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만 버티면 닿을 수 있는데 아슬아슬한 곳에서 언제나 너는 용서없이 이별을 고하지 그리고 나는 떨어져 가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무릇 살아있는 존재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때때로 다른 무언가, 누군가와 협력하고 때로는 그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있는 개념이 아니었기에 네발을 사용하는 짐승들도, 하다못해 한번 뿌리를 뻗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에게조차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적으로나마 살아숨쉬고 움직이는 자신에게도 그런 개념이 있을까? 끊임없이 피를 흘려보내는 심장이, 쉴새없이 호흡하는 폐가, 무수한 생각을 떠올리는 뇌가 그저 전기적 자극으로 움직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 개념은 자신을 수용해줄 수 있을까?
비록 되살려낸 존재라 할지라도? 그것을 진정한 자신이라 할 수 없다 해도?
"후후후... 방문 기념품치고는 꽤나 호사스런 물건 아닌가요~?"
옛말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라던가? 과한 포상은 되려 어울리지 않는 인상을 주기 쉬웠다. 물론 그녀가 당신의 부탁을 제대로 완수하기만 한다면 딱히 돼지라 하대될 것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기준에선 주어진 일을 꽤나 느긋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당신이라 해도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지금의 일도 딱히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며,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 이곳의 사람들에게 그래왔듯 그저 도울 뿐이었다. 그저 소소한 보상만 손에 쥐어주면 될 일이니까, 그런 행동이 계산적이고 기계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저 인간의 몸을 입은, 인간 언저리의 무언가일 뿐이니까. 그정도가 그녀에게 합당한 대우일 뿐이었다.
어쩌면, 당장에 이곳에서 끌어내쳐지지 않는 것 또한 감지덕지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즉석에서 만드는 건가요? 뭐, 그것도 썩 나쁘진 않네요~"
앉아있던 자리에서 폴짝 뛰어내린 당신이 옆자리까지 다가와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그 눈길을 따라 맞추다가 싱긋 웃어보였다.
마치 동생을 어르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당신이 잠시 술을 찾는가 싶다가도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 형태로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목소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흐릿했던 시야의 안개도 잠깐은 옅어졌을까? 싱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가볍게 볼을 부비적대던 당신이 다시금 뒤로 물러나며 보상에 대해 다시 내걸자 그녀는 마치 웃음을 참는 사람처럼 어깨가 약간 들썩이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도 참고 있었지만,
"어째 처음 조건보다 보상이 더 늘어난거 같지만... 그것까진 따지려 하지 않을게요~ 그만큼 이게 중대사항이란건 확실히 알것 같네요~"
세 사슬로 묶어 단단히 봉해둔 자물쇠와 그에 맞는 열쇠 하나, 어차피 열쇠는 당신의 몫이었으며 그녀는 흐트러진 것을 갈무리해 재정돈 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수천리 낭떠러지보다, 수백갈래 산길보다, 열길 물속보다도 쉬운 곳이었다. 그저 하나의 통로만 존재할 뿐,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는 그렇게나 단순한 곳이었다.
한 획, 한 획 새겨져서 당신이라는 이름을 써갔지만 언젠가 흐려질 때, 그때는 내가 새롭게 그어줄게. 미카엘은 상냥하게 입질을 하고는 긴 속눈썹을 내리 깐다. 당신을 한가득 담고는 투박한 손길에 마냥 좋은지 몇 번 오물거릴 뿐이다. 셰바에서 보기 드문 약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있었다. 적어도 에만이라는 존재는 그랬다. 실제로도 약한 사람이 맞기도 했다. 사람으로 암만 포 뜬다 하여도 한 명 써는 것도 젖 먹던 힘 다 하고 모든 용기 다 쏟아야만 했지만 그로스만을 마주한 지금은 용기 따위 쏟지 않아도 된다는 차이가 있다. 한 몸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한들. 도톰한 입술이 뺨에 닿자 눈을 꼭 감고 으응, 하고 짧은 앙탈을 부렸다. 싫지는 않았다.
"네 집으로..?"
미카엘은 고개를 기울이려다 멈춘다. 목가에 남은 멍은 조금만 쓸어도 쓰리다. 목을 가볍게 움츠리곤 눈을 감았다 떴다. 배 정도면 괜찮았지만 목은.. 미카엘은 그로스만의 사생아가 자신의 목을 조르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리 허용하였다 한들 그마저도 참지 못하고 주머니의 나이프를 꺼낼 뻔했던 그 순간을. 늑대처럼 그르렁대며 바른대로 불라고 했을 때, 미카엘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려달라고만 빌었던 것 같다. 감히 이 내가, 그깟 쭉정이에게. 살벌한 열기에서 미카엘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갔다.
"..미안해.."
그렇지만 아까처럼 짜증을 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잔잔한 사과를 뒤로 미카엘은 눈동자에 그래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담았다. 가장 먼저 하멜슨 씨에게 얘기하고, 이자벨라 씨에게도 얘기하고.. 감사했다며 은혜를 갚을 날을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또.. 미리 연락을 넣으면 되지만 그래도 되나? 어쩌지? 조만간에 리아나, 제롬, 아스타로테 세 사람이 만나면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좋은 친구니까. 프로스페로는.. 그 친구는 늘 카페에서 만났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말은 해야겠지. 페퍼에게도 말 해야 하는데..
"으응. 언젠가는 꼭 소개해 줄게. 좋은 친구들이니까.. 너와도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머뭇거리다 팔을 벌려 다시금 페로사를 끌어안으려 했다. 당신의 열기를 진정시키려 했던 의도도 있지만, 얘기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넘겨버리자니 앞으로 영영 그럴 것만 같았다. 새파란 멍을 쓸어내는 손길에 흠칫 떨며, 미카엘은 날카로운 미소를 마주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안토니 디트리히. 별 볼일 없는 4천 위대 조직의 말단 킬러로 알려졌지만, 본명은 볼프강 그로스만. 요제프 그로스만의 사생아. 그리고 내.. 철천지원수."
한 번도 남에게 털어놓은 적 없었기에 이다음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진 고민한다. 입술을 오물대며 한 단어씩 고르고 골라 더듬더듬 뱉을 적에, 얼굴이 점차 파랗게 질려갔다. 우린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 계획을 아주 예전부터 준비했어. 5년이면 많은 시간이지. 어디부터 악연이 이어졌을까.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나를 과보호하셨어. 그로스만에게 아버지를 잃었으니까. 또래라고는 훨씬 나이가 많은.. 외숙부가 전부였고, 신문사로 위장한 건물 7층 소회의실이 내 방이었지. 그런 내게 친구가 될 거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어. 트톡에서 시작해서 끝내 이메일까지 교류한 친구라고 해도.. 많은 의지가 됐지. 그 친구는 제법 재밌었어. 그리고 내 사정을 털어놓자 탈출할 방법을 알려줬지. 그렇게 내가 탈출하던 날.. 소식이 끊겼어. 이쯤되면 알겠지."
미카엘은 쓰게 웃었다.
"그 녀석이 볼프강이야. 그래, 아마.. 아주 예전에 한 번 나갔던 날에, 잔당과 대치한 날이 있는데.. 그 녀석이 그때 내 존재를 알고.. 어머니가 무너지도록 노렸던 것 같아. 그, 그래서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내 세력을 열심히 키웠어.. 지금 와서야.. 용기를 내서..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올 수 있게끔 먹이를 던졌고.. 외숙부인 용왕을 끌어들였어. 외숙부도 그로스만의 피해자라서.. 나를 도와주신댔어."
미카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공포로 시작된 떨림은 사시나무 떨듯 커져갔고, 종극엔 분노와 형용할 수 없는 혐오로 얼룩졌다.
"그리고 나는.. 줄곧 봐줬어. 계속해서 신뢰를 주고, 그 녀석이 말했던 좋은 친구가 되던 날에. 그 녀석의 조직이 커지고 커져 다른 세력도 집어삼킬 때.. 조직은 용왕의 손에 던져버리고 머리는 내가 치자고 생각했거든."
미카엘은 미소 지었다. 역설적이게도 분노에 몸 떨면서 맑고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짐승새끼는 살찌우고 살찌워서 걷지 못할 때, 숲에 사냥개를 풀어두고 몰아 사냥하는 것이 유희잖아. 난, 난 틀리지 않은 거잖아.. 그렇지?"
권총을 쓸만한 것으로 하나 구해줘야겠다고 페로사는 생각했다. 총알만 있다면 나이프보다 훨씬 품이 덜 드는 게 권총이니까. 물론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았지만 여긴 뉴 베르셰바가 아니던가. 오히려 지금껏 당신이 흔한 권총 한 자루 없이 나이프로 해결을 해왔다는 게 페로사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인적은커녕 나뭇잎 한 장 떨어진 적 없는 호수였다. 어느덧 물가에 조그만 여우 한 마리가 와서 퐁당대고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파문이 이는 모양이 예쁘고 마음에 들어, 호수는 여우가 오래 머물렀으면 했다. 조그만 앙탈을 부리는 모습에 페로사는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응. 내 집인데, 우리 집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해놓고 잠깐 뜸을 들인다. 스스로 되새겨보자니 쑥스러웠던 걸까 명백히 분노는 아닌 다른 감정으로 페로사의 귓가에서부터 뺨까지 혈색이 쭉 올라온다. 그녀는 시선을 쏙 피했다. "그, 당장 강요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네가 거처를 바꿨으면 해서. 슬슬 한 번쯤 거처를 바꿀 때도 됐잖아." 피한 시선이 닿은 곳은 레이스 호텔의 객실이다. 잠깐 말 돌리려 피한 시선인데, 왠지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이랄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마치 이삿짐을 아직 풀지 않은 공실 같아서 적잖이 쓸쓸해보이는 게 마음에 켕겼다. 페로사는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사과하지 않아도 돼. 네 잘못이 아니니까." 멍에 손을 대자 움찔하는 당신의 모습에 페로사는 바로 손을 떼었다. "그 놈 잘못이지. 그 놈이지? 네 룰을 무시하고 널 괴롭힌다는 진상이." 하며, 페로사는 팔을 벌려 당신을 품 안에 꼭 안아들이고는 등을 토닥토닥 쓸어주었다. 그리곤 당신의 말을 경청했다. 물론, 당신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극단에 달한 부정적인 감정은 일차적으로 그걸 품은 사람부터 먼저 좀먹어들어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당신이 힘겹게 이야기를 끝냈을 때 문득 당신은 당신의 손이 커다랗고 따뜻한 무언가에 감싸이는 걸 느꼈다. 페로사의 손이 덜덜 떠는 당신의 손끝을 꼭 맞잡고, 흔들리는 당신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프지 않게, 상냥하게 죄여드는 느슨한 압박감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역시 전부 다 그 망할 놈이 너한테 협잡질을 한 탓이잖아." 하고 페로사는 낮은 목소리로 확언하듯 말했다. "네 분노가 거기서 끝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가장 높은 데서 목을 치고 싶은 네 마음... 아주 잘 알아. 네 계획은 틀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짐승을 살찌우는 데에 네 목을 뜯어먹여서는 안되지. 앞으로 그 녀석, 너 혼자서는 절대 대면해주지 마.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 최근에 너희 외삼촌네 부하가 앤빌에 도청장치를 깔다 걸렸는데, 그 때문에 르메인의 주의를 끌게 돼서 몸을 사려야 한다던가..." 하던 페로사는 자신의 몸에 남은 숱한 흉터들 중 손등에 남은 흉터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내 복수명단에서 그로스만의 이름은 사실 빠졌었어. 도살자의 서커스의 붕괴는 요제프 그로스만의 죽음이 그 신호탄이었으니까, 내가 복수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시점에서 요제프 그로스만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지. 그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것은 몰랐고. 그렇지만, 그로스만이라는 작자들이 또다시 내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겠다면─ 말했듯이, 난 두 번 다시는 안 뺏겨."
"미카엘, 나는 네 사자야. 네 방패가 될 수도 있고 네 검이 될 수도 있지. 그 짓 하면서 벌어먹고 살았으니까. 아직까진 쓸만하다구."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네가 그놈을 대면해야 하겠다면 날 불러."
"아니면 그놈이 한동안 네 목에 그 더러운 손 갖다대지 못하도록... 손을 좀 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하고 말하던 페로사는, 문득 당신의 얼굴에 걸려있는 맑고 사랑스러운 미소와, 아직도 품 안에서 조금씩 떨고 있는 당신의 몸에 시선을 두었다. 페로사는 당신을 바라보고 마주 웃어주었다. 생각한 것처럼 완전히 웃는 표정이 아니라 조금 슬프게 웃는 표정이 되어버린 그것은, 당신을 위한 다정하면서도 약간 애틋한 미소였다. 그녀는 당신을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많이 힘들었겠네." 미워하는 감정은 커지면 커질수록 마음에 품기 힘드니까. 분하고, 이가 갈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겠지. 목구멍으로 밥 넘기기도 힘들었을 거야. 누군가를 그토록 미워하게 되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좀먹는지 나도 너무 잘 알아. "그렇지만 이제 네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어, 미카엘. 내가 여기 있으니까."
시안은 상인이다. 상인은 사업가와 다르다. 어떤 의미로 다른가. 사업가와 상인은 그 자질부터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만,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다. 상인은 결국 거래가 노동의 본질이다. 주고 받아 공평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그들의 일. 공평하지 못한 거래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사업가는 공평하지 못한 거래를 창출해내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노동도 하지 않으며, 그 불공평에서 이득을 얻어내는 잔머리만 굴려대는 것들이다. 그 본질을 유려한 말솜씨, 비즈니스매너, 시안이 겪어보았듯 흐름을 풀어주고 잡아주는 완급으로 가리는 것이 그들의 자질이다.
지금 오가는 거래는 분명 불공평한 거래. 그 불공평은 진에게 날을 향하고 있지만, 진은 그것을 반기고 있다. 사업가는 결국 -에서도 +를 얻어내도록 만드니까. 시안의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만들어, 은혜를 입힌다.
"물론~ 당신과 나 공동 명의로 만든 회사에서 나온 이득은 제가 양심적인 개런티를 좀 가져가겠지만요? 세력으로 들이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달라고 하는 물건만, 큼직한 것들 사이에 잘 숨겨와주면 되는 거예요. 감언이설이었다. 그러나 분명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진은 손을 내밀었다. 가죽장갑이 없으며 반지가 손가락마다 끼워져있는, 고생이 어린 손바닥이었다.
총이라는 것은 본래 원거리 교전을 위한 직사무기. 그 중에서도 장거리 사격을 위해 고도의 정밀함을 가진 무기는 저격총. 그리고 그러한 저격총 중에서도 장비의 무력화를 상정한 특수한 목적으로 설계 된 대전차 저격총.
"후후... 후후후~"
그렇기에 사수가 타겟의 혈흔으로 점철 될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색 머리칼, 흰 피부, 휘날리는 옷자락에 곳곳에 묻어나 나타내는 명백한 살육의 흔적들. 무엇보다 저 섬짓하리만치 즐거워보이는 웃음. 지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맹수가 바로 캄파넬라의 수많은 악몽 중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여자-
"오늘도 늦었네? 하얀 꼬마 마녀 아가씨~?"
히메라기 요시코가 여전히 살가운 목소리로 과거의 전우를 맞아주고 있었다. 이번엔 총부리가 아닌, 제대로 사람의 말을 하면서.
"후후, 이런 곳엔 무슨 일? 길을 잃은 거야? 여긴 바깥이랑 달라서 어린이들이 놀만한 곳은 못 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내 한 걸음씩 바로 앞까지 다가와 캄파넬라의 눈높이에 맞추듯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는 것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없어보였지만 무언가가 확실히 달랐다. 그 검붉은 눈동자에는 군으로 일했을적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인간으로서의 편린은 온데간데 없었고, 이젠 아예 다른 무언가로 탈피한 듯이 이질적인 광채만이 그득히 들어차있었다. 무엇보다 캄파넬라를 죽일듯이 덤비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는 이제 눈에 뵈는 것 없이 팀마저 물어뜯는 맹수 대신에, 그나마 과거의 연 정도는 알아 볼 수 있는 인간분쇄기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캄파넬라가 정할 몫이지만, 이 도시가 그녀에게 퍽 잘 어울리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미친 사람들 사이에 정상인이 있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처럼, 이 도시가 그녀를 키웠고, 이 도시의 무언가가 그녀의 억눌려있던 살의를 밖으로 꺼내고 정제시켰다.
"앗, 그럼 설마 이 언니가 보고싶어서 온 거야? 그런거야~? 꺄아~★ 이리 와, 안아줄게!"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미친 여자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요시코가 갑자기 팔을 뻗어서 캄파넬라에게 몸을 던지다시피 해 자신의 품으로 냉큼 끌어안으려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