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참견에 현민은 겁 좀 낼 수도 있죠, 하는 대답을 마음속에 꼭꼭 접어넣었다. 무심하게 굴다가 진짜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무심하게 굴 수도 없었고 굴고 싶지도 않았으니, 과보호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현민이 생각하기엔 그 편이 나았다. 네가 갑갑하다고 하면 서로 이야기하면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남자친구니, 여자친구니 같은 연분홍빛 말이 너와 이 아이 사이에 붙기에는 이르고 낯선 것은 현민도 잘 안다. 그러나 이미 붙어버린 말을 굳이 쓸데없이 아니라는 말로 떼어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너에게 아프게 가닿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이다. 지금도 네 머리를 땋을 때 네가 아파할까 봐 조심스레 당기고 있는 것처럼.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마음이 아직 어설프니까. 물론, 그 눈치없는 배려에 토라져도 된다. 네가 토라져서 곤란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널 탓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곱고 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심통이 난 듯한 시선을 보면, 자신이 얼굴을 붉혔을 때 네가 갑자기 싫으면 그만두겠다고 물어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얼굴 빨개질 때마다 네가 왜 자신을 더러 자신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귀엽다는 말을 내밀어온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더러 왜 귀엽다느니 하는 말을 했는지.. 좀 알 것 같아."
하면서, 그는 네 머리를 마저 맺어주었다. 그러나 네가 거울 대신에 현민의 눈을 바라봐오며 질문하자, 현민은 눈을 깜빡였다. 뺨이 좀더 붉어지는 것도 같았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시더우드향 스킨 냄새를 매화 향기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예뻐. 정말로."
뭐라 솜씨좋은 대답 같은 것을 할 만한 기교는 없었기에, 현민은 그냥 있는 대로 솔직히 대답했다.
네가 말한게 좀 더 무겁다. 랑은 칭찬이 헤펐다. 귀엽다고 말하기도 쉬웠고, 예쁘다고 말하기도 쉬웠다. 겉치레 뿐인 칭찬, 진심이 묻었나 싶은 말- 그런 말과 네가 느끼고서 하는 말이 같을 리 없다. 그리고 랑은 또 툴툴대고 싶었고 그래서 말끝이 늘어졌다. 날 좋아한다고 하는 네게 귀엽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게도 귀엽지 않다면 어떡하겠느냐고, 콩깍지 쓰였을 너인데.
랑은 네가 맺어준 머리카락을 넘겼다. 랑의 머리끝에서는 포근한 향이 날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꽤 많다. 이렇게 무슨 답을 할지 모르고 헤매지 않을 만큼 들어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름처럼 거리를 둔 이후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의미없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떨리고 있다. 과잉 반응이야, 과민 반응이야- 랑은 생각했다. 퉁명스레 답할 줄 알고 있잖아, 나- 결국 랑은 답을 못하고 있다가 너를 올려보았다.
너는 가벼운 만큼 자주 많이 얹어주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톡톡 찢어 던져준 그것들에 이끌려온 게 빵조각만 주워먹고 날아가버릴 비둘기떼가 아니라 그 빵조각을 뿌리고 있는 너를 본 커다란 검둥개였다는 점이 네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밀어내려고 해봤는데, 전혀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워져버린 이 가무잡잡한 녀석. 그 스스로도 생각보다 자신이 너에게 너무 빠진 것 같아서 어안이벙벙하고 있는데, 너에게는 오죽할까. 너는 무게를 언급하며 통통 심술을 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 콩깍지 쓰여 너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이 녀석을 네가 다루기 쉬운 거리까지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말로 밀어내고 싶은 거라면 더 단호하고 강하게 밀어내야 하는데, 네가 그러지 않는 탓도 있었다. 지금도, 너한테 예쁜 거 좋아, 라고, 너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로 그의 귓가에 겨울꽃 한 송이를 또 꽂아주지 않았는가. 쓸쓸하고 고즈넉했어야 할 계절이 너로 곱고 연연한 하늘빛으로 핀다. 막막한 하늘빛으로 올려다보는 네 모습에 문득 온 세상이 네 색으로 가득찰 것만 같아서, 구름같은 향에 조금 취할 것 같은 기분으로 현민은 나직이 대답했다.
네가 랑을 예쁘게 보는 만큼이나 예쁘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눈을 감았다 뜨는 널 바라보다가, 눈을 뜨면 꼭 눈을 맞추고서 말했다. 예쁘다고 말한 이유는 하나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뻐보인다는 말. 랑은 그 말을 네게서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그 마음만으로도 행복해서 짓는 웃음은 객관적으로 누가 보나 분명 예쁘다고 할텐데- 네가 랑에게 그렇게 웃어주던 걸 랑은 기억했다. 언젠가는 좀 더 수줍게, 랑도 그런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기약했다.
"응-"
랑은 목례를 건네는 네 옆에서 똑같이 가볍게 목례를 하는데, 소리내어 인사하진 않았다. 마지막 심통이다.
"자."
손을 내밀었다. 검은 숏코트 소매아래에서 손가락 끝이 펼쳐져있다. 랑은 네가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면서 널 바라본다. 다음 목적지는 아마도 피어싱샵일텐데, 랑은 지금부터 겁을 먹을 것 같아 조금 바빴다. 벌써부터 겁 먹으면 안 된다고, 괜찮다고- 지금은, 아직은 네 앞에서 괜히 그렇게 티내지 말자고 랑은 되뇌었다.
향이려니 하고 속에 들어찬 것이 사실 꽃봉오리였던가, 너 예뻐, 하고 툭 단정하는 네 말에 곱게 지는가 했던 철이른 홍매화가 또 한가득 피어난다. 그러나 이젠 뭐라 퉁퉁대고 싶지도 않고, 그냥 가슴속에서부터 얼굴에까지 네가 차오르는 기분이 조금 익숙해서, 예쁘다는 그 말이 행복하다고 느껴져서. 언젠가는 네게도, 내가 이런 행복으로 남았으면 하고, 네 몰래 속으로 누구에게 보내는지 모를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서야 현민은 손을 내밀어서 랑의 손을 꼬옥 쥐었다. 피어싱샵에 혼자서 갈 때는 겁을 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겁을 내면 걱정해주고 손을 잡아줄 사람이 옆에 하나 있다. 그러니 오히려, 이제는 겁을 내도 될 것이다. 악세사리 샵을 등지고 나왔다. 하늘은 어느새 완연한 밤이고, 늦가을 바람은 쌀쌀하다. 피어싱 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애초에 악세사리 샵 가판대 앞에서 시선만 조금 돌리면 눈에 딱 들어오는 거리에 있었고.
이제 확인했다 랑이가 같은 피어싱샵을 갔을지는 샵 분위기에 따라 다를 거 같아 어떤 느낌으로 생각해? 물어보고 있지만 답레는 언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
현민이가 우울해하면 랑이는 음 옆에 있어줄거야 안아줄텐데 현민이가 안는 걸 원하면 안겨있을거고 안는것도 안기는것도 싫다면 옆에 꼭 붙어있을거야 기분이 나아질때까지 옆에 있어준단건데 한편으로는 자기 때문일까 싶어서 말은 함부로 못할거 같다 "싫은 건 말해줘, 이야기하고 싶으면 말해줘. 옆에 있을게." 이게 지금의 랑이로서는 최선이겠다
>>653 사장님의 귀가 좀 화려하긴 한데, 샵 자체는 정갈하고 깔끔하며 중립적인 느낌 소녀소녀하고 예뻐서 피어싱이라기보단 주얼리에 가까운 것들에서부터, 무난한 것들도 귀여운 것들도 예쁜 것들도 있고, 현민이 취향에 맞을 만한 펑키한 피어싱까지 폭넓게 다루는 가게라고 생각해두고 있었어
현민이가 할 대답은 아마 "같이 있어주면 그걸로 충분해." 원래는 안아줘- 하는 말도 덧붙일 것 같았는데 랑이가 먼저 안아준다고 하니까 그 말은 안하겠다... 랑이... 천사야... 어쩐지 구름같더라니 하늘에서 와서 그랬구나 천사였구나 랑이 때문에 우울해진 상황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젠 랑이를 마음놓고 좋아하고 있으니까, 랑이 생각하다가 우울해진 거라고 해도 반응이 크게 다르진 않겠다
(꼬옥) 어서와 랑주 ( x x) 아니 이 시간까지... ( 8 8) 나도 밤늦게까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깨어있었어 우연이라 나는 괜찮지만 랑주가 반복되는 우연이나 제삼자의 개입을 남용하는 게 부담스럽거나 어색하다고 생각되면 굳이 그런 상황 꺼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술해도 돼 어디까지나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써나가는 이야기니까 우리 편한 대로 하면 그걸로 좋아 그리고 핑크빛은.. 그때 한번 투정부려버렸는데 랑주가 엄청 핑크핑크하게 해줘서 충분히 행복해 랑주가 아직은 느긋하게 천천히, 하고 생각한다면 랑주가 원하는 페이스대로 해도 괜찮아
그게 사실은 랑주가 현민이를 앓는데 랑이는 워낙에 쿨하기에 랑주가 그걸 고민하는가 싶어서 좀 그러기도 했고... ☞☜ 아무튼, 랑주도 나한테 맞춰줬으니 나도 랑주한테 맞춰주고 싶어 랑주가 원하는 페이스대로, 랑주가 원하는 상황이나 서사대로
현민이가 천사라는 건 인정하겠지만 대신에 랑이랑 랑주 둘 다 천사라는 것도 인정해주셔야겠어
>>659 아마 >>656에 써 있는 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사실 랑이가 피어싱에 대해 잘 아는 다른 친구에게 질문해보고 잘 해주는 다른 샵을 찾아가서 한 거였으면 하지만 랑주가 바라본 랑이니까 >>656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 저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달라면... 가장 외진 곳을 찾아가서 한 게 아닐까 싶네
현민이는 아예 움직이기 싫어하는 가시투성이 고슴도치였지만, 지금은 소닉이 됐어......
귀성길 국도보다 더 느린 거라고 해도... 랑이가 얼마나 느려도 괜찮아 현민이가 가서 안아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