가 쏘아볼 때 현민은 실없이 헛웃음을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너와 함께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웃는 일이 늘어났다고 현민은 느꼈다. 다만 네가 한가득 토라져버리는 바람에 현민의 웃음은 곧 곤란한 기색을 머금었다.
"대신에 내 첫뽀뽀도 줬는데."
-내게 줬구나. 하는 말까지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사태를 악화시킬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콕 하고 아랫입술을 물어버리는 네 심술에 현민은 그만 깜짝 놀라서 움찔해버리고 만다. 아얏 하는 소리가 거의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가 흔적 없이 쏙 들어갔다. 랑이 아예 삐졌다는 듯 쓱 물러나서 일어나 앉아버리자 현민의 표정이 물벼락 맞은 강아지 같이 됐다. 어찌되었건, 그도 엉거주춤 일어나 앉았다. 널 바라보는 눈이 처량하다. 그러다 네가 단단히 토라졌다는 듯이 문제집을 주겠다고 못박아버리자, 현민은 완전히 풀죽은 표정이 돼서 시선마저 떨어뜨린다.
그러다 현민은 문득 네 머리 위에 뭔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함박눈 송이가 하나 살랑 날아들어와 네 머리에 내려앉은 것이다.
"...문제집 줘도 상관없어. 네가 그걸 주고 싶다면 그렇게 해."
현민은 네 옆으로 팔을 쭉 뻗어서, "눈, 많이 온다." 하고 중얼거리며 창문을 드르륵 하고 닫았다. 현민의 말에 뒤돌아보면, 싸락눈 정도나 내리는 게 전부일 것 같았던 12월의 하늘이 설국의 풍경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미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절반 넘게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나서 보면, 폭설주의보 안내문자가 와 있다.
"선물 뜯어보기 전에, 나 네 머리에 손 잠깐만 대도 돼?"
현민은 네 머리의 한 지점, 정확히는 눈송이가 내려앉은 지점을 보며 네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오늘 안에 한 번 네게 입 맞추겠다는 뜻이었는데, 랑은 그 작은 심술로 네게 틱틱거리기 바빠 지금 하는 말이 선전포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말이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뽀뽀하려고 했는데 네가 뽀뽀했다는게 크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뾰루퉁한 뺨에 애써 눈을 가늘게 뜨고서 쳐다보는 랑이다. 그마저도 네가 그렇게나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 그러고 있지도 못했다. 랑이 이만큼 작은 심술을 부린게, 너는 그렇게 크게 풀죽고 마는 일이라는 걸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조심하라는 말은 절대 취소하지 않았다. 생각도 못할 타이밍에 놀래켜버리리라.
"받으면 기뻐야 선물이지이."
시험 끝나고서 수고했다, 잘해줘서 고맙다고 주는 선물이 문제집이면- 좋아하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또 공부하라는 것처럼만 보이는 선물이니까. 랑이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또 뽀뽀같은 걸 선물이라고 해도 될지가 망설여져서, 다른 선물이라면 무엇을 주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해줬지만- 그래도 그 전에 네가 슬프다고 말했던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움이 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많이 와?"
입 모양을 읽은 랑은 고개만 살짝 돌려 창문 밖을 보았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가는 모습에 랑은 눈을 깜빡거렸다. 쌓인 눈을 밟았을 때 뽀드득거리는 소리는 못 들은지 꽤 되었지만, 눈을 밟아보고 싶었다. 랑에게 눈길은 위험한 것이어서 원래는 최대한 피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네가 있으니까 넘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추위에 감기라도 걸려 열이 나는 일같은 건 상상하기조차 싫었지만, 깐쵸에게 줄 선물도 있으니까 마당 정도에서 눈 구경을 하는 건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응? 응-"
시선이 맞지 않고 머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려다, 머리에 손을 대겠다는데 고갯짓을 하면 피하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작은 고갯짓으로 끄덕인다.
현민은 별 대답을 않고 침울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평소라면 네 심통에 이렇게까지나 크게 풀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깜찍하게 통통대는 네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짓거나, 어쩌면 약올리듯이 메롱 하는 도발을 감행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그렇지만 너와 이 소년 사이에 감정을 있는 대로 솔직하게 내보인 순간에 네가 보인 반응이 그것이었고, 현민도 그만큼이나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말도 안 하고 입을 맞춘 건 자신 쪽이고, 자신이 먼저 입맞추고 싶었다던가, 첫 입맞춤이라던가 하는 그 말들이 현민에겐 상당히 무게감있게 다가오는 것들이었기에. 그는 아직 순수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너에게 있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네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톡톡거리는 게 귀여워서, 현민은 네 머리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쓸어서 떼어내고도 네 머리를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손가락 끝에서 녹아가는 눈송이를 네게 보여주었다.
"눈이 묻어있었어."
하면서 현민은 네 뒤로 손을 뻗어서 커튼과 함께 살짝 열었던 창문을 탁 하고 닫았다.
"대설주의보래. 많이 오지 않을까."
많이 오지 않을까- 라고 추측할 필요도 없이, 뒤를 돌아보면 맑은 회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 나풀나풀 하얀 눈송이가 내리고 있는 설국의 풍경이 있다. 내일 동네 여기저기에 눈사람이나 눈오리, 눈곰 같은 게 속출할 정도로는 쌓일 모양이다. 넘어진다- 현민의 뒷마당에서는 넘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푹신한 흙바닥에 관리가 잘된 잔디가 깔려있으니(지금은 노랗게 말라붙었지만) 보도블럭 바닥에 자빠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이다. 선물도 열어보고 간식도 먹고 하면, 뒷마당에서 놀자고 이야기를 꺼내보자.
"-그러면,"
현민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네가 여기저기 예쁘게 배치해놓은 선물들이 보였다. 그 전에 현민은 너를 돌아보고 아직도 풀이 조금 죽은 표정으로 나직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695 나는 이런 거 전혀 못해봤는데 하나같이 귀엽고 행복하다 ( 8 8) 하나씩 차근차근 해보자
>>696 184랑 157이면 30센티미터 좀 안 되니까 이 정도 키차이려면 매너무릎....... 어...... 응 낭낭하게 해야겠다 그런데 현민이는 랑이랑 사진찍는다고 하면 별 자각없이 자연스럽게 무릎부터 수그리는 버릇 들었을 것 같지 이런 픽크루도 있었구나.. 예쁘고 좋아 ( 8 8)
음- 더 오래 더 많이 있어달란 뜻은 아니었어 현생이 있으니까 무리시키고 싶진 않아 내 문제가 맞는 거 같고 ㅇ.ㅇ 그말대로 푸쉬알람 같은게 없으니까 한 번 오면 엇갈릴까봐서 혼자 놀면서 기다리지 뭐 ㅎ.ㅎ 하고 여기에 신경을 다 쓰는 편이야 멀티가 잘 안 돼서 다른 걸 하면서 기다리질 못하거든 그래서 여기에 썰 풀고 픽크루 갖다놓고 하는데.... 당연히 반응이 없으니까 혼자 있는 거 같다 느낀거같아 @@ 어제는 일이 많고 피곤해서 그 시간에 쪽잠이라도 자든 일을 하든 할텐데 라는 생각에 들어서 더 그랬던 거 같고 그러니까 괜찮아 어제는 말도 못하고 잠들어서 미안 @@
깜짝 놀랐어....... 진짜라면 무슨 말을 해야할텐데 가짜라면 먹금을 해야하고 ㅠ.ㅠ.... 다행이다 아니라서.... 현민주가 올 시간이 아닌데...? 하고 있길 잘했다.... 아냐 사과는 진짜 괜찮아! 나야말로 찡찡거린거 같은걸 ㅠ.ㅠ 현민주는 괜찮아? 놀랐겠다...
나도 현민이 픽크루 자주 올리고 싶은데 얘가 세세한 데서 불효자라서 힘들다 ( . .) 내 맘에 들 만큼 컬 들어간 곱슬머리를 지원해주는 픽크루가 별로 없어 마음에 드는 곱슬머리가 있길래 보면 깜피없음+가공불가거나.. Picrewの「ぽんぽんぺいん」でつくったよ! https://picrew.me/share?cd=c37eBTJ5k4 #Picrew #ぽんぽんぺいん
지금도 아직 놀라있는가 말이 제대로 안나온다 ㅋㅋㅋㅋㅠㅠ 저번에 내가 현민주 놀래켰을 때 현민주 기분이 뭔지 뼈저리게 느꼈어 ㅎ.ㅠ 그래도 이제 괜찮으니까 @@......... 분명 사칭당한 현민주가 더 놀랐을 거고 비밀번호는.... 어...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가 있을까? @@
갑자기 픽크루 보고 다른 의미로 놀랐어 맞아... 나도 랑이 머리 때문에 @@ 피어싱도 그렇고... 어지간해서는 정확한 묘사는 포기하고 있지.... 불효녀 데리고 있어서 절절하게 공감해 ㅎ.ㅎ...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내 업이 그림 쪽이라... 불안해서 @@ 하지만 현민이 귀여워 소매봐............ 소매 돌돌 말아서 걷어 올려주고 싶다
랑도 네 머리에서 눈송이 하나를 떼어냈었고 그것이 손에서 녹아내렸다. 이번에는 네가 랑에게서 눈송이를 떼어내었고, 랑은 가만히- 다만 시선은 열심히 너를 좇았다. 이어서 네가 쓰다듬을 때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만큼이나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대설주의보?"
벌써 세상은 하얗게 덮혀가는데, 눈이 그칠 기세는 아니었고- 그 말은 네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되어 있었다. 오다가 곧 그치겠거니 했던 눈이 그렇게까지 내린다면 랑은 옴짝달싹 못하고 만다. 얼마나 더 쌓이고, 언제 그칠지는 하늘만 알고 있을텐데. 짧게 외출했다가 돌아갈 줄로만 알았던 랑이 오늘 신은 신발은 부츠였다. 선물만 열어보고 돌아가겠냐는 대답에는, 어차피 못 돌아간다라는 답을 할 수 있겠지만- 랑은 다른 답을 했다.
"아-니. 같이 있을래."
방금 말했었다. 랑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라고. 내가 보낸 크리스마스들은 그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어. 근데 오늘은 너랑 있을래. 너랑 있으면 분명 오늘은,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나랑 있어서 오늘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면 좋겠어. 랑은 그런 생각을 했고, 네게 표현하는 방법은 너를 한 번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무릎으로 네게 걸어가서 폭 안아버린다. 랑은 네가 시무룩해 있는게 싫어서, 어떻게 하면 다시 웃으려나 골똘히 생각하면서 너를 바라본다. 웃으면 좋겠는데- 랑이 버스에서 부렸던 앙탈을 기억하고 있다면 다음 행동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빗거리는 감각이 네게 말랑하게 와닿았다.
현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이 눈길 위로 너를 돌려보낼 생각에 씁쓸해졌다. 택시를 부르면 화내려나. 손을 잡고 바래다주면 되려나. 송송 내리는 눈 위로 현민은 크리스마스에 너를 돌려보내줄 각오를 마음 속으로 다지
"응?"
그리고 깔끔히 지워졌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분명 현민도 있었다만, 방금의 버드키스 건도 있었기에 현민은 그 마음을 단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너의 같이 있을래, 하는 말은 현민에게 너를 두 번 선물하는 것과 같이 다가왔다. 현민은 잠시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지 머릿속으로 검토하는 데에 정신이 팔리는 통에 네가 침대 위에서 무릎으로 쫑쫑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고, 네게 품을 무방비하게 내어줘 버리고 말았다. 뒤로 넘어지지는 않았다만, 현민은 품에 안겨오는 네 어깨를 반사적으로 끌어안고도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네가 부드럽게 그의 어깻죽지에 뺨을 부비자, 그제서야 네 품 안에서 그의 품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데오드란트 냄새 없는 체취- 그가 쓰는 바디샴푸 냄새거나 샴푸 냄새겠지. 숲 냄새 같은 것이 그의 체온에 실려 부드럽게 네 코에 와닿는다.
"......"
고개를 들어보면, 과즉 한가득 빨개져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인다. 웃는 표정은 아니지만, 이것도 그가 너를 좋아할 때 짓는 표정이라는 걸 너는 안다.
"정말이지."
현민은 네 정수리에 잠깐 뺨을 기대고 부볐다가,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서 방에 네가 놓아둔 선물들을 바라보았다.
웃는게 좋은데. 랑은 네 품에서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네 표정이 못내 아쉬웠다. 이건 랑의 잘못된 습관이기도 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괴롭힘을 받을 때 우는 것보다 웃는게 나았기 때문에- 그리고 웃는 사람이 이긴 거라던가, 그런 말들이 랑을 웃도록 했다. 또, 네가 웃는게 정말 예쁘다는 걸 알아버린 탓도 있었다. 강요를 하진 않아서, 네 표정이 지금 나를 좋아하는 표정이라는 걸 알아서, 그냥 다시 한번 네 품 속에 쏙 들어갔다. 꾸욱 품 속에서 네게 뺨을 디민다. 머리 위쪽에서 네 뺨이 닿아오는게 느껴졌다. 과분하게 행복하고, 따라 불안해진다. 랑은 네가 괜찮다고 몇번이고 말해주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라고 해도 상관없을 너의 목소리. 안고 있는 팔에 힘이 실렸다.
"아, 네 거는-"
어느것부터 풀면 되느냐은 말에 랑은 네 품에서 쏙 나와 침대에서도 내려갔다. 문틀 옆에 놓여있었던, 제일 커다란 선물상자를 들고서 다시 침대로 올라온다.
"이거!"
랑의 몸집만한 상자였는지라 그렇게 큰 상자를 들고서 빨간 옷을 입고 오니 꼭 산타클로스 같기도 하다. 방글방글 웃고 있었기도 하다. 심지어 선물 자루처럼, 선물상자의 포장도 주로 빨간색이었다. 무튼 커다란 빨간 리본을 풀면 상자의 뚜껑을 열 수 있을테고, 그럼 범고래가 떠올르는 배색의 더플백과 키링으로 달린 털뭉치 북극여우가 너를 반겨줄 것이다. 랑은 상자를 네게로 내밀어 안은 채 꽤나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좋아할지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건 낯선 일에는 불안한 법이고, 현민과 네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도 또한 있었다. 그렇지만 네게 있는 상처들 중에는 현민에게 없는 것도 있다. 그 중에는 현민이 모르는 상처도 있다. 천천히, 천천히 알게 될 테다. 그러니 성급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현민이 보여주는 표정은 웃는 표정보다는 우으으, 하고 부끄러움을 억누르라 조금 구겨진 표정이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봉숭아 씨앗 꼬투리처럼.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 설레임이 더 소중했기에. 네가 힘을 실어서 끌어오는 만큼, 그도 너를 꼭 마주안아준다. 그러면서도 네가 품에서 몸을 빼려고 할 때는 널 부드럽게 놓아준다. 그는 너를 따라오려고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미끄러뜨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고는 일어서려 했으나, 그가 일어서기 전에 네가 선물상자를 들고 오는 게 더 빨랐다. 빨간 옷을 입고 커다란 선물봉투를 끌어안은 채로 쫄래쫄래 오는 네 모습이 귀여워서, 현민은 자기도 모르게 희미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후후, 하고 조그만 웃음을 흘리고 만다.
현민은 네게서 선물상자를 받아안아서 툭 끌러보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고... 잠시, 표정을 잃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실망했다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고,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서 이런 정성어린 선물을 받아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듯한 그런 무표정이었다. 백색과 흑색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배색의 더플백을 보고, 현민은 문득 자신의 엄청나게 낡아있는 더플백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더플백을 내려다보고, 너를 바라보고,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웃어버리고 만다.
속쓰려서 정신을 못차리고 답레도 못쓰고 있고....... 답레를 읽을 때마다 이런 부분이 있었네...? 하면서 읽지 못했던 부분을 찾고 잇어.... 죄송합니다..... 근데 현민이 너무 귀엽다 계속 행복하면 좋겠다 세상 모든 고난과 역경같은 거 다 나주고 행복해 현민아 자신의 엄청나게 낡아있는 더플백(새거) 자신의 더플백(랑이가 선물) 이 묘사 너무 좋아 랑이 선물 네거야 다 네거야
어느 걸 선물하면 좋을 지 정하는 것도, 무엇을 주겠다고 정한 후에도 제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느라 이리저리도 돌아다녔다. 평소에 랑이 걸어돌아다니는 정도나 운동량의 비하면 두배, 세배는 거뜬히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로지 네가 선물을 받고 기뻐하기를 바라서, 랑은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제일 예쁜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쇼핑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 조수석에 앉았을 때야 뒤늦은 피로감을 느낄 만큼. 그리고 그 피로감은 역시나, 네 웃음 하나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음에 드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더플백 안에 있는 편지-라고 하기에는 카드에 가깝긴 하지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양이 길든 짧든 편지를 쓴 사람 앞에서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편지 내용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부끄러웠다. '🎄Merry Christmas ⭐️ 원정가서도 가방보고 내 생각해! 🦊 열심히 공부해준 현민이한테 산타 랑이가 🎅🏻' 라고 적힌 내용들 중에, 손수 그려넣은 그림들도 왠지 부끄럽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은 부분 외에는 모든 부분이 민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랑이가 현민이 놀래켜주려고 저번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있다가 깜빡 잠들어서 현민이 침대에서 이불 속에 폭 파묻혀있기 현민이는 랑이 어떻게 깨우려나 반대로 현민이가 자고 있으면 랑이는 옆에서 셀카 찍을 거 같다....ㅋㅋㅋㅋ 잘 자고 있는 현민이랑 브이하고 있는 랑이.. 사진찍고나서 볼꼬집고 손장난치면서 깨울듯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현민이랑 랑이 같이 있는 걸 봤다던가 시내에서 목격했다던가 목격담 많이 나오지 않을까 현민이 성적 올라간 것도 올라간 거고 현민이가 이전에 한번 우리가 가까이 지내는 거 남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그냥 랑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맞다고 대답할까? 하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래─ 자랑해야겠네. 누가 가방 멋지다고 하면 너한테서 선물받은 거라고 대답할 거니까."
현민은 여우 키링을 보더니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내놓고 다니면 때를 탈 것 같고, 집어넣어 두면 네 선물이라는 표시를 숨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여우인형은 '배하랑 꺼!' 라는 표시를 동화적으로 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러나 현민은 결국 그 키링을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기로 했다. 이미 알 녀석들은 다 알고 있을 테고, 무엇보다 너의 이 북극여우같은 모습은 자기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퍼에 달린 키링의 고리를 조심스레 풀러서, 더플백 가방을 조금 열고는 안쪽에 덧대어져 있는 메쉬 주머니 하나에 여우를 쏙 집어넣었다. 가방 안의 주머니에서 머리만 빠끔히 내밀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앗, 안에 넣어둔 편지를 들켜버린다─ 허나 다행히도 운동하는 애들 더플백이 다 그렇듯이 그것도 상당히 커다란 물건이었고, 현민은 지퍼를 전부 다 열어젖힌 게 아니라 한쪽 모서리만 빠끔 연 것이라 다행히도 편지를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편지는 네가 생각했던 데로 헌 가방의 내용물을 옮기려고 더플백을 열어보았을 때에야 발견될 것이다. 그는 다시 지퍼를 지익 잠그고, 부드럽게 웃고 있는 네 눈앞에서 가방끈에 팔을 꿰어 그걸 옆구리에 걸어보았다.
자랑하겠다는 너의 대답에 쿡쿡 장난스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그러다 네가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면, 그런 네 시선이 여우 키링에 닿고 있는 것을 알면 너를 바라보며 눈치를 조금 살피는 것이다. 키링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조그맣고 부드러워서 만지고 있으면 말랑말랑한데- 네가 닮았다고 말해준 북극여우인데- 하고서 고개를 갸웃인다. 결국 키링의 고리가 풀리면 인형 같은 걸 달고 다니진 않는걸까, 표정이 좀 시무룩해진다. 그도 찰나, 랑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키링이 안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범고래 안에 있는 북극여우. 랑에게는 하나의 생각만 든다.
"잡아먹혔어...?"
동글동글 놀란 눈을 깜빡거리다가, 네가 가방을 옆구리에 걸면 다시금 베시시 부드럽게 웃었다.
현민은 당황해서 너와 똑같이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홰홰 저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당히 빈약한 편인 동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바깔에 매달려서 흔들리면 때 타고 털 빠지고 그럴까 봐 품안에 꼭 끌어안은 거래."
인정해주자. 그는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하고, 그는 가방을 옆구리에 건 채로 어정쩡한 동작으로 네 어깨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가 놓았다. 으악, 낯간지러워...... 네게는 들리지 않을 절규를 흘리며, 그는 다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마룻바닥에 발을 내려놓고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옷장을 열어보았다. 옷장 안에는 잘 안 입는 외투들과 이너웨어, 언더웨어들이 정리된 서랍장이 들어 있었고, 문에 전신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방을 찬 모양새를 한 번 살펴본다. 그 말마따나 커다란 범고래와 아가 범고래다.
"정말 네 말대로네."
하고 부드럽게 웃고는, 현민은 가방을 벗어 책상 아래, 원래 쓰던 낡아빠진 더플백 옆에 놓아두고는 그제서야 그 투박한 가죽외투를 훌렁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자연스레, 그가 즐겨입는 폴라티 차림이 되었다. 그는 여름이 아니라면 폴라티를 상당히 즐겨입는 듯했다. 셔츠는 교복으로 충분하다는 걸까, 검은색, 회색, 차콜, 남색... 오늘은 검은색 바탕에 옆선에 하얀색 라인이 들어간 폴라티였다.
이렇게, 시범을 보이는 네 품 속에서 랑은 그 어정쩡한 동작에 어색함을 느끼고 말았다. 너를 안고 안겼던게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드문 일은 아닌데, 아니, 오히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서로의 품에 있었다. 랑은 최대한 동심을 이끌어낸 너의 대답과, 자신과 너를 각각 북극여우와 범고래로 역할잡아 대답을 그대로 몸소 행동으로 옮겨 설명해주는 이 짧은 시간에 동했다. 네 낯간지러움을 같이 느꼈다. 즐겁고 부끄러운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도 같이 기분 좋아질 맑은 소리였다.
"그치- 어, 나도."
범고래 이야기 비유를 잘 했음을 뿌듯해하다가, 네가 외투를 벗으면 랑도 그 빨간 리본 포장같은 외투를 벗었다. 안에 입고 있는 옷은 네가 입은 것과 같은 폴라티와 비슷하게 생겼다.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니트 원피스였는데, 어찌보면 체구에 맞지 않는 커다란 폴라 니트티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색깔은 흰색이었는데, 새하얗기보다는 따스한 느낌이 도는 아이보리-혹은 크림색이었다. 랑의 외투는 이전에 두고갔었던 외투가 걸린 적 있던 벽걸이에 걸었다.
"그렇지 않을까. 밖에 매달고 다니면 때 타고 털 빠질 테니까... ...그렇게 되는 게 왠지 싫어서."
하며 현민은 네 손을 꼭 잡았다. 문득 네 옷차림이 정말로 폭실폭실한 털을 두른 북극여우 같아서 현민은 너를 한 번 끌어안아보고 싶어졌다. -아까도 끌어안고 있었는데 뭘.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는데 성급히 욕심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민은 네 손을 쥐며 덧붙였다.
"간식 가져오고 나면, 내 선물도 받아줄래."
너와의 시간을 만끽하느라, 현민은 그만 네 선물에 대한 생각을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어렵게 구한 것인데 네 마음에 들까는 모르겠다. 간식을 먹으면서 천천히 언박싱해도 될 것이다. 사실 오늘 포장해서 너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네가 찾아오겠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제대로 된 포장도 못한 게 마음에 많이 걸리긴 한다.
"오늘 포장해서 너 찾아가서 주려고 했는데... 네가 오는 게 더 빨랐네."
현민은 간식을 먹으면서 그 선물을 보여주려는 모양인데, 만일 선물을 지금 보고 싶다고 하면 그에게 요구해보자.
─이 밑은 그냥 간식을 가지러 내려갔을 때─
복도로 나와서, 나무로 된 나뭇바닥을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한 발짝씩, 현민은 네 손을 꼭 잡고 조심스레 걸어내려갔다. 내려가 보면 동네 외출용의 가벼운 외투를 현관에서 탁탁 털고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잠깐~"
현민의 질문에 현민의 어머니는 언제나의 그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케이크는 식탁에 잘라뒀고, 쿠키도 꺼내어뒀으니 필요한 만큼 접시에 담아가렴. 쿠키는 랑이가 선물로 준비해 온 거니까, 먹기 전에 고맙다고 말하고. 멋진 선물 고맙구나, 랑아."
그러니까 랑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선물이라는 것을 랑이 남에게 주지를 않아서도 그랬지만, 누군가에게 받지를 못해서도 있었다. 오늘 받은 선물들은 무엇이냐고 하면, 랑은 입고 있었던 겉옷이나 종이봉투에 담긴 것들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을 덜어내는 용도로 받은 것들을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이름만 선물일 뿐이다. 네가 주는 선물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래서 랑은 놀라서 반문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오늘 너와 만날 거라고도 생각치 못하고 있었고, 네가 준 머리끈 둘과 피어싱 하나, 네 방에 차지하고 있는 어항 속 하얀 물고기 한 마리까지 하면-
"나는 이미 많이 받은 거 같은데..."
내민 손을 잡아오는 너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너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또 받아도 되는거야? 지금도 랑의 귀에는 네가 골라준 범고래 피어싱이 달려있고, 머리끈도 주홍빛의 매듭끈으로 묶여있다. 우물쭈물거리는게, 아무래도 선물을 받기 망설여하고 있었다. 정말로, 랑은 너와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네게서 벽을 느끼고는 했다. 나는 너에게 너같은 아이가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하는 벽을 견고히 했다. 네가 괜찮다고 말해줬는데도 이렇게 쉽게 겁을 먹었다. 랑은 조심스럽게 너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네 손가락 사이사이로 보다 작고 말랑한 손가락이 얇게 얽혔다.
"지금 받으면 안 돼?"
지금 그럴 마음이 든게, 네게 선물를 한 번 더 용기가 난게 사라져버리기 전에 붙잡고 싶었다.
깍지를 끼어오는 네 손을, 그의 거친 손이 부드럽게 맞깍지를 끼어온다. 거친데, 부드럽다. 그의 손은 항상 그랬다. 그리고 따뜻했다. 햇살을 오래 받은 바위 같은 따스함이 항상 그 손에 있었다. 너와 같이 있을수록 소년은 네게서 받는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너는 평소에도 나한테 많이 주니까. 그래서... 나도 줄 수 있을 때 주려고."
그래서 더 이상,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겠다고.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내가 너한테 나이고, 너는 나한테 너이기만 하면 그걸로 괜찮으니까. 네가 나와 함께 있어주니까 너는 나와 같이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현민도 이따금 느낄 때가 있다. 네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고, 망설이고, 어려워하는. 마치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벽 바깥족은 부숴졌는데, 아직 벽의 안쪽 면은 네게 남아있는 것 같은. 그래서 현민은, 이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고, 조금씩 너한테 알려주고 전해주고 싶다고, 너를 둘러싼 벽을 네가 허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꼭 너한테 선물을 주고 싶었어..."
아. 그렇지만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게 부끄러운 건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현민은 귓가가 따끈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간식 가지러 가기 전에 이것부터 보여줄게."
현민은 책상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서랍이 소리없이 스르륵 열린다. 새하얗고 길쭉한 상자 하나와, 네모낳고 납작한 상자가 하나 있다. 둘 다 너에게는 낯선 브랜드 이름과 로고가 인쇄되어 있다.
"어느 것 먼저 열어볼래?"
/ ( 3 3) 답레 쓰다가 졸았다 / 랑주도 이미 자러 간 것 같긴 한데 일단 답레는 올려둘게.. 좋은 꿈 꿔
너한테 무엇을 주었는지, 랑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별로 준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다 말고 말을 마무리했다. 네가 준 그 모든 것들이 불과 물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데, 그것들에 담긴 의미하며 소중하게 어려있는 마음들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같이 보내는 매순간 매초마다도 너는 늘 온몸으로- 시선 하나하나 마저도 랑을 향해 있다는 건 아무리 바보여도 알아챌 사실이었다. 언제나 나와 닿은 네 품은, 네 손끝은 따뜻하니까. 랑은 입을 다물어 끊겨버린 문장을 수습하지도 않았다. 수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려던 척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마땅히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고마워."
아직 선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받을 예정이기도 하고- 네 선물을 받기 망설일지 언정 받기 싫다고 끊어내지는 못하겠다. 랑은 살포시 웃으면서 답했고, 네가 뻗은 손을 바라보았다. 서랍에 있었던 상자를 깜빡 내려다본 랑은 우선 상자만 보고서 안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네가 주고 싶었을 크리스마스 선물. 랑은 공부를 많이 하니까 그런 쪽의 선물이 들어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길쭉한 상자에는 펜이 들어있으려나 싶었고, 네모낳고 납작한 상자는 스톱워치를 생각했다. 아니면 또 무엇일까.
끝맺지 못한 말 끄트머리를 현민이 살며시 깨문다. 내가 네게 준 모든 것은 네게서 받은 것으로부터 피워낸 거야, 어설프나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닫혀있는 내 마음을 여는 것... 그냥 이대로 아무 변화도 없이 살아지는 삶을 살아가겠구나, 하던 내게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 그게 다 너인데. ─그러나 현민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네게 차근차근 알려주기로 했다. 네가 떠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많다.
"한꺼번에 다 열면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헷갈리니까."
길쭉한 상자에는 확실히 펜이 들어있다고 생각할 법한 것이 딱 필기구가 들어가 있을 만한 사이즈였다. 애초에 상자에 새겨진 로고가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지만, 일반인은 오히려 잘 모를 수 있는)영국의 유서깊은 필기구 메이커 로고이기도 했고. 그렇지만 작고 네모난 상자는 감이 안 잡힌다.
작은 오해가 있었다. 랑은 네가 주는 선물을 별로 받기 싫다고 말한게 아니라고 정정했는데, 너는 랑이 말하다 만 문장을 바로 이해하고서 되물은 것이었다. 동문서답, 하지만 랑은 몰라서 이 해명으로 대화의 주제를 끝내려고 했다. 더 이어져도 랑은 대답하지 못할 것이었다. 또 구름처럼, 하염없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바람에 실려가는 것처럼 두루뭉실 숨어버리면 모를까.
"아."
그래서 서둘러서-그런 티를 내지 않는 데에는 도가 터서 네가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손에 쥐어준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손바닥보다 큰 상자 속에는 나란히 담겨있는 은빛의 꼬리 지느러미와 여우 꼬리가 있었다. 지느러미도 분명 범고래의 것이겠다. 스탑워치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던 랑은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다가 너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피어싱을 고르면서 랑이 고래 꼬리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며, 범고래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서 말했던 것을 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랑은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랑은 이어서 생각했다. 널 범고래라고 불렀는데- 너와 있고서부터 함께한 시간 중에 그렇지 않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혼자 앉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원래는 아무도 없던 옆자리에 네가 앉아 문제를 푸는 것조차도 그랬다.
"난 당연히 이쪽."
랑은 너를 골랐다.
"괜찮으면 걸어줄래?"
네가 그러겠다며,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다시 받아들어준다면 랑은 너를 등지고 뒤돌아서 머리카락을 모두 오른쪽 어깨로 모아 앞으로 내릴 것이다.
저번에 버스같은 거 귀여워서 더 찾다가 포메가버스라는 걸 봤는데 너무 귀여워 지치면 폭신폭신한 포메라니안이 되어버리고 둥기둥기 우쭈쭈받아야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대 그래서 시험기간에 어떻게든 컨디션관리하고 마지막 시험 시간 끝나자마자 하얀 포메라니안 되어버리는 랑이가 생각났어
보통 축구부는 내신을 포기하기에 시험기간에는 그다지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어째선지(우리는 아는 이유로) 축구부 내에서 에이스로 꼽히는데도 시험기간에 랑이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는 현민이...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인간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현민이가 랑이 오구오구우쭈쭈해주고.. 사실 수면부족과 스트레스 등등을 여태껏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기에 랑이가 사람으로 돌아온 거 보고는 기절잠에 들면서 포메인지 오브차카인지 모를 까만 털덩어리로 변하는 현민이
생각해보니 둘다 포메가 된 상태라도 서로 부비부비 꽁기꽁기하다 보면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나
둘다 포메가 된 상태 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 현민이는 오브차카인지 모를 까만 털덩어리라고 한거보면 포메가버스임에도 커다란 느낌인가보네 랑이 돌아갈 생각없이 현민이 털속에 숨어서 숨바꼭질하고 있을거 같아 축구부 아침 훈련에서 현민이 퐁 변해버려서 랑이 수업받다 말고 축구부에 출석하러 가기 랑이가 포메 되면 사람되는데에 현민이 부둥부둥이 제일 효과가 빠를테니까 현민이도 랑이 부둥부둥이 제일 효과가 빠를거라고 맘대로 정하기
현민은 의미 모를 코대답을 하고는, 그 대신에 손을 내밀어서 네 머릿결을 따라 머리를 부드럽게 삭삭 쓰다듬었다. 네가 더 이상 이야기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앞으로 시간을 내서 더 이야기할 틈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적어도 오늘 성탄절 하루는 네가 있어서 내게 행복한 하루인 만큼 너에게는 내가 있어서 행복한 하루이기를 비는 게 현민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네가 상자 안을 내려다보다가 이 쪽을 올려다보자, 현민은 평소의 그 무심해 보이는 다정함이 담긴 무표정으로 너와 눈을 마주쳐온다. 상품 상세 페이지에 그렇게 써있었던 게 기억난다. 고래의 꼬리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너는 그것을 집어들고 네 상징을 상자 안에 남겨놓았다.
여우 꼬리도 어떤 의미가 담겨있다고는 했는데, 그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현민의 눈에는 그게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읽혔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가 너에게 날 길들여줘, 라고 은연중에 말해왔었다. 이제는 네가 말하는 것 같아서. 날 길들여줘- 축구공은 나와 아무 것도 상관없는 것이지만 네가 날 길들여주면 난 축구공만 봐도 널 떠올리게 될 거야, 하고.
하루아침에 너처럼 그렇게 할 자신은 없어서, 현민은 너와 오랫동안 함께할 생각이었다.
자기 목걸이를 집어들려던 현민은, 랑의 손에서 목걸이 상자를 받아들고는 서랍에 올려둔 뒤 고래꼬리 펜던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내보이는 네 뽀얀 목을 감싸고 있는 북슬북슬한 울 둘레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니트 위에 고래 꼬리가 드리워진다.
현민이는 둥기둥기보단 앉아있는 랑이 무릎위에 올라가서 쓰다담받는 거 좋아할 텐데 서로 꼭 안고 한숨 푹 잤더니 분명 안고있었을텐데 안겨있는 현민이 올려다보면 현민이도 눈 떠서 랑이랑 마주볼텐데 지금 호감도면 얼굴빨개지면서 호다닥 물러나는 게 아니라 얼굴 빨개지면서도 무방비하게 웃으면서 더 꼭 끌어안을 것 같아
랑은 네가 쓰다듬는 손길에 응했다. 조금 더 머리를 네 손길이 향한 곳으로 기울이는 듯도 하다. 머리 쓰다듬어도 좋아- 쓰다듬어주면 좋겠어, 그런 의미였다. 쓰다듬고 지나가는 손길에 부드럽게 머리카락이 흔들리면 랑이 품고 다니는 향이 났다. 햇살, 비누, 이불, 파우더, 가볍되 달콤한 향이 네 손 끝에 옮겨간다.
"...나 이거 절대 안 푸를래."
너처럼 랑도 무슨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모르는게 분명했다.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던 것 말고는 평소의 곧잘 웃어주는 미소 정도 외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네가 목걸이를 채워주었을 때 랑은 고개를 숙여서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 아래, 가슴 위, 지느러미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팬던트를 만지작거리면서 랑의 입꼬리가 조금씩 동그랗게 말린다. 입꼬리가 콕 들어가는데, 앙 다물고 있어 웃는다기보다는 웃음을 참는 표정이 되었다. 지금 느껴지는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없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표정이다. 뒤돌았던 방향이 완전히 다시 너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아오면, 팬던트를 손에서 놓았다. 너를 바라보았다.
조그만 동작에 네가 실어보낸 의미를 현민은 잘 전해받았다. 구름처럼 떠돌던 너를 내내 쫓아온 소년은 네 조그만 손짓 하나 고갯짓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곧잘 읽었다. 그래서 소년은 자신의 손끝을 기꺼이 너로 흠뻑 적셨다. 네 머리에 자신의 손의 온기를 가감없이 전해준다. 그러고서야 그는 케이스에서 목걸이를 집어들어 네 목에 채워주었다. 잘 됐나 싶어 네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네 목 아래께에 매달린 펜던트를 바라보는데, 시선을 거두려다가 네 옆얼굴이 눈에 걸렸다. 웃음이 나오는데 지금 웃는 게 맞나 싶은 것인지 행복을 이렇게 표현하면 되나 싶은 것인지 흐물대는 표정.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현민은 자기도 모르게, 네 뺨- 정확히는 뺨과 귀 사이에다, 조그맣게 쪽 하고 수줍은 입맞춤을 남기고 말았다.
"목걸이 정도는 하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네 어깨 뒤로 쓱 도망가서,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평소의 그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네가 뭔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현민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나한테도 해줘."
현민은 목걸이 케이스를 내밀어왔다. 거기엔 아직 조그만 여우 꼬랑지가 달린 은 펜던트가 남아있었다.
쪽 하는 수줍고 조그만 소리를, 랑은 들을 수 없었다. 네가 닿았던 곳을 감싸쥐고서 너를 돌아보았다. 손가락으로 콕 찌른 것인지, 아니면 입 맞춘 것인지 모르겠어서 네 표정을 보고서 가늠해보려 했는데, 네 표정이 너무도 평화롭다. 입 맞추고 나면 늘 붉었는데, 그럼 손가락으로 찌르고 도망갔단 건가 싶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자니 네 숨결이 너무 가까이 닿았던 것 같다. 손가락으로 찌르는데 그렇게 가까이 올 필요가, 애매하게 볼과 귀 사이를 찌를 필요가 있는건지. 랑이 생각하기에는 몇 번을 되짚어보아도 네가 입 맞춘 것 같은데, 네 표정이 태연하니 갈피를 못잡고서 혼자 꽃봉오리가 핀다. 톡, 토도독. 네 눈에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바쁘게 하길래 혼자 빨개지는 모습일 뿐이다. 뽀뽀한 거냐 부끄러워 물어보지는 못하고 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너를 비추었다.
채현민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좋아하는_날씨는 "눈 오는 날, 겨울에 맑은 날... 여름에 비 쏟아지는 날." 자캐가_슬픔을_감추는_방식은 "작년 11월에서 12월로 넘어오면서 기타 연주가 많이 늘었어." 자캐가_울먹거리는_연기를_한다면_왜_할까 "...내가? 글쎄. 그런 거 낯간지러워서 못 할 것 같은데..."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첫째. 무언가 네 뺨에 와닿는 순간 확실히 그의 냄새가 가까이 다가왔다. 둘째. 그의 손은 따뜻하고 손가락도 예외없이 따뜻하지만, 네 뺨에 와닿은 건 그것보다 더 따뜻했으며, 딱딱한 편인 그의 손가락보다 더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저 녀석, 귀가 빨갛지 않은가.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없지만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모든 증거가 현민이 저지른 돌발행동을 고발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녀석은 네가 이 녀석에게 당한 게 입맞춤인지 뺨콕인지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다만, 그저 네 얼굴에 곱게 톡톡 피어나는 발간 빛깔을 보고 순진하게도 눈웃음을 지으면서,
"응, 예뻐."
하고, 목걸이를 보고 말하는 건지 얼굴을 보고 말하는 건지... 예뻐졌어? 하는 네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제서야 내놓을 뿐이다. 예뻤다. 얼굴을 고운 빛으로 물들이고, 목에 지느러미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모습이 언제나처럼 예뻤다.
"내가 또 그때처럼 가려줄게."
이렇게- 하고 덧붙이면서, 현민은 양 팔을 벌렸다. 네가 심술이 나서 통통대고 있기에, 그의 옅은 미소에 조금 미안한 기색이 어렸다.
아, 안 돼. 랑이 부리는 심술은 조그만 것이라서 네가 예쁘게 웃어주면 풀리고 말았고, 너의 목소리가 고운 말을 해주면 풀리고 말았다. 그래서 기습 공격 당했다고 부리던 심술이 온데간데 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부으으. 다만 랑은 심술도 제대로 못 부린게 심통났다. 그러니까, 원래 계획대로- 너도 빨갛게 물들이고 말겠다고 생각한 대로 지체없이 움직이기로 했다.
"숙여줘-"
랑이 이렇게 마주보고 서서 너를 안을때면 너의 등허리께를 안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팔을 위로 향했다. 네 목덜미 뒤로 팔을 감으려고 했다. 너와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랑도 발꿈치를 있는 힘껏 들었지만 그정도로는 역부족이라- 네가 높이를 맞춰주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높이를 맞춰주고 나면 너를 꼭 끌어안은 채로 네가 했던 말을 들어준다. 너의 목에도 팬던트가 하나 걸린다. 여우 꼬리가 흔들거린다. 목걸이를 걸어주고 나서는 까치발을 들어가며 높게 너를 안은 목적을 달성하기야 했지만, 랑은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네 뺨에 꼭 입맞추나 싶었는데, 쪽 소리만 난다. 간지러운 숨결과 온기만 가까워졌다가 소리만 남기고 멀어진다. 그리고 네가 그랬듯, 아무일도 없단 듯 목걸이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네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건 축구장 밖에서는 눈치가 낮아지는 현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딱히 별 염려를 안 하고, 현민은 네가 요구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네가 자신을 해꼬지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쳐놓고라도, 네가 자신에게 뭔가 해로운 해꼬지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확실히 방금 멋대로 뺨에 입맞추어버린 건 순전히 현민의 멋대로 한 일이었기에, 네가 그것을 책망하거나 그 대가로 고약한 장난을 치더라도 당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고 현민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숙여줘- 하는 너의 지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현민과 네 사이에는 적잖이 키 차이가 있고, 목걸이를 걸어주려면 확실히 현민이 너와 키를 맞추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민은 네가 해달라는 대로 눈높이가 맞을 때까지 무릎과 허리를 숙였다. 안아줘, 하는 네 말이 기억났기에, 현민은 팔로 네 허리를 얼싸안았다. 어깨는 네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것을 목에 채워줘야 하니까. 폴라티의 목소매 위로 무언가 채워지더니, 목에 미약한 무게감이 걸린다. 현민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여우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게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순간에 현민의 가슴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랑이라고 쓰인 이름표가 가슴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떤 만족감.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모를. 반려견들이 주인에게서 목걸이를 받을 때 이런 기분이 되는 걸까? 아니 그게 이것 같지는 않을 텐데.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행복하면 된 거 아닐까. 그 잠깐의 순간에 현민은 상념에 빠졌고, 그래서 네가 하려는 일에 완전히 무방비한 빈틈을 내어주고 말았다. 눈을 돌렸을 때는 어느샌가 랑이 속눈썹 갯수를 셀 수 있을 거리까지 다가온 뒤였다.
쪽.
하고 소리가 났는데, 소리만 났다. 눈을 감았던 현민은 실눈을 뜨고,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다 개구지게 웃는 너를 보고 네가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 만다. 다시 현민의 눈이 깜빡인다. 그리고... 현민의 귓가에 서려 있던 붉은 물이 현민의 뺨으로 와락 쏟아진다. 그리고 낭패한 표정. 아 당했구나, 하고 현민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부루퉁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현민이 너를 놔주지 않는다.
현민은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팔에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네 허리를 품에 꼬옥 끌어안고는, 그대로 허리를 피며 번쩍 들어버렸다. 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너를 품에 안아든 채로, 그는 토라진 눈으로 널 쳐다봤다. 눈높이는, 방금 너와 현민이 맞춘 똑같은 그 눈높이.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