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면 텅 빈 놀이터에 연둣빛 풀씨 하나 살짝 물어다 놓고 날아간 바람의 날개를 기억하는 눈이 있어 아이는 한발짝 한발짝 어른이 되어가지 색이 다르고 성이 다른 것을 차이라 말하고 차별하지 않는 고은 네가 내 죽음을 네 죽음처럼 보살피는 사랑이지 절망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이지
사실 여럿이서 하던 혼자서 하던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둘 중 뭘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혼자서 하는게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협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묘한 알력 같은걸 보는게 좀 꺼려진다고 해야하나. 다툼을 해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 그래서 가방에 든게 많구나. "
책상에 앉아서 태블릿과 보조 모니터, 그리고 필기용 펜만 꺼내놓은 나와는 다르게 참고자료들도 잔뜩 책상에 늘어놓고 있었다. 저래서는 공간이 안나올 것 같은데 묘하게 배치가 잘 되어있어서 움직이는데엔 무리가 없는듯 했다.
" 나는 참고 자료도 그냥 보조 모니터로 보는 편이라서. "
남들이 흔히 쓰는 태블릿과는 다른걸 쓰고 있어서 필기감이 조금 좋지 않은 것을 빼면 자료를 여러개 보기엔 이런게 좋았다. 보조 모니터가 큰 편도 아니라서 책상에 올려놓는 것도 무리는 없었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오늘 사용할 자료들을 미리 띄워놓았다. 그러자 금방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 와 진짜 졸려. '
하지만 아침에 약한건 어쩔 수가 없는지 커피를 마셔도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기가 힘들었다. 졸음이 올때마다 차가운 커피로 목을 적시며 잠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커피는 금세 다 마셔버렸고 결국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태블릿에 들어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에 들어둔 수업할 때 필요한 책들을 미리 검색해서 받아둔 상태였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말하자면 전부 e-book 파는 곳에서 제 가격주고 산 것들이다. 요즘엔 이렇게 대학교재들도 전부 pdf 로 팔기에 대학생들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줄 수 있었다.
" 응? 딱히 다를 것은 없어보이는데 ... 구경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
이 태블릿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서 마음껏 구경해도 괜찮았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태블릿은 집에 두고 다니니까 남이 볼 일은 없다. 이상한게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라이버시가 조금 있기도 했고. 그러다 교수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칠판을 보면서 수업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때 ...
' 헉 졸았다. '
옆에서 누군가가 찌르는 느낌에 고개를 벌떡 들어서 옆을 바라본다. 내가 졸고 있는 것을 봤는지 은새가 깨워준 것 같아서 입모양으로 고맙단 인사를 하고선 수업에 집중해본다. 다행히도 잠깐 졸았다가 깨서 잠은 거의 다 깬 상태였고 덕분에 수업이 끝날때까지 졸지 않을 수 있었다.
" 은새 아니었으면 수업 끝까지 잘뻔했네. "
수업이 끝나고 가방에 태블릿을 챙겨넣으며 말했다. 예전에도 호기롭게 아침 수업을 들었다가 아침마다 졸음과 싸워서 이기느라 죽는줄 알았던 경험이 있다. 당연히 그 수업은 학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고 ...
" 아 맞다, 이거 구경하고 싶다고 했지? "
이미 가방에 넣었던 태블릿을 다시 꺼내들며 말했다. 다행히 다음 수업은 바로 옆 강의실에서 진행하는지라 굳이 태블릿을 가방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하긴 요즘 자료들은 다 pdf로 구할 수 있거나 쉽게 전자책 파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은새는 기계공학과답지 않게 종이책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이었다. 가뜩이나 책도 많아지는데 역시 전자책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무언가 입으로 뱉어내지는 않고 세현의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해도 괜찮다는 말에 은새는 눈을 반짝였지만 수업이 시작되는 바람에 구경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꾹 눌러담고는 수업에 임했다.
꾸벅꾸벅 조는 세현을 콕콕 찌르니 세현은 금방 깨어났다. 은새는 고맙다는 입모양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남는 시간은 졸지 않고 다 듣는 모습에 은새는 속으로 뿌듯해했다. 물론 그 생각이 겉으로도 다 들어났지만.
“아니에요. 아침에는 졸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은새는 아침잠이 없는 편이었다. 차라리 저녁에 있는 세미나 같은 것에 간다면 꾸벅꾸벅 조는 쪽은 은새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세현이 태블릿을 꺼내 보여주자 눈빛을 반짝반짝 빛냈다. 물론 책상 위에 있던 짐은 그새 가방 안에 넣고 차곡차곡 넣어놓기를 끝낸 참이었고.
차라리 저녁 잠이 없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평소엔 새벽 3시쯤에 잠드는게 일상이니까. 그냥 늦게 자서 아침에 졸린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 ... 할 말은 없지만 애초에 그 시간까지 잠이 안오니까 내 입장에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될수록 더욱 활기가 넘친다.
" 겉은 그렇게 달라보이는건 없지만 막상 안쪽은 많이 다르지? "
내 태블릿을 가져가서 요리조리 살펴보는 은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디자인은 그렇게까지 차이는 안날꺼고 내부에 들어간 소프트웨어만 좀 다를뿐일테다. 교류가 거의 없던만큼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들과 수인들의 것이 판이하게 달랐는데 이런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의 UI 디자인도 조금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 그래도 언어는 같으니까 조금 둘러보면 금방 쓸 수 있을꺼야. "
어차피 같은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인간이나 수인이나 같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 태블릿을 살펴보는 은새에게 말한뒤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갔다가 오는 길에 자판기가 보여서 차가운 음료수를 두개 뽑아서 가져와 은새에게 하나 건네주며 말했다.
" 그래도 오늘 수업은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이거 듣고 하나만 더 들으면 끝이잖아. "
그리고 이 뒤의 수업은 조금 텀이 있어서 공강 시간이 생길 예정이었다. 공강땐 뭘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대학생들이 공강시간에 할 일은 하나뿐이다. 밥을 먹는 것.
성능으론 거의 차이가 없고 기능 면에서도 별로 차이가 없는데 그저 UI가 달라서 새로 적응해야하는 기기라면 아무도 새로 구입하지 않을테니까. 그걸 알아서 이런 전자제품은 서로에게 수출을 하지 않고 대부분이 내수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좀 더 교류가 진행된다면 그런 부분에서도 교류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 그렇게까지 볼게 있어? "
화장실을 다녀와서 음료수까지 뽑아올때까지 계속해서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는 은새를 향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까지 달라보이는건 없는데 은새 눈에는 또 다른가보다. 음료수를 건네주고 의자에 앉은 나는 태블릿을 다시 받으며 은새의 말에 답했다.
" 점심 먹어야지 ...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근데 이렇게 일찍 점심 먹는건 오랜만이네. "
사실 이 수업 시간이 끝날때까지도 자고 있으니까 말이야. 남이 보기엔 조금은 나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작게 웃었다. 쉬는 시간이 금세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다. 전 수업시간엔 상당히 피곤했지만 이번 수업은 다행히도 버틸만했다. 수업 내용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으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버렸고 레포트가 있다는 말과 함께 나가버린 교수님의 등 뒤에 대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한번 질러본다.
" 저번 주도 레포트 내주셨는데. "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니까!
" 그럼 오늘도 한은새씨의 맛집 투어를 즐겨볼까합니다만? "
한쪽 눈을 찡긋하며 얘기한 나는 먼저 강의실을 나와서 문 앞에서 은새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안녕 세현주. 월요일 점심부터 안 좋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너무 미안해. 다름이 아니라 1:1을 중단할 수 있는지 묻고싶어.
정말 세현주나 세현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 개인적인 문제라서 더더욱 미안하다 ;ㅅ; 사실 이 스레를 하면서 은새라는 성격의 캐릭터를 처음 굴려보는데 그러다보니 글을 쓰는데 있어서 너무 어렵더라구. 이번주는 계속 바쁜 것도 있었지만 답레가 늦어진 것은 은새라는 캐릭터가 자꾸 손에 안 익은 탓도 있는 것 같아... 사실 계속 하다보면 괜찮아지겠지, 괜찮겠지 계속 생각했었는데 역시 잘 안되더라구.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너무 늦은 타이밍인 건 아닌지, 세현주에게 너무 미안해서 노력을 해봤는데도 역시....
세현이라는 캐릭터 정말 좋아했고 대학 생활도 너무 좋았는데 이런 이유로 중단을 요청하게 되어서 나도 많이 슬프고 아쉬워... 내 역량의 부족두 느끼고 말이야. 정말 세현이나 세현주 문제는 없으니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현주는 정말 좋은 파트너였구... 정말정말정말 미안해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