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신나게 스키를 타고 온 소라는 슬슬 몸이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긴 아침 일찍부터 계속 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는 온천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몸을 녹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행히 사람은 그다지 없어보였기에 어느 정도 푹 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가볍게 샤워를 한 후,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으로 들어갔다
차갑게 식어있던 몸이 따스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절로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시원하다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며 따스한 물의 온도를 즐기는 도중, 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연우의 모습이 보이는게 아니던가. 물에 잠겨있는 손을 살짝 들어올려 그녀는 연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요. 연우 씨! 연우 씨도 지금 온천에서 쉬려고요?"
혼자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있는게 좋겠거니 생각하며 그녀는 아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연우를 빤히 바라봤다.
스키장이라..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스키를 좋아하는것도 싫어하는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스키장 자체에는 큰 생각이 없었으나. 요근래 둔한 본인도 느낄만큼 잡념이 많아지고 감정 기복이 커졌다는 고민덕에 제대로 스키장을 즐기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놓고 또 그 사람하고 같이 있을때는 바보마냥 집중해버리니까..
"설마 이럴줄은.."
뭐 딱히 그녀가 감정이 없었다거나 하는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죠,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랍니다. 다만 그저 설마 자신이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을뿐이죠.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함께 잠시 숨 돌리고자 온천으로 향한 그녀였습니다..
"어라, 안녕하세요 대장님."
그 자리에서 당신을 만날줄은. 최근에는 다소 부드러워진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당신과는 딱 상사라는 느낌이 있다보니 말이죠. 사적으로 잘 어울린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살짝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씻은뒤 살포시 탕에 발끝부터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뜨거워라.."
그녀는 어른들이 말하는 탕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 라고 하는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장님이고 부르는 거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아요? 지금은 엄밀히 말해서 사적인 시간인데. 여기서까지 지휘자로 있을 생각은 없거든요?"
물론 그녀와 사적으로 친한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대장님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라는 듯, 소라는 아주 살짝 볼에 바람을 부풀었다고 집어넣었다. 물론 그렇다고 강제할 생각은 그녀에겐 없었다. 그렇게 부르겠다면 어쩔 수 없이 부르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물론 그녀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것은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탕에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소라는 벽에 등을 편하게 기댄 후에 살며시 고개를 위로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노천탕은 아닌만큼 당연히 천장이 있었고, 그녀는 그 천장의 무늬를 눈으로 살며시 살펴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스키장은 좀 잘 보내고 있어요? 일단 위에서 주는 휴가인데. 워낙 대원들이 일을 잘해야 말이죠. 정말."
덕분에 이런 곳도 오는 거 아니겠냐고 괜히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는 조금 더 몸을 물에 담궜다. 정말 지금 이 순간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히어로 굿즈를 손에 넣는 순간이었으니까.
/두 캐릭터가 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알 수가 없기에 그에 대해서 답은 조금 애매하네요. 물론 몰래라도 꽁냥거리면 아마 둘 다 바로 눈치챌 것 같긴 하지만요!
그녀와 알고 지낸지도 꽤 여러 날이 지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원들이 일하는 스타일 ㅡ대부분은 예성이 보고하고는 했다.ㅡ 은 파악하고 있었고 그녀가 어느 정도 일을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소라는 딱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적어도 온천인 지금 이곳에 서류를 안 가지고 온 것이 어디인가. 처음에는 정말 일만 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꽤 풀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소라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살풋 웃음소리를 냈다.
"저요? 저야 뭐, 하루종일 즐겼는걸요. 예성이에게도 같이 타자고 했는데 아침에 조금 타다가 다른 곳을 둘러보겠다고 가버려서."
여러모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으로 보아 아쉽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일이나 그 다음 날에 다른 대원들과 타면 된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태연하게 아쉬운 표정을 없애버리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라타토스크에 대한 것을 잊어도 되니까 마음은 편하네요. 요즘 그쪽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거든요. 진짜."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는 범죄조적인 라타토스크. 허나 그 목적이 뭔지도 모르고 그 안에 누가 소속되어있는지도 모르니 보통 답답한게 아니라는 듯,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한 한숨이 섞여있었다.
"이전까진 그저 '신'에 심취한 이들이 문제를 일으킨 정도로만 보였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니까요. 그 뭔가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적어도 경찰에게 있어서는 그리 좋지 않은 이들이라는 것은 분명해요."
멤버가 누군지도 모르고,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도 모르겠고,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지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건 익스퍼들은 모두 병기라고 주장했다는 사실로 보아 일단 기본 사상이 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과격하고 위험한 이들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물에 젖은 손으로 매만지다가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저번에.. 아. 그때 그거 말인가요? 괜찮아요. 익스퍼 의사 분이 봐줬거든요."
덕분에 이젠 아프지도 않고 딱히 흉터나 상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며 소라는 괜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굳이 말하면 퍼디난드 씨나 다른 분들이 더 걱정이죠."
다른 건 몰라도 퍼디난드는 소라의 눈앞에서 다치지 않았던가. 별 탈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다 소라는 괜히 장난스럽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제가 없는 동안에 다들 일은 잘 한 모양이더라고요? 예성이가 철저하게 잡았나. 혹시."
단순히 테러나 범죄의 수준을 넘어선 기분. 그녀는 말로 설명은 할 수 없어도 저들의 뜻대로 이뤄지면 정말 위험할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들의 진짜 목적에 대해 실마리도 없으니... 그녀는 다시 스트레스가 솟는거 같은 기분에 푹하고 머리까지 담궜다가 스르륵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요즘들어 다들 다치는 빈도도 늘었고.."
처음에는 범죄의 규모는 크더라도 제압하는데 크게 다치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죠. 그녀는 잘은 몰라도 외상후 장애라던가 그런게 있으니..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솔직히 흉터라던가 그런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의료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이런저런.. 소리도 듣고 있으니까요."
그녀야 남들이 괴물이라 부르든 뭐라하든 별 관심도 없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어떠려나요. 표정만 봐서는 화내는거 같았지만 그게 그냥 적한테 화내는건지 그녀로선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당신의 말에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습니다.
"저는 그런거 없었는데.."
실제로 예성이 잡았는지는 둘째치고. 잡았다고 한들 그녀가 일에 관해서 지적받을게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뭐 본인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익스퍼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소라는 판단했다. 그런 것치고는 뭔가 하는 짓이 전부 익스퍼에게 있어서 몰리기 쉬운 것들 뿐이지 않던가. 마치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려는 것처럼.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역시 딱히 익스퍼가 아닌 이들만 노리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피해자를 만들었으니까. 물론 그럴려고 한 것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만약 익스퍼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라타토스크가 움직이는 거라면 적어도 익스퍼가 휘말리는 것을 피하게 하지 않았을까..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체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한들 우리들은 병기도 괴물도 아니에요.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에요."
적어도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소라는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누가 뭐라고 한들, 자신들은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려는 것처럼. 정말로 진지하게.
"그래요? 사실 예성이도 그렇게 막 잡는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땡땡이를 부리면 그건 좀 뭐라고 하겠지만, 일만 잘하면 딱히 뭐라고 하는 애도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나중에 확인 정도는 해보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라는 괜히 또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 물의 따스함을 즐겼다.
"아무튼 지금은 라타토스크에 대한 것은 잊자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일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물론 밝혀진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밀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소라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익스퍼는 대체 무엇인걸까. 왜 자신들은 이런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런 의문이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있어서는 없어져있었다. 언제부턴가 아주 당연히 이건 자신의 힘이었고,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금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에 젖은 손으로 자신의 뒷머리카락을 만지던 소라는 다시 손을 아래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스퍼도, 비익스퍼도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요. 한쪽을 괴물이라고 칭하고 살아갈 순 없잖아요? 결국 모두 다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저희는 경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고요. 익스퍼는 위험한 힘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을 지키고 수호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물론 그 계획이 성공할지는 소라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비익스퍼들이 익스퍼를 인정할 수 없고 모조리 다 괴물로만 본다면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럼에도 소라는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실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에요. 아. 일을 내팽겨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이 온천이 너무 따스해서. 좋지 않아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