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럽다. 추악하다. 내게 붙은 평가들이었다. 하룻밤의 여흥으로, 불어터진 몸으로 내 몸을 깔아뭉개던 그들이 내게 잔에 담은 물을 얼굴에 부우며 했던 이야기들은 아직도 날 살아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내 얼굴과, 몸을 보고, 터진 입술에 흐르는 피를 삼킬 즈음에는 난 그들에게 방긋 웃는 얼굴로 인사해야만 했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이름 없는, 단지 누군가에 의해 휘둘리는 인형. 죽는 것도 거부된, 그저 살아야만 하는 인형.
"하? 지금 죽은 이들의 도덕성을 따지잔 게 아니잖아. 그런 궤변은 듣고싶지 않아. ... 그래. 우리가 저들을 죽여야만 했던 건 사실이야. 근데 꼭 그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죽여야만 했냔 말야. 너는,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막 즐거워? 꼴려서 미치겠어? 그래서 괴롭게 죽여도 괜찮은 사람만 눈이 벌게져서 찾아다니는 거냐고."
라임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빈센트가 터뜨린 고블린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감정이 격해지고 언성이 높아지며 점점 그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말이 새고 있단 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그를 올려보는 것이다.
"정말.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계속해서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사람이 망가져.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넌 내 친구잖아. 서로 믿어야 하는 동료잖아. 가까운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즐기고 있고, 그걸 바로잡아줄 수 없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어."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 라는 말에 빈센트는 부정했다. 그리고는, 무고한 이들과 악인의 차이를 설명하며 그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건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악인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과 선인, 적어도 무고한 이들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데는 아주 큰 차이가 있고, 이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은 죽거나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은 이의 도덕성을 따지고, 그 사람이 그런 꼴을 당해 마땅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행위.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것이 저를 범죄자와 헌터의 기로에서 헌터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는 즐겁냐, 꼴려서 미치겠느냐는 말에, 빈센트는 긍정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사실인 걸 어쩌란 말인가. 재미있고, 즐겁고 화끈한데. 슬쩍 라임을 쳐다보더니 간단히 말했다.
"네."
그리고 힘들다는 말에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라임에게 말했다.
"제 행동이 라임 씨에게 극단적인 불쾌감을 준다면 그건 안타까운 일이고,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절 그렇게 가깝게 생각해주셨다면 고맙고요.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전 천성이 그렇고, 불타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싫어하신다면, 라임 씨 앞에서는 참아보겠습니다. 이 정도에서 타협하는 건 어떨까요?" //9
"하. 그러니까. 너는 고통받아마땅한 사람들만 골라서 죽였으니, 범죄자가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은 거잖아. 그건 일단 알겠어."
라임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살인자를 죽이면 똑같은 살인자가 될 뿐이고, 그들이 저지른 악행이 당신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으며, 악행의 정도가 판결의 척도가 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은 사법 기관이지 우리같은 일개 헌터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악보 끝자락에 되돌이표를 하나 더 그려넣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싶어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낮은 곳에서 빈센트를 올려보며 다음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의외네. 그냥 신경 끄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나만 널 친구로 생각했던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고 중얼이며 희미하게 올라가는 그녀의 입꼬리에선 쌉싸름한 단맛이 났다.
"네가 즐거워서 그런다는데, 내가 어떻게 더 말리겠어."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과일향을 짙게 풍기는 사탕 하나를 꺼내어 들고서 마저 말을 이었다.
"네가 힘들다면 참지 않아도 돼. 대신, 나랑 하나만 약속하자. 나랑 함께 의뢰를 하는 날에만, 나한테도 가볍게 보고를 해줘. 네가 오늘 몇 명을 어떻게 죽였고, 그때 네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줘. ... 내가 상담사는 아니지만, 널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어. 그리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 말고, 다른 즐거움을 같이 찾아보자. 그게 네가 바라고 느끼는 쾌락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채워줄 수 있을 거야. ... 그래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든 사탕을 내밀어 보인다.
"이거, 너 먹어."
먹고 정신 좀 차려.
//사탕 조랑말의 젤리 깃털은 거래 불가 아이템이지만, 거래가 아니라 양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받아주시겠다면 일단 받아주시고, 문제가 생긴다면 캡틴과 상의후에 제가 책임질게요. 참. 그리고 라임은 인간을 포함해 지성을 가진 이들을 모두 '사람'이라 부르고, 종은 종별로 부르거나 인간은 '인간'이라고 부르는 개인적인 습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이라는 단어와 인간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했었는데, 조금 덧붙여봐요.
고양감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여,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감각.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겁니다. 신비로운 사실 하나 아시나요? 의념 각성자 중에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가진 비율이 극히 적습니다. 발생한다 하더라도 멘탈 트레이너를 통해 이와 같은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 있죠. 아마 이 사실에서 몇몇은 눈치를 채실 수 있었을겁니다.
(유려한 글씨체로, 다양한 글들이 쓰여진다. 눈여거 볼만한 문장들은 '감각적 다양화, 감정의 객관화' 와 같은 단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태창은 본인의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을 해줍니다. 영성은 감정과 감각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깊이를 더해주죠. 의념 각성자는 대부분 이런 객관적임에 있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자신의 부족함, 비틀림과 같은 것들에 더욱 익숙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의념 각성자의 감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멘탈 리딩과 같은 기술들까지. 이전까지의 시대가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면 지금의 시대에는 감정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돌아와서. 그렇다면 버서크는 왜 급격한 고양감이 발생하게 될까요.
인간의 육체는 생각 이상으로 연약합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체에 깔리면 간단히 부서지고 터져버리며, 어딘가에 잘못 부딪치면 부러지기도 하죠. 하지만 의념 각성자의 육체는 그 이상으로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떨어지는 물체를 피해내고, 부딪친 물건을 부숴버리며 돌파할 수 있게 되는. 자신의 육체가 순간적으로 강화되며, 그 감각으로 감정의 일부가 기능을 잃어버리는 상태가 바로 버서크라는 상태입니다.
버서크 상태에 들어서고 나면 의념 파장은 매우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통의 의념 각성자의 파장이 부드러운 물결 파동을 띈다 한다면 버서크 상태의 의념 파장은 매우 급격한 물결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위와 아래로 움직이기보다 짧고 직선적이게. 즉 의념 파장조차 충동적인 성향이 나타나게 되죠. 그런 상황에서 의념 역시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감정이 무너지고, 급격히 증가하는 망념 대신. 급격히 의념 지수가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전체적인 능력치가 증가했단 것을 볼 수 있죠. 지금의 예시식에서는 약 1.4배에서 1.8배 정도의 수치가 급격히 변화를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네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파장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에겐 조금 어려운 이해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페비니오스 - 스투크 망념 공식이 매우 길게 늘여지기 시작한다. )
버서크 상태에서의 의념 파장은 게이트의 몬스터를 규명하는 의념 파장과 매우 흡사한 파장을 유지하기 시작합니다. 잘 보면 비틀린 채로 억지로 높이는 것 같은 망념 파장과 다르게, 몬스터의 망념 파장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형태를 띄고 있음을 아실 수 있을겁니다. 이런 파장을 몬스터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 버서크 상태에 들어서고 나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버서크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의념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의념적인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아시기 어려울 것 같네요.
( 종이 울린다. )
이번이 두번째 수업이던가요? 다음 시간에는 그럼. 버서크에 대한 이론에 대해선 내려두고. 버서크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남길 말이 있어 잠시 들릅니다. 그...여러분 준혁주 오시면 혹시 제가 불편하신 건 아닌지 여쭤봐주실 수 있을까요. 단순히 시간대가 안 맞는 것 뿐인데 제가 오해한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혹시나 싶어서요... 혹시라도 제가 뭘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들의 처우는 전쟁법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저의 모든 행위는 합법 내지는 비범죄 영역이고, 라임 씨는 절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절 비난한다면 그것은 상관 없습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다르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에게 사탕을 내미는 손을 보고는 우뚝 멈춰섰다. 빈센트는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라임을 가리켰다. 손짓만으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빈센트의 능력 때문에 위협적으로 느껴졌겠지만,
"빵."
"끼에에에에에엑!!!!!!"
라임의 뒤통수를 후려치려고 달려들던 고블린이, 온 몸을 감싼 불에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다. 빈센트는 행여 트집잡힐까, 해명 같은 변명인지 변명 같은 해명일지 모르겠는 말을 남겼다.
"그냥 불만 붙이고 끝나는 게 망념 소모가 훨씬 덜하거든요."
그리고, 사탕을 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가로젓는 것도 아닌 애매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감사 섞인 사양의 의사를 표했다.
"사탕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게 없어도, 제가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지금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라임 씨가 원하신다면 말이죠." //11 좋은 아이템 주시는건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살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탯을 5나 올려주는 진짜 좋은 아이템이라... 더 받기 부담스럽네요...
"어릴 적에는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인형놀이도 재미있었고, 비행기를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었고, 그냥 노는 것만 봐도 재밌었습니다."
빈센트는 옛날을 떠올렸다. 뭘해도 재밌던 유년기가 떠올랐다. 그립지만 그렇기에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이. 그저 질투하고 부러워할 뿐인 좋았던 옛날이. 빈센트는 그 때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재미란 것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절 보살피던 후견인도, 살던 곳도 전부 바뀌어서, 누군가들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인간 사이의 관계에 애착이란 게 생기지 않더군요. 요술 딸랑이는 그저 방망이에 조약돌 여럿이 들어간 장난감일 뿐이고, 진짜 같던 만화영화는 그저 수많은 정지된 화상을 이어붙인 정적의 연속이고. 그런 식으로, 점점 제가 좋아하던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단 하나를 빼고요."
빈센트는 불에 대해 설명했다. 온 몸이 숯덩이로 변했는데도 살아있는 고블린을, 손가락을 튕겨서 만든 폭발로 편히 보내주며.
"불의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불은 차가운 동굴에 움츠린 저를 살렸고, 저를 먹으려던 곰이 되려 제게 먹히게 했으니까요. 그 빛이, 그 뜨거움이, 그 고통이 좋았습니다. 불이 몰고 오는 수많은 고통이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세상에서 느끼는 유일한 재미였습니다."
라임이 듣기로, 그는 다소 결핍이 많은 유년기를 보냈고 자신이 가진 능력이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으며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뜨거운 불로 인한 쾌락이었다. 불이 몰고 오는 수많은 고통이 그가 세상에서 느끼는 유일한 재미라고 생각될 정도로... 뭐. 그런 이야기였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 하는 추임새 없이 조용히 그의 이야길 듣고만 있던 그녀는, 다 끝났냐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옆으로 기울인다.
"인간에게 있어서 불은 없어선 안 될 존재야. 뜨거운 불은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따듯한 온기를 주기도 하잖아. 불로 고통을 주는 것 말고도 이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많은데. 꼭 그 힘으로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락을 느끼는 데에 집착해야만 하겠냐고. 나는 아까부터 그런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벽에 붙였던 발을 내리고 반대쪽 발을 벽에 붙이며 빈센트를 똑바로 바라봤다.
"앞으로도 네가 잔인한 쾌락만 좇겠다고 한다면 더는 말리지 않을게. 이제 와서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널 무작정 비난하려던 게 아니라 네가 쾌락 말고도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야. 오해는 하지 말아 줘. 그리고, 네가 꺼낸 말만 지켜줬으면 해. 내가 보는 앞에서는 쓸데없는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행위는 삼가기로. 누굴 죽이는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불타 죽으면서 내는 비명들이 그다지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거든."
시간대는 아마 4월쯤으로 할 것 같고...아직 영월 기습 작전에 대한 애기를 듣기전으로 할 것 같네요. 장소는 정규수업을 마친 미리내고에서 하교하는 타이밍에 우연치않게 동시에 입구쪽에서 만나게됬는데, 그 날이 마침 봄비가 내리는 날이라서 둘중에 한명은 우산을 챙겨오고 한명은 우산을 챙기지않았던지라 빌립니다. 우산을 빌린(혹은 우산을 빌려준) 연희가 잠깐 지나가다 들를 곳이 있다며 애기를 꺼내고 간 곳이 골목길에 있는 고양이 혼자 살고있는 집...이라는 전개는 어떨까요?